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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휩쓴 K 카페 감성

K 카페 스타터 팩_캔모아

안녕 휴먼! 지금부터 여러분과 전두엽을 공유하겠습니다.

식빵..생크림.. 그네의자.. 눈꽃빙수…

뭐가 떠오르시나요? 방금 우리 같은 생각 한 거, 맞죠? 하나 더 해볼까요?

작동되지 않는 대형 벽시계… 허니브레드.. 악마빙수…

한 다리 건너면 보이던 카페베네, 함께 떠올렸나요?

우리는 이렇게 몇 개의 단어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당시를 떠올리고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둘 모으다 보면 어떤 문화나 상황에 대한 공통된 이미지로 나타나게 되고, 스타터 팩이라는 인터넷 밈으로 탄생하게 되는데요! 프라이스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의 카페부터 요즘의 트렌드까지, 한국의 카페 인테리어 감성을 수집했어요.

프라이스가 구성한 시대를 휩쓴 K 카페 스타터 팩! 지금 시작합니다. 😎


1. 생과일 전문
나야 캔모아♡ ブl억 ㄴrLI··¿ ュㄸĦ ュ 감성…★

최초의 생과일 전문점 캔모아! 프로방스풍 인테리어에 독특한 기물 (흔들의자, 그네의자 등..)을 들여놓고 당시 학생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생크림을 얹은 식빵 토스트를 무한으로 제공했던 추억의 장소입니다. 캔모아를 표방한 다양한 생과일 전문점이 생기기도 했어요. 현란한 인테리어와 더불어 눈이 휘둥그레졌던 메뉴판도 떠오르는데요! 시그니처였던 눈꽃빙수를 필두로 온갖 과일과 과자, 아이스크림으로 채운 파르페와 십여 가지 종류의 생과일주스 등 정말 많은 메뉴로 꽉 차 있었어요. 변치 않는 우정을 약속하며 벽면에 컴싸로 써 내려갔던 낙서, 그네 의자에 앉아 빙수를 먹던 기억. 이제는 주변에서 잘 찾아볼 수도 없어 정말 추억 속에만 남게 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더욱 아쉽고 그리운 장소입니다.

 K 카페 스타터 팩_캔모아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친구랑 그네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창밖을 보며 눈꽃 빙수를 먹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식빵을 살짝 구워 곁들이는 생크림이 어찌나 맛있던지… 다른 곳에 가서 먹어도 절대 이때의 이 맛은 나지 않아요 (훌쩍)

👾 우리동네는 중고딩때 남자끼리 못 가는 분위기였거든요. 어쩌다 여자애들 갈 때 따라갔는데 레알 신세계였어요.

2. 한국 토종 프랜차이즈
허니 브레드에 아메리카노가 대세? 그 때 그 시절 카라멜 마끼아또

우리나라엔 카페가 참 많습니다. 이보다 더 많았던 때가 있었다면? 프랜차이즈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와 그야말로 프랜차이즈 카페 춘추전국시대였던 그 시절! 넘치는 카페 수만큼이나 제각기 다양한 메뉴와 디저트를 선보였어요. 그중 생크림이 잔뜩 올라간 허니브레드는 단연 최고 인기였죠. 음료를 주문하면 자리로 가져다주는 대신 영수증과 함께 주던 진동벨. 빨간 불빛과 함께 진동벨이 울리면 화들짝 놀라며 쟁반을 받으러 가던 셀프 서빙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때를 추억하면 재료를 아끼지 않은 대왕 빙수, 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코를 스치던 따끈한 모카 번 냄새. 카운터와 벽면의 우드 패턴과 라탄 의자가 통창으로 된 매장에 들어차 있고, 벽면에는 알 수 없는 레터링이 빼곡했던 특유의 인테리어가 떠오릅니다. 하루에 딱 두 번 맞는 대형 벽시계는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요?

 K 카페 스타터 팩_한국 토종 프랜차이즈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어딜 가든 빵 냄새였어요. 카페인데? 온통 허니브레드! 1 테이블 1 허니브레드가 국룰이던 시절..

🐯 커피 맛도 모르고 달달한 커피 마시면서 “휘핑크림 많이 주세요.”로 주문을 마무리하던 20대 초반이 생각나네요. 언제부턴가 아메리카노만 마실 수 있는 몸이 되었지만… (커피의 쓴맛을 즐기게 되면 어른이 된 거라죠?)

