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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벽지를 수집하다

고사테 강동수님이 수집한 한국의 벽지들

프라이스는 한국을 수집하는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살펴보니 자신의 관점으로 한국의 모습을 수집하는 다양한 수집가가 있었어요. 그중 한옥 리모델링 일기를 쓰는 수집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눈길을 끈 건 한옥 리모델링 과정에서 나오는 벽지를 아카이빙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프라이스는 곧장 첫 수집가를 만나기 위해 광주광역시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의 벽지를 수집하는 강동수님을 만났어요. 광주 구도심의 2층 창고에 들어가 깊은 세월이 묻어있는 종이 냄새를 맡으며 수집가의 아카이브를 살펴보았습니다. 서랍 안에는 제각각의 이름과 사연으로 수집된 벽지가 있었고 이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는데요. 벽지의 사연을 들으니, 문화가 보였습니다.

광주광역시에서 아내와 함께 한국의 벽지를 수집하는 강동수님의 프로필 이미지
강동수님은 광주광역시에서 아내와 함께 한국의 벽지를 수집한다. ⓒfrice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한옥 목수 강동수입니다. 한옥에서 발견한 벽지를 수집합니다. 수집품으로 고사테(GOSATE)라는 벽지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고사테는 ‘골목길에’라는 뜻이고, 순우리말 ‘골목’을 의미하는 ‘고샅’에서 가져온 이름입니다.

1946년작 강진 한옥 사랑방 내부. 다양한 패턴 벽지들이 온전히 남아있었다
1946년작 강진 한옥 사랑방 내부. 다양한 패턴 벽지들이 온전히 남아있었다. ⓒgosate

한국의 벽지를 모은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수집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2022년에 전라남도 보성에서 고택 한옥을 리모델링했어요. 당시 사랑방 철거하면서 프랑스풍 벽지를 발견했는데, 철거할 때만 해도 옛날 벽지를 별생각 없이 갖고 있었죠. 한옥 수리 현장에서 나온 땔감으로 캠프파이어를 하는데, 종이 무더기에서 특이한 벽지들이 떨어져 나오더라고요.

강동수님의 한국 벽지 아카이브 공간에 놓인 옛날 벽지들. 종이를 분리하는데 쓰는 도구가 놓여있다
1946년작 강진 한옥 사랑방 내부. 다양한 패턴 벽지들이 온전히 남아있었다. ⓒgosate

아내가 프랑스인인데 종이를 유심히 보더니, “사랑방에서 나온 벽지가 단순한 땔감은 아닌 것 같다.”라고 해서 불을 끄고 다시 살폈어요. 타고 남은 걸 모아 내용물을 확인해 보니, 다 사연 있고 가치 있는 종이들이었습니다. 그 뒤로 한옥 리모델링 현장에서 나온 벽지는 따로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발견된 원본 벽지와 복원 벽지. 러시아 동방정교식 십자가 패턴과 만주-중국 영향을 받은 모란 패턴은 전형적인 러시아-만주 영향권에서 탄생한 벽지 패턴이다. 고사테는 '러시아-만주-조선 3문화 교류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 설명한다. 이 패턴 디자인에 강동수님은 재호(jaeho)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대에 있을 법한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게 고사테의 패턴 벽지 작명법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frice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 발견된 원본 벽지와 복원 벽지. 러시아 동방정교식 십자가 패턴과 만주-중국 영향을 받은 모란 패턴은 전형적인 러시아-만주 영향권에서 탄생한 벽지 패턴이다. 고사테는 ‘러시아-만주-조선 3문화 교류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 설명한다. 이 패턴 디자인에 강동수님은 재호(jaeho)라는 이름을 붙였다. 당대에 있을 법한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게 고사테의 패턴 벽지 작명법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frice

TALK1. 나는 왜 벽지를 수집하는가

수집할 때 어떤 걸 가장 신경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역사적 맥락을 가장 신경 씁니다. 한국은 서양과 달리 벽지를 덧바르는데요. 덧바른 벽지 레이어에 역사적 맥락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벽지를 덧바른 이유는 건축 구조에서 찾을 수 있어요. 서양식 건축에서는 단단한 벽에 벽지를 붙이기 때문에 종이를 덧붙이지 않고 떼는 것이 쉬운 편입니다. 한옥에는 기둥 사이에 ‘인방(引枋)*’이라는 틀이 있는데, 이 틀과 기둥 사이가 벽이 되고, 여기에 대나무 등살을 댄 후 흙과 마감재로 미장을 하여 벽을 완성합니다. 벽지를 떼면 흙더미도 함께 벗겨지기 때문에 벽지를 제거하지 않고 덧발랐어요. 또한, 벽지를 덧바르면 단열 효과가 있어 실용적인 이유도 함께 작용했습니다.

