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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상의 눈으로 얻어낸 로컬 굿즈 디자인

마더그라운드 보부스토어의 보부상 아트워크
디자이너 이근백의 프로필. 이근백 @rootdraw 디자인 / 패션 마더그라운드 대표. 자연, 환경,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제품에 담고 한국의 인상적인 장면을 아트워크로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한국 사람인 내가, 나다움을 찾아 무언가 모으고 만들어요. 그 과정에서 한국적인 소재가 브랜드에 모였습니다."
인터뷰 콘텐츠 DM그라운드의 인트로 다이얼로그. 안녕하세요 frice입니다. 프라이스는 한국의 전통에서 디자인 언어를 탐구하는 디자이너가 궁금해요! 한국을 돌며 로컬을 주제로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계신데요. 여기에 어떤 이야기가 실려 있을지 궁금해서 연락드려요. 안녕하셍! 마더그라운드의 디자인에 대해서 저도 생각을 한 번 정리하고 말씀 드릴게요.

마더그라운드는 디자인에 자연환경이나 도시의 풍경을 반영합니다. 특히 지역색을 반영한 아트워크 일러스트를 활용한 제품들이 인상적인데요.

마더그라운드는 전국을 돌며 보부스토어라는 이름으로 팝업스토어를 열고 있어요.

50th 보부스토어 기념 스몰백(2024)

조선시대 보부상에게 영감을 얻은 기획이죠. 주력 제품은 스니커즈, 티셔츠, 양말인데요. 팝업스토어 출장 일정에 맞춰 한정판을 만듭니다.

마더그라운드의 로컬 테마 아트워크 포스터(2024)

예컨대 대전에서는 ’93 엑스포’, 그 중에서도 ‘한빛탑’ 대구는 ‘섬유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떠올려요. 울산 팝업스토어는 ‘수출의 도시’라는 로컬 스토리에서 아트워크를 시작했어요. 공업도시 울산의 이미지를 표현했습니다.

“우리 지역의 핵심을 잘 표현했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애 많이 썼구나!”

디자인에서 그런 인상을 받을 때 그 지역 분들도, 지역을 방문하는 소비자분들도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연남동 보보스토어에 전시된 목업 시제품

누룩, 밤, 된장. 한글 이름도 흥미로웠어요. 다른 패션 브랜드와 비교해 보면 디자인에 한국적인 소재를 즐겨 쓴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사람인 내가, 나다움을 찾아서 무언가 만들고 브랜드를 위해 무언가를 모으는 과정에서 한국적인 소재가 자연스럽게 디자인으로 모였습니다.

콘셉트가 아니라 익숙한 것을 연상하며서 정해요. 귤이 떠오르면 귤. 색이 누룩처럼 보이면 누룩이라 이름 짓는 식이죠. 의도라기 보다는 무의식에 가까운 디자인 요소입니다.

마더그라운드, T007 ULSAN(GREEN), 수출의울산

대표 디자이너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로컬 굿즈 디자인 사례 4가지

36th 보부스토어, 울산광역시

울산은 조선업이나 자동차업계 종사자가 많아요. 그 분들이 주인공인 울산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자동차가 큰 선박에 실려 해외로 나가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걸 귀여운 일러스트로 그려 티셔츠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트워크를 재밌게 보시고 구매해주셨어요. 울산시민분들이 ‘수출의 도시’라는 이미지에 자긍심을 느끼신다는 인상입니다.

마더그라운드, 제 1 회 도보마포 페스티벌, 서울 신수동

45th, 49th 보부스토어, 도보마포 페스티벌

학창 시절부터 머물렀던 서울 마포구! 로컬 큐레이터 ‘도보마포’와 작은 지역 축제를 열었었어요. 가볼 만한 곳을 수집하고 그곳의 인상적인 풍경을 주제로 아트워크를 그려 지도, 티셔츠, 양말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마포의 특별한 공간을 주제로 매달 양말을 만들려 해요! 최근 연남동에 ‘보보스토어’라는 이름으로 상설 매장을 열었거든요. 방 한 켠에 여태까지 만든 아트워크를 전시중이니 언제든 편히 방문해 주세요!

마더그라운드, S001 JU(WHITE/ORANGE)귤, FEI (WHITE/GREEN)비자림

19th 보부스토어, 제주 서귀포

제주하면 생각나는 ‘감귤’, 그리고 제주 동쪽의 자랑 ‘비자림’의 컬러를 담았습니다. 스티커즈와 티셔츠, 모자, 반바지 등으로 단일한 컬렉션을 구성했습니다. ‘플레이스 캠프’라는 호텔 겸 스토어에서 연 팝업인데요. 관광객은 제주를 추억하기 위한 기념품으로, 제주도민분들은 내가 사는 지역을 잘 표현했기 때문에 구매했다 말씀하셨어요. 제주 컬렉션을 각자 다른 이유로 소장하는 게 인상적입니다.

마더그라운드, SX001(WHITE)

40th, 53th 보부스토어, 경기도 고양~일산

고양~일산에서만 팝업스토어를 3번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지역 랜드마크인 호스공원을 아트워크로 만들었는데요. 최신 굿즈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어요. 고양에서 고양이를, 일산은 1과 山(뫼 산)을 더하는 식인데 호응이 좋았습니다. 상품과 아트워크로 던진 유머였는데, 제작의도를 설명하다보면 고객과의 거리가 부쩍 좁혀지는 느낌이 들어요.