🚬 실내 흡연이 금지되면서 투명한 벽으로 막힌 흡연실이 프랜차이즈 카페엔 꼭 있었던 것 같아요.

3. 인더스트리얼
짓다 만 건물 말고 진짜 industrial

최근 공사판이 그대로 카페가 된 밈이 유행했어요. 마감되지 않은 벽면, 무질서하게 쌓인 벽돌이나 흙더미. 이런 곳이 정말 힙한거야? 의문도 들었죠. 그와 동시에 요즘 보이는 공사장 인테리어 전에 유행하던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은 산업, 공업 공간의 느낌이 강조된 인테리어 디자인을 이야기하는데요, 불필요한 장식이나 꾸밈을 배제하고 노출된 구조와 소재를 중요시합니다. Industrial design은 미완성된 under construction의 상태와는 다릅니다. 천장에 배관이나 전기설비가 그대로 노출 되어있더라도 실내의 분위기에 맞게 깨끗하게 마감되어 위생적으로도 안전합니다. 차가워 보이는 소재감 속에 독특한 오브제나 백열전구 조명 등으로 포인트를 더하기도 했어요. 콘크리트와 철골구조가 주를 이루는 한국 건축의 특수성에, 비용을 줄이고 싶어 하는 카페 창업자들의 니즈가 만나 만들어낸 K-감성이라고 볼 수 있죠.

 K 카페 스타터 팩_인더스트리얼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스팀펑크를 떠올리게 하는 특이한 소품들로 가득 차 있던 카페!

🤔 저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 유행을 싫어했어요. 아무리 마감을 잘했다고 하지만 결국 공사장처럼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요즘 카페들을 보면 이때가 정말 잘 만들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층고 높고 넓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다보 면 왠지 뉴욕 브루클린이나 샌프란시스코의 힙스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왠지 작업도 더 잘되는 것 같은 기분? (웃음) 그래서 저는 인더스트리얼 감성 카페를 자주 찾아요.

4. 인스타그래머블 (feat. 성수)
우리는 감성을 사랑해! 일단 코어에 힘 주실게요~

우리는 항상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그게 일회성이더라도! 인스타그래머블 한 카페를 둘러보면 각자의 테마에 맞춰 장식된 오브제들이 새롭습니다. 어디서 산 거지? 멋지고 유니크해요. 어느 곳을 찍어도 좋은 사진이 나오는 무드 충만한 카페에 앉아 이야기하다 보면, 모던한 접시에 독특하게 플레이팅 된 커피와 디저트가 나옵니다. 이건 찍어야지! 도저히 사진을 찍지 않고는 못 배기는 감각적인 비주얼에 절로 기분이 좋아져요. 영문 가득한 벽면과 메뉴로 마치 외국에서 커피를 즐기고 있는 경험을 주는 감성 속 한글로 쓰인 ‘1인 1메뉴 필수입니다.’ 문구. 모두가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어딘가 비슷해서 알 것도 같은 느낌이에요. 하지만 조금 불편해도 괜찮은 우리를 위한 감성 카페는 여전히 순항 중입니다.

 K 카페 스타터 팩_인스타그래머블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어딜 찍어도 멋진 공간과 플레이팅! 그런데 음료는 딱 두 입 컷… 양이 너무 적어!

🤔 여기에 음료를 놓는 건가? 아 테이블이었나? 의자라고? 용도가 헷갈리는 낮은 테이블과 불편한 의자에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 힙한 인테리어와 커피 한 잔 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는 감성 카페! 저는 일부러 찾아가서 무드를 즐겨요.

to be continued…😎

😈 자료 수집하면서 잊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어요! 프라이스가 수집한 K 카페 감성. 함께 추억 할 수 있었나요? 아니면 에이 이게 없으면 안되지~ 하는 이야깃거리가 있었나요? 우리가 생각하는 필수 요소, 없어서 아쉬운 그 감성이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주세요!

