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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가르다 세월을 여몄네

공방 앞에서 작품을 들고 바라보는 박옥경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 박옥경님
ⓒfrice

나는 1.5세대 작가입니다.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공예는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종교 건축 인테리어가 대부분이던 1세대와 상업공간 인테리어가 급부상한 2세대 사이에 있어요. 2010년 이후부터 젊은 사람들의 소비패턴을 이해하고 그들을 상대로 사업을 해야 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저부터 젊어야겠죠.

이제 작품 제작을 위해 미팅을 가지면, 담당자 대부분이 30~40대 초반인데요. 예전과 비교하면 현장에서 쓰는 언어도, 그들이 표현하려는 이미지도 젊다고 느낍니다.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 박옥경님의 2000년대 초 업무사진
ⓒ박옥경

시작은 2003년입니다. 저는 교회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는 회사에서 5~6년 근무했는데요. 일하면서 *베벨드 기법을 쓴 작품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스테인드글라스는 교회나 성당의 장식물이었어요. 제작법도 극소수만 알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도 어깨너머로 배워가며 일해야 했죠.

개신교회는 시트지에 성화를 새겨달라는 주문이 많았는데요. 드물게 스테인드글라스를 주문하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시트는 너무 저렴해 보이고 수명이 오래가지 않으니, 스테인드글라스를 발주하는 거였죠. 가톨릭 성당은 주로 유학 다녀오신 분들이 맡았습니다. 해외유학 다녀온 수녀님이나 신부님이 제작법을 배워와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드셨어요.

베벨드 기법을 활용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사례
베벨드 기법을 활용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사례 ⓒ박옥경

꿈이 생겼습니다. 일반 건축물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접목시키고 싶었어요. 2009년에 회사를 떠나 독립을 했는데, 당시 국내에서 잘 쓰지 않는 새로운 유리를 수입했어요. 디자인 시안도 다시 짰죠. 새로운 유행이 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업을 다녔어요. 점점 발주처를 확장했는데, 서울 강남이나 도시개발이 한창이던 경기도 분당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요청이 들어왔죠.

일반 가정이나 상업 공간에 들어가는 스테인드글라스 수요가 아예 없진 않았어요. 2000년대 전후는 주택이나 아파트 중문에 들어가는 유리창이 인기가 많았는데요. 저는 베벨드 기법과 색유리를 배합하는 유리창 제작에 나섰죠. 종교 건축과 일반 건축에서 오는 의뢰를 병행하면서 창작을 이어 갔어요.


유리공방과 카페를 같이 해볼까?

2011년 일이네요. 일반 건축물에 조금씩 스테인드글라스 인테리어를 보급하는 중에 악재가 터졌어요.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가 발표됐거든요. 건축에 들어가는 예산이 통째로 줄어드니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장식용 인테리어부터 없던 일이 됐습니다. 당시 스테인드글라스 인테리어를 요청하던 아파트 공사현장 수요가 많아서 뼈아픈 일이었어요. 신축 아파트를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워 넣는다는 오랜 꿈은 잠시 접게 됐습니다.

특수유리 계통이다 보니 그래도 발주는 조금씩 들어와서 회사는 운영할 수 있었어요. 경기침체가 생각보다 오래가니 버티기 힘들었죠. 뾰족한 개성이 없는 회사들은 유지가 어려웠습니다. 사업을 접는 업체가 서서히 늘어났어요. 저도 가지고 있던 재산을 지키기가 어려웠지만, 좋아하는 일이라 포기할 순 없었어요. 첫 번째 돌파구로 *숍인숍을 기획했습니다. 같은 건물에 카페와 아틀리에를 동시에 운영하는 일이었죠.

영등포 양평동에 연 숍인숍 스테인드글라스공방. 작업실과 카페를 동시에 운영했다
영등포 양평동에 연 숍인숍 스테인드글라스공방. 작업실과 카페를 동시에 운영했다. ⓒ박옥경

당시 국내에선 생소했지만, 일본은 창작자가 팀 단위로 사업체를 꾸리는 일이 많았습니다. 카페나 식당을 병행하는 공예작가가 있었죠. 한국도 일본처럼 곧 숍인숍 형식의 공방사업이 커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시작했는데요.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 이른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2010년대 초는 지금처럼 골목 속에 숨겨진 가게를 인스타그램으로 보고 찾아가는 시대는 아니었네요. 그래도 왜 이런 공간을 만들었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이따금 벤치마킹을 하러 많이 왔었어요.

영등포 양평동으로 공방 이사를 감행했습니다. 다른 유리공장이나 외주업체에서 발주를 넘겨받은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했어요. 동시에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죠. 공간을 나눠서 일부는 카페로 꾸몄습니다. 바깥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면 카페, 거기서 안쪽으로 한 번 더 문을 열고 들어오면 공방. 손님이 유리공예를 지켜볼 수 있는 작업공간이죠.

팩토리가 아니라 아틀리에.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작업현장이 아니라 예쁘고 쾌적한 공간을 만듭니다. 차도 마시고 작업도 할 수 있는 공간. 나만의 감성을 드러내는 작업장, 분위기 있는 장소를 만들려는 시도였어요.

손님들은 카페인 줄 알고 들렀다 스테인드글라스라는 낯선 소재를 신기하게 여겨요. 시간이 더 지나면, 손님들이 창업하는 가게에 인테리어로 써보고 싶다고 주문을 하더군요. 대중친화적인 공간에서 만난 손님이 때때로 작품 의뢰를 요청하는 클라이언트로 변신해요. 이는 제가 불황을 견딜 수 있던 힘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공예의 새로운 흐름입니다. 일반인도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만드는 거죠.

색연필로 스케치한 스테인드글라스 아이디어
색연필로 스케치한 스테인드글라스 아이디어 ⓒ박옥경

‘디자인’의 힘

수익은 크지 않았지만 숍인숍 사업을 하던 2010년대 초반은 디자인의 힘을 느꼈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색다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디자인의 가치를 인정하는 시대가 열렸어요.

새로운 인테리어 소재를 써보려고 하는 건축사 사무실, 인테리어 업체에서 발주가 늘었습니다. 시대가 바뀌며 스테인드글라스의 영역이 종교건축뿐만 아니라 상업이나 일반건축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겁니다.

이 시기부터 클라이언트에게 디자인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발주에 큰 영향을 차지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조형을 제안하기 힘들었던 회사부터 위기가 찾아오는 걸 실감했죠. 2010년까지만 해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디자이너를 정직원으로 채용한 회사가 거의 없었어요. 시각디자인을 할만한 인재도 없었으니까요. 필요하면 디자이너를 프리랜서로 고용해 오더를 받는 분위기였죠.

프로그램을 활용해 제작된 도안. 사용될 유리의 텍스처나 컬러를 실제에 가깝게 보여줄 수 있다.
프로그램을 활용해 제작된 도안. 사용될 유리의 텍스처나 컬러를 실제에 가깝게 보여줄 수 있다. ⓒ박옥경

우리는 가업승계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컴퓨터 다루는 게 능숙했던 아들 덕을 봤습니다. 고등학생 때 스테인드글라스 시안을 종이에 옮겨보라고 권유했는데, 아들은 컴퓨터로 작업을 해서 시안을 뚝딱 만들더군요. 지금은 회사 대표이자 메인 디자이너인 박진영입니다.

