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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섞어! K 카페, 뻔하거나 fun하거나

K 카페 스타터 팩_힙트레디션

이번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페를 탐색했어요. 한국에는 특유의 정취나 유행을 담은 독특한 카페가 참 많은데요. 다양한 컨셉이 어우러져 개성있는 카페로 탄생합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서 마구 뒤섞는데, 한데 모아놓고 보니 ‘마데 인 코리아’! 세상에 둘도 없는 K스러움이 등장하는거죠!🤩한국 카페 스타터팩 2부에서 만날 카페, 뻔할까요 fun할까요?😎


1. 근교 대형 카페
넓다! 높다! 크다! 답답한 도시는 뒤로! 우리는 카페로 가요~♪

날씨 좋은 주말, 도심을 벗어나 교외로 향합니다. 푸른 들판, 끝없이 펼쳐진 물결을 배경으로 넓은 주차장과 커다란 건물이 자리 잡았습니다. 1층 문을 열면 빵 냄새가 고소해요. 속이 뻥 뚫리는 높고 커다란 창문 밖 풍경도 멋져요. 1층, 2층, 3층 심지어 테라스까지 구석구석 흩어진 대형 식물도 눈에 띕니다. (이 식물 되게 비싼 거 아냐?) 카페 안팎의 풍경에 감탄하다 자리를 둘러보니 푹신한 소파존은 이미 만석이예요. 빼곡하게 줄지어 늘어선 테이블 좌석마다 말소리가 웅성웅성. 사람도 많고 차도 많은 이곳에서 느긋한 휴식은 어렵겠네요.😔 수백 명이 와도 끄떡없긴 한데! 넓은 만큼 사람이 꽉 들어차 있다니..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어요. 아니 심지어 지금 오전인데!!

 K 카페 스타터 팩_근교 대형 카페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이곳은 커피 맛집인가 빵 맛집인가. 유난히 빵이 맛있단 말이죠? 비싼 것 같은데 풍경이랑 음식이 꽤 괜찮아서 좋았던 기억!

🐲 완전 통창이라길래 두근두근 기대를 안고 방문했는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창가는커녕 벽 쪽에 기대앉아 사람들 뒤통수만 실컷 보고 왔어요. 다들 몇 시에 온 걸까요?

2. 다다익선 원조 감성카페
사장님의 섬세한 손길로 완성된 감성 아지트

수지, 호수… 물가 근처엔 꼭 카페가 있어요. 맛집도 다녀왔겠다, 일렁이는 물결이나 바라보며 소화시켜 볼까요? 삐걱거리는 목조 계단을 따라 올라갑니다. 주변에는 화분이 한가득 이예요. (K 플랜테리어의 시작이었을까요?) 이곳에서는 모든 기물이 장식품이 됩니다. 깨지거나 이가 나간 그릇, 항아리도 사장님의 애정 어린 손길이 스치고 나면 훌륭한 화분으로 새로운 쓸모가 생겨요. 창틀, 테이블, 선반 등 평평한 곳에는 사장님이 하나하나 모아온 추억이 빼곡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다다익선 원조 감성카페에서는 생각보다 많은 메뉴에 당황할 수 있습니다. 직.접. 만드는 수제 청, 우리 차 종류만 해도 몇 가지인지! 손수 뜬 레이스 컵 받침이 받혀진 냉커피 한잔 마시면서 천천히 시간을 즐깁니다. 혹시 창가에 앉으셨나요? 가끔 얼굴로 달려드는 날벌레는 무시하세요! 우리보다 먼저 와 있었을 테니까요. 😅

 K 카페 스타터 팩_원조 감성카페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부모님과 함께 누룽지 백숙 먹고 나면 꼭 들르던 호수 옆 카페가 생각나네요. 음료를 주문하면 1인 1 찜질팩을 주던 곳인데요. 어깨에 올려놓고 약초 냄새 맡으면서 푹신한 소파에 기대서 쉬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내 안에 숨겨진 아재 발견 😂

🙀 인심 좋은 시골 카페 같지만, 그렇지 않은 가격에 흠칫!

3. 힙트래디션
기와집 고즈넉한 분위기에 힙한 감성 한 스푼


전통 카페 가본 적 있으신가요? 예를 들면 서울 종로, 인사동 근처 큰 빌딩 숲속에 자리한 한옥 카페에서 한국의 전통 차 문화를 체험하는 부류의 카페들이요. 전통 카페는 인테리어부터 도구들까지 한국의 전통문화가 그대로 담겨있는 이미지였는데요, 최근 힙트래디션 트렌드의 물결을 타고 그 모습이 바뀌고 있습니다. 개인 카페가 아닌 유명한 프랜차이즈가 한옥 안에 자리 잡습니다. 외부는 고즈넉한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부는 완전히 달라요. 모던한 입식 테이블이 편리합니다. 곳곳에 놓인 특별한 좌식 테이블에서는 과거와 즐기는 음료만 다를 뿐 한옥의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어요.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 툇마루에 앉아 즐기는 아메리카노와 뱅 오 쇼콜라. 물론 유행하는 전통 약과도 빠질 수 없죠! 데이트하는 연인도, 모임 중이신 어머님들도, 한국이 궁금한 외국인들도 모두 어우러지는 풍경입니다.

 K 카페 스타터 팩_힙트레디션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카페 가자더니 한옥으로 들어가길래 전통차 마시자고?! 싶었거든요. 근데 엄청 유명한 프랜차이즈 카페였어요. 모습만 한옥이지 속은 완전히 다르더라구요. ‘한옥에 있는 카페=전통차 파는 카페다’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지던 순간이었습니다.

🐯 지방에 있는 한옥 카페들은 고즈넉함이 있는 것 같고, 서울에 있는 한옥 카페들은 도시 빌딩 숲 사이에 있는 풍경이 참 독특한 것 같아요. 한옥에 살기는 어렵지만, 카페로 새롭게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아요.

4. 무국적 카페
편견없이 고가구를 모으면 생기는 일

벽면에는 할머니 집에서 보던 자개장이 위용을 뽐냅니다. 목조 건물에 올라간 기와, 알루미늄 새시에 고방 유리 미닫이문은 옛 한국의 정취가 묻어나죠. 하지만 바닥에 깔린 페르시안 러그, 영국제 타일과 유럽풍 가구들을 만나면 잠시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 한국이야 외국이야? 카페 디자인이 진화하면서 저마다 자기의 특색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무국적 카페는 국적을 따지지 않고 선별한 고(古)가구들로 특유의 무드를 만드는데요. 카페 사장님만의 취향과 심미안을 담은 각기 다른 디자인의 가구와 소품들이 모여 새로운 국적을 만듭니다. 우리 주변에서 보였던 한국 가옥의 특징이 보이는 익숙한 풍경과 소품 속 시선이 닿는 곳곳에서 느껴지는 낯선 나라. 시간과 공간이 섞여 한국 어느 동네에 뿌리내리면, 국적은 없지만 출신은 한국인 우리끼리만 아는 ‘무국적 카페’의 탄생입니다.

 K 카페 스타터 팩_무국적카페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자개장…갖고싶다.. 물건들 하나하나가 전부 독특하고 마음에 들었어요!

🤩 서양 문물이 들어오던 시기의 유럽 느낌을 넘어서 요즘은 동남아, 남미 등 여러 문화가 한국적인 오브제와 섞여서 보이는 것 같아요. 글로벌 시대의 한국 모습이 이런 것 아닐까요?

😈 한국인에게 섞는다는 것은 blend(a+b=c)보단 mix(a+b=a & b)의 개념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서로 다른 것들이지만 그 이질적임이 조화되면 새로운 즐거움을 전달하죠. 우리 주변 카페도 잘 살펴보니 이러한 한국인의 특징이 녹아있었어요. 카페에도 스며든 한국인의 섞기 신공! 오늘도 질릴 틈 없는 K 카페! 과연 얼마나 더 새로워질 수 있을까요?

관점에 관여하다

뷰티 브랜드 팝업의 VMD를 손보는 유인성 디자이너
뷰티 브랜드 팝업 쇼룸 설치현장에서 만난 유인성 디자이너
뷰티 브랜드 팝업 쇼룸 설치현장에서 만난 유인성 디자이너 ⓒfrice

안녕하세요 인성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디자인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지 16년 차인 브랜드 디자이너입니다. 그래픽, 패션, 리조트, 브랜드 에이전시, 건설, 부동산 개발 회사 등을 거쳤는데요. 창작과 라이프 스타일에 관여된 디자인 프로젝트가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공간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프로젝트를 열심히 했죠. 지금은 공간 디자인을 포함한 브랜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 맡았던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네이버에서 UXDP라는 채용 프로그램을 열었어요. 2010년대 전후 디자이너 지망생 사이에서 인기였던 인턴십으로 기억해요. 연수원에 인턴을 11일 정도 합숙시키고 경쟁형 도전과제를 내요. 일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죠. 저는 UXDP 참여를 마치고 브랜드팀에 배치됐어요. 그 당시 네이버는 디자인 조직을 크게 ‘브랜드/BX/UX’로 나눴죠. 브랜드팀은 네이버의 브랜드 전략과 각종 서비스를 관리했습니다. 저는 일부 서비스의 선행 개발에 참여했어요.

‘브랜드 경험Brand Experience’도 디자인하시는데요.
지금은 상식처럼 여겨지는 일이지만, 당시 한국에선 낯선 개념이었어요.

제가 입사했던 2000년대 후반, 디자이너 사이에 본격적으로 언급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이직하며 맡았던 실무가 브랜드 경험(BX) 디자인이어서 적응하며 조금씩 눈 떴던 거 같아요. 네이버를 떠나고 JOH.를 6년 정도 다녔습니다. 동료들이 이미 BX나 브랜딩이라는 개념을 실무에 접목시켜 대중적으로 전파하는 리더들이기도 했어요. 덕분에 빨리 깨우쳤죠.

유인성 디자이너의 디자인 노트. 아이디어 구상은 빈 종이에 간단한 썸네일을 그리는데서 출발한다
유인성 디자이너의 디자인 노트. 아이디어 구상은 빈 종이에 간단한 썸네일을 그리는데서 출발한다. ⓒfrice

브랜드 경험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이론서에 따르면

‘브랜드 경험은 정체성, 시각요소, 세계관 같은 걸 따로 설계하고
그것을 사용자가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끔 연결하는 디자인 작업이다.’

라고 정리됩니다. 설명 자체가 너무 추상적입니다.(웃음)

실무를 잡더라도 딱 떨어지는 공식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라 생각해요.(웃음) 브랜드 경험 디자인은 단순한 비주얼 디자인이 아닙니다. 상품이나 서비스가 가진 장점을 살리고, 그것을 좋아 보이게 만드는 일이죠. 이왕이면 브랜드에 얽힌 사람들이 서로 좋은 자극을 받고, 상호 유익한 도움이 이뤄지도록 판을 설계하는 게 핵심입니다. 저는 고객이 브랜드와 서비스를 만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느끼는지 궁금해요. 브랜드를 만난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반응하는 지점이 궁금해서 계속 브랜드 디자인에 ‘관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관여’라는 단어가 인상적입니다. 브랜드에 어떤식으로 관여하게 되나요?

먼저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에 관여합니다. 브랜드와 클라이언트가 우리를 찾는 이유를 알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죠. 페이퍼워크를 통해 의뢰인에게 프리젠테이션을 꾸준히 펼치는 식으로 방향성을 정하는 단계가 선행됩니다. 그다음에 시각화visualization 단계를 거치는데요. 디자이너는 이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온갖 업무에 관여되는 듯 합니다.

