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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흐르는 마음을 활판에 새깁니다

서울 원서동 긷에서 활판인쇄 기반 디자인 작업을 하는 최민영 디자이너의 모습

인쇄소 긷 최민영 디자이너

서울 창덕궁 담벼락 옆 작은 마을, 원서동. 볕이 잘 드는 한옥 안에서 새까만 쇳덩어리가 움직인다. 납작한 활판을 새하얀 종이 위로 꾹 눌러 멋진 그래픽이 새기는 곳. 인쇄소 ‘긷’은 백 년 묵은 기계식 활판인쇄기와 한지를 조합하는 인쇄디자인 스튜디오다. 최민영 대표 디자이너를 만나 근대적 인쇄기술을 시각 디자인에 응용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인쇄소 긷 최민영 디자이너
ⓒfrice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인쇄 디자이너 최민영입니다. 한지와 활판인쇄기를 활용하는 인쇄물 작업에 관심이 많습니다. 원서동 빨래터 근처 한옥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요.

저는 사진을 전공했고 2000년대 후반까지 영화 스틸 작업을 했습니다. 디자이너 업무는 2011년에 종로 물나무사진관에 입사하며 맡게 됐어요. 재직 중에는 사진 인화용 한지를 개발하는데 참여하거나 문화 재단과 협업하는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았었죠.

인쇄소 긷 내부
공간 내부에서 바라본 활판인쇄기. 총 2대가 설치됐고 실제로 운용하는 기기는 1대
공간 내부에서 바라본 활판인쇄기. 총 2대가 설치됐고 실제로 운용하는 기기는 1대. ⓒfrice

‘긷’이라는 스튜디오 이름이 독특합니다.

긷은 ‘기둥’을 일컫던 옛말입니다. 나무가 자랄 때 대지에서 출발하잖아요. 중력을 거스르면서 생명력 있게 자라나는 모습들을 보면서 기둥을 떠올렸어요. 우리가 생활을 의식주로 구분할 때, 저는 주(宙)가 제일 마지막에 발현된 문화라고 생각하는데요. 기둥이야말로 집의 기본이자, 지붕을 떠받들며 사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긷 같은 인쇄물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TALK1. 활판인쇄술과 계절력

미국에서 19세기 후반 제작된 기기로 추정되는 기기 사진
챈들러 앤 프라이스 활판인쇄기를 움직이는 최민영 디자이너 미국에서 19세기 후반 제작된 기기로 추정된다
챈들러 앤 프라이스 활판인쇄기. 미국에서 19세기 후반 제작된 기기로 추정된다. ⓒfrice

2018년에 독립해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렸어요. 한지를 이용해서 한국적인 멋을 가진 인쇄물을 만들어보고 싶었거든요. 백 년 넘은 미국산 활판인쇄기도 그때 만났습니다. 청담동 앤티크 숍에서 발견했는데 수리와 개조를 마치니 멀쩡했어요. 활판인쇄기에 한지를 끼워 넣으니 그 위에 담기는 아트워크가 참 예뻤어요. 활판의 양각으로 한지를 꾹 누르면, 납작 눌린 자리에 남은 글씨나 그림이 묵직한 분위기를 내죠.

한지와 활판인쇄기를 활용한 긷의 대표 디자인 상품 '계절력'. 24절기와 달의 변화를 표기했다
한지와 활판인쇄기를 활용한 긷의 대표 디자인 상품 ‘계절력’. 24절기와 달의 변화를 표기했다. ⓒfrice

인쇄소 긷의 대표 디자인은 ‘계절력’입니다. 왜 만들기 시작하셨나요?

계절력은 2017년부터 만들기 시작했어요. 기존 달력처럼 날짜를 세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계절을 감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태양력은 현대 사회의 기본 약속이잖아요. 원래 태음력으로 일 년을 바라봤던 우리가 절기와 풍속을 잊지 않길 바라며 만들어봤어요.

계절을 표기한 글자를 확대한 모습. 활판 양각에 한지가 꾹 눌리며 종이 위로 독특한 입체감이 드리운다
계절을 표기한 글자를 확대한 모습. 활판 양각에 한지가 꾹 눌리며 종이 위로 독특한 입체감이 드리운다. ⓒfrice

계절을 기준으로 시간의 시작과 끝맺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했어요. 계절을 기준으로 시간을 나누다 보니까 24절기가 자연스럽게 들어왔네요. 물나무 사진관 시절부터 만들었는데, 독립하고 나서도 꾸준히 만들고 있어요.

절기나 계절은 자연을 구분하는 개념일 텐데요. 「자연은 계속 흐른다. 그 속에서 우리 같이 어우러져서 잘 살아보자!」 라는 생각으로 달력을 만들고 있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우리에게 언제든 있다고 봐요. 2024년은 먹색 잉크로 날짜 표현을 하면서 ‘달의 변화’, ’24절기’, ‘대표 공휴일 표시’에 집중했어요.

해마다 조금씩 다른 디자인을 시도하고 계시죠?

네. 한때 공휴일을 붉은색으로 새기는 작업을 시도했는데 그건 딱 한 해만 했어요. 지금은 공휴일 숫자 위에 점을 찍는 것으로 디자인을 바꿨습니다.(웃음) 활판인쇄기에서 만든 인쇄물은 기계 특성에서 오는 한계가 있어요. 가장 많이 쓸 색을 먼저 깔고 그 위에 새로운 색을 덧발라야 합니다. 기계 특성상 종이에 여러 색을 동시에 새길 수 없어서 작업을 따로 진행해요.

원판 위에 잉크를 바르고 롤러를 굴리면 색이 판 위에 고르게 퍼지는 구조다
색 사용에 제약이 걸리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원판 위에 잉크를 바르고 롤러를 굴리면 색이 판 위에 고르게 퍼지는 구조다. 색 사용에 제약이 걸리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frice

여러 색채를 쓰려면, 일단 먹색 부분을 한 번 다 찍어내고 나서야 다른 색을 덧바를 수 있어요. 만약 평일 표시는 먹색, 공휴일을 표시는 붉은색을 쓴다면. 우선 먹색 인쇄작업을 미리 마쳐야 해요. 붉은색 전용 활판과 붉은색 잉크를 갈아 끼워서 동일한 인쇄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반복합니다. 색을 여러 개 쓰려면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니죠.

먹색과 붉은색을 동시에 찍어냈을 때, 종이 위에서 의도와 다르게 인쇄물이 틀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작업을 하는 시간도 굉장히 오래 걸리고요. 만들면서 잃는 부분이 너무 많이 생기다 보니 지금은 달력에 먹색만 활용하고 있습니다. 컬러는 달력을 거는 실이나 포장지처럼 부속품에 따로 쓰고 있어요.

종이는 대부분 한지를 쓰고 계시죠. 이유가 궁금합니다.

흰색과 여백이 가장 잘 표현되는 종이여서 씁니다. 한지는 언뜻 보기에 비어 있지만, 무언가 차 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게 참 좋습니다. 제가 하는 디자인 작업들이 제일 잘 표현될 수 있는 게 ‘한지’라는 물성을 살릴 때인듯해요. ‘활판 인쇄’라는 표현법이 한지와 제법 잘 어울리고요. 활판인쇄뿐만 아니라 한지를 활용한 디지털 인쇄작업도 맡고 있습니다.

'긷'의 디지털 인쇄물
대형 프린트기에 급지가 가능한 특수한지와 피그먼트 프린트로 한국적인 미감을 연출한 인쇄물 작업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긷’의 디지털 인쇄물. 대형 프린트기에 급지가 가능한 특수한지와 피그먼트 프린트로 한국적인 미감을 연출한 인쇄물 작업을 확인할 수 있었다. ⓒfrice

다른 종이는 어떤 식으로 쓰시나요?

한지가 아닌 종이로는 문켄디자인 종이를 제일 많이 써요. 러프하면서 깔끔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양피지 질감이 나는 쉽스킨도 가끔 즐겨 써요. 기본 세팅은 까끌까끌한 느낌이 드는 종이를 많이 채택하는 편인데, 디자인 주제에 맞춰 응용하는 편입니다.

한지가 디자인의 기준이다 보니, 한지와 잘 어우러질 종이를 선택해서 쓰고 있습니다.

활판인쇄 작업에 필요한 도구가 담긴 진열장
활판인쇄 작업에 필요한 도구가 담긴 진열장 ⓒfrice

혹시 새롭게 준비 중인 디자인 상품이 있나요?