“아들의 이 재능은 누굴 닮은 걸까?”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故박치성 화가가 있습니다. 인천에서 평생 그림만을 고집하며 작업했던 사람. 아들 진영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화실에서 생활하며 그림을 접하는 생활을 했거든요. 거기에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제 영향이 얹히지 않았을까요? 스테인드글라스를 시작한 나 때문에 아들도 잠재력을 스테인드글라스에 쏟기 시작했습니다. 가업승계는 우리 가족의 운명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테인드글라스 2D 도안과 제작을 마친 유리창
스테인드글라스 2D 도안과 제작을 마친 유리창 ⓒ박옥경

너는 내 운명

2010년대 불황은 길었습니다. 작업공들이 다른 일을 찾아 하나둘 그만두는 사례가 늘어났습니다. 호황일 땐 제작팀, 시공팀, 디자인팀으로 나눠서 여러 명의 직원을 두기도 했었습니다. 불황 끝에 작업이력이 있는 중견 작업자들이 벌이를 위해 이직한 상태여서 결국 인력난을 실감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분야에서 디자인으로 승부를 보기로 한 만큼, 취지를 이해할 수 있는 젊은 인재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작업현장
왼쪽부터 박진영 작가, 박옥경 작가, 남한울 작가
왼쪽부터 박진영 작가, 박옥경 작가, 남한울 작가 ⓒfrice

인터넷에 스테인드글라스 교육공지를 올렸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스테인드글라스 수업에 회화과를 나온 미대생이 찾아왔어요. 지금은 며느리가 된 남한울 작가죠. 이것도 참 인연이네요. 손발이 착착 맞았던 수강생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아들 박진영과 셋이서 팀이 됐습니다. 업체에서 받은 오더를 해내느라 자정까지 작업하는 일이 부지기수지요. 새로 시작한 회사인 양 열심을 다했던 나날입니다.


디자이너의 역할 : 의심↓ 확신 ↑

디자인을 강화하고 젊은 피를 수혈하니, 경쟁력이 생겼습니다. 특히 컴퓨터 시안이 큰 힘이 됐어요. 당시만 해도 많은 업체가 시안을 손으로 그려서 색연필이나 컬러 사인펜으로 그려서 의뢰인에 보여줬어요. 수작업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시연이 훨씬 디자인의 폭을 넓힌다는 걸 실감했어요.

“우리는 컴퓨터까지 활용해서 시각디자인의 완성도를 추구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디자이너의 역할은 의뢰인이 원하는 디자인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인 거죠. 파트너에게 신뢰감을 주는 게 우선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업장이나 건축물에 설치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려주는 것도 중요해요.

상업공간 스테인드글라스 시안과 실제 제작 사례
상업공간 스테인드글라스 시안과 실제 제작 사례 ⓒ진영글라스

스테인드글라스 업계가 젊어지고 있습니다. 점점 젊은 업체 대표나 젊은 담당자를 만나는 일이 늘고 있어요. 그들이 원하는 디자인 니즈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들이 생각 못 한 것을 역제안했을 때 자부심을 느낍니다.

오늘날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은 예견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현장에서 시안이 구현될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힘이죠. “생각도 못 했던 기발한 곳에 설치 됐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디자인을 하신다면, 분명 훌륭한 작업을 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사명감을 갖고 유리공예를 더 크게 키울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색다를 것. 고유할 것. 독특할 것.

요즘 젊은 사람들이 찾는 실내 인테리어의 세 가지 특징입니다. 디자인을 더한 스테인드글라스는 그래서 수요가 늘고 있는 듯해요. 젊은 사람들한테 저변이 확대되는 게 신기해요. 변화의 한복판에서 젊은 창작자에 다양한 경험을 전수해 주고 싶습니다. 당장 공방 식구부터요.

직원 모두가 너무나 자기 몫을 잘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오래오래 감각 있는 창작자로 활동하도록 도와야죠. 늘 그래왔듯, 최선을 다해 나아가고 싶습니다. 일선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를 원하는 분들을 위해 저도 성심을 다해 작업하고 있어요. 경험을 전하고 싶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 내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될 때. 인생선배의 경험담은 큰 힘이 됩니다. 세대와 세대를 잇는 여성창작자의 기억에서 공예작가이자 사업가, 엄마이자 선생님이기도 했던 모습을 발견합니다. 위기를 극복하려 했던 절실함, 살며 배운 것을 나누려는 다정함. 여러분에게도 작가가 움켜쥐려 했던 마음이 닿기를 바랍니다.

서울과 부산, 그리고 인천으로 떠난 종교 스테인드글라스 탐방기

부산 남천동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한국 최대 규모로 알려져있다

신성하거나 신선하거나

스테인드글라스. 뜻을 풀자면 ’색유리‘요, 스타카토처럼 통통 튀다 부드럽게 펼쳐지는 일곱 글자에 이토록 신성한 이미지를 심어준 건 중세시대 유럽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신의 존재를 투영하기에 딱 좋은 매체였을 것이다. 모든 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이어지던 시절이었고, 오래전부터 빛은 곧 신을 상징했으며 창틀에 박힌 스테인드글라스는 시시각각 다른 감도로 빛났으니까.

그러나 대표 이미지를 갖는다는 건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줄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독 강하게 박힌 종교미술의 이미지 앞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사람도 딱 한 가지 면만 지니지 않는데 스테인드글라스라고 다를까? 만약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또 무엇이 보일까? 예술과 디자인이라는 필터를 쥐고 경부선을 넘나든 짧은 여행은 그런 사소한 물음표에서 시작되었다.

서울, 가재울 성당

경의중앙선 신촌역과 디지털미디어시티역 사이, 홍제천이 한때 모래내라는 이름으로 흘렀던 가좌역. 4번 출구로 나와 모래내시장을 지나고 헨젤과 그레텔 속 빵 부스러기처럼 늘어선 가로수를 따라 걷는다. 첫 번째 목적지는 낮고 오래된 건물들이 길쭉길쭉한 아파트 단지로 변해가는 풍경 속에 숨어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 통창으로 유명한 가재울 성당.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385-5에 위치한 가재울 성당의 외관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385-5에 위치한 가재울 성당 ⓒfrice

여기가 맞아? 솔직히 말하자면 첫인상은 그랬다. 회색빛 십자가가 아니었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만큼 외관이 담백했다. 남가좌동을 휩쓴 뉴타운 재개발의 결과물이었다. 1971년에 설립된 본당이 허물어진 후 2014년 문을 열었다는 가재울 성당은 주변을 둘러싼 아파트며 주민센터에 위화감 없이 스며들었다. 자고로 스테인드글라스란 클래식한 건축물에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어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되었지만, 반전은 2층에서 시작됐다.

가재울 성당 2층에 들어서면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마주한다
가재울 성당 2층에 들어서면 거대한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마주한다 ⓒfrice

고요한 복도 저 편에서 빛나는 유리화와 그 아래 웅덩이처럼 고인 빛그림자. 누구에게나 유년 시절의 아이콘 같은 만화영화가 하나쯤 있다. 내 경우엔 ‘미녀와 야수’였다. 비가 쏟아지는 밤, 초라한 행색의 노파를 내쫓아버린 왕자와 그의 차가운 심장에 저주를 건 마녀. 알록달록 유리화로 펼쳐지는 프롤로그는 어린 눈에도 아주 낭만적이었다.