앞서 말한 업무를 끝내고 본격적인 디자인 단계로 넘어가면 종이나 컴퓨터 화면 같은 2D 표면에 컬러와 도형을 조합해 그래픽과 더불어 다양한 콘텐츠를 구현합니다.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분석하고, 시각요소를 위한 기획이나 전략을 만들어요. 이 과정에서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을 배치하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인테리어 프로젝트에서 가구가 키 요소라면 적합한 가구를 찾고, 영상 제작이 필요하면 영상전문가를 찾아내 일정을 주도적으로 짜요. 인력섭외와 일정관리는 브랜드 경험을 디자인하는 사람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시각요소에 개입하는 디자이너의 업무를 설명하기 위해 아카이브 노트를 펼친 유인성 디자이너
시각요소에 개입하는 디자이너의 업무를 설명하기 위해 아카이브 노트를 펼친 유인성 디자이너 ⓒfrice

또한 브랜드를 경험할 고객을 위한 공간에 관여합니다. 만약 오프라인 이벤트가 열린다면, 고객이 방문하는 공간에 세부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건 디자이너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가와 팀을 이루고, 목표달성을 위해 프로젝트를 발전시켜요. 자신감과 책임감을 갖고 건축 전문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세부사항을 조정하는 거죠.


직무를 브랜드 디자이너라고 소개하셨는데,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다양한 일을 수행하셨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시작은 그래픽에 관여하는 것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일하더라도 브랜드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계속 깔려있었어요. 대림처럼 부동산 개발과 얽힌 조직에서 근무했을 땐 디벨로퍼의 관점을 익혔어요. 공간을 기획하고 이름을 붙이고, 그런 공간이 도시 안에서 어떤 기능과 콘텐츠를 가진 플랫폼이 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는 일을 했습니다.

두 번째 직장이었던 JOH.의 조직문화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JOH.는 대외적으로 『매거진 B』를 만드는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건축부터 F&B까지 각 분야별 전문팀이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요.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주받으면 팀 별로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업무를 수행해요. 하나의 프로젝트도 다양한 카테고리에 걸쳐져 종합적으로 전개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저도 여러 업무에 관여했습니다.

본업인 디자인 에이전시 업무 외에도 『매거진 B』의 콘텐츠 제작에 일부 관여했다는 유인성 디자이너의 노트를 구경할 수 있었다
본업인 디자인 에이전시 업무 외에도 『매거진 B』의 콘텐츠 제작에 일부 관여했다는 유인성 디자이너의 노트를 구경할 수 있었다. ⓒfrice
유인성 디자이너는 당시 협업이 브랜드 경험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시각 콘텐츠로 바꿔보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유인성 디자이너는 당시 협업이 브랜드 경험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시각 콘텐츠로 바꿔보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frice
B's Cut의 촬영 시안. 각 호마다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할 제품을 골라 스튜디오에서 촬영한다. 디자이너는 사진작가에게 요청할 연출법을 시각화해서 전달한다
B’s Cut의 촬영 시안. 각 호마다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할 제품을 골라 스튜디오에서 촬영한다. 디자이너는 사진작가에게 요청할 연출법을 시각화해서 전달한다. ⓒfrice

브랜드 디자이너의 일은 장기간에 걸쳐 있는데다, 비가시적인 성과가 더 많습니다.
디자이너의 업무능력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관점’과 ‘방향성’이 브랜드 디자이너의 무기라고 생각해요. 두 가지가 참 중요해요.

좋은 ‘관점’과 ‘방향성’을 잡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하시나요?

극초반 아이디어 구상은 메모로 하는 편입니다. 레퍼런스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인데요. 브랜드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워낙 레퍼런스를 많이 쥐고 있어요. “A브랜드가 B콘셉트로 팝업스토어 연다더라.” “C는 D에서 F를 시도했는데 흥행했다더라.” 온갖 정보가 귀에 들어와요.

그런 레퍼런스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핵심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메모에 담은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애써요.

개인적으로는 핀터레스트를 주의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AI까지 가세했어요. 트렌드를 스타일로 구분하고 순위를 매기는 서비스가 등장했고 유저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오픈소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죠. ‘이런 데이터 분석의 결과값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건가?’ 유행에 몸을 맡기는 현대 디자인 트렌드에도 조금은 경계심을 갖고 있어요.

지금 한국에서 전문 조직이 브랜드를 설계하는 경우, 데이터 기반 오픈소스툴 활용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디자인 업무를 수월하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어요. 좋은 툴입니다. 좋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하라는 거죠. 정서적인 심상과 문제 해결을 위한 직관, 그리고 리서치 데이터를 접목시키는 건 디자이너의 역량이니까요. 이 세상이 점점 더 자극적이고 더 화려하고 더 시끄러운 곳으로 끌려가고 있어요. 데이터 분석에 의한 알고리즘이 알게 모르게 실무에 반영된다는 걸 의식하고, 좀 더 순간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거죠.

레퍼런스를 떠나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그 안에 담긴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레퍼런스를 떠나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그 안에 담긴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frice

브랜드에 관여하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관점을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관점 하나로는 결국 한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디자인은 결국 추상과 실제를 연결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모순적인 가치를 양립시키며 진전되는 사례도 빈번하죠. 브랜드가 추구하는 사업적인 가치를 따지려면 이성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 테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남기 위해서는 동시에 정서적인 관점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유인성 디자이너가 기록한 토론 자료.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1~2주 간격으로 클라이언트 미팅에 필요한 PT작업에 나선다고 한다
유인성 디자이너가 기록한 토론 자료.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1~2주 간격으로 클라이언트 미팅에 필요한 PT작업에 나선다고 한다. ⓒfrice

그래서 저는 프로젝트 초반에 클라이언트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좀 더 많이 듣고, 더 알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고 나서 어떤 직감이나 심상 같은 걸 놓치지 않고 디자인 솔루션과 연결을 합니다. 이건 직관 내지는 본능. 정서적인 측면이죠.

이게 경영전략같은 이성적인 측면과 결합이 잘 되면 좋은 브랜드 디자인이 태어나는 건데요. 성공적인 프로젝트는 기능과 정서의 연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연결에서 나온다고 봐요.

전문가로 활약하려면 디자인 솔루션을 여러가지 패턴으로 쥐고 있어야겠네요.

‘깃발 세우기’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예쁜 것과 좋은 것을 분류하고, 그것을 남들보다 먼저 얘기해서 명분을 선점하는 방법을 써요. 현상을 분석하고 거기서 얻어낸 직관을 연결하면서 실천가능한 디자인 프로젝트로 개발시킵니다.

저는 ‘경청’을 선호합니다. 가능하다면 일단 남들보다 더 많이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일단 클라이언트의 입장을 다 듣고, 레퍼런스를 검토하며 아는 게 많아질수록 관점이 다양해져요. 관점이 다양해지면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도 다양해집니다. a와 b만 만족시키지 않는 솔루션, 이질적인 c, d, e가 있어도 추진이 가능한 솔루션이 등장하는 거죠. 만약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완전히 틀어지더라도 나중에 계속 디자인을 이어나갈 수 있는 근거와 독특한 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브랜드 디자인의 초기작업은 기획/전략 구상이여서 실무자와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친다는 설명을 보탰다
브랜드 디자인의 초기작업은 기획/전략 구상이여서 실무자와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친다는 설명을 보탰다.ⓒfrice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가장 희열을 느낀 순간은 언제입니까?

열심히 고민한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수용됐을 때입니다. 이제 브랜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된 거 같아요.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은 생각보다 힘이 세거든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이미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어요. 이미 누군가가 설계해둔 디자인에 의해서 말이죠.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디자인은 이미 스며들었다. 당신의 선택지는 사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결정됐다.」

이런 정의를 내릴 수 있을만큼요.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 이론을 이해하고 실제 사례를 접하다보면 남들이 만든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와 대중 모두가 브랜드 디자인을 비판적으로 의식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앞으로도 브랜드의 무언가를 관여하며 디자인할 텐데요. 쉽게 타인에게 휩쓸리지 않는 건강한 취향이 제게도 필요하고, 브랜드 디자인에 영향을 받을 분들에게도 이런 능동적인 태도가 중요할 겁니다. 누군가의 브랜드 디자인을 거스르려는 안간 힘이! 제가 여태까지 했거나, 앞으로 할 디자인에 반영됐으면 합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to be continued…😎

😈 여러분은 자신의 직업에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신가요? 비슷한 일을 하는 업계동료와 직업의 의미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 경험을 전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유인성 디자이너의 노하우가 담긴 기획 노트를 볼 수 있는 건 커다란 행운이었어요. 1부는 브랜드 디자이너의 관점을 살펴봤는데요. 이어지는 2부에서는 관점이 실제로 구현된 공간을 소개합니다. 보다 깊은 디자인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2부에서 만나요!

비단잉어가 유리 연못을 헤엄치는 이유

을지로 참프루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술잔에 비친다
유리창을 의뢰한 변익수 대표(왼쪽)와 유리창을 만든 배자한 디자이너(오른쪽)
유리창을 의뢰한 변익수 대표(왼쪽)와 유리창을 만든 배자한 디자이너(오른쪽) ⓒfrice

사장님의 한 끗 차이, 스테인드글라스 인테리어
(2)서울 을지로 참프루


@champloo_euljiro
서울 중구 을지로 14길 13 203호 검은문
| 일-목 18:00 ~ 24:00 금토 18:00 ~ 02:00 연중무휴


을지로 참프루 천장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창
ⓒfrice

Q. 업장에 설치된 작품은 무엇인가?

변익수 유리창으로 만든 연못이다. 한옥 중정에 있는 연못을 의도했다. 원형 창문 뒤에 조명을 달았다. 어느 자리에 앉더라도 잘 보일 수 있게 살짝 눕혔다. 가게에서 만난 연극 무대 감독님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수평보다 비스듬히 매다는 게 낫다는 거다.

배자한 한국적인 아트워크를 도면에 담았다. 재화를 상징하는 비단잉어, 고고한 연꽃. 이 둘을 가까이서 감상할 수 있는 징검다리. 특히 징검다리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라는 상징이다. 무늬의 결을 최대한 통일해 유리가 마치 물의 파동처럼 느껴지길 의도했다. 나무 프레임은 잘린 유리를 받쳐주는 역할이다. 구불구불한 곡선으로 짰다. 작품의 내구성을 보완하는 효과도 있다. 결과적으로 물에 반사 되는 나무의 느낌을 얻었다.

Q. 스테인드글라스는 어떻게 접했나?

배자한 친형이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다. 군 전역 후 친형이 일하는 공방에 놀러 가서 작은 장식품부터 이것저것 만들다 보니 재미가 붙었다.

변익수 사실 잘 몰랐다. 다만 요즘 들어 유행하는 인테리어라는 생각이다.

Q. 이 디자인을 채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변익수 연못을 연상하는 인테리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여러가지 공간 디자인을 검토했는데 스테인드글라스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채택했다. 빛이 투과된 모습이 아름다웠고 그림자처럼 빛이 번지는 게 물과 속성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배자한 사장님 요청 작품이기도 하지만, 여태까지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중 가장 큰 규모여서 처음엔 걱정스러웠다. 허나 설치의도가 재밌고 작가로서도 한 발짝 나가 보자는 생각으로 제작에 나섰다.

