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그라운드는 디자인에 자연환경이나 도시의 풍경을 반영합니다. 특히 지역색을 반영한 아트워크 일러스트를 활용한 제품들이 인상적인데요.
마더그라운드는 전국을 돌며 보부스토어라는 이름으로 팝업스토어를 열고 있어요.
조선시대 보부상에게 영감을 얻은 기획이죠. 주력 제품은 스니커즈, 티셔츠, 양말인데요. 팝업스토어 출장 일정에 맞춰 한정판을 만듭니다.
예컨대 대전에서는 ’93 엑스포’, 그 중에서도 ‘한빛탑’ 대구는 ‘섬유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떠올려요. 울산 팝업스토어는 ‘수출의 도시’라는 로컬 스토리에서 아트워크를 시작했어요. 공업도시 울산의 이미지를 표현했습니다.
“우리 지역의 핵심을 잘 표현했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애 많이 썼구나!”
디자인에서 그런 인상을 받을 때 그 지역 분들도, 지역을 방문하는 소비자분들도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누룩, 밤, 된장. 한글 이름도 흥미로웠어요. 다른 패션 브랜드와 비교해 보면 디자인에 한국적인 소재를 즐겨 쓴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사람인 내가, 나다움을 찾아서 무언가 만들고 브랜드를 위해 무언가를 모으는 과정에서 한국적인 소재가 자연스럽게 디자인으로 모였습니다.
콘셉트가 아니라 익숙한 것을 연상하며서 정해요. 귤이 떠오르면 귤. 색이 누룩처럼 보이면 누룩이라 이름 짓는 식이죠. 의도라기 보다는 무의식에 가까운 디자인 요소입니다.
대표 디자이너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로컬 굿즈 디자인 사례 4가지
36th 보부스토어, 울산광역시
울산은 조선업이나 자동차업계 종사자가 많아요. 그 분들이 주인공인 울산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자동차가 큰 선박에 실려 해외로 나가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상상하고, 그걸 귀여운 일러스트로 그려 티셔츠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트워크를 재밌게 보시고 구매해주셨어요. 울산시민분들이 ‘수출의 도시’라는 이미지에 자긍심을 느끼신다는 인상입니다.
45th, 49th 보부스토어, 도보마포 페스티벌
학창 시절부터 머물렀던 서울 마포구! 로컬 큐레이터 ‘도보마포’와 작은 지역 축제를 열었었어요. 가볼 만한 곳을 수집하고 그곳의 인상적인 풍경을 주제로 아트워크를 그려 지도, 티셔츠, 양말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마포의 특별한 공간을 주제로 매달 양말을 만들려 해요! 최근 연남동에 ‘보보스토어’라는 이름으로 상설 매장을 열었거든요. 방 한 켠에 여태까지 만든 아트워크를 전시중이니 언제든 편히 방문해 주세요!
19th 보부스토어, 제주 서귀포
제주하면 생각나는 ‘감귤’, 그리고 제주 동쪽의 자랑 ‘비자림’의 컬러를 담았습니다. 스티커즈와 티셔츠, 모자, 반바지 등으로 단일한 컬렉션을 구성했습니다. ‘플레이스 캠프’라는 호텔 겸 스토어에서 연 팝업인데요. 관광객은 제주를 추억하기 위한 기념품으로, 제주도민분들은 내가 사는 지역을 잘 표현했기 때문에 구매했다 말씀하셨어요. 제주 컬렉션을 각자 다른 이유로 소장하는 게 인상적입니다.
40th, 53th 보부스토어, 경기도 고양~일산
고양~일산에서만 팝업스토어를 3번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지역 랜드마크인 호스공원을 아트워크로 만들었는데요. 최신 굿즈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어요. 고양에서 고양이를, 일산은 1과 山(뫼 산)을 더하는 식인데 호응이 좋았습니다. 상품과 아트워크로 던진 유머였는데, 제작의도를 설명하다보면 고객과의 거리가 부쩍 좁혀지는 느낌이 들어요.
인천 구도심에서 마계인천 페스티벌이 열리던 2023년 9월 23일. 인근 관광명소인 자유공원에서는 인천독서대전이 열렸다. 독서문화를 아끼는 사람들이 다정한 시간을 보냈다. 동시간대 송도신도시에서는 버튜버를 주제로 국내 최초 메타버스 축제가 열렸다. 수만 명이 몰렸다. 인터넷 방송에서 파생된 새로운 서브컬처가 양지로 발돋움한 것이다.
인천은 로컬 브랜드가 정체성을 만들 자원이 지역에 고르게 흩어져 있다. 구도심의 크리에이터는 자연환경과 근대유산을 활용하며, 신도시를 선호하는 크리에이터는 첨단기술이나 세련된 비주얼을 활용한다. 창작자들이 관공서에서 주도하는 활동에 의존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느슨하게 서로를 알고 지내다가 가끔 뜻이 맞을 때 일을 펼친다. 마계인천 페스티벌은 지역에서 흔히 벌어지는 각개전투중 하나였다.