* 인방(引枋) 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르는 가로재를 말한다. 즉 기둥을 상중하에서 잡아주는 역할을 하며 여러 기둥을 일체화시켜 횡력을 견디게 하는 구조적인 역할을 한다. (참고 : 전통문화포털)

토벽(土壁)을 짓는 모습. 토벽은 우리나라 전통 주택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된 벽체 방식이다. 토벽 기둥 중간에 '인방(引枋)'이라 부르는 가로재를 끼워 넣는다
토벽(土壁)을 짓는 모습. 토벽은 우리나라 전통 주택 가운데 가장 널리 사용된 벽체 방식이다. 토벽 기둥 중간에 ‘인방(引枋)’이라 부르는 가로재를 끼워 넣는다. ⓒ한옥학교
리모델링을 마친 광주의 도시형 한옥 
내부 모습. 새하얀 벽면을 받치는 인방과 기둥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리모델링을 마친 광주의 도시형 한옥 외부 모습. 새하얀 벽면을 받치는 인방과 기둥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리모델링을 마친 광주의 도시형 한옥 모습. 새하얀 벽면을 받치는 인방과 기둥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frice

그래서 한국 전통 가옥에서 발견되는 벽지는 집의 역사나 시간의 흐름을 증언하는 거죠. 벽지를 걷어내면 그 뒤에 신문지, 그림을 그렸던 종이, 서예를 연습한 종이가 레이어로 남아있어요. 말 그대로 짬뽕이고 벽지 아카이빙이 흥미로운 이유입니다. 한옥에서 나온 벽지를 수집하다 보면 문헌학적 가치가 많은 사료들이 나와요.

서울 원서동 한옥 기둥에 남아있는 패턴 벽지와 초배지. TV프로그램 방영표가 적힌 신문지는 집의 역사를 짐작하게 만든다. ⓒfrice

우리는 종이를 벽에만 발랐던 게 아닙니다. 가구에도 종이를 발랐고. 함에도 종이를 발라 썼습니다. 예쁘게 싸 발라야 하는 물건에는 패턴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함은 조선시대에 보통 오색지를 오려 붙여 문양을 내곤 했는데요. 인쇄 기술 발전으로 근대 이후로는 벽지처럼 잉크로 찍어낸, 문양이 있는 종이를 바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맥락을 해치지 않고, 최대한 발굴된 모습을 보존하면서 한국 전통 가옥의 벽지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강동수님이 한옥 철거 현장에서 발굴한 1950년대식 지함(紙函)의 정면사진. 조선식 오색지함 전통을 따르는 공산품이다. 당시 프린팅 기술과 잉크 퀄리티, 디자인 양식을 짐작할 수 있다
강동수님이 한옥 철거 현장에서 발굴한 1950년대식 지함(紙函)의 태극문양 패턴. 조선식 오색지함 전통을 따르는 공산품이다. 당시 프린팅 기술과 잉크 퀄리티, 디자인 양식을 짐작할 수 있다
강동수님이 한옥 철거 현장에서 발굴한 1950년대식 지함(紙函). 조선식 오색지함 전통을 따르는 공산품이다. 당시 프린팅 기술과 잉크 퀄리티, 디자인 양식을 짐작할 수 있다. ⓒfrice
오색지함을 열면 나타나는 식물덩굴 무늬 종이. 함을 열면 패턴 벽지가 덧발려 있다. 귀중품을 보관하는 상자에도 종이를 덧발랐던 한국인의 관습을 추측해 볼 수 있다
함을 열면 패턴 벽지가 덧발려 있다. 귀중품을 보관하는 상자에도 종이를 덧발랐던 한국인의 관습을 추측해 볼 수 있다. ⓒfrice

수집하고 기록한 것 중에서 디자인적으로 의미 있는 것을 골라 소개해 주시겠어요?

고사테에서 ‘점순’이라는 이름을 붙인 1950년대 디자인 벽지입니다. 1945년에 지은 강화도 흥왕리의 근대 한옥에서 발견했어요.