뺀질한 동네 잡지가 말하는 홍대다움

홍대앞을 다루는 로컬 컬처 매거진 스트리트 H

<1부에서 이어집니다>

장성환 디자이너의 부캐는 <스트리트 H>라는 로컬 매거진의 발행인이다. 홍대앞을 둘러싼 문화와 홍대앞의 다양한 지리정보를 기록중인 <스트리트 H> . 그들은 최근 홍대앞 사람들을 만나 ‘홍대다움’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frice도 그것이 궁금하다. 가 생각하는 ‘홍대다움’을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 쇼룸에 전시된 스트리트 H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는 홍대앞 로컬 매거진 <스트리트 H>를 15년 넘게 발행하셨죠.
잡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스트리트 H>는 홍익대학교 앞에서 시작한 다양한 문화와 변화. 홍대앞을 홍대앞스럽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담아내는 동네문화 잡지입니다. 맞춤법 규칙 상 ‘홍대 앞’으로 띄어쓰기해야 되는 걸 알지만, 홍익대학교 앞 문화권이 일종의 고유명사이길 원해요. <스트리트 H>는 그래서 일부러 ‘홍대앞’* 이라고 붙여쓰기를 합니다.


TALK1. ‘홍대다움’이란 무엇인가?

창간 15주년 기념호 주제가 ‘홍대다움’입니다. 이 주제에 응답한 홍대앞 사람들 생각이 흥미로웠어요. 발행인이 정의하는 ‘홍대다움’이 궁금하네요.

제가 생각하는 홍대다움은 ‘똘끼_비정형’입니다. 다른 과 출신들이 들으면 섭섭해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홍대의 DNA의 시작은 건축학과와 미술대학이라고 생각해요.

학력고사 성적은 낮아도 그림만큼은 아주 열심히 그린 친구, 미술학원조차 없는 동네에서 독학으로 미대 입시를 준비했던 친구, 이렇게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이 뒤섞이면서 홍대앞에 재밌는 일이 많이 벌어졌거든요. 그야말로 ‘재미난 작당’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홍익대학교 정문 (1996)
홍익대학교 정문 (1996) ⓒ스트리트 H
홍익대학교 정문 (2024)
홍익대학교 정문 (2024) ⓒfrice

특히 미술과 건축을 전공하면 작업실이 필요합니다. 컴퓨터 이전, 수작업 시절에는 과제 결과물이 꽤 크기 때문에 더 필요했죠. 대형 상권 형성으로 홍대앞 작업실이 다른 곳으로 많이 밀려나게 됐지만 그전에는 재학생 4명 중 1명은 홍대앞에 작업실을 했을 겁니다. 제가 볼 땐 어림잡아 홍대앞에 500여 개의 학생들 작업실이 있었을 것으로 봐요. 밤마다 500여 개의 반딧불이가 깜박이는 동네가 바로 홍대앞이었어요.

여기에 예술, 문화, 출판 종사자들도 홍대앞으로 모였습니다. 한국의 출판사 밀집 지역은 원래 종로 관훈동이었어요. 그러다 당시 출판사들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서 온 동네가 서울의 변두리인 홍대앞이었죠.

홍대앞 공동작업실 내부
홍대앞 공동작업실 내부 ⓒ서울역사박물관
홍대앞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커뮤니티 테이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원격근무하는 예술/문화 종사자를 흔히 만날 수 있다
홍대앞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커뮤니티 테이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원격근무하는 예술/문화 종사자를 흔히 만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그때의 ‘홍대앞’은 어떤 분위기였나요?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이 84년에 생겼어요. 그전까지는 그 아래로 내려갈 일이 없었어요. 그야말로 홍대앞은 홍대 교문 앞 정도의 좁은 의미였습니다. 지금의 호미화방이 있는 서교 오피스텔 앞길이 당인리 발전소(현 한국중부발전 서울발전본부)로 무연탄을 나르던 철도였어요.

발전 연료가 석유로 바뀌며 철도가 폐기되자 무허가 건물들이 무단 점거하게 되었고 일정 기간 지나면서 점유권이 생기게 된 거죠. 지금은 핸드폰 가게나 액세서리 가게들이 있지만 오래전에는 기록에 남을 만한 멋진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작업실과 다양한 활동을 했었어요.

호미화방과 앞골목
20세기에는 기차가 운행했던 철길이었다
호미화방과 앞골목. 20세기에는 기차가 운행했던 철길이었다. ⓒfrice(위), 스트리트 H(아래)

한참 선배들 말씀에 따르면, 홍대앞은 눈비가 내리면 길이 진흙 바닥으로 바뀌던 변두리 동네였다고 해요. 오늘날 같은 동네의 인프라도 없었고요. 화장실도 없고 상수도만 있는 차고, 반지하에서 살면서도 마냥 좋았던 사람들이 아지트 같은 걸 만들고, 개성 넘치는 친구들이 모여서 이상한 작당을 하니까. 모든 게 재밌었던 거죠.

