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미감이 공간과 경험에 스며들 때
노츠 어소시에이츠 디자이너 유인성 「2」
노츠 어소시에이츠 디자이너 유인성 「1」
frice는 '한국의 디자이너'가 궁금하다. 자기자신이 아니라 '자기자신이 했던 일'을 말할 디자이너가 궁금하다. 노츠 어소시에이츠 유인성 대표를 만났다. 그는 공간과 브랜드를 다루는 디자이너의 일이 '관여'라 정의한다.
안녕하세요 인성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디자인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지 16년 차인 브랜드 디자이너입니다. 그래픽, 패션, 리조트, 브랜드 에이전시, 건설, 부동산 개발 회사 등을 거쳤는데요. 창작과 라이프 스타일에 관여된 디자인 프로젝트가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공간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프로젝트를 열심히 했죠. 지금은 공간 디자인을 포함한 브랜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 맡았던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네이버에서 UXDP라는 채용 프로그램을 열었어요. 2010년대 전후 디자이너 지망생 사이에서 인기였던 인턴십으로 기억해요. 연수원에 인턴을 11일 정도 합숙시키고 경쟁형 도전과제를 내요. 일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죠. 저는 UXDP 참여를 마치고 브랜드팀에 배치됐어요. 그 당시 네이버는 디자인 조직을 크게 ‘브랜드/BX/UX’로 나눴죠. 브랜드팀은 네이버의 브랜드 전략과 각종 서비스를 관리했습니다. 저는 일부 서비스의 선행 개발에 참여했어요.
‘브랜드 경험Brand Experience’도 디자인하시는데요.
지금은 상식처럼 여겨지는 일이지만, 당시 한국에선 낯선 개념이었어요.
제가 입사했던 2000년대 후반, 디자이너 사이에 본격적으로 언급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이직하며 맡았던 실무가 브랜드 경험(BX) 디자인이어서 적응하며 조금씩 눈 떴던 거 같아요. 네이버를 떠나고 JOH.를 6년 정도 다녔습니다. 동료들이 이미 BX나 브랜딩이라는 개념을 실무에 접목시켜 대중적으로 전파하는 리더들이기도 했어요. 덕분에 빨리 깨우쳤죠.
브랜드 경험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이론서에 따르면
‘브랜드 경험은 정체성, 시각요소, 세계관 같은 걸 따로 설계하고
그것을 사용자가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끔 연결하는 디자인 작업이다.’
라고 정리됩니다. 설명 자체가 너무 추상적입니다.(웃음)
실무를 잡더라도 딱 떨어지는 공식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라 생각해요.(웃음) 브랜드 경험 디자인은 단순한 비주얼 디자인이 아닙니다. 상품이나 서비스가 가진 장점을 살리고, 그것을 좋아 보이게 만드는 일이죠. 이왕이면 브랜드에 얽힌 사람들이 서로 좋은 자극을 받고, 상호 유익한 도움이 이뤄지도록 판을 설계하는 게 핵심입니다. 저는 고객이 브랜드와 서비스를 만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느끼는지 궁금해요. 브랜드를 만난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반응하는 지점이 궁금해서 계속 브랜드 디자인에 ‘관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관여’라는 단어가 인상적입니다. 브랜드에 어떤식으로 관여하게 되나요?
먼저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에 관여합니다. 브랜드와 클라이언트가 우리를 찾는 이유를 알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죠. 페이퍼워크를 통해 의뢰인에게 프리젠테이션을 꾸준히 펼치는 식으로 방향성을 정하는 단계가 선행됩니다. 그다음에 시각화visualization 단계를 거치는데요. 디자이너는 이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온갖 업무에 관여되는 듯 합니다.
앞서 말한 업무를 끝내고 본격적인 디자인 단계로 넘어가면 종이나 컴퓨터 화면 같은 2D 표면에 컬러와 도형을 조합해 그래픽과 더불어 다양한 콘텐츠를 구현합니다.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분석하고, 시각요소를 위한 기획이나 전략을 만들어요. 이 과정에서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을 배치하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인테리어 프로젝트에서 가구가 키 요소라면 적합한 가구를 찾고, 영상 제작이 필요하면 영상전문가를 찾아내 일정을 주도적으로 짜요. 인력섭외와 일정관리는 브랜드 경험을 디자인하는 사람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또한 브랜드를 경험할 고객을 위한 공간에 관여합니다. 만약 오프라인 이벤트가 열린다면, 고객이 방문하는 공간에 세부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건 디자이너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가와 팀을 이루고, 목표달성을 위해 프로젝트를 발전시켜요. 자신감과 책임감을 갖고 건축 전문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세부사항을 조정하는 거죠.
직무를 브랜드 디자이너라고 소개하셨는데,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다양한 일을 수행하셨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시작은 그래픽에 관여하는 것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일하더라도 브랜드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계속 깔려있었어요. 대림처럼 부동산 개발과 얽힌 조직에서 근무했을 땐 디벨로퍼의 관점을 익혔어요. 공간을 기획하고 이름을 붙이고, 그런 공간이 도시 안에서 어떤 기능과 콘텐츠를 가진 플랫폼이 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는 일을 했습니다.