지름 1.2m의 커다란 원형 틀 안에 비단잉어와 연꽃, 징검다리 등이 섬세하게 배치되어있다
지름 1.2m의 커다란 원형 틀 안에 비단잉어와 연꽃, 징검다리 등이 섬세하게 배치되어있다. ⓒfrice

Q. 실제로 설치한 소감은?

변익수 내심 상상했던 모습이 나왔다. 엉뚱하다 싶은 것도 나름대로 마음에 든다. 광원 조절에 따라 진짜 물결처럼 보이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런 기술적인 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만족스럽다.

배자한 가게 인테리어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스테인드글라스가 공간에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갤러리에서 철수 기한 없는 개인전을 하는 기분이다.

조명을 비스듬히 걸어 어느 자리에 앉아도 그 모습을 면밀히 감상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
조명을 비스듬히 걸어 어느 자리에 앉아도 그 모습을 면밀히 감상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 ⓒfrice

Q. 업장에 설치한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아름다워보일 때는 언제인가?

변익수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고개를 들어 창을 바라볼 때. 참프루는 원탁을 중심으로 의자를 배치했다. 원탁 바깥에서 볼 때 연못창이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배자한 술 따른 잔 표면에 연못창의 모습이 담길 때. 거짓말 같아도 정말이다. (웃음) 액체의 질감이 잔 위에서 일렁이며 진짜 연못처럼 느껴지는데 참 아름답다.

잔 속에 연못이 담기는 순간. 물결을 따라 일렁이며 비단잉어는 잔 속을 내내 유영했다
잔 속에 연못이 담기는 순간. 물결을 따라 일렁이며 비단잉어는 잔 속을 내내 유영했다 .ⓒfrice

Q. 최근 인상깊게 구경한 한국 스테인드글라스는?

변익수 한남동 퍼킹어썸 바에서 본 유리창. 창 안과 밖이 연결되는 느낌이 신기했고 사진찍기도 재밌어보였다.

배자한 부산 남천동 성당의 초대형 유리창. 압도되는 느낌이 대단하다.

말굽 모양의 원탁을 따라 둘러앉는 구조의 테이블이 새롭다
말굽 모양의 원탁을 따라 둘러앉는 구조의 테이블이 새롭다. ⓒfrice

Q. 업장에 작품을 설치한 후 무엇이 변했나?

변익수 공간에 분위기를 딱 잡아주는 중심이 생겼다. 이전에 설치한 등은 다소 심심하다고 느낄 법한 조명이었다.

배자한 지금 스테인드글라스는 참프루의 확실한 포토스팟이다. 매출도 덩달아 오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웃음)

을지로 참프루 진열장에 놓인 다양한 주류제품들
ⓒfrice

Q. 스테인드글라스 말고도 자랑하고 싶은 것은?

변익수 사연 있는 술. 그런 술을 참프루에서 많이 소개하는 편이다. 캐나디안 클럽(Canadian Club)이라는 위스키가 있다. 미국 금주법 시대에 성장한 술인데, 영화 <대부>에서 콜레오네 패밀리가 다뤘던 밀주다. 이야깃거리가 있는 술에 흥미를 느낀다. 앞으로 더 열심히 팔겠다.

배자한 다른 인테리어. 자세히 뜯어보면 재밌는 디테일이 많다. 우리는 커튼으로 기와를 표현한다. 현판에 쓴 글자는 한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한글이다. 액자에 빔으로 쏘고 있는 명화까지 재미있는 공간 디테일로 의도했다.

😈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활용해 인테리어 한 끗 차이를 만든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다른 사장님이 들려줄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

시대를 휩쓴 K 카페 감성

K 카페 스타터 팩_캔모아

안녕 휴먼! 지금부터 여러분과 전두엽을 공유하겠습니다.

식빵..생크림.. 그네의자.. 눈꽃빙수…

뭐가 떠오르시나요? 방금 우리 같은 생각 한 거, 맞죠? 하나 더 해볼까요?

작동되지 않는 대형 벽시계… 허니브레드.. 악마빙수…

한 다리 건너면 보이던 카페베네, 함께 떠올렸나요?

우리는 이렇게 몇 개의 단어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당시를 떠올리고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하나둘 모으다 보면 어떤 문화나 상황에 대한 공통된 이미지로 나타나게 되고, 스타터 팩이라는 인터넷 밈으로 탄생하게 되는데요! 프라이스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의 카페부터 요즘의 트렌드까지, 한국의 카페 인테리어 감성을 수집했어요.

프라이스가 구성한 시대를 휩쓴 K 카페 스타터 팩! 지금 시작합니다. 😎


1. 생과일 전문
나야 캔모아♡ ブl억 ㄴrLI··¿ ュㄸĦ ュ 감성…★

최초의 생과일 전문점 캔모아! 프로방스풍 인테리어에 독특한 기물 (흔들의자, 그네의자 등..)을 들여놓고 당시 학생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생크림을 얹은 식빵 토스트를 무한으로 제공했던 추억의 장소입니다. 캔모아를 표방한 다양한 생과일 전문점이 생기기도 했어요. 현란한 인테리어와 더불어 눈이 휘둥그레졌던 메뉴판도 떠오르는데요! 시그니처였던 눈꽃빙수를 필두로 온갖 과일과 과자, 아이스크림으로 채운 파르페와 십여 가지 종류의 생과일주스 등 정말 많은 메뉴로 꽉 차 있었어요. 변치 않는 우정을 약속하며 벽면에 컴싸로 써 내려갔던 낙서, 그네 의자에 앉아 빙수를 먹던 기억. 이제는 주변에서 잘 찾아볼 수도 없어 정말 추억 속에만 남게 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더욱 아쉽고 그리운 장소입니다.

 K 카페 스타터 팩_캔모아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친구랑 그네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창밖을 보며 눈꽃 빙수를 먹던 추억이 떠오르네요. 식빵을 살짝 구워 곁들이는 생크림이 어찌나 맛있던지… 다른 곳에 가서 먹어도 절대 이때의 이 맛은 나지 않아요 (훌쩍)

👾 우리동네는 중고딩때 남자끼리 못 가는 분위기였거든요. 어쩌다 여자애들 갈 때 따라갔는데 레알 신세계였어요.

2. 한국 토종 프랜차이즈
허니 브레드에 아메리카노가 대세? 그 때 그 시절 카라멜 마끼아또

우리나라엔 카페가 참 많습니다. 이보다 더 많았던 때가 있었다면? 프랜차이즈 카페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져나와 그야말로 프랜차이즈 카페 춘추전국시대였던 그 시절! 넘치는 카페 수만큼이나 제각기 다양한 메뉴와 디저트를 선보였어요. 그중 생크림이 잔뜩 올라간 허니브레드는 단연 최고 인기였죠. 음료를 주문하면 자리로 가져다주는 대신 영수증과 함께 주던 진동벨. 빨간 불빛과 함께 진동벨이 울리면 화들짝 놀라며 쟁반을 받으러 가던 셀프 서빙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때를 추억하면 재료를 아끼지 않은 대왕 빙수, 문 앞을 지나갈 때마다 코를 스치던 따끈한 모카 번 냄새. 카운터와 벽면의 우드 패턴과 라탄 의자가 통창으로 된 매장에 들어차 있고, 벽면에는 알 수 없는 레터링이 빼곡했던 특유의 인테리어가 떠오릅니다. 하루에 딱 두 번 맞는 대형 벽시계는 아직도 그곳에 있을까요?

 K 카페 스타터 팩_한국 토종 프랜차이즈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어딜 가든 빵 냄새였어요. 카페인데? 온통 허니브레드! 1 테이블 1 허니브레드가 국룰이던 시절..

🐯 커피 맛도 모르고 달달한 커피 마시면서 “휘핑크림 많이 주세요.”로 주문을 마무리하던 20대 초반이 생각나네요. 언제부턴가 아메리카노만 마실 수 있는 몸이 되었지만… (커피의 쓴맛을 즐기게 되면 어른이 된 거라죠?)

🚬 실내 흡연이 금지되면서 투명한 벽으로 막힌 흡연실이 프랜차이즈 카페엔 꼭 있었던 것 같아요.

3. 인더스트리얼
짓다 만 건물 말고 진짜 industrial

최근 공사판이 그대로 카페가 된 밈이 유행했어요. 마감되지 않은 벽면, 무질서하게 쌓인 벽돌이나 흙더미. 이런 곳이 정말 힙한거야? 의문도 들었죠. 그와 동시에 요즘 보이는 공사장 인테리어 전에 유행하던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를 떠올리게 됩니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은 산업, 공업 공간의 느낌이 강조된 인테리어 디자인을 이야기하는데요, 불필요한 장식이나 꾸밈을 배제하고 노출된 구조와 소재를 중요시합니다. Industrial design은 미완성된 under construction의 상태와는 다릅니다. 천장에 배관이나 전기설비가 그대로 노출 되어있더라도 실내의 분위기에 맞게 깨끗하게 마감되어 위생적으로도 안전합니다. 차가워 보이는 소재감 속에 독특한 오브제나 백열전구 조명 등으로 포인트를 더하기도 했어요. 콘크리트와 철골구조가 주를 이루는 한국 건축의 특수성에, 비용을 줄이고 싶어 하는 카페 창업자들의 니즈가 만나 만들어낸 K-감성이라고 볼 수 있죠.

 K 카페 스타터 팩_인더스트리얼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스팀펑크를 떠올리게 하는 특이한 소품들로 가득 차 있던 카페!

🤔 저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 유행을 싫어했어요. 아무리 마감을 잘했다고 하지만 결국 공사장처럼 느껴졌거든요. 하지만 요즘 카페들을 보면 이때가 정말 잘 만들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층고 높고 넓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다보 면 왠지 뉴욕 브루클린이나 샌프란시스코의 힙스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왠지 작업도 더 잘되는 것 같은 기분? (웃음) 그래서 저는 인더스트리얼 감성 카페를 자주 찾아요.

4. 인스타그래머블 (feat. 성수)
우리는 감성을 사랑해! 일단 코어에 힘 주실게요~

우리는 항상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그게 일회성이더라도! 인스타그래머블 한 카페를 둘러보면 각자의 테마에 맞춰 장식된 오브제들이 새롭습니다. 어디서 산 거지? 멋지고 유니크해요. 어느 곳을 찍어도 좋은 사진이 나오는 무드 충만한 카페에 앉아 이야기하다 보면, 모던한 접시에 독특하게 플레이팅 된 커피와 디저트가 나옵니다. 이건 찍어야지! 도저히 사진을 찍지 않고는 못 배기는 감각적인 비주얼에 절로 기분이 좋아져요. 영문 가득한 벽면과 메뉴로 마치 외국에서 커피를 즐기고 있는 경험을 주는 감성 속 한글로 쓰인 ‘1인 1메뉴 필수입니다.’ 문구. 모두가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어딘가 비슷해서 알 것도 같은 느낌이에요. 하지만 조금 불편해도 괜찮은 우리를 위한 감성 카페는 여전히 순항 중입니다.

 K 카페 스타터 팩_인스타그래머블

각자의 기억📝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떠올렸을까?

🐲 어딜 찍어도 멋진 공간과 플레이팅! 그런데 음료는 딱 두 입 컷… 양이 너무 적어!

🤔 여기에 음료를 놓는 건가? 아 테이블이었나? 의자라고? 용도가 헷갈리는 낮은 테이블과 불편한 의자에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 힙한 인테리어와 커피 한 잔 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되는 감성 카페! 저는 일부러 찾아가서 무드를 즐겨요.

to be continued…😎

😈 자료 수집하면서 잊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어요! 프라이스가 수집한 K 카페 감성. 함께 추억 할 수 있었나요? 아니면 에이 이게 없으면 안되지~ 하는 이야깃거리가 있었나요? 우리가 생각하는 필수 요소, 없어서 아쉬운 그 감성이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주세요!

