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소나무 그림을 일관성 있게 창작하시는 게 인상적인데요. 여기에 어떤 이야기가 실려있을지 궁금합니다
저는 본명의 중간 글자인 ‘수(受)’와 기록할 ‘록(錄)’을 따서 ‘수록’이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그냥 좋아서 그려요. 그 중 소나무는 사계절 내내 푸른 침엽수여서 특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소나무를 주제로 전시를 기획했었어요.
이사무 노구치가 만든 아카리(AKARI) 조명을 좋아하는데요, 한옥 전시 공간에 조명장치가 필요해서 그 제품을 찾았는데 아쉽게도 원하는 디자인을 찾을 수 없었어요. 대체품을 들여놓고 고민했는데 내친김에 종이 위에 직접 수묵화를 그렸어요. 만들고 보니 참 아름다웠죠.
상업적인 작품은 지양하는 입장이라 직접 디자인 제품을 만들 생각은 크게 없지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한지로 조명을 만드는 분과 협업을 해보고 싶어요.
작가님은 수묵화의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무게감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먹과 종이라는 재료만으로도 소박하면서 정적인 멋을 표현할 수 있죠. 그리고 저는 옛것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요즘에는 동양화 물감인 안채를 써서 유색 회화를 그려보는데요. 여기서도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풀을 쑤고 화판에 배접을 하고 수묵화를 그리는 일 전체가 저 스스로를 다스리는 일이기도 해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시끄러운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해지길 원해서 그립니다.
조선식 야외취식
다섯 명의 남자가 고기를 구워 먹고 있다. 남자들의 모습은 제각기 조금씩 다르다. 고기가 뜨거운 듯 입으로 부는 남자, 구운 고기를 담은 접시를 들고 있는 남자, 술을 쭉 들이키려는 남자도 있다. 한 명이 쓴 남바위로 보아 날씨가 추운 모양이다. 그렇다면 불은 고기도 구워주고 따뜻함도 안겨주니 일석이조로 귀하다.
고기를 즐기는 남자들의 모습이 다채로운 가운데, 그림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가운데의 불판이다. 제법 잘 타오르는 불길 위에 둥글게 올라 앉아 중심을 잡아준다. 가운데가 옴폭 파여 있는 형국까지 감안하면 모양새가 갓과 흡사해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갓은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 대하드라마에서 비슷한 설정을 본 기억이 난다. 선비가 철로 쓴 갓을 쓰고 여행을 다닌다. 평소에는 품위를 지켜주고 햇볕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해주다가 식사 때는 만능 취사도구로 변한다. 철로 만든 갓을 쓰고 다닐 수 있다고? 요즘은 아라미드 섬유로 만들지만 삼십 년 전에는 진짜 철모를 쓰고 훈련을 받았다. 한국전쟁 때 취사에도 쓰였다는 철모였으니 철제 갓 쓰기가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어쨌든 불판은 그렇게 중심을 잡아준다.
이미 19세기에 민화로 그려졌을 만큼 우리는 고기구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늘, 두 주인공인 고기와 불이 엎치락뒤치락하며 관심을 독점해왔다. 생각해 보자. 고기라면 우리는 소냐 돼지냐 양이나 등등 동물을 따지고, 갈비냐 등심이냐 항정살이냐 등등 부위를 고민한다.
불도 사정은 비슷해서 편리함의 가스와 정통성의 숯불이 늘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처럼 고기와 불이 각광 받는 가운데, 정작 둘 사이를 중재해주는 불판의 존재는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불판으로 고깃집을 선택하는 경우를 본 적 있는가? 없을 것이다. 불판이 없거나 제 역할을 못하면 귀한 고기를 망칠 수 있고, 따라서 각 고깃집마다 고심 끝에 불판을 선택하지만 각광은 받지 못한다.
구이요리의 중재자, 불판
그렇다, 중재라고 했다. 한식에서 구이는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무엇보다 식탁 한가운데에 불을 놓고 직접 조리를 한다는 차원에서 그렇다.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말해주듯 인간은 언제나 불을 갈망한다. 조리는 불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인류는 익힌 음식을 먹고 뇌를 발달시켰다. 그런 불을 식탁 한가운데에 놓고 (예외는 있지만) 먹는 이가 직접 익혀 먹는다. 식사가 의식도, 유희도 될 수 있다.