홍대앞 철길자리 무허가건물. 시장으로 기능했던 서교동 골목길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홍대앞 철길자리 무허가건물. 시장으로 기능했던 서교동 골목길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스트리트 H
서교365전경. 365번지 건물을 둘러싼 인근 건물에 상업공간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서교365전경. 365번지 건물을 둘러싼 인근 건물에 상업공간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오늘날 홍대앞 골목길에 길게 이어진 건물과 공원시설은 당인리 발전소로 이어지던 철길의 흔적이다
오늘날 홍대앞 골목길에 길게 이어진 건물과 공원시설은 당인리 발전소로 이어지던 철길의 흔적이다. ⓒ서울역사박물관(좌), 서울특별시 아카이브(우)

일부는 졸업하고 나서도 홍대앞을 떠나지 않고 근처에서 미술학원을 하거나 술집, 카페를 차렸어요. 디자이너, 예술가, 문인, 출판사, 이런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뒤섞였고 거기에 인디 음악이 또 들어오게 돼요. 제가 생각하는 ‘홍대앞 DNA’는 그런 비정형의 열정들이 모이면서 만들어졌습니다.

홍대앞 일대 야경. 서울 변두리 동네가 도시 서북부 최대 규모 거점지역으로 성장했다
홍대앞 일대 야경. 서울 변두리 동네가 도시 서북부 최대 규모 거점지역으로 성장했다. ⓒ서울역사박물관
홍대앞 라이브 음악 공연장
정해진 테마 없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포스터와 스티커들이 마음대로 모여 홍대앞 공연장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홍대앞 라이브 음악 공연장. 정해진 테마 없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포스터와 스티커들이 마음대로 모여 홍대앞 공연장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frice

그랬던 홍대앞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맞이하며 많은 게 변했습니다.

상권이 형성되고 자본이 밀려들어 오면서 작업실이나 소규모 원주민 가게들이 밀려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홍대앞’이 팽창하면서 <스트리트 H>도 문화적인 의미를 기준으로 ‘홍대앞’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따지면 홍대앞의 의미를 잘 볼 수가 없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합정, 망원, 연남도 홍대앞으로 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창간호부터 홍대앞 지도도 매달 발품 팔아 조사하고 꾸준히 수정해서 내고 있는데요. 그 지도에는 아직도 편의점, 스타벅스 이런 건 넣지 않고 있어요. 프랜차이즈는 홍대앞 문화가 아니라는 고집이죠.

2024년 홍대앞 지도. 오늘날 홍대앞의 개념적 범주는 연남동과 서교동까지 넓게 확장된다
2024년 홍대앞 지도. 오늘날 홍대앞의 개념적 범주는 연남동과 서교동까지 넓게 확장된다. ⓒ스트리트 H

홍대앞 지도지만, 길 찾기가 아닌 다른 목적이 있는 지도라고 볼 수 있겠네요.

단순한 위치 정보는 스마트폰으로 찾아도 되는 정보지, 우리의 역할이 아니라는 거죠. 새로 생겼다고 무조건 넣는 게 아니라 홍대앞다움이 있어야 지도에 포함시킵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위치” 정보는 자연스레 “존재” 정보로 승화됩니다.

더 이상 길 찾기가 아니라 존재의 역사가 기록되는 것이죠. 조선시대 한양 고(古)지도의 용도가 위치정보를 넘어 당시 사회상을 짐작하게 해주는 소중한 정보이듯이 말입니다. 예전에는 홍대앞에 이런 의미있는 공간이 있었구나! 하는 기록이죠.

2009년 홍대앞 지도. 오늘날 자취를 감춘 홍대앞 공간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다. 2024년 지도와 비교하면 연남동, 동교동, 상수동, 합정동 방면 공간정보가 적다는 점이 눈에 띈다
2009년 홍대앞 지도. 오늘날 자취를 감춘 홍대앞 공간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다. 2024년 지도와 비교하면 연남동, 동교동, 상수동, 합정동 방면 공간정보가 적다는 점이 눈에 띈다. ⓒ스트리트 H
1988년 홍익대학교 입구 지도. 홍익대학교 정문을 기준으로 'T'자 형으로 뻗어나가는 문화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1988년 홍익대학교 입구 지도. 홍익대학교 정문을 기준으로 ‘T’자 형으로 뻗어나가는 문화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스트리트 H

홍대앞에는 다양한 동기의 창업이 많아요. 생계형, 낭만형, 문화공간으로서의 자기 선언 등. 옛날에는 새로운 곳이 생기면 다 가 봤는데 지금은 홍대앞이 너무 넓어져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뭔가 다른 곳은 딱 알겠어요. 그런 곳에 가서 손님으로서 쥔장에게 슬쩍 물어봅니다. 뭐 하시던 분이세요? 그러면 “얼마 전까지 방송국 PD 했었는데 20대 때는 홍대앞에서 좀 놀았어요. 그때 참 재밌었던 기억입니다. 그러다 이제는 벌 만큼 벌었으니 이 동네에서 뭔가 재밌는 거 해보고 싶어 왔어요.”라는 답이 나와요.

전직이 수상한 사장님이 많은 곳, 이게 홍대앞이었죠.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지금도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지금도 홍대앞뿐이라 봅니다.

스트리트 H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픽토그램 포스터

‘홍대앞’의 범위가 크게 넓어졌습니다. ‘홍대앞’은 어디까지일까요? 최근 주목하고 계신 곳은 어디인가요?