호텔카페에서 가배를 마시면 기분이 조크든여

조선호텔에서 커피를 마시는 무용가 최승희

(3) 호텔카페에서 가배를 마시면 기분이 조크든여

식민지 조선이라는 환경에서 최승희를 내세운 스타 마케팅은 모던 보이 모던 걸이 최고급 핫 플레이스를 즐기는 새로운 커피 풍속을 낳았다. 이전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커피가 일상에 깊게 스며들고 분위기 있는 다방이나 카페 같은 곳이 자연스러운 커피 소비 공간이 되기 시작했다. 한국 커피 문화 이야기 마지막 3화는 한국 커피 보급의 기원과 호텔카페 이야기.

커피를 추출하는 모습
ⓒfrice

한국 최초의 커피를 찾아서

우리나라 커피는 14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사람들은 흔히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이 시름을 달래며 커피를 마신 게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도입된 경로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커피는 개항 이후 선교나 상업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조선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들여왔을 것이 분명하다. 개항기 조선에 오간 선교사, 외교관, 사업가는 물론 여행객들이 묘사한 기록 여러 곳에 이미 커피가 등장한다.

1884년부터 3년간 의료 선교사로 일했던 알렌(Horace Newton Allen, 1858∼1932)의 기록에도 “어의(御醫)로 궁중에 드나들 때 홍차와 커피를 시종들로부터 대접받았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커피는 조선에서 궁중뿐만 아니라 궁 밖에서도 낯선 음료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퍼시벌 로웰의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885년 발행)
퍼시벌 로웰의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885년 발행) ⓒ진용선

1884년 겨울 한강 변 언덕에 있는 누각(樓閣)에서 조선의 유행품(the latest nouveaute)인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1883년 조미수호통상사절단을 수행해 안내하는 임무를 맡은 퍼시벌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 1855∼1916)이 남긴 책의 1884년 1월 기록이다. 어느 추운 날 한강 변 ‘슬리핑 웨이브’에서 조선의 유행품 커피를 처음 마셨다는 내용이 실렸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과 왕실에서 즐겼다는 커피는 주로 조선 고위 관료들과 외국인들이 마셨다. 백성들이 마시는 음료는 아니었다. 하루하루 각박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커피는 특권층의 사치품으로 비칠 뿐이었다.

로스팅을 마친 커피빈
ⓒfrice

외국인들이나 왕실에서 소비되는 특권층의 기호품이었던 커피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울과 인천의 외국인 호텔을 중심으로 판매되면서 ‘가배(珈琲)’ 또는 ‘양탕(洋湯)국’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커피가 대중에 알려진 시기는 1910년 강제한일합병조약을 전후로 커피를 파는 호텔과 근대식 다실(茶室), 카페가 곳곳에 생겨나면서부터다. 1913년 남대문 역 ‘깃사텐(喫茶店)’을 시작으로 1920년부터는 경성 중구 본정(本盯, 명동과 충무로1가)을 중심으로 일본인이 운영하는 다방이 문을 열었다.

옛날 성냥갑 사진. 다방 내부 사진.
과거 다방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는 공간이라고 해서 '끽다점喫茶店'으로도 불렸다
과거 다방은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는 공간이라고 해서 ‘끽다점喫茶店’으로도 불렸다. ⓒ서울역사박물관

‘끽다(喫茶)’라는 말처럼 차를 즐기는 일본식 다실이었다. 일본인에 뒤질세라 1927년에는 서울 종로에 영화감독 이경손이 처음 문을 연 다방 ‘카카듀’를 시작으로 다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종로, 명동, 충무로 등지에 이국적인 분위기의 외래어로 이름을 붙인 많은 다방이 생겨났다. 다방 운영은 주로 문인이나 예술가 들이 했다. 〈날개〉의 작가 이상(李箱)은 다방 ‘제비’를 열어 문인들의 사랑방이자 서울의 명물이 됐다.

이들은 프랑스의 살롱 문화를 국내 다방에 접목해 시화전이나 미술전, 낭독회, 출판 기념회 등을 개최하거나 문인들과 화가 등 예술인과 지식인 들이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는 자연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지식인들에게 다방은 국내외 정세를 논의하고 서양 문물을 접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조선호텔과 유리로 천정과 외벽을 마감한 썬룸의 모습
조선호텔과 유리로 천정과 외벽을 마감한 썬룸의 모습. ⓒ진용선

1914년 조선철도국이 건립한 최고급 호텔인 조선호텔에는 실내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찻집인 ‘썬룸(Sunroom)’이 있었다. 썬룸은 실내에서 커피를 마시며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낸 환구단의 부속 건물인 황궁우(皇穹宇)가 있는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조선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높은 스타인 무용가 최승희(崔承喜, 1911~1969)를 내세워 마케팅을 시작했다. 단순히 호텔 이미지를 높이려는 전략이라기보다는 부유한 젊은 층까지 끌어들이려는 전략이었다.

