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멜라민 그릇 = 떡볶이 접시 스테인리스 식기 = 스뎅 밥그릇 양은 사발 = 막걸리 잔 양은 그릇 = 양푼(양은) 비빔밥 흰색 멜라민 접시 = 반찬 그릇, 앞 접시
이 그릇들은 이미 이렇게 음식으로 대표 되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그릇, ‘K 그릇’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것들을 담으려고 애써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기도 하고, 입맛이 왠지 떨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요. 안의 내용물이 아무리 좋아도 그것을 담는 그릇이 내용물과 어울리지 않으면, 음식이 돋보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맛 역시 반감이 되죠.
아직 둘 다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자꾸 보니까 왼쪽은 괜찮은 것 같기도? ⓒfrice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어울림을 판단할까요? 그릇의 생김과 크기에 따라 음식의 담음새를 결정하고,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회적으로 학습된 관념에 의한 동조의 결과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값비싸고 고급스러운 그릇들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우리 곁에 남아있는 이러한 그릇들은 단순히 합리적인 도구를 넘어 이제는 추억이라는 맥락이 더해져 더욱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일상에서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학습된 관념을 인식하고, 형태, 크기, 소재를 통해 그릇이 전달하는 이야기를 이해하고 나니 새로운 음식을 담아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오늘은 익숙한 것들에 오늘만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와 기억을 담아내는 창조적인 활동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 그릇에 어떤 음식을 담아야 하는지 정답이 있다고 할 순 없지만, 우리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는 사회적으로 학습된 관념은 존재합니다. 이것들을 알고 있으면 그 문화권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죠. 우리의 일상에 숨어있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고, 거기에 새로운 이야기들을 더 담아보아요!
이 그릇들이 어떻게 우리 곁에 자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시다면, ‘한 그릇에 담긴 실용과 전통 – 20세기 K 그릇 탄생 비화’ 를 읽어보세요.
그릇은 내용물에 따라 다양한 모습과 이름으로 존재한다. 담긴 그릇에 따라 같은 음식이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릇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 존재하지만, 비워진 상태로 만들어지고 비워진 상태에서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추구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성과 양면성이 인간의 모습과 닮았고, 그 인간의 모습은 또 브랜드에 빗대어 표현되기도 한다.
실재의 그릇이 아닌 관념에 존재하는 그릇 이야기를 들어봤다. 브랜드의 의미를 찾고 만드는 엘레멘트컴퍼니의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최장순이 기호학적 관점으로 ‘그릇이라는 세계’를 전달한다.
저마다 다른 모양의 그릇이 모여 식탁 위의 스카이라인을 만든다. ⓒUnsplash의 Tom Crew
그릇은 식탁 위의 건축
그릇은 기계다. 기계는 흐름을 절단한다(Gilles Deleuze). 그릇은 밥상의 흐름을 절단해 아침 식사와 티타임을 생산한다. 여러 모양, 높이, 폭, 재질로 구성된 그릇은 저마다의 이합집산을 통해 식탁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한다.
그릇은 채소의 흐름을 절단해 ‘샐러드’를 만들고 조리된 쌀의 흐름을 절단해 ‘밥’을 만든다. 쟁반에 널려 있는 채소 조각 무침을 ‘샐러드’라 할 수 있을까. 그릇(Bowl)이라는 형식의 배제는 샐러드의 부재다. 같은 음식이어도 작은 그릇에 담기면 반찬이 되고, 밥그릇에 담기면 주식이 된다. 그릇은 음식의 의미를 규정짓는 기표(記標)이면서 대중적인 파롤(Parol)이다. 음식이라는 ‘내용’보다 그릇이라는 ‘표현’이 더 중요한, 이미지 대량 생산의 시대가 된 지 오래다.
AI 이미지 생성툴 MidJourney를 이용해 만든 그릇. 우주를 담은 그릇이면서 형태가 없는 그릇을 의도했다. ⓒ최장순
그릇은 의미를 생산한다
심연의 묵직한 무언가에만 핵심이 있다고 믿는 고지식한 본질주의자들은 발작적으로 형식을 무시하려 한다. 이들은 그릇의 형식보다 그것의 ‘담아낸다’는 기능을 중시하고, 그릇의 디자인보다 음식의 품질과 영양을 중시한다. 하지만 형식 없는 내용은 없다. 그릇은 그저 무언가를 수동적으로 담아내는 도구적 존재가 아니다. 그릇은 자신이 품고 있는 내용물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혁명적 실천가’이자, 의미를 다른 차원으로 탈바꿈시키는 ‘능동적 기호학자’다.
머그컵은 음료를 위해 제작됐지만, 나는 가끔 머그컵에 쌀밥을 담아 돌아다니며 먹곤 한다. 콘플레이크는 음료와 쌀밥 중간 지점에서 머그컵에 담길 수 있는 손쉬운 내용물이다. 이 경우 머그컵은 쌀밥을 보다 캐주얼하고, 포터블(portable)한 새로운 음식으로 리포지셔닝(repositioning)한다. 형식은 내용을 생산한다.
그릇을 그저 ‘담는다’는 동사의 동의어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담기는 그 무엇’에만 관심을 갖는다. ‘마음이 중요하니 상갓집 복장은 대충 입고 가도 돼.’ ‘내 의도가 중요하니 말투는 좀 거칠어도 상관없어.’, ‘제빵 실력이 중요하니 빵은 대충 못생겨도 상관없어.’라는 식의 생각은 몸, 말, 디자인 등의 형식에 의미를 두지 않는 태도다.
하지만 몸, 말, 사물에는 모두 저마다의 그릇이 있다. 종종 그 그릇의 형식은 담기는 내용과 의도보다 훨씬 중요할 때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형식 없는 의미는 공허하다. 마찬가지로 의미 없는 형식은 맹목적이다. 형식과 내용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태도는 건강에 좋지 않다.
이름은 브랜드를 담는 그릇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특정 용도에 맞게 제작된 제한적인 그릇이 되어선 안 된다는 공자의 말씀이다. 특정한 좁은 분야로의 전문적 기술에만 천착하지 않고, 전인적 인간으로서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의 육예(六藝)를 비롯한 역량을 두루두루 갖추라는 의미다. 이때 그릇은 ‘전문성’이다. 컨셉이나 이름을 만들 때, 그릇은 전문가의 탈을 쓰고 소환된다.
전문적인 특정 영역을 지칭하는 네임을 만들 땐, 주로 좁다랗고 긴 컵을 예로 들었다. ‘킥고잉(Kickgoing, 킥보드)’, ‘일렉클(Elecle, 전기자전거)’ 같은 네임은 좁고 길다란 그릇에 해당한다.
반면, 특정 분야의 전문가 같은 그런 그릇이 아니라, 다양한 사업군을 두루 포괄하는 큰 그릇 같은 브랜드 네임도 있다. 기업 브랜드 네임은 많은 사업군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넓은 접시나 대접에 비유되곤 한다. 특정 제품군을 연상시키지 않는 ‘애플(Apple)’이나 ‘삼성’같은 이름은 특정 사업군에 국한되지 않는, 큰 대접 같은 이름이다.