지금은 합정, 망원까지도 이어졌고, 망원 쪽에서 더 가면 상암동 DMC가 있는데, 상암은 그쪽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놀 만한 곳은 없어요. 그러니 망원, 합정을 거쳐 홍대앞까지 나오게 되는 거죠. 홍대앞이 아직 유지되는 것은 이렇게 밀려 나갈 지역이 있는 지리적 특수성이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수동, 용강동까지는 잘 모르겠고요. 광흥창 쪽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상수역에서 한 정거장이기도 하고 걸어가다 보면 신촌 방면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고요.


TALK2. 아카이브

성환님이 애정하는 ‘홍대앞 스팟’이 궁금합니다. 홍대앞을 가장 오래 관찰하신 분은 어떤 장소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서교플라자 호미화방 있는 365번지 골목의 ‘bar 다’입니다. ‘bar 다’는 초대 사장이 운영하던 시절에 아르바이트하던 점원이었던 분이 가게를 물려받았다고 해요. 현존하는 ‘홍대앞’ 바 중 가장 오래됐을 겁니다.

지난달에 생긴 가게가 다음 달에 문을 닫는 홍대앞 상권에서 아직도 영업하는 게 대단하죠. 이곳을 만든 초대 사장은 얼마 전 광흥창에서 ‘오후 네 시’라는 바를 만들었고 그분의 아드님은 상수역에서 ‘상수리 bar’를 아버지에게 비용 지불하고 인수하여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트리트 H는 이런 서사와 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젊고 잘생기고 돈 있는 사람이 와서 “저희가 홍대앞 F&B 씬을 바꿔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곳은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자본은 언제든 이익을 위해 빠져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태원 경리단길 같은 경우가 아주 대표적인 사례죠.

주차장길 쪽에서 바라본 'bar 다'
주차장길 쪽에서 바라본 ‘bar 다’ ⓒ서울역사박물관
2024년 8월, 같은 곳에서 바라본 'bar 다'
2024년 8월, 같은 곳에서 바라본 ‘bar 다’ ⓒ스트리트H
'bar 다' 내부(좌), 2013년 3월 'Bar다' 벽에 남긴 낙서(우)
‘bar 다’ 내부(좌), 2013년 3월 ‘Bar다’ 벽에 남긴 낙서(우) ⓒ서울역사박물관, 스트리트 H
광흥창 '오후 네 시' 오너 김명렬님. 그는 여전히 홍대앞 어딘가에서 바를 지키고 있다
광흥창 ‘오후 네 시’ 오너 김명렬님. 그는 여전히 홍대앞 어딘가에서 바를 지키고 있다 ⓒfrice

사라진 ‘홍대앞 스팟’중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곳을 전해주세요.

1988년 지금의 상상마당 대각선 건너편 약국 자리에 한국 최초의 전자 카페가 있었습니다. “일렉트로닉 카페”. 30대의 안상수 디자이너와 그의 친구 금누리 교수가 함께 만든 공간입니다. 아주 재미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료, 사진도 남아있지 않아서 많이 당혹스러웠습니다. 미국과의 팩스 교류 아트전, 희귀했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가 항상 틀어져 있던 TV. 전화 모뎀이 연결된 AT 컴퓨터 등. 기억이 생생한데도 기록 사진이 없었습니다. 홍대앞의 역동적이고 실험적인 활동, 공간의 기록이 없는 것에 놀랐어요. 그것이 <스트리트H>를 만드는데 일정 부분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전자카페 일렉트로닉 카페. 1988년 지금의 상상마당 대각선 맞은편에 수상한 곳이 생겼다. 쇼윈도우에는 기울어진 철제 캐비넷이 놓여 있던 이곳은 안상수, 금누리 두 사람이 의기 투합해 만든 공간이었다. LA와의 FAX통신을 이용한 전시회가 시도됐던 곳. 일렉트로닉스가 있던 자리는 시간이 흘러 2014년에는 부동산이 들어섰고 2024년 8월에는 약국이 됐다
국내 최초의 전자카페 일렉트로닉 카페. 1988년 지금의 상상마당 대각선 맞은편에 수상한 곳이 생겼다. 쇼윈도우에는 기울어진 철제 캐비넷이 놓여 있던 이곳은 안상수, 금누리 두 사람이 의기 투합해 만든 공간이었다. LA와의 FAX통신을 이용한 전시회가 시도됐던 곳. 일렉트로닉스가 있던 자리는 시간이 흘러 2014년에는 부동산이 들어섰고 2024년 8월에는 약국이 됐다. ⓒ스트리트 H

✔비하인드 (2001~)

홍대앞 카페 문화를 이끈 장수 카페. 다양한 직업의 4인 공동 사장이 삼거리 포차 뒷 골목에서 시작. 현재는 주차장길로 이전. 손님들 요청으로 카페의 선곡 리스트를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도 발매했었던 곳.

홍대 카페 비하인드 입구
홍대 카페 비하인드 내부
ⓒfrice

✔ 곱창전골 (2002~)
음악주점. 호미화방 근처 골목에서 시작한 홍대앞 대표 LP바. 먼저 입주한 지하의 호프집 사장님이 업종충돌을 염려하자 곱창전골집을 하겠다며 시작했다고. 내한공연을 오는 해외 뮤지션들이 밤에는 여기에 모인다.