그러한 특성이 생생함과 맞물려 한국의 고기구이는 해외에서도 K-푸드의 대표이자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미국의 스테이크, 아르헨티나의 아사도 등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조리 문법은 많다. 하지만 열원(섭씨 1000~2000도의 숯불 혹은 가스불)과 재료(주로 양념을 하지 않은 생고기)가 식탁에서 맞물려 자아내는 한식 고기구이의 생생함에는 나름의 독창성이 있다.
K-불판의 역할
한식 고기구이의 성격을 궁극적으로 불판이 결정하니 불판도 ‘K-불판’으로 격상된 느낌이다. K-불판의 중재는 두 갈래로 이루어진다.
첫째, 공간적 중재자 역할을 한다.
이름처럼 ‘판’을 깔아주는 것이다. 수분을 품은 동물의 근육과 지방의 집합체인 고기는 부들부들하고 늘어지는 성질을 가졌다. 열원에 올렸을 때 고르게 익지 않기 때문에 판을 깔아야 평평하고 균일한 조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열에너지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
고기구이는 크게 복사열과 전도열에 의해 이루어진다. 전자는 전자파에 의한 직접 전달, 후자는 다른 매개체를 통해 간접 전달 되는 열이다. 이 두 열이 어우러져 고기의 수분을 증발시켜 먹을 수 있는 상태로 익히는 한편, 고기 표면의 마이야르 반응을 유도해 복잡한 맛과 바삭한 질감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두 종류의 열에너지를 우리는 불판으로 편하게 통제한다. 복사열과 전도열의 노출 비율부터 세기까지 모두 불판이 좌우한다.
21세기 K-고기불판
1) 개방형
완전 개방형 불판, 석쇠 일족을 예로 들어보자. 철사가 형성하는 면은 ‘판을 깔아주는’ 공간적 중재 역할에 치중하는 한편 고기를 직화에 그대로 노출시킨다. 따라서 조리는 복사열에 의해 이루지니 ‘복사열 의존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형태와 면적을 규정하는 테두리에 철사만 걸쳐주면 된다. 그게 그거 같지만 복사열 의존형도 의외로 다양하다. 야외 취사가 가능했던 시절에는 모기장도 불판으로 쓰이곤 했다. 그렇게 눈이 고운 것과 철근을 붙여 만든 과격한 것이 양 극단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굵기의 철사와 눈의 크기로 이루어져 판을 깔아준다. 주로 고기와 직접 접촉이 미덕이라 여기는 숯불과 짝을 이룬다.
2) 폐쇄형
다음으로는 ‘전도열 의존형’이 있다. 눈 혹은 구멍이 전혀 없는, 폐쇄형 불판으로 구이가 전도열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작한 국물에 끓여 먹는 서울식 불고기의 불판과 삼겹살용 불판의 상당수가 여기에 속한다. 특히 돼지기름의 원활한 배출을 위해 경사가 지다 못해 곡선으로 진화한 후자가 흥미롭다. 복사열 의존형과 정반대로 열에너지의 고른 분배가 강점이라 가스불과 주로 짝을 짓는다.
3) 절충형
세 번째로는 둘이 절충된 ‘야망형’이 있다. 복사열과 전도열을 모두 최선으로 활용하겠다는 야망에 젖어 다채로운 양태 및 빈도로 구멍이 뚫려 있다. 심지어 석쇠의 눈이 커지다 못해 야망형으로 발달한 경우도 있다. 전도열의 극대화를 위해 최대한 확보된 면에 복사열의 개입 및 환기를 위해 구멍을 낸 형국이다. 거의 모든 고기를 올려 구울 해법이 마련되어 있을 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4) 욕심형
마지막으로는 ‘욕심형’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조리할 수 있는’ 불판이다. 핵심은 고기를 굽기 위한 ‘야망형’ 불판이다. 이것이 판 위에서 중심을 이루고 계란 등을 익히기 위한 ‘전도열 의존형’이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다. 심지어 중심에 찌개 뚝배기를 위한 공간을 낸 제품마저 있다. 직화구이를 이루는 모든 요소를 합치면 초월적인 불판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만들었지만 종합적인 효율은 따로 쓰는 것보다 더 떨어진다.
