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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봉틀로 할 수 있는 디자인? 뭐든 OK

이태원 국일사의 장인들이 일하는 모습
왼쪽 이종희 님, 오른쪽 이병수 님. 부부가 47년 동안 이태원에서 자수 가게를 운영중이다.
왼쪽 이종희 님, 오른쪽 이병수 님. 부부가 47년 동안 이태원에서 자수 가게를 운영중이다. ⓒfrice

서로를 소개해주시겠어요?

이종희 이병수는 국일사 사장님인데요. 이름 자수 전문가입니다. 손글씨를 잘 쓰고요. 영문 필기체를 아름답게 새깁니다. 미국대통령이 한국에 오면 맞춤양복을 만든다는 거. 혹시 알고 계세요? 이웃가게인 썬양복점이 미국대통령 양복맞춤을 자주 했는데요. 양복에 이름 새기는 건 꼭 국일사로 오더가 와요. 레이건부터 바이든까지 이병수가 새겼습니다.

이병수 이종희는 아내이자 동료입니다. 사람들이 들고 오는 그래픽 자수 시안을 직접 새깁니다. 이병수가 그래픽 시안의 테두리를 그려서 본을 뜨면, 이종희가 그림을 쓱 보고 옷 위에 그림을 척 새겨요. 한 번 쓱 본 그림을 손자수로 만드는 건 제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이종희 밖에 못해요.


01. “흑백사진으로 본 7080 이태원 전성기”

이병수 옛날 얘기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사진을 꺼내봤어요. 한 번 볼래요? 당시 테일러 샵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런 모습 기억하는 사람은 진짜 이태원 토박이죠.

1976년 이태원시장 상점가를 기록한 사진
현재의 우리는 모르는 옛날의 이태원.
현재의 우리는 모르는 옛날의 이태원. ⓒfrice

두 분은 언제 이곳에 터잡으셨나요?

이병수 우리 둘 다 1974년. 나이는 각자 20대 초중반 일 때네요. 저는 동두천에서 군부대 앞 자수가게에서 배웠어요. ‘국일사’라는 이름은 제가 일 배웠던 가게명을 딴 겁니다. 내 옆에 계신 분은 용산역 근처 미싱자수학원에서 미싱을 배웠지요. 아내는 이태원 오기 전에 다니던 미싱학원에서 수업을 맡았던 자수 선생님이었어요. 실력은 전국기능올림픽에 나갈 정도였고요. 그렇게 전국 각지에서 각자 배워온 걸로 이태원 시장에 자리 잡았던 기술자가 많아요. 그때 미싱 기술자를 고용한 사업체가 10곳 정도 있었어요. 지금은 대부분 은퇴하거나 그만뒀지만요.

이종희 우린 이웃 가게 친구였어요. 그러다 어느 날. 옆에 있는 이병수 씨가 날 쫓아다니기 시작했어요(웃음). 우리 남편이 젊었을 땐 훤했거든요. 미소도 맑고 선했어요. 만나다 보니 79년 11월에 결혼했네요.

7080 이태원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이종희 80년대부터는 이태원에서 재봉틀로 할 수 있는 사업을 여러 방면으로 시도했었어요. 킹샵이라고 직원을 서너 명 뽑아다 시장건물에서 손자수 전문샵을 하기도 했는데, 2009년부터 하던 사업 다 접고 국일사만 집중하고 있어요. 우리 둘이서만 일한 지는 이제 20년 조금 넘었어요.

1976년 이태원 콜트 장군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
ⓒfrice

이병수 이건 용산구청에서 녹사평역 넘어가는 로터리인데요. 여기에 콜트 장군 동상이란 게 있었던 시절이에요. 6.25전쟁 때 미군 사령관인데 이태원 랜드마크였죠.

사진 보면 이태원이 서울이 아니라 미국 도시 같아요!

이종희 지금 평택으로 미군 기지를 옮겨서 뜸한데, 당시 이태원은 정말 미국 사람이 많았어요. 주한미군 가족도 많이 머물렀죠. 시장에서도 한국생활잡화보다 미군이나 미군 가족이 살 법한 물건을 많이 팔았지. 진짜 밍크는 아닌데, 밍크털처럼 부들부들한 담요가 그때 많이 팔렸어요. 양복점이나 빅사이즈 옷가게도 그런 영향이란 말이죠.

우리는 주한 미8군 계급장 같은 걸 직접 해줬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정겨웠던 시절이에요. 어느 미군이 양말 가게 단골이면 ‘헤이~싹쓰맨~’하면서 놀러 와요. 7월 미국 독립기념일에는 이태원 사람들이 용산 미군기지에 초청받아서 가족끼리 파티도 하고 그랬지. 칠면조도 먹고 케이크 떠서 나눠먹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오래된 실 상자
주변의 기물들은 이야기와 함께 과거를 상상하게 한다.
주변의 기물들은 이야기와 함께 과거를 상상하게 한다. ⓒfrice

기억에 남는 당시 단골손님이 있나요?

이종희 1984년쯤 일인데 이태원 양복점 단골손님이던 장교가 퇴역 앞두고 단골가게 사장님들을 싹 다 모았어요. 덕분에 한국에서 즐거웠다고. 송탄에 같이 가자고. 기념으로 경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그래서 이웃 가게 사람들이랑 미군 비행장 들어가서 아산만 바다 위를 40분쯤 비행했죠. 옛 이태원 시장 단골 손님이 우리에게 전했던 커다란 감사인사 였어요.

낭만이 있었네요. 영화 <탑건 : 매버릭> 엔딩 같습니다.

이종희 이태원이 미군이 다녔던 클럽이 있어서 그런지 거친 이방인이 많을 거란 오해가 있어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죠. 오히려 이태원에서 만났던 미군은 대부분 겸손했어요. 군인이니까 기본적으로 듬직하지. 성격이 대체로 정직하고 가정적이라고 해야 하나? 특히 가족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젠틀한 사람을 손님으로 많이 만났던 거 같고. 영어도 덕분에 쉽게 배웠던 거 같아요. 복무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한테 우리가 양복 셔츠에 이름자수 많이 해줬어요.

이병수 70년대 이태원은 양복점이 유명했죠. 기술자를 고용해서 의류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동대문이 도매시장이라면, 이태원은 까탈스러운 오더를 맞춰주는 소매시장이었어요. 특히 연예인 무대의상을 잘 만들었죠.

우리가 지금은 핸드메이드 자수 작업을 하지만, 양복점에서 맡긴 옷에 부속품이나 특별 오더 디테일을 달아주는 작업도 많이 했어요. 창고나 서랍장 열면 테일러샵에서 쓰던 금장 단추나 옛날 실같은 게 아직도 있어요. 여기 보세요.

가림막 뒤에 잠들어 있던 부자재 진열장
가림막 뒤에 잠들어있던 부자재 진열장
가림막 뒤에 잠들어있던 부자재 진열장. 함에 들어있는 부속품이 반짝거린다.ⓒfrice

세상에! 이건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셔야 하는 유물인데요!

이병수 이거 다 가져가셔도 될 거 같아요.(웃음)

이종희 의류는 집단 제작이에요. 양복을 테일러샵 한곳이 다 만드는 게 아니거든요. 단추나 실같은 부속품을 팔거나 자수 집처럼 보조 작업을 해주는 가게가 나란히 움직여요. 그러다 보니 자수하는 사람은 별일을 다 맡아요. 우리는 매번 다른 자수를 놔야 하잖아요. 해봤던 자수는 더 잘해야 하고, 못 해본 작업은 하면서 느는 거죠.

이태원 국일사에서 쓰는 재봉틀 기계
ⓒfrice

이병수 우리 월급이 1970년대 당시 45,000원입니다. 당시 말단 공무원 월급이 25,000원이고 하숙비나 월세가 5,000~6,000원 했을 거예요. 재능 있고 기술이 있으면 일한 만큼 보상은 받는 거죠. 지금은 의류사업이 크게 줄긴 했는데, 우린 미싱 기술이 있으니까 시대에 맞춰서 할 일을 해요.


02.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시작하다.”

미싱머신과 연결된 실
세월의 흔적을 증명하는 낡은 기물
ⓒfrice

한때 이태원 패션이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
시장에는 지금도 미국 워싱턴 상원 의원이 양복을 주문하는 테일러샵이 있더군요.

이병수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연예계에서 들어오는 창작 의류 제작도 이태원이 잘했어요. 그러다 강남 개발 끝나고 패션으로 청담이 뜨면서 완전 흐름이 넘어갔어요. 우리도 변해야 했지. 어쨌거나 유행이 변하고 상권이 변해도 자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이종희 대단했죠. 88 서울 올림픽 개최준비 때부터 한 풀 꺾였어요. 상표 도용 단속이 있었는데, 이후로 조금씩 상권 활기가 떨어졌지요.

지금은 디자인이나 저작권을 귀하게 다루는 게 상식이지만, 80년대 만해도 그런 인식이 희미했어요. 셔츠에 나이키 스우시 로고 그려달라면 그려주고, 체육복에 줄 세 개 그어서 아디다스처럼 만드는 게 대수롭지 않았던 거였죠. 올림픽 맞이하면서 외국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니까. 도시미관이나 미풍양속 점검한다는 이유로 짝퉁 의류 생산 단속이 심해졌어요. 문 닫아야 하는 가게도 많았어요.

가게 벽면 가득히 각종 네임태그, 자수 패치들이 빼곡하다
가게 벽면 가득히 각종 네임태그, 자수 패치들이 빼곡하다 ⓒfrice

이종희 그래서인지 90년대에는 비보이팀이나 풋볼팀에서 단체 유니폼 손자수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어요. 당장 어제만 해도 오랜 단골 손님이 구멍 난 데님 재킷을 가지고 왔죠. 거기에 꽃자수를 넣어달라네요.

이제 우리는 상표 걱정 없는 자수를 하는 거죠. 손님들의 사적인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맡는 게 즐거워요. 국일사는 그래서 개인이나 팀을 위한 자수 작업을 전문으로 합니다.

어쩐지 가게 안에 가방이나 여행용 캐리어에 매는 네임태그가 많습니다.

이종희 항공사 직원이 국일사를 많이 찾아와요. 항공사 직원들은 동료랑 똑같은 액세서리 맞추는 게 문화인가 봐요.

이병수 얼마 전 ‘뽀빠이’라는 일본 잡지에서 취재하러 왔는데 국일사가 서울여행 추천장소로 소개됐어요. 서울 놀러왔다가 기념품으로 러기지 네임태그 하나 만들어 가는 곳으로요. 요즘엔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어요.

영문 네임태그를 새기는 이병수 님
ⓒfrice

이병수 종종 어학당 같은 곳에서 외국인 유학생들 네이밍 자수해달라고 가방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요. 그 친구들은 말 배우러 온 거니까 사교적인 활동을 많이 하잖아요. 농구나 축구하면서 친해지고. 여행도 많이 다닐 테고. 뒤죽박죽 어울리다 자기 물건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거지. 거기에다 한글도 열심히 배우고 있잖아요. 자기가 원하는 글씨체로 메시지를 새기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야. 한국에서 뭔가 하고 있다는 실감이 나나 봐.(웃음)

이종희 한국에서는 물건 잃어버려도 비교적 잘 찾을 수 있잖아요. 외국에선 잃어버린 물건을 도로 찾기 힘들대요. 그래서 네임태그 아이템이 꼭 필요한 거죠. 문화 차이 때문에 생긴 수요라 재밌는 오더예요.

손자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뭘까요?

이종희 일단 그라데이션. 컴퓨터 자수는 깔끔하죠. 그래픽도 정교하고. 그런데 그라데이션 구현은 컴퓨터로는 어려워요. 실 위에 실을 덧대는 자수가 아닌 거죠. 예시로 제가 예전에 작업한 스카잔 재킷을 보여드릴게요.

자수실의 다양한 컬러스펙트럼과 핸드메이드 수베니어 자켓 시안
ⓒfrice

강아지 얼굴을 큼지막하게 등판에 새긴 건데요. 색을 유심히 보면 실 사이에 그림자 같은 게 져요. 컴퓨터로는 이런 음영을 낼 수 없어요. 엇비슷한 색으로 실을 바꿔 넣으면 입체감을 살릴 수 있거든요. ”검은 실을 수놓은 부분에 살짝 연한 파랑을 끼워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하는 거죠.

이병수 기술만 있으면 컴퓨터보다 빠르게 작업하는 경우도 있어요. 로고면 로고, 욕이면 욕.(웃음) 주문자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표현할 수 있고요. 뭐든 다 되니까 예뻐요. 가끔은 “맙소사… 굳이 이런 걸 꼭 새겨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요. 가게에 걸린 샘플 자수 패치는 컴퓨터 자수가 대부분이지만, 원한다면 손님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서 따로 재현할 수 있어요.

고객이 의뢰한 수베니어 재킷 자수 샘플 시안
국일사 이종희 님의 손을 거친 수베니어 재킷 디자인 결과물
ⓒfrice

이종희 다들 사연을 갖고 만들어 달라는 거니까. 예술작품이라 여기고 열심히 해요. 가끔 만드는 나도 깜짝 놀랄 디자인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다 만들고 나서 주인한테 연락하지만, 너무 잘 만든 작품은 가끔 되돌려주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작업 마치면 조금씩 사진을 찍어서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우리 가게에서 자수 작업하신 분들 따로 연락주시면 많이 반가울 거 같아.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쓰이고 있을지 궁금해요. 막내사위가 운영하는 국일사 인스타그램에 올려드릴 테니까 많이 연락 주세요.

자수 작업을 맡기는 비용이 궁금합니다.

이병수 러기지 태그에 들어가는 네이밍 자수는 보통 6,000원에서 12,000원까지. 의류에 새기는 그래픽 자수는 10,000원 부터 시작해요. 스카잔 재킷처럼 등판에 넓은 면적을 한 땀 한 땀 복잡하게 따는 작업은 직접 보고 견적을 내드리고 있습니다.

국일사에 걸린 다양한 자수 디자인들
ⓒfrice

이종희 우리는 작업하느라 바빠서 SNS할 여력은 없어요. 대신 막내사위가 작품 기록과 대외소통을 맡고 있죠. 우리더러 “장모님 장인어른 가격 좀 더 올려 받으셔라!”라고 하는데…(웃음)

우리는 일단 열린 마음으로 손님이 맡긴 시안을 봐드려요. 가게가 좁기도 하고 사람이 몰리면 난감할 수도 있는데. 직접 와서 언제든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 우리가 가게에 있을 때, 시간만 나면 다 직접 안내해드려요.