홍대 LP바 곱창전골
ⓒfrice

✔ 클럽 빵 (2004~)
1994년 이대 후문에서 시작해 홍대앞으로 옮겨온 라이브 클럽. ‘모던록의 산실’이라고 불리며 포크록,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편애 아닌 편애가 있는 곳. 그런가 하면 신인밴드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홍대앞 대표적 무대.

홍대 라이브 뮤직 공연장 클럽 빵 입구와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본 모습. 홍대앞 창작자들이 상권 내 지하건물을 이용해 소극장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본 모습. 홍대앞 창작자들이 상권 내 지하건물을 이용해 소극장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frice(위), 서울역사박물관(아래)

✔ 이리카페 (2004~)
허클베리핀 드러머 출신 쥔장이 서교동 무과수마트 지하에서 시작해서 2009년 10월 상수동으로 이전. 상수동의 동네사랑방. 다양한 인물들이 이 공간에서 공연과 발표, 인터뷰를 한 것도 매력.

상수동 이리 카페 입구
ⓒfrice

✔ 앤트러사이트 (2010~)
신발 만들던 공장을 로스터리 카페로 만든 곳. 크레인, 바닥, 벽돌벽 등 예전 건물의 요소들을 최대한 유지한 인테리어가 새롭다.

상수동 앤트러사이트 커피 로스터즈 입구와 커피 바
ⓒfrice

😈 장수 로컬 매거진 <스트리트 H>. 홍대앞을 오랜 기간 관찰하며 단순한 지리 정보나 뻔한 공간 정보가 아닌, 역사, 문화,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홍대앞다움’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

서브컬처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성지, 무언가에 푹 빠진 사람들이 연 독특한 가게가 끊임없이 홍대앞을 둘러싸는 이유를 엿볼 수 있었는데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대앞을 규정하는 기준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내 것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의지 혹은 자본에 포섭되지 않으려는 자유분방함’ 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앞으로의 홍대앞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요? 지금의 우리가 기억하는 홍대앞 그 모습으로 계속 남아있을까요?

선입견을 디자인하는 사람들

마계인천 페스티벌 현장에서 발견한 아트워크 스티커

<1부에서 이어집니다>

인천 로컬씬의 각개전투

인천 구도심에서 마계인천 페스티벌이 열리던 2023년 9월 23일. 인근 관광명소인 자유공원에서는 인천독서대전이 열렸다. 독서문화를 아끼는 사람들이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동시간대 송도신도시에서는 버튜버를 주제로 국내 최초 메타버스 축제가 열렸다. 수만 명이 몰렸다. 인터넷 방송에서 파생된 새로운 서브컬처가 양지로 발돋움한 것이다.

인천은 로컬 브랜드가 정체성을 만들 자원이 지역에 고르게 흩어져 있다. 구도심의 크리에이터는 자연환경과 근대유산을 활용하며, 신도시를 선호하는 크리에이터는 첨단기술이나 세련된 비주얼을 활용한다. 창작자들이 관공서에서 주도하는 활동에 의존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느슨하게 서로를 알고 지내다가 가끔 뜻이 맞을 때 일을 펼친다. 마계인천 페스티벌은 지역에서 흔히 벌어지는 각개전투중 하나였다.

왼쪽부터 인천맥주 박지훈 대표 이창길 개항마을 대표, 양윤정 로컬 프로젝트 매니저
왼쪽부터 인천맥주 박지훈 대표 이창길 개항마을 대표, 양윤정 로컬 프로젝트 매니저.  ⓒfrice


플리마켓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빈티지숍 오너들
플리마켓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빈티지숍 오너들. ⓒfrice

행사는 한낮과 한밤으로 갈렸습니다. 어떤 행사가 기억에 남나요?

지훈 데이타임은 개항백화의 드렁큰 빈티지가 좋았어요. 인천의 빈티지 패션숍 운영자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손님 반응이 좋았는데 셀러 반응도 좋았네요. 서로 교류가 된다는 거죠. 아쉬운 건 라이트하우스에서 벌어진 공연 이벤트였어요. 상대적으로 저희 손길이 덜 미쳤습니다

라이트하우스 앞마당에서 공연을 펼치는 뮤지션
ⓒfrice

주거공간과 밀접한 행사장은 이웃과의 마찰이 불가피해보였습니다.
축제에 부정적인 이웃과의 갈등은 어떠셨습니까?


윤정 반경 200m를 통제하는 저녁시간대 지역축제를 견학 갔던 적이 있어요. 차량 통제나 참가자의 식사장소배치까지 신경썼는데도 민원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마계인천 페스티벌에서도 비슷한 민원을 예측하긴 했어요.

다만 예상보다 빠른 오후 시간대, 디제잉이 아닌 버스킹 공연으로 나올지 몰랐지만요. 다행히도 축제 경험이 많았던 행사 관계자들이 직접 민원인을 찾아가 대처에 나섰습니다. 행사장 인근 주택 대문을 하나 하나 두드리면서 양해를 구하고 설득을 하셨죠.

지역 내 이웃에게 100%에게 환영받는 페스티벌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니까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차근차근 나아가면 되니까요.

