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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어디까지 쓸 수 있어요?

햇빛이 드리운 미색 한지

<1부에서 이어집니다>

둥글게 말린 색한지
ⓒfrice

한지, 이전에는 어떤 곳에 많이 쓰였었나요?

1980년대 이전에 한지가 가장 많이 사용된 분야는 건축 자재 분야였어요. 장판지, 벽지 수요가 많았죠. 병풍이나 족자처럼 표구 분야 수요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건축 자재는 기계로 만든 종이와 PVC 장판으로 대체되고, 표구는 액자로 대체됐죠. 한지의 역할이 대체되니, 쓰임새 역시 점점 줄고 있습니다.

노란 한지장판이 깔린 한옥 내부.
그렇다. PVC 노란 장판의 원조는 한지 장판. 한지 장판 색이 누리끼리했던 이유는 장판용 미색 한지에 여러 번 기름을 칠하고 경년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 PVC 노란 장판의 원조는 한지 장판. 한지 장판 색이 누리끼리했던 이유는 장판용 미색 한지에 여러 번 기름을 칠하고 경년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오늘날 생산 중인 장판용 한지. 한지장판은 여러 장의 한지를 붙이고, 천연 콩기름을 침투시킨 뒤 옻칠을 더한다
오늘날 생산 중인 장판용 한지. 한지장판은 여러 장의 한지를 붙이고, 천연 콩기름을 침투시킨 뒤 옻칠을 더한다. ⓒ천양피앤비

03. 연구, 디자인, 도전

혹시 뜻밖의 산업 군에서 한지를 써보겠다는 제안이 있나요?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 연구 제안이 들어왔어요. 한지를 차량 내부 인테리어에 사용하고 싶은데, 같이 고민해달라는 의뢰였죠. 자동차에 종이를 쓰는 것이 자칫 불가능해 보였지만 한지라면 다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 오늘날 한지를 새롭게 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해서 협업에 나섰습니다.

동양한지에서 차량 인테리어용으로 개발한 샘플 종이. 국내 완성차 그룹 계열사에서 의뢰했다. 직접 만져보니 다른 한지보다 질기고 튼튼하다
동양한지에서 차량 인테리어용으로 개발한 샘플 종이. 국내 완성차 그룹 계열사에서 의뢰했다. 직접 만져보니 다른 한지보다 질기고 튼튼하다. ⓒfrice

자동차 업계에서 요구하는 스펙에 맞출 수 있었나요? 한지는 수공예품이라 제작이 까다로웠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차량 인테리어용 한지는 실패했어요. 양산(대량 생산)이 어렵습니다. 튼튼한 한지를 만들더라도 균일한 품질을 내기 힘들었어요. 그리고 높은 열을 가하거나 200톤에 달하는 압착기로 한지를 누르는 실험을 거쳤는데, 양산용 자동차에 적용되는 극한 테스트는 한지도 견딜 수 없었어요.

지금은 공예가 선생님이 모터쇼에 출품할 콘셉트카에 직접 설치하는 수준이 최선이죠. 그래도 이런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지의 현대적인 쓸모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산업 군에 있다는 것을 더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기억나는 다른 한지 연구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종로 물나무 사진관과 손잡고 ‘사진 인화용 한지’ 개발을 마쳤습니다. 저희는 ‘인쇄용 도침 한지’라 부르는데요. 성분은 국산닥 100%. 종이 분류 기준으로는 *2합 순지입니다. 한지에 디지털 사진을 인화하려는 디자인 프로젝트였습니다. 기존 한지를 프린트기에 걸면 종이 섬유질이 굵은 탓인지 한지가 기계에 걸리거나 구겨지는 문제가 있었어요.

인쇄용 도침 한지에 인화한 인물초상사진
인쇄용 도침 한지에 인화한 인물초상사진. ⓒfrice

‘도침’이라는 한지 제작 공정이 있어요. 종이를 두드려서 표면을 고르게 만드는 일인데, 도침을 강화하며 문제를 해결했죠. 이 종이는 미색 한지의 색감을 깊이 있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개선을 시도 중입니다.

한지도 샘플북이 있을까요? 디자이너에게 종이 샘플북의 존재는 소중합니다.

있습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산하 홍보관에서 만든 ‘한지 미리보기 책’이 대표적입니다. 몇몇 종이 업체도 생산 가능한 한지들을 묶어 샘플북을 내고, 색이 들어간 색한지를 모아 색깔을 구분하기 위해 샘플북을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기계지 샘플북과는 다릅니다. 훗날 샘플북에 있는 한지가 다 떨어져, 그 종이를 비슷하게 만들더라도 결과적으로 비슷하지 않은 종이가 나오거든요. 컬러 팔레트를 찍어 오차 없이 디자인을 보려는 기계지 샘플북과 다릅니다. 제 생각에 한지 샘플북은 역사적인 기록물에 가깝다 봐요.

북촌 한지가헌에서 제작한 ‘한지 미리보기 책’. 
국내 18개 공방의 400여 종 한지를 소개하는 책자. 문화재용, 인쇄용, 공예용, 서화용, 인테리어용 등 용도별로 한지를 분류해, 종이에 얽힌 정보를 제공한다
북촌 한지가헌에서 제작한 ‘한지 미리보기 책’. 국내 18개 공방의 400여 종 한지를 소개하는 책자. 문화재용, 인쇄용, 공예용, 서화용, 인테리어용 등 용도별로 한지를 분류해, 종이에 얽힌 정보를 제공한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04. 한지의 내일은?

한지가 요즘 위기라 들었습니다. 한지 업계가 마주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유통자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한지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한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줄고, 종이 수요 자체도 줄어서 생산도 나란히 줄어드는 상황이죠. 예컨대 색한지(色韓紙)는 전국 각 지역에서 모읍니다. 지역별 한지는 염료의 숙성과 건조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나는데요. 이것은 전통한지의 특색이기도 해서 일부러 가게에 질 좋은 물건을 모아두려 해요.