03. “내가 자수 디자인을 사랑하는 이유”

frice와 대화를 나누는 국일사 이병수 이종희님
ⓒfrice

40년 넘게 하셨는데 혹시 일이 질리진 않으세요?

이종희 전혀! 실밥 잘 끊고 싶어서 손톱도 늘 예리하게 깎아요.(웃음)

일을 질리지 않게 만드는 의뢰가 종종 있어요. 예전에 제가 정조대왕 화성능행도를 본떠서 옷에 자수를 새겼었어요. 해마다 패션디자인과 사람이나 의류 공부하는 학생들이 공수가 많이 드는 시안을 들고 와요. 기억에 남는 졸업작품 중 하나였죠.

화성능행도를 주제로 한 자수 아트워크
ⓒ국일사

조선 풍속화 보면 그림 속에 사람이 엄청 많잖아요. 인물 하나하나를 의류에 새겨서 그래픽 디테일로 새기는 작업이니까. 돈도 한두 푼 드는 게 아니거든요.

그때 나한테 졸업작품 맡긴 학생한테 당부했어요. 이런 자수는 완전히 똑같이 재현하는 게 아니라고. 너무 기대하면 곤란하다고. 나도 감각을 발휘해서 툭툭 건드리는 거라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100%에 도달하는 거군요.

이종희 맞아요. 손끝 감각에 집중하면 100%를 넘기도 해요. 중요한 건 우리가 신나는 거죠. 실은 뭘 쓸지. 색의 음영은 어디서 강조할지. 신나서 생각하다 보면 완성도가 100%에 가까워져요.

국일사 디자이너의 동반자, JUKI 공업용 미싱
JUKI 공업용 미싱에서 세월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frice

컴퓨터 자수 완성도를 100%라 치면, 손자수는 처음부터 100%를 할 수 없어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실밥을 뜯어서 다시 새긴다거나. 미리 연습하면서 감을 잡아본다거나 하면서 100%에 닿으려는 거죠.

90%에 그칠 걸 98~99%까지 만들면, 거기서만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단박에 100%를 훌쩍 넘는 결과가 나오면 그 나름대로 예쁘고요. 같은 시안을 새겨도 아주 미세하게 달라요. 그게 사람이 다루는 재봉틀 자수의 매력이고 국일사 자수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국일사 전성기는 언제입니까?

이병수 벌이는 옛날이 더 나을 순 있는데, 지금도 좋아요. 50년 묵은 기계와 이제 한 몸이 된 느낌이에요. 우리는 각자 작업하는 자리는 서로 바꿔 앉지도 않아요. 20년 동안 길들인 작업환경 안에서 우리는 기술자로서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죠. 평면 안에 실을 새겨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는 건 이제 자유자재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걸 느껴요. 이태원 옆 보광동에 폴리텍대학이 있잖아요. 기술 가르치는 학교에 사람이 제법 늘었더라고요. 우리가 수십 년 했던 손자수의 가치도 높아지는 거죠.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작업에 나선 국일사 디자이너들
ⓒfrice

이종희 우리가 디자인한 결과를 손님이 마주했을 때, 그분들이 리액션을 한단 말이죠. 기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맡긴 자수가 자기한테 어떤 의미인지. 우리한테 신나서 말해줘요. 사람이 뭘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짜릿하잖아요. 소통하는 재미도 있고요. 아날로그의 매력이라 생각해요. 손님은 원하는 걸 내게 가져오고. 나는 디자인을 완성하고. 손님은 행복하고. 그뿐이죠.

기술 전수를 진지하게 고민하실 거 같아요.

이병수 저희가 이 일 배울 때만 해도 자수 기술자가 천대받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젠 기술 가진 보람이 있고 자부심도 있어요. 자식들도 다 손자수 하나로 키웠고요. 올해 자수 배우고 싶다는 젊은 사람이 국일사를 찾아왔어요. 반갑긴 한데 일단 셋이 쓰긴 좁은 곳이잖아요. 그리고 우리 머신을 내 줄 순 없어서 일단 돌려보냈어요. 배우겠다는 사람도 재봉틀을 구해야하고, 우리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죠.

이종희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우리한테 용기를 줘요. 우리는 그냥 만날 하는 일인데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해보라고 하거나 지역축제에 초대해서 재봉틀로 공개 자수 작업을 해달라고 불러요. 속는 셈 치고 따라가면, 대부분 우리를 존중하고 즐거워하거든요. 여태까지 너무 이태원에서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냈나 싶네.(웃음)

이제 다들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가치’를 추구하고 살아요. 그래서 우리 손자수 기술이 지금 세상에 더 어울리는 기술이 아닐까 싶어요.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환영해요. 잘 가르치고 싶어요.

frice 로고를 즉석에서 자수로 디자인하는 이종희 님
눈으로 쓱 보고 만드는 솜씨는 가히 장인의 경지다

😈 이 날, 이미지로만 보여드린 프라이스 로고를 보시고 이종희님은 즉석에서 펜으로 슥슥 밑그림을 그리고 자수를 놓아주셨어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옮기는 일은 많은 집중력과 관찰력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보고 그린 러프 스케치 위에 자수를 직접 놓는 장면은 좀처럼 볼 기회가 없었는데 정말 정교하고 빠르시더라고요!

국일사의 사장님들은 본인들을 기술자라고 하셨지만, 일평생 재봉틀과 한몸이 되어 작업을 해오신 모습이 장인의 경지라고 느껴졌어요. 요즘은 일도, 머무는 곳도 자주 옮기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는데요.

여러분은 일평생 하나의 직업을 가져야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그 일을 수십년 동안 같은 동네에서 하게 된다면 어떤 감정이 들 것 같나요?

한국적 미감이 공간과 경험에 스며들 때

한국적인 전시공간에 놓인 공예품과 차도구

<1부에서 이어집니다>

VMD 작업에 나서는 유인성 디자이너
ⓒfrice, NOTE associates

frice는 한국의 디자이너를 만나,
‘한국적인 디자인 vs 한국의 디자인’ 두 개념의 차이를 묻고 각자의 생각을 수집하고 있어요.
한국을 무대로 십여년 간 디자인 실무를 맡은 인성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솔직히 두 개념을 구분하는 게 어려워요!(웃음)

먼저 제 입장부터 말씀드리면, ‘한국적인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태도가 점점 더 필요할 것이라 봐요. 지금처럼 많은 정보와 이미지가 빠르게 공유되는 세상. 모든 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미래로 갈수록 말이죠. 소위 말하는 ‘전통’에 갇힐 필요는 없어요. 로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우리가 사는 집,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거기에 한국적인 생활 방식이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티하우스에 놓인 기물들
ⓒfrice

서양에서 유래한 기능과 물질의 시대를 지나, 동양의 정신적인 측면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고 봐요. 최근 보이지 않는 것을 강조하는 동양문화의 태도를 여러 문화권에서 흥미롭게 여기는데, 그런 관심이 요즘 한국으로 향하는 것 같아요. 한국은 문화적으로 다른 문화권보다 피드백이 빠르고 개방적입니다. 동양의 토착 문화를 중국과 일본만큼 폐쇄적으로 가두지 않는다면, 거기서 한국적인 디자인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요?


도자기와 차 도구가 놓여진 청담동 티하우스 하다 공간
청담동 티하우스 하다
ⓒfrice

01.티하우스 하다

“한국적인 미감은 대체 무엇일까?”

Designer’s comment

<티하우스 하다(teahouse hada)>는 한.중.일 차문화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찻집이면서 작은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수업이 열리는 교실인데요. 한국적인 미감을 간직한 곳이여서 소개합니다. 세 나라의 동양적인 분위기를 공존시키면서 한국적인 요소도 비중있게 다뤄야 했어요. 공간 설계는 AREA+라는 인테리어 스튜디오에서 진행했고, 저는 프로젝트 처음부터 브랜드 개발과 디자인 파트 협업을 맡았죠. 티하우스 론칭이 끝난 지금도 디자인 업무와 사진 촬영, SNS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벌써 3년이 지났네요.

초대장이 놓여진 테이블
티하우스 하다의 차문화 행사를 준비하며 설치한 차도구들
ⓒfrice

<티하우스 하다>는 말씀대로 세 나라의 분위기가 전해집니다. 그 중 ‘한국적인 미감’이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먼저 전통적인 스타일, 근대적인 스타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티하우스 하다>는 전통적인 스타일이지 않을까요?

저는 한국적인 미감을 호방한 선, 은은한 매력, 화려하지 않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 균형감, 옅지만 분명한 색채감이라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표현할 때 드러나죠. 허례허식이 없는 편인데, 공예 분야는 전반적으로 실험정신이 강한 거 같아요.

중국적인 미감은 디자인에서 볼드하고 강렬한 컬러로 나타나는 듯해요. 음과양(yin & yang)의 조화/대비를 신경 쓰는 것도 특징이네요. 일본은 정제되고 섬세한 디자인을 지향하는 것 같습니다. 선(zen,仙)을 추구하는 문화가 있었고 전통적인 미감을 옛부터 지금까지 고스란히 지켜서 내려온 영향이라 봐요.

티하우스 하다의 입구로 들어오면 말간 은색 소재를 활용한 사이니지를 마주한다. 하얀 벽 위, 도톰한 양각로고가 공예적인 인상을 전한다
티하우스 하다의 입구로 들어오면 말간 은색 소재를 활용한 사이니지를 마주한다. 하얀 벽 위, 도톰한 양각로고가 공예적인 인상을 전한다. ⓒNOTE associates

<티하우스 하다>에서 한국적인 요소는 어떤 식으로 배치됐나요?

하얀 삼베로 감싼 가구. 한지로 만든 벽. 문으로 만든 작은 방이 있습니다. ‘여백의 미’를 바탕에 깔되, 너무 빛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소재를 활용할 것. 공간에 어울리는 은색, 색이 말갛게 반짝이는 스틸 소재 사이니지, 포장물에도 도톰한 질감과 자연스러운 색감의 종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죠.

돌돌 말린 종이는 수제한지. 롤 끝부분에 섬유의 거친 질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마감이 깔끔한 기계한지에서 느낄 수 없는 투박한 멋이다
돌돌 말린 종이는 수제한지. 롤 끝부분에 섬유의 거친 질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마감이 깔끔한 기계한지에서 느낄 수 없는 투박한 멋이다. ⓒNOTES associates

SNS를 통해 받는 고객들의 피드백에서는 사진의 톤이라던가 무드가 분명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브랜드와 기업의 관점에서는 브랜드 이미지가 곧 정체성이고, 이것은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과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필수이기 때문인데요. 이 부분은 많이 신경쓰고 있습니다.

티하우스 하다에서 찻잎을 엄선해 만든 프리미엄 티백. 차를 신선하게 보관하는 틴 케이스로 필요한 정보만 최소한으로 기입해 디자인을 최대한 절제시켰다
심플한 패키지에 한지 종이를 활용한 라벨로 포인트를 줬다
티하우스 하다에서 찻잎을 엄선해 만든 프리미엄 티백. 차를 신선하게 보관하는 틴 케이스로 필요한 정보만 최소한으로 기입해 디자인을 최대한 절제시켰다. 심플한 패키지에 한지 종이를 활용한 라벨로 포인트를 줬다. ⓒfrice

그리고 한국의 아티스트와 연중 2~3회 기획전시를 엽니다. 작가의 작업실을 직접 방문하고 작품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것을 살피는데요. 작가의 개성을 티하우스와 연결하기 위해 애쓰는 편입니다.

전시기획안과 기획이 구현된 현장
한국적인 전시공간에 놓인 공예품과 차도구
전시기획안과 기획이 구현된 현장. ⓒNOTES associates, frice

'도심 속의 휴식, BLUE COMMA' 라는 팝업 로고 디자인은 기존 브랜드와 어울리도록 개발했다. 산세리프 서체로 모서리가 동글동글한 로고를 만들고, 스며드는 느낌을 의도했다는 설명. 타겟 제품의 컬러인 블루를 차용하면서 공간 전체에 푸른색의 키 컬러를 배치했다
‘도심 속의 휴식, BLUE COMMA’ 라는 팝업 로고 디자인은 기존 브랜드와 어울리도록 개발했다. 산세리프 서체로 모서리가 동글동글한 로고를 만들고, 스며드는 느낌을 의도했다는 설명. 타겟 제품의 컬러인 블루를 차용하면서 공간 전체에 푸른색의 키 컬러를 배치했다. ⓒNOTES associates

02. 클레어스 서울

“한국의 뷰티 브랜드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어야 할까?”

Designer’s comment

<디어, 클레어스 (Dear, Klairs)>라는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 쇼룸입니다. 2010년부터 기초 라인의 스킨케어 제품을 전개한 뷰티 브랜드죠. ‘미드나잇 블루 드롭’이라는 제품을 알리기 위한 팝업 스페이스를 요청. 행사를 자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열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습니다.

팝업 스토어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업무가 다양해요. BI 디자인 개발부터 다양한 프로그램 콘텐츠 디자인, 그리고 층별 공간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포괄합니다. 디자이너들이 궁금해하는 건 브랜드 디자인이 경험으로 맞닿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뷰티와 한국적인 미감을 연결하는 프로젝트 사례인데요. 프라이스에서 처음 소개드립니다.

뷰티와 아트의 결합. 이것이 브랜드 경험을 설계한 유인성 디자이너의 의도다
네모난 조형물은 도심 속 빌딩을 상징한다. 푸르른 배경과 어우러지며 시각예술전시로 기능한다
네모난 조형물은 도심 속 빌딩을 상징한다. 푸르른 배경과 어우러지며 시각예술전시로 기능한다. 뷰티와 아트의 결합. 이것이 브랜드 경험을 설계한 유인성 디자이너의 의도다. ⓒfrice

오늘 저희가 만난 작업현장은 한국적인 미감이 현대적으로 반영된 듯합니다.
구체적인 디자인 프로세스가 궁금하네요.