인천 개항로 일대에 붙어있던 스티커
ⓒfrice

나름대로 잣대를 만들어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나가는 것도 디자인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은 인천 로컬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중이죠.

지훈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우선 로컬을 주제로 한 결과물은 한국스러워야 해요. 그런 인식이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효과적인 방향을 모색할지 생각 해보는 편입니다

일단 한국스러운 결과물 자체가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

역사나 전통 같은 주제도 담겨야 해요. 한국스러움에 매달리면 팬시한 매력이 사라져요. 대중과의 거리도 멀어져요. 그렇다고 세련된 걸 추구하면 지역색이 흐려지거나 깊이가 얕아지거나 본래 취지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지죠. 여러가지 제약이 많은 상태에서 디자인을 풀어나가야 하는 겁니다.

저는 맥주사업을 하니까. 사업적으로 여러 방향으로 실험해보며 조금씩 방향성을 잡고 있어요. ‘인천 맥주란 무엇인가?’ ‘우리동네 인천을 상징할 만한 제품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을 이어가요.

고민을 해결한 제 결론은 ‘단지 비주얼 하나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는 점이었어요.

비주얼만큼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지훈 행동입니다. ‘인천맥주라는 사업체를 통해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행동으로 답하는 거죠. 그래서 시각디자인보다는 브랜드의 활동 자체를 디자인으로 보고 있어요.

비주얼도 중요한 판단이 요구됩니다. 허나 그보다 중요한 건 “왜 저걸 하는지, 어떻게 해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핵심은 제가 지역을 무대로 ‘사업’을 진행한다는 점일텐데요. 그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거기서 생긴 방향성을 효과적으로 발현하는 거죠.

창길 사실 저희는 로컬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부터, 이렇게 살았거든요. 행동이 먼저였고 말이 나중에 붙은 거예요. 사는 동네를 좋아하고, 동네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사람인 거죠. 저희가 자연이라 여기는 행동을 할 따름입니다.

저는 ‘덕질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창길 좋은 것을 구분하고 평가하는 기준에 대한 이야기일 텐데요. 먼저 KS마크의 시대가 있었죠. 국가가 산업표준을 만들고, 그 표준을 준수한 기업을 신뢰하는 시대였어요.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를 좋게 인식했습니다.

한편 큐레이션의 시대가 왔습니다. 획일적인 문화가 싫은 사람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요. 츠타야 서점이 대표적일 텐데요. 예술가나 디자이너가 주도한 큐레이션이죠. 그런 사람들의 선별기준은 무언가를 소비하는 법을 새롭게 알려줬습니다. 가구, 조명, 색, 문화가 떠오르네요. 큐레이션은 나쁜 게 아니지만, 맹목적으로 따라 한다면 문제라 생각합니다.

큐레이션의 시대는 남의 기준을 따른 거 같아요. 이제 자기자신의 기준으로 사는 시대로 넘어가지 않을까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덕질의 시대’입니다. 다른 사람을 굳이 따라 하지 않는 시대. 싸이, 노홍철 같은 사람들이 주목받는 시대로 넘어가는 거죠.

마계인천페스티벌 스팟인 개항로통닭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
ⓒfrice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인천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윤정 겉으로는 인천 싫다는데 속으로는 아끼는 점? 저는 서울 사람이고(웃음) 제가 사귄 인천사람들 기준으로만 말씀드리자면, 인천사람들은 인천을 많이 좋아한다고 느껴요. 싫은 건 싫은 거지만 좋은 것은 좋은 대로 아낀다는 인상?

저는 마계인천이라는 밈이 신기하거든요. 내세울 수 있는 경험이 되기도 하고. 나를 표현하는 정체성이 되는 단어가 됐어요.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지역사회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자 경험이기 때문에 인천에 바이브vibe라는 것이 생겨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모순된 것을 있는 그대로 품으려는 태도일까요? 해학적인 멋으로 느껴집니다.

윤정 ‘입덕부정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사실 사랑에 빠졌는데 그 마음을 부정하는 단계요. 사실 지역을 좋아하지만, 그걸 부정하면서 드러나는 태도인 거죠.

빈티지 팝업 스토어가 열린 개항백화에서 샐러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빈티지 팝업 스토어가 열린 개항백화의 모습
ⓒfrice

창길 최근 인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리저리 해체됐다 다시 조립되는 느낌입니다. 앞선 세대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점인데요. 요즘 20대 친구들 만나보면 인천이 좋대요. 자랑스러운 게 많고 나름 바이브vibe가 있다는 거죠.

‘공부 잘해서 서울로 대학가야지’ ‘회사도 서울에서 번듯한 데 다녀야지’. 인천에서 자란 사람이 어른에게 줄곧 듣던 말일텐데요. 인천을 떠나야 할 곳처럼 느끼다가도 어느샌가 다시 유턴해서 돌아와요. 방송가에서는 인천 출신 인물이 자부심 갖고 이것저것 소개하고 있죠.

그리고 인천사람들은 메시지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별 거 아니라는 태도로 말한대요. 우리는 정말 별거 아니라고 느껴서 그렇게 말했는데, 다루는 대화주제나 대화 속에 담긴 말의 가치는 되게 높은 것. 독특한 성격 중 하나죠.