왼쪽부터 인천맥주 박지훈 대표 이창길 개항마을 대표, 양윤정 로컬 프로젝트 매니저. ⓒfrice
플리마켓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빈티지숍 오너들. ⓒfrice
행사는 한낮과 한밤으로 갈렸습니다. 어떤 행사가 기억에 남나요?
지훈 데이타임은 개항백화의 드렁큰 빈티지가 좋았어요. 인천의 빈티지 패션숍 운영자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손님 반응이 좋았는데 셀러 반응도 좋았네요. 서로 교류가 된다는 거죠. 아쉬운 건 라이트하우스에서 벌어진 공연 이벤트였어요. 상대적으로 저희 손길이 덜 미쳤습니다
ⓒfrice
주거공간과 밀접한 행사장은 이웃과의 마찰이 불가피해보였습니다. 축제에 부정적인 이웃과의 갈등은 어떠셨습니까?
윤정 반경 200m를 통제하는 저녁시간대 지역축제를 견학 갔던 적이 있어요. 차량 통제나 참가자의 식사장소배치까지 신경썼는데도 민원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마계인천 페스티벌에서도 비슷한 민원을 예측하긴 했어요.
다만 예상보다 빠른 오후 시간대, 디제잉이 아닌 버스킹 공연으로 나올지 몰랐지만요. 다행히도 축제 경험이 많았던 행사 관계자들이 직접 민원인을 찾아가 대처에 나섰습니다. 행사장 인근 주택 대문을 하나 하나 두드리면서 양해를 구하고 설득을 하셨죠.
지역 내 이웃에게 100%에게 환영받는 페스티벌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저희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다고 생각하니까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차근차근 나아가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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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잣대를 만들어 문제를 정의하고, 그 문제를 조금씩 해결해나가는 것도 디자인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은 인천 로컬씬에서 디자이너로 활동중이죠.
지훈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우선 로컬을 주제로 한 결과물은 한국스러워야 해요. 그런 인식이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효과적인 방향을 모색할지 생각 해보는 편입니다
일단 한국스러운 결과물 자체가 너무 어렵지 않습니까?
역사나 전통 같은 주제도 담겨야 해요. 한국스러움에 매달리면 팬시한 매력이 사라져요. 대중과의 거리도 멀어져요. 그렇다고 세련된 걸 추구하면 지역색이 흐려지거나 깊이가 얕아지거나 본래 취지와는 조금 거리가 멀어지죠. 여러가지 제약이 많은 상태에서 디자인을 풀어나가야 하는 겁니다.
저는 맥주사업을 하니까. 사업적으로 여러 방향으로 실험해보며 조금씩 방향성을 잡고 있어요. ‘인천 맥주란 무엇인가?’ ‘우리동네 인천을 상징할 만한 제품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을 이어가요.
고민을 해결한 제 결론은 ‘단지 비주얼 하나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라는 점이었어요.
비주얼만큼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지훈 행동입니다. ‘인천맥주라는 사업체를 통해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행동으로 답하는 거죠. 그래서 시각디자인보다는 브랜드의 활동 자체를 디자인으로 보고 있어요.
비주얼도 중요한 판단이 요구됩니다. 허나 그보다 중요한 건 “왜 저걸 하는지, 어떻게 해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라 생각합니다. 핵심은 제가 지역을 무대로 ‘사업’을 진행한다는 점일텐데요. 그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비즈니스를 고민하고, 거기서 생긴 방향성을 효과적으로 발현하는 거죠.
창길 사실 저희는 로컬이라는 단어가 나오기 전부터, 이렇게 살았거든요. 행동이 먼저였고 말이 나중에 붙은 거예요. 사는 동네를 좋아하고, 동네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사람인 거죠. 저희가 자연이라 여기는 행동을 할 따름입니다.
저는 ‘덕질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창길 좋은 것을 구분하고 평가하는 기준에 대한 이야기일 텐데요. 먼저 KS마크의 시대가 있었죠. 국가가 산업표준을 만들고, 그 표준을 준수한 기업을 신뢰하는 시대였어요.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를 좋게 인식했습니다.
한편 큐레이션의 시대가 왔습니다. 획일적인 문화가 싫은 사람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요. 츠타야 서점이 대표적일 텐데요. 예술가나 디자이너가 주도한 큐레이션이죠. 그런 사람들의 선별기준은 무언가를 소비하는 법을 새롭게 알려줬습니다. 가구, 조명, 색, 문화가 떠오르네요. 큐레이션은 나쁜 게 아니지만, 맹목적으로 따라 한다면 문제라 생각합니다.