장미꽃같은 빨간 동그라미는 예수의 심장을 의미한다
붉은 유리가 푸른 유리와 대비되며 인상적인 심볼로 다가온다
장미꽃같은 빨간 동그라미는 예수의 심장을 의미한다 ⓒfrice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 장면이 되살아났다. 저 멀리 노랗고 파란 유리 조각들이 회오리치며 우주를 이루고 있었다. 국내 최초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인 고(故) 이남규의 ‘예수 성심’(1988)이었다. 재개발 전까지 본당을 지키다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작품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할 만큼 거대했고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듯 반짝였다. 울퉁불퉁 깨진 유리들이 두꺼운 단면 안쪽으로 말간 바다를 품고 있었다. 장미꽃이라고 생각했던 빨간 동그라미가 예수의 심장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가재울 성당의 물고기 모양 스테인드글라스는 설치미술가 오순미 작 (2014). 가재가 많아 붙여졌다는 가재울 명칭과 모래내에서 영감을 받았다. 거대한 물고기는 구원을 상징하며 유리 전체의 작은 격자들은 신자 개개인을 나타내는 모래를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가재울 성당의 물고기 모양 스테인드글라스는 설치미술가 오순미 작 (2014). 가재가 많아 붙여졌다는 가재울 명칭과 모래내에서 영감을 받았다. 거대한 물고기는 구원을 상징하며 유리 전체의 작은 격자들은 신자 개개인을 나타내는 모래를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사진 frice, 참고 가톨릭 굿뉴스

하지만 이곳이 유명한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2층과 3층을 아우르는 대성전 오른편, 모래알 같은 격자무늬 위로 부드럽게 헤엄치는 물고기 형상. 설치미술가 오순미와 건물 설계 단계부터 논의했다는 무지갯빛 창문이다. ‘모래내’와 ‘가재울’에서 영감받았다는 창문은 모티프에 충실했다. 화려한 밑그림도 장식도 없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거기에는 푸르스름한 새벽녘, 노랗게 물든 한낮, 뉘엿뉘엿 저무는 해질녘까지 다양한 시간대가 깃들어 있었다. 어느 쪽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짤막한 시차가 생겨났다. 다른 것 없이도 색감이 곧 장식이었다.

노랗게 물든 한낮을 닮은 스테인드글라스 해질녘 오후의 시간이 공존한다
푸르스름한 새벽을 닮은 스테인드글라스. 해질녘 오후의 시간이 공존한다
푸르스름한 새벽과 노랗게 물든 한낮, 해질녘 오후의 시간이 공존한다 ⓒfrice

스테인드글라스의 세계를 제대로 마주한 건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오후 세 시를 넘기자 불현듯 햇빛이 스며들었다. 유리에 새겨진 숨결을 따라 물그림자 같은 흔적이 드리워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스테인드글라스란 단순히 색유리의 개념이 아니라는걸.

창문을 통과한 빛과 거기서 퍼져 나오는 그림자, 화창한 장조와 싱거운 단조가 만들어내는 리듬,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공간이 오묘한 빛깔 속으로 천천히 잠겨 들었다.


남천성당의 기울어진 형태는 배의 돛 모양을 닮았다. 항구도시 부산을 염두에 둔 것. 오른편의 열쇠모양 종탑은 천국의 열쇠를 들고 하늘로 향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다
남천성당의 기울어진 형태는 배의 돛 모양을 닮았다. 항구도시 부산을 염두에 둔 것. 오른편의 열쇠모양 종탑은 천국의 열쇠를 들고 하늘로 향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을 표현한다. ⓒ사진frice, 참고_부산일보

부산, 남천성당

서울에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길은 조금 길었다. 아침부터 부산행 열차를 타고 한참을 달린 후 캐리어를 끄는 여행자들과 심드렁한 얼굴의 주민들이 뒤섞인 마을버스에 실려 덜컹덜컹. 3시간 남짓의 여정 끝에 드디어 ‘샤’ 모양 건물을 만났다. 잘라낸 케이크 같은 삼각형 옆으로 열쇠 모양 종탑이 세워진 풍경, 부산의 남천성당이었다.

부산 남천동 성당 내부
ⓒfrice

이곳의 시그니처는 45도 기울어진 벽면의 안쪽이다. 길이 53m에 높이 42m인 유리화로 온통 뒤덮여 있기 때문이다.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라는 유리화는 한평생 사제와 미술가를 넘나든 조광호 신부의 작품이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시인과 화가를 꿈꿨으며 미(美)를 곧 진리라 여긴다는 70대 신부가 탐구한 아름다움은 어떤 모습일까.

부산 남천동 성당 내부. 한국 최대 규모 스테인드글라스 아트워크를 만날 수 있다
한국 최대 규모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된 부산 남천성당
한국 최대 규모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된 부산 남천성당 ⓒfrice

들어서자마자 평화였다. 창문 가장자리를 타고 구석구석 쏟아져 내리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반대편 벽 위로 어룽거리는 빛, 빛, 빛. 숫자와 단위로 읽었을 때는 알 수 없던 공간감이 눈앞에 펼쳐졌다. 기도하는 마음에는 주일이 없다는 듯 몇몇 신자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기다란 의자 위로 빛무리가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유리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후 소성과정을 거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유리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후 소성과정을 거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조광호 신부의 작품이다
유리에 유약으로 그림을 그린 후 소성과정을 거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는 조광호 신부의 작품이다 ⓒfrice

평일 오후였고 온통 침묵이었다. 기획부터 제작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는 유리화는 추상화와 구상화를 합쳐놓은 듯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뽐냈다.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동그라미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는 동안 아래쪽으로 성경 속 인물들이 또렷하게 나타나는 식이었다. 어떤 선은 비 갠 하늘처럼 선명했고, 또 어떤 선은 붓질 대신 페인트를 뿌렸던 잭슨 폴록의 것처럼 거칠었다. 어제 만들어졌다고 해도 믿을 만큼 맑고 생생한데 1995년작이라니, 새삼 스테인드글라스는 한번 만들어지면 처음의 빛깔과 형태 그대로 천 년을 간다는 말이 실감 났다.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로 427번길 15에 위치한 부산 남천성당. 의자 위로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이 떨어지고 있다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로 427번길 15에 위치한 부산 남천성당 ⓒfrice

머무는 내내 따라붙은 건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앞에서 기도하고 사색하고 젖어들었을까. 하릴없이 겸허해지는 모든 순간이 여기에 녹아있다 생각하니 경건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작가에게 묻고 싶었다. 유리를 자르고 달구고 조각조각 맞춰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느냐고.

나오는 길에는 맨 뒷자리에 앉아 기도를 했다. 사실 기도라기보다는 소원을 비는 쪽에 더 가까웠지만, 평소 들춰보지 않던 이야기들이 나도 모르게 툭툭 튀어나왔다. 어쩌면 종교란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어떤 초월적 순간이 아닐까, 불현듯 그런 문장이 머릿속을 스쳤다. 빛은 여전히 창문 아래로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인천, 강화 동검도 채플

마지막 목적지는 강화도 남동쪽의 작은 섬 동검도였다. 면적 1.6㎢에 불과한 그곳에 조광호 신부의 또 다른 작품이 있다고 했다. 마음이 춥던 유학 시절, 알프스의 어느 작은 채플에서 얻었던 위로가 지어올린 곳.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7평짜리 영혼의 쉼터.

