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를 탐색했어요. 한국에는 특유의 정취나 유행을 담은 독특한 카페가 참 많은데요. 다양한 컨셉이 어우러져 개성있는 카페로 탄생합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서 마구 뒤섞는데, 한데 모아놓고 보니 ‘마데 인 코리아’! 세상에 둘도 없는 K스러움이 등장하는거죠!🤩한국 카페 스타터팩 2부에서 만날 카페, 뻔할까요 fun할까요?😎
1. 근교 대형 카페 넓다! 높다! 크다! 답답한 도시는 뒤로! 우리는 카페로 가요~♪
날씨 좋은 주말, 도심을 벗어나 교외로 향합니다. 푸른 들판, 끝없이 펼쳐진 물결을 배경으로 넓은 주차장과 커다란 건물이 자리 잡았습니다. 1층 문을 열면 빵 냄새가 고소해요. 속이 뻥 뚫리는 높고 커다란 창문 밖 풍경도 멋져요. 1층, 2층, 3층 심지어 테라스까지 구석구석 흩어진 대형 식물도 눈에 띕니다. (이 식물 되게 비싼 거 아냐?) 카페 안팎의 풍경에 감탄하다 자리를 둘러보니 푹신한 소파존은 이미 만석이예요. 빼곡하게 줄지어 늘어선 테이블 좌석마다 말소리가 웅성웅성. 사람도 많고 차도 많은 이곳에서 느긋한 휴식은 어렵겠네요.😔 수백 명이 와도 끄떡없긴 한데! 넓은 만큼 사람이 꽉 들어차 있다니..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어요. 아니 심지어 지금 오전인데!!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이곳은 커피 맛집인가 빵 맛집인가. 유난히 빵이 맛있단 말이죠? 비싼 것 같은데 풍경이랑 음식이 꽤 괜찮아서 좋았던 기억!
🐲 완전 통창이라길래 두근두근 기대를 안고 방문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창가는커녕 벽 쪽에 기대앉아 사람들 뒤통수만 실컷 보고 왔어요. 다들 몇 시에 온 걸까요?
2. 다다익선 원조 감성카페 사장님의 섬세한 손길로 완성된 감성 아지트
수지, 호수… 물가 근처엔 꼭 카페가 있어요. 맛집도 다녀왔겠다, 일렁이는 물결이나 바라보며 소화시켜 볼까요? 삐걱거리는 목조 계단을 따라 올라갑니다. 주변에는 화분이 한가득 이예요. (K 플랜테리어의 시작이었을까요?) 이곳에서는 모든 기물이 장식품이 됩니다. 깨지거나 이가 나간 그릇, 항아리도 사장님의 애정 어린 손길이 스치고 나면 훌륭한 화분으로 새로운 쓸모가 생겨요. 창틀, 테이블, 선반 등 평평한 곳에는 사장님이 하나하나 모아온 추억이 빼곡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다다익선 원조 감성카페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메뉴에 당황할 수 있습니다. 직.접. 만드는 수제 청, 우리 차 종류만 해도 몇 가지인지! 손수 뜬 레이스 컵 받침이 받혀진 냉커피 한잔 마시면서 천천히 시간을 즐깁니다. 혹시 창가에 앉으셨나요? 가끔 얼굴로 달려드는 날벌레는 무시하세요! 우리보다 먼저 와 있었을 테니까요. 😅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부모님과 함께 누룽지 백숙 먹고 나면 꼭 들르던 호수 옆 카페가 생각나네요. 음료를 주문하면 1인 1 찜질팩을 주던 곳인데요. 어깨에 올려놓고 약초 냄새 맡으면서 푹신한 소파에 기대서 쉬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내 안에 숨겨진 아재 발견 😂
🙀 인심 좋은 시골 카페 같지만, 그렇지 않은 가격에 흠칫!
3. 힙트래디션 기와집 고즈넉한 분위기에 힙한 감성 한 스푼
전통 카페 가본 적 있으신가요? 예를 들면 서울 종로, 인사동 근처 큰 빌딩 숲속에 자리한 한옥 카페에서 한국의 전통 차 문화를 체험하는 부류의 카페들이요. 전통 카페는 인테리어부터 도구들까지 한국의 전통문화가 그대로 담겨있는 이미지였는데요, 최근 힙트래디션 트렌드의 물결을 타고 그 모습이 바뀌고 있습니다. 개인 카페가 아닌 유명한 프랜차이즈가 한옥 안에 자리 잡습니다. 외부는 고즈넉한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부는 완전히 달라요. 모던한 입식 테이블이 편리합니다. 곳곳에 놓인 특별한 좌식 테이블에서는 과거와 즐기는 음료만 다를 뿐 한옥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요.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 툇마루에 앉아 즐기는 아메리카노와 뱅 오 쇼콜라. 물론 유행하는 전통 약과도 빠질 수 없죠! 데이트하는 연인도, 모임 중이신 어머님들도, 한국이 궁금한 외국인들도 모두 어우러지는 풍경입니다.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카페 가자더니 한옥으로 들어가길래 전통차 마시자고?! 싶었거든요. 근데 엄청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였어요. 모습만 한옥이지 속은 완전히 다르더라구요. ‘한옥에 있는 카페=전통차 파는 카페다’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지던 순간이었습니다.
🐯 지방에 있는 한옥 카페들은 고즈넉함이 있는 것 같고, 서울에 있는 한옥 카페들은 도시 빌딩 숲 사이에 있는 풍경이 참 독특한 것 같아요. 한옥에 살기는 어렵지만, 카페로 새롭게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아요.
4. 무국적 카페 편견없이 고가구를 모으면 생기는 일
벽면에는 할머니 집에서 보던 자개장이 위용을 뽐냅니다. 목조 건물에 올라간 기와, 알루미늄 새시에 고방 유리 미닫이문은 옛 한국의 정취가 묻어나죠. 하지만 바닥에 깔린 페르시안 러그, 영국제 타일과 유럽풍 가구들을 만나면 잠시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 한국이야 외국이야? 카페 디자인이 진화하면서 저마다 자기의 특색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무국적 카페는 국적을 따지지 않고 선별한 고(古)가구들로 특유의 무드를 만드는데요. 카페 사장님만의 취향과 심미안을 담은 각기 다른 디자인의 가구와 소품들이 모여 새로운 국적을 만듭니다. 우리 주변에서 보였던 한국 가옥의 특징이 보이는 익숙한 풍경과 소품 속 시선이 닿는 곳곳에서 느껴지는 낯선 나라. 시간과 공간이 섞여 한국 어느 동네에 뿌리내리면, 국적은 없지만 출신은 한국인 우리끼리만 아는 ‘무국적 카페’의 탄생입니다.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자개장…갖고싶다.. 물건들 하나하나가 전부 독특하고 마음에 들었어요!
🤩 서양 문물이 들어오던 시기의 유럽 느낌을 넘어서 요즘은 동남아, 남미 등 여러 문화가 한국적인 오브제와 섞여서 보이는 것 같아요. 글로벌 시대의 한국 모습이 이런 것 아닐까요?
😈 한국인에게 섞는다는 것은 blend(a+b=c)보단 mix(a+b=a & b)의 개념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서로 다른 것들이지만 그 이질적임이 조화되면 새로운 즐거움을 전달하죠. 우리 주변 카페도 잘 살펴보니 이러한 한국인의 특징이 녹아있었어요. 카페에도 스며든 한국인의 섞기 신공! 오늘도 질릴 틈 없는 K 카페! 과연 얼마나 더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렇게 몇 개의 단어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당시를 떠올리고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둘 모으다 보면 어떤 문화나 상황에 대한 공통된 이미지로 나타나게 되고, 스타터 팩이라는 인터넷 밈으로 탄생하게 되는데요! 프라이스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의 카페부터 요즘의 트렌드까지, 한국의 카페 인테리어 감성을 수집했어요.