세가지 색한지를 둥글게 말아 촬영한 사진
ⓒfrice

전국 각지의 장인들이 꾸준히 생산을 하셔야 다양한 색을 지닌 한지가 나오는데 그렇지 못해서 큰 고민입니다. 인기 있는 색은 계속 만들어지더라도, 중간을 받쳐줄 색이 줄어드니 결과적으로 한지의 컬러 스펙트럼이 줄어드는 거죠.

또 다른 문제는 수입 한지들을 선별하는 일인데요. 수입 한지의 재료 원산지나 생산지역을 추적하기 쉽지 않은 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지 품질 관리는 앞서 언급한 다양성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국내에서 만든 것도 표준을 만드는 게 어려웠는데, 해외에서 만든 것은 관리가 더 어렵죠.

한지의 표준이나 품질관리 기준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한지 품질 표시제’라는 게 있습니다. 한지 생산자, 제조 방식, 재료 원산지 등의 제반 사항을 표기하는데요. 한지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된 제도입니다. 한지를 사용하는 구매자에게 한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전통한지가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었어요.

취지는 좋은데,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모자랍니다. 만약 한지 생산처에서 사정이 생겨 표기된 정보를 지키지 못한다고 해도, 처벌이나 불이익을 주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한지는 제작 과정에서 수많은 공정을 거치는데, 이 중 한 부분만 헐거워도 품질 격차가 나타나요. 사람이 만드는 종이라서 결국 편차가 나타납니다. 아쉽지만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지요.

한지 디자인 현황을 설명하는 박창완
ⓒfrice

‘한지를 외국에서 싸게 들여오는 건 어떨까?’ ‘한국 전통과 한지의 우수성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자!’ 이런 고민으로는 한지가 점점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한지는 지금 실제로 위태롭습니다. 특히 삼국시대 때부터 이어진 전통한지가 지금은 후계자가 없어서, 각 지역의 장인이 돌아가시면서, 지역의 전통한지 생산이 끊어지는 곳이 많습니다.

전통이 단절되는 것도 큰 문제군요.

한국은 ‘전통’이라는 화두가 ‘옛 것의 계승’과 연관됩니다. 그 어느 나라보다 변화가 빠르지만, 전통이나 전통의 순서를 건드리는 일만큼은 변화가 더디죠. 제 생각에 한국에서 ‘전통’과 ‘보존’이라는 개념을, 많은 분들이 같은 맥락으로 인식합니다. 저는 두 개념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동양한지에서 자체 개발한 염색 옻칠 한지
동양한지에서 자체 개발한 염색 옻칠 한지 ⓒfrice

전통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화되는 것입니다. 한지의 전통은 ‘닥나무 섬유로 만든 종이’라는 범주 안에서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변화합니다. 보존은 문화재 보존용 한지나 전통한지 제작 기법처럼 ‘지켜야 할 옛 것’에 필요한 개념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계승된 옛 것이 보존을 벗어나면, ‘그것은 전통이 아니다’라며 배척 받는 게 현실입니다. 보존이라는 명분이 전통을 막는 셈이죠.

“옛 것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건 계승이지 전통이 아니다.” 라는, 예전에 들었던 어느 지식인의 말씀이 기억나네요.

해외 사례 중 참고할 만한 게 있을까요?

해외 출장 때 만난 화지(일본 전통 종이) 관계자의 말씀입니다.

“원료가 국산인지 수입산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시대에 사용될 수 있는 종이를 만들어 잊히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하죠. 옛날 방식으로 자국 전통 종이를 만드는 것은 계승되어야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현대에도 사용될 수 있는 종이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옻칠한지를 포갠 모습
옻칠한지를 포갠 모습 ⓒfrice
옻칠한지는 종이 표면에 가죽을 보는 듯한 거친 질감이 드리운다
옻칠한지는 종이 표면에 가죽을 보는 듯한 거친 질감이 드리운다. ⓒfrice

저는 이 말씀이 한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도 부합한다고 봐요. 혁신적인 제작시도나 제조공정의 현대화 같은 건 존중받아야겠지요. 해외 전통 종이 관계자분들은 저에게 “한지에 옻칠을 하는 건 좋은데, 왜 피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성분을 빼지 않느냐?”는 피드백을 전해주셨어요. 옻칠한지에 쓰는 원료는 옻나무에서 추출한 걸 그대로 칠하거든요. 실제로 한국에서 전통 옻을 다루는 분들은 팔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있어요. 옻의 독한 성분 때문이죠.

‘옻의 특정 성분을 분리하면 그것은 정말로 전통에서 멀어지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대화 과정에서 전통의 개념이나 전통을 규정하는 관점은 여러가지가 뒤섞이는 것 같아요.

밝은 조명 아래에서 한지의 질감은 도욱 도드라진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 한지의 질감은 도욱 도드라진다.ⓒfrice

한지의 대중화를 위해 어떤 것을 해볼 수 있을까요?

유통자 입장에서 퍼포먼스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일종의 쇼 엔터테인먼트를 제안하고 싶네요.