그릇은 그저 수동적으로 담아내기만 하는 사물이 아니다. ⓒUnsplash의 Rahul Kumbhar
정말 큰 그릇은 어떤 형태일까.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하였다. 일반에서 알고 있는 의미와 달리 이 말은 ‘큰 그릇은 완성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큰 그릇엔 형태가 없다. 형태 없는 그릇, 그래서 모조리 담을 수 있는 우주와도 같은 그릇. 일찍이 지혜로운 자들은 스스로 그런 그릇을 닮고자 내 몸을 작은 우주라 생각해 왔다. 그릇을 통해 우주를 보고 스스로를 우주에 맵핑한 것이다.
그릇은 그것이 담아야 할 내용물에 따라 깊이와 폭, 모양, 재질 등을 달리하며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사발, 접시, 찻잔, 놋그릇, 뚝배기, 주전자와 같은 식기류가 있는 한편 솥, 항아리, 도시락 통처럼 우리와 함께 살아온 대표적인 그릇도 있다. 신석기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빗살무늬토기 또한 그릇이다. 임진왜란을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찬탈 대상이 되었던 도자기 역시 대표적인 우리네 그릇이다.
브랜드는 각자의 철학과 가치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릇 또한 그렇다. ⓒUnslplash의 Angèle Kamp
브랜드와 그릇
브랜드 또한 그것이 담아야 할 철학과 가치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브랜드는 그릇을 닮았다.
트렌디하고 유행을 잘 따르는 패션 브랜드들은 접시와 같다. 친환경 생태주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는 ‘파타고니아(Patagonia)’는 탄탄하고 두께감 있는 텀블러를 닮았다. 지구를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전환시키고 최대한 수명을 연장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지구를 만들겠다는 ‘테슬라(Tesla)’ 또한 텀블러다. 조금은 더 세련되고 멋진 텀블러.
지속적으로 ‘안전’을 강조하며 세계 최초로 3점식 안전벨트를 고안했던 ‘볼보(Volvo)’는 공동체에 필요한 깊이 있고 은근한 맛을 담아내는 뚝배기와 같다. 에너지, 반도체 등 원천에 비유할 수 있는 기업 브랜드들은 항아리에 견줄만하다. 항아리에 담긴 양념과 장은 모든 요리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식재료이니까.
‘갤럭시(Galaxy)’, ‘아이폰(iPhone)’과 같은 모바일 브랜드는 다채로운 음식을 자주 바꿔 채우는 도시락통과 같다. 이처럼 그릇은 비즈니스를 통해 세계를 대하는 서로 다른 태도와 관점을 보여주는 좋은 교보재가 되기도 한다.
비워져 있어야 비로소 채움이 가능하다. ⓒUnsplash의 Konrad Wojciechowski
비워야 담는다
본질주의자의 시선을 따라, 그릇의 본원적인 기능을 ‘담아내는 것’으로 보자. 하지만 담기 위해선 비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릇의 본질은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비워져 있는 것’이다. ‘비움’은 언제나 ‘채움’에 선행한다. 비움과 채움의 이항대립으로부터 4가지 유형의 인간상을 유추할 수 있다. 비우는 사람, 채우는 사람, 비움을 거부하는 사람, 채움을 거부하는 사람.
1. 비우는 사람 그릇은 그 물리적 구조에 따라 비움과 채움이 동시에 공존하는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릇을 닮은 사람은 비우고 채우는 행위를 매우 자연스럽게 하는 성인(成人)이라 할 수 있다(이 정상적인 행위는 사실 매우 높은 도력을 요구한다).
2. 채우는 사람 비움을 거부하고 채워가려는 사람은 부지런히 공부하는 학생과 같다.
3. 비움을 거부하는 사람 비우는 것도 거부하고 채우는 것도 실패한 사람은 배우지도 않고, 스스로 욕심을 내려놓지도 않는 유형의 사람이다. 오만과 독선으로 점철된 고집불통이라 해도 마땅하다 할 것이다.
4. 채움을 거부하는 사람 우리는 채우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끊임없이 비워내는 허욕(虛慾)의 사람, 스스로 이 세계에 대해 일체의 욕망도 갖지 않는 높은 도력의 선인(仙人)을 만나기도 한다.
ⓒUnsplash의 Tom Crew
삼라만상이 그릇이다
살다보면 스스로는 아직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세계를 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얕은 지식과 관점으로 세상의 끝을 보기라도 한 듯 오만과 고집의 표본이 되는 사람도 있다. 조용히 세계를 학습하는 성실한 사람도 있고, 일체의 인위적 배움을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비움을 추구하는 존재도 있게 마련이다. 이처럼 이 세상엔 수많은 그릇이 있다.
오랜 세월을 지키다 이가 나간 그릇부터, 예쁜 한 때의 모양을 뽐내며 매대 선반을 런웨이 삼아 당당하게 진열돼 있는 화려한 접시들까지 모두 공존하며 긍정돼야 할 존재다.
그릇은 내용을 담고, 내용을 생산한다. 몸, 말, 사물, 브랜드까지 모두 그릇을 닮아 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릇을 닮았다. 우리는 그릇에서 삶의 철학과 세계관을 엿본다. 그릇을 통해 엿본 광대한 우주는 우리를 작은 점으로 만들지만, 우리는 이내 그 우주를 그릇에 담는다.
😈 기호학은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 세상의 많은 것을 그릇에 빗대는데요. 그릇이라는 기호를 통해 어떤 의미가 탄생하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공통점이 없는 낱말과 낱말을 묶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는 지적인 여행. 즐거우셨나요?
지금까지 알려진 우리나라 가마터는 1,350여 기. 고려-조선의 융성한 도자기 문화는 일제 강점기, 전쟁과 근대화를 거치며 자취를 감추었고, 그중에서도 나무토막을 태워 그릇을 얻는 전통적인 가마는 기술 발전과 제작 비용 증가를 이유로 현재 수십 여 곳만 남아있다. 프라이스는 강원도 양구의 도자기 작업장을 다녀왔다. 가마에 온종일 불 때는 날이었다.
가마를 보는 도예가들. 그들은 하루 종일 불상태를 보고 마른 소나무 장작을 가마에 집어넣는다. ⓒfrice
전선을 간다
경춘국도 주말 교통체증을 빠져나오자 소양강이었다. 차는 강변 꼬부랑길을 누비며 태백산맥 터널을 가로지른다. 도로에서만 세 시간. 오전 6시에 출발한 차가 강원도 양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먼 길 달려 도착한 취재처는 휴전선 옆 가마터. 그릇을 굽는 부자(父子) 도예가의 작업장이다. 높게 치솟은 산이 가마터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었다. 외딴곳이었다.
가마의 이름은 조령요. 나무를 태워 그릇을 굽는 곳이다. 도착하니 굴뚝에서 새카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frice
어떤 흙에는 특별한 돌이 섞여 있다. 새하얀 흙이 강원도 양구의 지역특산물이다. ‘양구 백토’는 조선 후기에 인근 도요지로 흘러가 백자 제작에 쓰였고, 양구 백토로 만든 백자는 조선 왕실에서 따로 챙겨 쓸 정도였다. 양구 백토는 인기가 좋았던 모양이다. 숙종 27년, 국영 가마인 사옹원 분원 사기장들이 상소를 올렸다. 양구 백토가 아니면 백자 품질이 떨어진다며 양구 백토를 다시 공급해달라는 요구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내용이다.