따라서 욕심형 불판은 ‘뇌절형’이라고도 볼 수 있다. ‘뇌절’이란 적당한 선에서 끊지 못하고 계속 말이나 행동 등을 하다가 기어이 추한 꼴을 보이는 형국을 뜻하는 은어이다. 특히 계란을 위한 테두리가 문제이다. 계란이 눌어 붙을 가능성도 매우 높을 뿐더러 모양새가 좁고 수세미가 잘 안 들어가니 구석을 깨끗하게 닦기 어렵다. 공간이 나뉜 프라이팬의 태생적 한계인데 생각 없이 제품을 개발해 뇌절형이 되었다.
다만 이 ‘욕심형’이 맨 앞에서 언급한 19세기 민화의 불판의 직계 후예일 가능성만은 무시할 수 없다. 민화의 불판은 갓을 닮아 가장자리가 평평하고 가운데는 움푹 파여 있다. 따라서 고기를 굽는 한편 마늘이든 찌개든 무엇이든 가운데에 익힐 수 있다. 다목적성이 뇌절형 불판의 목표이자 미완성의 미덕임을 감안하면 둘 사이의 관계를 간과하지 않는 게 좋겠다.
K-고기불판의 오늘과 내일
나름 조리의 즐거움과 효율을 좇아 불철주야 애를 쓰며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가지만 사실 K-불판에는 개선의 여지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고기가 들러 붙는데 대한 대책이 미약하고 얇아 열효율이 좋지 않다. 사실 전도열 의존형이 아니더라도 K-불판은 상당 부분 공간적 중재 역할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K-불판의 단점이 잦은 교체를 촉발하니 설거지 등 유지 관리로 자원 또한 너무 많이 잡아 먹는다. 과연 대안이 있을까? 무쇠를 고려해볼 수 있다. 열전도율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한 번 머금은 열을 오래 머금는다. 게다가 고깃집 같은 곳에서 빠르게 반복해서 쓴다면 표면에 폴리머의 막이 생성돼 고기가 들러 붙는 것을 막아준다.
실제로 무쇠 불판은 이미 한식 구이의 환경에 도입이 되어 있는데, 우려가 조금 따르기는 한다. 무거운데다 열을 오래 머금으므로 식탁 주변에서 벌어지는 교체 상황 등에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훨씬 더 높다. 관습처럼 당연시 여기기는 하지만 식탁에서 벌어지는 불 및 불판의 도입 및 교체는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다만 가벼워 무쇠의 단점은 빼고 장점만 지닌 탄소강 불판도 등장하고 있어 주목할만 하다.
사실 한식 구이에는 장점 만큼 단점도 많다. 고기를 잘게 썰면 너무 빨리 익고, 요즘 유행을 따라 스테이크처럼 두툼하게 썰면 잘 안 익는다. 이런 단점에 K-불판이 한몫 거든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떠한 여건에서도 고기와 불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를 달구다 못해 태워가며 아슬아슬하게 중재하고 있는 K-불판의 노고에 대해서는 한 번쯤 되새겨보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실제로 무쇠 불판은 이미 한식 구이의 환경에 도입이 되어 있는데, 우려가 조금 따르기는 한다. 무거운데다 열을 오래 머금으므로 식탁 주변에서 벌어지는 교체 상황 등에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훨씬 더 높다. 관습처럼 당연시 여기기는 하지만 식탁에서 벌어지는 불 및 불판의 도입 및 교체는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다만 가벼워 무쇠의 단점은 빼고 장점만 지닌 탄소강 불판도 등장하고 있어 주목할만 하다.
😈 오늘날 한식에서 즐겨 쓰는 구이용 불판을 이렇게 살펴보니 고기 종류보다 더 다양한 불판들이 있네요. 식탁의 한가운데에서 식사의 리듬을 조율하기도 하고, 볼거리가 되기도 하는 고기 불판. 한식 고기구이의 독특하고 고유한 문화 형성에 K-불판이 한몫했다는 점에 동의하시나요? 오늘도 맛있는 고기를 위해 계속 진화하고 있는 K-불판! 그 존재를 되새기고 더 나은 한식을 즐겨보아요. 😀
먼저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이야기’라는 슬로건이 인상적인데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이감각이 디자인하고 싶은 한국스러움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이감각의 작업은 ‘전통의 현대화’나 ‘전통이 무엇인가?’를 다루기보다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가깝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모든 것은 우리안에 있다’였죠. 디자인에 우리 자신에 대한 적극적인 탐색 의지를 담습니다. 우리가 가진 특색이 보다 일상에 가깝고 편하게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어요.