오뎅바 사장님이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을 쓴 이유

유리창 너머로 비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이 거리를 부유한다
슌노오뎅 최시윤 대표. 니혼슈와 어울리는 오뎅을 개발중이다. 오뎅가게만 30년 운영한 부산 장인어른에게 직접 배웠다
슌노오뎅 최시윤 대표는 니혼슈와 어울리는 오뎅을 개발중이다. 오뎅가게만 30년 운영한 부산 장인어른에게 직접 배웠다. ⓒfrice

사장님의 한 끗 차이, 스테인드글라스 인테리어
(1)서울 상수동 슌노오뎅
@SHUNNO_ODEN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 22 1층 좌측 | 19:00 ~ 05:00 매주 월요일 휴무


슌노오뎅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frice

Q. 업장에 설치된 작품은 무엇인가?

천장에서 떨어지는 조명장치다. 바 테이블 위에 4개 설치했다.

Q. 스테인드글라스는 어떻게 접했나?

3년 전? 창업을 준비하며 다양한 시도를 하기 위해 실내 인테리어를 공부했다. 당시 한창 핫한 인테리어가 스테인드글라스였다.

자세히 살피면 스테인드글라스의 양면을 모두 볼 수 있는 조명이다
자세히 살피면 스테인드글라스의 양면을 모두 볼 수 있는 조명 ⓒfrice

Q. 실제로 설치한 소감이 궁금하다.

내심 원했던 ‘한 끗’이 생겼다. 사실 요즘 일본풍 주점이 많이 생겼지 않나! 우리도 마찬가지다. 사케나 고구마소주같은 외국산 술을 파는데다 콘셉트도 일본 현지의 오뎅바다. 이국적인 무드를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차별화 또한 절실했다. 차별화 포인트를 빈티지 조명장치로 잡았다. 가게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가 됐다.

슌노오뎅 안팎으로 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차분한 색으로 공간이 따뜻하게 채워진다
슌노오뎅 안팎으로 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차분한 색으로 공간이 따뜻하게 채워진다. ⓒfrice

Q. 굳이 제작한 이유가 있다면?

사실 조명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쓸 계획은 없었다. 업장 내 실내 인테리어가 완성될 무렵, 조명이 고민이었다. ‘우리 가게와 딱!이다’ 하는 조명을 발견하지 못했다. 벽장식 인테리어 견적을 위해 스테인드글라스 업체에 방문했는데, 거기서 슌노오뎅과 딱 어울리는 조명이 걸려있더라.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해버렸다. 오뎅바를 준비하며 제일 잘한 인테리어다.

유리창 너머로 비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이 거리를 부유한다
유리창 너머로 비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이 거리를 부유한다. ⓒfrice

Q. 업장에 설치한 작품이 가장 아름다워보일 때는 언제인가?

추운 계절 새벽. 슌노오뎅은 오후 7시부터 새벽 5시까지 운영하는 심야식당이다. 한밤중 피크타임이 끝나고 새벽이 다가오면 스테인드글라스 조명만 켜둔다. 키친에서 입구를 바라보면, 창문에 반사되서 보이는 조명이 인상적이다. 가게 문을 여는 오후 7시는 살짝 밝은 조도를 유지한다. 이 또한 아름답다.

Q. 최근 인상깊게 구경한 한국 스테인드글라스는?

삼청동 아원공방 에 전시중인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SNS로 구경했는데 우리 가게에 데려오고 싶었다. 기발하고 아름답다.

슌노오뎅의 수제오뎅
ⓒfrice

Q. 업장에 작품을 설치한 후 무엇이 변했나?

빛이 우리를 표현할 새로운 수단이 된다. 마포구는 대체로 트렌디한 동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귀엽거나 가벼운 이미지가 어울린다. 한편 우리에겐 진지하고 무거운 이미지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대를 이어 오뎅을 만든다는 게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장인정신과 트렌드의 공존. 슌노오뎅의 정체성이 조명의 색과 톤으로 표현됐다.

슌노오뎅 전경. 포토존에 놓여있는 제품은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물건이다
슌노오뎅 전경. 포토존에 놓여있는 제품은 일본에서 직접 공수한 물건이다. ⓒfrice

Q. 마지막 질문이다. 또다른 자랑거리를 소개한다면?

매장 앞 작은 벽. 오뎅바 손님들이 사랑하는 포토존이다. 소품을 활용해 일본 동네 버스정류장처럼 꾸몄다. 퇴근 후 집 앞 정류장에 내리면, 바로 눈에 띄는 작고 편한 가게를 의도했다. 혼자 술 마시고 싶은데 약속은 따로 잡기 귀찮을 때 가는 주점. 혼술이 맛있는 가게가 되는 게 우리의 목표다.

😈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활용해 인테리어 한 끗 차이를 만든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다른 사장님이 들려줄 이야기도 기대해주세요 🙂

유리창 가르다 세월을 여몄네

공방 앞에서 작품을 들고 바라보는 박옥경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 박옥경님
ⓒfrice

나는 1.5세대 작가입니다.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공예는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종교 건축 인테리어가 대부분이던 1세대와 상업공간 인테리어가 급부상한 2세대 사이에 있어요. 2010년 이후부터 젊은 사람들의 소비패턴을 이해하고 그들을 상대로 사업을 해야 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저부터 젊어야겠죠.

이제 작품 제작을 위해 미팅을 가지면, 담당자 대부분이 30~40대 초반인데요. 예전과 비교하면 현장에서 쓰는 언어도, 그들이 표현하려는 이미지도 젊다고 느낍니다.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 박옥경님의 2000년대 초 업무사진
ⓒ박옥경

시작은 2003년입니다. 저는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5~6년 근무했는데요. 일하면서 *베벨드 기법을 쓴 작품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스테인드글라스는 교회나 성당의 장식물이었어요. 제작법도 극소수만 알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도 어깨너머로 배워가며 일해야 했죠.

개신교회는 시트지에 성화를 새겨달라는 주문이 많았는데요. 드물게 스테인드글라스를 주문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시트는 너무 저렴해 보이고 수명이 오래가지 않으니, 스테인드글라스를 발주하는 거였죠. 가톨릭 성당은 주로 유학 다녀오신 분들이 맡았습니다. 해외유학 다녀온 수녀님이나 신부님이 제작법을 배워와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드셨어요.

베벨드 기법을 활용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사례
베벨드 기법을 활용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사례 ⓒ박옥경

꿈이 생겼습니다. 일반 건축물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접목시키고 싶었어요. 2009년에 회사를 떠나 독립을 했는데, 당시 국내에서 잘 쓰지 않는 새로운 유리를 수입했어요. 디자인 시안도 다시 짰죠. 새로운 유행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업을 다녔어요. 점점 발주처를 확장했는데, 서울 강남이나 도시개발이 한창이던 경기도 분당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요청이 들어왔죠.

일반 가정이나 상업 공간에 들어가는 스테인드글라스 수요가 아예 없진 않았어요. 2000년대 전후는 주택이나 아파트 중문에 들어가는 유리창이 인기가 많았는데요. 저는 베벨드 기법과 색유리를 배합하는 유리창 제작에 나섰죠. 종교 건축과 일반 건축에서 오는 의뢰를 병행하면서 창작을 이어 갔어요.


유리공방과 카페를 같이 해볼까?

2011년 일이네요. 일반 건축물에 조금씩 스테인드글라스 인테리어를 보급하는 중에 악재가 터졌어요.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발표됐거든요. 건축에 들어가는 예산이 통째로 줄어드니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장식용 인테리어부터 없던 일이 됐습니다. 당시 스테인드글라스 인테리어를 요청하던 아파트 공사현장 수요가 많아서 뼈아픈 일이었어요. 신축 아파트를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 넣는다는 오랜 꿈은 잠시 접게 됐습니다.

특수유리 계통이다 보니 그래도 발주는 조금씩 들어와서 회사는 운영할 수 있었어요. 경기침체가 생각보다 오래가니 버티기 힘들었죠. 뾰족한 개성이 없는 회사들은 유지가 어려웠습니다. 사업을 접는 업체가 서서히 늘어났어요. 저도 가지고 있던 재산을 지키기가 어려웠지만, 좋아하는 일이라 포기할 순 없었어요. 첫 번째 돌파구로 *숍인숍을 기획했습니다. 같은 건물에 카페와 아틀리에를 동시에 운영하는 일이었죠.

영등포 양평동에 연 숍인숍 스테인드글라스공방. 작업실과 카페를 동시에 운영했다
영등포 양평동에 연 숍인숍 스테인드글라스공방. 작업실과 카페를 동시에 운영했다. ⓒ박옥경

당시 국내에선 생소했지만, 일본은 창작자가 팀 단위로 사업체를 꾸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카페나 식당을 병행하는 공예작가가 있었죠. 한국도 일본처럼 곧 숍인숍 형식의 공방사업이 커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는데요.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 이른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2010년대 초는 지금처럼 골목 속에 숨겨진 가게를 인스타그램으로 보고 찾아가는 시대는 아니었네요. 그래도 왜 이런 공간을 만들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이따금 벤치마킹을 하러 많이 왔었어요.

영등포 양평동으로 공방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다른 유리공장이나 외주업체에서 발주를 넘겨받은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했어요. 동시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죠. 공간을 나눠서 일부는 카페로 꾸몄습니다. 바깥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면 카페, 거기서 안쪽으로 한 번 더 문을 열고 들어오면 공방. 손님이 유리공예를 지켜볼 수 있는 작업공간이죠.

팩토리가 아니라 아틀리에.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작업현장이 아니라 예쁘고 쾌적한 공간을 만듭니다. 차도 마시고 작업도 할 수 있는 공간. 나만의 감성을 드러내는 작업장, 분위기 있는 장소를 만들려는 시도였어요.

손님들은 카페인 줄 알고 들렀다 스테인드글라스라는 낯선 소재를 신기하게 여겨요. 시간이 더 지나면, 손님들이 창업하는 가게에 인테리어로 써보고 싶다고 주문을 하더군요. 대중친화적인 공간에서 만난 손님이 때때로 작품 의뢰를 요청하는 클라이언트로 변신해요. 이는 제가 불황을 견딜 수 있던 힘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공예의 새로운 흐름입니다. 일반인도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만드는 거죠.

색연필로 스케치한 스테인드글라스 아이디어
색연필로 스케치한 스테인드글라스 아이디어 ⓒ박옥경

‘디자인’의 힘

수익은 크지 않았지만 숍인숍 사업을 하던 2010년대 초반은 디자인의 힘을 느꼈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색다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디자인의 가치를 인정하는 시대가 열렸어요.

새로운 인테리어 소재를 써보려고 하는 건축사 사무실, 인테리어 업체에서 발주가 늘었습니다. 시대가 바뀌며 스테인드글라스의 영역이 종교건축뿐만 아니라 상업이나 일반건축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겁니다.

이 시기부터 클라이언트에게 디자인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발주에 큰 영향을 차지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조형을 제안하기 힘들었던 회사부터 위기가 찾아오는 걸 실감했죠. 2010년까지만 해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디자이너를 정직원으로 채용한 회사가 거의 없었어요. 시각디자인을 할만한 인재도 없었으니까요. 필요하면 디자이너를 프리랜서로 고용해 오더를 받는 분위기였죠.

