









먼저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이야기’라는 슬로건이 인상적인데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이감각이 디자인하고 싶은 한국스러움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이감각의 작업은 ‘전통의 현대화’나 ‘전통이 무엇인가?’를 다루기보다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가깝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모든 것은 우리안에 있다’였죠. 디자인에 우리 자신에 대한 적극적인 탐색 의지를 담습니다. 우리가 가진 특색이 보다 일상에 가깝고 편하게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어요.
그렇다면 이감각에게 전통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에게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나를 인식하는 일입니다. 전통은 할머니의 오래된 가구를 엄마가 쓰고 엄마의 젊은 시절 원피스를 내가 입는 것과 아주 다르지 않아요. 누군가 아꼈던 물건들을 통해서. 그걸 물려주는 마음을 통해서. 그들을 헤아리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누구보다도 자신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인식하는 것은 외부를 통해서가 아니죠. 한국을 이루는 수많은 것들 또한 입에서 입, 손에서 손, 그리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왔다 생각해요. 우리만의 히스토리가 있는 오브제들을 통해서 한국적인 해학, 소박, 흥을 전하고 싶어요. 더불어 세상에 유일한 나를 사랑하고 즐기는 경험을 전하고 싶습니다.
요즘 한국의 전통에서 디자인 언어를 얻으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적인 멋’을 탐구 중인 창작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한국 고유의 디자인 언어를 딱 하나로 좁혀서 말하긴 힘들지만! 저희가 가장 흥미롭게 보는 요소는 ‘해학’입니다. 유머라고 하죠. 주어진 현실을 과장하거나 비꼬는 게 우리게에 있어요.
유튜브 댓글 창 같은 거 보면 한국 사람들은 말을 되게 웃기게 하잖아요.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꼬인 걸 풀려고 하고. 풀린 건 꼬면서 놀고.
이런 해학적인 태도가 한국만의 위트인 것 같아요.
해학이 디자인 언어가 된 사례는 어떤 게 있을까요?
도자기에 그린 그림이나 표현 방식이 그래요. 그릇에 점 하나 탁 찍어서 마무리하는 기법 같은 게 그렇죠.
또 하나는 호랑이 그림인데요. 다른 나라는 무섭게 그려요. 두려운 존재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맹수를 귀엽게 묘사하거나 우스꽝스럽게 표현햐요.
호랑이를 친근하게 그리는 건 호랑이와 친한 관계를 원했던 게 아닐까요?
호랑이처럼 무서운 대상을 좀 더 쉽게 다룰 수 있는 존재 혹은 허물어진 존재로 여기는 거죠.
이건 한국인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관계성일 텐데요. 우리는 남을 포용하고 함께 섞인 채 노는 상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미감도 그런 방향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양처럼 자연과 나를 독립시키려는 태도와는 달라요. 지금까지 얘기했던 점들이 이감각의 제품이나 디자인 스타일에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감각이 요즘 푹빠진 한국의 디자인 언어는 무엇인가요?
‘매듭’입니다. 저희는 한국적인 디자인의 맥락이 해학이라 보는데요. 해학을 떠올리면, 농담을 거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얽히는 모습이 떠올라요. 그것을 실을 써서 조형적으로 풀면 실과 실이 꼬인 매듭이 나옵니다.
매듭 자체가 한국문화 특유의 관계성이 반영된 조형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서양에서는 그냥 도구 내지는 수단이거든요. 끈을 묶어서 뭔가 물건을 만들고 고정을 하는 목적 그 자체만 남는 건데 우리나라는 달라요. 매듭 자료도 많이 남아있고 한국인이라면 매듭의 의미적인 맥락을 볼 수 있지요.
매듭은 재밌어요. 2d인데 3d고 2d가 3d가 된 거라서. 묘한 해학이 생기죠. 완전 평면인데 접으면 입체니까. 이감각이 하고 싶은 디자인. 이감각이니까 할 수 있는 디자인 이야기가 생기는 거죠. 평면인데 자수를 넣고 엮고 접고 하면서 얘기가 생기고. 그 면과 면 사이에 또 다른 관계성이 생기는 것. 그런 게 좋습니다. 실 뿐만 아니라 흙이나 실리콘 등 다양한 소재로 매듭 디자인을 만드는데 도전하고 있어요!