오늘날 양구 백토는 환경보전을 이유로 채취가 제한되고 있어 여전히 귀한 대접을 받는다. 양구 백토는 지자체 주도로 1년에 300kg씩 지역 내 작가에게 분배된다. 몇몇 도자 공예가들이 터를 옮겨 양구에 정착하는 이유다. 카올린(kaolin, 고령토)이라 부르는 점토와 양구 백토를 섞어 그릇을 만들면, 우리가 익히 아는 조선백자가 탄생한다.
11월 초 가을인데, 양구는 벌써 영하권 추위였다. 불기운 덕인지 가마터 분위기는 어쩐지 따뜻했다. ⓒfrice
도착했을 때, 기물은 이미 가마에 들어간 상태였다. 작업자들은 동료와 함께 불 때기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마에서 전해지는 열기는 캠핑장 화롯불과는 차원이 다른 화력이다.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가마 주변을 천천히 살필 수 있었다. 쉬고 있던 작업자들은 먼 길을 달려 온 손님에게 따뜻한 차와 군고구마를 대접했다. 따뜻한 환대였다.
작가들은 가마 입구를 봉통(아궁이)라 부른다. 그릇 굽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frice
불멍하며 생각한 것
가로 3M 세로 20M 폭의 커다란 도자 가마. 온도는 1,300℃ 이상 올라간다. 쇠도 거뜬히 녹일 만큼 뜨겁다. 이런 걸 통제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언뜻 보기에도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일단 부동산이 필요하다. 그릇 굽기 좋은 입지를 골라, 인적이 드문 곳에 가마를 지어야 한다. 운영비도 많이 든다. 야적장에 쌓인 땔감 구입비와 운송비용이 만만찮아 보였다. 인력수급도 골칫거리일 것이다. 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땀 흘려 일할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귀하니까.
가마의 모든 면을 둘러보았다. 봉긋하게 줄지어 있는 가마의 측면 그리고 뒤에서 바라본 가마의 모습. 갈라진 흙벽이 인상적이다. ⓒfrice
그럼에도 도전하는 이유는 경제 논리가 아니라 오직 예술 논리에서 나올 것이다. 왜 그릇을 굳이 전통적인 가마에 굽나? 이런 가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그런 게 정말 있긴 한가? 의문이 생겼다.
먼저 나무 장작을 태우는 가마터 입지가 따로 정해진 건지 물었다. 프라이스를 이곳에 초대한 신현민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첫째, 좋은 흙이 나는가. 둘째, 주변에 민가가 없는가.” 작업하면 연기가 피는데, 사람 사는 동네가 가까우면 결국 민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도공이 마음 편하게 일할 곳을 찾았고, 그런 곳을 찾다 보니 휴전선 인근 깊은 산골짜기에 가마터를 잡게 됐다.
기물을 방에 채우면 진흙으로 문을 막는 벽을 만들어 웃풍을 차단한다. ⓒfrice
조선시대 도자가마처럼
양구 조령요는 조선시대 백자 도요지를 본뜬 계단식 가마터로, 20° 이상 경사면에 기물 넣는 방을 다섯으로 나눈 흙가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도자 가마’ 내용에 따르면, 조령요식 가마 구조는 16세기 이후에 등장한다. 고려-조선 초기엔 봉통(아궁이)부터 굴뚝까지 길게 연결된 가마를 지었는데, 조선 중후기부터 일정 간격마다 격벽을 설치해 가마 내부가 작은 방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이를 ‘지상식 연실 등요’라 부르는데, 이는 17세기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도예 이론에 밝은 전문가들은 도자기 굽는 가마를 형태, 구조, 사용 연료 등에 따라 좀 더 섬세하게 분류한다. 예컨대 양구 조령요는 경사면을 따라 길게 놓인 구조를 감안하면 ‘오름가마’ 혹은 ‘너구리가마’, 진흙으로 지었기에 ‘토축요’. 그릇 굽는 공간을 구분했기에 ‘칸가마’로도 부를 수 있다. 현장에서 만난 작가들은 ‘장작가마’라 불렀다.
육송이 양지바른 곳에서 건조중이다. 나무토막의 세계에도 나름 질서가 있다. 가마터의 모든 장작은 건축적인 계산을 마친 상태로 보관된다. ⓒfrice
소나무 껍질은 불에 닿는 순간 튀고, 가마 안 기물에 닿으면 그릇에 잡티로 남는다. 육송을 3년 간 야적하면 소나무 껍질이 저절로 벗겨진다. 잘 마른 소나무를 쓰는 이유. ⓒfrice
조령요는 소나무를 태우는 도자가마다. 3년 말린 육송을 태우면 재를 거의 남기지 않는다. 깨끗하게 탄 땔감은 가마화력상승에 기여한다. ⓒfrice
“가마 안에서 불은 기운이 약한 곳으로 빠집니다. 불이 가마 안에서 골고루 퍼지게 사람이 도와요. 불이 빠지는데 나무를 제대로 못 넣으면 그릇을 망쳐요. 유약 같은 게 제대로 안 녹는 거죠.”
통나무를 쪼개고 나면, 이제 불과 씨름해야 한다. 불길을 원하는 대로 이끄는 게 도예가의 역할이자 작가역량이다. 작가들은 땔감이 잿더미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자리에 다시 다른 땔감을 채운다. 가마 앞 온도는 이미 신발 밑창이 녹을 정도로 뜨겁다. 그럼에도 그들은 용감하게 원하는 위치에 나무토막을 채워 넣었다. 가마 속 불길이 다시 치우침 없이 고르게 퍼져 일렁였다.
가마의 이름은 일반적으로 ‘XX요’라 짓는다. 한자는 기와 굽는 가마 ‘요窯’를 쓴다. ⓒfrice
가문의 영광
도자공예는 신현민 작가의 가업이다. 신씨 집안 남자들은 대대로 가마를 지어 한국 전통 도자를 연구한다. 가마의 이름은 왜 조령요일까? 조령은 경상북도 문경의 고갯길로, 신현민 작가의 할아버지 신정희 사기장이 첫 개인 가마를 지은 곳이다.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손자가 선대의 작업 정신을 잇겠다는 다짐을 담아 이름 붙였다.
신경균 도예가(오른쪽)가 가마터 작가들에게 주의사항을 안내하고 있다. 그는 신정희 사기장의 셋째 아들로, 2세대 작가다. 사기장의 아들 4형제가 모두 도자기를 만든다. 3세대 신현민 도예가(왼쪽)는 아버지의 전담 조수로 움직인다. 장작 패기부터 가마 불 감시까지, 수고로운 일을 모두 감당하는 작업반장 역할이다. ⓒfrice
아버지 신경균 작가는 3세대 작가의 재능에 경험을 더한다. 신경균 작가는 대학 시절엔 조선시대 지방 도요지를 연구했고, ‘세종실록지리지’ 같은 고문서에 기록된 도요지 수백 여 곳을 직접 답사했다. 한국 전통 도자기를 들고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인전을 펼친 아버지는 2022년 5월, 아들 신현민과 일곱 번째 가마를 지었다.