강동수님이 직접 도배한 '점순' 패턴 벽지. 복합문화공간인 강화도 흥왕리 마니산방에서 만날 수 있다
강동수님이 직접 도배한 ‘점순’ 패턴 벽지. 복합문화공간인 강화도 흥왕리 마니산방에서 만날 수 있다. ⓒfrice

패턴 벽지에 보라색이 도는데 이건 우리가 예전에 썼던 만년필 잉크색과 비슷합니다. 약간 보랏빛이 번지는 검은색인데요, 원본 벽지는 재현 벽지보다 색이 좀 더 쨍한 편입니다. 당시 시대상에 맞춰 디자인한 패턴 벽지입니다.

1950년대는 해방과 전쟁이 이어지며 물자가 부족했던 시기인 데다 국제 교류가 꽤 오래 단절되면서 수입됐던 물자를 우리나라에서 직접 생산해야 하는 시절이었어요. 본보기가 되는 패턴 벽지는 이미 있으니까 따라 만들면 되는데 벽지 만드는 데 쓸 잉크 같은 소모품이 많이 모자랐던 거죠.

1950년대 한국산 벽지는 전반적으로 색채가 옅고 색 사용 자체가 적다는 게 특징입니다. 패턴 모양도 다른 시대에 비하면 단순하고 간결한 편이에요.

디자인 패턴 벽지와 함께 발굴된 '농민주보' 신문지 일부. '우리 말을 배우자'는 기사 제목과 글 내용을 근거로 해방 이후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디자인 패턴 벽지와 함께 발굴된 <농민주보> 신문지 일부. ‘우리 말을 배우자’는 기사 제목과 글 내용을 근거로 해방 이후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다.  ⓒfrice

패턴 벽지 뒤 초배지로 쓰인 신문지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어요. <농민주보>는 해방 후 첫 겨울, 미군정에서 발행한 책이었어요. 심지어 <농민주보>는 창간호였고, 창간호는 국내 최초로 발견된 자료입니다. 함께 발굴된 <황민일보>는 일제가 식민지 사람을 전쟁으로 내모는 프로파간다 신문이었죠.

둘 다 혼란한 시대상을 증언해 줄 역사적 사료인데 이 종이들이 어떤 사연으로 이 집 벽지가 됐는지 궁금해집니다. 서로 다른 시기가 해방 이후에 한 집에 잠들게 됐다는 게 굉장히 강력해서 저는 강화도 흥왕리 한옥에서 발굴된 벽지에 마음이 많이 가네요.

한옥 건물 벽에 고이 잠들어있던 초배지. 종이에 담긴 사연이 많아 보인다. 제일 앞의 일장기에 태극무늬를 그려넣은 흔적이 선명하다
한옥 건물 벽에 고이 잠들어있던 초배지. 종이에 담긴 사연이 많아 보인다. 제일 앞의 일장기에 태극무늬를 그려넣은 흔적이 선명하다. ⓒfrice

시대상을 보여주는 수집품이 많습니다. 다른 것도 소개해 주시겠어요?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꾼 거 보이시죠? 이건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교과서입니다. 초배지로 쓰였어요. 전시에 발행된 식민지 시대 학습자료죠. 앞으로 일본이 한국 벽지 문화에 미친 영향을 더 연구하고 싶어요.

당시 일제 재벌기업인 미쓰비시에 벽지 사업부가 있었더라고요. 제 추측입니다만, 그 당시에 벽지를 바르는 일은 일본에서는 대중적인 인테리어는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벽지는 소위 말하는 화식(和式), 혹은 고위층 서양식 건축물에나 적용되었죠. 일본은 전통 목조가옥에 우리나라처럼 벽지를 바르는 경우는 드물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한옥 방에 서양식 패턴 벽지를 바르는 우리나라가 어떤 면에서는 개방적인 거죠.

벽지를 미쓰비시 같은 대기업에서 따로 조선에 유통할 정도였고, 벽지의 일본 직수입도 있었습니다. 일본 직수입은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에게 팔기 위해 만든 것, 조선인 소비자를 고려하고 만든 것이라는 게 벽지를 수집하면서 얻은 저의 가설입니다. 돈 내는 사람 있으면 디자인은 다 그쪽으로 따라가니까요.

TALK2. 벽지를 기록하는 방식

한옥에서 발굴한 패턴 벽지를 수집하는 공간
한옥에서 발굴한 패턴 벽지를 수집하는 공간 ⓒfrice

이런 소중한 수집품을 어디에 어떻게 보관하는지 궁금합니다.