인사동 거리를 지나다니면, 서예나 악기 연주하는 분이 계시죠. 꿀타래 가게 사장님도 타래를 두 배 네 배 늘어뜨리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볼거리를 만드시거든요. 한지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퍼포먼스가 거의 없었어요. 한지에 사람들의 감각을 사로잡는 특별한 물성이 없진 않거든요. 앞으로는 한지를 이용한 예능적인 퍼포먼스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인사동에서 한지를 뜨고 그걸 대중 앞에서 보여주는 겁니다. 30여 년 전, 동양한지가 종로 견지동에 있을 때 매장 안에서 한지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공중파 방송국에서도 촬영을 왔었고. 거리를 다니시던 분들이 한지에 관심이 생겨 문의도 많이 주셨어요. 한지가 건조될 때까지 기다리다 종이를 사 가셨던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컬러와 기법이 적용된 한지의 변화는 무궁무진하다
다양한 컬러와 기법이 적용된 한지의 변화는 무궁무진하다. ⓒfrice

생산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관광지에 체험형 전시공간을 따로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지를 좀 더 대중적인 곳에서 재미있게 퍼포먼스를 하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한지산업을 위한 지원사업을 추진하신다면! 생산자나 유통자가 문화 진흥 프로젝트를 직접 만들 수 있게 지원을 하거나, 대중적인 공간에서 감각적인 퍼포먼스를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선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동양한지는 국산 한지를 지키고 싶어요. 1968년부터 대대로 인사동을 지킨 전문가로서, 앞으로도 국내 생산 업체와 상생하려고 합니다. 한지를 디자인에 활용하는 분들도 국산 한지를 위주로 사용해 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2부 인터뷰는 한지의 오늘을 업계 전문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간이었어요. 한지를 만드는 사람, 한지를 쓰려는 사람 모두 고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한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자동차 인테리어 소재 연구나 사진 인화용 한지개발은 디자이너의 의지가 느껴지는 시도여서 눈길을 끄네요. 여러분은 한지의 내일을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재봉틀로 할 수 있는 디자인? 뭐든 OK

이태원 국일사의 장인들이 일하는 모습
왼쪽 이종희 님, 오른쪽 이병수 님. 부부가 47년 동안 이태원에서 자수 가게를 운영중이다.
왼쪽 이종희 님, 오른쪽 이병수 님. 부부가 47년 동안 이태원에서 자수 가게를 운영중이다. ⓒfrice

서로를 소개해주시겠어요?

이종희 이병수는 국일사 사장님인데요. 이름 자수 전문가입니다. 손글씨를 잘 쓰고요. 영문 필기체를 아름답게 새깁니다. 미국대통령이 한국에 오면 맞춤양복을 만든다는 거. 혹시 알고 계세요? 이웃가게인 썬양복점이 미국대통령 양복맞춤을 자주 했는데요. 양복에 이름 새기는 건 꼭 국일사로 오더가 와요. 레이건부터 바이든까지 이병수가 새겼습니다.

이병수 이종희는 아내이자 동료입니다. 사람들이 들고 오는 그래픽 자수 시안을 직접 새깁니다. 이병수가 그래픽 시안의 테두리를 그려서 본을 뜨면, 이종희가 그림을 쓱 보고 옷 위에 그림을 척 새겨요. 한 번 쓱 본 그림을 손자수로 만드는 건 제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이종희 밖에 못해요.


01. “흑백사진으로 본 7080 이태원 전성기”

이병수 옛날 얘기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사진을 꺼내봤어요. 한 번 볼래요? 당시 테일러 샵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런 모습 기억하는 사람은 진짜 이태원 토박이죠.

1976년 이태원시장 상점가를 기록한 사진
현재의 우리는 모르는 옛날의 이태원.
현재의 우리는 모르는 옛날의 이태원. ⓒfrice

두 분은 언제 이곳에 터잡으셨나요?

이병수 우리 둘 다 1974년. 나이는 각자 20대 초중반 일 때네요. 저는 동두천에서 군부대 앞 자수가게에서 배웠어요. ‘국일사’라는 이름은 제가 일 배웠던 가게명을 딴 겁니다. 내 옆에 계신 분은 용산역 근처 미싱자수학원에서 미싱을 배웠지요. 아내는 이태원 오기 전에 다니던 미싱학원에서 수업을 맡았던 자수 선생님이었어요. 실력은 전국기능올림픽에 나갈 정도였고요. 그렇게 전국 각지에서 각자 배워온 걸로 이태원 시장에 자리 잡았던 기술자가 많아요. 그때 미싱 기술자를 고용한 사업체가 10곳 정도 있었어요. 지금은 대부분 은퇴하거나 그만뒀지만요.

이종희 우린 이웃 가게 친구였어요. 그러다 어느 날. 옆에 있는 이병수 씨가 날 쫓아다니기 시작했어요(웃음). 우리 남편이 젊었을 땐 훤했거든요. 미소도 맑고 선했어요. 만나다 보니 79년 11월에 결혼했네요.

7080 이태원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이종희 80년대부터는 이태원에서 재봉틀로 할 수 있는 사업을 여러 방면으로 시도했었어요. 킹샵이라고 직원을 서너 명 뽑아다 시장건물에서 손자수 전문샵을 하기도 했는데, 2009년부터 하던 사업 다 접고 국일사만 집중하고 있어요. 우리 둘이서만 일한 지는 이제 20년 조금 넘었어요.

1976년 이태원 콜트 장군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
ⓒfrice

이병수 이건 용산구청에서 녹사평역 넘어가는 로터리인데요. 여기에 콜트 장군 동상이란 게 있었던 시절이에요. 6.25전쟁 때 미군 사령관인데 이태원 랜드마크였죠.

사진 보면 이태원이 서울이 아니라 미국 도시 같아요!

이종희 지금 평택으로 미군 기지를 옮겨서 뜸한데, 당시 이태원은 정말 미국 사람이 많았어요. 주한미군 가족도 많이 머물렀죠. 시장에서도 한국생활잡화보다 미군이나 미군 가족이 살 법한 물건을 많이 팔았지. 진짜 밍크는 아닌데, 밍크털처럼 부들부들한 담요가 그때 많이 팔렸어요. 양복점이나 빅사이즈 옷가게도 그런 영향이란 말이죠.