두 번째 직장이었던 JOH.의 조직문화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JOH.는 대외적으로 『매거진 B』를 만드는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건축부터 F&B까지 각 분야별 전문팀이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요.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주받으면 팀 별로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업무를 수행해요. 하나의 프로젝트도 다양한 카테고리에 걸쳐져 종합적으로 전개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저도 여러 업무에 관여했습니다.
브랜드 디자이너의 일은 장기간에 걸쳐 있는데다, 비가시적인 성과가 더 많습니다.
디자이너의 업무능력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관점’과 ‘방향성’이 브랜드 디자이너의 무기라고 생각해요. 두 가지가 참 중요해요.
좋은 ‘관점’과 ‘방향성’을 잡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하시나요?
극초반 아이디어 구상은 메모로 하는 편입니다. 레퍼런스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인데요. 브랜드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워낙 레퍼런스를 많이 쥐고 있어요. “A브랜드가 B콘셉트로 팝업스토어 연다더라.” “C는 D에서 F를 시도했는데 흥행했다더라.” 온갖 정보가 귀에 들어와요.
그런 레퍼런스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핵심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메모에 담은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애써요.
개인적으로는 핀터레스트를 주의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AI까지 가세했어요. 트렌드를 스타일로 구분하고 순위를 매기는 서비스가 등장했고 유저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오픈소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죠. ‘이런 데이터 분석의 결과값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건가?’ 유행에 몸을 맡기는 현대 디자인 트렌드에도 조금은 경계심을 갖고 있어요.
지금 한국에서 전문 조직이 브랜드를 설계하는 경우, 데이터 기반 오픈소스툴 활용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디자인 업무를 수월하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어요. 좋은 툴입니다. 좋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하라는 거죠. 정서적인 심상과 문제 해결을 위한 직관, 그리고 리서치 데이터를 접목시키는 건 디자이너의 역량이니까요. 이 세상이 점점 더 자극적이고 더 화려하고 더 시끄러운 곳으로 끌려가고 있어요. 데이터 분석에 의한 알고리즘이 알게 모르게 실무에 반영된다는 걸 의식하고, 좀 더 순간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거죠.
브랜드에 관여하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관점을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관점 하나로는 결국 한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디자인은 결국 추상과 실제를 연결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모순적인 가치를 양립시키며 진전되는 사례도 빈번하죠. 브랜드가 추구하는 사업적인 가치를 따지려면 이성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 테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남기 위해서는 동시에 정서적인 관점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프로젝트 초반에 클라이언트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좀 더 많이 듣고, 더 알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고 나서 어떤 직감이나 심상 같은 걸 놓치지 않고 디자인 솔루션과 연결을 합니다. 이건 직관 내지는 본능. 정서적인 측면이죠.
이게 경영전략같은 이성적인 측면과 결합이 잘 되면 좋은 브랜드 디자인이 태어나는 건데요. 성공적인 프로젝트는 기능과 정서의 연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연결에서 나온다고 봐요.
전문가로 활약하려면 디자인 솔루션을 여러가지 패턴으로 쥐고 있어야겠네요.
‘깃발 세우기’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예쁜 것과 좋은 것을 분류하고, 그것을 남들보다 먼저 얘기해서 명분을 선점하는 방법을 써요. 현상을 분석하고 거기서 얻어낸 직관을 연결하면서 실천가능한 디자인 프로젝트로 개발시킵니다.
저는 ‘경청’을 선호합니다. 가능하다면 일단 남들보다 더 많이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일단 클라이언트의 입장을 다 듣고, 레퍼런스를 검토하며 아는 게 많아질수록 관점이 다양해져요. 관점이 다양해지면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도 다양해집니다. a와 b만 만족시키지 않는 솔루션, 이질적인 c, d, e가 있어도 추진이 가능한 솔루션이 등장하는 거죠. 만약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완전히 틀어지더라도 나중에 계속 디자인을 이어나갈 수 있는 근거와 독특한 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가장 희열을 느낀 순간은 언제입니까?
열심히 고민한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수용됐을 때입니다. 이제 브랜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된 거 같아요.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은 생각보다 힘이 세거든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이미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어요. 이미 누군가가 설계해둔 디자인에 의해서 말이죠.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디자인은 이미 스며들었다. 당신의 선택지는 사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결정됐다.」
이런 정의를 내릴 수 있을만큼요.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 이론을 이해하고 실제 사례를 접하다보면 남들이 만든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와 대중 모두가 브랜드 디자인을 비판적으로 의식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앞으로도 브랜드의 무언가를 관여하며 디자인할 텐데요. 쉽게 타인에게 휩쓸리지 않는 건강한 취향이 제게도 필요하고, 브랜드 디자인에 영향을 받을 분들에게도 이런 능동적인 태도가 중요할 겁니다. 누군가의 브랜드 디자인을 거스르려는 안간 힘이! 제가 여태까지 했거나, 앞으로 할 디자인에 반영됐으면 합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to be continued…😎
😈 여러분은 자신의 직업에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신가요? 비슷한 일을 하는 업계동료와 직업의 의미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 경험을 전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유인성 디자이너의 노하우가 담긴 기획 노트를 볼 수 있는 건 커다란 행운이었어요. 1부는 브랜드 디자이너의 관점을 살펴봤는데요. 이어지는 2부에서는 관점이 실제로 구현된 공간을 소개합니다. 보다 깊은 디자인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2부에서 만나요!
정리 프라이스
사진 한희석
장소 클레어스 서울 / 티하우스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