인천 강화군 길상면 동검길 114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
인천 강화군 길상면 동검길 114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 ⓒfrice

인천 강화군 길상면 동검길 114에 위치한 자그마한 건물 ⓒfrice

갯벌을 지나 도착한 예배당은 ‘주인 없는 집’이라는 소개말답게 텅 비어 있었다. 이따금 트럭이며 자동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도로 옆쪽이었다. 벽면과 천장을 가로지르는 십자가만이 이곳이 기도하고 명상하는 곳이라는 걸 알려주었다.

양 문에 우주가 빼곡하다
양 문에 우주가 빼곡하다 ⓒfrice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성당이라는 이곳은 성인 다섯 명쯤 누우면 꽉 찰 만큼 좁았다. 그렇지만 정면 가득한 통창으로 갯벌이 훤히 내다보였고, 출입문에는 칸칸이 우주가 그려져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작지만 그 이면은 훨씬 넓은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온 공간이 외치는 듯했다. 무엇보다 벽면마다 자리 잡은 스테인드글라스. 해가 뜨고 질 때마다 매끈한 삼각형과 길쭉한 사각형과 늘어진 오각형을 따라 충만하게 물들 모습이 눈에 선했다.

강화도의 자연이 창 밖으로 보인다
실내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창 밖 예수십자가 상과 나란히 우뚝 서있다
ⓒfrice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쉽게도 구름 낀 날이었다. 빛이 들지 않는 스테인드글라스는 늘 환하게 웃던 사람이 미소를 지우고 보여주는 민낯 같았다. 음악이라면 무대 위에서 홀로 주목받는 독주가 아니라 다양한 악기들이 모여 이루는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빛의 예술이라는 건 빛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유리의 맨얼굴로는 무엇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까? 살펴본 적 없던 물음표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름다움과 실용성 사이, 우리가 몰랐던 스테인드 글라스

인간은 아름다움에 접근함으로써 본래의 인간이 된다고 했다.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지만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던 스테인드글라스를 마주하면서 그 문장을 자주 더듬어 보았다.

감정을 건드리는 것이 예술이라면 스테인드글라스는 가장 순수한 예술이었다. 그 앞에 서는 건 광활한 자연 앞에 서는 순간 같았다. 저항할 힘조차 없이 압도되는 것, 잠시 할 말을 잊게 되는 것. 바깥에서 스며드는 빛에 사로잡혀 있자면 안쪽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인간에게 빛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대체 무엇이 담겨있기에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걸까 생각하기를 여러 번.

빛을 통과시킨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의 아름다운 모습
ⓒfrice

그렇게 말랑한 순간들 사이로 실용적인 선택지가 불쑥 튀어나왔다. 혁신적일 것, 아름다울 것, 기능을 이해하기 쉬울 것, 오래 지속될 것, 환경친화적일 것, 최소한의 디자인으로만 이루어질 것.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 디터 람스가 일찍이 세운 ‘좋은 디자인의 원칙’이 거기에 녹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쓸모를 따지지 않는 작품에서 존재 이유가 확실한 제품으로 얼굴빛을 바꿨다. 요청하는 이 없이도 자라나는 이야기에서 들어주는 이가 있기에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되었다. 아름다움과 실용성이라는 관점을 쥐고 떠났으나 그런 분류 기준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품은 가능성을 너무 오래 몰라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빈티지 소품이나 상업 공간 속 장식 요소 등으로 점차 친숙해지고 있지만 그것이 스쳐가는 트렌드인지 본질적인 확장인지는 알 수 없는 요즘, 이 영롱한 색유리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아 새로운 물꼬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이유다. 심미적인 아름다움과 효율적인 실용성이야말로 각자의 자리에서 인류를 구원해 온 요소니까. 물론 이건 아주 개인적인 시선의 끝, 그 앞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무엇을 보게 될지 궁금해진다.

나는 상업예술을 긍정한다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쓸 유리를 고르는 박진영 디자이너
진영글라스의 스테인드글라스 아트워크

둥근 스테인드글라스를 <라이언킹>의 갓 태어난 아기 사자처럼 번쩍 드니, 비스듬히 기울어진 색유리에 햇볕이 쏟아진다. 울퉁불퉁한 판유리에서 신비로운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한낮의 햇살이 빳빳한 코튼 셔츠 위에 드리웠다. 셔츠에 비친 색이 알록달록 곱다. 독특한 질감을 지닌 유리를 골라 선과 경계를 만드는 사람. 유리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는 사람.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를 만나러 서울 합정동 유리공방을 방문했다.


스테인드 글라스 디자이너 박진영
ⓒfrice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진영글라스 @jyglass 대표 박진영입니다. 서울 합정동에서 5인조 유리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요사업은 색유리를 잘라 붙이는 스테인드글라스 외주요청작업인데요. 저는 제작일정조정과 도면설계를 담당합니다. 개인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의 대중화에 관심이 많아요. 최근 종교건축시설 뿐만 아니라 상업공간에서 제작의뢰가 늘어서 기쁜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스테인드글라스가 요즘 국내 레스토랑이나 패션브랜드 쇼룸에서 대유행입니다.

최근 상업공간을 운영하는 분들이 공간 디테일에 완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건축/실내 인테리어 투자도 늘어나고 있어요.

패션 브랜드 새터에 납품될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제작중이다
스테인드글라스 설계도면에 맞춰 유리를 자르고 땜질을 진행한다
ⓒfrice

지금 작업은 어떤 의뢰인가요?

가로 3m, 세로 1m 사이즈의 창문입니다. 패션 브랜드 ‘새터SATUR’가 의뢰했어요. 꽃병이나 아트포스터가 진열된 성수동 쇼룸에 설치되는데요. 창이 크게 난 건물이라 작품 스케일도 웅장합니다(웃음) 햇볕이 초록 유리와 노란 유리를 통과하면 실내에 빛이 은은하게 퍼질 텐데, 볕이 워낙 잘 드는 곳이라 설치를 기대하고 있어요.

클라이언트마다 요구하는 게 다를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어떤가요?

개인적인 의견이라 조심스럽지만, 이전에는 해외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하는데 그쳤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내가 이번 업장을 A브랜드처럼 만들고 싶으니까. 설치작품을 A와 비슷하게 하자.”라는 식입니다.

지금은 “내가 A현장을 B라는 콘셉트를 담아 디자인하고 싶으니까 스테인드글라스는 C기법을 쓰자.”라는 구체적인 의견이 나와요.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수행하는 메이커 입장에선 반가운 변화입니다. 창의적인 디자인을 구상하는 게 수월해졌어요.

박진영 디자이너는 제작과정에서 '도안설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박진영 디자이너는 제작과정에서 ‘도안설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frice 

구체적인 디자인 프로세스가 궁금하네요.

공방마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저는 도안설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0순위 작업이죠.

1단계는 백지에 선을 그려요. 어떤 유리를 어떤 크기로 자를지 미리 결정하는 작업이죠. 15년 동안 수 천장의 도면을 직접 그렸습니다. 많이 그릴 땐 1년에 200장 쯤 그렸네요. 같은 시안을 규모만 다르게 해서 그리기도 하는데, 틈날때 마다 계속 도안을 짜는 편입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한국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하면, 의뢰주가 완성을 재촉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작자 입장에서 납품이 불가능할 정도로 급박한 시한이 주어지거든요.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만(웃음) 덕분에 노하우가 생기는 건 사실입니다.