사실 한국적인 미감을 직접적으로 원하는 프로젝트는 많지는 않습니다. 한국적인 브랜드 요소와 철학을 이미 가지고 있는 코스메틱 브랜드나 퓨전 한식을 주력으로 하는 레스토랑, 혹은 신진작가의 작품과 디자인 상품을 판매하는 한국의 편집숍이 대표적이네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먼저 서울 강남권 신사동이라는 지역의 특수성과 현재 상황을 살펴봤어요. 주인공은 스킨 케어 제품이고, 그것이 지닌 포뮬러나 컬러의 특성을 체험 프로그램과 시각 디자인으로 녹여내면서 공간과 연결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공간 기획 스케치. 네모난 조형물은 도심 속 빌딩을 상징한다. 푸르른 배경과 어우러지며 시각예술전시로 기능한다
유인성 디자이너의 작업노트와 실제 전시. 팝업 공간에 회화적인 요소를 결합하기 위해 사이토 유나(斎藤 悠奈)작가를 섭외했다
한지에 푸른 염료를 뿌려 푸른 배경을 깔고 그 위에 제품과 오브제를 나란히 배치했다.
유인성 디자이너의 작업노트와 실제 전시. 팝업 공간에 회화적인 요소를 결합하기 위해 사이토 유나(斎藤 悠奈)작가를 섭외했다. 한지에 푸른 염료를 뿌려 푸른 배경을 깔고 그 위에 제품과 오브제를 나란히 배치했다. ⓒNOTE associates, frice

하루에도 수십 개가 열리는 팝업이 트렌드가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디어, 클레어스>라는 브랜드가 던질 수 있고, 던져야만 하는 키 메세지를 고민했는데요. ‘도심 속의 푸르른 휴식 Blue, Comma’이라 정했고, 그에 부합할 콘텐츠와 브랜드 디자인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스킨 케어와 예술은 교집합이 있어요. ‘아름다운 것을 가꾸고 지킨다’라는 지점이 서로 닮아있기 때문에 브랜드 경험의 관점에서 일부 프로그램에 작가와의 협업도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실행여부를 결정합니다.

도심 속 푸르른 휴식을 주제로 한 팝업공간
ⓒNOTES associates

최근 팝업 스토어의 고객 경험 디자인은 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뷰티 브랜드를 소개하고 제품을 직접 체험하도록 다양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 염색하지 않은 광목 천, 기둥 형태의 전시 매대, 푸른 카펫이 깔린 공간에 놓인 거대한 빈백. 여러 장치가 어우러져 ‘도심 속 푸르른 휴식’이라는 경험을 디자인합니다.

팝업 방문자를 위한 안내용 인쇄물
ⓒNOTE associates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행하셨나요?

키 메시지의 이미지를 ‘한국문화’에서 끌어오기로 결정했어요. 먼저 2층에 티하우스를 구성해 티코스 체험을 기획했는데요. 차 종류를 국내산으로 좁혀 하동의 녹차/홍차를 골랐어요. 다구 곁에 두고 쓸 스타일링 오브제는 한지에 푸른색 염료가 번지는 방식의 작업을 통해 만들었어요. 2층의 한국적인 티코스가 3층에는 작은 전시가 열려서 서로 맞물리는 거죠.

브랜드가 하나의 스킨케어 제품을 어떤 식으로 보여주고, 어떤 소구 포인트를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었어요. 모처럼 뷰티 브랜드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풀어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였습니다.

인플루언서를 위한 기프트 패키지. 박스를 열면 오르골 음악과 함께 제품이 회전한다. 고객이 공간에서 느낀 경험을 좋은 추억으로 회상하고, 집에서도 리추얼 라이프를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래시계를 동봉했다. 서랍에 수납되는 패키지가 고급스러운 인상을 더한다
인플루언서를 위한 기프트 패키지. 박스를 열면 오르골 음악과 함께 제품이 회전한다. 고객이 공간에서 느낀 경험을 좋은 추억으로 회상하고, 집에서도 리추얼 라이프를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래시계를 동봉했다. 서랍에 수납되는 패키지가 고급스러운 인상을 더한다. ⓒNOTE associates

한국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브랜드 경험을 디자인하는 작업은 인성님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나요?

‘아, 나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 때가 있어요. 특히 이른 나이에 외국을 갔다거나, 오랜 기간 유학을 다녀온 디자이너들과 일할 때 느끼는데요. 한국적인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지, 나는 어떤 미감을 좋아하는지, 한국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이 나의 인생에서 어떤 부분에서 스며들었는지 이제서야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하는 단계인듯 해요. 여태까지 수많은 회의와 출장을 거쳤는데도 말이죠.

한국적인 미감을 다루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정의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디자인 실무를 통해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상대방에게 솔루션을 제공하는 ‘안내자 역할’, 아무리 트렌드가 빨라도 그 안에서 좋은 것을 간파하겠다는 ‘능동적인 태도’. 디자이너가 지녀야 할 중요한 역량이라 생각해요.

유인성 디자이너의 모습
ⓒfrice

그렇다면 그런 디자인은 우리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리가 선택을 내려야 할 때, 균형을 잡아줍니다. 나와 맞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주는데요. 그게 결국 한 사람의 삶에 어울리는 결과를 안겨줄 가능성이 높죠.

화장품에 빗대면 이해가 빠릅니다. 솔직히 성분으로 따지면 화장품은 브랜드 별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요. 하지만 다들 패키지 조형이나 브랜드가 던지는 메시지, 화장품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죠. 그래서 공급자의 전략은 소비자가 나와 닮았다고 느끼는 브랜드의 제품을 고르게 만드는 걸 텐데요.

브랜드 디자인은 화장품처럼 선택지가 많은 제품군에서 적절한 안내를 돕습니다. 생애주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남녀노소 각자 처한 상황을 반영하면, 같은 물건을 고르더라도 선택지가 바뀝니다. 내가 능동적으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구축된 브랜드 디자인은 소비에 필요한 탐색을 쉽게 만들어요.

😈 시도가 시선을 만듭니다. 유인성 디자이너는 공간에 관여하며 아름다움을 배우고, 경험을 설계하며 깨달음을 얻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내가 스며든 자리를 바라볼 때 시작된다고, 영감은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했어요.

나에게 조금씩 스며드는 한국의 정서와 미감을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유인성 디자이너. 자신의 관점을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키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요. 공간과 경험에 관여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 ‘안내자 역할‘을 하는 디자이너의 생각들. 여러분들은 어떠셨나요?

관점에 관여하다

뷰티 브랜드 팝업의 VMD를 손보는 유인성 디자이너
뷰티 브랜드 팝업 쇼룸 설치현장에서 만난 유인성 디자이너
뷰티 브랜드 팝업 쇼룸 설치현장에서 만난 유인성 디자이너 ⓒfrice

안녕하세요 인성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디자인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지 16년 차인 브랜드 디자이너입니다. 그래픽, 패션, 리조트, 브랜드 에이전시, 건설, 부동산 개발 회사 등을 거쳤는데요. 창작과 라이프 스타일에 관여된 디자인 프로젝트가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공간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프로젝트를 열심히 했죠. 지금은 공간 디자인을 포함한 브랜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 맡았던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네이버에서 UXDP라는 채용 프로그램을 열었어요. 2010년대 전후 디자이너 지망생 사이에서 인기였던 인턴십으로 기억해요. 연수원에 인턴을 11일 정도 합숙시키고 경쟁형 도전과제를 내요. 일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죠. 저는 UXDP 참여를 마치고 브랜드팀에 배치됐어요. 그 당시 네이버는 디자인 조직을 크게 ‘브랜드/BX/UX’로 나눴죠. 브랜드팀은 네이버의 브랜드 전략과 각종 서비스를 관리했습니다. 저는 일부 서비스의 선행 개발에 참여했어요.

‘브랜드 경험Brand Experience’도 디자인하시는데요.
지금은 상식처럼 여겨지는 일이지만, 당시 한국에선 낯선 개념이었어요.

제가 입사했던 2000년대 후반, 디자이너 사이에 본격적으로 언급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이직하며 맡았던 실무가 브랜드 경험(BX) 디자인이어서 적응하며 조금씩 눈 떴던 거 같아요. 네이버를 떠나고 JOH.를 6년 정도 다녔습니다. 동료들이 이미 BX나 브랜딩이라는 개념을 실무에 접목시켜 대중적으로 전파하는 리더들이기도 했어요. 덕분에 빨리 깨우쳤죠.

유인성 디자이너의 디자인 노트. 아이디어 구상은 빈 종이에 간단한 썸네일을 그리는데서 출발한다
유인성 디자이너의 디자인 노트. 아이디어 구상은 빈 종이에 간단한 썸네일을 그리는데서 출발한다. ⓒfrice

브랜드 경험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이론서에 따르면

‘브랜드 경험은 정체성, 시각요소, 세계관 같은 걸 따로 설계하고
그것을 사용자가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끔 연결하는 디자인 작업이다.’

라고 정리됩니다. 설명 자체가 너무 추상적입니다.(웃음)

실무를 잡더라도 딱 떨어지는 공식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라 생각해요.(웃음) 브랜드 경험 디자인은 단순한 비주얼 디자인이 아닙니다. 상품이나 서비스가 가진 장점을 살리고, 그것을 좋아 보이게 만드는 일이죠. 이왕이면 브랜드에 얽힌 사람들이 서로 좋은 자극을 받고, 상호 유익한 도움이 이뤄지도록 판을 설계하는 게 핵심입니다. 저는 고객이 브랜드와 서비스를 만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느끼는지 궁금해요. 브랜드를 만난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반응하는 지점이 궁금해서 계속 브랜드 디자인에 ‘관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관여’라는 단어가 인상적입니다. 브랜드에 어떤식으로 관여하게 되나요?

먼저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에 관여합니다. 브랜드와 클라이언트가 우리를 찾는 이유를 알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죠. 페이퍼워크를 통해 의뢰인에게 프리젠테이션을 꾸준히 펼치는 식으로 방향성을 정하는 단계가 선행됩니다. 그다음에 시각화visualization 단계를 거치는데요. 디자이너는 이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온갖 업무에 관여되는 듯 합니다.

앞서 말한 업무를 끝내고 본격적인 디자인 단계로 넘어가면 종이나 컴퓨터 화면 같은 2D 표면에 컬러와 도형을 조합해 그래픽과 더불어 다양한 콘텐츠를 구현합니다.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분석하고, 시각요소를 위한 기획이나 전략을 만들어요. 이 과정에서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을 배치하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인테리어 프로젝트에서 가구가 키 요소라면 적합한 가구를 찾고, 영상 제작이 필요하면 영상전문가를 찾아내 일정을 주도적으로 짜요. 인력섭외와 일정관리는 브랜드 경험을 디자인하는 사람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시각요소에 개입하는 디자이너의 업무를 설명하기 위해 아카이브 노트를 펼친 유인성 디자이너
시각요소에 개입하는 디자이너의 업무를 설명하기 위해 아카이브 노트를 펼친 유인성 디자이너 ⓒfrice

또한 브랜드를 경험할 고객을 위한 공간에 관여합니다. 만약 오프라인 이벤트가 열린다면, 고객이 방문하는 공간에 세부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건 디자이너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가와 팀을 이루고, 목표달성을 위해 프로젝트를 발전시켜요. 자신감과 책임감을 갖고 건축 전문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세부사항을 조정하는 거죠.


직무를 브랜드 디자이너라고 소개하셨는데,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다양한 일을 수행하셨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시작은 그래픽에 관여하는 것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일하더라도 브랜드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계속 깔려있었어요. 대림처럼 부동산 개발과 얽힌 조직에서 근무했을 땐 디벨로퍼의 관점을 익혔어요. 공간을 기획하고 이름을 붙이고, 그런 공간이 도시 안에서 어떤 기능과 콘텐츠를 가진 플랫폼이 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는 일을 했습니다.

두 번째 직장이었던 JOH.의 조직문화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JOH.는 대외적으로 『매거진 B』를 만드는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건축부터 F&B까지 각 분야별 전문팀이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요.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주받으면 팀 별로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업무를 수행해요. 하나의 프로젝트도 다양한 카테고리에 걸쳐져 종합적으로 전개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저도 여러 업무에 관여했습니다.

본업인 디자인 에이전시 업무 외에도 『매거진 B』의 콘텐츠 제작에 일부 관여했다는 유인성 디자이너의 노트를 구경할 수 있었다
본업인 디자인 에이전시 업무 외에도 『매거진 B』의 콘텐츠 제작에 일부 관여했다는 유인성 디자이너의 노트를 구경할 수 있었다. ⓒfrice
유인성 디자이너는 당시 협업이 브랜드 경험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시각 콘텐츠로 바꿔보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유인성 디자이너는 당시 협업이 브랜드 경험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시각 콘텐츠로 바꿔보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frice
B's Cut의 촬영 시안. 각 호마다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할 제품을 골라 스튜디오에서 촬영한다. 디자이너는 사진작가에게 요청할 연출법을 시각화해서 전달한다
B’s Cut의 촬영 시안. 각 호마다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할 제품을 골라 스튜디오에서 촬영한다. 디자이너는 사진작가에게 요청할 연출법을 시각화해서 전달한다. ⓒfrice

브랜드 디자이너의 일은 장기간에 걸쳐 있는데다, 비가시적인 성과가 더 많습니다.
디자이너의 업무능력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관점’과 ‘방향성’이 브랜드 디자이너의 무기라고 생각해요. 두 가지가 참 중요해요.

좋은 ‘관점’과 ‘방향성’을 잡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하시나요?

극초반 아이디어 구상은 메모로 하는 편입니다. 레퍼런스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인데요. 브랜드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워낙 레퍼런스를 많이 쥐고 있어요. “A브랜드가 B콘셉트로 팝업스토어 연다더라.” “C는 D에서 F를 시도했는데 흥행했다더라.” 온갖 정보가 귀에 들어와요.

그런 레퍼런스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핵심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메모에 담은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애써요.

개인적으로는 핀터레스트를 주의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AI까지 가세했어요. 트렌드를 스타일로 구분하고 순위를 매기는 서비스가 등장했고 유저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오픈소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죠. ‘이런 데이터 분석의 결과값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건가?’ 유행에 몸을 맡기는 현대 디자인 트렌드에도 조금은 경계심을 갖고 있어요.

지금 한국에서 전문 조직이 브랜드를 설계하는 경우, 데이터 기반 오픈소스툴 활용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디자인 업무를 수월하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어요. 좋은 툴입니다. 좋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하라는 거죠. 정서적인 심상과 문제 해결을 위한 직관, 그리고 리서치 데이터를 접목시키는 건 디자이너의 역량이니까요. 이 세상이 점점 더 자극적이고 더 화려하고 더 시끄러운 곳으로 끌려가고 있어요. 데이터 분석에 의한 알고리즘이 알게 모르게 실무에 반영된다는 걸 의식하고, 좀 더 순간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거죠.