프라이스가 구성한 시대를 휩쓴 K 카페 스타터 팩! 지금 시작합니다. 😎
1. 생과일 전문 나야 캔모아♡ ブl억 ㄴrLI··¿ ュㄸĦ ュ 감성…★
최초의 생과일 전문점 캔모아! 프로방스풍 인테리어에 독특한 기물 (흔들의자, 그네의자 등..)을 들여놓고 당시 학생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생크림을 얹은 식빵 토스트를 무한으로 제공했던 추억의 장소입니다. 캔모아를 표방한 다양한 생과일 전문점이 생기기도 했어요. 현란한 인테리어와 더불어 눈이 휘둥그레졌던 메뉴판도 떠오르는데요! 시그니처였던 눈꽃빙수를 필두로 온갖 과일과 과자, 아이스크림으로 채운 파르페와 십여 가지 종류의 생과일주스 등 정말 많은 메뉴로 꽉 차 있었어요. 변치 않는 우정을 약속하며 벽면에 컴싸로 써 내려갔던 낙서, 그네 의자에 앉아 빙수를 먹던 기억. 이제는 주변에서 잘 찾아볼 수도 없어 정말 추억 속에만 남게 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더욱 아쉽고 그리운 장소입니다.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친구랑 그네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창밖을 보며 눈꽃 빙수를 먹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식빵을 살짝 구워 곁들이는 생크림이 어찌나 맛있던지… 다른 곳에 가서 먹어도 절대 이때의 이 맛은 나지 않아요 (훌쩍)
👾 우리동네는 중고딩때 남자끼리 못 가는 분위기였거든요. 어쩌다 여자애들 갈 때 따라갔는데 레알 신세계였어요.
2. 한국 토종 프랜차이즈 허니 브레드에 아메리카노가 대세? 그 때 그 시절 카라멜 마끼아또
우리나라엔 카페가 참 많습니다. 이보다 더 많았던 때가 있었다면? 프랜차이즈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와 그야말로 프랜차이즈 카페 춘추전국시대였던 그 시절! 넘치는 카페 수만큼이나 제각기 다양한 메뉴와 디저트를 선보였어요. 그중 생크림이 잔뜩 올라간 허니브레드는 단연 최고 인기였죠. 음료를 주문하면 자리로 가져다주는 대신 영수증과 함께 주던 진동벨. 빨간 불빛과 함께 진동벨이 울리면 화들짝 놀라며 쟁반을 받으러 가던 셀프 서빙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때를 추억하면 재료를 아끼지 않은 대왕 빙수, 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코를 스치던 따끈한 모카 번 냄새. 카운터와 벽면의 우드 패턴과 라탄 의자가 통창으로 된 매장에 들어차 있고, 벽면에는 알 수 없는 레터링이 빼곡했던 특유의 인테리어가 떠오릅니다. 하루에 딱 두 번 맞는 대형 벽시계는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요?
🐯 커피 맛도 모르고 달달한 커피 마시면서 “휘핑크림 많이 주세요.”로 주문을 마무리하던 20대 초반이 생각나네요. 언제부턴가 아메리카노만 마실 수 있는 몸이 되었지만… (커피의 쓴맛을 즐기게 되면 어른이 된 거라죠?)
🚬 실내 흡연이 금지되면서 투명한 벽으로 막힌 흡연실이 프랜차이즈 카페엔 꼭 있었던 것 같아요.
3. 인더스트리얼 짓다 만 건물 말고 진짜 industrial
최근 공사판이 그대로 카페가 된 밈이 유행했어요. 마감되지 않은 벽면, 무질서하게 쌓인 벽돌이나 흙더미. 이런 곳이 정말 힙한거야? 의문도 들었죠. 그와 동시에 요즘 보이는 공사장 인테리어 전에 유행하던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은 산업, 공업 공간의 느낌이 강조된 인테리어 디자인을 이야기하는데요, 불필요한 장식이나 꾸밈을 배제하고 노출된 구조와 소재를 중요시합니다. Industrial design은 미완성된 under construction의 상태와는 다릅니다. 천장에 배관이나 전기설비가 그대로 노출 되어있더라도 실내의 분위기에 맞게 깨끗하게 마감되어 위생적으로도 안전합니다. 차가워 보이는 소재감 속에 독특한 오브제나 백열전구 조명 등으로 포인트를 더하기도 했어요. 콘크리트와 철골구조가 주를 이루는 한국 건축의 특수성에, 비용을 줄이고 싶어 하는 카페 창업자들의 니즈가 만나 만들어낸 K-감성이라고 볼 수 있죠.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스팀펑크를 떠올리게 하는 특이한 소품들로 가득 차 있던 카페!
🤔 저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 유행을 싫어했어요. 아무리 마감을 잘했다고 하지만 결국 공사장처럼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요즘 카페들을 보면 이때가 정말 잘 만들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층고 높고 넓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다보 면 왠지 뉴욕 브루클린이나 샌프란시스코의 힙스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왠지 작업도 더 잘되는 것 같은 기분? (웃음) 그래서 저는 인더스트리얼 감성 카페를 자주 찾아요.
4. 인스타그래머블 (feat. 성수) 우리는 감성을 사랑해! 일단 코어에 힘 주실게요~
우리는 항상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그게 일회성이더라도! 인스타그래머블 한 카페를 둘러보면 각자의 테마에 맞춰 장식된 오브제들이 새롭습니다. 어디서 산 거지? 멋지고 유니크해요. 어느 곳을 찍어도 좋은 사진이 나오는 무드 충만한 카페에 앉아 이야기하다 보면, 모던한 접시에 독특하게 플레이팅 된 커피와 디저트가 나옵니다. 이건 찍어야지! 도저히 사진을 찍지 않고는 못 배기는 감각적인 비주얼에 절로 기분이 좋아져요. 영문 가득한 벽면과 메뉴로 마치 외국에서 커피를 즐기고 있는 경험을 주는 감성 속 한글로 쓰인 ‘1인 1메뉴 필수입니다.’ 문구. 모두가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어딘가 비슷해서 알 것도 같은 느낌이에요. 하지만 조금 불편해도 괜찮은 우리를 위한 감성 카페는 여전히 순항 중입니다.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어딜 찍어도 멋진 공간과 플레이팅! 그런데 음료는 딱 두 입 컷… 양이 너무 적어!
🤔 여기에 음료를 놓는 건가? 아 테이블이었나? 의자라고? 용도가 헷갈리는 낮은 테이블과 불편한 의자에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 힙한 인테리어와 커피 한 잔 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는 감성 카페! 저는 일부러 찾아가서 무드를 즐겨요.
to be continued…😎
😈 자료 수집하면서 잊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어요! 프라이스가 수집한 K 카페 감성. 함께 추억 할 수 있었나요? 아니면 에이 이게 없으면 안되지~ 하는 이야깃거리가 있었나요? 우리가 생각하는 필수 요소, 없어서 아쉬운 그 감성이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주세요!
신 연남점 오픈 첫 날, 국가대표 바리스타 대회 파이널리스트이자, 연남점 헤드 바리스타인 김명근 씨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커피를 세팅하고 있었다. ⓒfrice
카페 오픈런, 거기에 에스프레소를 곁들인
수줍음이 많은 김명근 바리스타의 에스프레소는 깊고 깊은 심연 속에 한줄기 빛과 같은 느낌이다. 어둠 속에서도 끈질기게 빛을 잃지 않고, 섬세하고 아름답게 무지개와 같은 스펙트럼으로 갈라진다.
ⓒfrice
강렬하면서 진득하다. 아름답고 선명하다. 기본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시고, 설탕 한조각을 넣어 잘 저어 마시면, 강력한 질감 속에서 아름다운 향기와 커피가 뿜어내는 임팩트를 즐길 수 있다. 남반구 최고 스페셜티 커피 매장으로 손꼽히는 세인트 알리의 살바토레 대표는 한국을 방문해서 커피 리브레의 배드 블러드 블렌딩 에스프레소를 세계 최고의 커피로 손꼽기도 했다.