프로그램을 활용해 제작된 도안. 사용될 유리의 텍스처나 컬러를 실제에 가깝게 보여줄 수 있다.
프로그램을 활용해 제작된 도안. 사용될 유리의 텍스처나 컬러를 실제에 가깝게 보여줄 수 있다. ⓒ박옥경

우리는 가업승계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컴퓨터 다루는 게 능숙했던 아들 덕을 봤습니다. 고등학생 때 스테인드글라스 시안을 종이에 옮겨보라고 권유했는데, 아들은 컴퓨터로 작업을 해서 시안을 뚝딱 만들더군요. 지금은 회사 대표이자 메인 디자이너인 박진영입니다.

“아들의 이 재능은 누굴 닮은 걸까?”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故박치성 화가가 있습니다. 인천에서 평생 그림만을 고집하며 작업했던 사람. 아들 진영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화실에서 생활하며 그림을 접하는 생활을 했거든요. 거기에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제 영향이 얹히지 않았을까요? 스테인드글라스를 시작한 나 때문에 아들도 잠재력을 스테인드글라스에 쏟기 시작했습니다. 가업승계는 우리 가족의 운명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테인드글라스 2D 도안과 제작을 마친 유리창
스테인드글라스 2D 도안과 제작을 마친 유리창 ⓒ박옥경

너는 내 운명

2010년대 불황은 길었습니다. 작업공들이 다른 일을 찾아 하나둘 그만두는 사례가 늘어났습니다. 호황일 땐 제작팀, 시공팀, 디자인팀으로 나눠서 여러 명의 직원을 두기도 했었습니다. 불황 끝에 작업이력이 있는 중견 작업자들이 벌이를 위해 이직한 상태여서 결국 인력난을 실감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분야에서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기로 한 만큼, 취지를 이해할 수 있는 젊은 인재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작업현장
왼쪽부터 박진영 작가, 박옥경 작가, 남한울 작가
왼쪽부터 박진영 작가, 박옥경 작가, 남한울 작가 ⓒfrice

인터넷에 스테인드글라스 교육공지를 올렸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스테인드글라스 수업에 회화과를 나온 미대생이 찾아왔어요. 지금은 며느리가 된 남한울 작가죠. 이것도 참 인연이네요. 손발이 착착 맞았던 수강생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아들 박진영과 셋이서 팀이 됐습니다. 업체에서 받은 오더를 해내느라 자정까지 작업하는 일이 부지기수지요. 새로 시작한 회사인 양 열심을 다했던 나날입니다.


디자이너의 역할 : 의심↓ 확신 ↑

디자인을 강화하고 젊은 피를 수혈하니, 경쟁력이 생겼습니다. 특히 컴퓨터 시안이 큰 힘이 됐어요. 당시만 해도 많은 업체가 시안을 손으로 그려서 색연필이나 컬러 사인펜으로 그려서 의뢰인에 보여줬어요. 수작업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시연이 훨씬 디자인의 폭을 넓힌다는 걸 실감했어요.

“우리는 컴퓨터까지 활용해서 시각디자인의 완성도를 추구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디자이너의 역할은 의뢰인이 원하는 디자인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인 거죠. 파트너에게 신뢰감을 주는 게 우선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업장이나 건축물에 설치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려주는 것도 중요해요.

상업공간 스테인드글라스 시안과 실제 제작 사례
상업공간 스테인드글라스 시안과 실제 제작 사례 ⓒ진영글라스

스테인드글라스 업계가 젊어지고 있습니다. 점점 젊은 업체 대표나 젊은 담당자를 만나는 일이 늘고 있어요.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이 생각 못 한 것을 역제안했을 때 자부심을 느낍니다.

오늘날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은 예견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현장에서 시안이 구현될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힘이죠. “생각도 못 했던 기발한 곳에 설치 됐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디자인을 하신다면, 분명 훌륭한 작업을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사명감을 갖고 유리공예를 더 크게 키울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색다를 것. 고유할 것. 독특할 것.

요즘 젊은 사람들이 찾는 실내 인테리어의 세 가지 특징입니다. 디자인을 더한 스테인드글라스는 그래서 수요가 늘고 있는 듯해요. 젊은 사람들한테 저변이 확대되는 게 신기해요. 변화의 한복판에서 젊은 창작자에 다양한 경험을 전수해 주고 싶습니다. 당장 공방 식구부터요.

직원 모두가 너무나 자기 몫을 잘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오래오래 감각 있는 창작자로 활동하도록 도와야죠. 늘 그래왔듯, 최선을 다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 저도 성심을 다해 작업하고 있어요. 경험을 전하고 싶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될 때. 인생선배의 경험담은 큰 힘이 됩니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여성창작자의 기억에서 공예작가이자 사업가, 엄마이자 선생님이기도 했던 모습을 발견합니다.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절실함, 살며 배운 것을 나누려는 다정함. 여러분에게도 작가가 움켜쥐려 했던 마음이 닿기를 바랍니다.

서울과 부산, 그리고 인천으로 떠난 종교 스테인드글라스 탐방기

부산 남천동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한국 최대 규모로 알려져있다

신성하거나 신선하거나

스테인드글라스. 뜻을 풀자면 ’색유리‘요, 스타카토처럼 통통 튀다 부드럽게 펼쳐지는 일곱 글자에 이토록 신성한 이미지를 심어준 건 중세시대 유럽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신의 존재를 투영하기에 딱 좋은 매체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이어지던 시절이었고, 오래전부터 빛은 곧 신을 상징했으며 창틀에 박힌 스테인드글라스는 시시각각 다른 감도로 빛났으니까.

그러나 대표 이미지를 갖는다는 건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줄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독 강하게 박힌 종교미술의 이미지 앞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도 딱 한 가지 면만 지니지 않는데 스테인드글라스라고 다를까? 만약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또 무엇이 보일까? 예술과 디자인이라는 필터를 쥐고 경부선을 넘나든 짧은 여행은 그런 사소한 물음표에서 시작되었다.

서울, 가재울 성당

경의중앙선 신촌역과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사이, 홍제천이 한때 모래내라는 이름으로 흘렀던 가좌역. 4번 출구로 나와 모래내시장을 지나고 헨젤과 그레텔 속 빵 부스러기처럼 늘어선 가로수를 따라 걷는다. 첫 번째 목적지는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길쭉길쭉한 아파트 단지로 변해가는 풍경 속에 숨어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 통창으로 유명한 가재울 성당.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385-5에 위치한 가재울 성당의 외관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385-5에 위치한 가재울 성당 ⓒfrice

여기가 맞아? 솔직히 말하자면 첫인상은 그랬다. 회색빛 십자가가 아니었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만큼 외관이 담백했다. 남가좌동을 휩쓴 뉴타운 재개발의 결과물이었다. 1971년에 설립된 본당이 허물어진 후 2014년 문을 열었다는 가재울 성당은 주변을 둘러싼 아파트며 주민센터에 위화감 없이 스며들었다. 자고로 스테인드글라스란 클래식한 건축물에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되었지만, 반전은 2층에서 시작됐다.

가재울 성당 2층에 들어서면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마주한다
가재울 성당 2층에 들어서면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마주한다 ⓒfrice

고요한 복도 저 편에서 빛나는 유리화와 그 아래 웅덩이처럼 고인 빛그림자. 누구에게나 유년 시절의 아이콘 같은 만화영화가 하나쯤 있다. 내 경우엔 ‘미녀와 야수’였다. 비가 쏟아지는 밤, 초라한 행색의 노파를 내쫓아버린 왕자와 그의 차가운 심장에 저주를 건 마녀. 알록달록 유리화로 펼쳐지는 프롤로그는 어린 눈에도 아주 낭만적이었다.

장미꽃같은 빨간 동그라미는 예수의 심장을 의미한다
붉은 유리가 푸른 유리와 대비되며 인상적인 심볼로 다가온다
장미꽃같은 빨간 동그라미는 예수의 심장을 의미한다 ⓒfrice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 장면이 되살아났다. 저 멀리 노랗고 파란 유리 조각들이 회오리치며 우주를 이루고 있었다. 국내 최초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인 고(故) 이남규의 ‘예수 성심’(1988)이었다. 재개발 전까지 본당을 지키다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작품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할 만큼 거대했고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듯 반짝였다. 울퉁불퉁 깨진 유리들이 두꺼운 단면 안쪽으로 말간 바다를 품고 있었다. 장미꽃이라고 생각했던 빨간 동그라미가 예수의 심장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가재울 성당의 물고기 모양 스테인드글라스는 설치미술가 오순미 작 (2014). 가재가 많아 붙여졌다는 가재울 명칭과 모래내에서 영감을 받았다. 거대한 물고기는 구원을 상징하며 유리 전체의 작은 격자들은 신자 개개인을 나타내는 모래를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가재울 성당의 물고기 모양 스테인드글라스는 설치미술가 오순미 작 (2014). 가재가 많아 붙여졌다는 가재울 명칭과 모래내에서 영감을 받았다. 거대한 물고기는 구원을 상징하며 유리 전체의 작은 격자들은 신자 개개인을 나타내는 모래를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사진 frice, 참고 가톨릭 굿뉴스

하지만 이곳이 유명한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2층과 3층을 아우르는 대성전 오른편, 모래알 같은 격자무늬 위로 부드럽게 헤엄치는 물고기 형상. 설치미술가 오순미와 건물 설계 단계부터 논의했다는 무지갯빛 창문이다. ‘모래내’와 ‘가재울’에서 영감받았다는 창문은 모티프에 충실했다. 화려한 밑그림도 장식도 없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거기에는 푸르스름한 새벽녘, 노랗게 물든 한낮, 뉘엿뉘엿 저무는 해질녘까지 다양한 시간대가 깃들어 있었다. 어느 쪽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짤막한 시차가 생겨났다. 다른 것 없이도 색감이 곧 장식이었다.

노랗게 물든 한낮을 닮은 스테인드글라스 해질녘 오후의 시간이 공존한다
푸르스름한 새벽을 닮은 스테인드글라스. 해질녘 오후의 시간이 공존한다
푸르스름한 새벽과 노랗게 물든 한낮, 해질녘 오후의 시간이 공존한다 ⓒfrice

스테인드글라스의 세계를 제대로 마주한 건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오후 세 시를 넘기자 불현듯 햇빛이 스며들었다. 유리에 새겨진 숨결을 따라 물그림자 같은 흔적이 드리워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스테인드글라스란 단순히 색유리의 개념이 아니라는걸.

창문을 통과한 빛과 거기서 퍼져 나오는 그림자, 화창한 장조와 싱거운 단조가 만들어내는 리듬,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공간이 오묘한 빛깔 속으로 천천히 잠겨 들었다.


남천성당의 기울어진 형태는 배의 돛 모양을 닮았다. 항구도시 부산을 염두에 둔 것. 오른편의 열쇠모양 종탑은 천국의 열쇠를 들고 하늘로 향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다
남천성당의 기울어진 형태는 배의 돛 모양을 닮았다. 항구도시 부산을 염두에 둔 것. 오른편의 열쇠모양 종탑은 천국의 열쇠를 들고 하늘로 향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다. ⓒ사진frice, 참고_부산일보

부산, 남천성당

서울에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은 조금 길었다. 아침부터 부산행 열차를 타고 한참을 달린 후 캐리어를 끄는 여행자들과 심드렁한 얼굴의 주민들이 뒤섞인 마을버스에 실려 덜컹덜컹. 3시간 남짓의 여정 끝에 드디어 ‘샤’ 모양 건물을 만났다. 잘라낸 케이크 같은 삼각형 옆으로 열쇠 모양 종탑이 세워진 풍경, 부산의 남천성당이었다.