우리는 주한 미8군 계급장 같은 걸 직접 해줬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정겨웠던 시절이에요. 어느 미군이 양말 가게 단골이면 ‘헤이~싹쓰맨~’하면서 놀러 와요. 7월 미국 독립기념일에는 이태원 사람들이 용산 미군기지에 초청받아서 가족끼리 파티도 하고 그랬지. 칠면조도 먹고 케이크 떠서 나눠먹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오래된 실 상자
주변의 기물들은 이야기와 함께 과거를 상상하게 한다.
주변의 기물들은 이야기와 함께 과거를 상상하게 한다. ⓒfrice

기억에 남는 당시 단골손님이 있나요?

이종희 1984년쯤 일인데 이태원 양복점 단골손님이던 장교가 퇴역 앞두고 단골가게 사장님들을 싹 다 모았어요. 덕분에 한국에서 즐거웠다고. 송탄에 같이 가자고. 기념으로 경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그래서 이웃 가게 사람들이랑 미군 비행장 들어가서 아산만 바다 위를 40분쯤 비행했죠. 옛 이태원 시장 단골 손님이 우리에게 전했던 커다란 감사인사 였어요.

낭만이 있었네요. 영화 <탑건 : 매버릭> 엔딩 같습니다.

이종희 이태원이 미군이 다녔던 클럽이 있어서 그런지 거친 이방인이 많을 거란 오해가 있어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죠. 오히려 이태원에서 만났던 미군은 대부분 겸손했어요. 군인이니까 기본적으로 듬직하지. 성격이 대체로 정직하고 가정적이라고 해야 하나? 특히 가족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젠틀한 사람을 손님으로 많이 만났던 거 같고. 영어도 덕분에 쉽게 배웠던 거 같아요. 복무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한테 우리가 양복 셔츠에 이름자수 많이 해줬어요.

이병수 70년대 이태원은 양복점이 유명했죠. 기술자를 고용해서 의류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동대문이 도매시장이라면, 이태원은 까탈스러운 오더를 맞춰주는 소매시장이었어요. 특히 연예인 무대의상을 잘 만들었죠.

우리가 지금은 핸드메이드 자수 작업을 하지만, 양복점에서 맡긴 옷에 부속품이나 특별 오더 디테일을 달아주는 작업도 많이 했어요. 창고나 서랍장 열면 테일러샵에서 쓰던 금장 단추나 옛날 실같은 게 아직도 있어요. 여기 보세요.

가림막 뒤에 잠들어 있던 부자재 진열장
가림막 뒤에 잠들어있던 부자재 진열장
가림막 뒤에 잠들어있던 부자재 진열장. 함에 들어있는 부속품이 반짝거린다.ⓒfrice

세상에! 이건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셔야 하는 유물인데요!

이병수 이거 다 가져가셔도 될 거 같아요.(웃음)

이종희 의류는 집단 제작이에요. 양복을 테일러샵 한곳이 다 만드는 게 아니거든요. 단추나 실같은 부속품을 팔거나 자수 집처럼 보조 작업을 해주는 가게가 나란히 움직여요. 그러다 보니 자수하는 사람은 별일을 다 맡아요. 우리는 매번 다른 자수를 놔야 하잖아요. 해봤던 자수는 더 잘해야 하고, 못 해본 작업은 하면서 느는 거죠.

이태원 국일사에서 쓰는 재봉틀 기계
ⓒfrice

이병수 우리 월급이 1970년대 당시 45,000원입니다. 당시 말단 공무원 월급이 25,000원이고 하숙비나 월세가 5,000~6,000원 했을 거예요. 재능 있고 기술이 있으면 일한 만큼 보상은 받는 거죠. 지금은 의류사업이 크게 줄긴 했는데, 우린 미싱 기술이 있으니까 시대에 맞춰서 할 일을 해요.


02.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시작하다.”

미싱머신과 연결된 실
세월의 흔적을 증명하는 낡은 기물
ⓒfrice

한때 이태원 패션이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
시장에는 지금도 미국 워싱턴 상원 의원이 양복을 주문하는 테일러샵이 있더군요.

이병수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연예계에서 들어오는 창작 의류 제작도 이태원이 잘했어요. 그러다 강남 개발 끝나고 패션으로 청담이 뜨면서 완전 흐름이 넘어갔어요. 우리도 변해야 했지. 어쨌거나 유행이 변하고 상권이 변해도 자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이종희 대단했죠. 88 서울 올림픽 개최준비 때부터 한 풀 꺾였어요. 상표 도용 단속이 있었는데, 이후로 조금씩 상권 활기가 떨어졌지요.

지금은 디자인이나 저작권을 귀하게 다루는 게 상식이지만, 80년대 만해도 그런 인식이 희미했어요. 셔츠에 나이키 스우시 로고 그려달라면 그려주고, 체육복에 줄 세 개 그어서 아디다스처럼 만드는 게 대수롭지 않았던 거였죠. 올림픽 맞이하면서 외국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니까. 도시미관이나 미풍양속 점검한다는 이유로 짝퉁 의류 생산 단속이 심해졌어요. 문 닫아야 하는 가게도 많았어요.

가게 벽면 가득히 각종 네임태그, 자수 패치들이 빼곡하다
가게 벽면 가득히 각종 네임태그, 자수 패치들이 빼곡하다 ⓒfrice

이종희 그래서인지 90년대에는 비보이팀이나 풋볼팀에서 단체 유니폼 손자수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어요. 당장 어제만 해도 오랜 단골 손님이 구멍 난 데님 재킷을 가지고 왔죠. 거기에 꽃자수를 넣어달라네요.

이제 우리는 상표 걱정 없는 자수를 하는 거죠. 손님들의 사적인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맡는 게 즐거워요. 국일사는 그래서 개인이나 팀을 위한 자수 작업을 전문으로 합니다.