ⓒfrice
창립 14주년을 맞이한 커피 리브레는 한국인 최초 큐그레이더 서필훈이 설립했다. 보헤미안 서울의 팀장으로 핸드드립 커피 최고의 이론가였던 서 대표. 그는 2008년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의 커피 감정 자격증인 큐그레이더 시험에 통과했다. 커피생두를 감별하는 전문가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스페셜티 커피는 생소했다. 스페셜티 커피의 기본 개념은 커피빈의 물질적 속성을 탐구하고 생산자의 이력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긴 평가 기준은 양질의 커피를 판단할 새로운 근거가 됐고 스페셜티 커피는 어느새 현대인이 커피를 향유하는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2010년대에 벌어진 커피업계의 커다란 변화중 하나.
이 변화를 이끈 커피 리브레는 그래서 한국 1세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손꼽힌다. 서 대표는 첫 매장을 연남동 동진시장에 열며 스페셜티 커피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국내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연남동이 특별한 이유다.
ⓒfrice
신 연남점은 매장 입구에 푸어스테디 브루잉 머신이 도입됐다. 정교한 커피 추출을 가능케 한 첨단설비다. 한편 안쪽에는 과거 연남점 매장의 추억을 잇는 한약방 인테리어가 그대로 재현되었다.
커피 리브레의 마실거리
신메뉴 삼총사가 등장했다. 마로키노, 아포가토, 그라니타. 오직 연남점에서 맛 볼 수 있다. 마로키노는 에스프레소와 초콜릿 크림을 결합시킨 창작음료. 스팀화 시킨 초콜릿과 스페셜티 커피의 향미가 아름답게 공존한다. 여운이 오래 남는 음료다 .
왼쪽부터 마로키노, 아포가토, 그라니타 ⓒfrice
그라니타는 레몬 소르베를 이용한 에스프레소 기반 음료다. 개인적으로 한국 최고의 수제 아이스크림으로 꼽는 펠앤콜이다. 소르베의 선명한 산미가 커피와 결합해 입체적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아포가토는 솔트 아이스크림을 사용한다. 팰앤콜의 솔트 아이스크림은 단짠이 선명하다. 향미가 분명한 커피와 만나 입 안의 감각을 풍성하게 만든다. 새단장에 어울리는 특별한 맛.
커피 리브레의 시그니처 디카페인 블렌드빈, 나이트호크 ⓒfrice
커피 리브레의 시그니처 디카페인 블렌드빈, 나이트호크 ⓒfrice
개인적으로 커피 리브레에서 추천하는 커피는 디카페인 커피이다. 과거, 디카페인 커피는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추출법이 주류였다. 화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위험한 방식이었다. 그나마 안전한 스위스 워터 방식이 나왔지만, 스페셜티 커피에 기대하는 향미에는 못 미쳤다.
최근에는 커피리브레를 포함한 선두업체들이 멕시코 고산지대의 청정수를 이용한 마운튼워터 방식으로 안전하고 친환경적으로 카페인을 제거하면서, 스페셜티 커피에 기대했던 아름다운 향미를 성공적으로 발현하고 있다. 우수한 디카페인 커피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다..
커피리브레는 연남점 재개장과 함께 <베스트 오브 파나마*> 대회 우승 농장인 핀카 하트만의 커피, 연남점 특별 블렌딩 동진시장, 디카페인 블렌딩 나이트 호크, 온두라스 <COE**> 1위 커피까지 준비했다. 이들의 원두는 주마다 라인업이 바뀐다. 브랜드에서 발신하는 뉴스채널을 구독해두면 다양한 커피 원두를 구입할 수 있다.
*게이샤 커피를 위주로 파나마에서 열리는 커피 경연대회. 해마다 옥션 가격이 세계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커피 산업의 올림픽과 같은 커피 경진대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의 머신 세팅은?
이들은 브루잉 커피를 만들 때, 말코닉 eK 43 그라인더를 사용한다. 업계 관계자 사이에선 커피빈을 섬세하게 분쇄할 수 있는 고급머신으로 평가받는다. 매장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로버와 라 마르조코를 조합한다. 로버 그라인더는 원뿔형 코니컬 그라인더인데 향미가 좋은 스페셜티커피와 궁합이 최적이다.
ⓒfrice
피렌체에서 전문가들에게 의해서 생산된 라 마르조코 에스프레소 머신은 모델에 따라서 온도조절, 압력조절과 같은 변수를 통제할수 있고, 스페셜티 커피 산업에서 가장 안정적인 추출을 선보이는 머신이다. 로버와 라 마르조코의 조합은 마치 F1 레이싱에서 페라리 머신과 미셰린 타이어와 궁합처럼 클래식하고 안정적이다.
동진시장에 자리한 구 연남점의 안과 밖 ⓒfrice
연남동 대표 카페의 디자인 혁신
2012년. 커피 리브레 첫 번째 카페 매장이 열렸다. 연남동 동진시장 이불 가게를 개조했고 중고 자개 테이블과 한약방 서랍장으로 인테리어를 보충했던 소박한 매장이었다. 10여 년 동안 세계적인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순 없었다. 2023년 7월, 건물주의 요청으로 동진시장에 연 매장을 정리했다.
매장 이전은 디자인 리노베이션의 계기가 됐다. 구 연남점은 오래된 재래시장을 개조해서 방습, 방진이 취약했다. 특히 시장 내부 공중화장실이 매우 열악했다.
과거 스페셜티커피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서 매장을 꾸리기에 급급했다면, 현재는 디자인을 강화하고 있다. 커피 리브레 또한 신연남점을 통해 브랜드를 대표하는 공간을 대폭 개선할 수 있었다.
신 연남점은 경의선 철길 옆 건물로 낙점됐다. 20세기 중반 마포구에 흔히 보이는 20세기형 2층 단독 주택을 리노베이션.
신 연남점 오픈 첫 날, 매장을 찾은 가족 손님과 반려동물 동반 손님ⓒfrice
신 연남점은 배리어-프리(barrier-free)를 강화했다. 1층 커피바는 어린이 환영, 반려동물 환영, 교통약자 이동권을 적극 반영한다. 어린이와 반려동물을 위한 편의용품, 단차없는 플로어, 교통약자를 위한 화장실을 설계했다. 개장 첫 날부터 새롭게 설계된 공간 디자인을 이용하는 손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1. 반려동물 하네스를 걸어둘 수 있는 고리 / 2. 나쵸 리브레의 레슬링 가면을 오마쥬한 화장실 입구의 픽토그램. 브랜드 로고 응용이 재치있다. ⓒfrice
커피 리브레 연남점은 새롭게 매장을 오픈하면서 브랜드 최초로 인테리어 전문 디자인팀과 함께 작업을 했다. 옛 매장은 레트로한 공간 인테리어로 눈길을, 새 매장은 손님편의가 우선이다. 안정적인 조명설계와 편안한 시각 요소들이 연남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카페를 방문한 이들에게 평안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신 연남점 내부. 밝으면서 개방감 있다. ⓒfrice
새롭게 단장한 매장은 밝게 도색한 전면부와 입구의 천막이 시원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1층은 커피바와 약간의 좌석이 있고, 2층에 넓고 쾌적한 착석 공간이 준비된다. 이전 리브레 연남점 매장 환경이 매장 내 체류에 취약했던 것을 감안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커피 리브레 신 연남점은 2층의 넓은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아트워크를 설치한다. ⓒfrice
매장 2층 전시된 그림은 구 연남점에 걸려있던 액자로 최근 NFT를 발행해 기부 프로젝트에 나서기도 했다. 이 또한 한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최초. 커피 리브레는 디지털 아트 소유권 증명서를 발행한 수익금액을 전액 기부했고, 앞으로도 다양한 작가들과 협업해서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커피 리브레의 상징이 된 한약장. 다양한 원두를 다루고 보관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카페에 자리잡은 약장이 그리 어색하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frice
‘한약방 약장’은 커피 리브레의 상징이다. ‘커피는 약’이라는 인상을 선사하는 흥미로운 인테리어. 약장은 사실 의도된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초기 창업 당시, 없는 형편에서 중고 가구를 끌어왔다. 버려진 가구를 세척해서 사용한 것이 본의 아니게 레트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약장의 서랍을 선반으로 활용하여 커피 원두를 전시했다. ⓒfrice
동진시장 매장 오픈 당시, 커피원두를 전시하는 기물로 사용한 리브레의 약장은 한국적인 오브제로서 공간 분위기를 지배하는 인테리어 요소였다. 한국에 스페셜티 커피가 보급된 2010년대 초반, 레트로한 분위기를 연출한 한국 스페셜티 커피 매장에 공간 디자인 레퍼런스로 자리매김했다.