특히 패브릭 소재 매듭은 사람손을 타는 디테일인데요. 공임 과정에서 매듭을 전담해주실 협업파트너의 존재가 정말 소중합니다. 저희가 그동안 매듭에 매달리면서 이걸 전담해주실 수 있는 장인분을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그 덕을 많이 볼 거 같아요. 원하는 디테일을 만들기 위한 파트너를 만나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frice 사무실(마포구 상수동)에는 주변의 카페에서 가져온 인포그래픽 포스터와 홍대앞 지도가 붙어있다. <스트리트 H>는 홍대앞의 다양한 변화와 문화예술 활동, 홍대앞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동네문화 잡지로, 매월 다른 주제의 색다른 그래픽과 유용한 정보를 담은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함께 무료 배포한다. 최근 는 창간 15주년(2009년 6월 창간)을 맞이했고, 인포그래픽 포스터도 2024년 현재 100종 이상 발행하였다. 왜? 누가? 이러한 수고를 15년 동안이나 하고 있을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 대표이자 <스트리트H> 공동 발행인입니다. 2003년 창업할 때 회사명은 ‘디자인 스튜디오 이공삼’이었어요. 규모를 키우지 않고 하고 싶은 일 위주로 하고 싶어 ‘디자인 스튜디오(한 칸짜리 작은 공간)’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한국의 현실에서 디자인이라는 용어의 쓰임이 너무 오염되어 버렸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추구하려는 활동, 작업의 의미를 전달하기에 더이상은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016년 회사 명칭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란 단어를 과감히 빼고, ‘이공삼(203)’ 만 남겼습니다. 지금은 ‘인포그래픽 연구소’라는 부분을 더 부각하고 있어요.
이공삼 인포그래픽연구소의 모토는 ‘직관적 이해 만들기’입니다. 또 하나는 ‘세상 모든 지식의 시각적 지혜화’입니다. 저는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합니다. 열심히 외웠다가 시험 보고 나서 잊어버려도 사는 데 지장 없는 것이 ‘지식’. 살아가는데 꼭 알아야 하는 것이 ‘지혜’. 불은 뜨겁다, 날카로운 것엔 베인다, 생명체는 존중해야 한다. 같은 것이죠.
요즘은 우리 회사, 또는 나 개인의 브랜딩은 어떤 걸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007 영화 속에서 악당이 페르시아고양이를 품에 안고 세계 정복을 읊조리는 것처럼, 저도 우리 사무실 고양이 ‘모모 부장’을 끌어안고 재미나게 저희의 야망을 피력합니다.
TALK THEME 1. 인포그래픽 포스터와 ‘K’
이공삼의 인포그래픽 포스터 중에서 한국 문화를 주제로 한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 문화를 다루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한국’이란 주제는 포스터 주제들 전체로 보면 일부분이에요. 지금까지 만들었던 한국 문화 관련 인포그래픽들은 비빔밥, 소주, 김밥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문화적으로 유니크한 걸 제작하려다 보니, 그중에 한국적인 소재가 자연스럽게 포함된 거죠.
2015년 8월, ‘한국국제교류재단’ 주최로 “맛 MAT – 한국의 멋과 맛”이라는 전시회를 했었어요. 그때 저희가 김치, 막걸리, 소주 등 대형 인포그래픽 설치 작업으로 참여했는데요. 주최 측에서 비빔밥도 추가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래서 스터디를 해보니 ‘비빔밥’이 아니라 ‘섞어 먹는 밥’에 더 가까운 거예요. 예를 들면 국밥, 그리고 삼겹살 구워 먹고 남은 재료 다 넣고 섞어 먹는 것, 찬물에 밥 말아서 섞어 먹는 것 등등. 일본에도 오차즈케가 있긴 하지만, 일본은 기본적으로 섞는 것을 싫어해요. ‘그렇게 예쁘게 해놓은 걸 왜 섞느냐. 미적으로 추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한국은 달라요. 한국 대표 비빔밥의 전형은 전주비빔밥이겠지만, 일상 속 서민의 식탁에서는 아무거나 넣어도 되잖아요. 자기 기호대로 찬밥에 열무김치를 비비거나, 치즈 좋아하면 치즈를 넣는 식이죠. 김밥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의 이런 뒤섞이는 문화가 재밌는 포인트라고 생각해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한국 문화 외에도 다양한 주제를 다루시는데요. 포스터의 주제는 매달 어떻게 선정하시나요?
저는 ‘그냥’이라는 단어를 싫어해요. 매사에 ‘그냥’ 하지 말자고 강조합니다. 제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그냥은 금기어였습니다. 그냥은 부모 자식 사이나 연인 사이에서만 쓸 수 있는 단어라고 말해 줍니다. 모든 게 원인과 결과인데, 특히 디자인 프로젝트는 매우 공적인데 클라이언트에게 ‘그냥’ 디자인했다는 말을 쓸 수는 없지 않나요?