레퍼런스를 떠나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그 안에 담긴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레퍼런스를 떠나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그 안에 담긴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frice

브랜드에 관여하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관점을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관점 하나로는 결국 한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디자인은 결국 추상과 실제를 연결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모순적인 가치를 양립시키며 진전되는 사례도 빈번하죠. 브랜드가 추구하는 사업적인 가치를 따지려면 이성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 테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남기 위해서는 동시에 정서적인 관점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유인성 디자이너가 기록한 토론 자료.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1~2주 간격으로 클라이언트 미팅에 필요한 PT작업에 나선다고 한다
유인성 디자이너가 기록한 토론 자료.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1~2주 간격으로 클라이언트 미팅에 필요한 PT작업에 나선다고 한다. ⓒfrice

그래서 저는 프로젝트 초반에 클라이언트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좀 더 많이 듣고, 더 알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고 나서 어떤 직감이나 심상 같은 걸 놓치지 않고 디자인 솔루션과 연결을 합니다. 이건 직관 내지는 본능. 정서적인 측면이죠.

이게 경영전략같은 이성적인 측면과 결합이 잘 되면 좋은 브랜드 디자인이 태어나는 건데요. 성공적인 프로젝트는 기능과 정서의 연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연결에서 나온다고 봐요.

전문가로 활약하려면 디자인 솔루션을 여러가지 패턴으로 쥐고 있어야겠네요.

‘깃발 세우기’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예쁜 것과 좋은 것을 분류하고, 그것을 남들보다 먼저 얘기해서 명분을 선점하는 방법을 써요. 현상을 분석하고 거기서 얻어낸 직관을 연결하면서 실천가능한 디자인 프로젝트로 개발시킵니다.

저는 ‘경청’을 선호합니다. 가능하다면 일단 남들보다 더 많이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일단 클라이언트의 입장을 다 듣고, 레퍼런스를 검토하며 아는 게 많아질수록 관점이 다양해져요. 관점이 다양해지면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도 다양해집니다. a와 b만 만족시키지 않는 솔루션, 이질적인 c, d, e가 있어도 추진이 가능한 솔루션이 등장하는 거죠. 만약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완전히 틀어지더라도 나중에 계속 디자인을 이어나갈 수 있는 근거와 독특한 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브랜드 디자인의 초기작업은 기획/전략 구상이여서 실무자와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친다는 설명을 보탰다
브랜드 디자인의 초기작업은 기획/전략 구상이여서 실무자와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친다는 설명을 보탰다.ⓒfrice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가장 희열을 느낀 순간은 언제입니까?

열심히 고민한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수용됐을 때입니다. 이제 브랜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된 거 같아요.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은 생각보다 힘이 세거든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이미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어요. 이미 누군가가 설계해둔 디자인에 의해서 말이죠.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디자인은 이미 스며들었다. 당신의 선택지는 사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결정됐다.」

이런 정의를 내릴 수 있을만큼요.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 이론을 이해하고 실제 사례를 접하다보면 남들이 만든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와 대중 모두가 브랜드 디자인을 비판적으로 의식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앞으로도 브랜드의 무언가를 관여하며 디자인할 텐데요. 쉽게 타인에게 휩쓸리지 않는 건강한 취향이 제게도 필요하고, 브랜드 디자인에 영향을 받을 분들에게도 이런 능동적인 태도가 중요할 겁니다. 누군가의 브랜드 디자인을 거스르려는 안간 힘이! 제가 여태까지 했거나, 앞으로 할 디자인에 반영됐으면 합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to be continued…😎

😈 여러분은 자신의 직업에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신가요? 비슷한 일을 하는 업계동료와 직업의 의미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 경험을 전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유인성 디자이너의 노하우가 담긴 기획 노트를 볼 수 있는 건 커다란 행운이었어요. 1부는 브랜드 디자이너의 관점을 살펴봤는데요. 이어지는 2부에서는 관점이 실제로 구현된 공간을 소개합니다. 보다 깊은 디자인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2부에서 만나요!

비단잉어가 유리 연못을 헤엄치는 이유

을지로 참프루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술잔에 비친다
유리창을 의뢰한 변익수 대표(왼쪽)와 유리창을 만든 배자한 디자이너(오른쪽)
유리창을 의뢰한 변익수 대표(왼쪽)와 유리창을 만든 배자한 디자이너(오른쪽) ⓒfrice

사장님의 한 끗 차이, 스테인드글라스 인테리어
(2)서울 을지로 참프루


@champloo_euljiro
서울 중구 을지로 14길 13 203호 검은문
| 일-목 18:00 ~ 24:00 금토 18:00 ~ 02:00 연중무휴


을지로 참프루 천장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
ⓒfrice

Q. 업장에 설치된 작품은 무엇인가?

변익수 유리창으로 만든 연못이다. 한옥 중정에 있는 연못을 의도했다. 원형 창문 뒤에 조명을 달았다. 어느 자리에 앉더라도 잘 보일 수 있게 살짝 눕혔다. 가게에서 만난 연극 무대 감독님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수평보다 비스듬히 매다는 게 낫다는 거다.

배자한 한국적인 아트워크를 도면에 담았다. 재화를 상징하는 비단잉어, 고고한 연꽃. 이 둘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징검다리. 특히 징검다리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라는 상징이다. 무늬의 결을 최대한 통일해 유리가 마치 물의 파동처럼 느껴지길 의도했다. 나무 프레임은 잘린 유리를 받쳐주는 역할이다.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짰다. 작품의 내구성을 보완하는 효과도 있다. 결과적으로 물에 반사 되는 나무의 느낌을 얻었다.

Q. 스테인드글라스는 어떻게 접했나?

배자한 친형이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다. 군 전역 후 친형이 일하는 공방에 놀러 가서 작은 장식품부터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

변익수 사실 잘 몰랐다. 다만 요즘 들어 유행하는 인테리어라는 생각이다.

Q. 이 디자인을 채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변익수 연못을 연상하는 인테리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가지 공간 디자인을 검토했는데 스테인드글라스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채택했다. 빛이 투과된 모습이 아름다웠고 그림자처럼 빛이 번지는 게 물과 속성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배자한 사장님 요청 작품이기도 하지만, 여태까지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중 가장 큰 규모여서 처음엔 걱정스러웠다. 허나 설치의도가 재밌고 작가로서도 한 발짝 나가 보자는 생각으로 제작에 나섰다.

지름 1.2m의 커다란 원형 틀 안에 비단잉어와 연꽃, 징검다리 등이 섬세하게 배치되어있다
지름 1.2m의 커다란 원형 틀 안에 비단잉어와 연꽃, 징검다리 등이 섬세하게 배치되어있다. ⓒfrice

Q. 실제로 설치한 소감은?

변익수 내심 상상했던 모습이 나왔다. 엉뚱하다 싶은 것도 나름대로 마음에 든다. 광원 조절에 따라 진짜 물결처럼 보이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런 기술적인 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만족스럽다.

배자한 가게 인테리어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스테인드글라스가 공간에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갤러리에서 철수 기한 없는 개인전을 하는 기분이다.

조명을 비스듬히 걸어 어느 자리에 앉아도 그 모습을 면밀히 감상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
조명을 비스듬히 걸어 어느 자리에 앉아도 그 모습을 면밀히 감상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 ⓒfrice

Q. 업장에 설치한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아름다워보일 때는 언제인가?

변익수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고개를 들어 창을 바라볼 때. 참프루는 원탁을 중심으로 의자를 배치했다. 원탁 바깥에서 볼 때 연못창이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배자한 술 따른 잔 표면에 연못창의 모습이 담길 때. 거짓말 같아도 정말이다. (웃음) 액체의 질감이 잔 위에서 일렁이며 진짜 연못처럼 느껴지는데 참 아름답다.

잔 속에 연못이 담기는 순간. 물결을 따라 일렁이며 비단잉어는 잔 속을 내내 유영했다
잔 속에 연못이 담기는 순간. 물결을 따라 일렁이며 비단잉어는 잔 속을 내내 유영했다 .ⓒfrice

Q. 최근 인상깊게 구경한 한국 스테인드글라스는?

변익수 한남동 퍼킹어썸 바에서 본 유리창. 창 안과 밖이 연결되는 느낌이 신기했고 사진찍기도 재밌어보였다.

배자한 부산 남천동 성당의 초대형 유리창. 압도되는 느낌이 대단하다.

말굽 모양의 원탁을 따라 둘러앉는 구조의 테이블이 새롭다
말굽 모양의 원탁을 따라 둘러앉는 구조의 테이블이 새롭다. ⓒfrice

Q. 업장에 작품을 설치한 후 무엇이 변했나?

변익수 공간에 분위기를 딱 잡아주는 중심이 생겼다. 이전에 설치한 등은 다소 심심하다고 느낄 법한 조명이었다.

배자한 지금 스테인드글라스는 참프루의 확실한 포토스팟이다. 매출도 덩달아 오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웃음)

을지로 참프루 진열장에 놓인 다양한 주류제품들
ⓒfrice

Q. 스테인드글라스 말고도 자랑하고 싶은 것은?

변익수 사연 있는 술. 그런 술을 참프루에서 많이 소개하는 편이다. 캐나디안 클럽(Canadian Club)이라는 위스키가 있다. 미국 금주법 시대에 성장한 술인데, 영화 <대부>에서 콜레오네 패밀리가 다뤘던 밀주다. 이야깃거리가 있는 술에 흥미를 느낀다. 앞으로 더 열심히 팔겠다.

배자한 다른 인테리어. 자세히 뜯어보면 재밌는 디테일이 많다. 우리는 커튼으로 기와를 표현한다. 현판에 쓴 글자는 한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한글이다. 액자에 빔으로 쏘고 있는 명화까지 재미있는 공간 디테일로 의도했다.

😈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활용해 인테리어 한 끗 차이를 만든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다른 사장님이 들려줄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

오뎅바 사장님이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을 쓴 이유

유리창 너머로 비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이 거리를 부유한다
슌노오뎅 최시윤 대표. 니혼슈와 어울리는 오뎅을 개발중이다. 오뎅가게만 30년 운영한 부산 장인어른에게 직접 배웠다
슌노오뎅 최시윤 대표는 니혼슈와 어울리는 오뎅을 개발중이다. 오뎅가게만 30년 운영한 부산 장인어른에게 직접 배웠다. ⓒfrice

사장님의 한 끗 차이, 스테인드글라스 인테리어
(1)서울 상수동 슌노오뎅
@SHUNNO_ODEN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22 1층 좌측 | 19:00 ~ 05:00 매주 월요일 휴무


슌노오뎅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frice

Q. 업장에 설치된 작품은 무엇인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조명장치다. 바 테이블 위에 4개 설치했다.

Q. 스테인드글라스는 어떻게 접했나?

3년 전? 창업을 준비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기 위해 실내 인테리어를 공부했다. 당시 한창 핫한 인테리어가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자세히 살피면 스테인드글라스의 양면을 모두 볼 수 있는 조명이다
자세히 살피면 스테인드글라스의 양면을 모두 볼 수 있는 조명 ⓒfrice

Q. 실제로 설치한 소감이 궁금하다.

내심 원했던 ‘한 끗’이 생겼다. 사실 요즘 일본풍 주점이 많이 생겼지 않나!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케나 고구마소주같은 외국산 술을 파는데다 콘셉트도 일본 현지의 오뎅바다. 이국적인 무드를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별화 또한 절실했다. 차별화 포인트를 빈티지 조명장치로 잡았다. 가게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가 됐다.

슌노오뎅 안팎으로 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차분한 색으로 공간이 따뜻하게 채워진다
슌노오뎅 안팎으로 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차분한 색으로 공간이 따뜻하게 채워진다. ⓒfrice

Q. 굳이 제작한 이유가 있다면?

사실 조명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쓸 계획은 없었다. 업장 내 실내 인테리어가 완성될 무렵, 조명이 고민이었다. ‘우리 가게와 딱!이다’ 하는 조명을 발견하지 못했다. 벽장식 인테리어 견적을 위해 스테인드글라스 업체에 방문했는데, 거기서 슌노오뎅과 딱 어울리는 조명이 걸려있더라.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해버렸다. 오뎅바를 준비하며 제일 잘한 인테리어다.

유리창 너머로 비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이 거리를 부유한다
유리창 너머로 비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이 거리를 부유한다. ⓒfrice

Q. 업장에 설치한 작품이 가장 아름다워보일 때는 언제인가?

추운 계절 새벽. 슌노오뎅은 오후 7시부터 새벽 5시까지 운영하는 심야식당이다. 한밤중 피크타임이 끝나고 새벽이 다가오면 스테인드글라스 조명만 켜둔다. 키친에서 입구를 바라보면, 창문에 반사되서 보이는 조명이 인상적이다. 가게 문을 여는 오후 7시는 살짝 밝은 조도를 유지한다. 이 또한 아름답다.

Q. 최근 인상깊게 구경한 한국 스테인드글라스는?

삼청동 아원공방 에 전시중인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SNS로 구경했는데 우리 가게에 데려오고 싶었다. 기발하고 아름답다.

슌노오뎅의 수제오뎅
ⓒfrice

Q. 업장에 작품을 설치한 후 무엇이 변했나?

빛이 우리를 표현할 새로운 수단이 된다. 마포구는 대체로 트렌디한 동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귀엽거나 가벼운 이미지가 어울린다. 한편 우리에겐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대를 이어 오뎅을 만든다는 게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장인정신과 트렌드의 공존. 슌노오뎅의 정체성이 조명의 색과 톤으로 표현됐다.

슌노오뎅 전경. 포토존에 놓여있는 제품은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물건이다
슌노오뎅 전경. 포토존에 놓여있는 제품은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물건이다. ⓒfrice

Q. 마지막 질문이다. 또다른 자랑거리를 소개한다면?

매장 앞 작은 벽. 오뎅바 손님들이 사랑하는 포토존이다. 소품을 활용해 일본 동네 버스정류장처럼 꾸몄다. 퇴근 후 집 앞 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눈에 띄는 작고 편한 가게를 의도했다. 혼자 술 마시고 싶은데 약속은 따로 잡기 귀찮을 때 가는 주점. 혼술이 맛있는 가게가 되는 게 우리의 목표다.