부산 남천동 성당 내부
ⓒfrice

이곳의 시그니처는 45도 기울어진 벽면의 안쪽이다. 길이 53m에 높이 42m인 유리화로 온통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라는 유리화는 한평생 사제와 미술가를 넘나든 조광호 신부의 작품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시인과 화가를 꿈꿨으며 미(美)를 곧 진리라 여긴다는 70대 신부가 탐구한 아름다움은 어떤 모습일까.

부산 남천동 성당 내부. 한국 최대 규모 스테인드글라스 아트워크를 만날 수 있다
한국 최대 규모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된 부산 남천성당
한국 최대 규모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된 부산 남천성당 ⓒfrice

들어서자마자 평화였다. 창문 가장자리를 타고 구석구석 쏟아져 내리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반대편 벽 위로 어룽거리는 빛, 빛, 빛. 숫자와 단위로 읽었을 때는 알 수 없던 공간감이 눈앞에 펼쳐졌다. 기도하는 마음에는 주일이 없다는 듯 몇몇 신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기다란 의자 위로 빛무리가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유리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후 소성과정을 거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후 소성과정을 거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조광호 신부의 작품이다
유리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후 소성과정을 거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조광호 신부의 작품이다 ⓒfrice

평일 오후였고 온통 침묵이었다. 기획부터 제작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는 유리화는 추상화와 구상화를 합쳐놓은 듯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뽐냈다.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동그라미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는 동안 아래쪽으로 성경 속 인물들이 또렷하게 나타나는 식이었다. 어떤 선은 비 갠 하늘처럼 선명했고, 또 어떤 선은 붓질 대신 페인트를 뿌렸던 잭슨 폴록의 것처럼 거칠었다. 어제 만들어졌다고 해도 믿을 만큼 맑고 생생한데 1995년작이라니, 새삼 스테인드글라스는 한번 만들어지면 처음의 빛깔과 형태 그대로 천 년을 간다는 말이 실감 났다.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로 427번길 15에 위치한 부산 남천성당. 의자 위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떨어지고 있다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로 427번길 15에 위치한 부산 남천성당 ⓒfrice

머무는 내내 따라붙은 건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앞에서 기도하고 사색하고 젖어들었을까. 하릴없이 겸허해지는 모든 순간이 여기에 녹아있다 생각하니 경건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작가에게 묻고 싶었다. 유리를 자르고 달구고 조각조각 맞춰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느냐고.

나오는 길에는 맨 뒷자리에 앉아 기도를 했다. 사실 기도라기보다는 소원을 비는 쪽에 더 가까웠지만, 평소 들춰보지 않던 이야기들이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왔다. 어쩌면 종교란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어떤 초월적 순간이 아닐까, 불현듯 그런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빛은 여전히 창문 아래로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인천, 강화 동검도 채플

마지막 목적지는 강화도 남동쪽의 작은 섬 동검도였다. 면적 1.6㎢에 불과한 그곳에 조광호 신부의 또 다른 작품이 있다고 했다. 마음이 춥던 유학 시절, 알프스의 어느 작은 채플에서 얻었던 위로가 지어올린 곳.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7평짜리 영혼의 쉼터.

인천 강화군 길상면 동검길 114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
인천 강화군 길상면 동검길 114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 ⓒfrice

인천 강화군 길상면 동검길 114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 ⓒfrice

갯벌을 지나 도착한 예배당은 ‘주인 없는 집’이라는 소개말답게 텅 비어 있었다. 이따금 트럭이며 자동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도로 옆쪽이었다. 벽면과 천장을 가로지르는 십자가만이 이곳이 기도하고 명상하는 곳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양 문에 우주가 빼곡하다
양 문에 우주가 빼곡하다 ⓒfrice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당이라는 이곳은 성인 다섯 명쯤 누우면 꽉 찰 만큼 좁았다. 그렇지만 정면 가득한 통창으로 갯벌이 훤히 내다보였고, 출입문에는 칸칸이 우주가 그려져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작지만 그 이면은 훨씬 넓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온 공간이 외치는 듯했다. 무엇보다 벽면마다 자리 잡은 스테인드글라스. 해가 뜨고 질 때마다 매끈한 삼각형과 길쭉한 사각형과 늘어진 오각형을 따라 충만하게 물들 모습이 눈에 선했다.

강화도의 자연이 창 밖으로 보인다
실내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창 밖 예수십자가 상과 나란히 우뚝 서있다
ⓒfrice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쉽게도 구름 낀 날이었다. 빛이 들지 않는 스테인드글라스는 늘 환하게 웃던 사람이 미소를 지우고 보여주는 민낯 같았다. 음악이라면 무대 위에서 홀로 주목받는 독주가 아니라 다양한 악기들이 모여 이루는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빛의 예술이라는 건 빛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유리의 맨얼굴로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까? 살펴본 적 없던 물음표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름다움과 실용성 사이, 우리가 몰랐던 스테인드 글라스

인간은 아름다움에 접근함으로써 본래의 인간이 된다고 했다.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지만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던 스테인드글라스를 마주하면서 그 문장을 자주 더듬어 보았다.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 예술이라면 스테인드글라스는 가장 순수한 예술이었다. 그 앞에 서는 건 광활한 자연 앞에 서는 순간 같았다. 저항할 힘조차 없이 압도되는 것, 잠시 할 말을 잊게 되는 것. 바깥에서 스며드는 빛에 사로잡혀 있자면 안쪽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인간에게 빛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대체 무엇이 담겨있기에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걸까 생각하기를 여러 번.

빛을 통과시킨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의 아름다운 모습
ⓒfrice

그렇게 말랑한 순간들 사이로 실용적인 선택지가 불쑥 튀어나왔다. 혁신적일 것, 아름다울 것, 기능을 이해하기 쉬울 것, 오래 지속될 것, 환경친화적일 것, 최소한의 디자인으로만 이루어질 것.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 디터 람스가 일찍이 세운 ‘좋은 디자인의 원칙’이 거기에 녹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쓸모를 따지지 않는 작품에서 존재 이유가 확실한 제품으로 얼굴빛을 바꿨다. 요청하는 이 없이도 자라나는 이야기에서 들어주는 이가 있기에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되었다. 아름다움과 실용성이라는 관점을 쥐고 떠났으나 그런 분류 기준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품은 가능성을 너무 오래 몰라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빈티지 소품이나 상업 공간 속 장식 요소 등으로 점차 친숙해지고 있지만 그것이 스쳐가는 트렌드인지 본질적인 확장인지는 알 수 없는 요즘, 이 영롱한 색유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새로운 물꼬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이유다. 심미적인 아름다움과 효율적인 실용성이야말로 각자의 자리에서 인류를 구원해 온 요소니까. 물론 이건 아주 개인적인 시선의 끝, 그 앞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무엇을 보게 될지 궁금해진다.

나는 상업예술을 긍정한다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쓸 유리를 고르는 박진영 디자이너
진영글라스의 스테인드글라스 아트워크

둥근 스테인드글라스를 <라이언킹>의 갓 태어난 아기 사자처럼 번쩍 드니, 비스듬히 기울어진 색유리에 햇볕이 쏟아진다. 울퉁불퉁한 판유리에서 신비로운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한낮의 햇살이 빳빳한 코튼 셔츠 위에 드리웠다. 셔츠에 비친 색이 알록달록 곱다. 독특한 질감을 지닌 유리를 골라 선과 경계를 만드는 사람. 유리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는 사람.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를 만나러 서울 합정동 유리공방을 방문했다.


스테인드 글라스 디자이너 박진영
ⓒfrice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진영글라스 @jyglass 대표 박진영입니다. 서울 합정동에서 5인조 유리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요사업은 색유리를 잘라 붙이는 스테인드글라스 외주요청작업인데요. 저는 제작일정조정과 도면설계를 담당합니다. 개인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의 대중화에 관심이 많아요. 최근 종교건축시설 뿐만 아니라 상업공간에서 제작의뢰가 늘어서 기쁜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스테인드글라스가 요즘 국내 레스토랑이나 패션브랜드 쇼룸에서 대유행입니다.

최근 상업공간을 운영하는 분들이 공간 디테일에 완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건축/실내 인테리어 투자도 늘어나고 있어요.

패션 브랜드 새터에 납품될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제작중이다
스테인드글라스 설계도면에 맞춰 유리를 자르고 땜질을 진행한다
ⓒfrice

지금 작업은 어떤 의뢰인가요?

가로 3m, 세로 1m 사이즈의 창문입니다. 패션 브랜드 ‘새터SATUR’가 의뢰했어요. 꽃병이나 아트포스터가 진열된 성수동 쇼룸에 설치되는데요. 창이 크게 난 건물이라 작품 스케일도 웅장합니다(웃음) 햇볕이 초록 유리와 노란 유리를 통과하면 실내에 빛이 은은하게 퍼질 텐데, 볕이 워낙 잘 드는 곳이라 설치를 기대하고 있어요.

클라이언트마다 요구하는 게 다를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어떤가요?

개인적인 의견이라 조심스럽지만, 이전에는 해외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하는데 그쳤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내가 이번 업장을 A브랜드처럼 만들고 싶으니까. 설치작품을 A와 비슷하게 하자.”라는 식입니다.

지금은 “내가 A현장을 B라는 콘셉트를 담아 디자인하고 싶으니까 스테인드글라스는 C기법을 쓰자.”라는 구체적인 의견이 나와요.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수행하는 메이커 입장에선 반가운 변화입니다. 창의적인 디자인을 구상하는 게 수월해졌어요.

박진영 디자이너는 제작과정에서 '도안설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박진영 디자이너는 제작과정에서 ‘도안설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frice 

구체적인 디자인 프로세스가 궁금하네요.

공방마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저는 도안설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0순위 작업이죠.

1단계는 백지에 선을 그려요. 어떤 유리를 어떤 크기로 자를지 미리 결정하는 작업이죠. 15년 동안 수 천장의 도면을 직접 그렸습니다. 많이 그릴 땐 1년에 200장 쯤 그렸네요. 같은 시안을 규모만 다르게 해서 그리기도 하는데, 틈날때 마다 계속 도안을 짜는 편입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한국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하면, 의뢰주가 완성을 재촉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작자 입장에서 납품이 불가능할 정도로 급박한 시한이 주어지거든요.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만(웃음) 덕분에 노하우가 생기는 건 사실입니다.

‘시간 절약’과 ‘퀄리티 준수는 서로 대립하는 가치잖아요. 음식에 비유하면 저의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은 냉동음식이죠. 적합한 때를 골라 해동시켜 요리하는 셈일텐데요. 미리 디자인에 신경 쓰면 두 가지를 어떻게든 잡을 수 있어요.

도안설계는 드로잉과 그래픽 프로그램 작업을 병행하며 완성시킨다.
도안설계는 드로잉과 그래픽 프로그램 작업을 병행하며 완성시킨다. ⓒfrice

가장 중요한 작업은 무엇입니까?

도안설계가 50%. 유리를 자르고 붙이는 작업이 나머지 40%. 설치가 10%를 차지합니다. 이건 업체마다 다를 겁니다.