어쩐지 가게 안에 가방이나 여행용 캐리어에 매는 네임태그가 많습니다.

이종희 항공사 직원이 국일사를 많이 찾아와요. 항공사 직원들은 동료랑 똑같은 액세서리 맞추는 게 문화인가 봐요.

이병수 얼마 전 ‘뽀빠이’라는 일본 잡지에서 취재하러 왔는데 국일사가 서울여행 추천장소로 소개됐어요. 서울 놀러왔다가 기념품으로 러기지 네임태그 하나 만들어 가는 곳으로요. 요즘엔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어요.

영문 네임태그를 새기는 이병수 님
ⓒfrice

이병수 종종 어학당 같은 곳에서 외국인 유학생들 네이밍 자수해달라고 가방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요. 그 친구들은 말 배우러 온 거니까 사교적인 활동을 많이 하잖아요. 농구나 축구하면서 친해지고. 여행도 많이 다닐 테고. 뒤죽박죽 어울리다 자기 물건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거지. 거기에다 한글도 열심히 배우고 있잖아요. 자기가 원하는 글씨체로 메시지를 새기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야. 한국에서 뭔가 하고 있다는 실감이 나나 봐.(웃음)

이종희 한국에서는 물건 잃어버려도 비교적 잘 찾을 수 있잖아요. 외국에선 잃어버린 물건을 도로 찾기 힘들대요. 그래서 네임태그 아이템이 꼭 필요한 거죠. 문화 차이 때문에 생긴 수요라 재밌는 오더예요.

손자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뭘까요?

이종희 일단 그라데이션. 컴퓨터 자수는 깔끔하죠. 그래픽도 정교하고. 그런데 그라데이션 구현은 컴퓨터로는 어려워요. 실 위에 실을 덧대는 자수가 아닌 거죠. 예시로 제가 예전에 작업한 스카잔 재킷을 보여드릴게요.

자수실의 다양한 컬러스펙트럼과 핸드메이드 수베니어 자켓 시안
ⓒfrice

강아지 얼굴을 큼지막하게 등판에 새긴 건데요. 색을 유심히 보면 실 사이에 그림자 같은 게 져요. 컴퓨터로는 이런 음영을 낼 수 없어요. 엇비슷한 색으로 실을 바꿔 넣으면 입체감을 살릴 수 있거든요. ”검은 실을 수놓은 부분에 살짝 연한 파랑을 끼워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하는 거죠.

이병수 기술만 있으면 컴퓨터보다 빠르게 작업하는 경우도 있어요. 로고면 로고, 욕이면 욕.(웃음) 주문자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표현할 수 있고요. 뭐든 다 되니까 예뻐요. 가끔은 “맙소사… 굳이 이런 걸 꼭 새겨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요. 가게에 걸린 샘플 자수 패치는 컴퓨터 자수가 대부분이지만, 원한다면 손님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서 따로 재현할 수 있어요.

고객이 의뢰한 수베니어 재킷 자수 샘플 시안
국일사 이종희 님의 손을 거친 수베니어 재킷 디자인 결과물
ⓒfrice

이종희 다들 사연을 갖고 만들어 달라는 거니까. 예술작품이라 여기고 열심히 해요. 가끔 만드는 나도 깜짝 놀랄 디자인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다 만들고 나서 주인한테 연락하지만, 너무 잘 만든 작품은 가끔 되돌려주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작업 마치면 조금씩 사진을 찍어서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우리 가게에서 자수 작업하신 분들 따로 연락주시면 많이 반가울 거 같아.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쓰이고 있을지 궁금해요. 막내사위가 운영하는 국일사 인스타그램에 올려드릴 테니까 많이 연락 주세요.

자수 작업을 맡기는 비용이 궁금합니다.

이병수 러기지 태그에 들어가는 네이밍 자수는 보통 6,000원에서 12,000원까지. 의류에 새기는 그래픽 자수는 10,000원 부터 시작해요. 스카잔 재킷처럼 등판에 넓은 면적을 한 땀 한 땀 복잡하게 따는 작업은 직접 보고 견적을 내드리고 있습니다.

국일사에 걸린 다양한 자수 디자인들
ⓒfrice

이종희 우리는 작업하느라 바빠서 SNS할 여력은 없어요. 대신 막내사위가 작품 기록과 대외소통을 맡고 있죠. 우리더러 “장모님 장인어른 가격 좀 더 올려 받으셔라!”라고 하는데…(웃음)

우리는 일단 열린 마음으로 손님이 맡긴 시안을 봐드려요. 가게가 좁기도 하고 사람이 몰리면 난감할 수도 있는데. 직접 와서 언제든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 우리가 가게에 있을 때, 시간만 나면 다 직접 안내해드려요.


03. “내가 자수 디자인을 사랑하는 이유”

frice와 대화를 나누는 국일사 이병수 이종희님
ⓒfrice

40년 넘게 하셨는데 혹시 일이 질리진 않으세요?

이종희 전혀! 실밥 잘 끊고 싶어서 손톱도 늘 예리하게 깎아요.(웃음)

일을 질리지 않게 만드는 의뢰가 종종 있어요. 예전에 제가 정조대왕 화성능행도를 본떠서 옷에 자수를 새겼었어요. 해마다 패션디자인과 사람이나 의류 공부하는 학생들이 공수가 많이 드는 시안을 들고 와요. 기억에 남는 졸업작품 중 하나였죠.

화성능행도를 주제로 한 자수 아트워크
ⓒ국일사

조선 풍속화 보면 그림 속에 사람이 엄청 많잖아요. 인물 하나하나를 의류에 새겨서 그래픽 디테일로 새기는 작업이니까. 돈도 한두 푼 드는 게 아니거든요.