큐레이션의 시대는 남의 기준을 따른 거 같아요. 이제 자기자신의 기준으로 사는 시대로 넘어가지 않을까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덕질의 시대’입니다. 다른 사람을 굳이 따라 하지 않는 시대. 싸이, 노홍철 같은 사람들이 주목받는 시대로 넘어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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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인천에서만 나타나는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윤정 겉으로는 인천 싫다는데 속으로는 아끼는 점? 저는 서울 사람이고(웃음) 제가 사귄 인천사람들 기준으로만 말씀드리자면, 인천사람들은 인천을 많이 좋아한다고 느껴요. 싫은 건 싫은 거지만 좋은 것은 좋은 대로 아낀다는 인상?
저는 마계인천이라는 밈이 신기하거든요. 내세울 수 있는 경험이 되기도 하고. 나를 표현하는 정체성이 되는 단어가 됐어요.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지역사회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감정이자 경험이기 때문에 인천에 바이브vibe라는 것이 생겨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모순된 것을 있는 그대로 품으려는 태도일까요? 해학적인 멋으로 느껴집니다.
윤정 ‘입덕부정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사실 사랑에 빠졌는데 그 마음을 부정하는 단계요. 사실 지역을 좋아하지만, 그걸 부정하면서 드러나는 태도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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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길 최근 인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이리저리 해체됐다 다시 조립되는 느낌입니다. 앞선 세대와 비교하면 확실히 다른 점인데요. 요즘 20대 친구들 만나보면 인천이 좋대요. 자랑스러운 게 많고 나름 바이브vibe가 있다는 거죠.
‘공부 잘해서 서울로 대학가야지’ ‘회사도 서울에서 번듯한 데 다녀야지’. 인천에서 자란 사람이 어른에게 줄곧 듣던 말일텐데요. 인천을 떠나야 할 곳처럼 느끼다가도 어느샌가 다시 유턴해서 돌아와요. 방송가에서는 인천 출신 인물이 자부심 갖고 이것저것 소개하고 있죠.
그리고 인천사람들은 메시지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별 거 아니라는 태도로 말한대요. 우리는 정말 별거 아니라고 느껴서 그렇게 말했는데, 다루는 대화주제나 대화 속에 담긴 말의 가치는 되게 높은 것. 독특한 성격 중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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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생각하는 ‘인천의 아름다움’이 듣고 싶어요.
지훈 저는 노을이요. 지역의 상징적인 비주얼이기도 하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이에요. 낙조를 즐길 공간이 적고, 이 풍경을 즐길 장소는 아는 사람들만 알아요. 바로 떠오르는 아름다움은 아닙니다. 서해바다는 항만/군사시설이 많아서 민간 개방이 안된 곳도 많은데, 점점 제한이 풀리고 있죠. 앞으로는 노을을 감상할 곳이 더 늘어날 것 같아요.
윤정 누군가에게 추억이 되는 공간. 그리고 그런 공간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저는 서울사람인데 학창시절에 다녔던 식당이 거의 남아있질 않아요. 살아남은 데가 없어요. 같은 공간에 가더라도 낯설다는 감정을 느끼거든요.
그리고 인천사람들은 메시지가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별 거 아니라는 태도로 말한대요. 우리는 정말 별거 아니라고 느껴서 그렇게 말했는데, 다루는 대화주제나 대화 속에 담긴 말의 가치는 되게 높은 것. 독특한 성격 중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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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 인천은 달라요. 특히 원도심 쪽에 거주하는 분들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요소가 아직 많이 남아있어요. 제가 처음으로 인천인에게 부러움을 느꼈던 게 신포시장 안 노포 칼국수집에 갔을 때였어요.
프로젝트 미팅이었는데 저 말고 다른 분들은 가게에 얽힌 추억이 있으시더라고요. 저는 그런 추억이 깃든 공간이 아름답습니다.
창길 선입견. 인천을 향한 선입견이 많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아요. 저는 이 가능성 자체가 아름다움이라 봐요.
사실 2023년 기준 전국광역시 중에 젊은 사람이 제일 많이 사는 곳은 인천입니다. 편견과 달리 실제 범죄율이 무척 낮은 곳도 인천. 육해공 교통 인프라가 전국톱클래스인 곳도 인천. 인구가 한 번도 줄어든 적 없는 곳도 인천. 부산보다 GDP가 높은 곳도 인천. 편견과 다른 반전매력이 이렇게나 많은 곳이 인천인데 아무도 몰라요.
공부 못하고, 싸움 많이 하고, 범죄의 온상인 동네. 이것은 인천을 향한 수많은 선입견들이 모인 걸텐데. 선입견은 사실이 아니잖아요. 거꾸로 보면 선입견은 하나의 가능성입니다. 사실이 아니니까 당당한 거예요.