그리고 ‘나열’했다는 것도 말이 안 돼요. 공깃돌 5개를 던질 때도 모여있게 할지, 떨어뜨려 놓을지, 의도를 갖고 던지잖아요. 그런데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그냥 나열했다’고 하는 건 사전에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는 자백과 다름없는 거죠. (웃음)
그래서 저희는 포스터 주제 결정을 위해 구글 시트로 시의성, 정보성, 심미성 등 기준들을 세팅해 놓고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모읍니다. 개인의 취향은 중요하지만, 이런 걸 생산하는 데는 개인의 취향에만 치우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기준들이 더 중요해요.
아이디어는 인턴부터 대표까지 함께 생각을 모읍니다. 그러고 나서 합계를 내보기도 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검토합니다. 때로 어떤 주제는 합계 총점보다 시의성이 더 중요할 때가 있어요.
시의성이 중요했던 작업은 어떤 것이 있나요?
2019년에 작업했던 1919년 ‘3.1 만세운동 100주년’과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 인포그래픽 포스터입니다. 누리호 발사에 관한 것도 시의성을 고려한 경우고요. 이런 경우는 시의성도 염두에 두었지만, 눈앞의 이익보다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무’를 더 고려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국민 판다 푸바오 포스터는 후이바오, 루이바오가 갓 태어날 무렵에 발행했는데 벌써 중국으로 돌아가 버렸네요.
그리고 의도적으로 쌓아가는 것들도 있어요.
예를 들면 2016년에 상수동의 ‘PACTORY’라는 공간은 두성종이 출신 동업자와 제가 만들었어요.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종이를 만져보고 수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인데요. 그곳에서 진행될 워크숍의 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오픈 전 몇 달에 걸쳐 미리 실크스크린, 리소그래피, 레터프레스 등 수작업으로 하는 디자인 제작 시리즈를 만들었죠.
이공삼의 인포그래픽 포스터 디자인 프로세스가 궁금합니다.
‘기획개요 마인드맵’을 저희만의 프레임으로 만들어 놓고 그걸 가장 먼저 채웁니다. 저희는 이걸 나침판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여기에는, 우리는 ‘무엇을’, ‘누구를 대신해서’, ‘타겟 누구에게’, ‘왜 저들이 이걸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등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겉보기에는 너무 간단한 방법이라서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지기도 하는데, 정말 효과적이고 중요한 단계입니다.
교과서 같이 텍스트의 단락들로 계속 이어지는 정보를 이공삼에서는 ‘리스트형 정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형식의 정보는 눈에 잘 안들어오기도 하고 빠른 이해가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는 리스트형 정보를 반드시 마인드맵으로 정리합니다. 정리할 때 유의 사항은 문장을 *‘개조식’으로 작성하는 것입니다. 정보의 **’하이어라키’와 카테고리가 잘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후, 본격적으로 메인 마인드맵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자료를 모으다 보면 팀원들끼리도 이게 우선인지, 저게 우선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나침판으로 다시 돌아가서 함께 살펴봅니다. 그러면 누가 타겟이고 왜 이 정보를 만드는지 환기가 되고 합리적인 의견일치가 가능해 집니다.
*개조식: 부호(또는 번호)와 들여쓰기를 활용해 문서의 구조를 시각화한 형식.
글을 쓸 때, 글 앞에 부호나 번호를 붙여가며 중요한 요점을 정리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보고서나 기획서는 서술식보다 개조식으로 쓰는 것이 이해가 빠르다.
**하이어라키: 정보의 위계/계층. 마인드 맵에서 정보의 중요도를 시각적으로 정리할 때 중요한 기준.
이와 함께 정보의 갈래를 정리하는 카테고리제이션도 중요하다.
인포그래픽 포스터 한 장에 많은 정보와 그래픽 작업이 필요한데요. 작업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아요.
<스트리트H>의 인포그래픽 포스터는 2015년 6월부터 한 달에 한 종씩 제작하고 있어요. 매달 디자인 팀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담당자가 됩니다. 때로는 서로 두레처럼 도와주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전체 진행(주제 선정부터 마인드맵, 자료조사, 내러티브 다이어그램)은 담당자가 메인이 되어서 진행해요. 특이한 점은 주제 기획, 조사, 디자인까지 디자이너가 완결한다는 것입니다. 인포그래픽에서 편집팀의 역할은 교정, 교열과 추가 의견 정도입니다. 텍스트 콘텐츠 가공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디자이너들을 위해 마인드맵을 활용하게 된 것이죠.
텍스트를 구조화하는 마인드맵 단계를 거치면 ‘내러티브 다이어그램’ 단계로 넘어갑니다.
내러티브 다이어그램은 뭔가요?