그때 나한테 졸업작품 맡긴 학생한테 당부했어요. 이런 자수는 완전히 똑같이 재현하는 게 아니라고. 너무 기대하면 곤란하다고. 나도 감각을 발휘해서 툭툭 건드리는 거라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100%에 도달하는 거군요.

이종희 맞아요. 손끝 감각에 집중하면 100%를 넘기도 해요. 중요한 건 우리가 신나는 거죠. 실은 뭘 쓸지. 색의 음영은 어디서 강조할지. 신나서 생각하다 보면 완성도가 100%에 가까워져요.

국일사 디자이너의 동반자, JUKI 공업용 미싱
JUKI 공업용 미싱에서 세월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frice

컴퓨터 자수 완성도를 100%라 치면, 손자수는 처음부터 100%를 할 수 없어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실밥을 뜯어서 다시 새긴다거나. 미리 연습하면서 감을 잡아본다거나 하면서 100%에 닿으려는 거죠.

90%에 그칠 걸 98~99%까지 만들면, 거기서만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단박에 100%를 훌쩍 넘는 결과가 나오면 그 나름대로 예쁘고요. 같은 시안을 새겨도 아주 미세하게 달라요. 그게 사람이 다루는 재봉틀 자수의 매력이고 국일사 자수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국일사 전성기는 언제입니까?

이병수 벌이는 옛날이 더 나을 순 있는데, 지금도 좋아요. 50년 묵은 기계와 이제 한 몸이 된 느낌이에요. 우리는 각자 작업하는 자리는 서로 바꿔 앉지도 않아요. 20년 동안 길들인 작업환경 안에서 우리는 기술자로서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죠. 평면 안에 실을 새겨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는 건 이제 자유자재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걸 느껴요. 이태원 옆 보광동에 폴리텍대학이 있잖아요. 기술 가르치는 학교에 사람이 제법 늘었더라고요. 우리가 수십 년 했던 손자수의 가치도 높아지는 거죠.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작업에 나선 국일사 디자이너들
ⓒfrice

이종희 우리가 디자인한 결과를 손님이 마주했을 때, 그분들이 리액션을 한단 말이죠. 기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맡긴 자수가 자기한테 어떤 의미인지. 우리한테 신나서 말해줘요. 사람이 뭘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짜릿하잖아요. 소통하는 재미도 있고요. 아날로그의 매력이라 생각해요. 손님은 원하는 걸 내게 가져오고. 나는 디자인을 완성하고. 손님은 행복하고. 그뿐이죠.

기술 전수를 진지하게 고민하실 거 같아요.

이병수 저희가 이 일 배울 때만 해도 자수 기술자가 천대받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젠 기술 가진 보람이 있고 자부심도 있어요. 자식들도 다 손자수 하나로 키웠고요. 올해 자수 배우고 싶다는 젊은 사람이 국일사를 찾아왔어요. 반갑긴 한데 일단 셋이 쓰긴 좁은 곳이잖아요. 그리고 우리 머신을 내 줄 순 없어서 일단 돌려보냈어요. 배우겠다는 사람도 재봉틀을 구해야하고, 우리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죠.

이종희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우리한테 용기를 줘요. 우리는 그냥 만날 하는 일인데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해보라고 하거나 지역축제에 초대해서 재봉틀로 공개 자수 작업을 해달라고 불러요. 속는 셈 치고 따라가면, 대부분 우리를 존중하고 즐거워하거든요. 여태까지 너무 이태원에서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냈나 싶네.(웃음)

이제 다들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가치’를 추구하고 살아요. 그래서 우리 손자수 기술이 지금 세상에 더 어울리는 기술이 아닐까 싶어요.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환영해요. 잘 가르치고 싶어요.

frice 로고를 즉석에서 자수로 디자인하는 이종희 님
눈으로 쓱 보고 만드는 솜씨는 가히 장인의 경지다

😈 이 날, 이미지로만 보여드린 프라이스 로고를 보시고 이종희님은 즉석에서 펜으로 슥슥 밑그림을 그리고 자수를 놓아주셨어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옮기는 일은 많은 집중력과 관찰력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보고 그린 러프 스케치 위에 자수를 직접 놓는 장면은 좀처럼 볼 기회가 없었는데 정말 정교하고 빠르시더라고요!

국일사의 사장님들은 본인들을 기술자라고 하셨지만, 일평생 재봉틀과 한몸이 되어 작업을 해오신 모습이 장인의 경지라고 느껴졌어요. 요즘은 일도, 머무는 곳도 자주 옮기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는데요.

여러분은 일평생 하나의 직업을 가져야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그 일을 수십년 동안 같은 동네에서 하게 된다면 어떤 감정이 들 것 같나요?

관점에 관여하다

뷰티 브랜드 팝업의 VMD를 손보는 유인성 디자이너
뷰티 브랜드 팝업 쇼룸 설치현장에서 만난 유인성 디자이너
뷰티 브랜드 팝업 쇼룸 설치현장에서 만난 유인성 디자이너 ⓒfrice

안녕하세요 인성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디자인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지 16년 차인 브랜드 디자이너입니다. 그래픽, 패션, 리조트, 브랜드 에이전시, 건설, 부동산 개발 회사 등을 거쳤는데요. 창작과 라이프 스타일에 관여된 디자인 프로젝트가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공간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프로젝트를 열심히 했죠. 지금은 공간 디자인을 포함한 브랜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 맡았던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네이버에서 UXDP라는 채용 프로그램을 열었어요. 2010년대 전후 디자이너 지망생 사이에서 인기였던 인턴십으로 기억해요. 연수원에 인턴을 11일 정도 합숙시키고 경쟁형 도전과제를 내요. 일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죠. 저는 UXDP 참여를 마치고 브랜드팀에 배치됐어요. 그 당시 네이버는 디자인 조직을 크게 ‘브랜드/BX/UX’로 나눴죠. 브랜드팀은 네이버의 브랜드 전략과 각종 서비스를 관리했습니다. 저는 일부 서비스의 선행 개발에 참여했어요.