사람들이 이제 인천이라는 지역의 매력을 조금씩 알기 시작한 거 같아요. 갯벌에서 보물을 찾는데 여태까지 엉뚱한 곳을 많이 팠던 셈이에요. 사실 가까이에 인천 같은 보물이 있었고, 이제 지역의 매력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 거 같습니다. 이게 다 건져지면 보물찾기 게임이 끝나는 거죠.
인천을 담은 엽서. 신포동 로컬스토어 포디움126에서 발견. ⓒ인더로컬
이런 주관적인 진술이 궁금했어요. 여러분은 각자의 아름다움 속에서 뭔가를 끄집어내는 중인 셈이죠.
지훈 하나만 덧붙이자면, 저는 낙조와 공장과 아파트가 혼재된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요. 말하자면 인천이라는 도시는 자연과 근대가 공존하는 거죠. 특히 근대적 산업시설은 아직도 여전히 많이 남아있어요.
최근에는 구도심 재개발 단지에 아파트가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오래된 공장과 새로 지은 아파트는 사실 공존하기 굉장히 어렵거든요. 둘 중 하나가 없어져야만 개발이 되는데, 공존하기 힘든 것들이 혼재한다는 것. 저는 그 사실 자체가 아름다워요.
여러분은 오랜 시간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핵심은 지속가능성일텐데요. 경쟁력을 갖추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현실성과 지속성이요. 로컬이란 수식어에 갇히면 부족해지는 자원입니다. 저는 맥주를 만들어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니 사업적으로만 말씀드리자면, 창작자는 무엇보다도 돈을 벌어야 하거든요. 수익을 내야 지속성이 생기고, 지속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죠.
지역을 위한다는 명분에 비즈니스를 욱여넣는다는 인상이 드는 경우도 있었어요. 물론 잘 버무려서 사업을 만들면 좋지만. 공익추구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다 보니 지속성을 발생시키지 못하고 짧은 시간 안에 사업을 접게 되는 걸 종종 보는 거 같아요. 로컬씬 안에서도 아쉬운 일이거든요. 누군가가 쌓아온 것이 없어지면 모두가 발전을 못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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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도 그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에 뛰어 들어서 만든 디자인은 리스크가 있다는 거죠. 지역을 거점으로 사업을 하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좀 더 강한 영향을 주고받아요.
RPG게임에 비유하면 서로 버프/디버프를 거는 거죠. ‘마계인천’ 이미지로 무언가를 했다면, 그게 로컬에 영향을 주고. 다른 팀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한다면, 나도 거기에 영향을 받겠죠.
일방적으로 타인의 버프만 받을 순 없어요. 나 또한 로컬씬에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야 하죠. 그렇기 때문에 현실성과 지속성은 내가 타인에게 버프를 주는 힘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세요?
창길 디자인 인플레이션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최근에 어디 가서 본 것 중에 안 예쁜 게 없어요. 다 예쁘고, 다 멋지니까 오히려 감동이 없는 것 같아요. 집에 쌓여있는 수많은 에코백과 텀블러를 생각해 보세요.
그 이유는 앞서 말했던 큐레이션 때문이라 생각해요. 각 분야 전문가, 디자이너, 아티스트…이들이 큐레이션을 잘 만들어 놓잖아요. 큐레이션을 이제 인스타그램, 유튜브, 핀터레스트를 통해서도 바로 확인 가능합니다. 큐레이션의 큐레이션까지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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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르고 걸러, 결국 예쁘고 깔끔한 게 남겠지만. 좋은 감흥은 없군요.
창길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에 필요한 디자인은 ‘자기가 담긴 디자인’이라 생각해요. “철저하게 나인 것. 나 스스로 떠올린 걸 내 방식대로 표현해 타인에게 설명가능한 디자인”이여야 한다는 거죠. 가끔 제게 말도 안되는 감동을 선사하는 공간들이 있어요.
어떤 곳인가요?
창길 예컨대 주인이 자기 마음대로하는 술집이요. 사장님과 음식과 가게 인테리어가 일치되는 곳. 가끔 그런 데서 시간 보내면 웃음이 팍팍 나요. 식당에 있는 모든 게 이해돼요. ‘대체 왜 저걸 저렇게 해놨는지’ 단박에 와닿는 거죠.
이 대표님은 사람-콘텐츠-공간의 조화에서 감동을 느끼는 셈이네요.
우리가 예쁜 걸 너무 많이 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철저하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에서 나타나는 무언가가 있거든요 분명.
요즘 들어 브랜딩이 중요하다고 하죠. 브랜딩을 위한 브랜딩도 나타나고 있어요. 이런 경우는 티가 팍팍 난다는 거예요. 예컨대 집은 맥시멀리스트로 꾸며놓고 사는데, 카페 사업한다고 미니멀 디자인을 구현하는 경우가 있어요. 애써 꾸민 티가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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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페스티벌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소감이 궁금합니다.