그렇다면 이감각에게 전통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에게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나를 인식하는 일입니다. 전통은 할머니의 오래된 가구를 엄마가 쓰고 엄마의 젊은 시절 원피스를 내가 입는 것과 아주 다르지 않아요. 누군가 아꼈던 물건들을 통해서. 그걸 물려주는 마음을 통해서. 그들을 헤아리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누구보다도 자신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인식하는 것은 외부를 통해서가 아니죠. 한국을 이루는 수많은 것들 또한 입에서 입, 손에서 손, 그리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왔다 생각해요. 우리만의 히스토리가 있는 오브제들을 통해서 한국적인 해학, 소박, 흥을 전하고 싶어요. 더불어 세상에 유일한 나를 사랑하고 즐기는 경험을 전하고 싶습니다.
요즘 한국의 전통에서 디자인 언어를 얻으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적인 멋’을 탐구 중인 창작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한국 고유의 디자인 언어를 딱 하나로 좁혀서 말하긴 힘들지만! 저희가 가장 흥미롭게 보는 요소는 ‘해학’입니다. 유머라고 하죠. 주어진 현실을 과장하거나 비꼬는 게 우리게에 있어요.
유튜브 댓글 창 같은 거 보면 한국 사람들은 말을 되게 웃기게 하잖아요.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꼬인 걸 풀려고 하고. 풀린 건 꼬면서 놀고.
이런 해학적인 태도가 한국만의 위트인 것 같아요.
해학이 디자인 언어가 된 사례는 어떤 게 있을까요?
도자기에 그린 그림이나 표현 방식이 그래요. 그릇에 점 하나 탁 찍어서 마무리하는 기법 같은 게 그렇죠.
또 하나는 호랑이 그림인데요. 다른 나라는 무섭게 그려요. 두려운 존재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맹수를 귀엽게 묘사하거나 우스꽝스럽게 표현햐요.
호랑이를 친근하게 그리는 건 호랑이와 친한 관계를 원했던 게 아닐까요?
호랑이처럼 무서운 대상을 좀 더 쉽게 다룰 수 있는 존재 혹은 허물어진 존재로 여기는 거죠.
이건 한국인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관계성일 텐데요. 우리는 남을 포용하고 함께 섞인 채 노는 상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미감도 그런 방향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양처럼 자연과 나를 독립시키려는 태도와는 달라요. 지금까지 얘기했던 점들이 이감각의 제품이나 디자인 스타일에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감각이 요즘 푹빠진 한국의 디자인 언어는 무엇인가요?
‘매듭’입니다. 저희는 한국적인 디자인의 맥락이 해학이라 보는데요. 해학을 떠올리면, 농담을 거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얽히는 모습이 떠올라요. 그것을 실을 써서 조형적으로 풀면 실과 실이 꼬인 매듭이 나옵니다.
매듭 자체가 한국문화 특유의 관계성이 반영된 조형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서양에서는 그냥 도구 내지는 수단이거든요. 끈을 묶어서 뭔가 물건을 만들고 고정을 하는 목적 그 자체만 남는 건데 우리나라는 달라요. 매듭 자료도 많이 남아있고 한국인이라면 매듭의 의미적인 맥락을 볼 수 있지요.
매듭은 재밌어요. 2d인데 3d고 2d가 3d가 된 거라서. 묘한 해학이 생기죠. 완전 평면인데 접으면 입체니까. 이감각이 하고 싶은 디자인. 이감각이니까 할 수 있는 디자인 이야기가 생기는 거죠. 평면인데 자수를 넣고 엮고 접고 하면서 얘기가 생기고. 그 면과 면 사이에 또 다른 관계성이 생기는 것. 그런 게 좋습니다. 실 뿐만 아니라 흙이나 실리콘 등 다양한 소재로 매듭 디자인을 만드는데 도전하고 있어요!