개항백화 옥상의 푸드존에서 식사를 하는 관람객들
ⓒfrice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천의 아름다움’이 듣고 싶어요.

지훈 저는 노을이요. 지역의 상징적인 비주얼이기도 하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에요. 낙조를 즐길 공간이 적고, 이 풍경을 즐길 장소는 아는 사람들만 알아요. 바로 떠오르는 아름다움은 아닙니다. 서해바다는 항만/군사시설이 많아서 민간 개방이 안된 곳도 많은데, 점점 제한이 풀리고 있죠. 앞으로는 노을을 감상할 곳이 더 늘어날 것 같아요.

윤정 누군가에게 추억이 되는 공간. 그리고 그런 공간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저는 서울사람인데 학창시절에 다녔던 식당이 거의 남아있질 않아요. 살아남은 데가 없어요. 같은 공간에 가더라도 낯설다는 감정을 느끼거든요.

그리고 인천사람들은 메시지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별 거 아니라는 태도로 말한대요. 우리는 정말 별거 아니라고 느껴서 그렇게 말했는데, 다루는 대화주제나 대화 속에 담긴 말의 가치는 되게 높은 것. 독특한 성격 중 하나죠.

인천 구도심을 대표하는 신포시장
ⓒfrice

윤정 인천은 달라요. 특히 원도심 쪽에 거주하는 분들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요소가 아직 많이 남아있어요. 제가 처음으로 인천인에게 부러움을 느꼈던 게 신포시장 안 노포 칼국수집에 갔을 때였어요.

프로젝트 미팅이었는데 저 말고 다른 분들은 가게에 얽힌 추억이 있으시더라고요. 저는 그런 추억이 깃든 공간이 아름답습니다.

창길 선입견. 인천을 향한 선입견이 많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아요. 저는 이 가능성 자체가 아름다움이라 봐요.

사실 2023년 기준 전국광역시 중에 젊은 사람이 제일 많이 사는 곳은 인천입니다. 편견과 달리 실제 범죄율이 무척 낮은 곳도 인천. 육해공 교통 인프라가 전국톱클래스인 곳도 인천. 인구가 한 번도 줄어든 적 없는 곳도 인천. 부산보다 GDP가 높은 곳도 인천. 편견과 다른 반전매력이 이렇게나 많은 곳이 인천인데 아무도 몰라요.

공부 못하고, 싸움 많이 하고, 범죄의 온상인 동네. 이것은 인천을 향한 수많은 선입견들이 모인 걸텐데. 선입견은 사실이 아니잖아요. 거꾸로 보면 선입견은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사실이 아니니까 당당한 거예요.

사람들이 이제 인천이라는 지역의 매력을 조금씩 알기 시작한 거 같아요. 갯벌에서 보물을 찾는데 여태까지 엉뚱한 곳을 많이 팠던 셈이에요. 사실 가까이에 인천 같은 보물이 있었고, 이제 지역의 매력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 거 같습니다. 이게 다 건져지면 보물찾기 게임이 끝나는 거죠.

인천을 담은 엽서. 신포동 로컬스토어 포디움126에서 발견
인천을 담은 엽서. 신포동 로컬스토어 포디움126에서 발견. ⓒ인더로컬

이런 주관적인 진술이 궁금했어요.
여러분은 각자의 아름다움 속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는 중인 셈이죠.

지훈 하나만 덧붙이자면, 저는 낙조와 공장과 아파트가 혼재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요. 말하자면 인천이라는 도시는 자연과 근대가 공존하는 거죠. 특히 근대적 산업시설은 아직도 여전히 많이 남아있어요.

최근에는 구도심 재개발 단지에 아파트가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오래된 공장과 새로 지은 아파트는 사실 공존하기 굉장히 어렵거든요. 둘 중 하나가 없어져야만 개발이 되는데, 공존하기 힘든 것들이 혼재한다는 것. 저는 그 사실 자체가 아름다워요.

여러분은 오랜 시간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핵심은 지속가능성일텐데요. 경쟁력을 갖추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현실성과 지속성이요. 로컬이란 수식어에 갇히면 부족해지는 자원입니다. 저는 맥주를 만들어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니 사업적으로만 말씀드리자면, 창작자는 무엇보다도 돈을 벌어야 하거든요. 수익을 내야 지속성이 생기고, 지속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죠.

지역을 위한다는 명분에 비즈니스를 욱여넣는다는 인상이 드는 경우도 있었어요. 물론 잘 버무려서 사업을 만들면 좋지만. 공익추구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니 지속성을 발생시키지 못하고 짧은 시간 안에 사업을 접게 되는 걸 종종 보는 거 같아요. 로컬씬 안에서도 아쉬운 일이거든요. 누군가가 쌓아온 것이 없어지면 모두가 발전을 못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람객들
ⓒfrice

디자인도 그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에 뛰어 들어서 만든 디자인은 리스크가 있다는 거죠. 지역을 거점으로 사업을 하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좀 더 강한 영향을 주고받아요.

RPG게임에 비유하면 서로 버프/디버프를 거는 거죠. ‘마계인천’ 이미지로 무언가를 했다면, 그게 로컬에 영향을 주고. 다른 팀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한다면, 나도 거기에 영향을 받겠죠.