윤정 관람객이 얼마나 올지 감히 예측하기 힘들었어요. 행사장 다섯 곳에 사람들이 분산되니까요. 다행히 공간마다 축제 분위기를 낼 만큼 사람들이 모여서 놀다 가셨어요. 그런 점에서 차기 페스티벌이 더 기대됩니다.
공간 섭외가 늘고 그곳에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돌릴 수 있는 플레이어가 계속 붙는다면, 훨씬 더 커질 수가 있는 페스티벌이라는 걸 확인했어요. 미래에 펼칠 그림이 잘 그려져서 좋았습니다.
창길 실무자 셋이서 추진한 행사였기에 계획이나 아이디어를 모두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져서 놓치는 부분도 있어요.
시작은 다섯 곳이었지만, 축제가 열리는 거리 자체가 디자인화 됐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요. 개항로 일대 자체가 축제가 되는 거죠. 축제 손님뿐만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까지 편하게 나와서 구경하다 아이스크림 하나 드시고 집으로 돌아갈 정도로 커진다면, 여러 가지 민원은 구조적으로 해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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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 이창길 대표님이 말한 ‘개항로의 디자인화’는 길 위에 있는 업장이나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각자 나름대로의 콘텐츠를 갖고 축제에 참여하는 모습일 거예요. 꼭 축제 기획자가 준비한 이벤트가 아니더라도요.
예컨대 진7080라이브펍에서 저희가 기획한 음악공연행사를 내년에도 무사히 마쳐요. 그것도 좋지만, 저희가 아니라 가라오케 사장님의 개성이 묻어나는 이벤트가 들어가기도 하는 거죠. 올해 수익향상과 모객을 가능케 한 예시사례를 보여드렸습니다. 다음엔 뭔가 새로운 게 나오지 않을까요?
창길 올해 아쉬웠던 보사노바 공연은 내년에 보사노바에 미친 사람이 콘텐츠를 지휘할 수도 있잖아요. 새로운 플레이어가 축제에 들어오는 거죠. 이런 식으로 같이 할 사람이 늘어날수록 좋을 거 같아요. 축제 주최자는 공간 연결에 집중하는 거죠. 세부행사 기획과 집행은 플레이어가 알아서 합니다. 올해는 5곳. 언젠가 60곳. 축제 행사가 거리 곳곳에서 열리는 걸 목표로 해요.
페스티벌 이벤트가 60개! 벌어지면 장난 아닐걸요.
ⓒfrice
마계 그 자체인 것 같아요. 무질서해 보여도 뜯어보면 멋과 격이 있어요. 무엇보다도 ‘즐거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축제는 관람객을 오래된 상가건물로 초대한다. 골목에서 100년 묵은 적산가옥을 만났다. 2층은 지역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재즈클럽이, 1층은 수상한 가라오케가 있다. 두 업장은 동시에 영업중이다. 어울리지 않는 것이 느슨하게 뭉쳐 독특한 미감을 발휘하는 동네. 축제 기획자들은 인천 구도심의 기이한 공간을 주목한다.
한국의 지역축제는 주로 광장에서 열린다. 수평적인 공간에 터를 잡아 잔치를 연다. 지붕이 뾰족한 임시 천막, 넓게 펼친 플라스틱 의자. 임시무대에서 펼쳐지는 찬조공연은 K축제의 전형. 2023년 9월, 인천 구도심에서 열린 어느 지역축제는 달랐다. 광장이 아니라 골목에서 페스티벌이 열렸다.
왼쪽부터 이창길 개항마을 대표, 양윤정 프로젝트 매니저, 인천맥주 박지훈 대표 ⓒfrice
7080라이브펍에서 진행된 노래경연대회에 열광하는 참가자들 ⓒfrice
광장이 아니라 좁은 밀실에서 이뤄지는 기묘한 축제였습니다. 어쩌다 이런 축제를 만들었나요?
창길 마계인천 페스티벌은 개항마을 대표 이창길과 인천맥주 대표 박지훈의 식사 중 수다에서 시작됐습니다. ‘A에서 B행사 열면 잘 어울리지 않을까?’ ‘C라는 곳에는 D를 모시고 E를 해보고 싶어.’같은 말이 현실이 된 거죠.