‘서술적인 정보 관계 구조를 표현하는 다이어그램’이란 의미입니다. ‘내러티브 다이어그램(Narrative Diagram)’이라고 표현한 건 일반적인 다이어그램과 구별하고 싶어서였어요. 해외 컨퍼런스 발표 때도 영어로 ‘내러티브 다이어그램’이라고 표현합니다. 나중에 물어보면 그런 용어를 처음 듣지만,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제가 만든 이 용어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웃음) 우리가 만든 단계가 인정된 느낌이라서요.
인포그래픽 프로세스를 일상생활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까요?
이공삼의 인포그래픽 프로세스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기획개요 마인드맵 작성 -> 텍스트 정보 구조화 -> 시각적 정보 구조화
이 중 ‘텍스트 정보 구조화’가 중요합니다. 잘 구조화된 텍스트 정보를 시각적으로 발전시키면 기억에 오래 남는 정보 패키지가 됩니다. 그러니 학생들의 책 읽기 등에 활용하면 아주 효과적이지요.
올해 초, 선유도서관과 함께 초등 3, 4학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내용은 마인드맵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구조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막연하게 좋아하는 이야기를 고르고 좋아하는 이유, 스토리라인, 등장인물들의 관계,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 등을 마인드맵을 통해 정리하게 했어요. 몇 주 동안 계속 질문과 대답을 하며 마인드맵으로 정리했습니다. 그 결과물을 보면 정말 초등학생의 것이 맞을까 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냥 읽는 책은 쉽게 잊혀집니다. 저는 이것을 텍스트의 휘발성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마인드맵으로 구조화하는 과정 동안, 그리고 완성된 것을 몇 번 반복해서 들여다 보면 기억 속에 아주 오래 남게 됩니다.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게 되는 셈이니 다양한 분야에서 도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인포그래픽 디자인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저는 좋은 인포그래픽을 삼각형으로 비유해서 얘기합니다. 정보가 잘 전달되기 위해서는 ‘유익한 정보’ ‘이해하기 쉬운 정보’ ‘매력적인 정보’. 세 가지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야 해요.
예를 들어 교과서는 유익한 정보이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죠. 그래서 참고서가 이해하기 쉽게 해주려고 밑줄, 형광펜, 다이어그램들을 사용하면서 노력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에도 매력은 없어요. 참고서 재밌다고 하는 학생들은 드물지 않을까요?
그런데 학습 만화는 읽지 말라고 해도 식탁 앞에서도 손에서 놓지 않잖아요. 이유가 뭘까요. 내용은 같지만 이해하기 쉽게, 시각적으로도 재미있게 보여주는 거예요. 그게 바로 매력이고 전달의 핵심입니다.
매력적인 정보에 인포그래픽의 일러스트 스타일이나 인터랙티브 방식 같은 것도 중요할까요?
모든 스타일이나 형식은 기획개요 마인드맵을 통해 설정됩니다. 누가 어떤 타겟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그 내용에는 어떤 방식이 적합할까? 인쇄물도 팜플렛, 포스터 등 형식이 다양하고 때로는 *모션 인포그래픽,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이 적절할 때가 있어요. 즉흥적인 판단이 아니라 치밀한 분석을 토대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2018년 7월 경향신문과 함께 작업했던 “평양냉면”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모션 인포그래픽 : 정보를 영상화 하여 제공하는 인포그래픽.
정보의 스토리화, 다양한 강조점 사용, 사운드 효과 등의 장점이 있다.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 : 인터랙션을 이용하여 정보를 제공하는 인포그래픽.
모션 인포그래픽의 장점을 포함하면서 수용자의 정보 수용을 능동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다.
평양냉면 인터랙티브 아티클 작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언론재단에서 강의를 할 때마다 언론 종사자들이 묻습니다. 종이 신문의 미래가 어둡고 뉴미디어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큰 신문을 어떻게 조그마한 스마트폰에 집어넣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많았어요.
그런데 왜 꼭 그래야만 할까요? 종이 신문은 신문대로 지상 최대의 판형이에요. 손으로 만지고 넘겨 보는 경험과 물성이 있죠. 그에 반면 스마트폰은 종이가 갖지 못하는 모바일, 인터랙티브함이 있는데 왜 굳이 종이신문을 스마트폰 안에 넣어야 하냐는 거죠. 미디어의 특성에 따라 다른 형식의 콘텐츠를 담아내는 것이 필요한거죠.