설계가 중요한 이유는 작업특성 때문이에요. 유리는 자르는 순간 다시 되돌릴 수 없잖아요. 이유 없이 잘리는 유리는 단 하나도 없어야 해요. 도안에 따른 사전설계는 절대적입니다. 제가 색유리 공예를 견습으로 도울 때만 해도 아무 생각 없었어요. ‘되는 대로 그냥’ 했죠. 선도 마구잡이로 썼었죠.(웃음)

지금은 선을 쓸 때 머릿속에 구상이 이미 그려져 있어요. 작품 구상을 각오하고 백지를 보면, 희미한 점선 같은 게 보이는데요. 그걸 따라 그리는 느낌이죠. 교차한 선이 도형이 되고, 그것이 모여 스테인드글라스 특유의 입체적인 회화를 이룹니다. 그리고 도형 안에 어떤 유리를 써서 연출할지 결정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임무죠.


박진영 디자이너는 가업을 물려받았다.
박진영 디자이너는 가업을 물려받았다. ⓒfrice

어머니 박옥경님은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1.5세대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디자이너님과 같은 공방에서 근무하는 동료이기도 하죠.

사실 스테인드글라스는 비주얼 자체가 사람들을 매료시킵니다. 입문하기 좋은 공예 콘텐츠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영향인지 사람들은 제가 어머니의 유산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이자 한국 1.5세대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자인 박옥경 작가에게 유리 디자인을 배웠다
어머니이자 한국 1.5세대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자인 박옥경 작가에게 유리 디자인을 배웠다. ⓒfrice

가업은 언제 물려받기로 결심했나요?

대학을 다녔던 2010년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때만 해도 건설경기가 좋았어요. 2010년대 전후로 가파르게 꺾였는데 특히 종교건축의 타격이 컸어요. 시공이 줄어드니 건설시공사와 나란히 움직이는 스테인드글라스같은 인테리어 사업은 씨가 마르는 거죠. 당시 업체가 10곳이 있으면 8곳이 사라졌습니다. 불황을 견딜 수 있는 자금력을 갖고 있거나, 사업 모델을 전면 재검토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신비로운 색감을 지닌 색유리판
신비로운 색감을 지닌 색유리판 ⓒfrice

우리 공방도 위기였어요. 하필 유리를 많이 수입해둔 상태였는데 쓸 일이 없으니 몽땅 악성재고가 됐습니다. 빚은 가파르게 늘었고 직원도 내보내야 했어요. 결국 유리공방과 어머니와 나. 셋밖에 안 남았어요. 지금은 웃으며 회상하지만, 분명 스테인드글라스 메이커 모두가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작품명 Together. 2019년도 작품으로 수강생과 첫 전시전을 연 기념으로 제작했다. 공방에서 서로 협업하는 모습을 숲속 요정에 빗댔다.
작품명 Together. 2019년도 작품으로 수강생과 첫 전시전을 연 기념으로 제작했다. 공방에서 서로 협업하는 모습을 숲속 요정에 빗댔다. ⓒfrice

부활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흩어진 동료부터 다시 모았어요. 그래서 ‘클래스 운영’에 힘썼어요. 수강생을 모아 그들에게 색유리 자르기나 선긋기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공예씬이 넓어졌으니 상황이 좀 낫지만, 당시엔 이 일을 맡을 사람 자체가 적었어요. 기본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 교육은 도제식 전수죠. 예술대학에 전공학과가 생긴 건 최근의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공예디자인에서 동료를 모으는 건 단순한 인력난이 아니라, 업계의 근본적인 문제였어요. 크루로 영입해 손발을 맞출 수준의 전문가를 만나려면, 제 생각에 교육 이외의 답은 없었습니다.

초기엔 당시 사장님이셨던 어머니와 의견차가 엇갈렸습니다. 기존 업무인 건축현장 창유리 제작에 시간을 더 투자하길 바라시는 거죠. 외주제작집중이 재무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인데요. 더 멀리 내다보면 고생길이 훤했습니다. 업무를 따내도 결국 인력난에 허덕인다며 반대했죠.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외주의뢰를 무리해서 받느니, 교육사업과 크루육성에 투자하자고 설득했습니다.

2023년 상반기 진영글라스 소속 크루
2023년 상반기 진영글라스 소속 크루. ⓒfrice

클래스 운영하다 보면 재능 있는 사람은 확실히 눈에 띕니다. 유리공예를 직업으로 삼아도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요. 같이 일하자고요.(웃음) 지금은 5~6인조 크루로 활동하는데요. 개인적으로 5인 팀플레이가 가장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적합한 인력 구성이라 봅니다.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면 다섯 명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요?

‘개인의 고유한 재능’입니다. 역설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요. 예컨대 제가 가장 신뢰하는 협업 파트너인 남한울 작가는 공방교육사업의 첫 수강생이었습니다. 남 작가는 원래 회화를 전공했어요. 색유리 앞에서 발휘하는 상상력이 뛰어납니다. 평면을 입체로 뒤트는 솜씨도 대단하죠. 그래서 공방의 3D 공예품 디자인 생산은 남 작가의 덕을 크게 봅니다.

남한울 작가가 디자인 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남 작가는 식물의 조형을 주제로 다양한 공예 디자인 MD를 선보이고 있다
남한울 작가가 디자인 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남 작가는 식물의 조형을 주제로 다양한 공예 디자인 MD를 선보이고 있다.  ⓒfrice

저희 공방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스테인드글라스 교육사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창의력이나 미적 판단이 중요한 직업을 갖고 계시다면 경험 삼아 원데이 클래스를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재밌으니까 일단 해보셨으면 해요. 특히 공예를 직접 배우면서 터득하는 디자인 의식이나 미적 영감은 엄청나거든요.

도려낸 유리에 동테이프를 감는 모습. 색유리의 투명한 물성이 인상적이다
도려낸 유리에 동테이프를 감는 모습. 색유리의 투명한 물성이 인상적이다. ⓒfrice

오직 스테인드글라스에서만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무엇입니까?

빛과 색입니다.

특히 창을 투과한 빛이 간직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걸 온전히 전하는 예술은 스테인드글라스뿐이라 생각해요. 대부분의 예술작품이 빛 때문에 상해요. 아크릴도 시트지도 강한 빛에 노출되면 5년을 넘기기 힘든데요. 반면 색유리는 빛을 온전히 수용하면서도 사물의 속성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카멜커피 12호점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창. 전국매장위치를 보물지도로 표현했다. 클라이언트가 제공한 아트워크를 반영한 디자인 사례
카멜커피 12호점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창. 전국매장위치를 보물지도로 표현했다. 클라이언트가 제공한 아트워크를 반영한 디자인 사례. ⓒ진영글라스 

여기에 ‘설치’라는 변수가 아름다움을 더해요. 다른 유리공예는 그릇이나 컵처럼 생활소품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작품을 사용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스테인드글라스는 보통 건축과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로 기능하니까 본질적으로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실내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편이거든요.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자체가 인테리어 욕구를 다 해소시키네요.

합정동 공방에 전시된 다양한 디자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합정동 공방에 전시된 다양한 디자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frice

카타르시스일까요?

작품을 공방 바깥으로 옮기는 건 늘 고생스러워요. 그래도 예정된 장소에 설치를 끝내면 쾌감이 쏟아집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갤러리에 전시되는 것보다 건축물의 창문으로 기능했을 때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하늘 아래 똑같은 작품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재밌습니다. 작품 A와 B를 나란히 놨을 때 두 작품의 도형배치가 비슷한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색유리 배치나 세척 여부를 따지면 디테일이 달라요. 그래서 작품마다 고유한 가치를 지녀요. 타인이 조형적인 디자인을 카피할 순 있어도 창작자의 에센스를 훔칠 순 없죠.

디자이너로서 끝까지 지키고 싶은 신념 내지는 소신이 듣고 싶어집니다.

「상업 예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한다」 이 생각을 지키고 싶어요.

종교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외한 일반 건축 스테인드글라스 공예는 본질적으로 순수예술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일단 타인이 얽혀요. 건물에 들어갈 창유리만 해도 그렇죠. 건축가, 건축주, 인테리어 시공자, 디자이너 등 여러 사람이 얽힙니다. 작품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의 미적 판단이 일치했을 때, 작품이 제 자리에 걸리는 건데요. 다른 예술 분야를 살펴도 이런 경우가 드물어요. 건축과 접목시킨 인테리어 아트의 특징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의 다양한 디자인 툴
ⓒfrice

상업적인 의도를 지닌 작품에 디자이너로서의 소신을 발휘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클라이언트가 메이커가 추구했던 공통의 예술가치가 이뤄진다는 점이죠. 작품의뢰와 기획초안은 클라이언트의 몫이지만, 그들에게 디자인과 실체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 크루의 몫입니다. 작가로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충분히 반영된다고 봐요. 작업 한복판에 있으면 오히려 내가 추구하는 예술성이 이루어지는 셈이죠.

스테인드글라스는 이제 교회나 고급 아파트에서 감상하는 값비싼 사치품이 아닙니다. 특히 한국에서 점점 대중화되고 있음을 실감해요. 취향이나 개성을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하려는 사람이 많이 늘었습니다. 저희는 이 흐름을 기쁘게 생각하고 부지런히 작업하려 합니다. 예쁜 거 많이 만들고,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의 하루를 살피며 공예와 디자인의 차이를 생각해 봅니다. 편견이 깨졌어요. 여태껏 스테인드글라스가 순수 예술이라 생각했거든요. 듣고 보니 설치 환경에 따른 제약이 많습니다.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힘이 필요해 보였어요.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작업하되, 자신을 잃지 않고 최선의 작업물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의 창작자들을 응원합니다!

한국 1세대 스페셜티 커피 매장, 커피 리브레 연남점

거리에서 본 커피 리브레 연남점
거리에서 본 커피 리브레 연남점
커피 리브레 신 연남점 ⓒfrice
신 연남점 오픈 첫 날, 국가대표 바리스타 대회 파이널리스트이자, 연남점 헤드 바리스타인 김명근 씨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커피를 세팅하고 있었다.
신 연남점 오픈 첫 날, 국가대표 바리스타 대회 파이널리스트이자, 연남점 헤드 바리스타인 김명근 씨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커피를 세팅하고 있었다. ⓒfrice

카페 오픈런, 거기에 에스프레소를 곁들인

수줍음이 많은 김명근 바리스타의 에스프레소는 깊고 깊은 심연 속에 한줄기 빛과 같은 느낌이다. 어둠 속에서도 끈질기게 빛을 잃지 않고, 섬세하고 아름답게 무지개와 같은 스펙트럼으로 갈라진다.

커피 리브레에서 제공한 에스프레소잔
ⓒfrice

강렬하면서 진득하다. 아름답고 선명하다. 기본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마시고, 설탕 한조각을 넣어 잘 저어 마시면, 강력한 질감 속에서 아름다운 향기와 커피가 뿜어내는 임팩트를 즐길 수 있다. 남반구 최고 스페셜티 커피 매장으로 손꼽히는 세인트 알리의 살바토레 대표는 한국을 방문해서 커피 리브레의 배드 블러드 블렌딩 에스프레소를 세계 최고의 커피로 손꼽기도 했다.

입구에서 바라본 커피 리브레 신 연남점
커피 리브레 신 연남점 1층 주문대를 바라본 모습
ⓒfrice

창립 14주년을 맞이한 커피 리브레는 한국인 최초 큐그레이더 서필훈이 설립했다. 보헤미안 서울의 팀장으로 핸드드립 커피 최고의 이론가였던 서 대표. 그는 2008년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의 커피 감정 자격증인 큐그레이더 시험에 통과했다. 커피생두를 감별하는 전문가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스페셜티 커피는 생소했다. 스페셜티 커피의 기본 개념은 커피빈의 물질적 속성을 탐구하고 생산자의 이력을 정리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긴 평가 기준은 양질의 커피를 판단할 새로운 근거가 됐고 스페셜티 커피는 어느새 현대인이 커피를 향유하는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2010년대에 벌어진 커피업계의 커다란 변화중 하나.

