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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리스 식기를 질서있게 포갠 모습

한 그릇에 담긴 실용과 전통

  • 어쩔K

한 그릇에 담긴 실용과 전통

2010년 동아리 식당 선반에 백반에 나갈 반찬을 담을 멜라민 식기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2010년 동아리 식당 선반에 백반에 나갈 반찬을 담을 멜라민 식기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자기’ 주장이 확실한 편, 멜라민 식기

15년 전쯤의 일이다. 한국학을 공부하는 해외 학생들 10여 명과 한식당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식탁 위에 음식이 차려지자 폴란드에서 온 학생이 “와!” 하며 탄성을 질렀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그릇이 온통 ‘자기’라서 놀랐다는 것이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 이 집의 식기는 ‘자기’가 아니라 멜라민 수지(melamine resin)로 ‘자기’ 흉내를 낸 그릇이었다.

대성집의 선반. 김치, 깍두기, 고기 소스 등을 음식의 크기에 맞는 식기에 담는다
대성집의 선반. 김치, 깍두기, 고기 소스 등을 음식의 크기에 맞는 식기에 담는다. ⓒ서울역사박물관

멜라민 수지로 만든 식기가 국내 식당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건 1960년대 들어서다. 멜라민 수지란 쉽게 말해 플라스틱의 일종인데, 열을 가했을 때 녹는 점이 높아서 놋그릇이나 도자기에 비해 가벼우면서도 쉽게 깨지지 않는다. 그 덕에 제품으로 나오자마자 소비자들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식당 주인의 입장에서 봐도 멜라민 수지 식기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식기다. 일단 무게가 가벼워서 손님상에 나를 때 좋고, 떨어뜨려도 쉽게 깨지지 않는다. 설거지할 때 뜨거운 물에 넣어도 모양이 뒤틀리지 않으며 행주로 닦기만 하면 바로 쓸 수 있다는 점도 그렇다. 얼핏 보면 백자로 만든 듯 보이는데 가격까지 저렴하다는 점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편리성과 효율성에 ‘전통성’마저 갖춘 멜라민 수지 식기를 식당에서 마다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1970년 초반 이후 멜라민 수지 식기는 대표적인 한식당용 식기로 자리 잡았다.

세운상가 일대 식당의 점심상. 똑같이 생긴 멜라민 그릇에 이날 제공될 반찬이 일정하게 담겨있다
세운상가 일대 식당의 점심상. 똑같이 생긴 멜라민 그릇에 이날 제공될 반찬이 일정하게 담겨있다. ⓒ서울역사박물관

그 즈음 그 학생이 또 한번 물었다. 그렇다면 왜 밥그릇과 국그릇은 멜라민 수지가 아닌 ‘스테인리스 스틸(stainless steel)’이냐는 것이었다. 작고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스틸(이후 ‘스텐’) 밥공기가 상대적으로 앙증맞아 보인다고까지 했다.


스테인리스 식기에 담긴 궁중음식
스테인리스 식기에 담긴 궁중음식 ⓒ국립민속박물관

공기밥을 흔들어 먹는 이유, 스테인리스 식기

앙증맞은 밥공기의 탄생 비화를 이야기하자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양반들은 놋그릇을 좋아했다. 1940년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 쓸 병기를 만들기 위해 일반 가정에서까지 놋그릇을 강탈해가자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릇들을 땅에 묻었을 정도였다.

한국인들이 20여 년 후 새롭게 등장한 스텐 그릇 때문에 놋그릇을 버렸다. 사용 전에 얼룩을 지우고 광을 내야 하는 놋그릇에 비하면 스텐 그릇은 관리의 어려움이 적었기 때문이다.

연탄 가스도 또다른 이유였다. 그 즈음 도시에서는 가정 취사용 연료가 나무 땔감에서 연탄으로 바뀌었는데, 연탄에서 나온 가스는 걸핏하면 놋그릇의 광택과 색을 망치곤 했다. 반면 스텐 그릇은 연탄 가스에도 변함이 없었다.