특히 패브릭 소재 매듭은 사람손을 타는 디테일인데요. 공임 과정에서 매듭을 전담해주실 협업파트너의 존재가 정말 소중합니다. 저희가 그동안 매듭에 매달리면서 이걸 전담해주실 수 있는 장인분을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그 덕을 많이 볼 거 같아요. 원하는 디테일을 만들기 위한 파트너를 만나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
‘분업’으로 ‘협동’하다
– 수제그릇을 합리적으로 생산하기
2023년 여름, 프라이스는 부산 문현동을 방문했다. 도예가들이 팀을 이뤄 그릇을 만들고 있었다. 도자 공방에서 지켜본 것은 전통공예와 산업디자인의 융합이다. 이들은 개인 창작과 외주의뢰를 병행한다. 숙박업계나 유통업계에서 제작을 맡긴 수제그릇은 공예품이지만 공장 못지않은 생산량이 요구된다. 그들은 산업 디자이너처럼 생산 최적화를 고민했다. 젊은 한국 도자공예가들의 분업을 바라보며 알게 된 것을 정리했다.
노동이 아니라 협동
“내도 내 하나 잘 났다고 잘 되는 기 아인데!
마음 맞는 아-들이랑 같이 잘 해볼라는 게지요.”
흙투성이 사내가 맨발로 프라이스를 맞이한다. 이름은 신현민. 부산-경남지역에서 활동 중인 도예가로 경성대학교 공예 디자인학과 졸업생을 부산 문현동에 모은 장본인이다.
그는 ‘n인조 분업’을 시도한다. 팀리더의 고민이 반영된 도자 제작 시스템이며, 도제식 도자 공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부산 기장군에서 전통 도자를 연구하는 아버지에게 가업을 물려받고 있다. 아버지는 달항아리 연구로 유명한 신경균 작가. 미대에서 학습한 공예이론과 부친과 함께 장작가마를 운영하며 얻은 실전경험이 든든한 자산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자산을 동료 작가와 공유하길 원한다.
신현민 작가는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교훈 중 ‘분업’을 힘써 이식하려 한다. 이유가 있다. 그가 직접 보고 배운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따라 가마터에 가면 일하는 어른들이 많았고, 그릇 제작에는 여러 사람이 달라붙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사람이 적게는 20명, 많게는 30명 정도 참여했다고. 작가뿐만 아니라 장작 패는 사람, 불 때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이 모여 각자 자기 몫을 했다는 것이다. 신 작가 자신도 어려서부터 작업을 도우며 실전경험을 쌓았다.
“저는 도자제작의 기본이 ‘분업’이라 생각합니다.
기계도입과 설비개선으로 필요한 인력은 줄었지만요.”
디자인 호텔에 도자공예품 채우기
이들의 분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건 라이프스타일 산업군의 공예품 수요다. 고급 뷰티 제품이나 희귀 건강식품처럼 격식과 예우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선물이 인기를 끄는 가운데, 최근 들어 주목받는 물건이 바로 수공예품이다. 특히 제작 목적이 뚜렷하고 만듦새가 빼어난 공예가의 도자 그릇은 쓸모도 인기도 많다.
숙박업계도 도자공예를 주목하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중 하나다. 취향의 세분화, 소비 양극화 등의 영향으로 대중의 소비 기준이 높아졌다. 대중이 상업 공간에 기대하는 경험은 ‘특별함’이다. 업계 실무자는 ‘특별함’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고민한다. 그중 ‘미적 체험’은 숙박업계 실무자가 채택하는 전략 중 하나. ‘공간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객실과 로비에 예술성이 깃든 오브제를 배치하고 있다. 부산 문현동 도자 공방은 이런 대중적인 공예작품 수요를 공략하고 있었다.
2023년 상반기, 호텔사업을 전개하는 더블유디자인그룹이 한옥을 주제로 공예적 미감을 표현하는 객실을 기획했다. 클라이언트는 전통적이면서 모던한 도자기를 원했다. 도예가 크루는 호텔사업 실무자에게 전통기법을 응용한 꽃병, 인센스 홀더, 컵 등의 도자그릇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손발을 맞춰 본 도자공예가의 분업은 성공적인 납품을 가능케 한다.
