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에 관여하다
노츠 어소시에이츠 디자이너 유인성 「1」
노츠 어소시에이츠 디자이너 유인성 「2」
유인성 디자이너는 한국의 소비공간을 맡아 한국문화를 녹여낸 디자인 프로젝트를 이끈다. "한국의 디자인은 무엇일까?" "한국의 디자인은 '한국적인 디자인'과 구분할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지만, 한국의 옛것과 새것을 다루는 디자이너라면 좋은 생각을 답해줄 거라 기대했다.
frice는 한국의 디자이너를 만나,
‘한국적인 디자인 vs 한국의 디자인’ 두 개념의 차이를 묻고 각자의 생각을 수집하고 있어요.
한국을 무대로 십여년 간 디자인 실무를 맡은 인성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솔직히 두 개념을 구분하는 게 어려워요!(웃음)
먼저 제 입장부터 말씀드리면, ‘한국적인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태도가 점점 더 필요할 것이라 봐요. 지금처럼 많은 정보와 이미지가 빠르게 공유되는 세상. 모든 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미래로 갈수록 말이죠. 소위 말하는 ‘전통’에 갇힐 필요는 없어요. 로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우리가 사는 집,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거기에 한국적인 생활 방식이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에서 유래한 기능과 물질의 시대를 지나, 동양의 정신적인 측면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고 봐요. 최근 보이지 않는 것을 강조하는 동양문화의 태도를 여러 문화권에서 흥미롭게 여기는데, 그런 관심이 요즘 한국으로 향하는 것 같아요. 한국은 문화적으로 다른 문화권보다 피드백이 빠르고 개방적입니다. 동양의 토착 문화를 중국과 일본만큼 폐쇄적으로 가두지 않는다면, 거기서 한국적인 디자인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요?
“한국적인 미감은 대체 무엇일까?”
Designer’s comment
<티하우스 하다(teahouse hada)>는 한.중.일 차문화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찻집이면서 작은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수업이 열리는 교실인데요. 한국적인 미감을 간직한 곳이여서 소개합니다. 세 나라의 동양적인 분위기를 공존시키면서 한국적인 요소도 비중있게 다뤄야 했어요. 공간 설계는 AREA+라는 인테리어 스튜디오에서 진행했고, 저는 프로젝트 처음부터 브랜드 개발과 디자인 파트 협업을 맡았죠. 티하우스 론칭이 끝난 지금도 디자인 업무와 사진 촬영, SNS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벌써 3년이 지났네요.
<티하우스 하다>는 말씀대로 세 나라의 분위기가 전해집니다. 그 중 ‘한국적인 미감’이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먼저 전통적인 스타일, 근대적인 스타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티하우스 하다>는 전통적인 스타일이지 않을까요?
저는 한국적인 미감을 호방한 선, 은은한 매력, 화려하지 않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 균형감, 옅지만 분명한 색채감이라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표현할 때 드러나죠. 허례허식이 없는 편인데, 공예 분야는 전반적으로 실험정신이 강한 거 같아요.
중국적인 미감은 디자인에서 볼드하고 강렬한 컬러로 나타나는 듯해요. 음과양(yin & yang)의 조화/대비를 신경 쓰는 것도 특징이네요. 일본은 정제되고 섬세한 디자인을 지향하는 것 같습니다. 선(zen,仙)을 추구하는 문화가 있었고 전통적인 미감을 옛부터 지금까지 고스란히 지켜서 내려온 영향이라 봐요.
<티하우스 하다>에서 한국적인 요소는 어떤 식으로 배치됐나요?
하얀 삼베로 감싼 가구. 한지로 만든 벽. 문으로 만든 작은 방이 있습니다. ‘여백의 미’를 바탕에 깔되, 너무 빛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소재를 활용할 것. 공간에 어울리는 은색, 색이 말갛게 반짝이는 스틸 소재 사이니지, 포장물에도 도톰한 질감과 자연스러운 색감의 종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죠.
SNS를 통해 받는 고객들의 피드백에서는 사진의 톤이라던가 무드가 분명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브랜드와 기업의 관점에서는 브랜드 이미지가 곧 정체성이고, 이것은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과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필수이기 때문인데요. 이 부분은 많이 신경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아티스트와 연중 2~3회 기획전시를 엽니다. 작가의 작업실을 직접 방문하고 작품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것을 살피는데요. 작가의 개성을 티하우스와 연결하기 위해 애쓰는 편입니다.
“한국의 뷰티 브랜드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어야 할까?”
Designer’s comment
<디어, 클레어스 (Dear, Klairs)>라는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 쇼룸입니다. 2010년부터 기초 라인의 스킨케어 제품을 전개한 뷰티 브랜드죠. ‘미드나잇 블루 드롭’이라는 제품을 알리기 위한 팝업 스페이스를 요청. 행사를 자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열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습니다.
팝업 스토어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업무가 다양해요. BI 디자인 개발부터 다양한 프로그램 콘텐츠 디자인, 그리고 층별 공간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포괄합니다. 디자이너들이 궁금해하는 건 브랜드 디자인이 경험으로 맞닿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뷰티와 한국적인 미감을 연결하는 프로젝트 사례인데요. 프라이스에서 처음 소개드립니다.