왼쪽부터 5첩 유기 반상기, 5첩 스테인리스 반상기
왼쪽부터 5첩 유기 반상기, 5첩 스테인리스 반상기. ⓒ국립민속박물관(좌), (우)
스텐 그릇 선물세트. 보자기에 정성들여 포장한 상자구성이 흥미롭다
스텐 그릇 선물세트. 보자기에 정성들여 포장한 상자구성이 흥미롭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인의 일상에 스며들기 시작한 스텐 밥공기는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한식당에서도 필수품이 되었다. 마침 식량 수급이 불안정했던 시기였고, 쌀 소비를 줄일 방안을 찾던 정부 관료들은 바로 여기에 주목했다. 1973년 1월 10일,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스텐 밥공기를 지름 11.5cm, 높이 7.5cm로 만들어 공급하라는 서울 시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1973년 표준식단제를 실시하는 종로의 한 표준식당의 모습
1973년 표준식단제를 실시하는 종로의 한 표준식당의 모습. ⓒ서울기록원
1973년, 서울시는 대중음식점을 대상으로 한 표준식단제를 실시했다
1973년, 서울시는 대중음식점을 대상으로 한 표준식단제를 실시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조선뉴스라이브러리

‘밥심’으로 살았던 시민들이 이 조치를 따를 리 없었다. 그러자 서울시는 1976년 6월 음식점 운영자의 모임인 요식업협회를 압박했다. 스텐 밥공기의 규격을 지름 10.5cm, 높이 6cm로 또 한번 줄였고, 밥을 이 그릇의 5분의 4 정도만 담도록 강제하면서 ‘만약 서울시 소재 음식점에서 해당 규정을 위반하면 1회 위반에 1개월 영업 정지, 2회 위반에 영업허가 취소 처분을 내리겠다’고 한 것이다. 이 행정 조치는 통했다.

(좌)1960년대 후반부터 흔히 볼 수 있었던 뚜껑이 둥근 스테인리스 그릇. (우) 오늘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뚜껑이 평평한 스테인리스 그릇
(좌)1960년대 후반부터 흔히 볼 수 있었던 뚜껑이 둥근 스테인리스 그릇. (우) 오늘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뚜껑이 평평한 스테인리스 그릇. ⓒ국립민속박물관(좌), (우)

2000년대 이후 스텐 밥공기는 더욱 작아졌다. 탄수화물 덩어리인 밥을 적게 먹어야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는 전문가의 주장 때문이었다. 2012년부터는 내면 지름 9.5cm, 높이 5.5cm의 스텐 밥공기가 한식당에 보급되었다.

스텐 밥공기의 뚜껑이 평평해진 것도 이 즈음이다. 손님이 몰리는 시간에도 빨리 음식을 낼 수 있도록 미리 밥을 지어서 담아두었는데, 뚜껑이 평평하면 온장고에 차곡차곡 쌓아 둘 수 있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오래 둘수록 수분이 말라서 밥이 딱딱해진다는 점이었는데, 사람들은 이 딱딱한 밥을 맛있게 먹을 방법까지 찾아냈다.

바로 밥공기를 받으면 두 손으로 잡고 마구 흔드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바닥에 남은 수분이 위로 올라오면서 딱딱한 밥에 고루 퍼졌다. 폴란드 학생의 눈에 ‘앙증맞게’ 보였던 납작한 스텐 밥공기에는 이토록 유구한 역사가 숨어 있었다.


양은 냄비에 끓인 해물라면
양은 냄비에 끓인 해물라면. ⓒfrice

막걸리와 라면의 영원한 친구, 양은 식기

강의 아닌 강의를 하고 나니 목이 말라 막걸리를 주문했다. 양은 주전자가 등장하자 이번에는 이 그릇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양은 그릇은 알마이트(almite)로 만든 식기를 가리키는데, 알마이트란 순도 99.7%의 알루미늄을 전기 처리하여 산화 피막을 형성시킨 다음 노란색 코팅으로 방수 처리한 금속이다.