썬룸에서 커피를 마시는 최승희. 최승희를 모델로 내세운 조선호텔의 썬룸은 모던 보이, 모던 걸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썬룸에서 커피를 마시는 최승희
최승희를 모델로 내세운 조선호텔의 썬룸은 모던 보이, 모던 걸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진용선

최승희 스타 마케팅과 새로운 커피 풍속

1938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발행한 사진 홍보물인 《조선의 인상》에는 조선호텔의 모습과 썬룸 사진이 실려 있다. 유리로 천정과 외벽을 마감하고 열대 식물이 드리운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썬룸에서 당대의 대표적인 신여성이라는 20대 후반인 모던 걸 최승희가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반응은 빠르게 나타났다.

아름답고 세련된 모습의 최승희가 커피를 마시는 모습은 당시 청춘 남녀에게 최신 유행의 상징인 커피를 마셔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한몫했다. 이곳의 인기 메뉴가 아이스크림과 커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유한 젊은 층의 발길이 이어졌다. 최승희를 모델로 내세운 조선호텔의 썬룸은 호텔 라운지 바와 함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핫 플레이스가 됐다.

무용가 최승희, 1911-11.24-1969.8.8
무용가 최승희, 1911-11.24-1969.8.8 ⓒ국립현대미술관

춤은 기생이나 추는 것이란 세간의 고정 관념을 깨뜨리며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듯이 최승희는 커피를 소위 모던 걸 모던 보이의 최고 기호품이 되게 했다. 단발머리에 서구식 옷과 신발로 꾸미고 화장을 한 최승희의 모습을 보고 많은 남성과 여성 들이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되어 낭만을 한껏 누렸다.

서양식 옷을 입고 폼을 있는 대로 잡는 이들은 벽과 지붕을 유리로 이어 햇볕이 잘 드는 썬룸에서 커피를 즐기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소비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애피타이저로 시작해 커피로 끝나는 조선호텔 서양 요리도 인기를 끌었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 여름 조선호텔에서 열린 만찬 메뉴. ‘御献立(오콘타데)’라고 쓰인 메뉴에는 서양 요리 풀코스에서부터 후식인 과일과 커피 등의 식단이 인쇄. 가장자리는 은박으로 품격 있게 마감했다
일제 강점기인 1940년 여름 조선호텔에서 열린 만찬 메뉴.
‘御献立(오콘타데)’라고 쓰인 메뉴에는 서양 요리 풀코스에서부터 후식인 과일과 커피 등의 식단이 인쇄.
가장자리는 은박으로 품격 있게 마감했다. ⓒ진용선

조선호텔에서 열린 만찬 메뉴에는 ‘오르데뷰르’라는 에피타이저에 이어 ‘청갱즙(淸羹汁)’, 선어증소(鮮魚蒸燒), 다진 쇠고기인 ‘우만육(牛挽肉)’, 어린 새고기인 ‘추번소(鶵燔燒)’가 나오고, 디저트로 과실(果實), 아이스크림이 식탁에 올려진 후, 마지막에 ‘가배(珈琲)’로 마무리됐다.

아무나 커피를 마실 수 없을 시절 모던 걸과 모던 보이는 조선호텔에서 서양 요리를 즐기고 커피를 마셔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여겼을 것이다. 어쩌면 요즘으로 치면 인플루언서가 어떤 제품을 먹으면 그것을 따라 하는 현상이나, 남이 하면 나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소위 신인류의 포모(Fomo) 현상이 그때부터 통했던 셈이다.

요약하면 식민지 조선이라는 환경에서 최승희를 내세운 스타 마케팅은 모던 보이 모던 걸이 최고급 핫 플레이스를 즐기는 새로운 커피 풍속을 낳았다. 이전까지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커피가 일상에 깊게 스며들고 분위기 있는 다방이나 카페 같은 곳이 자연스러운 커피 소비 공간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인의 삶에 깊숙히 스며들기에 이른다.