저희는 개항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활동중입니다. 브랜드로 인식되지만, 회사나 협동조합은 아닙니다. 서로 계약관계로 묶이지 않았다는 게 핵심인데요. 이런 관계는 서로 매력이 없거나 마음에 안 들면 일을 안 만든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결혼은 아니고 연애. 일종의 다자간 연애상태라 볼 수 있겠네요.(웃음)
밀실과 밀실을 잇는 수직 통로를 거스르면 어느 순간 새로운 장이 펼쳐진다. 각 공간의 테마와 쓰임이 새롭다. ⓒfrice
지훈 축제행사는 지인과 술 마시면 자주 하는 이야기들의 연장선입니다. “이런 기획을 우리 동네에서 하면 정말 끝내주지 않을까?”라고 던지면 어느샌가 실행되는 거죠. 방향성과 색이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놓으면, 다들 서로 못 참습니다. 뜻이 맞으니 일을 펼쳐야 직성이 풀리는 거죠. 마계인천 페스티벌도 사실 이렇게 판을 키울 계획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일이 되게끔 만들다 보니 계속 커졌죠.
인천맥주가 진행한 팝업스토어 이벤트와 한정판 크래프트 비어. ‘마계인천’이란 밈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인천맥주
박지훈 대표님은 이미 인천맥주를 통해 ‘마계인천’이란 이름을 걸고 팝업 이벤트를 여셨죠. 지역 노포와 협업에 나섰습니다.
지훈 페스티벌의 시작점입니다. ‘지금 타이밍에 판을 키우면 딱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어요. ‘마계인천’이라는 이미지는 호불호가 갈리는데, 이제 호(好)가 조금 더 많아지는 시기인 거죠. 처음엔 나쁜 시선으로 보던 분들도 ‘쟤들이 지금 뭔가 진실한 마음으로 애쓰긴 하는 구나’라는 식으로 응원해 주시는 걸 본능적으로 체감해요.
창길 박지훈 대표님은 원래 공연했던 사람이고 지금은 맥주 만드는 사람입니다. 존재 자체가 고유자원입니다. 서로 형편을 잘 알고 있으니, 지역 내 기획자끼리 협업을 추진하면 굉장히 빠르게 돌아가는 거죠. 마음 맞는 사람끼리 각자의 배경이나 발상을 이미 공유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마계인천 페스티벌의 레퍼런스는 제 영국 유학시절에 있었어요.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얻은 영감이죠. 시내 곳곳에서 거리 공연을 볼 수 있었어요. 여기에 저희가 임대해서 쓰는 상업공간이 있어요. 수년간 인근 이웃과 맺은 관계도 있죠. 이번 축제는 각자의 자원이 유기적으로 뭉쳐 벌어진 협업입니다.
공식 포스터. 강렬한 색감과 일러스트가 특징이다. ⓒfrice
포스터부터 파격입니다. 일단 정보값을 담은 디자인이 적어요.
창길 없는 게 참 많았습니다(웃음) 보통 페스티벌과 비교했을 때 중앙 무대가 일단 없고요. 맵도 없었습니다. 포스터에는 타임 테이블도 느슨하게 적혀있어요. 다만 QR코드처럼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건 디자인이 크게 들어가 있어요. 링크 찍으면 정보 열람이 가능하니까. 중요한 정보는 웹사이트에. 올 사람들에게 중요한 정보만 노출시키자. 스마트폰 켜서 QR코드 찍을 정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 행사정보를 보게 만드는 디자인이었죠.
저는 이게 본능을 따르는 일이라 봅니다. 계획이나 디자인 이전에 본능이 있어요. 행사를 기획한다면 뭐가 더 재밌을지를 따져요. 결국 더 이끌리는 방식을 따라가는 거죠. 개항로 축제의 핵심은 ‘재미’였어요. 철저하게 주최자 입장에서 재밌거나, 관람객 입장에서 재밌을 것 같은 행사만 추려서 진행한 거죠.
제가 얼마 전에 어느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회의에 들어갔어요. 페스티벌 계획서에 피드백을 남겨달라 하시기에 ‘진짜 말해도 되냐?’라고 물어봤습니다.
소신발언 하셨나요?(웃음)
창길 계획에 품바가 쓰여있었습니다. 품바나 사물놀이. 물론 할 수 있죠. 저는 회의 패널에게 물었어요 ‘행사 때 품바 보실 분 계십니까?” 다들 웃더군요. 안 볼 거라는 거죠.
페스티벌은 보통 관람형이긴 해요. 마계인천 페스티벌은 100% 참여형이라고 해야할까요. 흩어진 행사장을 전부 돌지 말지. 공연에 호응을 할지 말지. 물건을 살지 말지. 그러나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각자 알아서 하는 거죠. 이것만큼은 의도된 부분입니다.
고층건물에서 내려다본 한밤의 개항로 ⓒfrice
‘개항로 프로젝트’는 인천 구도심의 건축공간을 활용하고 싶은 지역 소상공인의 느슨한 연합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에는 팝업 페스티벌을 시범운영하며 변화를 꾀합니다.
창길 지금보다 더 폭넓게 가져가고 싶다는 마음이 크죠.
