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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잇는 디자이너가 알아야 할 것

ⓒ서울메이드

ⓒ물나무사진관

물나무사진관은 ‘사진을 통해 한국적인 것을 이야기’하려고 만든 공간입니다. ‘전신사조’*라는 전통 회화 스타일을 응용한 사진관이죠. 저는 90년대부터 패션지 인물 화보 같은 상업사진을 만들었어요. 시간이 흐르며 ‘한국적인 것’을 시각화하고 우리 것의 가치를 알리는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물나무사진관

이 밖에도 사진 인화용 한지 디자인, 사진관 앞 한옥에서 한국 공예품을 소개하는 상점을 운영하셨는데요. ‘한국적인 디자인’을 탐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궁금하네요.

2000년대 중후반에 한국 문화를 다룬 수카라(スッカラ)라는 일본잡지가 있었어요. 저는 수카라의 사진기자이자 포토 디렉터로 일했습니다. 그때 우리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방식’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예를 들어, 특집 콘텐츠로 한지나 한옥을 소개한다고 가정해볼게요. 우리는 한지와 한옥에 대해 너무나 익숙하지만, 막상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외국에 나와 보니, 그들은 문화를 수용하고 알리는 데 나름의 체계적인 방법을 갖추고 있었어요. 또한, 문화를 다루는 기준도 비교적 객관적이고 명확하다는 걸 깨달았죠.

ⓒスッカラ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한국 문화를 다루려면 일단 시선이 필요하구나! 그리고 문화를 체계적으로 묶는 방식이 필요하겠구나!”

그래서 대학원에 들어가 기호학을 공부했어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한국 문화가 가진 본질을 탐구하는 연습이었죠.

그 결과 ‘전승’‘계승’의 차이를 구분하게 됐어요.

전승’과 ‘계승’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전승’은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이고, ‘계승’은 전통에 오늘의 쓰임새를 더해 이어가는 것이에요. 전통은 알고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진짜 중요한 건 계승이죠.

계승이 ‘전통에 오늘의 쓰임새를 덧입히는 일’이라면 어떤 사례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우리는 예로부터 말총을 활용해 생활 도구를 만들어 사용했어요. ‘갓’을 만들어 머리에 쓰거나, ‘체’를 만들어 가루를 거르는 식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이런 전통적인 도구를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계승하려는 사람은 이 흐름에 디자인을 더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어요.
“자! 말총은 이렇게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라고 애기하며, 말총으로 커피 필터를 만들어 보고, 종이 필터나 융 드립 커피와 비교해 보며, 여러 사람에게 시음을 권할 수도 있겠죠.

백경현 말총공예 장인의 마미체 커피필터 ⓒChwi

한국의 말총공예가 새로운 쓰임을 얻고, 누군가에게 필요해지고, 경제성을 갖추고, 유행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 문화 계승에 문제를 제기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이건 저의 수많은 자아 중, 사회적인 자아일 텐데요. ‘한국적인 XX’를 탐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이자 근본적인 동기이기도 합니다.

여담이지만, 저는 한국의 전통과 그 계승 과정에서 ‘근대’가 빠져있다고 생각해요. 전근대 문화는 박물관의 유능한 학예사님들이나 관계자분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보존하고 있죠. 그런데 근대는 달라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1900년경 사진첩 ⓒ근현대디자인박물관, Google Arts&Culture

그래도 근대 시기의 시각 기록물은 꽤 풍부하지 않나요?

하지만 당시의 생활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단순한 자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저는 직접 그 시대를 살아온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당시 시대상을 들여다보려고 했어요.

“어르신 저는 70년대생이라 그 시절을 잘 모르는데요. 당시 모습을 좀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라고 여쭤보면 대부분 이렇게 답하시더라고요.

“아유~그땐 먹고 살기 힘들었어.”

대화를 나누다보면 기억이 포개지면서 장소성과 분위기 같은 기호학적 요소들이 조금씩 드러나거든요.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이상의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그래도 지금 남아있는 걸 보존하고 지킬 수 있었다는게 다행이죠. 비록 서양의 근대화를 일본이 수용하면서 그 흐름이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지만, 한국의 근대적 문화 역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적인 디자인’을 탐구하는 디자이너를 위해 유용한 팁 하나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맥락을 알고 디자인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한국적인 디자인을 할 때 더욱 그렇죠.

최근 협업에서 한글 세로쓰기를 활용한 시각 디자인을 받았어요. 그런데 확인해 보니, 레이아웃 자체는 가로쓰기에 맞춰져 있더라고요. 사실, 한글 세로쓰기가 흔했던 시대도 있었어요. 한글 가로쓰기가 표준이 된 것은 20세기 중후반부터예요. 만약 디자이너가 한글 쓰기의 역사적 흐름과 배경을 더 깊이 이해했다면, 훨씬 더 좋은 디자인을 만들 수 있었겠죠.

여러분도 디자인하려는 대상의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접근하는 디자이너가 되시길 바랍니다.