신경균 작가가 오랜 세월 연구한 주제는 달항아리(백자 대호). 백토를 구할 수 있는 양구에서 백자 생산에 적합한 가마를 지어 아들과 함께 도요지를 경영하는 이유다. 세상에는 직접 해봐야 배울 수 있는 경험이 있다. 공예가의 실전 노하우가 가마터에서 전수되고 있었다.
가마를 떠받치는 주춧돌. 가마 근처는 어딜 가더라도 카메라를 대는 순간 얼굴 표정이 일그러질 정도로 뜨거웠다. ⓒfrice
가마는 숨을 쉰다
불 때는 봉통에서 사람 숨소리 같은 게 들린다. 소리는 규칙적으로 반복됐다. 현장 작업자들은 “가마 예열이 순조롭다는 징조.”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가마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느껴졌다.
가마 불을 때기 전, 도예가들은 가마 앞에서 큰절을 올리고 작업을 시작했다. 경건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릇의 안녕과 무사를 기원했다. 가마를 만든 건 사람의 일이나, 거기서 기막힌 예술작품이 나오는 건 하늘의 몫이라는 태도였다.
봉통 위에 올라간 물그릇. ⓒfrice
깨끗한 물을 띄운 이유는 가마신에게 예를 갖추기 위함이다. ⓒfrice
“꺼내려면 아직 한참 남았는데, 못 참고 꺼내고 싶을 때가 있어요.”
현장에서 만난 작가들은 가마에서 완성된 기물을 꺼내는 순간이 도예 활동의 커다란 낙이라 말했다. 재벌구이를 마친 그릇을 마주하는 순간이 가장 들뜬다는 것이다. 그들은 “버리는 그릇도 만만찮게 많지만, 양품을 건졌을 때의 희열은 고된 노동을 창작으로 승화시키는 힘.”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작업자들은 양품 도자를 상상하며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숨 쉬는 가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마 속 불길을 조율한다. 불침번처럼 교대근무를 서기도 한다. 봉통에 꾸준히 소나무를 던져 불기운을 보살피는 시간은 대략 20시간. 그 후론 그릇을 식히는 시간을 1주일 정도 갖는다. 흙문을 허물어 기물을 조심스럽게 꺼내, 검수를 마치면 가마터에서의 작업이 끝난다.
신현민 작가가 스마트폰을 꺼내 보여준 사진. 봉인된 흙문을 허물자, 시선의 끝에 아름다운 백자 대호가 나타났다. 잘 구운 달항아리는 정말 달처럼 생겼다. ⓒ김잔듸
MADE IN 장작가마
“장작가마에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이 있어요. 그게 그릇에 독보적인 멋을 만들어요.”
3세대 도예가 신현민은 가마의 속사정을 전했다. 가마 밖 환경은 어떻게든 통제할 수 있지만, 안에서 불이 휘는 건 당시 날씨나 지역별 기후의 변수도 있다는 것이다. 같은 모습으로 빚은 그릇이 각자 다른 개성을 부여받는 이유다. 신 작가는 전통식 도자가마의 특장점을 고기 굽기에 빗댔다. 전기가마가 가정집 전자레인지라면, 장작가마는 캠핑장 숯불 그릴이라는 것이다. 고기가 익는 건 매한가지지만, 조리 환경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그릇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성형을 마친 그릇을 날붙이로 깎는다.
신현민 작가는 요즘 ‘면치기’라는 기법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찾고 있다. ⓒfrice
우연은 작품 조형에도 영향을 미친다. 불을 너무 많이 쫴서 기대했던 것보다 많이 수축했는데, 결과적으로 실루엣이 더 자연스러운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신현민 작가는 이런 설명을 보탰다.
“그릇을 입에 댔을 때 닿는 느낌. 그릇을 손에 쥐었을 때 느끼는 실감. 그런 걸 미세하게 조정하면서 만족하는 포인트를 찾아내요. 도자기 만드는 사람들은 이제 여기서부터 들뜨기 시작해요. ‘이런 걸 불에 구워내면 어떤 모습일까?’ ‘그릇이 어떻게 나올지 너무 궁금해!’ 생각한 대로 결과물이 나오면 그만한 희열이 없어요.”
가마터 구경을 마치고 1주일 후. 그릇 사진이 도착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각병이었다.
신현민 작가는 기대했던 것보다 비례가 아쉽지만, 봐줄 만한 작품이라 평가했다. 그는 아마 마음에 드는 작품을 얻을 때까지 계속 같은 과정을 반복할 듯싶다. ⓒ김잔듸
가마터 주변에 흩어진 그릇 조각들. 초벌 과정에서 깨진 파편이 흩어져 있다. ⓒfrice
기대를 밑도는 작품은 가차 없이 깨지기도 한다. 예술작품으로서 납득 가능한 경지에 오른 그릇이 공예시장에 등장할 기회를 얻는다. ⓒfrice
과정이 특별하면 사고 싶다
그릇처럼 일상에서 실질적인 쓸모를 갖는 공예품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한국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도자기는 어떤 기준으로 사야 할까?
그런 걸 알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신현민 작가의 양구 가마터 초대는 그런 점에서 특별했다. 덕분에 잘 몰랐던 것을 잘 알게 됐다. 소나무 장작 냄새가 몸에 밴 불멍도 특별했지만 말이다. 강원도 양구에서 배운 것은 도자기의 품격이었다. 제작 과정을 향유하는 즐거움이 으뜸이다. 나는 앞으로도 공예가의 손끝을 바라볼 것 같다.
😈 전통 도자는 제작이 수고스럽지만, 과정을 향유하는 기쁨이 큰 것 같아요. 사람들이 도자 공예품에 높은 가치를 매겨 거래하는 이유는 성실한 창작자의 ‘역량’과 오름가마 특유의 ‘우연성’이 아닐까요.
전통이나 예술 같은 추상적인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작가의 생활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여러분 곁에는 어떤 도자기들이 있나요? 어떤 가치와 감성을 곁에 두고 있나요?
2023년 여름, 프라이스는 부산 문현동을 방문했다. 도예가들이 팀을 이뤄 그릇을 만들고 있었다. 도자 공방에서 지켜본 것은 전통공예와 산업디자인의 융합이다. 이들은 개인 창작과 외주의뢰를 병행한다. 숙박업계나 유통업계에서 제작을 맡긴 수제그릇은 공예품이지만 공장 못지않은 생산량이 요구된다. 그들은 산업 디자이너처럼 생산 최적화를 고민했다. 젊은 한국 도자공예가들의 분업을 바라보며 알게 된 것을 정리했다.
2023년 2월에 문을 열어서 공방이름은 ‘이월(二月)’.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복층 양옥집 1층을 공방으로 개조했다. ⓒfrice
노동이 아니라 협동
“내도 내 하나 잘 났다고 잘 되는 기 아인데! 마음 맞는 아-들이랑 같이 잘 해볼라는 게지요.”
흙투성이 사내가 맨발로 프라이스를 맞이한다. 이름은 신현민. 부산-경남지역에서 활동 중인 도예가로 경성대학교 공예 디자인학과 졸업생을 부산 문현동에 모은 장본인이다.