많은 사람들이 도시부흥이나 지역재생을 희망해요. 교수, 상공인, 행정공무원, 대표주민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목소리를 키우죠. 로컬 프로젝트를 만들어요. 아쉽지만, 잘 된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왜 안 됐을까’를 고민해 봤어요. 제 생각은 “옛날엔 그런 조직이 필요했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
‘로컬 디자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로 이해되네요.
창길 조직화가 통한다면, 이유는 전문성 때문일 거예요. 옛날엔 교수, 관공서 직원, 상공인 모두 각자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스페셜리스트였고. 역량이 뭉쳤을 때 시너지 효과가 났죠.
인터넷이 깔린 지금은 달라요. 지금은 누구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고, 평범한 이웃이 알고 보면 전문가인 거예요. 통닭집 사장님이 사실 뛰어난 예술가. 카페 사장님이 유능한 이공계 박사인 경우. 많잖아요. 옛날엔 상인은 상인이고, 교수는 교수였어요. 요즘 사람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쥐고, 상황에 맞게 드러내며 살아요.
바꿔 말하면, 이제 전문가가 다양하게 모일 필요가 없어요. 다양함을 간직한 개인이 서너 명 모여 행동하는 게 나을 수 있어요. 색이 분명한 사람들이 방향성을 맞춰 무언가를 시도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거죠. 설명하긴 어려운 생각인데.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이번 축제는 인천에서 이창길과 박지훈이라는 사람이 만났고. 그들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만들어낸 팝업 이벤트입니다. 저희가 이렇게 뭔가 만들어 내면! 저희가 끼든, 안 끼든 지역 내에서 다음 일이 벌어지겠죠.
주말저녁 손님으로 가득찬 인천 신포시장.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노포가 밀집했다. ⓒfrice
축제를 하려면 공간이 필요합니다. 대관장소는 모두 상업공간이었고, 노포의 경우 지역상인들의 협조를 구해야하는데요.
윤정 노포와의 협업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지역사회에서 상생과 협업은 정말 중요한 가치고, 필요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죠. ‘지역에 좋은 일을 하니까, 이해받고 싶어.’ 혹은 ‘지역을 위한 일인데 협조를 해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들이 샘솟았어요. 하지만 현실은 핑크빛이 아니었죠.(웃음)
지역을 위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해서, 청년들이 주체가 된다고 해서 모두가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않죠. 누군가에겐 생계나 돈이 가장 중요할 수 있어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더라고요. 한편 협조를 구하는 과정에서 뜻이 맞는 분들을 만나거나, 생각을 바꾸는 분들도 계셔요. 아마 그런 경험들이 지속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인천 구도심은 디자이너에게 보물상자다.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 같은 건물에 모여있다. 기이한 미감을 뽐내는 그래픽 디자인이 길거리에 널려있다. ⓒfrice
창길 가장 고심했던 축제장소는 노래자랑대회와 신해철음악감상회였어요. 심야시간에 DJ파티까지 하려면 커다란 항만창고같은 걸 빌려야하나 고민했죠. 온갖 아이디어가 나오다 7080라이브펍과 다방으로 의견이 모였어요. 이곳은 중장년층 전용공간이기도 했고, 특히 MZ세대라면 갈 리가 없던 공간이잖아요. 의외성이 기대되는 거예요. 여러 가게를 돌며 후보군을 좁혔죠. 쾌적하지 못한 지하공간이나 ‘아! 여긴 너무 음침하다’ 싶은 곳은 걸렀어요.
지훈 7080라이브펍의 소파는 이제 돈 주고도 못 구할 인테리어입니다. 다방의 경우 흡연자들이 마음대로 흡연했을 거 같은 흔적이 곳곳에 있어요. 저희가 탐색한 공간이 마계라는 이미지와 비슷한 거죠. 그런 장소를 새롭게 꾸미고 희화화 시키는 거잖아요. 재미있는 행사 치르면서 나타날 색다른 모습을 기대했습니다.
동인천다방에서 만난 마계인천 페스티벌 기획자들. ⓒfrice
행사 준비하면서 생긴 해프닝이 궁금합니다.
윤정 제가 현장에 투입돼서 페스티벌 기획을 진척시킨 건 정말 짧은 시간이었거든요. 가장 특이하다 느꼈던 건 소통방식이었어요. 기획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큰 그림에 대한 공유만 있고. 나머지는 알아서 움직여서 콘텐츠를 채운다는 인상? 예컨대 박지훈 대표님은 음향이나 무대세팅을 잘 아세요. 그러면 공연프로그램은 박 대표님이 임의로 행사준비를 진행시키는 거죠. 헛힘을 쓰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면요?