거주지인 광주에 아카이브 공간을 마련하고, 수집한 벽지는 전용 선반에 따로 보관합니다. 선반에 발굴 현장 지역명을 붙여두고, 박리를 마친 원본 벽지를 다시 레이어로 구분 지어 보관합니다.

수집된 벽지는 캐비닛에 라벨을 붙여 지역 별로 구분 짓는다
수집된 벽지는 캐비닛에 라벨을 붙여 지역 별로 구분 짓는다ⓒfrice

처음에는 레이어 구분을 마친 벽지 위에 또 다른 벽지를 얹는 식으로 보관했어요. 점점 꺼내 쓰기 불편해져서 가로 2,440mm, 세로 1,220mm 나무 합판으로 장을 따로 짰습니다. 시중에는 마땅한 게 없어서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슬라이드 선반을 15층으로 구성했고 트레이 2개 조가 양옆으로 열리는 구조입니다.

발굴된 벽지를 순서대로 포갠 뒤 넓게 펼친 모습
발굴된 벽지를 순서대로 포갠 뒤 넓게 펼친 모습 ⓒfrice

중요한 건 초배지와 벽지를 한 몸으로 여긴다는 점인데요. 발굴 현장에서 종이가 벽에 붙어있던 시간 순서대로 묶어 세트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초배지랑 패턴 벽지를 따로 분류하지 않아요. 초배지와 벽지에 담긴 역사적 맥락이나 시대적 배경이 중요해서 이를 하나로 보고 보관하는 거죠.

초배지로 사용된 주한미군의 한국건축물 관리대장. 해방 직후에는 중요한 서류였으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공문서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그 이후 도배용 종이로 사용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초배지로 사용된 주한미군의 한국건축물 관리대장. 해방 직후에는 중요한 서류였으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공문서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그 이후 도배용 종이로 사용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frice

예컨대 이 초배지는 1950년대 미군정에서 발행한 건축물대장입니다. 한국식 건물인지 서양식 건물인지 타입을 구분하려는 내용이 담겨있어요. 일본식 집인지 한국식 집인지. 방은 몇 개인지. 공간을 뭐라고 불러서 구분했는지. 집을 보는 개념이나 분류 기준까지 담겨있어요. 역사적 가치를 갖고 있는 거죠.

이런 걸 나란히 발견된 패턴 벽지랑 같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패턴 벽지는 가끔 제조사가 확인되는 경우가 있어요. 국산인지 수입산인지, 국산이라면 무궁화표인지 백조표 벽지인지 구분 지어주는 단서입니다. 단서를 쫓아가면서 벽지의 제작 시기를 알아내곤 합니다.

스캔을 마친 원본 벽지를 확대해 패턴을 따는 모습. 디자인 툴은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을 주로 이용한다는 설명
스캔을 마친 원본 벽지를 확대해 패턴을 따는 모습. 디자인 툴은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을 주로 이용한다는 설명. ⓒgosate

현장에서 발굴한 벽지 뭉텅이는 보관실 창고 구석에 둡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박리 작업을 진행하고, 박리를 마치면 디지털 스캔과 동영상 촬영을 진행합니다. 아카이빙을 무사히 마친 원본 벽지는 다시 보관용 나무 장에 넣어둡니다.

TALK3. 벽지를 모으며 배운 것

동수님이 수집한 한국의 벽지는 오늘날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살았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저는 한국의 벽지 문화가 한국적인 생활양식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은 해외에서 유입된 새로운 디자인은 빠르게 흡수하지만, 규격이나 쓰임새는 관습을 따라가는 편인 것 같아요.

송학도가 그려진 패턴 벽지. 왼쪽은 고사테에서 복원한 벽지 샘플. 오른쪽은 한옥 철거 현장에서 발굴한 원본 벽지
송학도가 그려진 패턴 벽지. 왼쪽은 고사테에서 복원한 벽지 샘플. 오른쪽은 한옥 철거 현장에서 발굴한 원본 벽지. ⓒfrice
복원 벽지 위에 원본 벽지를 나란히 포갰다. 복원을 마친 디자인 벽지의 그래픽은 복각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원본 패턴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었다
복원 벽지 위에 원본 벽지를 나란히 포갰다. 복원을 마친 디자인 벽지의 그래픽은 복각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원본 패턴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었다. ⓒfrice

벽지로 보자면, ‘종이 규격’이 적절한 예시입니다. 한옥에서 발굴된 서양식 패턴을 지닌 벽지의 규격이 한지 규격을 따라가요. 서양식 패턴 벽지가 직수입됐다고 상상해 보면, 아마 50cm 간격의 롤 벽지였을 거예요. 그런데 옛 한옥에 붙인 서양식 벽지는 조선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전통 종이의 규격으로 잘랐던 흔적이 있어요. 아마 당시 건축 기술자들이 벽지를 하나하나 직사각형으로 잘라서 썼던 거 같아요.