😈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활용해 인테리어 한 끗 차이를 만든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다른 사장님이 들려줄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

유리창 가르다 세월을 여몄네

공방 앞에서 작품을 들고 바라보는 박옥경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 박옥경님
ⓒfrice

나는 1.5세대 작가입니다.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공예는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종교 건축 인테리어가 대부분이던 1세대와 상업공간 인테리어가 급부상한 2세대 사이에 있어요. 2010년 이후부터 젊은 사람들의 소비패턴을 이해하고 그들을 상대로 사업을 해야 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저부터 젊어야겠죠.

이제 작품 제작을 위해 미팅을 가지면, 담당자 대부분이 30~40대 초반인데요. 예전과 비교하면 현장에서 쓰는 언어도, 그들이 표현하려는 이미지도 젊다고 느낍니다.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 박옥경님의 2000년대 초 업무사진
ⓒ박옥경

시작은 2003년입니다. 저는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5~6년 근무했는데요. 일하면서 *베벨드 기법을 쓴 작품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스테인드글라스는 교회나 성당의 장식물이었어요. 제작법도 극소수만 알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도 어깨너머로 배워가며 일해야 했죠.

개신교회는 시트지에 성화를 새겨달라는 주문이 많았는데요. 드물게 스테인드글라스를 주문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시트는 너무 저렴해 보이고 수명이 오래가지 않으니, 스테인드글라스를 발주하는 거였죠. 가톨릭 성당은 주로 유학 다녀오신 분들이 맡았습니다. 해외유학 다녀온 수녀님이나 신부님이 제작법을 배워와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드셨어요.

베벨드 기법을 활용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사례
베벨드 기법을 활용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사례 ⓒ박옥경

꿈이 생겼습니다. 일반 건축물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접목시키고 싶었어요. 2009년에 회사를 떠나 독립을 했는데, 당시 국내에서 잘 쓰지 않는 새로운 유리를 수입했어요. 디자인 시안도 다시 짰죠. 새로운 유행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업을 다녔어요. 점점 발주처를 확장했는데, 서울 강남이나 도시개발이 한창이던 경기도 분당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요청이 들어왔죠.

일반 가정이나 상업 공간에 들어가는 스테인드글라스 수요가 아예 없진 않았어요. 2000년대 전후는 주택이나 아파트 중문에 들어가는 유리창이 인기가 많았는데요. 저는 베벨드 기법과 색유리를 배합하는 유리창 제작에 나섰죠. 종교 건축과 일반 건축에서 오는 의뢰를 병행하면서 창작을 이어 갔어요.


유리공방과 카페를 같이 해볼까?

2011년 일이네요. 일반 건축물에 조금씩 스테인드글라스 인테리어를 보급하는 중에 악재가 터졌어요.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발표됐거든요. 건축에 들어가는 예산이 통째로 줄어드니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장식용 인테리어부터 없던 일이 됐습니다. 당시 스테인드글라스 인테리어를 요청하던 아파트 공사현장 수요가 많아서 뼈아픈 일이었어요. 신축 아파트를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 넣는다는 오랜 꿈은 잠시 접게 됐습니다.

특수유리 계통이다 보니 그래도 발주는 조금씩 들어와서 회사는 운영할 수 있었어요. 경기침체가 생각보다 오래가니 버티기 힘들었죠. 뾰족한 개성이 없는 회사들은 유지가 어려웠습니다. 사업을 접는 업체가 서서히 늘어났어요. 저도 가지고 있던 재산을 지키기가 어려웠지만, 좋아하는 일이라 포기할 순 없었어요. 첫 번째 돌파구로 *숍인숍을 기획했습니다. 같은 건물에 카페와 아틀리에를 동시에 운영하는 일이었죠.

영등포 양평동에 연 숍인숍 스테인드글라스공방. 작업실과 카페를 동시에 운영했다
영등포 양평동에 연 숍인숍 스테인드글라스공방. 작업실과 카페를 동시에 운영했다. ⓒ박옥경

당시 국내에선 생소했지만, 일본은 창작자가 팀 단위로 사업체를 꾸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카페나 식당을 병행하는 공예작가가 있었죠. 한국도 일본처럼 곧 숍인숍 형식의 공방사업이 커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는데요.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 이른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2010년대 초는 지금처럼 골목 속에 숨겨진 가게를 인스타그램으로 보고 찾아가는 시대는 아니었네요. 그래도 왜 이런 공간을 만들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이따금 벤치마킹을 하러 많이 왔었어요.

영등포 양평동으로 공방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다른 유리공장이나 외주업체에서 발주를 넘겨받은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했어요. 동시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죠. 공간을 나눠서 일부는 카페로 꾸몄습니다. 바깥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면 카페, 거기서 안쪽으로 한 번 더 문을 열고 들어오면 공방. 손님이 유리공예를 지켜볼 수 있는 작업공간이죠.

팩토리가 아니라 아틀리에.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작업현장이 아니라 예쁘고 쾌적한 공간을 만듭니다. 차도 마시고 작업도 할 수 있는 공간. 나만의 감성을 드러내는 작업장, 분위기 있는 장소를 만들려는 시도였어요.

손님들은 카페인 줄 알고 들렀다 스테인드글라스라는 낯선 소재를 신기하게 여겨요. 시간이 더 지나면, 손님들이 창업하는 가게에 인테리어로 써보고 싶다고 주문을 하더군요. 대중친화적인 공간에서 만난 손님이 때때로 작품 의뢰를 요청하는 클라이언트로 변신해요. 이는 제가 불황을 견딜 수 있던 힘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공예의 새로운 흐름입니다. 일반인도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만드는 거죠.

색연필로 스케치한 스테인드글라스 아이디어
색연필로 스케치한 스테인드글라스 아이디어 ⓒ박옥경

‘디자인’의 힘

수익은 크지 않았지만 숍인숍 사업을 하던 2010년대 초반은 디자인의 힘을 느꼈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색다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디자인의 가치를 인정하는 시대가 열렸어요.

새로운 인테리어 소재를 써보려고 하는 건축사 사무실, 인테리어 업체에서 발주가 늘었습니다. 시대가 바뀌며 스테인드글라스의 영역이 종교건축뿐만 아니라 상업이나 일반건축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겁니다.

이 시기부터 클라이언트에게 디자인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발주에 큰 영향을 차지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조형을 제안하기 힘들었던 회사부터 위기가 찾아오는 걸 실감했죠. 2010년까지만 해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디자이너를 정직원으로 채용한 회사가 거의 없었어요. 시각디자인을 할만한 인재도 없었으니까요. 필요하면 디자이너를 프리랜서로 고용해 오더를 받는 분위기였죠.

프로그램을 활용해 제작된 도안. 사용될 유리의 텍스처나 컬러를 실제에 가깝게 보여줄 수 있다.
프로그램을 활용해 제작된 도안. 사용될 유리의 텍스처나 컬러를 실제에 가깝게 보여줄 수 있다. ⓒ박옥경

우리는 가업승계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컴퓨터 다루는 게 능숙했던 아들 덕을 봤습니다. 고등학생 때 스테인드글라스 시안을 종이에 옮겨보라고 권유했는데, 아들은 컴퓨터로 작업을 해서 시안을 뚝딱 만들더군요. 지금은 회사 대표이자 메인 디자이너인 박진영입니다.

“아들의 이 재능은 누굴 닮은 걸까?”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故박치성 화가가 있습니다. 인천에서 평생 그림만을 고집하며 작업했던 사람. 아들 진영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화실에서 생활하며 그림을 접하는 생활을 했거든요. 거기에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제 영향이 얹히지 않았을까요? 스테인드글라스를 시작한 나 때문에 아들도 잠재력을 스테인드글라스에 쏟기 시작했습니다. 가업승계는 우리 가족의 운명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테인드글라스 2D 도안과 제작을 마친 유리창
스테인드글라스 2D 도안과 제작을 마친 유리창 ⓒ박옥경

너는 내 운명

2010년대 불황은 길었습니다. 작업공들이 다른 일을 찾아 하나둘 그만두는 사례가 늘어났습니다. 호황일 땐 제작팀, 시공팀, 디자인팀으로 나눠서 여러 명의 직원을 두기도 했었습니다. 불황 끝에 작업이력이 있는 중견 작업자들이 벌이를 위해 이직한 상태여서 결국 인력난을 실감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분야에서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기로 한 만큼, 취지를 이해할 수 있는 젊은 인재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작업현장
왼쪽부터 박진영 작가, 박옥경 작가, 남한울 작가
왼쪽부터 박진영 작가, 박옥경 작가, 남한울 작가 ⓒfrice

인터넷에 스테인드글라스 교육공지를 올렸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스테인드글라스 수업에 회화과를 나온 미대생이 찾아왔어요. 지금은 며느리가 된 남한울 작가죠. 이것도 참 인연이네요. 손발이 착착 맞았던 수강생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아들 박진영과 셋이서 팀이 됐습니다. 업체에서 받은 오더를 해내느라 자정까지 작업하는 일이 부지기수지요. 새로 시작한 회사인 양 열심을 다했던 나날입니다.


디자이너의 역할 : 의심↓ 확신 ↑

디자인을 강화하고 젊은 피를 수혈하니, 경쟁력이 생겼습니다. 특히 컴퓨터 시안이 큰 힘이 됐어요. 당시만 해도 많은 업체가 시안을 손으로 그려서 색연필이나 컬러 사인펜으로 그려서 의뢰인에 보여줬어요. 수작업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시연이 훨씬 디자인의 폭을 넓힌다는 걸 실감했어요.

“우리는 컴퓨터까지 활용해서 시각디자인의 완성도를 추구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디자이너의 역할은 의뢰인이 원하는 디자인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인 거죠. 파트너에게 신뢰감을 주는 게 우선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업장이나 건축물에 설치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려주는 것도 중요해요.

상업공간 스테인드글라스 시안과 실제 제작 사례
상업공간 스테인드글라스 시안과 실제 제작 사례 ⓒ진영글라스

스테인드글라스 업계가 젊어지고 있습니다. 점점 젊은 업체 대표나 젊은 담당자를 만나는 일이 늘고 있어요.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이 생각 못 한 것을 역제안했을 때 자부심을 느낍니다.

오늘날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은 예견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현장에서 시안이 구현될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힘이죠. “생각도 못 했던 기발한 곳에 설치 됐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디자인을 하신다면, 분명 훌륭한 작업을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사명감을 갖고 유리공예를 더 크게 키울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색다를 것. 고유할 것. 독특할 것.

요즘 젊은 사람들이 찾는 실내 인테리어의 세 가지 특징입니다. 디자인을 더한 스테인드글라스는 그래서 수요가 늘고 있는 듯해요. 젊은 사람들한테 저변이 확대되는 게 신기해요. 변화의 한복판에서 젊은 창작자에 다양한 경험을 전수해 주고 싶습니다. 당장 공방 식구부터요.

직원 모두가 너무나 자기 몫을 잘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오래오래 감각 있는 창작자로 활동하도록 도와야죠. 늘 그래왔듯, 최선을 다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 저도 성심을 다해 작업하고 있어요. 경험을 전하고 싶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될 때. 인생선배의 경험담은 큰 힘이 됩니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여성창작자의 기억에서 공예작가이자 사업가, 엄마이자 선생님이기도 했던 모습을 발견합니다.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절실함, 살며 배운 것을 나누려는 다정함. 여러분에게도 작가가 움켜쥐려 했던 마음이 닿기를 바랍니다.

서울과 부산, 그리고 인천으로 떠난 종교 스테인드글라스 탐방기

부산 남천동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한국 최대 규모로 알려져있다

신성하거나 신선하거나

스테인드글라스. 뜻을 풀자면 ’색유리‘요, 스타카토처럼 통통 튀다 부드럽게 펼쳐지는 일곱 글자에 이토록 신성한 이미지를 심어준 건 중세시대 유럽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신의 존재를 투영하기에 딱 좋은 매체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이어지던 시절이었고, 오래전부터 빛은 곧 신을 상징했으며 창틀에 박힌 스테인드글라스는 시시각각 다른 감도로 빛났으니까.

그러나 대표 이미지를 갖는다는 건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줄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독 강하게 박힌 종교미술의 이미지 앞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도 딱 한 가지 면만 지니지 않는데 스테인드글라스라고 다를까? 만약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또 무엇이 보일까? 예술과 디자인이라는 필터를 쥐고 경부선을 넘나든 짧은 여행은 그런 사소한 물음표에서 시작되었다.

서울, 가재울 성당

경의중앙선 신촌역과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사이, 홍제천이 한때 모래내라는 이름으로 흘렀던 가좌역. 4번 출구로 나와 모래내시장을 지나고 헨젤과 그레텔 속 빵 부스러기처럼 늘어선 가로수를 따라 걷는다. 첫 번째 목적지는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길쭉길쭉한 아파트 단지로 변해가는 풍경 속에 숨어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 통창으로 유명한 가재울 성당.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385-5에 위치한 가재울 성당의 외관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385-5에 위치한 가재울 성당 ⓒfrice

여기가 맞아? 솔직히 말하자면 첫인상은 그랬다. 회색빛 십자가가 아니었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만큼 외관이 담백했다. 남가좌동을 휩쓴 뉴타운 재개발의 결과물이었다. 1971년에 설립된 본당이 허물어진 후 2014년 문을 열었다는 가재울 성당은 주변을 둘러싼 아파트며 주민센터에 위화감 없이 스며들었다. 자고로 스테인드글라스란 클래식한 건축물에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되었지만, 반전은 2층에서 시작됐다.

가재울 성당 2층에 들어서면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마주한다
가재울 성당 2층에 들어서면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마주한다 ⓒfrice

고요한 복도 저 편에서 빛나는 유리화와 그 아래 웅덩이처럼 고인 빛그림자. 누구에게나 유년 시절의 아이콘 같은 만화영화가 하나쯤 있다. 내 경우엔 ‘미녀와 야수’였다. 비가 쏟아지는 밤, 초라한 행색의 노파를 내쫓아버린 왕자와 그의 차가운 심장에 저주를 건 마녀. 알록달록 유리화로 펼쳐지는 프롤로그는 어린 눈에도 아주 낭만적이었다.