윤정 보통 축제가 열리면 홍보를 해야 하잖아요? 어디에 포스터를 붙이고 누구한테 알릴 건지. 서류를 써보는 게 상식이죠. 곁에서 지켜보면 두 분은 페이퍼 워크 거의 고민하지 않아요. 메인 디렉터 두 명이 ‘어떻게 하면 즐거운 페스티벌이 될 수 있을까?’만 고민하는 거죠. 분산되지 않는 에너지가 남다름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창길 박지훈 대표님과 손발 맞춘 세월이 워낙 깁니다. 알아서 움직이는 일이 많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문제가 안돼요. 하지만 저희도 알아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들이 있는데, 둘 다 체크를 못하는 거예요. 실수인지도 모르고 넘어갈 일들이죠.
그런 건 프로젝트 매니저인 윤정님이 중간에서 환기를 시켜주시는데(웃음) 엉뚱한 곳으로 걷는 소들을 원래 가려고 했던 길로 잘 몰아주시죠.
빠른 의사결정과 화끈한 실행력은 상대적으로 디테일을 약화시킵니다. 윤정님처럼 디테일을 챙기는 멤버가 있기에 상호보완이 되는 거군요.
창길 제가 지방출장 후 복귀하는데, 문득 이번 행사준비 너무 전형적으로 간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축제를 여는 명분이나 목적에 휘둘린다는 느낌. 러닝메이트인 박지훈 대표님에게 연락했어요.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으니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라고 말씀하셨죠. 바로 다음날 기존 기획을 조정했습니다.
‘우리가 진짜 하고 싶은 것만 하자’라는 원칙을 다시 세웠어요. 둘 다 찝찝했던 기획은 결국 ‘우리가 하고 싶은 걸 100% 하고 있지 않았다’라는 반증이죠.
신해철음감회는 40년 묵은 2층 다방에서 열렸다. 접근장벽이 높은 상업공간에 음악감상이라는 콘텐츠를 더하며 축제흥행스팟으로 도약했다. ⓒfrice
여러분이 축제를 통해 진짜 하고 싶었던 게 정확히 무엇인가요?
창길 신해철음악감상회 같은 행사죠. ‘사람이 여럿 모여서 신해철 음악만 듣는 행사 있으면 미치지 않을까?’ ‘술 마시면서 노래 듣고 따라 부르면 재밌어 죽겠지 않을까?’ 이런 건 상식선에서 판단하면 아예 모임을 열 수조차 없어요.
하지만 축제니까. 금기를 넘는게 축제의 본질이니까 가능해집니다.
지훈 군중 속으로 들어가서 떼창을 하고싶은 마음. 향수를 건드리는 기획. ‘마계인천’이라는 축제 콘셉트와 부합하는 행사. 내심 하고 싶었던 이벤트. 저희가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창길 설득을 하면 안 되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나랑 견해가 다른 사람들 설득해서 뭘 같이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설득이 끝나면 설득된 방향에 맞춰서 둘의 색이 비슷해지잖아요. 설득이 거듭될수록 대한민국은 다 비슷한 색으로 물드는 거 아닐까? 그러면 점점 재미 없어지는 거 아닐까? 막연하지만 페스티벌에서는 그런 생각이 더 강했어요. “더 우리 스타일대로. 누구 따라 하지 말고”
인천 구도심에서 활동중인 로컬 크리에이터의 거점에서 다양한 한글 시각디자인요소를 발견했다. ⓒfrice
준비과정에서 특별히 신경쓴 디자인이 궁금합니다.
지훈 한글을 적극적으로 쓴다는 점? 원래 한글을 시각디자인 요소로 쓴다는 건 일종의 죄악이었죠. 한글은 멋이 없고 다른 문자에 비해 미적인 퀄리티가 떨어지는 데다 디자인하기 까다롭다는 인식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문화적인 위상이 바뀌었어요. 한글이 예쁘다는 인식이 커졌고 한글을 활용한 디자인이 아름다워졌죠. 한글에 매기는 아름다움의 기준도 달라졌어요. 눈에 익숙해지면 그제야 아름다워 보이는 게 더러 있잖아요. 개항로 프로젝트 팀이 애용하는 한글 기반 디자인이 그런 거 같아요. 우리는 한글에서 멋을 느끼고 그것을 계속 입어보려는 거죠.
거리에 붙은 마계인천 페스티벌 공식 포스터 ⓒfrice
선뜻 채택 할 디자인은 아닙니다.
창길 포스터 최종시안을 결정할 때, 고민이 컸어요.
선택의 기준이 됐던 건 음반입니다 “지금 가장 트렌디한 인쇄물은 인기 앨범 재킷에 있다”라는 아이디어였죠. 뮤직 스트리밍 플랫폼에 들어가 인기차트 TOP20를 체크했어요. 각 앨범 커버 디자인의 유사성을 발견했어요. 트렌드에서 벗어나는 게 옳다는 판단을 내리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