아침이면 나는 늘 커피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서재에서 모카(moka, 이탈리아 에스프레소용 주전자)에 커피를 채우고 압력과 함께 끓어오르기 시작할 때, 그 소리에 묻어나오는 진한 커피 향이 나는 참 좋다. 

필터에 담긴 커피가 뜨거운 물과 섞여 내려오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향기의 맛, 그리고 그날 기분에 따라 진하게 엷게 손수 내리는 커피를 배우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점점 커피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알면 사랑에 빠진다. 한국의 커피 문화 시리즈 3부작이 여러분에게도 그런 계기가 되길 바란다.

😈 박물관장님의 K-커피 문화 이야기는 어땠나요? 1부는 다방의 추억. 2부는 얼죽아의 기원. 3부는 카페 문화 보급을 다뤘어요. 다양한 수집자료와 생생한 경험담이 인상 깊습니다. 어제 마신 커피를 알면, 내일 마실 커피가 훨씬 맛있어지지 않을까요? 이번 시리즈가 여러분의 커피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기 바랍니다 🙂

얼죽아 비긴즈! 한국인은 언제부터 아이스 커피에 열광했을까?

유리잔에 담긴 아이스 커피

(2) 얼죽아의 기원

뜨거운 커피에 얼음을 넣어 마시는 ‘아아’나 이를 즐기는 ‘얼죽아’의 전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찬물을 지극히도 좋아한 오래된 문화의 결과물이다.

아이스 커피
ⓒfrice

찬물을 즐겨 마시는 나라는 이 세상에 몇 나라 되지 않는다. 그중에 얼음 가득 벌컥벌컥 잘 마시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러니 아이스 아메리카노조차 생소한 외신에서 혹한에 두꺼운 패딩 잠바를 입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다니는 한국 사람을 보고 놀라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름이면 ‘열은 열로 다스린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로 음식을 먹었는가 하면, ‘이냉치냉(以冷治冷)’으로 약재를 달여 만든 음료를 식혀서 마시거나 차갑게 마셨다. 음식 온도에 대한 개념도 더 차갑고 뜨거운 걸 좋아하다 보니 서로 연결이 되어 차가운 걸 먹거나 뜨거운 걸 먹어도 ‘시원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시원하다’는 말은 온도의 높낮이가 아니다. 차가운 걸 먹든 뜨거운 걸 먹든 몸에 변화가 생겨나 기운이 잘 통하게 된다는 뜻이다. 뜨거운 걸 먹어도 시원하고 차가운 걸 먹어도 시원하다고 알며 자라다 보니 평소에도 찬물을 즐겨 마시는 습관은 자연스러워졌다. 한겨울에 얼음 동동 동치미를 자연스레 즐겨온 음식 문화도 한몫했다.

얼음을 채취해 저장하는 일은 오래되었다. 《삼국사기》에도 신라 지증왕 6년(505년) 얼음 저장을 담당하는 기관인 빙고전(氷庫典) 이야기가 등장하고, 조선시대 《승정원일기》에도 영조 14년(1738년)에 석빙고(石氷庫)를 축조해 겨울에 채집한 얼음을 여름철에 사용할 수 있도록 장기간 보관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 이후에도 현대까지 냉장고가 나오기 전에는 한강의 얼음을 잘라 식용으로 쓰기도 했다.

화려하게 장식한 크림 커피 메뉴
ⓒfrice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같은 냉커피는 모든 나라에서 즐기는 음료가 아니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에는 에스프레소에 얼음 3~4개 정도를 잘게 부숴 넣은 카페 프레도(Cafe Freddo)가 있고, 에스프레소에 부순 얼음을 채워 넣고 아이스크림을 얹은 후 휘핑크림과 초콜릿 가루로 마무리하는 카페 플라페(Cafe Flappe)도 있다.

중남미에는 얼음에 커피 음료를 갈아 만든 커피 프로스티(Coffee Frostie)도 있지만 얼음 덩어리를 가득 채우는 커피는 아니다.“사람 떠나고 차가 식었다(人走茶凉)”는 속어 때문인지 중국 사람들은 항상 따뜻한 차나 커피를 마신다.