장미꽃같은 빨간 동그라미는 예수의 심장을 의미한다
붉은 유리가 푸른 유리와 대비되며 인상적인 심볼로 다가온다
장미꽃같은 빨간 동그라미는 예수의 심장을 의미한다 ⓒfrice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 장면이 되살아났다. 저 멀리 노랗고 파란 유리 조각들이 회오리치며 우주를 이루고 있었다. 국내 최초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인 고(故) 이남규의 ‘예수 성심’(1988)이었다. 재개발 전까지 본당을 지키다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작품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할 만큼 거대했고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듯 반짝였다. 울퉁불퉁 깨진 유리들이 두꺼운 단면 안쪽으로 말간 바다를 품고 있었다. 장미꽃이라고 생각했던 빨간 동그라미가 예수의 심장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가재울 성당의 물고기 모양 스테인드글라스는 설치미술가 오순미 작 (2014). 가재가 많아 붙여졌다는 가재울 명칭과 모래내에서 영감을 받았다. 거대한 물고기는 구원을 상징하며 유리 전체의 작은 격자들은 신자 개개인을 나타내는 모래를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가재울 성당의 물고기 모양 스테인드글라스는 설치미술가 오순미 작 (2014). 가재가 많아 붙여졌다는 가재울 명칭과 모래내에서 영감을 받았다. 거대한 물고기는 구원을 상징하며 유리 전체의 작은 격자들은 신자 개개인을 나타내는 모래를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사진 frice, 참고 가톨릭 굿뉴스

하지만 이곳이 유명한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2층과 3층을 아우르는 대성전 오른편, 모래알 같은 격자무늬 위로 부드럽게 헤엄치는 물고기 형상. 설치미술가 오순미와 건물 설계 단계부터 논의했다는 무지갯빛 창문이다. ‘모래내’와 ‘가재울’에서 영감받았다는 창문은 모티프에 충실했다. 화려한 밑그림도 장식도 없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거기에는 푸르스름한 새벽녘, 노랗게 물든 한낮, 뉘엿뉘엿 저무는 해질녘까지 다양한 시간대가 깃들어 있었다. 어느 쪽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짤막한 시차가 생겨났다. 다른 것 없이도 색감이 곧 장식이었다.

노랗게 물든 한낮을 닮은 스테인드글라스 해질녘 오후의 시간이 공존한다
푸르스름한 새벽을 닮은 스테인드글라스. 해질녘 오후의 시간이 공존한다
푸르스름한 새벽과 노랗게 물든 한낮, 해질녘 오후의 시간이 공존한다 ⓒfrice

스테인드글라스의 세계를 제대로 마주한 건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오후 세 시를 넘기자 불현듯 햇빛이 스며들었다. 유리에 새겨진 숨결을 따라 물그림자 같은 흔적이 드리워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스테인드글라스란 단순히 색유리의 개념이 아니라는걸.

창문을 통과한 빛과 거기서 퍼져 나오는 그림자, 화창한 장조와 싱거운 단조가 만들어내는 리듬,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공간이 오묘한 빛깔 속으로 천천히 잠겨 들었다.


남천성당의 기울어진 형태는 배의 돛 모양을 닮았다. 항구도시 부산을 염두에 둔 것. 오른편의 열쇠모양 종탑은 천국의 열쇠를 들고 하늘로 향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다
남천성당의 기울어진 형태는 배의 돛 모양을 닮았다. 항구도시 부산을 염두에 둔 것. 오른편의 열쇠모양 종탑은 천국의 열쇠를 들고 하늘로 향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다. ⓒ사진frice, 참고_부산일보

부산, 남천성당

서울에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은 조금 길었다. 아침부터 부산행 열차를 타고 한참을 달린 후 캐리어를 끄는 여행자들과 심드렁한 얼굴의 주민들이 뒤섞인 마을버스에 실려 덜컹덜컹. 3시간 남짓의 여정 끝에 드디어 ‘샤’ 모양 건물을 만났다. 잘라낸 케이크 같은 삼각형 옆으로 열쇠 모양 종탑이 세워진 풍경, 부산의 남천성당이었다.

부산 남천동 성당 내부
ⓒfrice

이곳의 시그니처는 45도 기울어진 벽면의 안쪽이다. 길이 53m에 높이 42m인 유리화로 온통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라는 유리화는 한평생 사제와 미술가를 넘나든 조광호 신부의 작품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시인과 화가를 꿈꿨으며 미(美)를 곧 진리라 여긴다는 70대 신부가 탐구한 아름다움은 어떤 모습일까.

부산 남천동 성당 내부. 한국 최대 규모 스테인드글라스 아트워크를 만날 수 있다
한국 최대 규모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된 부산 남천성당
한국 최대 규모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된 부산 남천성당 ⓒfrice

들어서자마자 평화였다. 창문 가장자리를 타고 구석구석 쏟아져 내리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반대편 벽 위로 어룽거리는 빛, 빛, 빛. 숫자와 단위로 읽었을 때는 알 수 없던 공간감이 눈앞에 펼쳐졌다. 기도하는 마음에는 주일이 없다는 듯 몇몇 신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기다란 의자 위로 빛무리가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유리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후 소성과정을 거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후 소성과정을 거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조광호 신부의 작품이다
유리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후 소성과정을 거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조광호 신부의 작품이다 ⓒfrice

평일 오후였고 온통 침묵이었다. 기획부터 제작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는 유리화는 추상화와 구상화를 합쳐놓은 듯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뽐냈다.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동그라미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는 동안 아래쪽으로 성경 속 인물들이 또렷하게 나타나는 식이었다. 어떤 선은 비 갠 하늘처럼 선명했고, 또 어떤 선은 붓질 대신 페인트를 뿌렸던 잭슨 폴록의 것처럼 거칠었다. 어제 만들어졌다고 해도 믿을 만큼 맑고 생생한데 1995년작이라니, 새삼 스테인드글라스는 한번 만들어지면 처음의 빛깔과 형태 그대로 천 년을 간다는 말이 실감 났다.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로 427번길 15에 위치한 부산 남천성당. 의자 위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떨어지고 있다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로 427번길 15에 위치한 부산 남천성당 ⓒfrice

머무는 내내 따라붙은 건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앞에서 기도하고 사색하고 젖어들었을까. 하릴없이 겸허해지는 모든 순간이 여기에 녹아있다 생각하니 경건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작가에게 묻고 싶었다. 유리를 자르고 달구고 조각조각 맞춰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느냐고.

나오는 길에는 맨 뒷자리에 앉아 기도를 했다. 사실 기도라기보다는 소원을 비는 쪽에 더 가까웠지만, 평소 들춰보지 않던 이야기들이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왔다. 어쩌면 종교란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어떤 초월적 순간이 아닐까, 불현듯 그런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빛은 여전히 창문 아래로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인천, 강화 동검도 채플

마지막 목적지는 강화도 남동쪽의 작은 섬 동검도였다. 면적 1.6㎢에 불과한 그곳에 조광호 신부의 또 다른 작품이 있다고 했다. 마음이 춥던 유학 시절, 알프스의 어느 작은 채플에서 얻었던 위로가 지어올린 곳.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7평짜리 영혼의 쉼터.

인천 강화군 길상면 동검길 114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
인천 강화군 길상면 동검길 114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 ⓒfrice

인천 강화군 길상면 동검길 114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 ⓒfrice

갯벌을 지나 도착한 예배당은 ‘주인 없는 집’이라는 소개말답게 텅 비어 있었다. 이따금 트럭이며 자동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도로 옆쪽이었다. 벽면과 천장을 가로지르는 십자가만이 이곳이 기도하고 명상하는 곳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양 문에 우주가 빼곡하다
양 문에 우주가 빼곡하다 ⓒfrice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당이라는 이곳은 성인 다섯 명쯤 누우면 꽉 찰 만큼 좁았다. 그렇지만 정면 가득한 통창으로 갯벌이 훤히 내다보였고, 출입문에는 칸칸이 우주가 그려져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작지만 그 이면은 훨씬 넓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온 공간이 외치는 듯했다. 무엇보다 벽면마다 자리 잡은 스테인드글라스. 해가 뜨고 질 때마다 매끈한 삼각형과 길쭉한 사각형과 늘어진 오각형을 따라 충만하게 물들 모습이 눈에 선했다.

강화도의 자연이 창 밖으로 보인다
실내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창 밖 예수십자가 상과 나란히 우뚝 서있다
ⓒfrice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쉽게도 구름 낀 날이었다. 빛이 들지 않는 스테인드글라스는 늘 환하게 웃던 사람이 미소를 지우고 보여주는 민낯 같았다. 음악이라면 무대 위에서 홀로 주목받는 독주가 아니라 다양한 악기들이 모여 이루는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빛의 예술이라는 건 빛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유리의 맨얼굴로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까? 살펴본 적 없던 물음표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름다움과 실용성 사이, 우리가 몰랐던 스테인드 글라스

인간은 아름다움에 접근함으로써 본래의 인간이 된다고 했다.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지만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던 스테인드글라스를 마주하면서 그 문장을 자주 더듬어 보았다.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 예술이라면 스테인드글라스는 가장 순수한 예술이었다. 그 앞에 서는 건 광활한 자연 앞에 서는 순간 같았다. 저항할 힘조차 없이 압도되는 것, 잠시 할 말을 잊게 되는 것. 바깥에서 스며드는 빛에 사로잡혀 있자면 안쪽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인간에게 빛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대체 무엇이 담겨있기에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걸까 생각하기를 여러 번.

빛을 통과시킨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의 아름다운 모습
ⓒfrice

그렇게 말랑한 순간들 사이로 실용적인 선택지가 불쑥 튀어나왔다. 혁신적일 것, 아름다울 것, 기능을 이해하기 쉬울 것, 오래 지속될 것, 환경친화적일 것, 최소한의 디자인으로만 이루어질 것.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 디터 람스가 일찍이 세운 ‘좋은 디자인의 원칙’이 거기에 녹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쓸모를 따지지 않는 작품에서 존재 이유가 확실한 제품으로 얼굴빛을 바꿨다. 요청하는 이 없이도 자라나는 이야기에서 들어주는 이가 있기에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되었다. 아름다움과 실용성이라는 관점을 쥐고 떠났으나 그런 분류 기준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품은 가능성을 너무 오래 몰라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빈티지 소품이나 상업 공간 속 장식 요소 등으로 점차 친숙해지고 있지만 그것이 스쳐가는 트렌드인지 본질적인 확장인지는 알 수 없는 요즘, 이 영롱한 색유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새로운 물꼬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이유다. 심미적인 아름다움과 효율적인 실용성이야말로 각자의 자리에서 인류를 구원해 온 요소니까. 물론 이건 아주 개인적인 시선의 끝, 그 앞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무엇을 보게 될지 궁금해진다.

나는 상업예술을 긍정한다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쓸 유리를 고르는 박진영 디자이너
진영글라스의 스테인드글라스 아트워크

둥근 스테인드글라스를 <라이언킹>의 갓 태어난 아기 사자처럼 번쩍 드니, 비스듬히 기울어진 색유리에 햇볕이 쏟아진다. 울퉁불퉁한 판유리에서 신비로운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한낮의 햇살이 빳빳한 코튼 셔츠 위에 드리웠다. 셔츠에 비친 색이 알록달록 곱다. 독특한 질감을 지닌 유리를 골라 선과 경계를 만드는 사람. 유리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는 사람.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를 만나러 서울 합정동 유리공방을 방문했다.


스테인드 글라스 디자이너 박진영
ⓒfrice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진영글라스 @jyglass 대표 박진영입니다. 서울 합정동에서 5인조 유리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요사업은 색유리를 잘라 붙이는 스테인드글라스 외주요청작업인데요. 저는 제작일정조정과 도면설계를 담당합니다. 개인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의 대중화에 관심이 많아요. 최근 종교건축시설 뿐만 아니라 상업공간에서 제작의뢰가 늘어서 기쁜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스테인드글라스가 요즘 국내 레스토랑이나 패션브랜드 쇼룸에서 대유행입니다.

최근 상업공간을 운영하는 분들이 공간 디테일에 완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건축/실내 인테리어 투자도 늘어나고 있어요.

패션 브랜드 새터에 납품될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제작중이다
스테인드글라스 설계도면에 맞춰 유리를 자르고 땜질을 진행한다
ⓒfrice

지금 작업은 어떤 의뢰인가요?

가로 3m, 세로 1m 사이즈의 창문입니다. 패션 브랜드 ‘새터SATUR’가 의뢰했어요. 꽃병이나 아트포스터가 진열된 성수동 쇼룸에 설치되는데요. 창이 크게 난 건물이라 작품 스케일도 웅장합니다(웃음) 햇볕이 초록 유리와 노란 유리를 통과하면 실내에 빛이 은은하게 퍼질 텐데, 볕이 워낙 잘 드는 곳이라 설치를 기대하고 있어요.

클라이언트마다 요구하는 게 다를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어떤가요?

개인적인 의견이라 조심스럽지만, 이전에는 해외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하는데 그쳤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내가 이번 업장을 A브랜드처럼 만들고 싶으니까. 설치작품을 A와 비슷하게 하자.”라는 식입니다.

지금은 “내가 A현장을 B라는 콘셉트를 담아 디자인하고 싶으니까 스테인드글라스는 C기법을 쓰자.”라는 구체적인 의견이 나와요.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수행하는 메이커 입장에선 반가운 변화입니다. 창의적인 디자인을 구상하는 게 수월해졌어요.

박진영 디자이너는 제작과정에서 '도안설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박진영 디자이너는 제작과정에서 ‘도안설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frice 

구체적인 디자인 프로세스가 궁금하네요.

공방마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저는 도안설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0순위 작업이죠.

1단계는 백지에 선을 그려요. 어떤 유리를 어떤 크기로 자를지 미리 결정하는 작업이죠. 15년 동안 수 천장의 도면을 직접 그렸습니다. 많이 그릴 땐 1년에 200장 쯤 그렸네요. 같은 시안을 규모만 다르게 해서 그리기도 하는데, 틈날때 마다 계속 도안을 짜는 편입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한국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하면, 의뢰주가 완성을 재촉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작자 입장에서 납품이 불가능할 정도로 급박한 시한이 주어지거든요.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만(웃음) 덕분에 노하우가 생기는 건 사실입니다.