수 년째 구상만 했지,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가 않네요.(웃음)

불규칙한 텍스처를 갖고 있는 한지로 캐주얼한 봉투를 만들어 쓰임새를 주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어요. 편지를 담거나 용돈을 담는 봉투라면, 선물 교환할 때 쓰지 않을까 싶어요.

계절력을 조금 더 작은 사이즈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월(月)력으로 바뀔 듯하고. 탁상용 캘린더가 된다면, 한지에 직접 펜을 들고 메모를 하는 경험을 디자인하고 싶어요. 요즘 들어 사람들이 한지에 글을 써보는 경험이 많이 없어서. 잘 연출한다면 색다를 것 같아요.


TALK2. 한국적인 미감을 새기는 일

디자인 견본을 전시해둔 접객 공간
디자인 견본을 전시해둔 접객 공간 ⓒfrice

종이 위에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새기는 ‘긷’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미감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어요.

한국 사람들이 오늘날 서양식 문화를 소비해도, 사유하는 방법은 동양의 전통에 뿌리내리고 있어요.

거기서 한국적인 사유를 발견해서 응용한다면, 같은 시대를 살아가더라도 굉장히 다른 관점의 해석을 낳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과정을 거쳐 한국적인 미감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오늘’에 고착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 달라질 때마다 다른 형태로 발현되는거죠.

저는 자연이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뉘어 바뀌는 걸 아름답다 느끼는 사람이고, 한국의 아름다움은 담백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하나 하나를 모으면, 한국적인 디자인이라는 게 어느새 자연스럽게 배어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미감(美感)’이라는 한자어가 디자인이라는 외래어의 번역으로써 부분적으로 적합하다고 봐요.

작업능률 향상을 위해 활판인쇄기에 전자식 스위치를 연결시켜 개조했다
ⓒfrice

그리고 저는 한국적인 미감이 시각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것에서 강한 영향을 받는다고 봅니다. 예컨대 한지는 그 자체로 예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학습을 통해 한지가 수준 높은 종이라는 걸 알고 아름답다 말해요. 어떤 사람은 우리나라가 인쇄 종주국이라는 맥락을 알아요. 그런 분들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더 예민하게 느끼실 듯합니다.

디자인이라는 개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을 남들한테 특별하게 인식시키려는 의지가 생겨요. 혹은 대상을 특별하게 인식해야 될 거라 믿게 됩니다. 사물이나 생활양식을 이데올로기화시키는 셈이죠.

스튜디오 안 창가에 매달린 입춘첩
스튜디오 안 창가에 매달린 입춘첩. ⓒfrice

민영님으로부터 가장 자연스럽게 배어 나온 한국적인 미감은 무엇인가요?

가느다란 줄에 무언가를 매달고 싶어 하는 마음이 제게 있어요. 무언가를 프레임에 딱 가둬놓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내버려두는 걸 좋아하나 봐요. 종이 한 장 그 자체는 바람에 흔들리고 약해 보여도. 그 한 장이 바람도 타고 살랑살랑 움직이며 버티는 모습이 예쁘거든요. 줄에 매달린 한지를 바라보면 거기에 빛도 배어들어요. 날씨에 따라 빛에 따라 같은 게 다르게 보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스튜디오에 전시된 활판인쇄물 샘플
스튜디오에 전시된 활판인쇄물 샘플 ⓒfrice

「나는 이번 작업물을 진짜 한국적으로 꾸며야지!」 라는 결심을 갖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만드는 사람은 사실 거의 없다고 봐요. 살아오면서 본 것, 사적인 취향 같은 게 어쩔 수 없이 한 방향으로 기우는 게 아닐까요? 저는 전통의 이해와 현대 생활 양식의 파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에서 무언가를 길어 올려 거기에 현대적인 쓰임새를 만드는 일. 제가 안고 있는 고민입니다. 같은 고민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반가울 거 같네요.(웃음)

TALK3. 활판인쇄물 디자인 프로세스

전시행사를 위한 활판인쇄작업
간격을 맞춰 활판과 종이를 서로 맞대게 만든다
최민영 디자이너가 명함 사이즈 인쇄물 200여장을 직접 인쇄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전시행사를 위한 활판인쇄작업. 최민영 디자이너가 명함 사이즈 인쇄물 200여장을 직접 인쇄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frice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니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작업이 예상됩니다. 실제로는 어떠신가요?

근대적인 활판인쇄술만 고집하진 않아요. 만약 전통적인 방식을 따른다면, 납판에 직접 글자 조판까지 해낼 텐데요. 저는 납이 아니라 아연 판을 쓰고 있고, 컴퓨터 일러스트 작업을 곁들여 따로 활판을 만들고 있어요.

근대 활판인쇄술은 보통 납판을 썼는데, 납은 잘 알려져 있듯 인체에 해로운 금속이라 아연으로 대체했어요. 납판과 비교하면 아연판의 물성이 상대적으로 무르긴 합니다. 활판을 인쇄기에 끼우면, 잉크가 돌아가는 롤러와 판의 양각이 닿는 면 사이가 미세하게 오차가 나요. 잉크와 종이가 효과적으로 맞물리는 세팅을 찾아내면서 아연판의 높이를 조정하기도 합니다.

활판을 쌓아놓고 측면에서 확대했다. 도톰한 양각에 묻은 마른 잉크가 인상적
활판을 쌓아놓고 측면에서 확대했다. 도톰한 양각에 묻은 마른 잉크가 인상적. ⓒfrice

인쇄용 활판은 어떻게 제작하시나요?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프로그램으로 아트워크를 만들고, 충무로에 있는 금형업체에 이미지 파일을 전달드려요. 아트워크 모양대로 필름을 떠주시는데요. 그걸 아연판 위에 부식을 시켜서 원하는 활판을 얻어내요. 현대적인 활판 생산법이죠.

근대 이전 활판인쇄는 같은 글자를 크기 별로 다 따로 만들어야 했어요. 결국 수만에서 수 십만 개의 활자들이 만들어집니다. 활자를 판에 따로 모으는 걸 ‘집자’라고 하는데요. 집자를 마친 활판을 기계 위에 올려서 찍어내는 방식이죠.

지금은 전통방식으로 활판을 제작하는 곳은 많지는 않아요. 파주의 ‘활판 공방’ 이라는 곳과 한 두군데 정도예요.

'긷'에서 제작한 다양한 활판을 가지런히 모아 조감구도로 촬영한 사진
‘긷’에서 제작한 다양한 활판 ⓒfrice

활판을 쭉 모아보니 명함이나 엽서가 눈에 띄네요. 주로 어떤 분들이 활판인쇄물을 찾으시나요?

명함, 청첩장, 레스토랑 메뉴판 같은 의뢰가 많이 들어옵니다. 명함은 스튜디오 진열장에 있는 걸 보고 개인정보만 바꿔 달라는 분도 계신데, 제가 다시 설득을 하죠. 템플릿을 만들고 내용만 바꾸는 게 개인적으로는 용납이 안되네요.(웃음) 활판 디자인은 능동적으로 제안하는 편입니다. 레이아웃, 테마, 서체 … 어떻게든 조금씩 변화시키려고 애써요.

손으로 뭔가 만들어내는 분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활판인쇄가 핸드메이드와 같은 결을 지녔다고 보시는 듯해요. 한국적인 미감을 추구하는 회사나 공예품을 다루는 업체도 많이 찾아주세요. 자연을 소재로 활동하는 창작자, 분재 만드는 분이나 식물을 가꾸는 분도 자주 오시죠.

인쇄 목적은 주로 ‘정보 편집’이나 ‘소식 안내’입니다. 명함이나 엽서처럼 브랜딩을 위한 인쇄물 시안의뢰도 흔하고요. 공통적으로 자기자신이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는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손이나 자연이라는 키워드에서 교집합이 모이네요. 종이를 활용한 패키지 인쇄 의뢰 같은 것도 들어오나요?

라벨지 작업은 해봤어요. 박스 작업은 개인적으로 권하고 싶은 작업은 아닙니다. 박스 패키지는 내용물을 보호하고 견고해야 하니까요. 패키지 속 소품 포장이나 박스를 덮는 슬리브(띠지)는 테스트해 봤어요. 슬리브나 봉투를 만드는 건 흥미로운 디자인이 될 듯합니다.