유리잔에 얼음이 동동 뜬 커피가 담겨있다
ⓒfrice

외신이 주목한 한국인의 ‘얼죽아’ 사랑은 어릴 때부터 찬물이나 차가운 음식을 먹는 게 습관이 된 데서 비롯된다. 그 습관에 날개를 달다 보니 열은 열로, 냉은 냉으로 통하는 법을 몸에 익혔기 때문이다. 국민 음료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한편 아이스 커피의 유행은 ‘대가리를 부비대며’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전통적, 봉건적 관습과 풍속에 저항하며 새로운 맛을 탐닉한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있어 가능했다.

『여성조선』, 신년호, 여성조선사 1933.1 / 최계복, 『두 여인(수원)』, 1933-1944
『여성조선』, 신년호, 여성조선사 1933.1 / 최계복, 『두 여인(수원)』, 1933-1944 ⓒ국립현대미술관

‘얼죽아’의 기원, 모던 보이와 모던 걸

일제 강점기 모던의 상징이었던 다방은 ‘아이스커피’라는 새로운 커피를 선보였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겨울. 외신에서 맹추위에 추워서 얼어 죽을지언정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포기하지 않는 한국인의 커피 문화로 집중 조명을 한 것도 아이스커피 ‘얼죽아(Eoljukah)’였다.

K-팝 인기와 함께 자연스럽게 외국에 알려진 ‘아아(Ah-Ah)’도 실은 일제 강점기 경성 시내에 다방과 카페가 들어서고 이를 즐기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이 등장하면서부터 생겨난 핫한 메뉴였다. 1930년 7월 16일자 〈조선일보〉에는 서구식 용모와 옷차림으로 꾸민 청춘 남녀가 자유연애와 낭만을 만끽하며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풍자하는 글이 실렸다.

조선일보 1930년 7월 16일자 신문기사. 아이스 커피가 언급된 당대 커피 문화를 묘사하고 있다.
ⓒ조선일보

칼피스, 파피스도 조커니와 잠 오지 안케하는 컵피에도 ‘아이스컵피’를 두 사람이 하나만 청하여다가는 두 남녀가 대가리를 부비대고 보리줄기로 쪽쪽 빠라먹는다. 사랑의 아이스컵피-이집에서 아이스컵피-저집에서 아이스컵피-그래도 모자라서 일인들 뻔으로 혀끗을 빳빳치펴서 ‘아다시! 아이스고히가, 다이스키, 다이스키요!(전 아이스커피가 좋아요, 좋아)’, ‘와시모네-?(나도 그래) 혼부라당 백의(白衣)껄이 아니라 제 밋천 드리고 다니는 마네킹껄이 이것이라면 머릿속은 텡비여도 자존심 만흐신 그들은 필작 노할 게로군.

– 조선일보, 1930년 7월 16일자 中

‘모던’의 성지와도 같은 경성 진고개(오늘날 충무로, 명동) 일대를 거닐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소비하는 모던 커플에게 아이스커피는 인기 메뉴였다. 그러나 을사늑약과 한일강제합병 전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들이 무슨 짓을 해도 눈에 잔뜩 거슬릴 뿐이다.

심지어는 둘이 머리를 맞대고 다정하게 아이스커피 한잔을 즐기는 모습조차 “대가리를 부비대고 보리줄기로 쪽쪽 빠라먹는다”고 비꼬았다. 일본어를 쓰며 새로운 유행인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기성세대는 꼴사납게 본 것이다. 당시 갑자기 등장한 모던 풍속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불편한 심기가 드러난다.

조선호텔에서 티타임을 가지는 사람들
ⓒ진용선

그런데도 신세대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소비하고 그것을 즐기는 변화의 물결은 막지 못했다. “이집에서 아이스컵피-저집에서 아이스컵피”라는 표현처럼 아이스커피는 당시 다방이나 카페에서 인기 메뉴 가운데 하나였다. 자유연애를 꿈꾸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에게는 ‘사랑의 아이스커피’였다. 아이스커피는 이렇게 기성세대의 근심 어린 시선 속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때 일본식 영어표현인 ‘아이스 커피’가 정착했다. ‘iced coffee’라는 표현을 뒤로 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