작가는 솜씨를 발휘할 기회를 얻고, 의뢰주는 만족스런 품질의 수공예품을 대량으로 획득한다. 실무자의 의지와 기업의 여러가지 속사정이 반영된 끝에 탄생한 릇이 결과적으로 도자공예의 대중화에 기여한 셈이다. 공예가가 디자이너로서 라이프스타일 산업군의 수요를 받아 창작에 나서는 건 비단 부산 문현동 공방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의뢰인의 제작예산에 맞춰 공예가의 미감을 발휘한 그릇은 레스토랑이나 라이프 스타일 편집샵 등, 한국의 상업공간을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었다.
물리적인 실감과 성장
“우리요? 크루(CREW)라는 표현이 적합하지 싶어요. 힙합 레이블 같은 거죠.
개성있는 창작자가 모여 같이 성장하고 배우자는 겁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공예판에서 도예가를 육성하는 방식은 크게 바뀌었다. 오늘날 도예가는 대부분 대학에서 배출된다. 장인의 공방에서 숙식하며 도자기를 배우겠다는 낭만은 이제 없다. 보따리짐 매고 찾아와 제자로 받아달라는 예비 작가는 자취를 감췄다.
신현민 작가는 운좋게 가족을 통해 도제식 공예교육을 받았으나, 모두가 그런 기회를 누리진 못한다는 걸 주목한다. 경험과 실력을 따르는 위계서열, 책임지는 리더십, 리더의 하향식 업무 분배, 작업능률 향상. 신 작가는 도제식 교육의 효과를 점검하고 팀리더로서 장점을 이식하는데 집중한다.
분업이 끝나고 이뤄지는 공방에서의 집단 창작연구는 젊은 도예가가 쉬지 않고 실력을 쌓을 수 있는 힘이다. 각자 관심사에 맞춰 연구주제를 정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어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다. 팀리더 신현민 작가에게 동료작가의 연구작 소개를 부탁했다.
이홍준 작가의 ‘도자 에어조던 1’ ‘ 스니커즈를 흙으로 만들어도 원작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가?’라는 주제의식으로 만들었다고. 이 작가는 요즘 한국산 도자기를 외국인에게 파는 일에 관심이 많다.
최한슬 작가는 의례용 항아리를 연구한다. 연구주제는 죽은 사람을 기리는 항아리. 망자와 함께 땅에 묻히는 부장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실용적인 쓰임새보다는 문화적 맥락을 고민하는 실험작이다.
홍성주 작가는 도자 조형물을 탐구한다. 조각칼로 흙덩이를 깎아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인센스홀더를 만들었다.
신현민 작가는 미대 졸업이 요리학원 자격증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자격증을 딴다고 반드시 맛있는 음식을 한다는 보장이 없듯, 미대 졸업했다고 좋은 그릇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배운 틀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열심히 성실히 꾸준히 도자기를 만드는 건
원데이 클래스 학생이나 평생교육원에서 배운 사람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작가생활을 하려면 흙과 유약을 연구하고 도전 과제를 수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문득 박물관에서 본 ‘조선시대 가마터’가 떠오른다. 수백 년 전 도공은 평소엔 왕실이나 관아에 납품할 그릇을 만들고, 여유가 될 때 만들고 싶은 그릇을 빚었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도예가는 생계를 책임지고 나면, 나만 만들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몸과 정신을 연결해 손기술을 발휘하고 그릇에 특별한 감성을 부여하는 삶. 그런 삶이 담긴 그릇은 오늘도 내일도 귀하게 대접받을 것이다.
😈 효율화 된 분업은 두 가지 장점이 있네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작가 활동의 기초를 닦게 만듭니다. 혼자서 서너 시간 걸릴 작업을 여럿이서 한 두시간 안에 끝내는 것은 가성비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지향점과도 닿아있습니다. 분업과 협동으로 ‘책임감’과 ‘실력’을 쌓는 것. “나만 아니면 돼!”라는 유행어가 밈처럼 도는 세상이라 더욱 귀한 마음씨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은 어떤 식으로 일하고 계신가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과 어떤 시스템을 갖춰 성장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