‘시간 절약’과 ‘퀄리티 준수는 서로 대립하는 가치잖아요. 음식에 비유하면 저의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은 냉동음식이죠. 적합한 때를 골라 해동시켜 요리하는 셈일텐데요. 미리 디자인에 신경 쓰면 두 가지를 어떻게든 잡을 수 있어요.

도안설계는 드로잉과 그래픽 프로그램 작업을 병행하며 완성시킨다.
도안설계는 드로잉과 그래픽 프로그램 작업을 병행하며 완성시킨다. ⓒfrice

가장 중요한 작업은 무엇입니까?

도안설계가 50%. 유리를 자르고 붙이는 작업이 나머지 40%. 설치가 10%를 차지합니다. 이건 업체마다 다를 겁니다.

설계가 중요한 이유는 작업특성 때문이에요. 유리는 자르는 순간 다시 되돌릴 수 없잖아요. 이유 없이 잘리는 유리는 단 하나도 없어야 해요. 도안에 따른 사전설계는 절대적입니다. 제가 색유리 공예를 견습으로 도울 때만 해도 아무 생각 없었어요. ‘되는 대로 그냥’ 했죠. 선도 마구잡이로 썼었죠.(웃음)

지금은 선을 쓸 때 머릿속에 구상이 이미 그려져 있어요. 작품 구상을 각오하고 백지를 보면, 희미한 점선 같은 게 보이는데요. 그걸 따라 그리는 느낌이죠. 교차한 선이 도형이 되고, 그것이 모여 스테인드글라스 특유의 입체적인 회화를 이룹니다. 그리고 도형 안에 어떤 유리를 써서 연출할지 결정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임무죠.


박진영 디자이너는 가업을 물려받았다.
박진영 디자이너는 가업을 물려받았다. ⓒfrice

어머니 박옥경님은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1.5세대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디자이너님과 같은 공방에서 근무하는 동료이기도 하죠.

사실 스테인드글라스는 비주얼 자체가 사람들을 매료시킵니다. 입문하기 좋은 공예 콘텐츠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영향인지 사람들은 제가 어머니의 유산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이자 한국 1.5세대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자인 박옥경 작가에게 유리 디자인을 배웠다
어머니이자 한국 1.5세대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자인 박옥경 작가에게 유리 디자인을 배웠다. ⓒfrice

가업은 언제 물려받기로 결심했나요?

대학을 다녔던 2010년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때만 해도 건설경기가 좋았어요. 2010년대 전후로 가파르게 꺾였는데 특히 종교건축의 타격이 컸어요. 시공이 줄어드니 건설시공사와 나란히 움직이는 스테인드글라스같은 인테리어 사업은 씨가 마르는 거죠. 당시 업체가 10곳이 있으면 8곳이 사라졌습니다. 불황을 견딜 수 있는 자금력을 갖고 있거나, 사업 모델을 전면 재검토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신비로운 색감을 지닌 색유리판
신비로운 색감을 지닌 색유리판 ⓒfrice

우리 공방도 위기였어요. 하필 유리를 많이 수입해둔 상태였는데 쓸 일이 없으니 몽땅 악성재고가 됐습니다. 빚은 가파르게 늘었고 직원도 내보내야 했어요. 결국 유리공방과 어머니와 나. 셋밖에 안 남았어요. 지금은 웃으며 회상하지만, 분명 스테인드글라스 메이커 모두가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작품명 Together. 2019년도 작품으로 수강생과 첫 전시전을 연 기념으로 제작했다. 공방에서 서로 협업하는 모습을 숲속 요정에 빗댔다.
작품명 Together. 2019년도 작품으로 수강생과 첫 전시전을 연 기념으로 제작했다. 공방에서 서로 협업하는 모습을 숲속 요정에 빗댔다. ⓒfrice

부활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흩어진 동료부터 다시 모았어요. 그래서 ‘클래스 운영’에 힘썼어요. 수강생을 모아 그들에게 색유리 자르기나 선긋기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공예씬이 넓어졌으니 상황이 좀 낫지만, 당시엔 이 일을 맡을 사람 자체가 적었어요. 기본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 교육은 도제식 전수죠. 예술대학에 전공학과가 생긴 건 최근의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공예디자인에서 동료를 모으는 건 단순한 인력난이 아니라, 업계의 근본적인 문제였어요. 크루로 영입해 손발을 맞출 수준의 전문가를 만나려면, 제 생각에 교육 이외의 답은 없었습니다.

초기엔 당시 사장님이셨던 어머니와 의견차가 엇갈렸습니다. 기존 업무인 건축현장 창유리 제작에 시간을 더 투자하길 바라시는 거죠. 외주제작집중이 재무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인데요. 더 멀리 내다보면 고생길이 훤했습니다. 업무를 따내도 결국 인력난에 허덕인다며 반대했죠.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외주의뢰를 무리해서 받느니, 교육사업과 크루육성에 투자하자고 설득했습니다.

2023년 상반기 진영글라스 소속 크루
2023년 상반기 진영글라스 소속 크루. ⓒfrice

클래스 운영하다 보면 재능 있는 사람은 확실히 눈에 띕니다. 유리공예를 직업으로 삼아도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요. 같이 일하자고요.(웃음) 지금은 5~6인조 크루로 활동하는데요. 개인적으로 5인 팀플레이가 가장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적합한 인력 구성이라 봅니다.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면 다섯 명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요?

‘개인의 고유한 재능’입니다. 역설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요. 예컨대 제가 가장 신뢰하는 협업 파트너인 남한울 작가는 공방교육사업의 첫 수강생이었습니다. 남 작가는 원래 회화를 전공했어요. 색유리 앞에서 발휘하는 상상력이 뛰어납니다. 평면을 입체로 뒤트는 솜씨도 대단하죠. 그래서 공방의 3D 공예품 디자인 생산은 남 작가의 덕을 크게 봅니다.

남한울 작가가 디자인 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남 작가는 식물의 조형을 주제로 다양한 공예 디자인 MD를 선보이고 있다
남한울 작가가 디자인 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남 작가는 식물의 조형을 주제로 다양한 공예 디자인 MD를 선보이고 있다.  ⓒfrice

저희 공방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스테인드글라스 교육사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창의력이나 미적 판단이 중요한 직업을 갖고 계시다면 경험 삼아 원데이 클래스를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재밌으니까 일단 해보셨으면 해요. 특히 공예를 직접 배우면서 터득하는 디자인 의식이나 미적 영감은 엄청나거든요.

도려낸 유리에 동테이프를 감는 모습. 색유리의 투명한 물성이 인상적이다
도려낸 유리에 동테이프를 감는 모습. 색유리의 투명한 물성이 인상적이다. ⓒfrice

오직 스테인드글라스에서만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무엇입니까?

빛과 색입니다.