술이 담기는 유리병을 감싸는 한지 인쇄물과 활판. 긷은 전통주 브랜드 '일엽편주'의 패키지 라벨지 작업을 맡고 있다
술이 담기는 유리병을 감싸는 한지 인쇄물과 활판. 긷은 전통주 브랜드 ‘일엽편주’의 패키지 라벨지 작업을 맡고 있다. ⓒfrice

가장 많이 사용한 활판이 궁금합니다.

일엽편주라는 전통주 브랜드가 오랜 고객사입니다. 저희가 술병을 두르는 띠지를 만들었는데요. 한지를 쓴 활판인쇄물로 띠지 디자인을 부탁하셨어요. 일엽편주 활판을 2019년도부터 쓰고 있거든요. 여태까지 패키지 라벨지를 만 개 이상 찍어냈는데요. 아직까지도 문제없이 쓰고 있습니다.(웃음)

긷의 활판인쇄기에서 찍을 수 있는 인쇄물의 최대 사이즈는 얼마인가요?

가로 25cm, 세로 15cm 폭입니다. 보통 이 사이즈보다 작은 활판을 만들어서 종이에 인쇄하고 있어요.

카페 오너가 의뢰한 엽서 디자인. 종이에 그린 스케치를 활판으로 이식했다. 잉크와 연필의 물성이 공존하는 인쇄물로 재탄생
카페 오너가 의뢰한 엽서 디자인. 종이에 그린 스케치를 활판으로 이식했다. 잉크와 연필의 물성이 공존하는 인쇄물로 재탄생. ⓒfrice

'긷'에서 제작한 스튜디오 오픈 기념 파티초대장. 한옥 천장을 올려다볼 때 드러난 기둥을 사진으로 찍고 그것을 활판으로 만들어 직접 인쇄했다
‘긷’에서 제작한 스튜디오 오픈 기념 파티초대장. 한옥 천장을 올려다볼 때 드러난 기둥을 사진으로 찍고 그것을 활판으로 만들어 직접 인쇄했다. ⓒfrice

종이에 촘촘하게 새겨진 점이 디지털 사진의 픽셀처럼 기능한다
종이에 촘촘하게 새겨진 점이 디지털 사진의 픽셀처럼 기능한다. ⓒfrice

앞으로의 긷은 어떤 활동을 하시려고 합니까?

제가 커리어를 시작했던 사진과 관련한 디자인 작업들, 자연적인 스토리를 가진 작가나 브랜드와의 협업 프로젝트들을 해보려고 해요.

많이 하고 있는 작업은 디지털 사진 작업을 활판으로 만들어서 흑백사진을 인쇄하는 건데요. 사진을 전부 *망점으로 바꾸고 판을 만든 거라 찍고 나면 종이에 아주 작은 도트가 보입니다. 「활판 인쇄로는 정보를 전달하는 텍스트만 표현되지 않을까?」 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요. 도전해 보니 이미지 표현의 가능성이 보이고 있어서 훗날 인쇄 디자인에 반영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흘러간 문화를 주목하고 옛 도구를 복원시켜 디자인에 활용하는 방식 어떻게 보셨나요? 디자인을 하는 도구의 구조를 이해하고 소재의 물성을 탐구하는 게 나만의 디자인을 만드는 지름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혹시 특정 도구나 사물의 물성에 강한 흥미를 느끼는 편인가요? 그렇다면 스크롤을 올려 인터뷰를 다시 읽어보세요. 그리고 디자이너의 관점과 작업과정을 주목해보세요. 거기서 얻은 여러분의 생각이 근사한 디자인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뺀질한 동네 잡지가 말하는 홍대다움

홍대앞을 다루는 로컬 컬처 매거진 스트리트 H

<1부에서 이어집니다>

장성환 디자이너의 부캐는 <스트리트 H>라는 로컬 매거진의 발행인이다. 홍대앞을 둘러싼 문화와 홍대앞의 다양한 지리정보를 기록중인 <스트리트 H> . 그들은 최근 홍대앞 사람들을 만나 ‘홍대다움’은 무엇인가?’를 물었다. frice도 그것이 궁금하다. 가 생각하는 ‘홍대다움’을 물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 쇼룸에 전시된 스트리트 H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는 홍대앞 로컬 매거진 <스트리트 H>를 15년 넘게 발행하셨죠.
잡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스트리트 H>는 홍익대학교 앞에서 시작한 다양한 문화와 변화. 홍대앞을 홍대앞스럽게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담아내는 동네문화 잡지입니다. 맞춤법 규칙 상 ‘홍대 앞’으로 띄어쓰기해야 되는 걸 알지만, 홍익대학교 앞 문화권이 일종의 고유명사이길 원해요. <스트리트 H>는 그래서 일부러 ‘홍대앞’* 이라고 붙여쓰기를 합니다.


TALK1. ‘홍대다움’이란 무엇인가?

창간 15주년 기념호 주제가 ‘홍대다움’입니다. 이 주제에 응답한 홍대앞 사람들 생각이 흥미로웠어요. 발행인이 정의하는 ‘홍대다움’이 궁금하네요.

제가 생각하는 홍대다움은 ‘똘끼_비정형’입니다. 다른 과 출신들이 들으면 섭섭해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생각하는 홍대의 DNA의 시작은 건축학과와 미술대학이라고 생각해요.

학력고사 성적은 낮아도 그림만큼은 아주 열심히 그린 친구, 미술학원조차 없는 동네에서 독학으로 미대 입시를 준비했던 친구, 이렇게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이 뒤섞이면서 홍대앞에 재밌는 일이 많이 벌어졌거든요. 그야말로 ‘재미난 작당’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홍익대학교 정문 (1996)
홍익대학교 정문 (1996) ⓒ스트리트 H
홍익대학교 정문 (2024)
홍익대학교 정문 (2024) ⓒfrice

특히 미술과 건축을 전공하면 작업실이 필요합니다. 컴퓨터 이전, 수작업 시절에는 과제 결과물이 꽤 크기 때문에 더 필요했죠. 대형 상권 형성으로 홍대앞 작업실이 다른 곳으로 많이 밀려나게 됐지만 그전에는 재학생 4명 중 1명은 홍대앞에 작업실을 했을 겁니다. 제가 볼 땐 어림잡아 홍대앞에 500여 개의 학생들 작업실이 있었을 것으로 봐요. 밤마다 500여 개의 반딧불이가 깜박이는 동네가 바로 홍대앞이었어요.

여기에 예술, 문화, 출판 종사자들도 홍대앞으로 모였습니다. 한국의 출판사 밀집 지역은 원래 종로 관훈동이었어요. 그러다 당시 출판사들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서 온 동네가 서울의 변두리인 홍대앞이었죠.

홍대앞 공동작업실 내부
홍대앞 공동작업실 내부 ⓒ서울역사박물관
홍대앞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커뮤니티 테이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원격근무하는 예술/문화 종사자를 흔히 만날 수 있다
홍대앞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커뮤니티 테이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원격근무하는 예술/문화 종사자를 흔히 만날 수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그때의 ‘홍대앞’은 어떤 분위기였나요?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이 84년에 생겼어요. 그전까지는 그 아래로 내려갈 일이 없었어요. 그야말로 홍대앞은 홍대 교문 앞 정도의 좁은 의미였습니다. 지금의 호미화방이 있는 서교 오피스텔 앞길이 당인리 발전소(현 한국중부발전 서울발전본부)로 무연탄을 나르던 철도였어요.

발전 연료가 석유로 바뀌며 철도가 폐기되자 무허가 건물들이 무단 점거하게 되었고 일정 기간 지나면서 점유권이 생기게 된 거죠. 지금은 핸드폰 가게나 액세서리 가게들이 있지만 오래전에는 기록에 남을 만한 멋진 사람들이 그 공간에서 작업실과 다양한 활동을 했었어요.

호미화방과 앞골목
20세기에는 기차가 운행했던 철길이었다
호미화방과 앞골목. 20세기에는 기차가 운행했던 철길이었다. ⓒfrice(위), 스트리트 H(아래)

한참 선배들 말씀에 따르면, 홍대앞은 눈비가 내리면 길이 진흙 바닥으로 바뀌던 변두리 동네였다고 해요. 오늘날 같은 동네의 인프라도 없었고요. 화장실도 없고 상수도만 있는 차고, 반지하에서 살면서도 마냥 좋았던 사람들이 아지트 같은 걸 만들고, 개성 넘치는 친구들이 모여서 이상한 작당을 하니까. 모든 게 재밌었던 거죠.