그래서 경향신문에 평양냉면 지면 인포그래픽과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을 동시에 제안했어요. 같은 주제지만 지면에서는 서울의 평양냉면 노포와 신흥, 두 갈래로 큰 지면에서 보여주고 인터랙티브 쪽에서는 스마트폰을 통해 재료 하나하나를 직접 선택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냉면집을 찾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평양냉면에 맨스플레인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중년 아저씨들의 잔소리죠.(웃음) 그러나 인터랙티브를 통해 누구나 마음 편하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평양냉면을 고를 수 있게 한 거죠. 인포그래픽이 수직적인 문화와 정보를 수평적으로 개선했다고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지금까지 작업 중 가장 의미 있었던 작업은 무엇인가요?
역시나 3.1운동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예요. 자체적으로 제작한 이 3.1운동 인포그래픽을 가지고 임시정부기념관 설립위원회에 접촉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한 인포그래픽도 제작했어요. 임시정부가 3.1운동 이후 영향을 받아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설득한 거죠.
3.1절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3.1절 전후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인과관계로 3.1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정확히 대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역사를 점(點, dot)으로 암기하고, 시험으로 접하며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3.1절을 단순한 숫자나 하나의 인물이 아닌 ‘인과’로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떤 사건들이 영향을 미쳐 3.1운동이 준비되었나. 준비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선언문의 작성, 선언문의 의미 등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리고 3.1운동 이후 국내외적 변화까지 담아냈습니다. 눈으로 흐름을 따라가면 책 1권 이상의 정보를 쉽고 흥미롭게 이해하고 기억에 담을 수 있습니다. 이 포스터는 역사교사 모임에도 배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을 저는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 중심의 직업인 것 같지만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 책무를 가지고 눈앞의 이익과 상관없이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TALK THEME 2. 인포그래픽 디자이너의 세계
해외에서 디자인 어워드 수상과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시는데요. 해외와 한국 인포그래픽 디자인의 차이를 느끼시나요?
그래픽 디자인의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수신자가 누구고 발신자가 누구냐에 따라 차이가 있는 거겠죠. 뉴스 미디어인가, 흥미 위주 콘텐츠 미디어인가, 출판사인가 이런 차이겠죠. 그리고 회사의 규모, 예산이 미치는 부분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어워드는 “자기 증명”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작했습니다.
클라이언트들이 인포그래픽 분야가 낯설다 보니 이공삼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신뢰할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국내외 인포그래픽과 디자인 공모전에 응모했고 다수의 좋은 성과를 내었습니다. 그랬더니 클라이언트들의 시선이 바뀌더군요. 물론 우리 내부의 스탭들에게도 좋은 격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해외 공모전 수상을 통해 해외에서 이공삼의 인포그래픽이 알려지게 되었고 워크숍 또는 컨퍼런스에 발표자로 초대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요즘도 디자인 컨퍼런스나 어워드에서 만난 해외 인포그래픽 디자이너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그들의 작업도 관심을 갖고 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인포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분야에 비해 적어서 그런지 만나면 따듯한 형제애 같은 게 있어요.
수많은 인포그래픽이 있지만 핀터레스트에서 인포그래픽을 검색해 보면, 이공삼을 비껴갈 수가 없어요. 우리처럼 100개 이상 일관된 형식으로 만들고 있는 곳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표절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공삼은 상관하지 않고 계속 이런 작업을 이어 나가려고 합니다.
😈 우리는 일상에서 매일 지식을 소비하고 있어요. 사람이 지식을 교환하는 첫 번째 방식은 입말과 글말일 텐데요. 인간의 언어는 기차처럼 선형적이어서, 처음과 끝을 다 연결해야 메시지를 온전히 전할 수 있습니다. 추상적인 개념, 논리가 복잡한 정보일수록 정확하게 전달하기가 어려워지죠.
이공삼은 문자언어의 한계를 인포그래픽 디자인으로 극복해 왔습니다. 수십년 동안 인포그래픽을 연구해온 디자이너가 알려주는 ‘복잡한 지식을 척 보면 딱 알아보도록 만드는 방법’ 어떠셨나요?
디자인의 힘으로 문자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분들에게 이번 인터뷰가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이런 축제는 없었다
축제는 관람객을 오래된 상가건물로 초대한다. 골목에서 100년 묵은 적산가옥을 만났다. 2층은 지역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재즈클럽이, 1층은 수상한 가라오케가 있다. 두 업장은 동시에 영업중이다. 어울리지 않는 것이 느슨하게 뭉쳐 독특한 미감을 발휘하는 동네. 축제 기획자들은 인천 구도심의 기이한 공간을 주목한다.
한국의 지역축제는 주로 광장에서 열린다. 수평적인 공간에 터를 잡아 잔치를 연다. 지붕이 뾰족한 임시 천막, 넓게 펼친 플라스틱 의자. 임시무대에서 펼쳐지는 찬조공연은 K축제의 전형. 2023년 9월, 인천 구도심에서 열린 어느 지역축제는 달랐다. 광장이 아니라 골목에서 페스티벌이 열렸다.