그는 ‘n인조 분업’을 시도한다. 팀리더의 고민이 반영된 도자 제작 시스템이며, 도제식 도자 공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부산 기장군에서 전통 도자를 연구하는 아버지에게 가업을 물려받고 있다. 아버지는 달항아리 연구로 유명한 신경균 작가. 미대에서 학습한 공예이론과 부친과 함께 장작가마를 운영하며 얻은 실전경험이 든든한 자산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자산을 동료 작가와 공유하길 원한다.
# 빚기
홍성주 작가와 최한슬 작가가 토련기를 만져 흙덩어리를 뽑아낸다. 이 흙을 빚으면 그릇성형이 시작된다. ⓒfrice
작가들은 분업 중 특정 업무를 전담하지만, 결과적으로 청소부터 그릇을 버리는 일까지 모두 경험한다. 분업역할을 반복 수행하며 책임감과 실전감각을 얻는다. 이는 아카데미에서 학습하기 힘든 도자 제작 경험이다. ⓒfrice
신현민 작가는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교훈 중 ‘분업’을 힘써 이식하려 한다. 이유가 있다. 그가 직접 보고 배운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따라 가마터에 가면 일하는 어른들이 많았고, 그릇 제작에는 여러 사람이 달라붙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사람이 적게는 20명, 많게는 30명 정도 참여했다고. 작가뿐만 아니라 장작 패는 사람, 불 때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이 모여 각자 자기 몫을 했다는 것이다. 신 작가 자신도 어려서부터 작업을 도우며 실전경험을 쌓았다.
“저는 도자제작의 기본이 ‘분업’이라 생각합니다. 기계도입과 설비개선으로 필요한 인력은 줄었지만요.”
#말리고, 굽기
가지런히 포개진 그릇들. 선반에는 온도 조절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환경에 알맞게 건조할 수 있다. 잘 마른 그릇은 가마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 ⓒfrice
인천 남동공단 제조업체에서 특수제작한 전기가마. 작품이 가마에 들어간다. 불은 가마 안에서 제멋대로 휜다.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이 수제그릇에 고유한 멋과 감성을 부여한다. ⓒfrice
# 완성된 그릇
불을 쬔 그릇은 저마다 다른 흔적을 품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운명처럼 주인을 만나 고유한 존재감을 뽐낼 것이다. ⓒfrice
길쭉한 병을 다듬고 있는 신현민 작가.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작품의 샘플이다. ⓒfrice
디자인 호텔에 도자공예품 채우기
이들의 분업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건 라이프스타일 산업군의 공예품 수요다. 고급 뷰티 제품이나 희귀 건강식품처럼 격식과 예우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선물이 인기를 끄는 가운데, 최근 들어 주목받는 물건이 바로 수공예품이다. 특히 제작 목적이 뚜렷하고 만듦새가 빼어난 공예가의 도자 그릇은 쓸모도 인기도 많다.
귀얄기법을 시연하는 신현민 작가. 전통 귀얄붓은 주로 돼지털이나 말총을 묶어 만드는데, 작가는 수수빗자루를 쓴다. ⓒfrice
귀얄기법이란 분청사기 장식기법 중 하나. 넓고 굵은 붓으로 그릇 위에 백토를 발라 비정형 무늬를 새긴다. ⓒfrice
숙박업계도 도자공예를 주목하는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중 하나다. 취향의 세분화, 소비 양극화 등의 영향으로 대중의 소비 기준이 높아졌다. 대중이 상업 공간에 기대하는 경험은 ‘특별함’이다. 업계 실무자는 ‘특별함’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고민한다. 그중 ‘미적 체험’은 숙박업계 실무자가 채택하는 전략 중 하나. ‘공간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객실과 로비에 예술성이 깃든 오브제를 배치하고 있다. 부산 문현동 도자 공방은 이런 대중적인 공예작품 수요를 공략하고 있었다.
귀얄 기법을 활용한 화병. 무심하게 덧칠한 유약의 모양새와 산화철이 타며 검게 그을린 비정형 무늬가 인상적이다. ⓒ더블유디자인그룹
2023년 상반기, 호텔사업을 전개하는 더블유디자인그룹이 한옥을 주제로 공예적 미감을 표현하는 객실을 기획했다. 클라이언트는 전통적이면서 모던한 도자기를 원했다. 도예가 크루는 호텔사업 실무자에게 전통기법을 응용한 꽃병, 인센스 홀더, 컵 등의 도자그릇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손발을 맞춰 본 도자공예가의 분업은 성공적인 납품을 가능케 한다.
거친 원토를 1250℃ 장작가마에서 구워낸 까만 도자컵. 호텔 객실로 퍼져 한국적 미감의 경험을 전달할 예정이다. ⓒ더블유디자인그룹
작가는 솜씨를 발휘할 기회를 얻고, 의뢰주는 만족스런 품질의 수공예품을 대량으로 획득한다. 실무자의 의지와 기업의 여러가지 속사정이 반영된 끝에 탄생한 릇이 결과적으로 도자공예의 대중화에 기여한 셈이다. 공예가가 디자이너로서 라이프스타일 산업군의 수요를 받아 창작에 나서는 건 비단 부산 문현동 공방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의뢰인의 제작예산에 맞춰 공예가의 미감을 발휘한 그릇은 레스토랑이나 라이프 스타일 편집샵 등, 한국의 상업공간을 조금씩 채워나가고 있었다.
날카롭게 벼린 끌로 굽을 파는 신현민 작가. 새롭게 만들어 보려는 항아리의 조형을 테스트하고 있다. 최소 주 2회 공방에 들른다는 신 작가는 분업이 없어도, 각자 공방에서 도전과제에 몰입한다고 말했다. ⓒfrice
물리적인 실감과 성장
“우리요? 크루(CREW)라는 표현이 적합하지 싶어요. 힙합 레이블 같은 거죠. 개성있는 창작자가 모여 같이 성장하고 배우자는 겁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공예판에서 도예가를 육성하는 방식은 크게 바뀌었다. 오늘날 도예가는 대부분 대학에서 배출된다. 장인의 공방에서 숙식하며 도자기를 배우겠다는 낭만은 이제 없다. 보따리짐 매고 찾아와 제자로 받아달라는 예비 작가는 자취를 감췄다.
신현민 작가는 운좋게 가족을 통해 도제식 공예교육을 받았으나, 모두가 그런 기회를 누리진 못한다는 걸 주목한다. 경험과 실력을 따르는 위계서열, 책임지는 리더십, 리더의 하향식 업무 분배, 작업능률 향상. 신 작가는 도제식 교육의 효과를 점검하고 팀리더로서 장점을 이식하는데 집중한다.
분업이 끝나고 이뤄지는 공방에서의 집단 창작연구는 젊은 도예가가 쉬지 않고 실력을 쌓을 수 있는 힘이다. 각자 관심사에 맞춰 연구주제를 정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어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다. 팀리더 신현민 작가에게 동료작가의 연구작 소개를 부탁했다.