특히 창을 투과한 빛이 간직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걸 온전히 전하는 예술은 스테인드글라스뿐이라 생각해요. 대부분의 예술작품이 빛 때문에 상해요. 아크릴도 시트지도 강한 빛에 노출되면 5년을 넘기기 힘든데요. 반면 색유리는 빛을 온전히 수용하면서도 사물의 속성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카멜커피 12호점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창. 전국매장위치를 보물지도로 표현했다. 클라이언트가 제공한 아트워크를 반영한 디자인 사례
카멜커피 12호점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창. 전국매장위치를 보물지도로 표현했다. 클라이언트가 제공한 아트워크를 반영한 디자인 사례. ⓒ진영글라스 

여기에 ‘설치’라는 변수가 아름다움을 더해요. 다른 유리공예는 그릇이나 컵처럼 생활소품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작품을 사용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스테인드글라스는 보통 건축과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로 기능하니까 본질적으로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실내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편이거든요.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자체가 인테리어 욕구를 다 해소시키네요.

합정동 공방에 전시된 다양한 디자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합정동 공방에 전시된 다양한 디자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frice

카타르시스일까요?

작품을 공방 바깥으로 옮기는 건 늘 고생스러워요. 그래도 예정된 장소에 설치를 끝내면 쾌감이 쏟아집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갤러리에 전시되는 것보다 건축물의 창문으로 기능했을 때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하늘 아래 똑같은 작품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재밌습니다. 작품 A와 B를 나란히 놨을 때 두 작품의 도형배치가 비슷한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색유리 배치나 세척 여부를 따지면 디테일이 달라요. 그래서 작품마다 고유한 가치를 지녀요. 타인이 조형적인 디자인을 카피할 순 있어도 창작자의 에센스를 훔칠 순 없죠.

디자이너로서 끝까지 지키고 싶은 신념 내지는 소신이 듣고 싶어집니다.

「상업 예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한다」 이 생각을 지키고 싶어요.

종교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외한 일반 건축 스테인드글라스 공예는 본질적으로 순수예술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일단 타인이 얽혀요. 건물에 들어갈 창유리만 해도 그렇죠. 건축가, 건축주, 인테리어 시공자, 디자이너 등 여러 사람이 얽힙니다. 작품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의 미적 판단이 일치했을 때, 작품이 제 자리에 걸리는 건데요. 다른 예술 분야를 살펴도 이런 경우가 드물어요. 건축과 접목시킨 인테리어 아트의 특징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의 다양한 디자인 툴
ⓒfrice

상업적인 의도를 지닌 작품에 디자이너로서의 소신을 발휘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클라이언트가 메이커가 추구했던 공통의 예술가치가 이뤄진다는 점이죠. 작품의뢰와 기획초안은 클라이언트의 몫이지만, 그들에게 디자인과 실체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 크루의 몫입니다. 작가로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충분히 반영된다고 봐요. 작업 한복판에 있으면 오히려 내가 추구하는 예술성이 이루어지는 셈이죠.

스테인드글라스는 이제 교회나 고급 아파트에서 감상하는 값비싼 사치품이 아닙니다. 특히 한국에서 점점 대중화되고 있음을 실감해요. 취향이나 개성을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하려는 사람이 많이 늘었습니다. 저희는 이 흐름을 기쁘게 생각하고 부지런히 작업하려 합니다. 예쁜 거 많이 만들고,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의 하루를 살피며 공예와 디자인의 차이를 생각해 봅니다. 편견이 깨졌어요. 여태껏 스테인드글라스가 순수 예술이라 생각했거든요. 듣고 보니 설치 환경에 따른 제약이 많습니다.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힘이 필요해 보였어요.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작업하되, 자신을 잃지 않고 최선의 작업물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의 창작자들을 응원합니다!

선입견을 디자인하는 사람들

마계인천 페스티벌 현장에서 발견한 아트워크 스티커

<1부에서 이어집니다>

인천 로컬씬의 각개전투

인천 구도심에서 마계인천 페스티벌이 열리던 2023년 9월 23일. 인근 관광명소인 자유공원에서는 인천독서대전이 열렸다. 독서문화를 아끼는 사람들이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동시간대 송도신도시에서는 버튜버를 주제로 국내 최초 메타버스 축제가 열렸다. 수만 명이 몰렸다. 인터넷 방송에서 파생된 새로운 서브컬처가 양지로 발돋움한 것이다.

인천은 로컬 브랜드가 정체성을 만들 자원이 지역에 고르게 흩어져 있다. 구도심의 크리에이터는 자연환경과 근대유산을 활용하며, 신도시를 선호하는 크리에이터는 첨단기술이나 세련된 비주얼을 활용한다. 창작자들이 관공서에서 주도하는 활동에 의존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느슨하게 서로를 알고 지내다가 가끔 뜻이 맞을 때 일을 펼친다. 마계인천 페스티벌은 지역에서 흔히 벌어지는 각개전투중 하나였다.

왼쪽부터 인천맥주 박지훈 대표 이창길 개항마을 대표, 양윤정 로컬 프로젝트 매니저
왼쪽부터 인천맥주 박지훈 대표 이창길 개항마을 대표, 양윤정 로컬 프로젝트 매니저.  ⓒfrice


플리마켓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빈티지숍 오너들
플리마켓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빈티지숍 오너들. ⓒfrice

행사는 한낮과 한밤으로 갈렸습니다. 어떤 행사가 기억에 남나요?

지훈 데이타임은 개항백화의 드렁큰 빈티지가 좋았어요. 인천의 빈티지 패션숍 운영자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손님 반응이 좋았는데 셀러 반응도 좋았네요. 서로 교류가 된다는 거죠. 아쉬운 건 라이트하우스에서 벌어진 공연 이벤트였어요. 상대적으로 저희 손길이 덜 미쳤습니다

라이트하우스 앞마당에서 공연을 펼치는 뮤지션
ⓒfrice

주거공간과 밀접한 행사장은 이웃과의 마찰이 불가피해보였습니다.
축제에 부정적인 이웃과의 갈등은 어떠셨습니까?


윤정 반경 200m를 통제하는 저녁시간대 지역축제를 견학 갔던 적이 있어요. 차량 통제나 참가자의 식사장소배치까지 신경썼는데도 민원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마계인천 페스티벌에서도 비슷한 민원을 예측하긴 했어요.

다만 예상보다 빠른 오후 시간대, 디제잉이 아닌 버스킹 공연으로 나올지 몰랐지만요. 다행히도 축제 경험이 많았던 행사 관계자들이 직접 민원인을 찾아가 대처에 나섰습니다. 행사장 인근 주택 대문을 하나 하나 두드리면서 양해를 구하고 설득을 하셨죠.

지역 내 이웃에게 100%에게 환영받는 페스티벌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니까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차근차근 나아가면 되니까요.

인천 개항로 일대에 붙어있던 스티커
ⓒfrice

나름대로 잣대를 만들어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나가는 것도 디자인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은 인천 로컬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중이죠.

지훈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우선 로컬을 주제로 한 결과물은 한국스러워야 해요. 그런 인식이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효과적인 방향을 모색할지 생각 해보는 편입니다

일단 한국스러운 결과물 자체가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

역사나 전통 같은 주제도 담겨야 해요. 한국스러움에 매달리면 팬시한 매력이 사라져요. 대중과의 거리도 멀어져요. 그렇다고 세련된 걸 추구하면 지역색이 흐려지거나 깊이가 얕아지거나 본래 취지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지죠. 여러가지 제약이 많은 상태에서 디자인을 풀어나가야 하는 겁니다.