광장이 아니라 좁은 밀실에서 이뤄지는 기묘한 축제였습니다. 어쩌다 이런 축제를 만들었나요?
창길 마계인천 페스티벌은 개항마을 대표 이창길과 인천맥주 대표 박지훈의 식사 중 수다에서 시작됐습니다. ‘A에서 B행사 열면 잘 어울리지 않을까?’ ‘C라는 곳에는 D를 모시고 E를 해보고 싶어.’같은 말이 현실이 된 거죠.
저희는 개항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활동중입니다. 브랜드로 인식되지만, 회사나 협동조합은 아닙니다. 서로 계약관계로 묶이지 않았다는 게 핵심인데요. 이런 관계는 서로 매력이 없거나 마음에 안 들면 일을 안 만든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결혼은 아니고 연애. 일종의 다자간 연애상태라 볼 수 있겠네요.(웃음)
지훈 축제행사는 지인과 술 마시면 자주 하는 이야기들의 연장선입니다. “이런 기획을 우리 동네에서 하면 정말 끝내주지 않을까?”라고 던지면 어느샌가 실행되는 거죠. 방향성과 색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놓으면, 다들 서로 못 참습니다. 뜻이 맞으니 일을 펼쳐야 직성이 풀리는 거죠. 마계인천 페스티벌도 사실 이렇게 판을 키울 계획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일이 되게끔 만들다 보니 계속 커졌죠.
박지훈 대표님은 이미 인천맥주를 통해 ‘마계인천’이란 이름을 걸고 팝업 이벤트를 여셨죠. 지역 노포와 협업에 나섰습니다.
지훈 페스티벌의 시작점입니다. ‘지금 타이밍에 판을 키우면 딱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어요. ‘마계인천’이라는 이미지는 호불호가 갈리는데, 이제 호(好)가 조금 더 많아지는 시기인 거죠. 처음엔 나쁜 시선으로 보던 분들도 ‘쟤들이 지금 뭔가 진실한 마음으로 애쓰긴 하는 구나’라는 식으로 응원해 주시는 걸 본능적으로 체감해요.
창길 박지훈 대표님은 원래 공연했던 사람이고 지금은 맥주 만드는 사람입니다. 존재 자체가 고유자원입니다. 서로 형편을 잘 알고 있으니, 지역 내 기획자끼리 협업을 추진하면 굉장히 빠르게 돌아가는 거죠.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각자의 배경이나 발상을 이미 공유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마계인천 페스티벌의 레퍼런스는 제 영국 유학시절에 있었어요.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얻은 영감이죠. 시내 곳곳에서 거리 공연을 볼 수 있었어요. 여기에 저희가 임대해서 쓰는 상업공간이 있어요. 수년간 인근 이웃과 맺은 관계도 있죠. 이번 축제는 각자의 자원이 유기적으로 뭉쳐 벌어진 협업입니다.
포스터부터 파격입니다. 일단 정보값을 담은 디자인이 적어요.
창길 없는 게 참 많았습니다(웃음) 보통 페스티벌과 비교했을 때 중앙 무대가 일단 없고요. 맵도 없었습니다. 포스터에는 타임 테이블도 느슨하게 적혀있어요. 다만 QR코드처럼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디자인이 크게 들어가 있어요. 링크 찍으면 정보 열람이 가능하니까. 중요한 정보는 웹사이트에. 올 사람들에게 중요한 정보만 노출시키자. 스마트폰 켜서 QR코드 찍을 정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 행사정보를 보게 만드는 디자인이었죠.
저는 이게 본능을 따르는 일이라 봅니다. 계획이나 디자인 이전에 본능이 있어요. 행사를 기획한다면 뭐가 더 재밌을지를 따져요. 결국 더 이끌리는 방식을 따라가는 거죠. 개항로 축제의 핵심은 ‘재미’였어요. 철저하게 주최자 입장에서 재밌거나, 관람객 입장에서 재밌을 것 같은 행사만 추려서 진행한 거죠.
제가 얼마 전에 어느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회의에 들어갔어요. 페스티벌 계획서에 피드백을 남겨달라 하시기에 ‘진짜 말해도 되냐?’라고 물어봤습니다.
소신발언 하셨나요?(웃음)
창길 계획에 품바가 쓰여있었습니다. 품바나 사물놀이. 물론 할 수 있죠. 저는 회의 패널에게 물었어요 ‘행사 때 품바 보실 분 계십니까?” 다들 웃더군요. 안 볼 거라는 거죠.