‘시간 절약’과 ‘퀄리티 준수는 서로 대립하는 가치잖아요. 음식에 비유하면 저의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은 냉동음식이죠. 적합한 때를 골라 해동시켜 요리하는 셈일텐데요. 미리 디자인에 신경 쓰면 두 가지를 어떻게든 잡을 수 있어요.

도안설계는 드로잉과 그래픽 프로그램 작업을 병행하며 완성시킨다.
도안설계는 드로잉과 그래픽 프로그램 작업을 병행하며 완성시킨다. ⓒfrice

가장 중요한 작업은 무엇입니까?

도안설계가 50%. 유리를 자르고 붙이는 작업이 나머지 40%. 설치가 10%를 차지합니다. 이건 업체마다 다를 겁니다.

설계가 중요한 이유는 작업특성 때문이에요. 유리는 자르는 순간 다시 되돌릴 수 없잖아요. 이유 없이 잘리는 유리는 단 하나도 없어야 해요. 도안에 따른 사전설계는 절대적입니다. 제가 색유리 공예를 견습으로 도울 때만 해도 아무 생각 없었어요. ‘되는 대로 그냥’ 했죠. 선도 마구잡이로 썼었죠.(웃음)

지금은 선을 쓸 때 머릿속에 구상이 이미 그려져 있어요. 작품 구상을 각오하고 백지를 보면, 희미한 점선 같은 게 보이는데요. 그걸 따라 그리는 느낌이죠. 교차한 선이 도형이 되고, 그것이 모여 스테인드글라스 특유의 입체적인 회화를 이룹니다. 그리고 도형 안에 어떤 유리를 써서 연출할지 결정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임무죠.


박진영 디자이너는 가업을 물려받았다.
박진영 디자이너는 가업을 물려받았다. ⓒfrice

어머니 박옥경님은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1.5세대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디자이너님과 같은 공방에서 근무하는 동료이기도 하죠.

사실 스테인드글라스는 비주얼 자체가 사람들을 매료시킵니다. 입문하기 좋은 공예 콘텐츠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영향인지 사람들은 제가 어머니의 유산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이자 한국 1.5세대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자인 박옥경 작가에게 유리 디자인을 배웠다
어머니이자 한국 1.5세대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자인 박옥경 작가에게 유리 디자인을 배웠다. ⓒfrice

가업은 언제 물려받기로 결심했나요?

대학을 다녔던 2010년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때만 해도 건설경기가 좋았어요. 2010년대 전후로 가파르게 꺾였는데 특히 종교건축의 타격이 컸어요. 시공이 줄어드니 건설시공사와 나란히 움직이는 스테인드글라스같은 인테리어 사업은 씨가 마르는 거죠. 당시 업체가 10곳이 있으면 8곳이 사라졌습니다. 불황을 견딜 수 있는 자금력을 갖고 있거나, 사업 모델을 전면 재검토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신비로운 색감을 지닌 색유리판
신비로운 색감을 지닌 색유리판 ⓒfrice

우리 공방도 위기였어요. 하필 유리를 많이 수입해둔 상태였는데 쓸 일이 없으니 몽땅 악성재고가 됐습니다. 빚은 가파르게 늘었고 직원도 내보내야 했어요. 결국 유리공방과 어머니와 나. 셋밖에 안 남았어요. 지금은 웃으며 회상하지만, 분명 스테인드글라스 메이커 모두가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작품명 Together. 2019년도 작품으로 수강생과 첫 전시전을 연 기념으로 제작했다. 공방에서 서로 협업하는 모습을 숲속 요정에 빗댔다.
작품명 Together. 2019년도 작품으로 수강생과 첫 전시전을 연 기념으로 제작했다. 공방에서 서로 협업하는 모습을 숲속 요정에 빗댔다. ⓒfrice

부활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흩어진 동료부터 다시 모았어요. 그래서 ‘클래스 운영’에 힘썼어요. 수강생을 모아 그들에게 색유리 자르기나 선긋기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공예씬이 넓어졌으니 상황이 좀 낫지만, 당시엔 이 일을 맡을 사람 자체가 적었어요. 기본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 교육은 도제식 전수죠. 예술대학에 전공학과가 생긴 건 최근의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공예디자인에서 동료를 모으는 건 단순한 인력난이 아니라, 업계의 근본적인 문제였어요. 크루로 영입해 손발을 맞출 수준의 전문가를 만나려면, 제 생각에 교육 이외의 답은 없었습니다.

초기엔 당시 사장님이셨던 어머니와 의견차가 엇갈렸습니다. 기존 업무인 건축현장 창유리 제작에 시간을 더 투자하길 바라시는 거죠. 외주제작집중이 재무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인데요. 더 멀리 내다보면 고생길이 훤했습니다. 업무를 따내도 결국 인력난에 허덕인다며 반대했죠.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외주의뢰를 무리해서 받느니, 교육사업과 크루육성에 투자하자고 설득했습니다.

2023년 상반기 진영글라스 소속 크루
2023년 상반기 진영글라스 소속 크루. ⓒfrice

클래스 운영하다 보면 재능 있는 사람은 확실히 눈에 띕니다. 유리공예를 직업으로 삼아도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요. 같이 일하자고요.(웃음) 지금은 5~6인조 크루로 활동하는데요. 개인적으로 5인 팀플레이가 가장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적합한 인력 구성이라 봅니다.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면 다섯 명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요?

‘개인의 고유한 재능’입니다. 역설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요. 예컨대 제가 가장 신뢰하는 협업 파트너인 남한울 작가는 공방교육사업의 첫 수강생이었습니다. 남 작가는 원래 회화를 전공했어요. 색유리 앞에서 발휘하는 상상력이 뛰어납니다. 평면을 입체로 뒤트는 솜씨도 대단하죠. 그래서 공방의 3D 공예품 디자인 생산은 남 작가의 덕을 크게 봅니다.

남한울 작가가 디자인 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남 작가는 식물의 조형을 주제로 다양한 공예 디자인 MD를 선보이고 있다
남한울 작가가 디자인 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남 작가는 식물의 조형을 주제로 다양한 공예 디자인 MD를 선보이고 있다.  ⓒfrice

저희 공방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스테인드글라스 교육사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창의력이나 미적 판단이 중요한 직업을 갖고 계시다면 경험 삼아 원데이 클래스를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재밌으니까 일단 해보셨으면 해요. 특히 공예를 직접 배우면서 터득하는 디자인 의식이나 미적 영감은 엄청나거든요.

도려낸 유리에 동테이프를 감는 모습. 색유리의 투명한 물성이 인상적이다
도려낸 유리에 동테이프를 감는 모습. 색유리의 투명한 물성이 인상적이다. ⓒfrice

오직 스테인드글라스에서만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무엇입니까?

빛과 색입니다.

특히 창을 투과한 빛이 간직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걸 온전히 전하는 예술은 스테인드글라스뿐이라 생각해요. 대부분의 예술작품이 빛 때문에 상해요. 아크릴도 시트지도 강한 빛에 노출되면 5년을 넘기기 힘든데요. 반면 색유리는 빛을 온전히 수용하면서도 사물의 속성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카멜커피 12호점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창. 전국매장위치를 보물지도로 표현했다. 클라이언트가 제공한 아트워크를 반영한 디자인 사례
카멜커피 12호점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창. 전국매장위치를 보물지도로 표현했다. 클라이언트가 제공한 아트워크를 반영한 디자인 사례. ⓒ진영글라스 

여기에 ‘설치’라는 변수가 아름다움을 더해요. 다른 유리공예는 그릇이나 컵처럼 생활소품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작품을 사용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스테인드글라스는 보통 건축과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로 기능하니까 본질적으로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실내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편이거든요.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자체가 인테리어 욕구를 다 해소시키네요.

합정동 공방에 전시된 다양한 디자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합정동 공방에 전시된 다양한 디자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frice

카타르시스일까요?

작품을 공방 바깥으로 옮기는 건 늘 고생스러워요. 그래도 예정된 장소에 설치를 끝내면 쾌감이 쏟아집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갤러리에 전시되는 것보다 건축물의 창문으로 기능했을 때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하늘 아래 똑같은 작품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재밌습니다. 작품 A와 B를 나란히 놨을 때 두 작품의 도형배치가 비슷한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색유리 배치나 세척 여부를 따지면 디테일이 달라요. 그래서 작품마다 고유한 가치를 지녀요. 타인이 조형적인 디자인을 카피할 순 있어도 창작자의 에센스를 훔칠 순 없죠.

디자이너로서 끝까지 지키고 싶은 신념 내지는 소신이 듣고 싶어집니다.

「상업 예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한다」 이 생각을 지키고 싶어요.

종교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외한 일반 건축 스테인드글라스 공예는 본질적으로 순수예술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일단 타인이 얽혀요. 건물에 들어갈 창유리만 해도 그렇죠. 건축가, 건축주, 인테리어 시공자, 디자이너 등 여러 사람이 얽힙니다. 작품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의 미적 판단이 일치했을 때, 작품이 제 자리에 걸리는 건데요. 다른 예술 분야를 살펴도 이런 경우가 드물어요. 건축과 접목시킨 인테리어 아트의 특징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의 다양한 디자인 툴
ⓒfrice

상업적인 의도를 지닌 작품에 디자이너로서의 소신을 발휘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클라이언트가 메이커가 추구했던 공통의 예술가치가 이뤄진다는 점이죠. 작품의뢰와 기획초안은 클라이언트의 몫이지만, 그들에게 디자인과 실체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 크루의 몫입니다. 작가로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충분히 반영된다고 봐요. 작업 한복판에 있으면 오히려 내가 추구하는 예술성이 이루어지는 셈이죠.

스테인드글라스는 이제 교회나 고급 아파트에서 감상하는 값비싼 사치품이 아닙니다. 특히 한국에서 점점 대중화되고 있음을 실감해요. 취향이나 개성을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하려는 사람이 많이 늘었습니다. 저희는 이 흐름을 기쁘게 생각하고 부지런히 작업하려 합니다. 예쁜 거 많이 만들고,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의 하루를 살피며 공예와 디자인의 차이를 생각해 봅니다. 편견이 깨졌어요. 여태껏 스테인드글라스가 순수 예술이라 생각했거든요. 듣고 보니 설치 환경에 따른 제약이 많습니다.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힘이 필요해 보였어요.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작업하되, 자신을 잃지 않고 최선의 작업물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의 창작자들을 응원합니다!

선입견을 디자인하는 사람들

마계인천 페스티벌 현장에서 발견한 아트워크 스티커

<1부에서 이어집니다>

인천 로컬씬의 각개전투

인천 구도심에서 마계인천 페스티벌이 열리던 2023년 9월 23일. 인근 관광명소인 자유공원에서는 인천독서대전이 열렸다. 독서문화를 아끼는 사람들이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동시간대 송도신도시에서는 버튜버를 주제로 국내 최초 메타버스 축제가 열렸다. 수만 명이 몰렸다. 인터넷 방송에서 파생된 새로운 서브컬처가 양지로 발돋움한 것이다.

인천은 로컬 브랜드가 정체성을 만들 자원이 지역에 고르게 흩어져 있다. 구도심의 크리에이터는 자연환경과 근대유산을 활용하며, 신도시를 선호하는 크리에이터는 첨단기술이나 세련된 비주얼을 활용한다. 창작자들이 관공서에서 주도하는 활동에 의존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느슨하게 서로를 알고 지내다가 가끔 뜻이 맞을 때 일을 펼친다. 마계인천 페스티벌은 지역에서 흔히 벌어지는 각개전투중 하나였다.

왼쪽부터 인천맥주 박지훈 대표 이창길 개항마을 대표, 양윤정 로컬 프로젝트 매니저
왼쪽부터 인천맥주 박지훈 대표 이창길 개항마을 대표, 양윤정 로컬 프로젝트 매니저.  ⓒfrice


플리마켓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빈티지숍 오너들
플리마켓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빈티지숍 오너들. ⓒfrice

행사는 한낮과 한밤으로 갈렸습니다. 어떤 행사가 기억에 남나요?

지훈 데이타임은 개항백화의 드렁큰 빈티지가 좋았어요. 인천의 빈티지 패션숍 운영자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손님 반응이 좋았는데 셀러 반응도 좋았네요. 서로 교류가 된다는 거죠. 아쉬운 건 라이트하우스에서 벌어진 공연 이벤트였어요. 상대적으로 저희 손길이 덜 미쳤습니다

라이트하우스 앞마당에서 공연을 펼치는 뮤지션
ⓒfrice

주거공간과 밀접한 행사장은 이웃과의 마찰이 불가피해보였습니다.
축제에 부정적인 이웃과의 갈등은 어떠셨습니까?


윤정 반경 200m를 통제하는 저녁시간대 지역축제를 견학 갔던 적이 있어요. 차량 통제나 참가자의 식사장소배치까지 신경썼는데도 민원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마계인천 페스티벌에서도 비슷한 민원을 예측하긴 했어요.

다만 예상보다 빠른 오후 시간대, 디제잉이 아닌 버스킹 공연으로 나올지 몰랐지만요. 다행히도 축제 경험이 많았던 행사 관계자들이 직접 민원인을 찾아가 대처에 나섰습니다. 행사장 인근 주택 대문을 하나 하나 두드리면서 양해를 구하고 설득을 하셨죠.

지역 내 이웃에게 100%에게 환영받는 페스티벌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니까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차근차근 나아가면 되니까요.

인천 개항로 일대에 붙어있던 스티커
ⓒfrice

나름대로 잣대를 만들어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나가는 것도 디자인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은 인천 로컬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중이죠.

지훈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우선 로컬을 주제로 한 결과물은 한국스러워야 해요. 그런 인식이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효과적인 방향을 모색할지 생각 해보는 편입니다

일단 한국스러운 결과물 자체가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

역사나 전통 같은 주제도 담겨야 해요. 한국스러움에 매달리면 팬시한 매력이 사라져요. 대중과의 거리도 멀어져요. 그렇다고 세련된 걸 추구하면 지역색이 흐려지거나 깊이가 얕아지거나 본래 취지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지죠. 여러가지 제약이 많은 상태에서 디자인을 풀어나가야 하는 겁니다.

저는 맥주사업을 하니까. 사업적으로 여러 방향으로 실험해보며 조금씩 방향성을 잡고 있어요. ‘인천 맥주란 무엇인가?’ ‘우리동네 인천을 상징할 만한 제품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을 이어가요.

고민을 해결한 제 결론은 ‘단지 비주얼 하나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는 점이었어요.