이건 영상기록으로 확인이 가능해요.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1941년에 발표한 기록 영상이 있습니다. 제목은 ‘온돌’인데요. 서울 북촌이나 서촌으로 짐작되는 한옥에서 방을 꾸미는 장면이 나와요. 거기서 문양이 새겨진 패턴 벽지와 네모난 벽지 모습이 확인됩니다. 제가 한옥 철거하면서 확인한 바로는 네모난 벽지를 나름대로 규격에 맞춰 재단하고, 방 크기에 맞춰 바둑판처럼 이어서 붙였던 거 같아요. 철사로 종이 끝을 꼬집거나 얇은 각목에 대어가며 조금씩 이어붙이는데. 그게 벽 전체에 그리드(grid)를 만드는 식이죠.

고사테 강동수 대표가 복원한 벽지를 설치한 강화도 마니산방의 실내모습. 이 방에 바른 벽지는 이 집에서 발굴된 것이다
고사테 강동수 대표가 복원한 벽지를 설치한 강화도 마니산방. 이 방에 바른 벽지는 이 집에서 발굴된 것이다. ⓒfrice
강화 마니산방의 패턴벽지 발굴흔적. 20세기의 벽지를 복원해 바르고, 그 원본을 보관해놓은 자리가 인상적이다
20세기의 벽지를 복원해 바르고, 그 원본을 보관해놓은 자리가 인상적이다. ⓒfrice

그리고 벽지 문화는 온돌 문화의 영향을 받습니다. 벽지는 방 단위로 난방하는 우리 주거생활과 연관되거든요. 한국 전통 가옥은 서양식 집과 비교했을 때, 층고가 낮은 편이에요. 여기에 온돌로 달궈진 방에 벽지를 여러 겹 발라 단열효과를 최대한으로 높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벽지를 쓰는 건 거의 우리나라가 유일한 거죠.

이런 식으로 한국 사람들이 살았던 공간에서 종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맥락을 추적해 보면 한국 주거 환경의 특수성까지 볼 수 있어요. 벽지라는 디자인 결과뿐만 아니라 벽지가 그 건물 벽에 부착된 과정,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배경. 저는 이런 것들이 대단히 한국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 집 벽에 붙어 있던 건 어쩌면 ‘한국인의 무의식’ 아니었을까요? 실내 장식을 위한 종이에서 우리의 오래된 관습을 발견하고, 수집품의 제작 배경이나 당시 쓰임새를 추적하려는 수집가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강동수님이 모은 20세기 패턴 벽지는 단순한 수집에 그치지 않고, 실내 인테리어 벽지라는 새로운 디자인 프로젝트로 나아가고 있는데요. 문화적 맥락을 복원하려는 디자이너의 의지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고사테는 복원을 마친 벽지로 샘플 북을 만들었어요. 원한다면 수집가의 수집품을 전시 도록처럼 소장할 수 있습니다. 샘플 북은 열람도 가능한데요! 추천장소는 서울 합정동 콩크(CONCSEOUL). 디자이너를 위한 메트리얼 라이브러리에서 콩크의 벽지 도록을 직접 감상해보세요!

<👉 고사테 패턴 벽지 샘플 북 보러가기 >

<👉 콩크(CONC) 고사테 복원벽지 시공사례 보러가기 >

‘그들은 왜 한국을 수집할까?’ 프라이스가 발견한 한국의 수집가들. #K-ollectors #수집가들

오늘의 한지를 말하다

동양한지 박창완님이 한지를 꺼내는 모습
동양한지 박창완님을 담아낸 커버 이미지
동양한지 박창완님 ⓒfrice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한지를 연구하고 만들고 판매하는 박창완입니다. 경기도 김포에 한지 소재연구소를 만들었는데요. 염색이나 후가공을 거친 특수한지를 다양하게 생산하고 있어요. 저는 한지의 현대적인 쓸모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렇게 작업한 한지들은 인사동 동양한지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부친을 도와 남동생과 한지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01. 왜 인사동에 한지 가게가 몰려있을까?