페스티벌은 보통 관람형이긴 해요. 마계인천 페스티벌은 100% 참여형이라고 해야할까요. 흩어진 행사장을 전부 돌지 말지. 공연에 호응을 할지 말지. 물건을 살지 말지. 그러나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각자 알아서 하는 거죠. 이것만큼은 의도된 부분입니다.
‘개항로 프로젝트’는 인천 구도심의 건축공간을 활용하고 싶은 지역 소상공인의 느슨한 연합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에는 팝업 페스티벌을 시범운영하며 변화를 꾀합니다.
창길 지금보다 더 폭넓게 가져가고 싶다는 마음이 크죠.
많은 사람들이 도시부흥이나 지역재생을 희망해요. 교수, 상공인, 행정공무원, 대표주민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목소리를 키우죠. 로컬 프로젝트를 만들어요. 아쉽지만, 잘 된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 안 됐을까’를 고민해 봤어요. 제 생각은 “옛날엔 그런 조직이 필요했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로컬 디자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로 이해되네요.
창길 조직화가 통한다면, 이유는 전문성 때문일 거예요. 옛날엔 교수, 관공서 직원, 상공인 모두 각자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스페셜리스트였고. 역량이 뭉쳤을 때 시너지 효과가 났죠.
인터넷이 깔린 지금은 달라요. 지금은 누구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고, 평범한 이웃이 알고 보면 전문가인 거예요. 통닭집 사장님이 사실 뛰어난 예술가. 카페 사장님이 유능한 이공계 박사인 경우. 많잖아요. 옛날엔 상인은 상인이고, 교수는 교수였어요. 요즘 사람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쥐고, 상황에 맞게 드러내며 살아요.
바꿔 말하면, 이제 전문가가 다양하게 모일 필요가 없어요. 다양함을 간직한 개인이 서너 명 모여 행동하는 게 나을 수 있어요. 색이 분명한 사람들이 방향성을 맞춰 무언가를 시도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거죠. 설명하긴 어려운 생각인데.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이번 축제는 인천에서 이창길과 박지훈이라는 사람이 만났고. 그들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만들어낸 팝업 이벤트입니다. 저희가 이렇게 뭔가 만들어 내면! 저희가 끼든, 안 끼든 지역 내에서 다음 일이 벌어지겠죠.
축제를 하려면 공간이 필요합니다.
대관장소는 모두 상업공간이었고, 노포의 경우 지역상인들의 협조를 구해야하는데요.
윤정 노포와의 협업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지역사회에서 상생과 협업은 정말 중요한 가치고, 필요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지역에 좋은 일을 하니까, 이해받고 싶어.’ 혹은 ‘지역을 위한 일인데 협조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들이 샘솟았어요. 하지만 현실은 핑크빛이 아니었죠.(웃음)
지역을 위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해서, 청년들이 주체가 된다고 해서 모두가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죠. 누군가에겐 생계나 돈이 가장 중요할 수 있어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더라고요. 한편 협조를 구하는 과정에서 뜻이 맞는 분들을 만나거나, 생각을 바꾸는 분들도 계셔요. 아마 그런 경험들이 지속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창길 가장 고심했던 축제장소는 노래자랑대회와 신해철음악감상회였어요. 심야시간에 DJ파티까지 하려면 커다란 항만창고같은 걸 빌려야하나 고민했죠. 온갖 아이디어가 나오다 7080라이브펍과 다방으로 의견이 모였어요. 이곳은 중장년층 전용공간이기도 했고, 특히 MZ세대라면 갈 리가 없던 공간이잖아요. 의외성이 기대되는 거예요. 여러 가게를 돌며 후보군을 좁혔죠. 쾌적하지 못한 지하공간이나 ‘아! 여긴 너무 음침하다’ 싶은 곳은 걸렀어요.
지훈 7080라이브펍의 소파는 이제 돈 주고도 못 구할 인테리어입니다. 다방의 경우 흡연자들이 마음대로 흡연했을 거 같은 흔적이 곳곳에 있어요. 저희가 탐색한 공간이 마계라는 이미지와 비슷한 거죠. 그런 장소를 새롭게 꾸미고 희화화 시키는 거잖아요. 재미있는 행사 치르면서 나타날 색다른 모습을 기대했습니다.
행사 준비하면서 생긴 해프닝이 궁금합니다.
윤정 제가 현장에 투입돼서 페스티벌 기획을 진척시킨 건 정말 짧은 시간이었거든요. 가장 특이하다 느꼈던 건 소통방식이었어요. 기획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큰 그림에 대한 공유만 있고. 나머지는 알아서 움직여서 콘텐츠를 채운다는 인상? 예컨대 박지훈 대표님은 음향이나 무대세팅을 잘 아세요. 그러면 공연프로그램은 박 대표님이 임의로 행사준비를 진행시키는 거죠. 헛힘을 쓰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면요?