일방적으로 타인의 버프만 받을 순 없어요. 나 또한 로컬씬에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야 하죠. 그렇기 때문에 현실성과 지속성은 내가 타인에게 버프를 주는 힘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창길 디자인 인플레이션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최근에 어디 가서 본 것 중에 안 예쁜 게 없어요. 다 예쁘고, 다 멋지니까 오히려 감동이 없는 것 같아요. 집에 쌓여있는 수많은 에코백과 텀블러를 생각해 보세요.

그 이유는 앞서 말했던 큐레이션 때문이라 생각해요. 각 분야 전문가, 디자이너, 아티스트…이들이 큐레이션을 잘 만들어 놓잖아요. 큐레이션을 이제 인스타그램, 유튜브, 핀터레스트를 통해서도 바로 확인 가능합니다. 큐레이션의 큐레이션까지 가요.

개항백화에서 판매했던 다양한 인천 주제 아트워크 디자인 제품들
ⓒfrice

거르고 걸러, 결국 예쁘고 깔끔한 게 남겠지만. 좋은 감흥은 없군요.

창길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디자인은 ‘자기가 담긴 디자인’이라 생각해요. “철저하게 나인 것. 나 스스로 떠올린 걸 내 방식대로 표현해 타인에게 설명가능한 디자인”이여야 한다는 거죠. 가끔 제게 말도 안되는 감동을 선사하는 공간들이 있어요.

어떤 곳인가요?

창길 예컨대 주인이 자기 마음대로하는 술집이요. 사장님과 음식과 가게 인테리어가 일치되는 곳. 가끔 그런 데서 시간 보내면 웃음이 팍팍 나요. 식당에 있는 모든 게 이해돼요. ‘대체 왜 저걸 저렇게 해놨는지’ 단박에 와닿는 거죠.

이 대표님은 사람-콘텐츠-공간의 조화에서 감동을 느끼는 셈이네요.

우리가 예쁜 걸 너무 많이 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철저하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서 나타나는 무언가가 있거든요 분명.

요즘 들어 브랜딩이 중요하다고 하죠. 브랜딩을 위한 브랜딩도 나타나고 있어요. 이런 경우는 티가 팍팍 난다는 거예요. 예컨대 집은 맥시멀리스트로 꾸며놓고 사는데, 카페 사업한다고 미니멀 디자인을 구현하는 경우가 있어요. 애써 꾸민 티가 나요.

마계인천페스티벌 관람객들
ⓒfrice

제2회 페스티벌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소감이 궁금합니다.

윤정 관람객이 얼마나 올지 감히 예측하기 힘들었어요. 행사장 다섯 곳에 사람들이 분산되니까요. 다행히 공간마다 축제 분위기를 낼 만큼 사람들이 모여서 놀다 가셨어요. 그런 점에서 차기 페스티벌이 더 기대됩니다.

공간 섭외가 늘고 그곳에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는 플레이어가 계속 붙는다면, 훨씬 더 커질 수가 있는 페스티벌이라는 걸 확인했어요. 미래에 펼칠 그림이 잘 그려져서 좋았습니다.

창길 실무자 셋이서 추진한 행사였기에 계획이나 아이디어를 모두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서 놓치는 부분도 있어요.

시작은 다섯 곳이었지만,  축제가 열리는 거리 자체가 디자인화 됐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요. 개항로 일대 자체가 축제가 되는 거죠. 축제 손님뿐만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까지 편하게 나와서 구경하다 아이스크림 하나 드시고 집으로 돌아갈 정도로 커진다면, 여러 가지 민원은 구조적으로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항백화에서 열린 식물 팝업 스토어
ⓒfrice

지훈 이창길 대표님이 말한 ‘개항로의 디자인화’는 길 위에 있는 업장이나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콘텐츠를 갖고 축제에 참여하는 모습일 거예요. 꼭 축제 기획자가 준비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요.

예컨대 진7080라이브펍에서 저희가 기획한 음악공연행사를 내년에도 무사히 마쳐요. 그것도 좋지만, 저희가 아니라 가라오케 사장님의 개성이 묻어나는 이벤트가 들어가기도 하는 거죠. 올해 수익향상과 모객을 가능케 한 예시사례를 보여드렸습니다. 다음엔 뭔가 새로운 게 나오지 않을까요?

창길 올해 아쉬웠던 보사노바 공연은 내년에 보사노바에 미친 사람이 콘텐츠를 지휘할 수도 있잖아요. 새로운 플레이어가 축제에 들어오는 거죠. 이런 식으로 같이 할 사람이 늘어날수록 좋을 거 같아요. 축제 주최자는 공간 연결에 집중하는 거죠. 세부행사 기획과 집행은 플레이어가 알아서 합니다. 올해는 5곳. 언젠가 60곳. 축제 행사가 거리 곳곳에서 열리는 걸 목표로 해요.

페스티벌 이벤트가 60개! 벌어지면 장난 아닐걸요.

신해철음감회에 참여한 관람객들
신해철음감회에 참여한 관람객들 2
ⓒfrice

마계 그 자체인 것 같아요. 무질서해 보여도 뜯어보면 멋과 격이 있어요.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지훈 그 게 저희가 여태까지 해온 방식입니다!(웃음)

창길 여러분도 끼세요. 원한다면 내년에 행사 하나 만드는 건 어떠실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