최고의 커피는 관계가 만든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미션(mission)을 알면, 커피의 아름다움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다. 커피 리브레의 경우, 세계 각국의 사연 있는 농장의 특별한 싱글 오리진 커피를 공급하는데 진심이다. 대표적인 예가 ‘파나마 핀카 하트만 게이샤’다. 핀카 하트만 농장의 게이샤 품종 커피는 한국에서 커피 리브레를 통해서 소개됐다.
게이샤 커피는 신의 커피로 알려지면서, 비싼 가격 때문에 화제를 모은다. 섬세한 향미와 절제된 단맛, 길고 여운있는 후미까지. 대부분의 커피인들이 최고로 손꼽는 커피이다.
파나마 핀카 하트만 게이샤. 하트만 농장은 파나마 커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frice
하트만 농장의 게이샤는 한여름 작열하는 스페인 광장에서 마주친 플라멩코 댄서와 같이 활발하면서 정열적인 에너지를 방출하는 느낌의 커피. 하트만 농장은 파나마 커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서 생두경매가격이 크게 상승했지만, 커피 리브레를 통해서 이전과 동일한 가격에 생두를 제공한다. 스페셜티 커피인들의 세계에는 아직도 관계의 소중함을 바보같이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지를 직접 누비며 농장을 답사하고, 현지 농장주와 인간적인 유대감을 만드려는 노력. 이는 엘 카페, 모모스 커피, 나무사이로, 프릳츠, 커피 템플과 같은 국내 최고의 스페셜티커피 업체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 한국 최초의 스페셜티 커피 업체로 손꼽히는 커피 리브레의 연남점 재개장 소식을 전했다. 최근 스페셜티 커피 업계는 디자이너와 긴밀한 협업에 나서고 있다. 디자인 산업의 확대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는 이상을 추구한다. 그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접근방식은 소비자들에게 커피 경험의 확대를 만든다. 디자인을 강화한 최근의 시도가 선순환을 거두길 희망한다.
커피 크리에이터 나디아 박(Nadia Park)입니다. 2023년부터 커피와 삶을 엮어서 숏폼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커피를 내리며 짧은 스피치를 하고, 거기에 자막을 단 영상을 인스타그램 릴스에 올렸는데요. 알고리즘에 걸려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커피업계에 몸담으며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려 해요.
활동 100일 만에 팔로워 10만 명을 넘기셨죠. 어쩌다 릴스에 영상을 올리셨나요?
‘대화’의 쓸모를 영상 콘텐츠로 풀고 싶었어요. 저는 커피가 선사하는 대화가 정말 좋습니다. 예컨대 취업준비나 시험결과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만나요. 그런 사람에게 커피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새 압박에서 벗어나요.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계기가 커피에서 시작되는 거죠.
나디아 박은 커피를 통해 ‘대화의 쓸모’를 디자인한다. ⓒfrice
“어머니는 잘 지내셔?” 같은 안부나 “넌 우정이 뭐라고 생각해?”같은 철학적 개념을 토론하는 것도 커피에서 출발한다 생각해요. 제가 브루잉 커피를 만들며 떠오르는 생각을 툭 내뱉는 것은 ‘대화’의 시작일 텐데요. 커피가 좋아서 하는 이야기. 상처받은 일상을 치유하는 이야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이야기. 커피가 모든 이야기의 계기를 만든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이야기가 모이면 커뮤니티가 생겨요.
‘커피 오마카세’를 시연하는 나디아 박. 한 시간 동안 코스메뉴를 즐기는 시간이다. ⓒfrice
지금 인터뷰하는 장소도 커뮤니티를 만들기 좋은 공간구성이네요. 호스트와 게스트가 마주 보는 바 테이블석이 많습니다.
보노보노 커피로스터스는 제가 콘텐츠를 만든 곳이기도 하지만, 판교의 오래된 커피 커뮤니티이기도 해요. 커피를 좋아하는 인근 직장인이나 동네 주민들이 모이는 곳이거든요.
그런 공간을 활용해서 커피를 내리고, 사람들을 초대해요. 행사를 진행하면 대화 속에서 일단 제가 행복합니다. 초대손님도 ‘고마워.’ ‘이런 이야기를 나디아랑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다음에 또 올게’라는 응답을 해요. 그 한마디가 저한테는 너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를 바리스타라 소개하지 못해요. 커피를 추출하는 것보다. 커피가 추출된 이후의 일이 더 관심이 많거든요.
크리에이터는 자기만의 고유함을 무기로 활동에 나섭니다. 나디아 박의 오리지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영어로 ‘긍정’을 전하는 것. 사람들은 때때로 자기자신을 믿지 못하는 시기를 겪어요. 완벽하게 극복할 순 없지만, 여러 가지 방법을 실천하며 나아질 수 있어요.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영상은 드물었다고 생각해요.
‘이미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기존 커피 콘텐츠 바깥에 있는 미지의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기존 커피분야 영상은 커피를 비즈니스로 다루거나 전문지식을 교육하는 영상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혹은 브이로그나 ASMR처럼 딱히 메시지가 담기지 않는 영상이 많았죠. 한편 커피 콘테스트에 참가해 경쟁을 이겨낸 분들의 경험담은 귀한데, 저는 대회참가 이력이 없으니 애매하죠.(웃음)
제가 그들보다 더 잘할 수 없거나, 이미 누군가 너무 많이 하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런 건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곱게 갈린 커피빈을 종이필터에 담은 모습. 추출을 준비하는 모습은 커피 오마카세를 체험하는 손님과 대화를 여는 주제였다. ⓒfrice
인스타그램 릴스 알고리즘에 노출되고 계시잖아요! 혹시 기술적인 노하우를 미리 알고 계셨나요?
사운드를 오리지널로 쓰는 게 숏폼 콘텐츠에 유리하다는 기술적인 조언을 어디선가 듣긴 했었어요. 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아니죠.(웃음)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짧은 영상이라고는 하는데 몇 초가 적절하지?’라는 생각에 30초, 1분, 2분. 다 테스트해 봤어요.
숏폼 콘텐츠를 디자인하는 기본 원칙은 나의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거였어요. 오리지널 사운드가 필요한데, 제가 쓸 수 있는 건 목소리뿐이고. 목소리를 써보니 “개성을 표현하려면 영어로 말하는 게 낫겠다.” 이런 식으로 숏폼 영상 디자인 프로세스가 잡혔어요.
나디아 박의 채널은 글로벌해요. 해외구독자가 더 많으시죠?
맞습니다. 첫 구독자 반응은 지인부터 왔어요. 돌이켜 보면 구독자 반응이 뜸했던 첫 시작부터 두 달이 제일 고비였던 거 같아요. 어느 날 친동생이 “누나 그냥 해. 이거 누나 스타일 맞아.”라고 말했는데요. (웃음) 자기를 믿고 계속 하는 수 밖에 없죠.
@nadiaxcoffee
여태까지 찍은 영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The Limit Question입니다.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라는 질문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간 끝에 얻은 결론이죠. 이건 제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커피를 통해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 생각해요.
평소에 고민을 많이 했던 주제였겠어요.