연구하기
왼쪽부터 이홍준, 최한슬, 홍성주 作
이홍준 작가의 ‘도자 에어조던 1’ ‘ 스니커즈를 흙으로 만들어도 원작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는가?’라는 주제의식으로 만들었다고. 이 작가는 요즘 한국산 도자기를 외국인에게 파는 일에 관심이 많다.
최한슬 작가는 의례용 항아리를 연구한다. 연구주제는 죽은 사람을 기리는 항아리. 망자와 함께 땅에 묻히는 부장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실용적인 쓰임새보다는 문화적 맥락을 고민하는 실험작이다.
홍성주 작가는 도자 조형물을 탐구한다. 조각칼로 흙덩이를 깎아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인센스홀더를 만들었다.
신현민 작가는 미대 졸업이 요리학원 자격증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자격증을 딴다고 반드시 맛있는 음식을 한다는 보장이 없듯, 미대 졸업했다고 좋은 그릇을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배운 틀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열심히 성실히 꾸준히 도자기를 만드는 건 원데이 클래스 학생이나 평생교육원에서 배운 사람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작가생활을 하려면 흙과 유약을 연구하고 도전 과제를 수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문득 박물관에서 본 ‘조선시대 가마터’가 떠오른다. 수백 년 전 도공은 평소엔 왕실이나 관아에 납품할 그릇을 만들고, 여유가 될 때 만들고 싶은 그릇을 빚었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도예가는 생계를 책임지고 나면, 나만 만들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몸과 정신을 연결해 손기술을 발휘하고 그릇에 특별한 감성을 부여하는 삶. 그런 삶이 담긴 그릇은 오늘도 내일도 귀하게 대접받을 것이다.
😈 효율화 된 분업은 두 가지 장점이 있네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작가 활동의 기초를 닦게 만듭니다. 혼자서 서너 시간 걸릴 작업을 여럿이서 한 두시간 안에 끝내는 것은 가성비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의 지향점과도 닿아있습니다. 분업과 협동으로 ‘책임감’과 ‘실력’을 쌓는 것. “나만 아니면 돼!”라는 유행어가 밈처럼 도는 세상이라 더욱 귀한 마음씨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분은 어떤 식으로 일하고 계신가요?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과 어떤 시스템을 갖춰 성장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박성극 작가는 재일교포 3세로 일본 시마네현에서 자랐다. 26살, 한국 여행 중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도자기에 매료되어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됐다. ⓒfrice
한지 시리즈 hanji series (2018) 한지(韓紙)의 질감을 간직한 백자 식기. 얇지만 단단하다. 방망이로 백자토를 두들겨 밀도를 높이고, 높은 온도(1280~1300℃)에서 환원소성하여 강도가 세다. 건조-소성 과정에서 생긴 변수는 한지 백자에 ‘자연스러운 선(line)’과 멋을 더한다.
박성극 경기도 이천에서 도자기 작업을 한다. 요즘엔 차(茶)도구 제작 실험에 푹 빠져있다.
SNS @parksongkuk 판매처 CHAPTER 1, 리움스토어
2023년 여름 한남동 라이프스타일 편집샵 ‘챕터 원’에서 열린 테이블웨어 판매전시. 새로운 조형을 지닌 백자 식기를 만날 수 있었다. ⓒfrice
흙에서 한지의 물성을 찾게 된 순간이 궁금한데요!
한지 백자는 2018년에 ‘자연스러운 선(line)’이라는 주제로 그릇을 만들 때 얻었어요. 한 달에 한 번. 스스로에게 새로운 주제를 던져서 도전적인 실험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한지는 인공적인 사물이지만, 찢어진 테두리나 주름 같은 건 보기에 자연스러워서 그 느낌을 흉내 내고 싶었어요. 알갱이가 굵고 거친 흙을 섞어본 거죠. 여러 가지 모습을 만들다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릇이 얇으면서도 단단합니다.
닥나무 종이가 지닌 자연스러움, 나무껍질로 짠 종이의 물성을 흙으로 표현했어요. 흙으로 한지를 표현하려면 모양을 얇게 떠야 합니다. 얇게 뜬 흙은 말릴 때나 구울 때, 외부 영향을 쉽게 받아 휘는데요. 휘어진 흙의 곡선으로 멋을 내고 싶었어요. ‘얇지만 튼튼한 그릇, 하얀색이 깃든 그릇’을 만들다 보니 결과적으로 백자토를 고르게 됐습니다. 고온에서 달군 백토는 제법 단단하거든요.
돌돌 말린 흙덩어리. 흙을 평평하게 밀고 잘린 조각을 이어 붙이면 입체적인 조형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기법을 ‘판 성형’이라 부른다. ⓒ박성극
가장 까다로운 작업공정은 무엇입니까?
가마에서 꺼낸 그릇에 유약 바르기입니다. 한지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 얇게 *시유 해야 합니다. 두께가 얇은 흙은 수분을 빨아들이는 힘이 약해요. 유약통에 담갔다 빼면 물이 뚝뚝 흘러서 문제인데요. 한지 질감을 살리기 위해 다른 작업을 추가해요. 그중 하나가 가스 토치로 그릇을 말리는 공정이에요. 제 생각에 백자 시유하는 과정에서 유약 바른 그릇을 하나하나 토치불로 건드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웃음)
*시유: 초벌한 도자기에 유약을 입히는 과정
밥국공기 세트. 작업 초창기부터 만든 조형이다. 크기나 두께는 조금씩 변화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박성극
한지를 닮은 그릇에는 어떤 한국적인 미(美)가 담겨 있나요?
한국적인 미(美)를 담아내려고 의식하진 않았지만, 생각해 보긴 했어요. 저는 한국의 아름다움이 ‘소박함’이라 생각해요. 소박함을 신경 쓰는 건 개인적인 체험 때문일 겁니다.
저는 커다란 호수가 있는 동네에서 자랐고, 세계 여행할 때는 네팔 히말라야 같은 곳을 다녔거든요. 외국의 자연환경과 비교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소박해요. 그래서 예전에는 한국이 심심하다고 느꼈는데, 경기도 이천에 정착해서 오래 살고 보니까 안 보이던 게 보여요. 작은 스케일에서 나오는 멋이 한국의 아름다움이지 않을까 싶어요. 자연환경이 소박하면, 그런 데서 사는 사람도 소박하지 않을까요?
아! 시대 변화나 환경 차이는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전통 도자는 지금도 성공적으로 재현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조선시대 도공과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죠. 옛사람들의 성격은 옛사람들이 만든 그릇에만 담길 겁니다. 요즘 그릇에는 요즘 사람들의 멋이 담기겠죠.
한지 시리즈를 수납한 카메라백. 작가는 이를 ‘모빌리티 연구’라 부른다. 기물의 운반편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설명. ⓒ박성극
작가님이 담아내는 멋이 궁금합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연구하시나요?
제 그릇 연구는 ‘실험’입니다. 작업 환경에 일부러 제한을 걸고 선택지를 좁히는 방식으로 연구하는 거죠.
환경을 일부러 제한하고, 주어진 문제를 하나씩 해결할 때 미처 몰랐던 작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작은 구멍 같은 걸 만들어 놓고, 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흙덩어리를 이런저런 모양으로 뽑아내는 거죠. 그러다 보면 제가 만들어본 적도 없는 형상이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이즈가 나와요. 그런 걸 조합하고 분해하며 내심 원했던 결과물에 도달하는 것 같습니다.