‘브랜드 경험Brand Experience’도 디자인하시는데요.
지금은 상식처럼 여겨지는 일이지만, 당시 한국에선 낯선 개념이었어요.

제가 입사했던 2000년대 후반, 디자이너 사이에 본격적으로 언급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이직하며 맡았던 실무가 브랜드 경험(BX) 디자인이어서 적응하며 조금씩 눈 떴던 거 같아요. 네이버를 떠나고 JOH.를 6년 정도 다녔습니다. 동료들이 이미 BX나 브랜딩이라는 개념을 실무에 접목시켜 대중적으로 전파하는 리더들이기도 했어요. 덕분에 빨리 깨우쳤죠.

유인성 디자이너의 디자인 노트. 아이디어 구상은 빈 종이에 간단한 썸네일을 그리는데서 출발한다
유인성 디자이너의 디자인 노트. 아이디어 구상은 빈 종이에 간단한 썸네일을 그리는데서 출발한다. ⓒfrice

브랜드 경험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이론서에 따르면

‘브랜드 경험은 정체성, 시각요소, 세계관 같은 걸 따로 설계하고
그것을 사용자가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끔 연결하는 디자인 작업이다.’

라고 정리됩니다. 설명 자체가 너무 추상적입니다.(웃음)

실무를 잡더라도 딱 떨어지는 공식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라 생각해요.(웃음) 브랜드 경험 디자인은 단순한 비주얼 디자인이 아닙니다. 상품이나 서비스가 가진 장점을 살리고, 그것을 좋아 보이게 만드는 일이죠. 이왕이면 브랜드에 얽힌 사람들이 서로 좋은 자극을 받고, 상호 유익한 도움이 이뤄지도록 판을 설계하는 게 핵심입니다. 저는 고객이 브랜드와 서비스를 만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느끼는지 궁금해요. 브랜드를 만난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반응하는 지점이 궁금해서 계속 브랜드 디자인에 ‘관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관여’라는 단어가 인상적입니다. 브랜드에 어떤식으로 관여하게 되나요?

먼저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에 관여합니다. 브랜드와 클라이언트가 우리를 찾는 이유를 알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죠. 페이퍼워크를 통해 의뢰인에게 프리젠테이션을 꾸준히 펼치는 식으로 방향성을 정하는 단계가 선행됩니다. 그다음에 시각화visualization 단계를 거치는데요. 디자이너는 이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온갖 업무에 관여되는 듯 합니다.

앞서 말한 업무를 끝내고 본격적인 디자인 단계로 넘어가면 종이나 컴퓨터 화면 같은 2D 표면에 컬러와 도형을 조합해 그래픽과 더불어 다양한 콘텐츠를 구현합니다.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분석하고, 시각요소를 위한 기획이나 전략을 만들어요. 이 과정에서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을 배치하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인테리어 프로젝트에서 가구가 키 요소라면 적합한 가구를 찾고, 영상 제작이 필요하면 영상전문가를 찾아내 일정을 주도적으로 짜요. 인력섭외와 일정관리는 브랜드 경험을 디자인하는 사람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시각요소에 개입하는 디자이너의 업무를 설명하기 위해 아카이브 노트를 펼친 유인성 디자이너
시각요소에 개입하는 디자이너의 업무를 설명하기 위해 아카이브 노트를 펼친 유인성 디자이너 ⓒfrice

또한 브랜드를 경험할 고객을 위한 공간에 관여합니다. 만약 오프라인 이벤트가 열린다면, 고객이 방문하는 공간에 세부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건 디자이너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가와 팀을 이루고, 목표달성을 위해 프로젝트를 발전시켜요. 자신감과 책임감을 갖고 건축 전문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세부사항을 조정하는 거죠.


직무를 브랜드 디자이너라고 소개하셨는데,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다양한 일을 수행하셨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시작은 그래픽에 관여하는 것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일하더라도 브랜드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계속 깔려있었어요. 대림처럼 부동산 개발과 얽힌 조직에서 근무했을 땐 디벨로퍼의 관점을 익혔어요. 공간을 기획하고 이름을 붙이고, 그런 공간이 도시 안에서 어떤 기능과 콘텐츠를 가진 플랫폼이 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는 일을 했습니다.

두 번째 직장이었던 JOH.의 조직문화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JOH.는 대외적으로 『매거진 B』를 만드는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건축부터 F&B까지 각 분야별 전문팀이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요.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주받으면 팀 별로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업무를 수행해요. 하나의 프로젝트도 다양한 카테고리에 걸쳐져 종합적으로 전개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저도 여러 업무에 관여했습니다.

본업인 디자인 에이전시 업무 외에도 『매거진 B』의 콘텐츠 제작에 일부 관여했다는 유인성 디자이너의 노트를 구경할 수 있었다
본업인 디자인 에이전시 업무 외에도 『매거진 B』의 콘텐츠 제작에 일부 관여했다는 유인성 디자이너의 노트를 구경할 수 있었다. ⓒfrice
유인성 디자이너는 당시 협업이 브랜드 경험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시각 콘텐츠로 바꿔보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유인성 디자이너는 당시 협업이 브랜드 경험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시각 콘텐츠로 바꿔보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frice
B's Cut의 촬영 시안. 각 호마다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할 제품을 골라 스튜디오에서 촬영한다. 디자이너는 사진작가에게 요청할 연출법을 시각화해서 전달한다
B’s Cut의 촬영 시안. 각 호마다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할 제품을 골라 스튜디오에서 촬영한다. 디자이너는 사진작가에게 요청할 연출법을 시각화해서 전달한다. ⓒfrice

브랜드 디자이너의 일은 장기간에 걸쳐 있는데다, 비가시적인 성과가 더 많습니다.
디자이너의 업무능력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관점’과 ‘방향성’이 브랜드 디자이너의 무기라고 생각해요. 두 가지가 참 중요해요.

