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 그 잡채!’ 박물관장님이 내려준 20세기 K-다방 이야기
커피의 매혹, '가배'에서 '아아'까지 「1」
심재범의 한국 스페셜티 커피 디자인 탐구
커피 리브레는 모모스, 엘카페, 나무사이로와 더불어 한국의 1세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손꼽힌다. 특히 연남점은 스페셜티 커피 태동기에 열린 기념비적 매장. 최근 매장이전 후 리뉴얼을 마쳤다.
카페 오픈런, 거기에 에스프레소를 곁들인
수줍음이 많은 김명근 바리스타의 에스프레소는 깊고 깊은 심연 속에 한줄기 빛과 같은 느낌이다. 어둠 속에서도 끈질기게 빛을 잃지 않고, 섬세하고 아름답게 무지개와 같은 스펙트럼으로 갈라진다.
강렬하면서 진득하다. 아름답고 선명하다. 기본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시고, 설탕 한조각을 넣어 잘 저어 마시면, 강력한 질감 속에서 아름다운 향기와 커피가 뿜어내는 임팩트를 즐길 수 있다. 남반구 최고 스페셜티 커피 매장으로 손꼽히는 세인트 알리의 살바토레 대표는 한국을 방문해서 커피 리브레의 배드 블러드 블렌딩 에스프레소를 세계 최고의 커피로 손꼽기도 했다.
창립 14주년을 맞이한 커피 리브레는 한국인 최초 큐그레이더 서필훈이 설립했다. 보헤미안 서울의 팀장으로 핸드드립 커피 최고의 이론가였던 서 대표. 그는 2008년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의 커피 감정 자격증인 큐그레이더 시험에 통과했다. 커피생두를 감별하는 전문가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스페셜티 커피는 생소했다. 스페셜티 커피의 기본 개념은 커피빈의 물질적 속성을 탐구하고 생산자의 이력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긴 평가 기준은 양질의 커피를 판단할 새로운 근거가 됐고 스페셜티 커피는 어느새 현대인이 커피를 향유하는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2010년대에 벌어진 커피업계의 커다란 변화중 하나.
이 변화를 이끈 커피 리브레는 그래서 한국 1세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손꼽힌다. 서 대표는 첫 매장을 연남동 동진시장에 열며 스페셜티 커피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국내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연남동이 특별한 이유다.
신 연남점은 매장 입구에 푸어스테디 브루잉 머신이 도입됐다. 정교한 커피 추출을 가능케 한 첨단설비다. 한편 안쪽에는 과거 연남점 매장의 추억을 잇는 한약방 인테리어가 그대로 재현되었다.
커피 리브레의 마실거리
신메뉴 삼총사가 등장했다. 마로키노, 아포가토, 그라니타. 오직 연남점에서 맛 볼 수 있다. 마로키노는 에스프레소와 초콜릿 크림을 결합시킨 창작음료. 스팀화 시킨 초콜릿과 스페셜티 커피의 향미가 아름답게 공존한다. 여운이 오래 남는 음료다 .
그라니타는 레몬 소르베를 이용한 에스프레소 기반 음료다. 개인적으로 한국 최고의 수제 아이스크림으로 꼽는 펠앤콜이다. 소르베의 선명한 산미가 커피와 결합해 입체적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아포가토는 솔트 아이스크림을 사용한다. 팰앤콜의 솔트 아이스크림은 단짠이 선명하다. 향미가 분명한 커피와 만나 입 안의 감각을 풍성하게 만든다. 새단장에 어울리는 특별한 맛.
커피 리브레의 시그니처 디카페인 블렌드빈, 나이트호크 ⓒfrice
개인적으로 커피 리브레에서 추천하는 커피는 디카페인 커피이다. 과거, 디카페인 커피는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추출법이 주류였다. 화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위험한 방식이었다. 그나마 안전한 스위스 워터 방식이 나왔지만, 스페셜티 커피에 기대하는 향미에는 못 미쳤다.
최근에는 커피리브레를 포함한 선두업체들이 멕시코 고산지대의 청정수를 이용한 마운튼워터 방식으로 안전하고 친환경적으로 카페인을 제거하면서, 스페셜티 커피에 기대했던 아름다운 향미를 성공적으로 발현하고 있다. 우수한 디카페인 커피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다..
커피리브레는 연남점 재개장과 함께 <베스트 오브 파나마*> 대회 우승 농장인 핀카 하트만의 커피, 연남점 특별 블렌딩 동진시장, 디카페인 블렌딩 나이트 호크, 온두라스 <COE**> 1위 커피까지 준비했다. 이들의 원두는 주마다 라인업이 바뀐다. 브랜드에서 발신하는 뉴스채널을 구독해두면 다양한 커피 원두를 구입할 수 있다.
*게이샤 커피를 위주로 파나마에서 열리는 커피 경연대회. 해마다 옥션 가격이 세계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커피 산업의 올림픽과 같은 커피 경진대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의 머신 세팅은?
이들은 브루잉 커피를 만들 때, 말코닉 eK 43 그라인더를 사용한다. 업계 관계자 사이에선 커피빈을 섬세하게 분쇄할 수 있는 고급머신으로 평가받는다. 매장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로버와 라 마르조코를 조합한다. 로버 그라인더는 원뿔형 코니컬 그라인더인데 향미가 좋은 스페셜티커피와 궁합이 최적이다.