이 변화를 이끈 커피 리브레는 그래서 한국 1세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손꼽힌다. 서 대표는 첫 매장을 연남동 동진시장에 열며 스페셜티 커피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국내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연남동이 특별한 이유다.

커피 리브레 신 연남점에서 바리스타가 매장을 바라보는 모습
커피 리브레 신 연남점 1층의 브루잉 툴을 바라본 모습
ⓒfrice

신 연남점은 매장 입구에 푸어스테디 브루잉 머신이 도입됐다. 정교한 커피 추출을 가능케 한 첨단설비다. 한편 안쪽에는 과거 연남점 매장의 추억을 잇는 한약방 인테리어가 그대로 재현되었다.


커피 리브레의 마실거리

신메뉴 삼총사가 등장했다. 마로키노, 아포가토, 그라니타. 오직 연남점에서 맛 볼 수 있다. 마로키노는 에스프레소와 초콜릿 크림을 결합시킨 창작음료. 스팀화 시킨 초콜릿과 스페셜티 커피의 향미가 아름답게 공존한다. 여운이 오래 남는 음료다 .

커피 리브레 연남점의 시그니처 메뉴. 마로키노,아포가토,그라니타
왼쪽부터 마로키노, 아포가토, 그라니타 ⓒfrice

그라니타는 레몬 소르베를 이용한 에스프레소 기반 음료다. 개인적으로 한국 최고의 수제 아이스크림으로 꼽는 펠앤콜이다. 소르베의 선명한 산미가 커피와 결합해 입체적인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아포가토는 솔트 아이스크림을 사용한다. 팰앤콜의 솔트 아이스크림은 단짠이 선명하다. 향미가 분명한 커피와 만나 입 안의 감각을 풍성하게 만든다. 새단장에 어울리는 특별한 맛.

커피 리브레의 시그니처 디카페인 블렌드빈, 나이트호크
커피 리브레의 시그니처 디카페인 블렌드빈, 나이트호크 ⓒfrice

커피 리브레의 시그니처 디카페인 블렌드빈, 나이트호크 ⓒfrice

개인적으로 커피 리브레에서 추천하는 커피는 디카페인 커피이다. 과거, 디카페인 커피는 이산화탄소를 활용한 추출법이 주류였다. 화학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위험한 방식이었다. 그나마 안전한 스위스 워터 방식이 나왔지만, 스페셜티 커피에 기대하는 향미에는 못 미쳤다.

최근에는 커피리브레를 포함한 선두업체들이 멕시코 고산지대의 청정수를 이용한 마운튼워터 방식으로 안전하고 친환경적으로 카페인을 제거하면서, 스페셜티 커피에 기대했던 아름다운 향미를 성공적으로 발현하고 있다. 우수한 디카페인 커피를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다..

커피리브레는 연남점 재개장과 함께 <베스트 오브 파나마*> 대회 우승 농장인 핀카 하트만의 커피, 연남점 특별 블렌딩 동진시장, 디카페인 블렌딩 나이트 호크, 온두라스 <COE**> 1위 커피까지 준비했다. 이들의 원두는 주마다 라인업이 바뀐다. 브랜드에서 발신하는 뉴스채널을 구독해두면 다양한 커피 원두를 구입할 수 있다.


커피를 추출하는 바리스타의 모습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의 머신 세팅은?

이들은 브루잉 커피를 만들 때, 말코닉 eK 43 그라인더를 사용한다. 업계 관계자 사이에선 커피빈을 섬세하게 분쇄할 수 있는 고급머신으로 평가받는다. 매장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로버와 라 마르조코를 조합한다. 로버 그라인더는 원뿔형 코니컬 그라인더인데 향미가 좋은 스페셜티커피와 궁합이 최적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을 움직이는 바리스타의 손
ⓒfrice

피렌체에서 전문가들에게 의해서 생산된 라 마르조코 에스프레소 머신은 모델에 따라서 온도조절, 압력조절과 같은 변수를 통제할수 있고, 스페셜티 커피 산업에서 가장 안정적인 추출을 선보이는 머신이다. 로버와 라 마르조코의 조합은 마치 F1 레이싱에서 페라리 머신과 미셰린 타이어와 궁합처럼 클래식하고 안정적이다.

커피리브레 구 연남점의 안과 밖
동진시장에 자리한 구 연남점의 안과 밖 ⓒfrice

연남동 대표 카페의 디자인 혁신

2012년. 커피 리브레 첫 번째 카페 매장이 열렸다. 연남동 동진시장 이불 가게를 개조했고 중고 자개 테이블과 한약방 서랍장으로 인테리어를 보충했던 소박한 매장이었다. 10여 년 동안 세계적인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로 성장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순 없었다. 2023년 7월, 건물주의 요청으로 동진시장에 연 매장을 정리했다.

매장 이전은 디자인 리노베이션의 계기가 됐다. 구 연남점은 오래된 재래시장을 개조해서 방습, 방진이 취약했다. 특히 시장 내부 공중화장실이 매우 열악했다.

과거 스페셜티커피 업체들이 생존을 위해서 매장을 꾸리기에 급급했다면, 현재는 디자인을 강화하고 있다. 커피 리브레 또한 신연남점을 통해 브랜드를 대표하는 공간을 대폭 개선할 수 있었다. 

신 연남점은 경의선 철길 옆 건물로 낙점됐다. 20세기 중반 마포구에 흔히 보이는 20세기형 2층 단독 주택을 리노베이션.

신 연남점 오픈 첫 날, 매장을 찾은 가족 손님과 반려동물 동반 손님
신 연남점 오픈 첫 날, 매장을 찾은 가족 손님과 반려동물 동반 손님ⓒfrice

신 연남점은 배리어-프리(barrier-free)를 강화했다. 1층 커피바는 어린이 환영, 반려동물 환영, 교통약자 이동권을 적극 반영한다. 어린이와 반려동물을 위한 편의용품, 단차없는 플로어, 교통약자를 위한 화장실을 설계했다. 개장 첫 날부터 새롭게 설계된 공간 디자인을 이용하는 손님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반려동물 하네스를 걸어둘 수 있는 고리와 나쵸 리브레의 레슬링 가면을 오마쥬한 화장실 입구의 픽토그램. 브랜드 로고 응용이 재치있다.
1. 반려동물 하네스를 걸어둘 수 있는 고리 / 2. 나쵸 리브레의 레슬링 가면을 오마쥬한 화장실 입구의 픽토그램. 브랜드 로고 응용이 재치있다. ⓒfrice

커피 리브레 연남점은 새롭게 매장을 오픈하면서 브랜드 최초로 인테리어 전문 디자인팀과 함께 작업을 했다. 옛 매장은 레트로한 공간 인테리어로 눈길을, 새 매장은 손님편의가 우선이다. 안정적인 조명설계와 편안한 시각 요소들이 연남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카페를 방문한 이들에게 평안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커피 리브레 연남점 2층 모습
커피 리브레 연남점 2층 모습
커피 리브레 연남점 2층 모습. 밝으면서 개방감 있다
신 연남점 내부. 밝으면서 개방감 있다. ⓒfrice

새롭게 단장한 매장은 밝게 도색한 전면부와 입구의 천막이 시원한 청량감을 선사한다. 1층은 커피바와 약간의 좌석이 있고, 2층에 넓고 쾌적한 착석 공간이 준비된다. 이전 리브레 연남점 매장 환경이 매장 내 체류에 취약했던 것을 감안하면 비약적인 발전이다.

커피 리브레 신 연남점은 2층의 넓은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아트워크를 설치한다.
커피 리브레 신 연남점은 2층의 넓은 공간을 활용해 다양한 아트워크를 설치한다. ⓒfrice

매장 2층 전시된 그림은 구 연남점에 걸려있던 액자로 최근 NFT를 발행해 기부 프로젝트에 나서기도 했다. 이 또한 한국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최초. 커피 리브레는 디지털 아트 소유권 증명서를 발행한 수익금액을 전액 기부했고, 앞으로도 다양한 작가들과 협업해서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커피 리브레의 상징이 된 한약장. 다양한 원두를 다루고 보관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카페에 자리잡은 약장이 그리 어색하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커피 리브레의 상징이 된 한약장. 다양한 원두를 다루고 보관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면 카페에 자리잡은 약장이 그리 어색하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frice

‘한약방 약장’은 커피 리브레의 상징이다. ‘커피는 약’이라는 인상을 선사하는 흥미로운 인테리어. 약장은 사실 의도된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초기 창업 당시, 없는 형편에서 중고 가구를 끌어왔다. 버려진 가구를 세척해서 사용한 것이 본의 아니게 레트로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약장의 서랍을 선반으로 활용하여 커피 원두를 전시했다
약장의 서랍을 선반으로 활용하여 커피 원두를 전시했다. ⓒfrice

동진시장 매장 오픈 당시, 커피원두를 전시하는 기물로 사용한 리브레의 약장은 한국적인 오브제로서 공간 분위기를 지배하는 인테리어 요소였다. 한국에 스페셜티 커피가 보급된 2010년대 초반, 레트로한 분위기를 연출한 한국 스페셜티 커피 매장에 공간 디자인 레퍼런스로 자리매김했다.


최고의 커피는 관계가 만든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미션(mission)을 알면, 커피의 아름다움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있다. 커피 리브레의 경우, 세계 각국의 사연 있는 농장의 특별한 싱글 오리진 커피를 공급하는데 진심이다. 대표적인 예가 ‘파나마 핀카 하트만 게이샤’다. 핀카 하트만 농장의 게이샤 품종 커피는 한국에서 커피 리브레를 통해서 소개됐다.

게이샤 커피는 신의 커피로 알려지면서, 비싼 가격 때문에 화제를 모은다. 섬세한 향미와 절제된 단맛, 길고 여운있는 후미까지. 대부분의 커피인들이 최고로 손꼽는 커피이다.

파나마 핀카 하트만 게이샤. 하트만 농장은 파나마 커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파나마 핀카 하트만 게이샤. 하트만 농장은 파나마 커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frice

하트만 농장의 게이샤는 한여름 작열하는 스페인 광장에서 마주친 플라멩코 댄서와 같이 활발하면서 정열적인 에너지를 방출하는 느낌의 커피. 하트만 농장은 파나마 커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서 생두경매가격이 크게 상승했지만, 커피 리브레를 통해서 이전과 동일한 가격에 생두를 제공한다. 스페셜티 커피인들의 세계에는 아직도 관계의 소중함을 바보같이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산지를 직접 누비며 농장을 답사하고, 현지 농장주와 인간적인 유대감을 만드려는 노력. 이는 엘 카페, 모모스 커피, 나무사이로, 프릳츠, 커피 템플과 같은 국내 최고의 스페셜티커피 업체들에게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영화 에서 영감을 받은 커피 리브레의 이름과 심볼이 곳곳에 녹아있다

지금까지 한국 최초의 스페셜티 커피 업체로 손꼽히는 커피 리브레의 연남점 재개장 소식을 전했다. 최근 스페셜티 커피 업계는 디자이너와 긴밀한 협업에 나서고 있다. 디자인 산업의 확대와 함께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는 이상을 추구한다. 그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접근방식은 소비자들에게 커피 경험의 확대를 만든다. 디자인을 강화한 최근의 시도가 선순환을 거두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