우리는 ‘어떤 커리어를 갖고 싶은가?’를 고민하며 살아요. 그것보다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아닐까요.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결국 대기업 입사로 몰리잖아요. ‘커서 무슨 일하고 싶어?’라는 질문을 어른들이 많이 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질문 자체가 사람을 프레임에 가두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업에 종사하는지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게 낫다고 봐요. 나는 어떤 게 좋고 싫은가? 이 질문 중심을 두고 살면, 오히려 커리어를 살릴 기회가 더 많이 열린다고 봐요.
어떤 잔에 커피를 마실지 선택하는 시간. 모두 대화의 순간이다. ⓒfrice
지금은 커피업계에서 열정을 쏟고 있는 나디아의 모습이 좋은 본보기 같네요.
옛날엔 저도 공부를 잘해서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직장에서 부자가 되는 걸 꿈꿨어요. 물론 경제적 자유는 지금도 꿈꾸죠. (웃음)
어떤 사람들은 하지 말아야 할 직업을 멋대로 정하고, 커리어 수준을 따지는데 에너지를 쏟아요. 그런 일에 아쉬움이 크죠. 예컨대 제가 커피에 빠진 모습을 보고 어떤 분은 ‘쟤는 왜 대학 나와서 고작 커피를 만든대?’라는 말씀을 하실 거예요.
편견이 만든 프레임이죠.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인생에 무엇을 곁에 둬야 행복한지를 아는 것. 두 가지가 중요해요. 저한테는 그게 커피였어요. 커피 곁에 있으면, 나의 성장과 나의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지금 커피 안에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상태입니다.
인생을 향한 진지한 고민과 나만의 대답. 이게 제 커피 영상 콘텐츠의 시작점이었던 것 같아요. 영상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획이나 주제의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죠.
ⓒfrice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커피를 통해 모든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이라는 슬로건을 적었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생각인가요?
저는 커피업계에서 일하기 전 IT회사에 재직했어요. 퇴사 직후 마음이 많이 무너진 상태였는데, ‘내가 날 안 믿으면 누가 날 믿을까’라는 생각으로 많은 노력을 쏟았어요. 무언가를 긍정하는 과정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죠.
제가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모습이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구독자분들도 있어요. 제가 느꼈을 때,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타인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1분 독백을 전했을 때, “오! 나디아는 생각이 싱싱한 사람이구나!’라는 걸 느끼셨다면 성공이죠. 저는 영상에 메시지를 담고, 거기에 호응한 분들이 계셔요. 영상에 댓글로 자기 생각을 남겨주시는 분들 덕에 긍정 에너지는 더 나아집니다.
구리 소재로 만든 하리오 V60. 브루잉 커피툴로 인기높은 제품이며 유리,도자,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로 제작된다. ⓒfrice
좋아하는 커피도구 하나를 골라주시겠어?
매장에서는 하리오 구리 주전자와 드리퍼요. 열전도가 빠른 소재라 솔직히 다루기 편하진 않아요. 하지만 온도조절이 민감하다는 뜻이기도 해서 다룰 줄 알면 브루잉 커피의 다양한 레시피를 시도할 수 있어요.
선호하는 커피 맛은요?
단맛이요. 설탕의 단맛은 아닌, 다른 단맛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초콜릿 향미를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산미에 큰 거부감은 없지만, 텁텁한 맛보다 어느 정도 달달함이 크게 인식되는 맛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잘 만든 브루잉 커피의 기준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마실 때 느끼는 맛이 조화로운 커피요. 그리고 다 마시고 난 뒤, 입안에 남는 맛이 깔끔하고 부드럽게 끝나는 커피가 잘 만든 브루잉 커피라 생각해요.
입에 남는 느낌이 무거워야 한다, 가벼워야 한다는 바디감에 따른 기준은 아니고요. 커피를 경험했을 때 밸런스가 잘 맞았다고 느끼면, 맛있다고 느끼면 그게 잘 만든 커피라고 생각해요.
카페 소장품. 오너가 유럽에서 가져온 빈티지 컵으로 알록달록한 색유리가 까만 브루잉 커피와 대조되며 아름다운 한 잔이 완성된다. ⓒfrice
오직 커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뭘까요?
아로마 아닐까요? 커피는 사실 대부분이 물이잖아요. 커피에서 추출된 1%의 성분이 수백 가지 향을 갖고 있다는 게 아름다워요. 제가 알기로 사람이 커피를 맛보며 인식할 수 있는 아로마는 30여 개입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확신을 갖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셋에서 다섯 쯤이에요. 커피에 담긴 아로마를 알면, 커피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볼 수 있겠죠?
아! 예전에 ‘인류가 이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탈이 나서 괴로워했을까?’라는 생각이 번뜩 났어요.
엉뚱한 상상인데요?
커피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발명한 음료인 듯해요. 체리의 씨앗을 빼서 말리고 볶고 갈고 물에 타서 먹는 게 맛있다고 생각을 했다는 거잖아요.(웃음) 그리고 그런 번거로운 음료가 문화가 됐다는 게 신기하면서 동시에 아름다워요.
같은 커피콩을 썼지만, 다른 향미를 느낄 수 있었던 비교시음. 다양한 매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frice
콘텐츠를 통해서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나요?
커피를 향유하는 문화를 바꾸고 싶어요. 이 생각에 기반한 메시지를 영상 속에 많이 담고 있어요. 대표적으론 스노브(snob)를 깨는 겁니다.
무언가를 향유하는 방식을 고정시켜버리는 사람들을 흔히 스노브라 부르죠.
맞아요. ‘평양냉면은 이렇게 먹는 거야~’라면서 고집부리는 사람들 같은 거죠. 커피도 있어요. 예컨대 라떼는 꼭 이렇게 마셔야 한다고 남한테 훈수를 둔다거나, 난 숙성우유를 넣은 라떼를 마시니까 스타벅스를 가는 사람보다 취향적으로 우월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커피 스노브’라 부르죠.
저는 커피를 즐기는데 우열을 가르는 게 싫어요. 인스턴트 믹스커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파나마 게이샤를 먹는 사람도 각자 입장이 있을 거예요. 저는 커피 스노브를 깨는 일이 커피 문화에 긍정적일 거라 생각해요.
어느 문화를 향유하건 스노브는 항상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더라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커피 스노브가 업계 트렌드를 좌지우지한다면, 저는 거기에 반발심이 드네요. “스노브 신경쓰지 말고, 각자 좋아하는 커피 마시자.” 그게 제가 커피 크리에이터로서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입니다.
방향을 잡고 문제해결에 나선 경험을 조금 더 듣고 싶어요.
디자인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요소를 조정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이란 뜻도 내포하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의 디자인이라면, 제가 했던 한-영 번역을 예로 들 수 있겠어요. 이따금 한국시를 영어로 번역했어요. 당장 생각나는 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인데요. 한국어의 감수성을 영어로 표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편견이 많죠.
저는 꼭 그렇지 않다고 봤어요. 오히려 영어로 옮겼을 때의 결과물을 업그레이드하자는 목표가 생기는 거죠. 영어로 잘 번역하면 더 많은 문화권에 알릴 수 있어요. 한국현대시의 표현이 영어권에서 제대로 번역되지 않는다는 기존 문제를 해결하는 거죠. 편견을 깨면서 뜻밖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요. 뭐든 예전보다 나아집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커피 영상 콘텐츠도 비슷한 발상으로 기획하고 있어요.
나디아 박의 ‘환대’는 컴포트로 번역된다 ⓒfrice
커피를 통해 전하고픈 가치는 무엇인가요?
컴포트(comfort)라고 생각해요.
컴포트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에서 말하는 하스피털리티(hospitality)와는 다른 어감입니다.
둘 다 타인을 환영하고 편안하게 맞이하는 느낌이죠. 컴포트는 하스피털리티보다 좀 더 아늑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개념일 겁니다.
저는 일단 커피를 마신 사람들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맛있다, 힐링이 된다’라는 걸 메이커에게 얘기해 주시면 컴포트가 생긴 거죠. 그래서 저는 미소가 너무 중요해요. 커피 마시러 온 사람에게 웃고, 손님도 거기서 느끼는 컴포트가 있는 거죠. “와! 이 카페 호스트는 내 편이구나!”라는 거를 느껴줬으면 좋겠어요. 영상 콘텐츠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에너지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컴포트인 거죠.