홍대앞 철길자리 무허가건물. 시장으로 기능했던 서교동 골목길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홍대앞 철길자리 무허가건물. 시장으로 기능했던 서교동 골목길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스트리트 H
서교365전경. 365번지 건물을 둘러싼 인근 건물에 상업공간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서교365전경. 365번지 건물을 둘러싼 인근 건물에 상업공간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오늘날 홍대앞 골목길에 길게 이어진 건물과 공원시설은 당인리 발전소로 이어지던 철길의 흔적이다
오늘날 홍대앞 골목길에 길게 이어진 건물과 공원시설은 당인리 발전소로 이어지던 철길의 흔적이다. ⓒ서울역사박물관(좌), 서울특별시 아카이브(우)

일부는 졸업하고 나서도 홍대앞을 떠나지 않고 근처에서 미술학원을 하거나 술집, 카페를 차렸어요. 디자이너, 예술가, 문인, 출판사, 이런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뒤섞였고 거기에 인디 음악이 또 들어오게 돼요. 제가 생각하는 ‘홍대앞 DNA’는 그런 비정형의 열정들이 모이면서 만들어졌습니다.

홍대앞 일대 야경. 서울 변두리 동네가 도시 서북부 최대 규모 거점지역으로 성장했다
홍대앞 일대 야경. 서울 변두리 동네가 도시 서북부 최대 규모 거점지역으로 성장했다. ⓒ서울역사박물관
홍대앞 라이브 음악 공연장
정해진 테마 없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포스터와 스티커들이 마음대로 모여 홍대앞 공연장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홍대앞 라이브 음악 공연장. 정해진 테마 없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포스터와 스티커들이 마음대로 모여 홍대앞 공연장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frice

그랬던 홍대앞이 젠트리피케이션을 맞이하며 많은 게 변했습니다.

상권이 형성되고 자본이 밀려들어 오면서 작업실이나 소규모 원주민 가게들이 밀려 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홍대앞’이 팽창하면서 <스트리트 H>도 문화적인 의미를 기준으로 ‘홍대앞’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따지면 홍대앞의 의미를 잘 볼 수가 없게 된 거죠.

그러다 보니 합정, 망원, 연남도 홍대앞으로 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창간호부터 홍대앞 지도도 매달 발품 팔아 조사하고 꾸준히 수정해서 내고 있는데요. 그 지도에는 아직도 편의점, 스타벅스 이런 건 넣지 않고 있어요. 프랜차이즈는 홍대앞 문화가 아니라는 고집이죠.

2024년 홍대앞 지도. 오늘날 홍대앞의 개념적 범주는 연남동과 서교동까지 넓게 확장된다
2024년 홍대앞 지도. 오늘날 홍대앞의 개념적 범주는 연남동과 서교동까지 넓게 확장된다. ⓒ스트리트 H

홍대앞 지도지만, 길 찾기가 아닌 다른 목적이 있는 지도라고 볼 수 있겠네요.

단순한 위치 정보는 스마트폰으로 찾아도 되는 정보지, 우리의 역할이 아니라는 거죠. 새로 생겼다고 무조건 넣는 게 아니라 홍대앞다움이 있어야 지도에 포함시킵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위치” 정보는 자연스레 “존재” 정보로 승화됩니다.

더 이상 길 찾기가 아니라 존재의 역사가 기록되는 것이죠. 조선시대 한양 고(古)지도의 용도가 위치정보를 넘어 당시 사회상을 짐작하게 해주는 소중한 정보이듯이 말입니다. 예전에는 홍대앞에 이런 의미있는 공간이 있었구나! 하는 기록이죠.

2009년 홍대앞 지도. 오늘날 자취를 감춘 홍대앞 공간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다. 2024년 지도와 비교하면 연남동, 동교동, 상수동, 합정동 방면 공간정보가 적다는 점이 눈에 띈다
2009년 홍대앞 지도. 오늘날 자취를 감춘 홍대앞 공간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다. 2024년 지도와 비교하면 연남동, 동교동, 상수동, 합정동 방면 공간정보가 적다는 점이 눈에 띈다. ⓒ스트리트 H
1988년 홍익대학교 입구 지도. 홍익대학교 정문을 기준으로 'T'자 형으로 뻗어나가는 문화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1988년 홍익대학교 입구 지도. 홍익대학교 정문을 기준으로 ‘T’자 형으로 뻗어나가는 문화지형을 확인할 수 있다. ⓒ스트리트 H

홍대앞에는 다양한 동기의 창업이 많아요. 생계형, 낭만형, 문화공간으로서의 자기 선언 등. 옛날에는 새로운 곳이 생기면 다 가 봤는데 지금은 홍대앞이 너무 넓어져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뭔가 다른 곳은 딱 알겠어요. 그런 곳에 가서 손님으로서 쥔장에게 슬쩍 물어봅니다. 뭐 하시던 분이세요? 그러면 “얼마 전까지 방송국 PD 했었는데 20대 때는 홍대앞에서 좀 놀았어요. 그때 참 재밌었던 기억입니다. 그러다 이제는 벌 만큼 벌었으니 이 동네에서 뭔가 재밌는 거 해보고 싶어 왔어요.”라는 답이 나와요.

전직이 수상한 사장님이 많은 곳, 이게 홍대앞이었죠. 예전만큼은 아니어도 지금도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지금도 홍대앞뿐이라 봅니다.

스트리트 H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픽토그램 포스터

‘홍대앞’의 범위가 크게 넓어졌습니다. ‘홍대앞’은 어디까지일까요? 최근 주목하고 계신 곳은 어디인가요?

지금은 합정, 망원까지도 이어졌고, 망원 쪽에서 더 가면 상암동 DMC가 있는데, 상암은 그쪽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놀 만한 곳은 없어요. 그러니 망원, 합정을 거쳐 홍대앞까지 나오게 되는 거죠. 홍대앞이 아직 유지되는 것은 이렇게 밀려 나갈 지역이 있는 지리적 특수성이 한몫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수동, 용강동까지는 잘 모르겠고요. 광흥창 쪽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상수역에서 한 정거장이기도 하고 걸어가다 보면 신촌 방면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고요.


TALK2. 아카이브

성환님이 애정하는 ‘홍대앞 스팟’이 궁금합니다. 홍대앞을 가장 오래 관찰하신 분은 어떤 장소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서교플라자 호미화방 있는 365번지 골목의 ‘bar 다’입니다. ‘bar 다’는 초대 사장이 운영하던 시절에 아르바이트하던 점원이었던 분이 가게를 물려받았다고 해요. 현존하는 ‘홍대앞’ 바 중 가장 오래됐을 겁니다.

지난달에 생긴 가게가 다음 달에 문을 닫는 홍대앞 상권에서 아직도 영업하는 게 대단하죠. 이곳을 만든 초대 사장은 얼마 전 광흥창에서 ‘오후 네 시’라는 바를 만들었고 그분의 아드님은 상수역에서 ‘상수리 bar’를 아버지에게 비용 지불하고 인수하여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스트리트 H는 이런 서사와 스토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젊고 잘생기고 돈 있는 사람이 와서 “저희가 홍대앞 F&B 씬을 바꿔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곳은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자본은 언제든 이익을 위해 빠져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이태원 경리단길 같은 경우가 아주 대표적인 사례죠.

주차장길 쪽에서 바라본 'bar 다'
주차장길 쪽에서 바라본 ‘bar 다’ ⓒ서울역사박물관
2024년 8월, 같은 곳에서 바라본 'bar 다'
2024년 8월, 같은 곳에서 바라본 ‘bar 다’ ⓒ스트리트H
'bar 다' 내부(좌), 2013년 3월 'Bar다' 벽에 남긴 낙서(우)
‘bar 다’ 내부(좌), 2013년 3월 ‘Bar다’ 벽에 남긴 낙서(우) ⓒ서울역사박물관, 스트리트 H
광흥창 '오후 네 시' 오너 김명렬님. 그는 여전히 홍대앞 어딘가에서 바를 지키고 있다
광흥창 ‘오후 네 시’ 오너 김명렬님. 그는 여전히 홍대앞 어딘가에서 바를 지키고 있다 ⓒfrice

사라진 ‘홍대앞 스팟’중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곳을 전해주세요.