비주얼만큼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지훈 행동입니다. ‘인천맥주라는 사업체를 통해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행동으로 답하는 거죠. 그래서 시각디자인보다는 브랜드의 활동 자체를 디자인으로 보고 있어요.

비주얼도 중요한 판단이 요구됩니다. 허나 그보다 중요한 건 “왜 저걸 하는지, 어떻게 해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핵심은 제가 지역을 무대로 ‘사업’을 진행한다는 점일텐데요. 그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거기서 생긴 방향성을 효과적으로 발현하는 거죠.

창길 사실 저희는 로컬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부터, 이렇게 살았거든요. 행동이 먼저였고 말이 나중에 붙은 거예요. 사는 동네를 좋아하고, 동네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사람인 거죠. 저희가 자연이라 여기는 행동을 할 따름입니다.

저는 ‘덕질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창길 좋은 것을 구분하고 평가하는 기준에 대한 이야기일 텐데요. 먼저 KS마크의 시대가 있었죠. 국가가 산업표준을 만들고, 그 표준을 준수한 기업을 신뢰하는 시대였어요.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를 좋게 인식했습니다.

한편 큐레이션의 시대가 왔습니다. 획일적인 문화가 싫은 사람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요. 츠타야 서점이 대표적일 텐데요. 예술가나 디자이너가 주도한 큐레이션이죠. 그런 사람들의 선별기준은 무언가를 소비하는 법을 새롭게 알려줬습니다. 가구, 조명, 색, 문화가 떠오르네요. 큐레이션은 나쁜 게 아니지만, 맹목적으로 따라 한다면 문제라 생각합니다.

큐레이션의 시대는 남의 기준을 따른 거 같아요. 이제 자기자신의 기준으로 사는 시대로 넘어가지 않을까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덕질의 시대’입니다. 다른 사람을 굳이 따라 하지 않는 시대. 싸이, 노홍철 같은 사람들이 주목받는 시대로 넘어가는 거죠.

마계인천페스티벌 스팟인 개항로통닭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
ⓒfrice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인천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윤정 겉으로는 인천 싫다는데 속으로는 아끼는 점? 저는 서울 사람이고(웃음) 제가 사귄 인천사람들 기준으로만 말씀드리자면, 인천사람들은 인천을 많이 좋아한다고 느껴요. 싫은 건 싫은 거지만 좋은 것은 좋은 대로 아낀다는 인상?

저는 마계인천이라는 밈이 신기하거든요. 내세울 수 있는 경험이 되기도 하고. 나를 표현하는 정체성이 되는 단어가 됐어요.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지역사회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자 경험이기 때문에 인천에 바이브vibe라는 것이 생겨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모순된 것을 있는 그대로 품으려는 태도일까요? 해학적인 멋으로 느껴집니다.

윤정 ‘입덕부정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사실 사랑에 빠졌는데 그 마음을 부정하는 단계요. 사실 지역을 좋아하지만, 그걸 부정하면서 드러나는 태도인 거죠.

빈티지 팝업 스토어가 열린 개항백화에서 샐러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빈티지 팝업 스토어가 열린 개항백화의 모습
ⓒfrice

창길 최근 인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리저리 해체됐다 다시 조립되는 느낌입니다. 앞선 세대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점인데요. 요즘 20대 친구들 만나보면 인천이 좋대요. 자랑스러운 게 많고 나름 바이브vibe가 있다는 거죠.

‘공부 잘해서 서울로 대학가야지’ ‘회사도 서울에서 번듯한 데 다녀야지’. 인천에서 자란 사람이 어른에게 줄곧 듣던 말일텐데요. 인천을 떠나야 할 곳처럼 느끼다가도 어느샌가 다시 유턴해서 돌아와요. 방송가에서는 인천 출신 인물이 자부심 갖고 이것저것 소개하고 있죠.

그리고 인천사람들은 메시지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별 거 아니라는 태도로 말한대요. 우리는 정말 별거 아니라고 느껴서 그렇게 말했는데, 다루는 대화주제나 대화 속에 담긴 말의 가치는 되게 높은 것. 독특한 성격 중 하나죠.

개항백화 옥상의 푸드존에서 식사를 하는 관람객들
ⓒfrice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천의 아름다움’이 듣고 싶어요.

지훈 저는 노을이요. 지역의 상징적인 비주얼이기도 하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에요. 낙조를 즐길 공간이 적고, 이 풍경을 즐길 장소는 아는 사람들만 알아요. 바로 떠오르는 아름다움은 아닙니다. 서해바다는 항만/군사시설이 많아서 민간 개방이 안된 곳도 많은데, 점점 제한이 풀리고 있죠. 앞으로는 노을을 감상할 곳이 더 늘어날 것 같아요.

윤정 누군가에게 추억이 되는 공간. 그리고 그런 공간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저는 서울사람인데 학창시절에 다녔던 식당이 거의 남아있질 않아요. 살아남은 데가 없어요. 같은 공간에 가더라도 낯설다는 감정을 느끼거든요.

그리고 인천사람들은 메시지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별 거 아니라는 태도로 말한대요. 우리는 정말 별거 아니라고 느껴서 그렇게 말했는데, 다루는 대화주제나 대화 속에 담긴 말의 가치는 되게 높은 것. 독특한 성격 중 하나죠.

인천 구도심을 대표하는 신포시장
ⓒfrice

윤정 인천은 달라요. 특히 원도심 쪽에 거주하는 분들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요소가 아직 많이 남아있어요. 제가 처음으로 인천인에게 부러움을 느꼈던 게 신포시장 안 노포 칼국수집에 갔을 때였어요.

프로젝트 미팅이었는데 저 말고 다른 분들은 가게에 얽힌 추억이 있으시더라고요. 저는 그런 추억이 깃든 공간이 아름답습니다.

창길 선입견. 인천을 향한 선입견이 많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아요. 저는 이 가능성 자체가 아름다움이라 봐요.

사실 2023년 기준 전국광역시 중에 젊은 사람이 제일 많이 사는 곳은 인천입니다. 편견과 달리 실제 범죄율이 무척 낮은 곳도 인천. 육해공 교통 인프라가 전국톱클래스인 곳도 인천. 인구가 한 번도 줄어든 적 없는 곳도 인천. 부산보다 GDP가 높은 곳도 인천. 편견과 다른 반전매력이 이렇게나 많은 곳이 인천인데 아무도 몰라요.

공부 못하고, 싸움 많이 하고, 범죄의 온상인 동네. 이것은 인천을 향한 수많은 선입견들이 모인 걸텐데. 선입견은 사실이 아니잖아요. 거꾸로 보면 선입견은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사실이 아니니까 당당한 거예요.

사람들이 이제 인천이라는 지역의 매력을 조금씩 알기 시작한 거 같아요. 갯벌에서 보물을 찾는데 여태까지 엉뚱한 곳을 많이 팠던 셈이에요. 사실 가까이에 인천 같은 보물이 있었고, 이제 지역의 매력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 거 같습니다. 이게 다 건져지면 보물찾기 게임이 끝나는 거죠.

인천을 담은 엽서. 신포동 로컬스토어 포디움126에서 발견
인천을 담은 엽서. 신포동 로컬스토어 포디움126에서 발견. ⓒ인더로컬

이런 주관적인 진술이 궁금했어요.
여러분은 각자의 아름다움 속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는 중인 셈이죠.

지훈 하나만 덧붙이자면, 저는 낙조와 공장과 아파트가 혼재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요. 말하자면 인천이라는 도시는 자연과 근대가 공존하는 거죠. 특히 근대적 산업시설은 아직도 여전히 많이 남아있어요.

최근에는 구도심 재개발 단지에 아파트가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오래된 공장과 새로 지은 아파트는 사실 공존하기 굉장히 어렵거든요. 둘 중 하나가 없어져야만 개발이 되는데, 공존하기 힘든 것들이 혼재한다는 것. 저는 그 사실 자체가 아름다워요.

여러분은 오랜 시간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핵심은 지속가능성일텐데요. 경쟁력을 갖추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현실성과 지속성이요. 로컬이란 수식어에 갇히면 부족해지는 자원입니다. 저는 맥주를 만들어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니 사업적으로만 말씀드리자면, 창작자는 무엇보다도 돈을 벌어야 하거든요. 수익을 내야 지속성이 생기고, 지속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죠.

지역을 위한다는 명분에 비즈니스를 욱여넣는다는 인상이 드는 경우도 있었어요. 물론 잘 버무려서 사업을 만들면 좋지만. 공익추구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니 지속성을 발생시키지 못하고 짧은 시간 안에 사업을 접게 되는 걸 종종 보는 거 같아요. 로컬씬 안에서도 아쉬운 일이거든요. 누군가가 쌓아온 것이 없어지면 모두가 발전을 못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람객들
ⓒfrice

디자인도 그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에 뛰어 들어서 만든 디자인은 리스크가 있다는 거죠. 지역을 거점으로 사업을 하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좀 더 강한 영향을 주고받아요.

RPG게임에 비유하면 서로 버프/디버프를 거는 거죠. ‘마계인천’ 이미지로 무언가를 했다면, 그게 로컬에 영향을 주고. 다른 팀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한다면, 나도 거기에 영향을 받겠죠.

일방적으로 타인의 버프만 받을 순 없어요. 나 또한 로컬씬에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야 하죠. 그렇기 때문에 현실성과 지속성은 내가 타인에게 버프를 주는 힘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창길 디자인 인플레이션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최근에 어디 가서 본 것 중에 안 예쁜 게 없어요. 다 예쁘고, 다 멋지니까 오히려 감동이 없는 것 같아요. 집에 쌓여있는 수많은 에코백과 텀블러를 생각해 보세요.

그 이유는 앞서 말했던 큐레이션 때문이라 생각해요. 각 분야 전문가, 디자이너, 아티스트…이들이 큐레이션을 잘 만들어 놓잖아요. 큐레이션을 이제 인스타그램, 유튜브, 핀터레스트를 통해서도 바로 확인 가능합니다. 큐레이션의 큐레이션까지 가요.

개항백화에서 판매했던 다양한 인천 주제 아트워크 디자인 제품들
ⓒfrice

거르고 걸러, 결국 예쁘고 깔끔한 게 남겠지만. 좋은 감흥은 없군요.

창길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디자인은 ‘자기가 담긴 디자인’이라 생각해요. “철저하게 나인 것. 나 스스로 떠올린 걸 내 방식대로 표현해 타인에게 설명가능한 디자인”이여야 한다는 거죠. 가끔 제게 말도 안되는 감동을 선사하는 공간들이 있어요.

어떤 곳인가요?

창길 예컨대 주인이 자기 마음대로하는 술집이요. 사장님과 음식과 가게 인테리어가 일치되는 곳. 가끔 그런 데서 시간 보내면 웃음이 팍팍 나요. 식당에 있는 모든 게 이해돼요. ‘대체 왜 저걸 저렇게 해놨는지’ 단박에 와닿는 거죠.

이 대표님은 사람-콘텐츠-공간의 조화에서 감동을 느끼는 셈이네요.

우리가 예쁜 걸 너무 많이 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철저하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서 나타나는 무언가가 있거든요 분명.

요즘 들어 브랜딩이 중요하다고 하죠. 브랜딩을 위한 브랜딩도 나타나고 있어요. 이런 경우는 티가 팍팍 난다는 거예요. 예컨대 집은 맥시멀리스트로 꾸며놓고 사는데, 카페 사업한다고 미니멀 디자인을 구현하는 경우가 있어요. 애써 꾸민 티가 나요.

마계인천페스티벌 관람객들
ⓒfrice

제2회 페스티벌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소감이 궁금합니다.

윤정 관람객이 얼마나 올지 감히 예측하기 힘들었어요. 행사장 다섯 곳에 사람들이 분산되니까요. 다행히 공간마다 축제 분위기를 낼 만큼 사람들이 모여서 놀다 가셨어요. 그런 점에서 차기 페스티벌이 더 기대됩니다.

공간 섭외가 늘고 그곳에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는 플레이어가 계속 붙는다면, 훨씬 더 커질 수가 있는 페스티벌이라는 걸 확인했어요. 미래에 펼칠 그림이 잘 그려져서 좋았습니다.

창길 실무자 셋이서 추진한 행사였기에 계획이나 아이디어를 모두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서 놓치는 부분도 있어요.

시작은 다섯 곳이었지만,  축제가 열리는 거리 자체가 디자인화 됐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요. 개항로 일대 자체가 축제가 되는 거죠. 축제 손님뿐만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까지 편하게 나와서 구경하다 아이스크림 하나 드시고 집으로 돌아갈 정도로 커진다면, 여러 가지 민원은 구조적으로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항백화에서 열린 식물 팝업 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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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이창길 대표님이 말한 ‘개항로의 디자인화’는 길 위에 있는 업장이나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콘텐츠를 갖고 축제에 참여하는 모습일 거예요. 꼭 축제 기획자가 준비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요.

예컨대 진7080라이브펍에서 저희가 기획한 음악공연행사를 내년에도 무사히 마쳐요. 그것도 좋지만, 저희가 아니라 가라오케 사장님의 개성이 묻어나는 이벤트가 들어가기도 하는 거죠. 올해 수익향상과 모객을 가능케 한 예시사례를 보여드렸습니다. 다음엔 뭔가 새로운 게 나오지 않을까요?

창길 올해 아쉬웠던 보사노바 공연은 내년에 보사노바에 미친 사람이 콘텐츠를 지휘할 수도 있잖아요. 새로운 플레이어가 축제에 들어오는 거죠. 이런 식으로 같이 할 사람이 늘어날수록 좋을 거 같아요. 축제 주최자는 공간 연결에 집중하는 거죠. 세부행사 기획과 집행은 플레이어가 알아서 합니다. 올해는 5곳. 언젠가 60곳. 축제 행사가 거리 곳곳에서 열리는 걸 목표로 해요.

페스티벌 이벤트가 60개! 벌어지면 장난 아닐걸요.

신해철음감회에 참여한 관람객들
신해철음감회에 참여한 관람객들 2
ⓒfrice

마계 그 자체인 것 같아요. 무질서해 보여도 뜯어보면 멋과 격이 있어요.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지훈 그 게 저희가 여태까지 해온 방식입니다!(웃음)

창길 여러분도 끼세요. 원한다면 내년에 행사 하나 만드는 건 어떠실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