피렌체에서 전문가들에게 의해서 생산된 라 마르조코 에스프레소 머신은 모델에 따라서 온도조절, 압력조절과 같은 변수를 통제할수 있고, 스페셜티 커피 산업에서 가장 안정적인 추출을 선보이는 머신이다. 로버와 라 마르조코의 조합은 마치 F1 레이싱에서 페라리 머신과 미셰린 타이어와 궁합처럼 클래식하고 안정적이다.
연남동 대표 카페의 디자인 혁신
2012년. 커피 리브레 첫 번째 카페 매장이 열렸다. 연남동 동진시장 이불 가게를 개조했고 중고 자개 테이블과 한약방 서랍장으로 인테리어를 보충했던 소박한 매장이었다. 10여 년 동안 세계적인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순 없었다. 2023년 7월, 건물주의 요청으로 동진시장에 연 매장을 정리했다.
매장 이전은 디자인 리노베이션의 계기가 됐다. 구 연남점은 오래된 재래시장을 개조해서 방습, 방진이 취약했다. 특히 시장 내부 공중화장실이 매우 열악했다.
과거 스페셜티커피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서 매장을 꾸리기에 급급했다면, 현재는 디자인을 강화하고 있다. 커피 리브레 또한 신연남점을 통해 브랜드를 대표하는 공간을 대폭 개선할 수 있었다.
신 연남점은 경의선 철길 옆 건물로 낙점됐다. 20세기 중반 마포구에 흔히 보이는 20세기형 2층 단독 주택을 리노베이션.
신 연남점은 배리어-프리(barrier-free)를 강화했다. 1층 커피바는 어린이 환영, 반려동물 환영, 교통약자 이동권을 적극 반영한다. 어린이와 반려동물을 위한 편의용품, 단차없는 플로어, 교통약자를 위한 화장실을 설계했다. 개장 첫 날부터 새롭게 설계된 공간 디자인을 이용하는 손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커피 리브레 연남점은 새롭게 매장을 오픈하면서 브랜드 최초로 인테리어 전문 디자인팀과 함께 작업을 했다. 옛 매장은 레트로한 공간 인테리어로 눈길을, 새 매장은 손님편의가 우선이다. 안정적인 조명설계와 편안한 시각 요소들이 연남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카페를 방문한 이들에게 평안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새롭게 단장한 매장은 밝게 도색한 전면부와 입구의 천막이 시원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1층은 커피바와 약간의 좌석이 있고, 2층에 넓고 쾌적한 착석 공간이 준비된다. 이전 리브레 연남점 매장 환경이 매장 내 체류에 취약했던 것을 감안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매장 2층 전시된 그림은 구 연남점에 걸려있던 액자로 최근 NFT를 발행해 기부 프로젝트에 나서기도 했다. 이 또한 한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최초. 커피 리브레는 디지털 아트 소유권 증명서를 발행한 수익금액을 전액 기부했고, 앞으로도 다양한 작가들과 협업해서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한약방 약장’은 커피 리브레의 상징이다. ‘커피는 약’이라는 인상을 선사하는 흥미로운 인테리어. 약장은 사실 의도된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초기 창업 당시, 없는 형편에서 중고 가구를 끌어왔다. 버려진 가구를 세척해서 사용한 것이 본의 아니게 레트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동진시장 매장 오픈 당시, 커피원두를 전시하는 기물로 사용한 리브레의 약장은 한국적인 오브제로서 공간 분위기를 지배하는 인테리어 요소였다. 한국에 스페셜티 커피가 보급된 2010년대 초반, 레트로한 분위기를 연출한 한국 스페셜티 커피 매장에 공간 디자인 레퍼런스로 자리매김했다.
최고의 커피는 관계가 만든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미션(mission)을 알면, 커피의 아름다움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다. 커피 리브레의 경우, 세계 각국의 사연 있는 농장의 특별한 싱글 오리진 커피를 공급하는데 진심이다. 대표적인 예가 ‘파나마 핀카 하트만 게이샤’다. 핀카 하트만 농장의 게이샤 품종 커피는 한국에서 커피 리브레를 통해서 소개됐다.
게이샤 커피는 신의 커피로 알려지면서, 비싼 가격 때문에 화제를 모은다. 섬세한 향미와 절제된 단맛, 길고 여운있는 후미까지. 대부분의 커피인들이 최고로 손꼽는 커피이다.
하트만 농장의 게이샤는 한여름 작열하는 스페인 광장에서 마주친 플라멩코 댄서와 같이 활발하면서 정열적인 에너지를 방출하는 느낌의 커피. 하트만 농장은 파나마 커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서 생두경매가격이 크게 상승했지만, 커피 리브레를 통해서 이전과 동일한 가격에 생두를 제공한다. 스페셜티 커피인들의 세계에는 아직도 관계의 소중함을 바보같이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지를 직접 누비며 농장을 답사하고, 현지 농장주와 인간적인 유대감을 만드려는 노력. 이는 엘 카페, 모모스 커피, 나무사이로, 프릳츠, 커피 템플과 같은 국내 최고의 스페셜티커피 업체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 한국 최초의 스페셜티 커피 업체로 손꼽히는 커피 리브레의 연남점 재개장 소식을 전했다. 최근 스페셜티 커피 업계는 디자이너와 긴밀한 협업에 나서고 있다. 디자인 산업의 확대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는 이상을 추구한다. 그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접근방식은 소비자들에게 커피 경험의 확대를 만든다. 디자인을 강화한 최근의 시도가 선순환을 거두길 희망한다.
정리 프라이스
글/사진 심재범
장소 커피 리브레 연남점
심재범은 커피 컬럼니스트다. 전세계를 누비며 스페셜티 커피씬 트렌드를 기록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