저는 맥주사업을 하니까. 사업적으로 여러 방향으로 실험해보며 조금씩 방향성을 잡고 있어요. ‘인천 맥주란 무엇인가?’ ‘우리동네 인천을 상징할 만한 제품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을 이어가요.

고민을 해결한 제 결론은 ‘단지 비주얼 하나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는 점이었어요.

비주얼만큼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지훈 행동입니다. ‘인천맥주라는 사업체를 통해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행동으로 답하는 거죠. 그래서 시각디자인보다는 브랜드의 활동 자체를 디자인으로 보고 있어요.

비주얼도 중요한 판단이 요구됩니다. 허나 그보다 중요한 건 “왜 저걸 하는지, 어떻게 해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핵심은 제가 지역을 무대로 ‘사업’을 진행한다는 점일텐데요. 그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거기서 생긴 방향성을 효과적으로 발현하는 거죠.

창길 사실 저희는 로컬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부터, 이렇게 살았거든요. 행동이 먼저였고 말이 나중에 붙은 거예요. 사는 동네를 좋아하고, 동네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사람인 거죠. 저희가 자연이라 여기는 행동을 할 따름입니다.

저는 ‘덕질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창길 좋은 것을 구분하고 평가하는 기준에 대한 이야기일 텐데요. 먼저 KS마크의 시대가 있었죠. 국가가 산업표준을 만들고, 그 표준을 준수한 기업을 신뢰하는 시대였어요.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를 좋게 인식했습니다.

한편 큐레이션의 시대가 왔습니다. 획일적인 문화가 싫은 사람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요. 츠타야 서점이 대표적일 텐데요. 예술가나 디자이너가 주도한 큐레이션이죠. 그런 사람들의 선별기준은 무언가를 소비하는 법을 새롭게 알려줬습니다. 가구, 조명, 색, 문화가 떠오르네요. 큐레이션은 나쁜 게 아니지만, 맹목적으로 따라 한다면 문제라 생각합니다.

큐레이션의 시대는 남의 기준을 따른 거 같아요. 이제 자기자신의 기준으로 사는 시대로 넘어가지 않을까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덕질의 시대’입니다. 다른 사람을 굳이 따라 하지 않는 시대. 싸이, 노홍철 같은 사람들이 주목받는 시대로 넘어가는 거죠.

마계인천페스티벌 스팟인 개항로통닭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
ⓒfrice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인천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윤정 겉으로는 인천 싫다는데 속으로는 아끼는 점? 저는 서울 사람이고(웃음) 제가 사귄 인천사람들 기준으로만 말씀드리자면, 인천사람들은 인천을 많이 좋아한다고 느껴요. 싫은 건 싫은 거지만 좋은 것은 좋은 대로 아낀다는 인상?

저는 마계인천이라는 밈이 신기하거든요. 내세울 수 있는 경험이 되기도 하고. 나를 표현하는 정체성이 되는 단어가 됐어요.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지역사회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자 경험이기 때문에 인천에 바이브vibe라는 것이 생겨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모순된 것을 있는 그대로 품으려는 태도일까요? 해학적인 멋으로 느껴집니다.

윤정 ‘입덕부정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사실 사랑에 빠졌는데 그 마음을 부정하는 단계요. 사실 지역을 좋아하지만, 그걸 부정하면서 드러나는 태도인 거죠.

빈티지 팝업 스토어가 열린 개항백화에서 샐러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빈티지 팝업 스토어가 열린 개항백화의 모습
ⓒfrice

창길 최근 인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리저리 해체됐다 다시 조립되는 느낌입니다. 앞선 세대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점인데요. 요즘 20대 친구들 만나보면 인천이 좋대요. 자랑스러운 게 많고 나름 바이브vibe가 있다는 거죠.

‘공부 잘해서 서울로 대학가야지’ ‘회사도 서울에서 번듯한 데 다녀야지’. 인천에서 자란 사람이 어른에게 줄곧 듣던 말일텐데요. 인천을 떠나야 할 곳처럼 느끼다가도 어느샌가 다시 유턴해서 돌아와요. 방송가에서는 인천 출신 인물이 자부심 갖고 이것저것 소개하고 있죠.

그리고 인천사람들은 메시지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별 거 아니라는 태도로 말한대요. 우리는 정말 별거 아니라고 느껴서 그렇게 말했는데, 다루는 대화주제나 대화 속에 담긴 말의 가치는 되게 높은 것. 독특한 성격 중 하나죠.

개항백화 옥상의 푸드존에서 식사를 하는 관람객들
ⓒfrice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천의 아름다움’이 듣고 싶어요.

지훈 저는 노을이요. 지역의 상징적인 비주얼이기도 하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에요. 낙조를 즐길 공간이 적고, 이 풍경을 즐길 장소는 아는 사람들만 알아요. 바로 떠오르는 아름다움은 아닙니다. 서해바다는 항만/군사시설이 많아서 민간 개방이 안된 곳도 많은데, 점점 제한이 풀리고 있죠. 앞으로는 노을을 감상할 곳이 더 늘어날 것 같아요.

윤정 누군가에게 추억이 되는 공간. 그리고 그런 공간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저는 서울사람인데 학창시절에 다녔던 식당이 거의 남아있질 않아요. 살아남은 데가 없어요. 같은 공간에 가더라도 낯설다는 감정을 느끼거든요.

그리고 인천사람들은 메시지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별 거 아니라는 태도로 말한대요. 우리는 정말 별거 아니라고 느껴서 그렇게 말했는데, 다루는 대화주제나 대화 속에 담긴 말의 가치는 되게 높은 것. 독특한 성격 중 하나죠.

인천 구도심을 대표하는 신포시장
ⓒfrice

윤정 인천은 달라요. 특히 원도심 쪽에 거주하는 분들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요소가 아직 많이 남아있어요. 제가 처음으로 인천인에게 부러움을 느꼈던 게 신포시장 안 노포 칼국수집에 갔을 때였어요.

프로젝트 미팅이었는데 저 말고 다른 분들은 가게에 얽힌 추억이 있으시더라고요. 저는 그런 추억이 깃든 공간이 아름답습니다.

창길 선입견. 인천을 향한 선입견이 많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아요. 저는 이 가능성 자체가 아름다움이라 봐요.

사실 2023년 기준 전국광역시 중에 젊은 사람이 제일 많이 사는 곳은 인천입니다. 편견과 달리 실제 범죄율이 무척 낮은 곳도 인천. 육해공 교통 인프라가 전국톱클래스인 곳도 인천. 인구가 한 번도 줄어든 적 없는 곳도 인천. 부산보다 GDP가 높은 곳도 인천. 편견과 다른 반전매력이 이렇게나 많은 곳이 인천인데 아무도 몰라요.

공부 못하고, 싸움 많이 하고, 범죄의 온상인 동네. 이것은 인천을 향한 수많은 선입견들이 모인 걸텐데. 선입견은 사실이 아니잖아요. 거꾸로 보면 선입견은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사실이 아니니까 당당한 거예요.

사람들이 이제 인천이라는 지역의 매력을 조금씩 알기 시작한 거 같아요. 갯벌에서 보물을 찾는데 여태까지 엉뚱한 곳을 많이 팠던 셈이에요. 사실 가까이에 인천 같은 보물이 있었고, 이제 지역의 매력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 거 같습니다. 이게 다 건져지면 보물찾기 게임이 끝나는 거죠.