실험 끝에 새로운 걸 얻는 건데요. 도자기의 형태를 머릿속에 미리 구상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디자이너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작업실에서 계측을 거쳐 만드는 샘플 그릇. 초기 작품과 비교하면 그릇 두께는 점점 종이처럼 얇아지고 있다는 설명. ⓒ박성극
최근 새롭게 만들고 있는 것이 있나요?
얼마 전 찻잎을 보관할 그릇을 한지백자로 만들어봤어요. 뚜껑을 덮고 세우면 보관용기가 되는데요. 비스듬히 기울이면 찻잎이 다관(茶罐)에 굴러갑니다. 그릇이 아닌 도구를 응용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뚜껑이 없었어요. 만들고 직접 써보니 차를 준비하는 동안 먼지를 막을 뚜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뚜껑을 달면서 그릇이 된 거죠. 작품 만들 때는 이런 식으로 직접 만들어 봐야 풀리는 거 같아요. 뚜껑 크기나 밀폐 수준 같은 건 좀 더 테스트하고 있어요.
뚜껑이 달린 보관용기. 목적은 찻잎 보관과 분배. 찻잎을 그릇에 털 때 쓰는 ‘다하’를 응용했다. ⓒ박성극
디자인이 결정되면, 하루에 작품을 몇 점 만들 수 있나요?
머그컵 기준으로는 하루에 약 20여 개 정도입니다. 가마에 넣었다 터지는 그릇은 폐기하니까 실제로는 더 적죠. 크기가 작다고 많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종류마다 달라요. 작은 찻주전자 같은 건 하나 만드는데 하루 종일 시간을 쏟기도 해요. 흙덩이를 붙이는 공정이 많거나, 모서리가 각진 그릇일수록 까다롭고 오래 걸립니다.
경기도 이천의 작업실과 실험대. 그는 실험이 도예활동의 원동력이라 말한다. ⓒ박성극
작가님은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쏟나요?
제 취향은 실험 그 자체에 있는 것 같아요.
생흙을 빚어서 실험적인 작품을 가마에 넣으면 항상 들떠요. 흙이 거칠면 예상하지 못한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기대한 모습대로 도자기가 나올지 궁금해서 뜨거운 가마 문을 괜히 건드려봐요.
예컨대 원토로 차 그릇을 만들면, 흙이 물을 빨아들이는 정도가 달라요. 차 맛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항상 가마에서 나온 원토잔은 직접 시음을 해보죠. 뭘 어떻게 바꿔나갈지. 흙의 배합을 조금씩 바꿔보면서 실험을 이어가는데, 이 과정 자체가 감정을 부풀려요.
도자 공예가한테 중요한 감정은 이런 ‘들뜬 마음’같아요. 실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이 감정은 나중에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잊지 않고 싶지 않아요.(웃음)
2023년 봄, 박성극 작가는 전남 구례에서 열린 찻잔 만들기 행사에 참가. 지리산 자락 논두렁의 생흙으로 원시적인 토기를 만들었다. ⓒBOAN1942
작가님 그릇에는 한국 문화가 어떻게 담기나요?
무의식적으로 담기죠.(웃음) 한국적인 걸 원해서 한국적인 그릇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작품에 한국적인 요소를 넣는 작가님도 있죠. 저는 어쩌다 한지를 떠올렸을 뿐이고 그건 제 안에 이미 들어와 있던 겁니다.
사실 저한테 한지 시리즈가 나왔다는 게 재밌어요. 솔직히 제 도자취향은 정 반대거든요. 두껍고 무겁고 색이 어둡고, 쥐었을 때 손맛이 있는 그릇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지 백자는 새로운 가능성입니다. 저도 미처 몰랐던 작가로서의 가능성이요.
제가 만든 얇고 하얀 그릇은 첫 해외여행을 떠올리게 만들어요. 낯선 경험에 빠지고 거기서 얻은 감동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던 날들이었어요.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작업자이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또 우리나라 문화를 담은 멋진 그릇을 만들기도 하겠죠?
2024 실험작. 알갱이가 굵은 흙으로 만든 흑유 다기. ⓒ박성극
😈 “오히려 좋아!”라는 유행어가 떠오르네요. 엉뚱한 상상. 상상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 반복된 실험 끝에 발견한 나만의 조형. 공예가의 그릇에는 먹거리만 담기는 게 아니라 작가가 추구하는 멋과 태도가 담기는군요. 재료의 본연의 성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한국적인 멋을 발견하는 통찰력. 그건 저도 갖고 싶은데요!
2010년 동아리 식당 선반에 백반에 나갈 반찬을 담을 멜라민 식기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자기’ 주장이 확실한 편, 멜라민 식기
15년 전쯤의 일이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해외 학생들 10여 명과 한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식탁 위에 음식이 차려지자 폴란드에서 온 학생이 “와!” 하며 탄성을 질렀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릇이 온통 ‘자기’라서 놀랐다는 것이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 이 집의 식기는 ‘자기’가 아니라 멜라민 수지(melamine resin)로 ‘자기’ 흉내를 낸 그릇이었다.
대성집의 선반. 김치, 깍두기, 고기 소스 등을 음식의 크기에 맞는 식기에 담는다. ⓒ서울역사박물관
멜라민 수지로 만든 식기가 국내 식당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건 1960년대 들어서다. 멜라민 수지란 쉽게 말해 플라스틱의 일종인데, 열을 가했을 때 녹는 점이 높아서 놋그릇이나 도자기에 비해 가벼우면서도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 덕에 제품으로 나오자마자 소비자들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식당 주인의 입장에서 봐도 멜라민 수지 식기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식기다. 일단 무게가 가벼워서 손님상에 나를 때 좋고, 떨어뜨려도 쉽게 깨지지 않는다. 설거지할 때 뜨거운 물에 넣어도 모양이 뒤틀리지 않으며 행주로 닦기만 하면 바로 쓸 수 있다는 점도 그렇다. 얼핏 보면 백자로 만든 듯 보이는데 가격까지 저렴하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편리성과 효율성에 ‘전통성’마저 갖춘 멜라민 수지 식기를 식당에서 마다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1970년 초반 이후 멜라민 수지 식기는 대표적인 한식당용 식기로 자리 잡았다.
세운상가 일대 식당의 점심상. 똑같이 생긴 멜라민 그릇에 이날 제공될 반찬이 일정하게 담겨있다. ⓒ서울역사박물관
그 즈음 그 학생이 또 한번 물었다. 그렇다면 왜 밥그릇과 국그릇은 멜라민 수지가 아닌 ‘스테인리스 스틸(stainless steel)’이냐는 것이었다. 작고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이후 ‘스텐’) 밥공기가 상대적으로 앙증맞아 보인다고까지 했다.
스테인리스 식기에 담긴 궁중음식 ⓒ국립민속박물관
공기밥을 흔들어 먹는 이유, 스테인리스 식기
앙증맞은 밥공기의 탄생 비화를 이야기하자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양반들은 놋그릇을 좋아했다. 1940년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쓸 병기를 만들기 위해 일반 가정에서까지 놋그릇을 강탈해가자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릇들을 땅에 묻었을 정도였다.