좋은 ‘관점’과 ‘방향성’을 잡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하시나요?

극초반 아이디어 구상은 메모로 하는 편입니다. 레퍼런스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인데요. 브랜드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워낙 레퍼런스를 많이 쥐고 있어요. “A브랜드가 B콘셉트로 팝업스토어 연다더라.” “C는 D에서 F를 시도했는데 흥행했다더라.” 온갖 정보가 귀에 들어와요.

그런 레퍼런스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핵심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메모에 담은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애써요.

개인적으로는 핀터레스트를 주의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AI까지 가세했어요. 트렌드를 스타일로 구분하고 순위를 매기는 서비스가 등장했고 유저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오픈소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죠. ‘이런 데이터 분석의 결과값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건가?’ 유행에 몸을 맡기는 현대 디자인 트렌드에도 조금은 경계심을 갖고 있어요.

지금 한국에서 전문 조직이 브랜드를 설계하는 경우, 데이터 기반 오픈소스툴 활용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디자인 업무를 수월하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어요. 좋은 툴입니다. 좋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하라는 거죠. 정서적인 심상과 문제 해결을 위한 직관, 그리고 리서치 데이터를 접목시키는 건 디자이너의 역량이니까요. 이 세상이 점점 더 자극적이고 더 화려하고 더 시끄러운 곳으로 끌려가고 있어요. 데이터 분석에 의한 알고리즘이 알게 모르게 실무에 반영된다는 걸 의식하고, 좀 더 순간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거죠.

레퍼런스를 떠나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그 안에 담긴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레퍼런스를 떠나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그 안에 담긴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frice

브랜드에 관여하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관점을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관점 하나로는 결국 한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디자인은 결국 추상과 실제를 연결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모순적인 가치를 양립시키며 진전되는 사례도 빈번하죠. 브랜드가 추구하는 사업적인 가치를 따지려면 이성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 테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남기 위해서는 동시에 정서적인 관점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유인성 디자이너가 기록한 토론 자료.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1~2주 간격으로 클라이언트 미팅에 필요한 PT작업에 나선다고 한다
유인성 디자이너가 기록한 토론 자료.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1~2주 간격으로 클라이언트 미팅에 필요한 PT작업에 나선다고 한다. ⓒfrice

그래서 저는 프로젝트 초반에 클라이언트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좀 더 많이 듣고, 더 알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고 나서 어떤 직감이나 심상 같은 걸 놓치지 않고 디자인 솔루션과 연결을 합니다. 이건 직관 내지는 본능. 정서적인 측면이죠.

이게 경영전략같은 이성적인 측면과 결합이 잘 되면 좋은 브랜드 디자인이 태어나는 건데요. 성공적인 프로젝트는 기능과 정서의 연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연결에서 나온다고 봐요.

전문가로 활약하려면 디자인 솔루션을 여러가지 패턴으로 쥐고 있어야겠네요.

‘깃발 세우기’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예쁜 것과 좋은 것을 분류하고, 그것을 남들보다 먼저 얘기해서 명분을 선점하는 방법을 써요. 현상을 분석하고 거기서 얻어낸 직관을 연결하면서 실천가능한 디자인 프로젝트로 개발시킵니다.

저는 ‘경청’을 선호합니다. 가능하다면 일단 남들보다 더 많이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일단 클라이언트의 입장을 다 듣고, 레퍼런스를 검토하며 아는 게 많아질수록 관점이 다양해져요. 관점이 다양해지면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도 다양해집니다. a와 b만 만족시키지 않는 솔루션, 이질적인 c, d, e가 있어도 추진이 가능한 솔루션이 등장하는 거죠. 만약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완전히 틀어지더라도 나중에 계속 디자인을 이어나갈 수 있는 근거와 독특한 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브랜드 디자인의 초기작업은 기획/전략 구상이여서 실무자와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친다는 설명을 보탰다
브랜드 디자인의 초기작업은 기획/전략 구상이여서 실무자와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친다는 설명을 보탰다.ⓒfrice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가장 희열을 느낀 순간은 언제입니까?

열심히 고민한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수용됐을 때입니다. 이제 브랜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된 거 같아요.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은 생각보다 힘이 세거든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이미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어요. 이미 누군가가 설계해둔 디자인에 의해서 말이죠.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디자인은 이미 스며들었다. 당신의 선택지는 사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결정됐다.」

이런 정의를 내릴 수 있을만큼요.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 이론을 이해하고 실제 사례를 접하다보면 남들이 만든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와 대중 모두가 브랜드 디자인을 비판적으로 의식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앞으로도 브랜드의 무언가를 관여하며 디자인할 텐데요. 쉽게 타인에게 휩쓸리지 않는 건강한 취향이 제게도 필요하고, 브랜드 디자인에 영향을 받을 분들에게도 이런 능동적인 태도가 중요할 겁니다. 누군가의 브랜드 디자인을 거스르려는 안간 힘이! 제가 여태까지 했거나, 앞으로 할 디자인에 반영됐으면 합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to be continued…😎

😈 여러분은 자신의 직업에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신가요? 비슷한 일을 하는 업계동료와 직업의 의미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 경험을 전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유인성 디자이너의 노하우가 담긴 기획 노트를 볼 수 있는 건 커다란 행운이었어요. 1부는 브랜드 디자이너의 관점을 살펴봤는데요. 이어지는 2부에서는 관점이 실제로 구현된 공간을 소개합니다. 보다 깊은 디자인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2부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