부뚜막 위의 선반 살강과 가스버너에 양은 냄비와 솥이 가득하다
부뚜막 위의 선반 살강과 가스버너에 양은 냄비와 솥이 가득하다. ⓒ국립민속박물관

알마이트 그릇은 1950년대 중후반 한국의 가정과 음식점에서 가장 많이 쓰인 식기였다. 당시 밥통부터 냄비, 주전자, 찬합, 수저통, 국자 등이 모두 알마이트로 만들어졌을 정도다. 이토록 널리 사용된 이유는 알루미늄의 대표적인 원료인 명반석이 한반도 곳곳에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값도 그리 비싸지 않고 잘 깨지지도 않으며 놋그릇처럼 쉽게 더러워지지 않는 알마이트 그릇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국,찌개,라면 조리 용도로 사랑받는 양은 냄비
국,찌개,라면 조리 용도로 사랑받는 양은 냄비 ⓒ국립민속박물관

특히 알마이트 냄비 세트는 당시 신혼 가정 집들이 선물로 가장 인기가 좋았다. 주물 냄비에 비해 가벼우면서도 열 전도율이 높아서였다. 하지만 코팅이 벗겨지면 인체에 해로운 알루미늄에 곧바로 노출된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었고, 1960년대 후반부터 스텐 냄비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지금도 라면은 양은 냄비에, 막걸리는 양은 주전자에 담아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장터좌판에 깔린 생활식기
장터좌판에 깔린 생활식기 ⓒ국립민속박물관

미학과 실용성 사이에 숨겨진 역사

이처럼 각각의 식기에는 저마다의 역사가 있다. 그리고 각각의 특징은 크게 산업화를 기준으로 나뉜다. 산업화 이전에는 한 문화권 속 사회문화적 체계 등에 따라 식기의 종류와 형태와 재질 등이 결정되었다면, 대량 생산이 시작한 후부터는 효율성과 경제성, 편리성이 우선이었다.

우리 생활 속에 다양하게 머물러온 그릇들
우리 생활 속에 다양하게 머물러온 그릇들. ⓒ국립민속박물관(상), (좌), (우)

오늘날 우리의 식탁 위에는 다양한 식기가 마구 뒤섞여 있다. 자기 그릇과 놋그릇부터 스텐 밥공기, 멜라민 수지 찬그릇, 양은 주전자까지. 이런 ‘잡종적 식기’에는 식민 시대, 한국 전쟁과 피난, 급속한 도시화 과정 등 우리의 모든 역사가 녹아 있다. 미학적 측면에서만 보자면 개선해야 할 여지가 많은 식탁 앞에서 고민이 되는 이유다. 그 속에 담긴 역사마저 버릴 수는 없으니 말이다.

😈 오늘날 우리 일상에는 한국 반상 문화를 함께 했던 플라스틱(멜라민 수지), 스테인리스, 양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의 식기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중 실용성을 기반에 둔 멜라민 그릇, 스테인리스 그릇은 탄생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의 식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디자인과 사용성을 더욱 개선해나가면서 그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어요. 인체에 해롭다지만 손 맛 입 맛 좋은 양은 그릇은 낯선 그리움과 추억을 담아 끝까지 우리 생활에 함께합니다. 이번 컬럼에서 우리 주변에 보이는 대표적인 식기의 탄생비화를 엿볼 수 있었는데요. 그릇에는 음식만 담기는 게 아니라 당시 사회상이 담겨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식탁에는 요즘 어떤 그릇이 올라가 있나요? 그리고 여러분은 거기에 무엇을 담고 계신가요?

정리 전하영
글 주영하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식사 방식으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저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로 재임하며 한국의 음식문화를 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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