커피에 바친 애정은 나디아를 어디로 데려다주나요?
‘성장’입니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에게 성장할 기회가 열리는 것 같아요.
먼저 주변에 관심을 쏟아요. 관심 때문에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 속에서 더 많은 호기심이 싹터요. 호기심과 질문이 많아지면 무언가를 더 좋게 만들고 싶어져요. 저는 커피를 더 맛있게, 영상은 더 잘 찍고 싶어지죠. 커피가 맛있고, 영상이 좋으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거예요.
ⓒfrice
여기서 인정은 존중(RESPECT)에 가깝겠네요.
존중은 커뮤니티를 만들어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나디아라는 사람의 필요성이 생기는 걸 텐데요. 저는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한다는 데서 큰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에요. 커피를 둘러싼 커뮤니티가 큰 힘이 된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나디아 박의 자부심은 무엇인가요?
@buonobuonopangyo 의 ‘브루잉 커피’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커피 선생님을 만났고 그분이 알려주신 핸드드립 추출법이 있어요. 건강에 좋기도 하고, 왜 건강에 좋은지 논문 발표를 할 정도로 이색적인 방식입니다. 흥미로워서 배웠고, 덕분에 판교 커피씬에 정붙일 수 있었어요. 이곳에서 배운 한국커피씬의 오리지널이 없었다면 허리에 손을 얹고 구리 주전자에 담긴 물을 잘게 갈린 커피콩에 붓는 모습도 없었을 거예요. 자부심이자 뿌리죠.
기회가 되시면 이곳의 브루잉 커피를 꼭 맛보셨으면 합니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을 느껴주세요.
😈 나디아 박의 인터뷰는 어땠나요? 콘텐츠 메이커의 디자인 철학을 듣는 것도 소중했지만, 창작 이면에 있던 고민을 기록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나는 여태까지 어떤 모습으로 커피를 즐겼었지?”라는 물음도 생기네요.
이번 인터뷰는 ‘나다움의 방식’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구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먼저 자기자신의 마음을 단정히 가꿔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이번 스페셜 인터뷰가 개성을 활용해 콘텐츠를 디자인 하려는 분들에게 좋은 영감을 전하길 바랍니다.
식민지 조선이라는 환경에서 최승희를 내세운 스타 마케팅은 모던 보이 모던 걸이 최고급 핫 플레이스를 즐기는 새로운 커피 풍속을 낳았다. 이전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커피가 일상에 깊게 스며들고 분위기 있는 다방이나 카페 같은 곳이 자연스러운 커피 소비 공간이 되기 시작했다. 한국 커피 문화 이야기 마지막 3화는 한국 커피 보급의 기원과 호텔카페 이야기.
ⓒfrice
한국 최초의 커피를 찾아서
우리나라 커피는 1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사람들은 흔히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이 시름을 달래며 커피를 마신 게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도입된 경로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커피는 개항 이후 선교나 상업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조선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들여왔을 것이 분명하다. 개항기 조선에 오간 선교사, 외교관, 사업가는 물론 여행객들이 묘사한 기록 여러 곳에 이미 커피가 등장한다.
1884년부터 3년간 의료 선교사로 일했던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의 기록에도 “어의(御醫)로 궁중에 드나들 때 홍차와 커피를 시종들로부터 대접받았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커피는 조선에서 궁중뿐만 아니라 궁 밖에서도 낯선 음료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퍼시벌 로웰의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885년 발행) ⓒ진용선
1884년 겨울 한강 변 언덕에 있는 누각(樓閣)에서 조선의 유행품(the latest nouveaute)인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1883년 조미수호통상사절단을 수행해 안내하는 임무를 맡은 퍼시벌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 1855∼1916)이 남긴 책의 1884년 1월 기록이다. 어느 추운 날 한강 변 ‘슬리핑 웨이브’에서 조선의 유행품 커피를 처음 마셨다는 내용이 실렸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과 왕실에서 즐겼다는 커피는 주로 조선 고위 관료들과 외국인들이 마셨다. 백성들이 마시는 음료는 아니었다. 하루하루 각박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커피는 특권층의 사치품으로 비칠 뿐이었다.
ⓒfrice
외국인들이나 왕실에서 소비되는 특권층의 기호품이었던 커피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울과 인천의 외국인 호텔을 중심으로 판매되면서 ‘가배(珈琲)’ 또는 ‘양탕(洋湯)국’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커피가 대중에 알려진 시기는 1910년 강제한일합병조약을 전후로 커피를 파는 호텔과 근대식 다실(茶室), 카페가 곳곳에 생겨나면서부터다. 1913년 남대문 역 ‘깃사텐(喫茶店)’을 시작으로 1920년부터는 경성 중구 본정(本盯, 명동과 충무로1가)을 중심으로 일본인이 운영하는 다방이 문을 열었다.
과거 다방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는 공간이라고 해서 ‘끽다점喫茶店’으로도 불렸다. ⓒ서울역사박물관
‘끽다(喫茶)’라는 말처럼 차를 즐기는 일본식 다실이었다. 일본인에 뒤질세라 1927년에는 서울 종로에 영화감독 이경손이 처음 문을 연 다방 ‘카카듀’를 시작으로 다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종로, 명동, 충무로 등지에 이국적인 분위기의 외래어로 이름을 붙인 많은 다방이 생겨났다. 다방 운영은 주로 문인이나 예술가 들이 했다. 〈날개〉의 작가 이상(李箱)은 다방 ‘제비’를 열어 문인들의 사랑방이자 서울의 명물이 됐다.
이들은 프랑스의 살롱 문화를 국내 다방에 접목해 시화전이나 미술전, 낭독회, 출판 기념회 등을 개최하거나 문인들과 화가 등 예술인과 지식인 들이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자연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지식인들에게 다방은 국내외 정세를 논의하고 서양 문물을 접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조선호텔과 유리로 천정과 외벽을 마감한 썬룸의 모습. ⓒ진용선
1914년 조선철도국이 건립한 최고급 호텔인 조선호텔에는 실내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찻집인 ‘썬룸(Sunroom)’이 있었다. 썬룸은 실내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낸 환구단의 부속 건물인 황궁우(皇穹宇)가 있는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조선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높은 스타인 무용가 최승희(崔承喜, 1911~1969)를 내세워 마케팅을 시작했다. 단순히 호텔 이미지를 높이려는 전략이라기보다는 부유한 젊은 층까지 끌어들이려는 전략이었다.
썬룸에서 커피를 마시는 최승희 최승희를 모델로 내세운 조선호텔의 썬룸은 모던 보이, 모던 걸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진용선
최승희 스타 마케팅과 새로운 커피 풍속
1938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발행한 사진 홍보물인 《조선의 인상》에는 조선호텔의 모습과 썬룸 사진이 실려 있다. 유리로 천정과 외벽을 마감하고 열대 식물이 드리운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썬룸에서 당대의 대표적인 신여성이라는 20대 후반인 모던 걸 최승희가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반응은 빠르게 나타났다.
아름답고 세련된 모습의 최승희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은 당시 청춘 남녀에게 최신 유행의 상징인 커피를 마셔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한몫했다. 이곳의 인기 메뉴가 아이스크림과 커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유한 젊은 층의 발길이 이어졌다. 최승희를 모델로 내세운 조선호텔의 썬룸은 호텔 라운지 바와 함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무용가 최승희, 1911-11.24-1969.8.8 ⓒ국립현대미술관
춤은 기생이나 추는 것이란 세간의 고정 관념을 깨뜨리며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듯이 최승희는 커피를 소위 모던 걸 모던 보이의 최고 기호품이 되게 했다. 단발머리에 서구식 옷과 신발로 꾸미고 화장을 한 최승희의 모습을 보고 많은 남성과 여성 들이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되어 낭만을 한껏 누렸다.