전통에서 발견한 우리 디자인 언어 : 해학과 농담

디자인 스튜디오 이감각의 노방자수 포스터
디자인 스튜디오 이감각 프로필.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스튜디오 이감각 「1」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이야기 이감각 @leegamgak 라이프스타일 / 생활소품 한국의 역사ꞏ문화에서 엿볼 수 있는 조형과 그래픽을 모티브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는 디자인 스튜디오 "전통은 엄마의 젊은 시절 원피스를 내가 입는 일과 다르지 않아요."
인터뷰 콘텐츠 DM그라운드의 인트로 다이얼로그. 안녕하세요 frice입니다. 프라이스는 한국의 전통에서 디자인 언어를 탐구하는 디자이너가 궁금해요! 한국적인 미감을 잘 표현한 의 작업을 소개하고 싶어요. 네,안녕하세요! 저희 브랜드를 관심 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이야기’라는 슬로건이 인상적인데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이감각이 디자인하고 싶은 한국스러움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이감각의 작업은 ‘전통의 현대화’나 ‘전통이 무엇인가?’를 다루기보다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가깝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모든 것은 우리안에 있다’였죠. 디자인에 우리 자신에 대한 적극적인 탐색 의지를 담습니다. 우리가 가진 특색이 보다 일상에 가깝고 편하게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했어요.

이감각의 노트북 파우치 디자인

그렇다면 이감각에게 전통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에게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나를 인식하는 일입니다. 전통은 할머니의 오래된 가구를 엄마가 쓰고 엄마의 젊은 시절 원피스를 내가 입는 것과 아주 다르지 않아요. 누군가 아꼈던 물건들을 통해서. 그걸 물려주는 마음을 통해서. 그들을 헤아리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누구보다도 자신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감각의 노방 자수 포스터. 복을 기원하는 뜻을 담은 인테리어 오브제

나를 인식하는 것은 외부를 통해서가 아니죠. 한국을 이루는 수많은 것들 또한 입에서 입, 손에서 손, 그리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왔다 생각해요. 우리만의 히스토리가 있는 오브제들을 통해서 한국적인 해학, 소박, 흥을 전하고 싶어요. 더불어 세상에 유일한 나를 사랑하고 즐기는 경험을 전하고 싶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시대 분청사기

요즘 한국의 전통에서 디자인 언어를 얻으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적인 멋’을 탐구 중인 창작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한국 고유의 디자인 언어를 딱 하나로 좁혀서 말하긴 힘들지만! 저희가 가장 흥미롭게 보는 요소는 ‘해학’입니다. 유머라고 하죠. 주어진 현실을 과장하거나 비꼬는 게 우리게에 있어요.

유튜브 댓글 창 같은 거 보면 한국 사람들은 말을 되게 웃기게 하잖아요.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꼬인 걸 풀려고 하고. 풀린 건 꼬면서 놀고.

이런 해학적인 태도가 한국만의 위트인 것 같아요.

호랑이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이감각의 자수 디자인

해학이 디자인 언어가 된 사례는 어떤 게 있을까요?

도자기에 그린 그림이나 표현 방식이 그래요. 그릇에 점 하나 탁 찍어서 마무리하는 기법 같은 게 그렇죠.

또 하나는 호랑이 그림인데요. 다른 나라는 무섭게 그려요. 두려운 존재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맹수를 귀엽게 묘사하거나 우스꽝스럽게 표현햐요.

호랑이를 친근하게 그리는 건 호랑이와 친한 관계를 원했던 게 아닐까요?

호랑이처럼 무서운 대상을 좀 더 쉽게 다룰 수 있는 존재 혹은 허물어진 존재로 여기는 거죠.

호랑이를 친근하게 표현한 이감각의 유리컵 디자인

이건 한국인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관계성일 텐데요. 우리는 남을 포용하고 함께 섞인 채 노는 상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미감도 그런 방향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서양처럼 자연과 나를 독립시키려는 태도와는 달라요. 지금까지 얘기했던 점들이 이감각의 제품이나 디자인 스타일에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감각이 요즘 푹빠진 한국의 디자인 언어는 무엇인가요?

‘매듭’입니다. 저희는 한국적인 디자인의 맥락이 해학이라 보는데요. 해학을 떠올리면, 농담을 거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얽히는 모습이 떠올라요. 그것을 실을 써서 조형적으로 풀면 실과 실이 꼬인 매듭이 나옵니다.

매듭 자체가 한국문화 특유의 관계성이 반영된 조형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서양에서는 그냥 도구 내지는 수단이거든요. 끈을 묶어서 뭔가 물건을 만들고 고정을 하는 목적 그 자체만 남는 건데 우리나라는 달라요. 매듭 자료도 많이 남아있고 한국인이라면 매듭의 의미적인 맥락을 볼 수 있지요.

이감각에서 출시한 매듭 디자인 제품. 도자기법으로 3차원 금형을 떴다
ⓒ이감각

매듭은 재밌어요. 2d인데 3d고 2d가 3d가 된 거라서. 묘한 해학이 생기죠. 완전 평면인데 접으면 입체니까. 이감각이 하고 싶은 디자인. 이감각이니까 할 수 있는 디자인 이야기가 생기는 거죠. 평면인데 자수를 넣고 엮고 접고 하면서 얘기가 생기고. 그 면과 면 사이에 또 다른 관계성이 생기는 것. 그런 게 좋습니다. 실 뿐만 아니라 흙이나 실리콘 등 다양한 소재로 매듭 디자인을 만드는데 도전하고 있어요!

특히 패브릭 소재 매듭은 사람손을 타는 디테일인데요. 공임 과정에서 매듭을 전담해주실 협업파트너의 존재가 정말 소중합니다. 저희가 그동안 매듭에 매달리면서 이걸 전담해주실 수 있는 장인분을 만나고 있고, 앞으로도 그 덕을 많이 볼 거 같아요. 원하는 디테일을 만들기 위한 파트너를 만나는 건 정말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