1988년 지금의 상상마당 대각선 건너편 약국 자리에 한국 최초의 전자 카페가 있었습니다. “일렉트로닉 카페”. 30대의 안상수 디자이너와 그의 친구 금누리 교수가 함께 만든 공간입니다. 아주 재미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료, 사진도 남아있지 않아서 많이 당혹스러웠습니다. 미국과의 팩스 교류 아트전, 희귀했던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가 항상 틀어져 있던 TV. 전화 모뎀이 연결된 AT 컴퓨터 등. 기억이 생생한데도 기록 사진이 없었습니다. 홍대앞의 역동적이고 실험적인 활동, 공간의 기록이 없는 것에 놀랐어요. 그것이 <스트리트H>를 만드는데 일정 부분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국내 최초의 전자카페 일렉트로닉 카페. 1988년 지금의 상상마당 대각선 맞은편에 수상한 곳이 생겼다. 쇼윈도우에는 기울어진 철제 캐비넷이 놓여 있던 이곳은 안상수, 금누리 두 사람이 의기 투합해 만든 공간이었다. LA와의 FAX통신을 이용한 전시회가 시도됐던 곳. 일렉트로닉스가 있던 자리는 시간이 흘러 2014년에는 부동산이 들어섰고 2024년 8월에는 약국이 됐다
국내 최초의 전자카페 일렉트로닉 카페. 1988년 지금의 상상마당 대각선 맞은편에 수상한 곳이 생겼다. 쇼윈도우에는 기울어진 철제 캐비넷이 놓여 있던 이곳은 안상수, 금누리 두 사람이 의기 투합해 만든 공간이었다. LA와의 FAX통신을 이용한 전시회가 시도됐던 곳. 일렉트로닉스가 있던 자리는 시간이 흘러 2014년에는 부동산이 들어섰고 2024년 8월에는 약국이 됐다. ⓒ스트리트 H

✔비하인드 (2001~)

홍대앞 카페 문화를 이끈 장수 카페. 다양한 직업의 4인 공동 사장이 삼거리 포차 뒷 골목에서 시작. 현재는 주차장길로 이전. 손님들 요청으로 카페의 선곡 리스트를 담은 컴필레이션 앨범도 발매했었던 곳.

홍대 카페 비하인드 입구
홍대 카페 비하인드 내부
ⓒfrice

✔ 곱창전골 (2002~)
음악주점. 호미화방 근처 골목에서 시작한 홍대앞 대표 LP바. 먼저 입주한 지하의 호프집 사장님이 업종충돌을 염려하자 곱창전골집을 하겠다며 시작했다고. 내한공연을 오는 해외 뮤지션들이 밤에는 여기에 모인다.

홍대 LP바 곱창전골
ⓒfrice

✔ 클럽 빵 (2004~)
1994년 이대 후문에서 시작해 홍대앞으로 옮겨온 라이브 클럽. ‘모던록의 산실’이라고 불리며 포크록,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편애 아닌 편애가 있는 곳. 그런가 하면 신인밴드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홍대앞 대표적 무대.

홍대 라이브 뮤직 공연장 클럽 빵 입구와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본 모습. 홍대앞 창작자들이 상권 내 지하건물을 이용해 소극장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본 모습. 홍대앞 창작자들이 상권 내 지하건물을 이용해 소극장 운영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frice(위), 서울역사박물관(아래)

✔ 이리카페 (2004~)
허클베리핀 드러머 출신 쥔장이 서교동 무과수마트 지하에서 시작해서 2009년 10월 상수동으로 이전. 상수동의 동네사랑방. 다양한 인물들이 이 공간에서 공연과 발표, 인터뷰를 한 것도 매력.

상수동 이리 카페 입구
ⓒfrice

✔ 앤트러사이트 (2010~)
신발 만들던 공장을 로스터리 카페로 만든 곳. 크레인, 바닥, 벽돌벽 등 예전 건물의 요소들을 최대한 유지한 인테리어가 새롭다.

상수동 앤트러사이트 커피 로스터즈 입구와 커피 바
ⓒfrice

😈 장수 로컬 매거진 <스트리트 H>. 홍대앞을 오랜 기간 관찰하며 단순한 지리 정보나 뻔한 공간 정보가 아닌, 역사, 문화,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변화하는 ‘홍대앞다움’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

서브컬처를 향유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성지, 무언가에 푹 빠진 사람들이 연 독특한 가게가 끊임없이 홍대앞을 둘러싸는 이유를 엿볼 수 있었는데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대앞을 규정하는 기준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지만, ‘내 것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의지 혹은 자본에 포섭되지 않으려는 자유분방함’ 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앞으로의 홍대앞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요? 지금의 우리가 기억하는 홍대앞 그 모습으로 계속 남아있을까요?

세상 모든 지식을 시각화 한다는 것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의 쇼룸

frice 사무실(마포구 상수동)에는 주변의 카페에서 가져온 인포그래픽 포스터와 홍대앞 지도가 붙어있다. <스트리트 H>는 홍대앞의 다양한 변화와 문화예술 활동, 홍대앞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동네문화 잡지로, 매월 다른 주제의 색다른 그래픽과 유용한 정보를 담은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함께 무료 배포한다. 최근 는 창간 15주년(2009년 6월 창간)을 맞이했고, 인포그래픽 포스터도 2024년 현재 100종 이상 발행하였다. 왜? 누가? 이러한 수고를 15년 동안이나 하고 있을까?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 최근 발행된 데스크 램프 인포그래픽 포스터와 실제 조명, 그에 담긴 스토리를 한번에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 최근 발행된 데스크 램프 인포그래픽 포스터와 실제 조명, 그에 담긴 스토리를 한번에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frice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 대표이자 <스트리트H> 공동 발행인입니다. 2003년 창업할 때 회사명은 ‘디자인 스튜디오 이공삼’이었어요. 규모를 키우지 않고 하고 싶은 일 위주로 하고 싶어 ‘디자인 스튜디오(한 칸짜리 작은 공간)’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한국의 현실에서 디자인이라는 용어의 쓰임이 너무 오염되어 버렸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추구하려는 활동, 작업의 의미를 전달하기에 더이상은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016년 회사 명칭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란 단어를 과감히 빼고, ‘이공삼(203)’ 만 남겼습니다. 지금은 ‘인포그래픽 연구소’라는 부분을 더 부각하고 있어요.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 입구의 쇼룸 공간
인포그래픽 관련 해외 서적들과 북큐레이션이 전시되어 있다. 이공삼의 특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 입구의 쇼룸 공간. 인포그래픽 관련 해외 서적들과 북큐레이션이 전시되어 있다. 이공삼의 특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공삼, frice

이공삼 인포그래픽연구소의 모토는 ‘직관적 이해 만들기’입니다. 또 하나는 ‘세상 모든 지식의 시각적 지혜화’입니다. 저는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합니다. 열심히 외웠다가 시험 보고 나서 잊어버려도 사는 데 지장 없는 것이 ‘지식’. 살아가는데 꼭 알아야 하는 것이 ‘지혜’. 불은 뜨겁다, 날카로운 것엔 베인다, 생명체는 존중해야 한다. 같은 것이죠.

요즘은 우리 회사, 또는 나 개인의 브랜딩은 어떤 걸까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007 영화 속에서 악당이 페르시아고양이를 품에 안고 세계 정복을 읊조리는 것처럼, 저도 우리 사무실 고양이 ‘모모 부장’을 끌어안고 재미나게 저희의 야망을 피력합니다.

이공삼의 실세인 고양이, 모모부장과 눈싸움 한 판을 벌이는 장성환 대표
이공삼의 실세인 고양이, 모모부장과 눈싸움 한 판을 벌이는 장성환 대표 ⓒ이공삼

TALK THEME 1. 인포그래픽 포스터와 ‘K’

이공삼의 인포그래픽 포스터 중에서 한국 문화를 주제로 한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 문화를 다루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한국’이란 주제는 포스터 주제들 전체로 보면 일부분이에요. 지금까지 만들었던 한국 문화 관련 인포그래픽들은 비빔밥, 소주, 김밥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문화적으로 유니크한 걸 제작하려다 보니, 그중에 한국적인 소재가 자연스럽게 포함된 거죠.