윤정 보통 축제가 열리면 홍보를 해야 하잖아요? 어디에 포스터를 붙이고 누구한테 알릴 건지. 서류를 써보는 게 상식이죠. 곁에서 지켜보면 두 분은 페이퍼 워크 거의 고민하지 않아요. 메인 디렉터 두 명이 ‘어떻게 하면 즐거운 페스티벌이 될 수 있을까?’만 고민하는 거죠. 분산되지 않는 에너지가 남다름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창길 박지훈 대표님과 손발 맞춘 세월이 워낙 깁니다. 알아서 움직이는 일이 많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문제가 안돼요. 하지만 저희도 알아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들이 있는데, 둘 다 체크를 못하는 거예요. 실수인지도 모르고 넘어갈 일들이죠.
그런 건 프로젝트 매니저인 윤정님이 중간에서 환기를 시켜주시는데(웃음) 엉뚱한 곳으로 걷는 소들을 원래 가려고 했던 길로 잘 몰아주시죠.
빠른 의사결정과 화끈한 실행력은 상대적으로 디테일을 약화시킵니다.
윤정님처럼 디테일을 챙기는 멤버가 있기에 상호보완이 되는 거군요.
창길 제가 지방출장 후 복귀하는데, 문득 이번 행사준비 너무 전형적으로 간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축제를 여는 명분이나 목적에 휘둘린다는 느낌. 러닝메이트인 박지훈 대표님에게 연락했어요.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으니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말씀하셨죠. 바로 다음날 기존 기획을 조정했습니다.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것만 하자’라는 원칙을 다시 세웠어요. 둘 다 찝찝했던 기획은 결국 ‘우리가 하고 싶은 걸 100% 하고 있지 않았다’라는 반증이죠.
여러분이 축제를 통해 진짜 하고 싶었던 게 정확히 무엇인가요?
창길 신해철음악감상회 같은 행사죠. ‘사람이 여럿 모여서 신해철 음악만 듣는 행사 있으면 미치지 않을까?’ ‘술 마시면서 노래 듣고 따라 부르면 재밌어 죽겠지 않을까?’ 이런 건 상식선에서 판단하면 아예 모임을 열 수조차 없어요.
하지만 축제니까. 금기를 넘는게 축제의 본질이니까 가능해집니다.
지훈 군중 속으로 들어가서 떼창을 하고싶은 마음. 향수를 건드리는 기획. ‘마계인천’이라는 축제 콘셉트와 부합하는 행사. 내심 하고 싶었던 이벤트. 저희가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창길 설득을 하면 안 되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나랑 견해가 다른 사람들 설득해서 뭘 같이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설득이 끝나면 설득된 방향에 맞춰서 둘의 색이 비슷해지잖아요. 설득이 거듭될수록 대한민국은 다 비슷한 색으로 물드는 거 아닐까? 그러면 점점 재미 없어지는 거 아닐까? 막연하지만 페스티벌에서는 그런 생각이 더 강했어요. “더 우리 스타일대로. 누구 따라 하지 말고”
준비과정에서 특별히 신경쓴 디자인이 궁금합니다.
지훈 한글을 적극적으로 쓴다는 점? 원래 한글을 시각디자인 요소로 쓴다는 건 일종의 죄악이었죠. 한글은 멋이 없고 다른 문자에 비해 미적인 퀄리티가 떨어지는 데다 디자인하기 까다롭다는 인식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문화적인 위상이 바뀌었어요. 한글이 예쁘다는 인식이 커졌고 한글을 활용한 디자인이 아름다워졌죠. 한글에 매기는 아름다움의 기준도 달라졌어요. 눈에 익숙해지면 그제야 아름다워 보이는 게 더러 있잖아요. 개항로 프로젝트 팀이 애용하는 한글 기반 디자인이 그런 거 같아요. 우리는 한글에서 멋을 느끼고 그것을 계속 입어보려는 거죠.
선뜻 채택 할 디자인은 아닙니다.
창길 포스터 최종시안을 결정할 때, 고민이 컸어요.
선택의 기준이 됐던 건 음반입니다 “지금 가장 트렌디한 인쇄물은 인기 앨범 재킷에 있다”라는 아이디어였죠. 뮤직 스트리밍 플랫폼에 들어가 인기차트 TOP20를 체크했어요. 각 앨범 커버 디자인의 유사성을 발견했어요. 트렌드에서 벗어나는 게 옳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습니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