서양식 옷을 입고 폼을 있는 대로 잡는 이들은 벽과 지붕을 유리로 이어 햇볕이 잘 드는 썬룸에서 커피를 즐기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소비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애피타이저로 시작해 커피로 끝나는 조선호텔 서양 요리도 인기를 끌었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 여름 조선호텔에서 열린 만찬 메뉴. ‘御献立(오콘타데)’라고 쓰인 메뉴에는 서양 요리 풀코스에서부터 후식인 과일과 커피 등의 식단이 인쇄. 가장자리는 은박으로 품격 있게 마감했다. ⓒ진용선
조선호텔에서 열린 만찬 메뉴에는 ‘오르데뷰르’라는 에피타이저에 이어 ‘청갱즙(淸羹汁)’, 선어증소(鮮魚蒸燒), 다진 쇠고기인 ‘우만육(牛挽肉)’, 어린 새고기인 ‘추번소(鶵燔燒)’가 나오고, 디저트로 과실(果實), 아이스크림이 식탁에 올려진 후, 마지막에 ‘가배(珈琲)’로 마무리됐다.
아무나 커피를 마실 수 없을 시절 모던 걸과 모던 보이는 조선호텔에서 서양 요리를 즐기고 커피를 마셔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여겼을 것이다. 어쩌면 요즘으로 치면 인플루언서가 어떤 제품을 먹으면 그것을 따라 하는 현상이나, 남이 하면 나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소위 신인류의 포모(Fomo) 현상이 그때부터 통했던 셈이다.
요약하면 식민지 조선이라는 환경에서 최승희를 내세운 스타 마케팅은 모던 보이 모던 걸이 최고급 핫 플레이스를 즐기는 새로운 커피 풍속을 낳았다. 이전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커피가 일상에 깊게 스며들고 분위기 있는 다방이나 카페 같은 곳이 자연스러운 커피 소비 공간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인의 삶에 깊숙히 스며들기에 이른다.
아침이면 나는 늘 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서재에서 모카(moka, 이탈리아 에스프레소용 주전자)에 커피를 채우고 압력과 함께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 그 소리에 묻어나오는 진한 커피 향이 나는 참 좋다.
필터에 담긴 커피가 뜨거운 물과 섞여 내려오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향기의 맛, 그리고 그날 기분에 따라 진하게 엷게 손수 내리는 커피를 배우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점점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알면 사랑에 빠진다. 한국의 커피 문화 시리즈 3부작이 여러분에게도 그런 계기가 되길 바란다.
😈 박물관장님의 K-커피 문화 이야기는 어땠나요? 1부는 다방의 추억. 2부는 얼죽아의 기원. 3부는 카페 문화 보급을 다뤘어요. 다양한 수집자료와 생생한 경험담이 인상 깊습니다. 어제 마신 커피를 알면, 내일 마실 커피가 훨씬 맛있어지지 않을까요? 이번 시리즈가 여러분의 커피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기 바랍니다 🙂
뜨거운 커피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아아’나 이를 즐기는 ‘얼죽아’의 전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찬물을 지극히도 좋아한 오래된 문화의 결과물이다.
ⓒfrice
찬물을 즐겨 마시는 나라는 이 세상에 몇 나라 되지 않는다. 그중에 얼음 가득 벌컥벌컥 잘 마시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러니 아이스 아메리카노조차 생소한 외신에서 혹한에 두꺼운 패딩 잠바를 입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다니는 한국 사람을 보고 놀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름이면 ‘열은 열로 다스린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로 음식을 먹었는가 하면, ‘이냉치냉(以冷治冷)’으로 약재를 달여 만든 음료를 식혀서 마시거나 차갑게 마셨다. 음식 온도에 대한 개념도 더 차갑고 뜨거운 걸 좋아하다 보니 서로 연결이 되어 차가운 걸 먹거나 뜨거운 걸 먹어도 ‘시원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시원하다’는 말은 온도의 높낮이가 아니다. 차가운 걸 먹든 뜨거운 걸 먹든 몸에 변화가 생겨나 기운이 잘 통하게 된다는 뜻이다. 뜨거운 걸 먹어도 시원하고 차가운 걸 먹어도 시원하다고 알며 자라다 보니 평소에도 찬물을 즐겨 마시는 습관은 자연스러워졌다. 한겨울에 얼음 동동 동치미를 자연스레 즐겨온 음식 문화도 한몫했다.
얼음을 채취해 저장하는 일은 오래되었다. 《삼국사기》에도 신라 지증왕 6년(505년) 얼음 저장을 담당하는 기관인 빙고전(氷庫典) 이야기가 등장하고, 조선시대 《승정원일기》에도 영조 14년(1738년)에 석빙고(石氷庫)를 축조해 겨울에 채집한 얼음을 여름철에 사용할 수 있도록 장기간 보관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 이후에도 현대까지 냉장고가 나오기 전에는 한강의 얼음을 잘라 식용으로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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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같은 냉커피는 모든 나라에서 즐기는 음료가 아니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에는 에스프레소에 얼음 3~4개 정도를 잘게 부숴 넣은 카페 프레도(Cafe Freddo)가 있고, 에스프레소에 부순 얼음을 채워 넣고 아이스크림을 얹은 후 휘핑크림과 초콜릿 가루로 마무리하는 카페 플라페(Cafe Flappe)도 있다.
중남미에는 얼음에 커피 음료를 갈아 만든 커피 프로스티(Coffee Frostie)도 있지만 얼음 덩어리를 가득 채우는 커피는 아니다.“사람 떠나고 차가 식었다(人走茶凉)”는 속어 때문인지 중국 사람들은 항상 따뜻한 차나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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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이 주목한 한국인의 ‘얼죽아’ 사랑은 어릴 때부터 찬물이나 차가운 음식을 먹는 게 습관이 된 데서 비롯된다. 그 습관에 날개를 달다 보니 열은 열로, 냉은 냉으로 통하는 법을 몸에 익혔기 때문이다. 국민 음료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한편 아이스 커피의 유행은 ‘대가리를 부비대며’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전통적, 봉건적 관습과 풍속에 저항하며 새로운 맛을 탐닉한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있어 가능했다.
일제 강점기 모던의 상징이었던 다방은 ‘아이스커피’라는 새로운 커피를 선보였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겨울. 외신에서 맹추위에 추워서 얼어 죽을지언정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포기하지 않는 한국인의 커피 문화로 집중 조명을 한 것도 아이스커피 ‘얼죽아(Eoljukah)’였다.
K-팝 인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외국에 알려진 ‘아아(Ah-Ah)’도 실은 일제 강점기 경성 시내에 다방과 카페가 들어서고 이를 즐기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등장하면서부터 생겨난 핫한 메뉴였다. 1930년 7월 16일자 〈조선일보〉에는 서구식 용모와 옷차림으로 꾸민 청춘 남녀가 자유연애와 낭만을 만끽하며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풍자하는 글이 실렸다.
ⓒ조선일보
칼피스, 파피스도 조커니와 잠 오지 안케하는 컵피에도 ‘아이스컵피’를 두 사람이 하나만 청하여다가는 두 남녀가 대가리를 부비대고 보리줄기로 쪽쪽 빠라먹는다. 사랑의 아이스컵피-이집에서 아이스컵피-저집에서 아이스컵피-그래도 모자라서 일인들 뻔으로 혀끗을 빳빳치펴서 ‘아다시! 아이스고히가, 다이스키, 다이스키요!(전 아이스커피가 좋아요, 좋아)’, ‘와시모네-?(나도 그래) 혼부라당 백의(白衣)껄이 아니라 제 밋천 드리고 다니는 마네킹껄이 이것이라면 머릿속은 텡비여도 자존심 만흐신 그들은 필작 노할 게로군.
– 조선일보, 1930년 7월 16일자 中
‘모던’의 성지와도 같은 경성 진고개(오늘날 충무로, 명동) 일대를 거닐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소비하는 모던 커플에게 아이스커피는 인기 메뉴였다. 그러나 을사늑약과 한일강제합병 전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들이 무슨 짓을 해도 눈에 잔뜩 거슬릴 뿐이다.