2015년 8월, ‘한국국제교류재단’ 주최로 “맛 MAT – 한국의 멋과 맛”이라는 전시회를 했었어요. 그때 저희가 김치, 막걸리, 소주 등 대형 인포그래픽 설치 작업으로 참여했는데요. 주최 측에서 비빔밥도 추가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래서 스터디를 해보니 ‘비빔밥’이 아니라 ‘섞어 먹는 밥’에 더 가까운 거예요. 예를 들면 국밥, 그리고 삼겹살 구워 먹고 남은 재료 다 넣고 섞어 먹는 것, 찬물에 밥 말아서 섞어 먹는 것 등등. 일본에도 오차즈케가 있긴 하지만, 일본은 기본적으로 섞는 것을 싫어해요. ‘그렇게 예쁘게 해놓은 걸 왜 섞느냐. 미적으로 추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한국은 달라요. 한국 대표 비빔밥의 전형은 전주비빔밥이겠지만, 일상 속 서민의 식탁에서는 아무거나 넣어도 되잖아요. 자기 기호대로 찬밥에 열무김치를 비비거나, 치즈 좋아하면 치즈를 넣는 식이죠. 김밥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의 이런 뒤섞이는 문화가 재밌는 포인트라고 생각해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맛 MAT - 한국의 멋과 맛" 전시에서 공개된 한국 음식문화 인포그래픽 디자인_섞어먹는 밥 디자인
“맛 MAT – 한국의 멋과 맛” 전시에서 공개된 한국 음식문화 인포그래픽 디자인_섞어먹는 밥 디자인 ⓒ 이공삼

한국 문화 외에도 다양한 주제를 다루시는데요. 포스터의 주제는 매달 어떻게 선정하시나요?

저는 ‘그냥’이라는 단어를 싫어해요. 매사에 ‘그냥’ 하지 말자고 강조합니다. 제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칠 때 ‘그냥은 금기어였습니다. 그냥은 부모 자식 사이나 연인 사이에서만 쓸 수 있는 단어라고 말해 줍니다. 모든 게 원인과 결과인데, 특히 디자인 프로젝트는 매우 공적인데 클라이언트에게 ‘그냥’ 디자인했다는 말을 쓸 수는 없지 않나요?

그리고 ‘나열’했다는 것도 말이 안 돼요. 공깃돌 5개를 던질 때도 모여있게 할지, 떨어뜨려 놓을지, 의도를 갖고 던지잖아요. 그런데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그냥 나열했다’고 하는 건 사전에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는 자백과 다름없는 거죠. (웃음)

그래서 저희는 포스터 주제 결정을 위해 구글 시트로 시의성, 정보성, 심미성 등 기준들을 세팅해 놓고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모읍니다. 개인의 취향은 중요하지만, 이런 걸 생산하는 데는 개인의 취향에만 치우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기준들이 더 중요해요.

아이디어는 인턴부터 대표까지 함께 생각을 모읍니다. 그러고 나서 합계를 내보기도 하고 다양한 관점으로 검토합니다. 때로 어떤 주제는 합계 총점보다 시의성이 더 중요할 때가 있어요.

포스터 주제 스프레드시트. 주제 선정과 같은 개념적 의사결정도 분석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주제 선정과 같은 개념적 의사결정도 분석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이공삼

시의성이 중요했던 작업은 어떤 것이 있나요?

2019년에 작업했던 1919년 ‘3.1 만세운동 100주년’과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 인포그래픽 포스터입니다. 누리호 발사에 관한 것도 시의성을 고려한 경우고요. 이런 경우는 시의성도 염두에 두었지만, 눈앞의 이익보다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무’를 더 고려한 경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국민 판다 푸바오 포스터는 후이바오, 루이바오가 갓 태어날 무렵에 발행했는데 벌써 중국으로 돌아가 버렸네요.

3.1운동 인포그래픽 포스터. 역사적 시의성을 고려한 인포그래픽 포스터 주제 선택 사례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 기념 인포그래픽 포스터 ⓒ이공삼
역사적 시의성을 고려한 주제 선택 사례. 1919년 일어난 3.1운동과 바우하우스 설립 100주년 기념 인포그래픽 ⓒ이공삼

그리고 의도적으로 쌓아가는 것들도 있어요.

예를 들면 2016년에 상수동의 ‘PACTORY’라는 공간은 두성종이 출신 동업자와 제가 만들었어요. 디자이너들이 다양한 종이를 만져보고 수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인데요. 그곳에서 진행될 워크숍의 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오픈 전 몇 달에 걸쳐 미리 실크스크린, 리소그래피, 레터프레스 등 수작업으로 하는 디자인 제작 시리즈를 만들었죠.

장성환 대표와 두성종이 출신 동업자가 함께했던 공간. 상수동 PACTORY. 홍대앞 출판관계자 및 디자이너, 그리고 전국의 디자인 전공 대학생의 성지가 되었다
장성환 대표와 두성종이 출신 동업자가 함께했던 공간. 상수동 PACTORY. 홍대앞 출판관계자 및 디자이너, 그리고 전국의 디자인 전공 대학생의 성지가 되었다 ⓒfrice
입구로 들어가는 계단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인포그래픽 포스터 PACTORY가 오픈하기 전부터 이 공간에서 개최될 수작업 워크숍을 위한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제작했다
입구로 들어가는 계단에서 마주칠 수 있는 인포그래픽 포스터 PACTORY가 오픈하기 전부터 이 공간에서 개최될 수작업 워크숍을 위한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제작했다 ⓒfrice

이공삼의 인포그래픽 포스터 디자인 프로세스가 궁금합니다.

‘기획개요 마인드맵’을 저희만의 프레임으로 만들어 놓고 그걸 가장 먼저 채웁니다. 저희는 이걸 나침판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여기에는, 우리는 ‘무엇을’, ‘누구를 대신해서’, ‘타겟 누구에게’, ‘왜 저들이 이걸 받아들여야 하는지’,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등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겉보기에는 너무 간단한 방법이라서 사람들이 의구심을 가지기도 하는데, 정말 효과적이고 중요한 단계입니다.

교과서 같이 텍스트의 단락들로 계속 이어지는 정보를 이공삼에서는 ‘리스트형 정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런 형식의 정보는 눈에 잘 안들어오기도 하고 빠른 이해가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는 리스트형 정보를 반드시 마인드맵으로 정리합니다. 정리할 때 유의 사항은 문장을 *‘개조식’으로 작성하는 것입니다. 정보의 **’하이어라키’와 카테고리가 잘 보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이후, 본격적으로 메인 마인드맵을 진행하면서 수많은 자료를 모으다 보면 팀원들끼리도 이게 우선인지, 저게 우선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그럴 때 나침판으로 다시 돌아가서 함께 살펴봅니다. 그러면 누가 타겟이고 왜 이 정보를 만드는지 환기가 되고 합리적인 의견일치가 가능해 집니다.

인포그래픽 제작 과정의 첫 번째. 기획개요 마인드맵
인포그래픽 제작 과정의 첫 번째. 기획개요 마인드맵 ⓒ이공삼

인포그래픽 포스터 한 장에 많은 정보와 그래픽 작업이 필요한데요. 작업에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 같아요.

<스트리트H>의 인포그래픽 포스터는 2015년 6월부터 한 달에 한 종씩 제작하고 있어요. 매달 디자인 팀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담당자가 됩니다. 때로는 서로 두레처럼 도와주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전체 진행(주제 선정부터 마인드맵, 자료조사, 내러티브 다이어그램)은 담당자가 메인이 되어서 진행해요. 특이한 점은 주제 기획, 조사, 디자인까지 디자이너가 완결한다는 것입니다. 인포그래픽에서 편집팀의 역할은 교정, 교열과 추가 의견 정도입니다. 텍스트 콘텐츠 가공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디자이너들을 위해 마인드맵을 활용하게 된 것이죠.

텍스트를 구조화하는 마인드맵 단계를 거치면 ‘내러티브 다이어그램’ 단계로 넘어갑니다.

이공삼의 인포그래픽 프로세스를 시각화한 인포그래픽. 많은 표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공삼의 인포그래픽 프로세스를 시각화한 인포그래픽. 많은 표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공삼

내러티브 다이어그램은 뭔가요?

‘서술적인 정보 관계 구조를 표현하는 다이어그램’이란 의미입니다. ‘내러티브 다이어그램(Narrative Diagram)’이라고 표현한 건 일반적인 다이어그램과 구별하고 싶어서였어요. 해외 컨퍼런스 발표 때도 영어로 ‘내러티브 다이어그램’이라고 표현합니다. 나중에 물어보면 그런 용어를 처음 듣지만, 무슨 의미인지 잘 이해가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전 제가 만든 이 용어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웃음) 우리가 만든 단계가 인정된 느낌이라서요.