한국인들이 20여 년 후 새롭게 등장한 스텐 그릇 때문에 놋그릇을 버렸다. 사용 전에 얼룩을 지우고 광을 내야 하는 놋그릇에 비하면 스텐 그릇은 관리의 어려움이 적었기 때문이다.
연탄 가스도 또다른 이유였다. 그 즈음 도시에서는 가정 취사용 연료가 나무 땔감에서 연탄으로 바뀌었는데, 연탄에서 나온 가스는 걸핏하면 놋그릇의 광택과 색을 망치곤 했다. 반면 스텐 그릇은 연탄 가스에도 변함이 없었다.
왼쪽부터 5첩 유기 반상기, 5첩 스테인리스 반상기. ⓒ국립민속박물관(좌), (우)
스텐 그릇 선물세트. 보자기에 정성들여 포장한 상자구성이 흥미롭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인의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한 스텐 밥공기는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한식당에서도 필수품이 되었다. 마침 식량 수급이 불안정했던 시기였고, 쌀 소비를 줄일 방안을 찾던 정부 관료들은 바로 여기에 주목했다. 1973년 1월 10일,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스텐 밥공기를 지름 11.5cm, 높이 7.5cm로 만들어 공급하라는 서울 시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1973년 표준식단제를 실시하는 종로의 한 표준식당의 모습. ⓒ서울기록원
1973년, 서울시는 대중음식점을 대상으로 한 표준식단제를 실시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조선뉴스라이브러리
‘밥심’으로 살았던 시민들이 이 조치를 따를 리 없었다. 그러자 서울시는 1976년 6월 음식점 운영자의 모임인 요식업협회를 압박했다. 스텐 밥공기의 규격을 지름 10.5cm, 높이 6cm로 또 한번 줄였고, 밥을 이 그릇의 5분의 4 정도만 담도록 강제하면서 ‘만약 서울시 소재 음식점에서 해당 규정을 위반하면 1회 위반에 1개월 영업 정지, 2회 위반에 영업허가 취소 처분을 내리겠다’고 한 것이다. 이 행정 조치는 통했다.
(좌)1960년대 후반부터 흔히 볼 수 있었던 뚜껑이 둥근 스테인리스 그릇. (우) 오늘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뚜껑이 평평한 스테인리스 그릇. ⓒ국립민속박물관(좌), (우)
2000년대 이후 스텐 밥공기는 더욱 작아졌다. 탄수화물 덩어리인 밥을 적게 먹어야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주장 때문이었다. 2012년부터는 내면 지름 9.5cm, 높이 5.5cm의 스텐 밥공기가 한식당에 보급되었다.
스텐 밥공기의 뚜껑이 평평해진 것도 이 즈음이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도 빨리 음식을 낼 수 있도록 미리 밥을 지어서 담아두었는데, 뚜껑이 평평하면 온장고에 차곡차곡 쌓아 둘 수 있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오래 둘수록 수분이 말라서 밥이 딱딱해진다는 점이었는데, 사람들은 이 딱딱한 밥을 맛있게 먹을 방법까지 찾아냈다.
바로 밥공기를 받으면 두 손으로 잡고 마구 흔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바닥에 남은 수분이 위로 올라오면서 딱딱한 밥에 고루 퍼졌다. 폴란드 학생의 눈에 ‘앙증맞게’ 보였던 납작한 스텐 밥공기에는 이토록 유구한 역사가 숨어 있었다.
양은 냄비에 끓인 해물라면. ⓒfrice
막걸리와 라면의 영원한 친구, 양은 식기
강의 아닌 강의를 하고 나니 목이 말라 막걸리를 주문했다. 양은 주전자가 등장하자 이번에는 이 그릇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양은 그릇은 알마이트(almite)로 만든 식기를 가리키는데, 알마이트란 순도 99.7%의 알루미늄을 전기 처리하여 산화 피막을 형성시킨 다음 노란색 코팅으로 방수 처리한 금속이다.
부뚜막 위의 선반 살강과 가스버너에 양은 냄비와 솥이 가득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알마이트 그릇은 1950년대 중후반 한국의 가정과 음식점에서 가장 많이 쓰인 식기였다. 당시 밥통부터 냄비, 주전자, 찬합, 수저통, 국자 등이 모두 알마이트로 만들어졌을 정도다. 이토록 널리 사용된 이유는 알루미늄의 대표적인 원료인 명반석이 한반도 곳곳에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값도 그리 비싸지 않고 잘 깨지지도 않으며 놋그릇처럼 쉽게 더러워지지 않는 알마이트 그릇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국,찌개,라면 조리 용도로 사랑받는 양은 냄비 ⓒ국립민속박물관
특히 알마이트 냄비 세트는 당시 신혼 가정 집들이 선물로 가장 인기가 좋았다. 주물 냄비에 비해 가벼우면서도 열 전도율이 높아서였다. 하지만 코팅이 벗겨지면 인체에 해로운 알루미늄에 곧바로 노출된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었고, 1960년대 후반부터 스텐 냄비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지금도 라면은 양은 냄비에, 막걸리는 양은 주전자에 담아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장터좌판에 깔린 생활식기 ⓒ국립민속박물관
미학과 실용성 사이에 숨겨진 역사
이처럼 각각의 식기에는 저마다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각각의 특징은 크게 산업화를 기준으로 나뉜다. 산업화 이전에는 한 문화권 속 사회문화적 체계 등에 따라 식기의 종류와 형태와 재질 등이 결정되었다면, 대량 생산이 시작한 후부터는 효율성과 경제성, 편리성이 우선이었다.
우리 생활 속에 다양하게 머물러온 그릇들. ⓒ국립민속박물관(상), (좌), (우)
오늘날 우리의 식탁 위에는 다양한 식기가 마구 뒤섞여 있다. 자기 그릇과 놋그릇부터 스텐 밥공기, 멜라민 수지 찬그릇, 양은 주전자까지. 이런 ‘잡종적 식기’에는 식민 시대, 한국 전쟁과 피난, 급속한 도시화 과정 등 우리의 모든 역사가 녹아 있다. 미학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개선해야 할 여지가 많은 식탁 앞에서 고민이 되는 이유다. 그 속에 담긴 역사마저 버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 오늘날 우리 일상에는 한국 반상 문화를 함께 했던 플라스틱(멜라민 수지), 스테인리스, 양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의 식기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중 실용성을 기반에 둔 멜라민 그릇, 스테인리스 그릇은 탄생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의 식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디자인과 사용성을 더욱 개선해나가면서 그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어요. 인체에 해롭다지만 손 맛 입 맛 좋은 양은 그릇은 낯선 그리움과 추억을 담아 끝까지 우리 생활에 함께합니다. 이번 컬럼에서 우리 주변에 보이는 대표적인 식기의 탄생비화를 엿볼 수 있었는데요. 그릇에는 음식만 담기는 게 아니라 당시 사회상이 담겨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식탁에는 요즘 어떤 그릇이 올라가 있나요? 그리고 여러분은 거기에 무엇을 담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