인천을 담은 엽서. 신포동 로컬스토어 포디움126에서 발견
인천을 담은 엽서. 신포동 로컬스토어 포디움126에서 발견. ⓒ인더로컬

이런 주관적인 진술이 궁금했어요.
여러분은 각자의 아름다움 속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는 중인 셈이죠.

지훈 하나만 덧붙이자면, 저는 낙조와 공장과 아파트가 혼재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요. 말하자면 인천이라는 도시는 자연과 근대가 공존하는 거죠. 특히 근대적 산업시설은 아직도 여전히 많이 남아있어요.

최근에는 구도심 재개발 단지에 아파트가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오래된 공장과 새로 지은 아파트는 사실 공존하기 굉장히 어렵거든요. 둘 중 하나가 없어져야만 개발이 되는데, 공존하기 힘든 것들이 혼재한다는 것. 저는 그 사실 자체가 아름다워요.

여러분은 오랜 시간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핵심은 지속가능성일텐데요. 경쟁력을 갖추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현실성과 지속성이요. 로컬이란 수식어에 갇히면 부족해지는 자원입니다. 저는 맥주를 만들어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니 사업적으로만 말씀드리자면, 창작자는 무엇보다도 돈을 벌어야 하거든요. 수익을 내야 지속성이 생기고, 지속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죠.

지역을 위한다는 명분에 비즈니스를 욱여넣는다는 인상이 드는 경우도 있었어요. 물론 잘 버무려서 사업을 만들면 좋지만. 공익추구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니 지속성을 발생시키지 못하고 짧은 시간 안에 사업을 접게 되는 걸 종종 보는 거 같아요. 로컬씬 안에서도 아쉬운 일이거든요. 누군가가 쌓아온 것이 없어지면 모두가 발전을 못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람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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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도 그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에 뛰어 들어서 만든 디자인은 리스크가 있다는 거죠. 지역을 거점으로 사업을 하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좀 더 강한 영향을 주고받아요.

RPG게임에 비유하면 서로 버프/디버프를 거는 거죠. ‘마계인천’ 이미지로 무언가를 했다면, 그게 로컬에 영향을 주고. 다른 팀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한다면, 나도 거기에 영향을 받겠죠.

일방적으로 타인의 버프만 받을 순 없어요. 나 또한 로컬씬에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야 하죠. 그렇기 때문에 현실성과 지속성은 내가 타인에게 버프를 주는 힘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창길 디자인 인플레이션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최근에 어디 가서 본 것 중에 안 예쁜 게 없어요. 다 예쁘고, 다 멋지니까 오히려 감동이 없는 것 같아요. 집에 쌓여있는 수많은 에코백과 텀블러를 생각해 보세요.

그 이유는 앞서 말했던 큐레이션 때문이라 생각해요. 각 분야 전문가, 디자이너, 아티스트…이들이 큐레이션을 잘 만들어 놓잖아요. 큐레이션을 이제 인스타그램, 유튜브, 핀터레스트를 통해서도 바로 확인 가능합니다. 큐레이션의 큐레이션까지 가요.

개항백화에서 판매했던 다양한 인천 주제 아트워크 디자인 제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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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르고 걸러, 결국 예쁘고 깔끔한 게 남겠지만. 좋은 감흥은 없군요.

창길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디자인은 ‘자기가 담긴 디자인’이라 생각해요. “철저하게 나인 것. 나 스스로 떠올린 걸 내 방식대로 표현해 타인에게 설명가능한 디자인”이여야 한다는 거죠. 가끔 제게 말도 안되는 감동을 선사하는 공간들이 있어요.

어떤 곳인가요?

창길 예컨대 주인이 자기 마음대로하는 술집이요. 사장님과 음식과 가게 인테리어가 일치되는 곳. 가끔 그런 데서 시간 보내면 웃음이 팍팍 나요. 식당에 있는 모든 게 이해돼요. ‘대체 왜 저걸 저렇게 해놨는지’ 단박에 와닿는 거죠.

이 대표님은 사람-콘텐츠-공간의 조화에서 감동을 느끼는 셈이네요.

우리가 예쁜 걸 너무 많이 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철저하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서 나타나는 무언가가 있거든요 분명.

요즘 들어 브랜딩이 중요하다고 하죠. 브랜딩을 위한 브랜딩도 나타나고 있어요. 이런 경우는 티가 팍팍 난다는 거예요. 예컨대 집은 맥시멀리스트로 꾸며놓고 사는데, 카페 사업한다고 미니멀 디자인을 구현하는 경우가 있어요. 애써 꾸민 티가 나요.

마계인천페스티벌 관람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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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페스티벌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소감이 궁금합니다.

윤정 관람객이 얼마나 올지 감히 예측하기 힘들었어요. 행사장 다섯 곳에 사람들이 분산되니까요. 다행히 공간마다 축제 분위기를 낼 만큼 사람들이 모여서 놀다 가셨어요. 그런 점에서 차기 페스티벌이 더 기대됩니다.

공간 섭외가 늘고 그곳에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는 플레이어가 계속 붙는다면, 훨씬 더 커질 수가 있는 페스티벌이라는 걸 확인했어요. 미래에 펼칠 그림이 잘 그려져서 좋았습니다.

창길 실무자 셋이서 추진한 행사였기에 계획이나 아이디어를 모두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서 놓치는 부분도 있어요.

시작은 다섯 곳이었지만,  축제가 열리는 거리 자체가 디자인화 됐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요. 개항로 일대 자체가 축제가 되는 거죠. 축제 손님뿐만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까지 편하게 나와서 구경하다 아이스크림 하나 드시고 집으로 돌아갈 정도로 커진다면, 여러 가지 민원은 구조적으로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개항백화에서 열린 식물 팝업 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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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이창길 대표님이 말한 ‘개항로의 디자인화’는 길 위에 있는 업장이나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콘텐츠를 갖고 축제에 참여하는 모습일 거예요. 꼭 축제 기획자가 준비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요.

예컨대 진7080라이브펍에서 저희가 기획한 음악공연행사를 내년에도 무사히 마쳐요. 그것도 좋지만, 저희가 아니라 가라오케 사장님의 개성이 묻어나는 이벤트가 들어가기도 하는 거죠. 올해 수익향상과 모객을 가능케 한 예시사례를 보여드렸습니다. 다음엔 뭔가 새로운 게 나오지 않을까요?

창길 올해 아쉬웠던 보사노바 공연은 내년에 보사노바에 미친 사람이 콘텐츠를 지휘할 수도 있잖아요. 새로운 플레이어가 축제에 들어오는 거죠. 이런 식으로 같이 할 사람이 늘어날수록 좋을 거 같아요. 축제 주최자는 공간 연결에 집중하는 거죠. 세부행사 기획과 집행은 플레이어가 알아서 합니다. 올해는 5곳. 언젠가 60곳. 축제 행사가 거리 곳곳에서 열리는 걸 목표로 해요.

페스티벌 이벤트가 60개! 벌어지면 장난 아닐걸요.

신해철음감회에 참여한 관람객들
신해철음감회에 참여한 관람객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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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그 자체인 것 같아요. 무질서해 보여도 뜯어보면 멋과 격이 있어요.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지훈 그 게 저희가 여태까지 해온 방식입니다!(웃음)

창길 여러분도 끼세요. 원한다면 내년에 행사 하나 만드는 건 어떠실지?(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