아이콘을 활용해 직관적으로 정리한 이공삼의 인포그래픽 디자인 프로세스
아이콘을 활용해 직관적으로 정리한 이공삼의 인포그래픽 디자인 프로세스 ⓒ이공삼

인포그래픽 프로세스를 일상생활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까요?

이공삼의 인포그래픽 프로세스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기획개요 마인드맵 작성 -> 텍스트 정보 구조화 -> 시각적 정보 구조화

이 중 ‘텍스트 정보 구조화’가 중요합니다. 잘 구조화된 텍스트 정보를 시각적으로 발전시키면 기억에 오래 남는 정보 패키지가 됩니다. 그러니 학생들의 책 읽기 등에 활용하면 아주 효과적이지요.

초등학생 대상 워크숍의 결과물. 초등 3학년 남학생이 정리한 삼국지 인물 관계도 마인드맵
초등학생 대상 워크숍의 결과물. 초등 3학년 남학생이 정리한 삼국지 인물 관계도 마인드맵 ⓒ이공삼

올해 초, 선유도서관과 함께 초등 3, 4학년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내용은 마인드맵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구조화하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막연하게 좋아하는 이야기를 고르고 좋아하는 이유, 스토리라인, 등장인물들의 관계,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 등을 마인드맵을 통해 정리하게 했어요. 몇 주 동안 계속 질문과 대답을 하며 마인드맵으로 정리했습니다. 그 결과물을 보면 정말 초등학생의 것이 맞을까 할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냥 읽는 책은 쉽게 잊혀집니다. 저는 이것을 텍스트의 휘발성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마인드맵으로 구조화하는 과정 동안, 그리고 완성된 것을 몇 번 반복해서 들여다 보면 기억 속에 아주 오래 남게 됩니다.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게 되는 셈이니 다양한 분야에서 도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인포그래픽 디자인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저는 좋은 인포그래픽을 삼각형으로 비유해서 얘기합니다. 정보가 잘 전달되기 위해서는 ‘유익한 정보’ ‘이해하기 쉬운 정보’ ‘매력적인 정보’. 세 가지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야 해요.

예를 들어 교과서는 유익한 정보이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죠. 그래서 참고서가 이해하기 쉽게 해주려고 밑줄, 형광펜, 다이어그램들을 사용하면서 노력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에도 매력은 없어요. 참고서 재밌다고 하는 학생들은 드물지 않을까요?

그런데 학습 만화는 읽지 말라고 해도 식탁 앞에서도 손에서 놓지 않잖아요. 이유가 뭘까요. 내용은 같지만 이해하기 쉽게, 시각적으로도 재미있게 보여주는 거예요. 그게 바로 매력이고 전달의 핵심입니다.

좋은 인포그래픽의 3가지 조건을 보여주는 다이어그램
좋은 인포그래픽의 3가지 조건을 보여주는 다이어그램 ⓒ이공삼

매력적인 정보에 인포그래픽의 일러스트 스타일이나 인터랙티브 방식 같은 것도 중요할까요?

모든 스타일이나 형식은 기획개요 마인드맵을 통해 설정됩니다. 누가 어떤 타겟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그 내용에는 어떤 방식이 적합할까? 인쇄물도 팜플렛, 포스터 등 형식이 다양하고 때로는 *모션 인포그래픽,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이 적절할 때가 있어요. 즉흥적인 판단이 아니라 치밀한 분석을 토대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2018년 7월 경향신문과 함께 작업했던 “평양냉면”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신문의 큰 지면을 활용해 서울의 평양냉면 노포와 신흥 두 갈래를 한 면에 보여주었다
신문의 큰 지면을 활용해 서울의 평양냉면 노포와 신흥 두 갈래를 한 면에 보여주었다. ⓒ이공삼

평양냉면 인터랙티브 아티클 작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언론재단에서 강의를 할 때마다 언론 종사자들이 묻습니다. 종이 신문의 미래가 어둡고 뉴미디어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 큰 신문을 어떻게 조그마한 스마트폰에 집어넣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많았어요.

그런데 왜 꼭 그래야만 할까요? 종이 신문은 신문대로 지상 최대의 판형이에요. 손으로 만지고 넘겨 보는 경험과 물성이 있죠. 그에 반면 스마트폰은 종이가 갖지 못하는 모바일, 인터랙티브함이 있는데 왜 굳이 종이신문을 스마트폰 안에 넣어야 하냐는 거죠. 미디어의 특성에 따라 다른 형식의 콘텐츠를 담아내는 것이 필요한거죠.

그래서 경향신문에 평양냉면 지면 인포그래픽과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을 동시에 제안했어요. 같은 주제지만 지면에서는 서울의 평양냉면 노포와 신흥, 두 갈래로 큰 지면에서 보여주고 인터랙티브 쪽에서는 스마트폰을 통해 재료 하나하나를 직접 선택해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냉면집을 찾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평양냉면에 맨스플레인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중년 아저씨들의 잔소리죠.(웃음) 그러나 인터랙티브를 통해 누구나 마음 편하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평양냉면을 고를 수 있게 한 거죠. 인포그래픽이 수직적인 문화와 정보를 수평적으로 개선했다고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랭면의 취향 알아보기 👉>

사용자는 질문에 응답하면서 자신의 평양냉면 취향을 알아볼 수 있다.
디지털 디바이스에서 상호 작용하며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 콘텐츠
사용자는 질문에 응답하면서 자신의 평양냉면 취향을 알아볼 수 있다.
디지털 디바이스에서 상호 작용하며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된 인터랙티브 인포그래픽 콘텐츠 ⓒ이공삼, 경향신문

지금까지 작업 중 가장 의미 있었던 작업은 무엇인가요?

역시나 3.1운동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예요. 자체적으로 제작한 이 3.1운동 인포그래픽을 가지고 임시정부기념관 설립위원회에 접촉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한 인포그래픽도 제작했어요. 임시정부가 3.1운동 이후 영향을 받아 설립되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설득한 거죠.

3.1절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3.1절 전후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어떤 인과관계로 3.1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정확히 대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역사를 점(點, dot)으로 암기하고, 시험으로 접하며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3.1절을 단순한 숫자나 하나의 인물이 아닌 ‘인과’로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떤 사건들이 영향을 미쳐 3.1운동이 준비되었나. 준비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선언문의 작성, 선언문의 의미 등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리고 3.1운동 이후 국내외적 변화까지 담아냈습니다. 눈으로 흐름을 따라가면 책 1권 이상의 정보를 쉽고 흥미롭게 이해하고 기억에 담을 수 있습니다. 이 포스터는 역사교사 모임에도 배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을 저는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 중심의 직업인 것 같지만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 책무를 가지고 눈앞의 이익과 상관없이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TALK THEME 2. 인포그래픽 디자이너의 세계

해외에서 디자인 어워드 수상과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시는데요. 해외와 한국 인포그래픽 디자인의 차이를 느끼시나요?

그래픽 디자인의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수신자가 누구고 발신자가 누구냐에 따라 차이가 있는 거겠죠. 뉴스 미디어인가, 흥미 위주 콘텐츠 미디어인가, 출판사인가 이런 차이겠죠. 그리고 회사의 규모, 예산이 미치는 부분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어워드는 “자기 증명”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작했습니다.