심지어는 둘이 머리를 맞대고 다정하게 아이스커피 한잔을 즐기는 모습조차 “대가리를 부비대고 보리줄기로 쪽쪽 빠라먹는다”고 비꼬았다. 일본어를 쓰며 새로운 유행인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기성세대는 꼴사납게 본 것이다. 당시 갑자기 등장한 모던 풍속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불편한 심기가 드러난다.
ⓒ진용선
그런데도 신세대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소비하고 그것을 즐기는 변화의 물결은 막지 못했다. “이집에서 아이스컵피-저집에서 아이스컵피”라는 표현처럼 아이스커피는 당시 다방이나 카페에서 인기 메뉴 가운데 하나였다. 자유연애를 꿈꾸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에게는 ‘사랑의 아이스커피’였다. 아이스커피는 이렇게 기성세대의 근심 어린 시선 속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때 일본식 영어표현인 ‘아이스 커피’가 정착했다. ‘iced coffee’라는 표현을 뒤로 한 채.
정선 아리랑박물관에서 민속자료수집에 일평생을 바친 진용선 박물관장의 시리즈 컬럼을 소개한다. 한국의 커피 및 카페 문화는 어떻게 변화해왔으며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K-다방 이야기 1화는 박물관장님이 내려준 라떼토크.
1993년에 촬영된 다방의 간판 ⓒ국립민속박물관
20세기 K-다방 회고록
다방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만은 아니었다. 문인들에게는 ‘창작을 위한 산실’이었으며, 다방의 전성기도 시작된 1960년대부터는 문인이나 예술가 등 지식인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오갈 데 없는 실업자들이 일자리에 대한 한 가닥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다방은 사무실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던 또 다른 사무실이자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 아지트였다.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은 ‘사장’이니 ‘전무’니 하는 직함을 박은 그럴싸한 명함을 주머니에 넣고 마치 사무실인 양 다방에 죽쳤다. 다방에서 마담이 “김 사장님 전화요.” 하면 대여섯 명이 동시에 고개를 돌릴 정도로 사장 허세가 심한 곳이었다.
1993년에 촬영된 다방의 간판 ⓒ국립민속박물관
강원도 정선의 함백 거리를 걸었다. 조동시장 삼거리에서 감리교회로 가는 길, 우체국 옆에서 개울가 쪽으로 난 큰 골목길. 갈라지는 골목골목마다 약산다방, 삼화다방, 함백다방, 맥심다방, 신화다방이 있던 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만남을 즐기며 이야기가 오가던 곳. 한때는 저곳에서 많은 이들이 세상사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와 고민을 나누느라 북적이던 곳이다. 밤이면 보석처럼 다방 간판들이 빛나던 곳이다.
한국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할 때 사용하던 커피병과 커피잔. 함백다방명함과 파란 보자기가 눈에 띈다. ⓒ진용선
기억의 저편에는 아직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직원이 정성스레 내어 주는 계란 동동 모닝커피와 쌍화차, 파란 보자기에 보온병을 싸들고 분주히 커피를 배달하는 여직원의 모습이 눈에 삼삼하다. 그런 시대였다. 함백광업소 폐광 이후 다방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가운데 2010년대 중반까지 힘겹게 명맥을 유지하던 함백다방도 어느덧 옛날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다방에서 제공하는 성냥곽 ⓒ국립민속박물관
시간이 가면 모든 것이 변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늙어 세상을 달리하고, 주변의 익숙한 풍경도 사라져간다. 한때 화려했던 다방은 온데간데없고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다. 허물고 서둘러 새것을 세우다 보니 한때 누군가와 커피를 마시던 소중한 다방도 추억에 머물 뿐이다. 다방에서 “둘 둘” 하면 직원이 설탕 두 스푼 크림 두 스푼을 넣어 휘저은 뒤 스푼으로 떠서 맛을 보고 다시 저어 건네주던 이상한 풍경에 웃음 짓는다.
1976년 5월 29일자 7면에 실린 일명 ‘꽁초커피’. 커피를 정량보다 적게 넣고 대신 1/3 개비 분량의 담배가루를 섞어 색을 진하게 하거나 소금과 계란 껍데기를 넣어 커피맛을 내게 했다. ⓒ경향신문
다방의 성행과 부침 속에 한국 커피의 역사도 쌓여 갔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정부가 모든 다방에서 커피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그럼에도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혼돈의 시기를 겪으면서 커피가 귀한 상품이 되다 보니 전국 곳곳에 소위 ‘미제 장사’, ‘미제 아줌마’들이 생겨났고, ‘맥스웰하우스’ 커피는 커피의 대명사가 되어 이들의 필수 품목이 되었다.
원두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때는 담뱃가루와 톱밥, 콩가루, 달걀 껍데기를 섞어 색깔을 진하게 낸 가짜 커피인 ‘꽁초 커피’를 파는 꼼수를 부리다 적발되기도 했다. 일부 다방은 퇴폐 카페를 흉내 내다 당국의 철퇴를 맞았고, 엽차 잔에 몰래 위스키를 팔기도 했다.
당시 커피믹스는 현재 우리가 아는 기다란 스틱모양이 아니라 직사각 형태였다. ⓒ진용선
믹스커피의 탄생과 다방의 몰락
1974년 동서식품이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크림인 ‘프리마(Prima)’를 개발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판매를 시작한 ‘커피믹스’는 우리나라 커피 문화에 혁명과도 같았다. 휴대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방습포장된 일회용 인스턴트 커피는 언제 어디서든지 끓인 물만 있으면 손쉽게 마실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품이었다.
청양장 커피 행상 ⓒ국립민속박물관
무엇을 먹더라도 섞고 비벼 먹는 ‘비빔밥 문화’와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커피, 설탕, 크림의 황금 비율을 읽어 소비자들의 기호를 극대화한 우리나라 고유의 커피였다. 그 바탕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방에서 즐기는 커피와 설탕, 크림의 이상적인 비율에 대한 ‘빅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다.
증평장 커피가판대 ⓒ국립민속박물관
커피를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마실 수 있고 커피의 맛과 향이 좋아지자 다방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다방도 자구책 마련에 몰두했다. 대학가나 젊은 층이 많이 찾는 다방들은 DJ를 둔 음악 다방으로 변했고, 중소 도시 다방을 중심으로 ‘레지’들이 직접 커피를 배달하는 서비스로 어려움을 타개하려 했다. 진한 화장과 야한 복장의 레지, ‘티켓 다방’이 사회 문제로 크게 부상해 다방이 퇴폐업소의 이미지로 인식된 것도 1980년대 무렵이다.
여기에 더해 1980년대 중반 원두를 갈아서 물을 끓여 손수 내리는 커피의 인기와 함께 커피 전문점 붐이 일어나면서 다방은 나이 든 사람들의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커피’ 하면 ‘다방’, ‘다방’ 하면 ‘커피’로 명맥을 이어온 다방도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내리막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 frice
한국인 1명은 1년에 커피 512잔을 마신다
한국에서 이제 커피는 쌀보다 더 많은 소비가 되는 식품이 되었다. 다방의 뒤를 이은 커피 전문점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으며, 커피도 캔, 병, 컵, 페트병 등 다양한 형태에 담겨 제품으로 나오고 있다.
2018년 국제커피협회(ICO)의 ‘세계 커피 소비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커피를 많이 수입한다. 2022년에는 한 포대에 60킬로그램짜리 230만 포대를 수입했다. 2022년 국내 커피 시장 규모가 10조 원을 넘었고, 국민 1인당 연간 평균 512잔을 마시는 ‘커피 공화국’이다.
구한말 미국을 다녀오며 “서양 사람들은 차와 커피를 우리네 숭늉 마시듯 한다.”라고 한 유길준(兪吉濬)도 한반도에서도 커피를 숭늉 마시듯하는 ‘커피 공화국’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국에서 커피는 140년에 이르는 문화적 산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