부친께서 인사동 한지 전문가로 유명한 박성만 선생님이시죠.

맞습니다. 저는 교육학을 공부했어요. 대학원에서는 한지가 아니라 학생 인권을 공부했었죠.(웃음) 인사동에서 한지 가게를 운영하시던 부친께서 한지 업계로 들어오라고 저를 설득하셨습니다. 한지의 가치를 높이고 맥을 이을 사람이 절실하다고요.

동양한지에 전시된 한지공예품 샘플과 판매중인 종이들
동양한지에 전시된 한지공예품 샘플과 판매중인 종이들 ⓒfrice

2009년부터 한지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를 위해 미술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국내 한지 장인을 만나 사례 분석과 제작 기법을 정리할 수 있었죠. 대학원에서 했던 학술 연구는 큰 힘이 됐습니다. 지금은 문화재 복원용 한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인사동 동양한지는 50년 넘게 운영중입니다. 언제 어떻게 시작됐나요?

전주에서 할아버님이 일제강점기 때 한지를 만들어 파셨고, 부친께서는 유통에 힘쓰셨어요. 부친은 1968년에 서울 인사동으로 들어와 1972년부터 한지 가게를 여셨죠. 동양한지라는 이름은 그때부터 쓰기 시작한 이름입니다. 예전에는 인사동이 명동 예술거리의 배후지역이라고 해요. 전성기에는 인사동에 종이를 다루는 지업사만 40여 곳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1982년생인데 인사동 한지 가게 아들이다 보니 이 동네에서 많은 것을 지켜보며 자랐습니다.

계동에서 남산을 향해 바라본 도심(1982). 낙원상가를 중심으로 옛날 인사동 풍경이 보인다
계동에서 남산을 향해 바라본 도심(1982). 낙원상가를 중심으로 옛날 인사동 풍경이 보인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 80년대 후반, 동양한지는 조계사 옆에 있었어요. 매장도 지금의 2배쯤 됐죠. 한지를 배송하는 차량만 8대였어요. 한지 뜨는 장인을 따로 모셔 매장에서 한지를 생산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사동 거리에서 바라본 동양한지
인사동 거리에서 바라본 동양한지 ⓒfrice

옛날 인사동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나요?

부친 말씀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인사동은 안국동에서부터 인사동으로 내려오는 길 가운데에 실개천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중심으로 골동품 매장이 있었죠. 아침이 되면 골동품을 수집한 리어카가 다녔다고 전해져요. 병풍을 수리하거나 족자를 꾸미는 표구사가 늘어나면서 부자재를 취급하는 필방, 지업사가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상권이 만들어지면서 ‘전통문화의 거리’가 된 거죠.

창완님의 기억에서 인사동은 어떤 풍경입니까?

제가 기억하는 건 ‘1990년대 인사동’입니다. 어린 시절 제 기억에도, 종로 골목에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아저씨들이 엄청 많았습니다. 리어카에 실려있는 건 북촌이나 서촌의 한옥집에서 나온 물건들이었어요. 당시 토박이 주민이 집터를 허물고 새 집을 짓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집에서 벽지로 썼던 종이라거나 집 어딘가에 방치된 족자 같은 게 리어카에 실린 채 인사동을 떠도는 거죠.

1975년 8월 서울 명동 서울은행 본점 앞을 지나는 리어카 꾼들
1975년 8월 서울 명동 서울은행 본점 앞을 지나는 리어카 꾼들 ⓒ공유마당

리어카꾼이 “XX동에서 철거하다 나온 물건인데 필요하면 살래요?”라고 말을 붙이면서 인사동 가게를 돌아다녔어요. 그런 물건이 임자를 만나면 미술품이 되는 거였죠. 안목이 있는 분들은 거기서 문화재급 생활 도구를 건지기도 하셨어요.

“고서나 고미술품을 구하려면 인사동에 가야 한다”라는 소문 같은 게 생기고 실제로 인사동에서 그런 물건을 쥐고 계신 분들이 머무르는 거죠. 전통문화의 거리라는 인사동의 이미지는 당시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임대료 문제도 있고 외국인 관광객 대상 상권이 되면서 떠나는 분들도 계시지만요.