오늘 저희가 만난 작업현장은 한국적인 미감이 현대적으로 반영된 듯합니다.
구체적인 디자인 프로세스가 궁금하네요.
사실 한국적인 미감을 직접적으로 원하는 프로젝트는 많지는 않습니다. 한국적인 브랜드 요소와 철학을 이미 가지고 있는 코스메틱 브랜드나 퓨전 한식을 주력으로 하는 레스토랑, 혹은 신진작가의 작품과 디자인 상품을 판매하는 한국의 편집숍이 대표적이네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먼저 서울 강남권 신사동이라는 지역의 특수성과 현재 상황을 살펴봤어요. 주인공은 스킨 케어 제품이고, 그것이 지닌 포뮬러나 컬러의 특성을 체험 프로그램과 시각 디자인으로 녹여내면서 공간과 연결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개가 열리는 팝업이 트렌드가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디어, 클레어스>라는 브랜드가 던질 수 있고, 던져야만 하는 키 메세지를 고민했는데요. ‘도심 속의 푸르른 휴식 Blue, Comma’이라 정했고, 그에 부합할 콘텐츠와 브랜드 디자인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스킨 케어와 예술은 교집합이 있어요. ‘아름다운 것을 가꾸고 지킨다’라는 지점이 서로 닮아있기 때문에 브랜드 경험의 관점에서 일부 프로그램에 작가와의 협업도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실행여부를 결정합니다.
최근 팝업 스토어의 고객 경험 디자인은 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뷰티 브랜드를 소개하고 제품을 직접 체험하도록 다양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 염색하지 않은 광목 천, 기둥 형태의 전시 매대, 푸른 카펫이 깔린 공간에 놓인 거대한 빈백. 여러 장치가 어우러져 ‘도심 속 푸르른 휴식’이라는 경험을 디자인합니다.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행하셨나요?
키 메시지의 이미지를 ‘한국문화’에서 끌어오기로 결정했어요. 먼저 2층에 티하우스를 구성해 티코스 체험을 기획했는데요. 차 종류를 국내산으로 좁혀 하동의 녹차/홍차를 골랐어요. 다구 곁에 두고 쓸 스타일링 오브제는 한지에 푸른색 염료가 번지는 방식의 작업을 통해 만들었어요. 2층의 한국적인 티코스가 3층에는 작은 전시가 열려서 서로 맞물리는 거죠.
브랜드가 하나의 스킨케어 제품을 어떤 식으로 보여주고, 어떤 소구 포인트를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었어요. 모처럼 뷰티 브랜드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풀어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였습니다.
한국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브랜드 경험을 디자인하는 작업은 인성님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나요?
‘아, 나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 때가 있어요. 특히 이른 나이에 외국을 갔다거나, 오랜 기간 유학을 다녀온 디자이너들과 일할 때 느끼는데요. 한국적인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지, 나는 어떤 미감을 좋아하는지, 한국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이 나의 인생에서 어떤 부분에서 스며들었는지 이제서야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하는 단계인듯 해요. 여태까지 수많은 회의와 출장을 거쳤는데도 말이죠.
한국적인 미감을 다루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정의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디자인 실무를 통해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상대방에게 솔루션을 제공하는 ‘안내자 역할’, 아무리 트렌드가 빨라도 그 안에서 좋은 것을 간파하겠다는 ‘능동적인 태도’. 디자이너가 지녀야 할 중요한 역량이라 생각해요.
그렇다면 그런 디자인은 우리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리가 선택을 내려야 할 때, 균형을 잡아줍니다. 나와 맞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주는데요. 그게 결국 한 사람의 삶에 어울리는 결과를 안겨줄 가능성이 높죠.
화장품에 빗대면 이해가 빠릅니다. 솔직히 성분으로 따지면 화장품은 브랜드 별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요. 하지만 다들 패키지 조형이나 브랜드가 던지는 메시지, 화장품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죠. 그래서 공급자의 전략은 소비자가 나와 닮았다고 느끼는 브랜드의 제품을 고르게 만드는 걸 텐데요.
브랜드 디자인은 화장품처럼 선택지가 많은 제품군에서 적절한 안내를 돕습니다. 생애주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남녀노소 각자 처한 상황을 반영하면, 같은 물건을 고르더라도 선택지가 바뀝니다. 내가 능동적으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구축된 브랜드 디자인은 소비에 필요한 탐색을 쉽게 만들어요.
😈 시도가 시선을 만듭니다. 유인성 디자이너는 공간에 관여하며 아름다움을 배우고, 경험을 설계하며 깨달음을 얻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내가 스며든 자리를 바라볼 때 시작된다고, 영감은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했어요.
나에게 조금씩 스며드는 한국의 정서와 미감을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유인성 디자이너. 자신의 관점을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키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요. 공간과 경험에 관여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 ‘안내자 역할‘을 하는 디자이너의 생각들. 여러분들은 어떠셨나요?
‘한국적인 디자인은 무엇일까?’ 프라이스가 던지는 질문과 디자이너의 사려깊은 응답. #한국에서디자인을합니다
정리 프라이스
사진 한희석
장소 클레어스 서울 / 티하우스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