말씀대로 인사동 거리를 걷다 보면, 예술거리보다는 관광지로 동네 역할이 바뀌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시대의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는 거죠. 한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통에 기반한 문화는 실생활과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고, 전통기술이 쓰이는 곳도 점점 사라지고 있거든요. 한지 가게도 많이 줄었어요.


동양한지에서 보관중인 한지들 닥나무 섬유가 인상적이다
ⓒfrice

02. 한지란 무엇인가?

한지는 정확히 어떤 종이입니까?

한지는 ‘닥나무 섬유를 떠서 손으로 만든 종이’를 통칭합니다. 한지[韓紙]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건 1958년 ‘대한민국 통계연감’인데요. 그전에는 닥나무 저[楮]에 종이 지[紙]를 써서 ‘저지’라 불렀어요. 전통한지는 닥나무를 비롯한 종이용 나무가 자라면 따로 수확을 해요. 나무결을 손으로 벗겨내 잿물에 삶고, 섬유를 모아 그것을 방망이로 두들겼죠.

미색 한지를 포개 접사용 특수렌즈로 촬영했다
ⓒfrice

화학적으로 보면 닥나무 섬유를 ‘수소 결합’해서 만든 종이입니다. 산도가 적은 중성지고요. 중성지는 산성과 알칼리성을 띄는 일반 종이보다 수명이 길어요. 그래서 천년을 간다는 거죠. 원료인 닥나무의 생장 환경, 한지를 만드는 그 날의 날씨, 장인의 컨디션, 원료의 처리 과정 등의 조합을 거쳐 한 장의 한지가 태어납니다.

한지를 한국에서 만들어야만 한지인가요?

원칙적으로는 「한국에서 자란 닥나무 섬유를 원료로, 한국 고유의 초지 기법인 외발뜨기 기법을 사용하여, 장인이 만든 수제 종이」를 얘기해야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한지의 범위를 「사람이 닥나무 섬유를 초지 기법으로 만든 종이」로 보는 게 옳다고 봅니다. 지금은 기계로 만들거나 손으로 만든 한지의 구분이 없어져 있어서 고민이네요.

최근 2~3년 사이에 닥나무 재배와 수확이 어려워지고, 인력난이나 비용 증가로 전통방식이나 제작 환경을 지키기 힘들어졌죠. 현실적인 이유로 한지의 범위는 느슨해졌습니다. 오늘날 한지 업계에서는 수입산 닥나무를 사용해 한국에서 만드는 것도, 한국에서 만들지는 않아도 닥나무 섬유로 만든 종이도, 기계로 만드는 것도 다 한지라 부르고 있어요. 「닥나무 섬유를 이용한 종이」로 범위가 넓어진 거죠.

참고로 해외에서도 한지와 비슷한 물성을 지닌 전통 종이를 생산합니다. 일본에서는 화지(和紙), 중국은 선지(宣紙)라고 부르죠.

전통한지 제작을 위해 닥나무 겉껍질을 벗겨 건조하는 모습
전통한지 제작을 위해 닥나무 겉껍질을 벗겨 건조하는 모습 ⓒ동양한지

특히 한. 중. 일 3국이 공통적으로 닥나무 섬유질로 종이를 만들어요. 종이 만드는 기술은 각 나라별 지역, 환경적 차이로 기법이 나뉘게 됐습니다. 제작 기법의 차이는 닥나무 섬유질 배열에 영향을 주는데요. 이것이 닥나무 섬유를 이용한 종이에 질적 차이를 나타냅니다. 한국 전통한지의 경우, 발틀에 턱을 없애고 닥나무 섬유가 사방으로 자유롭게 배열될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박창완님이 한국 전통 외발뜨기하는 모습. 발틀에 턱이 없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박창완님이 한국 전통 외발뜨기하는 모습. 발틀에 턱이 없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동양한지

전통방식을 고증한 한지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전통한지는 제작 공정을 현대화시킨 한지와 비교하면 광택, 질감, 냄새 같은 게 더 좋아요. 한지 장인의 공방 같은 곳을 가면 그 집에서만 나는 나무냄새 같은 게 있거든요. 그런 자연스러움이 전통한지에 깃들어있어요. 한지 특유의 옅은 풀냄새는 사람 기분을 좋게 만들어요. 종이 자체가 뿜어내는 매력일 텐데요. 종이를 다루는 사람에게 마음의 안식을 줍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는 한지가 ‘쉼을 주는 종이’라고 생각합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한지에서 인상적인 질감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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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가장 우수한 한지는 무엇인가요?

제 기준으로는 ‘미색 외발지’입니다. 오늘날 한지는 여러 가지 색을 지니고 있지만, 한지 속 섬유질이 파괴되지 않은 상태로, 닥나무가 지닌 색감을 드러내는 건 ‘미색’이라 생각합니다. ’외발지’는 외발뜨기라는 기법으로 만든 한지를 뜻해요. 종이를 뜰 때 닥나무 섬유를 넓게 펼치는 판을 ‘발’이라고 하는데요. 천장에 줄 하나만 매달아서 전후좌우로 흔들고, 풀려 있는 닥나무 섬유를 물에서 거르는 기법을 ‘외발뜨기’라 부릅니다.

미색 외발지를 쌓아 측면에서 바라봤다. 종이 모서리의 섬유질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
미색 외발지를 쌓아 측면에서 바라봤다. 종이 모서리의 섬유질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아름답다. ⓒfrice

많은 분들이 「하얀색 한지가 좋은 한지냐?」라고 물어보세요. 표면이 깨끗하니 좋은 물건이라고 여기시는 거죠. 오히려 하얀색 한지는 약품 처리를 강하게 해야 하거든요. 결과적으로 닥나무 섬유질이 상하기 때문에 질 자체는 미색 한지보다 조금 떨어집니다.


동양한지에서 온 손님이 회화용 한지를 문의하는 모습. 어떤 목적으로 방문했는지 물었다.
“저희는 고려대학교 한국화회 부원인데요. 동양화 그리기에 적합한 한지를 구하러 왔어요.”
동양한지에서 온 손님이 회화용 한지를 문의하는 모습. 어떤 목적으로 방문했는지 물었다.
“저희는 고려대학교 한국화회 부원인데요. 동양화 그리기에 적합한 한지를 구하러 왔어요.” ⓒfrice

오늘날 한지는 ‘누가, 왜’ 쓰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회화 분야에서는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한지는 기계로 만든 종이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지만, 한지만의 발색이 있기에 수요가 있습니다.

서양화가 류영신의 추상화 연작. 한지의 닥나무 섬유를 소재로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한다.
서양화가 류영신의 추상화 연작. 한지의 닥나무 섬유를 소재로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한다. ⓒADAGP

한지의 물성을 디자인에 활용하려는 수요도 있어요. 한지는 원료인 닥나무의 섬유를 *고해하는 시간에 따라, **물질을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서 서로 다른 질감이 나타납니다.

2023년 북촌한지문화센터에 전시된 한지조명장치
2023년 북촌한지문화센터에 전시된 한지조명장치 ⓒstudio.sunnykim
닥나무 섬유가 구름 위를 떠다니는 용을 닮아서 '운용지雲龍紙'라 부른다. 동양한지는 운용지를 조명장치에 쓰기에 적합한 한지로 추천한다
닥나무 섬유가 구름 위를 떠다니는 용을 닮아서 ‘운용지雲龍紙’라 부른다. 동양한지는 운용지를 조명장치에 쓰기에 적합한 한지로 추천한다. ⓒfrice

조명 연출에 적합한 소재로는 ‘운용지(雲龍紙)’가 있어요. 섬유를 덜 갈아서 종이 속에 실타래 같은 게 떠있는 한지인데요. 종이를 빛에 비추었을 때 닥나무 섬유로 표현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유리창에 붙이면 햇빛을 가리는 용도로 적합한 한지도 있어요. 텍스처감이 몽글몽글한 ‘구름지’같은 한지를 고를 수 있겠습니다.

측면에서 내려다 본 한지 뭉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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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테두리는 데클 엣지(Deckle edge)라 부르는 자연스러운 보풀이 있어요. 이처럼 한지의 물성을 다양한 목적을 갖고 활용하려는 분들이 한지를 들고 가서 실험하고 계십니다. 업계에 몸담으며 점점 한지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디자인적 실험이 참 소중한 흐름이라 생각해요.

(…2부에서 계속…)

😈 동양한지는 취재하러 갔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추천받아서 알게 됐어요. 한지가 필요하면 동양한지를 간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죠. 인사동의 수많은 종이 가게 중 디자이너가 관심을 갖고 들르는 곳이라면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란 짐작이 들었습니다.

인사동의 옛 모습부터 한지에 대한 전문가 지식까지 유익한 정보를 채집할 수 있었는데요. ‘한국의 종이’ 한지,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