클라이언트들이 인포그래픽 분야가 낯설다 보니 이공삼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신뢰할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국내외 인포그래픽과 디자인 공모전에 응모했고 다수의 좋은 성과를 내었습니다. 그랬더니 클라이언트들의 시선이 바뀌더군요. 물론 우리 내부의 스탭들에게도 좋은 격려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공삼 사무실에 진열된 디자인 어워드 트로피
이공삼 사무실에 진열된 디자인 어워드 트로피 ⓒ이공삼
2019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디자인 교육 컨퍼런스. 장 베누아 레비(Jean-Benoit Levy, 프랑스 출신으로 미국 산호세에서 활동)와 보리스 코헨(Boris Kochan, 독일 뮌헨 활동)
2019년 8월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디자인 교육 컨퍼런스. 장 베누아 레비(Jean-Benoit Levy, 프랑스 출신으로 미국 산호세에서 활동)와 보리스 코헨(Boris Kochan, 독일 뮌헨 활동) ⓒ이공삼
2020년 1월 홍콩에서 만난 마르셀로 두할데(Marcelo Duhalde, SCMP_가운데)와 마르셀로 카세레스 아빌라(Marcelo Cáceres Avila, 칠레_왼쪽)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는 해외 디자이너와 교류하며 주목하게 된 곳으로 해외 미디어 SCMP(South China Morning Post)를 꼽았다.
2020년 1월 홍콩에서 만난 마르셀로 두할데(Marcelo Duhalde, SCMP_가운데)와 마르셀로 카세레스 아빌라(Marcelo Cáceres Avila, 칠레_왼쪽) 이공삼 인포그래픽 연구소는 해외 디자이너와 교류하며 주목하게 된 곳으로 해외 미디어 SCMP(South China Morning Post)를 꼽았다. ⓒ이공삼

또 한 가지는 해외 공모전 수상을 통해 해외에서 이공삼의 인포그래픽이 알려지게 되었고 워크숍 또는 컨퍼런스에 발표자로 초대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요즘도 디자인 컨퍼런스나 어워드에서 만난 해외 인포그래픽 디자이너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그들의 작업도 관심을 갖고 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인포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 다른 분야에 비해 적어서 그런지 만나면 따듯한 형제애 같은 게 있어요.

수많은 인포그래픽이 있지만 핀터레스트에서 인포그래픽을 검색해 보면, 이공삼을 비껴갈 수가 없어요. 우리처럼 100개 이상 일관된 형식으로 만들고 있는 곳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표절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공삼은 상관하지 않고 계속 이런 작업을 이어 나가려고 합니다.

😈 우리는 일상에서 매일 지식을 소비하고 있어요. 사람이 지식을 교환하는 첫 번째 방식은 입말과 글말일 텐데요. 인간의 언어는 기차처럼 선형적이어서, 처음과 끝을 다 연결해야 메시지를 온전히 전할 수 있습니다. 추상적인 개념, 논리가 복잡한 정보일수록 정확하게 전달하기가 어려워지죠.

이공삼은 문자언어의 한계를 인포그래픽 디자인으로 극복해 왔습니다. 수십년 동안 인포그래픽을 연구해온 디자이너가 알려주는 ‘복잡한 지식을 척 보면 딱 알아보도록 만드는 방법’ 어떠셨나요?

디자인의 힘으로 문자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분들에게 이번 인터뷰가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한지, 어디까지 쓸 수 있어요?

햇빛이 드리운 미색 한지

<1부에서 이어집니다>

둥글게 말린 색한지
ⓒfrice

한지, 이전에는 어떤 곳에 많이 쓰였었나요?

1980년대 이전에 한지가 가장 많이 사용된 분야는 건축 자재 분야였어요. 장판지, 벽지 수요가 많았죠. 병풍이나 족자처럼 표구 분야 수요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건축 자재는 기계로 만든 종이와 PVC 장판으로 대체되고, 표구는 액자로 대체됐죠. 한지의 역할이 대체되니, 쓰임새 역시 점점 줄고 있습니다.

노란 한지장판이 깔린 한옥 내부.
그렇다. PVC 노란 장판의 원조는 한지 장판. 한지 장판 색이 누리끼리했던 이유는 장판용 미색 한지에 여러 번 기름을 칠하고 경년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 PVC 노란 장판의 원조는 한지 장판. 한지 장판 색이 누리끼리했던 이유는 장판용 미색 한지에 여러 번 기름을 칠하고 경년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서울역사박물관
오늘날 생산 중인 장판용 한지. 한지장판은 여러 장의 한지를 붙이고, 천연 콩기름을 침투시킨 뒤 옻칠을 더한다
오늘날 생산 중인 장판용 한지. 한지장판은 여러 장의 한지를 붙이고, 천연 콩기름을 침투시킨 뒤 옻칠을 더한다. ⓒ천양피앤비

03. 연구, 디자인, 도전

혹시 뜻밖의 산업 군에서 한지를 써보겠다는 제안이 있나요?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 연구 제안이 들어왔어요. 한지를 차량 내부 인테리어에 사용하고 싶은데, 같이 고민해달라는 의뢰였죠. 자동차에 종이를 쓰는 것이 자칫 불가능해 보였지만 한지라면 다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또 오늘날 한지를 새롭게 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해서 협업에 나섰습니다.

동양한지에서 차량 인테리어용으로 개발한 샘플 종이. 국내 완성차 그룹 계열사에서 의뢰했다. 직접 만져보니 다른 한지보다 질기고 튼튼하다
동양한지에서 차량 인테리어용으로 개발한 샘플 종이. 국내 완성차 그룹 계열사에서 의뢰했다. 직접 만져보니 다른 한지보다 질기고 튼튼하다. ⓒfrice

자동차 업계에서 요구하는 스펙에 맞출 수 있었나요? 한지는 수공예품이라 제작이 까다로웠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차량 인테리어용 한지는 실패했어요. 양산(대량 생산)이 어렵습니다. 튼튼한 한지를 만들더라도 균일한 품질을 내기 힘들었어요. 그리고 높은 열을 가하거나 200톤에 달하는 압착기로 한지를 누르는 실험을 거쳤는데, 양산용 자동차에 적용되는 극한 테스트는 한지도 견딜 수 없었어요.

지금은 공예가 선생님이 모터쇼에 출품할 콘셉트카에 직접 설치하는 수준이 최선이죠. 그래도 이런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지의 현대적인 쓸모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산업 군에 있다는 것을 더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기억나는 다른 한지 연구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종로 물나무 사진관과 손잡고 ‘사진 인화용 한지’ 개발을 마쳤습니다. 저희는 ‘인쇄용 도침 한지’라 부르는데요. 성분은 국산닥 100%. 종이 분류 기준으로는 *2합 순지입니다. 한지에 디지털 사진을 인화하려는 디자인 프로젝트였습니다. 기존 한지를 프린트기에 걸면 종이 섬유질이 굵은 탓인지 한지가 기계에 걸리거나 구겨지는 문제가 있었어요.

인쇄용 도침 한지에 인화한 인물초상사진
인쇄용 도침 한지에 인화한 인물초상사진. ⓒfrice

‘도침’이라는 한지 제작 공정이 있어요. 종이를 두드려서 표면을 고르게 만드는 일인데, 도침을 강화하며 문제를 해결했죠. 이 종이는 미색 한지의 색감을 깊이 있게 유지하는 방향으로 개선을 시도 중입니다.

한지도 샘플북이 있을까요? 디자이너에게 종이 샘플북의 존재는 소중합니다.

있습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산하 홍보관에서 만든 ‘한지 미리보기 책’이 대표적입니다. 몇몇 종이 업체도 생산 가능한 한지들을 묶어 샘플북을 내고, 색이 들어간 색한지를 모아 색깔을 구분하기 위해 샘플북을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기계지 샘플북과는 다릅니다. 훗날 샘플북에 있는 한지가 다 떨어져, 그 종이를 비슷하게 만들더라도 결과적으로 비슷하지 않은 종이가 나오거든요. 컬러 팔레트를 찍어 오차 없이 디자인을 보려는 기계지 샘플북과 다릅니다. 제 생각에 한지 샘플북은 역사적인 기록물에 가깝다 봐요.

북촌 한지가헌에서 제작한 ‘한지 미리보기 책’. 
국내 18개 공방의 400여 종 한지를 소개하는 책자. 문화재용, 인쇄용, 공예용, 서화용, 인테리어용 등 용도별로 한지를 분류해, 종이에 얽힌 정보를 제공한다
북촌 한지가헌에서 제작한 ‘한지 미리보기 책’. 국내 18개 공방의 400여 종 한지를 소개하는 책자. 문화재용, 인쇄용, 공예용, 서화용, 인테리어용 등 용도별로 한지를 분류해, 종이에 얽힌 정보를 제공한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04. 한지의 내일은?

한지가 요즘 위기라 들었습니다. 한지 업계가 마주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라 보십니까?

유통자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한지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한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줄고, 종이 수요 자체도 줄어서 생산도 나란히 줄어드는 상황이죠. 예컨대 색한지(色韓紙)는 전국 각 지역에서 모읍니다. 지역별 한지는 염료의 숙성과 건조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나는데요. 이것은 전통한지의 특색이기도 해서 일부러 가게에 질 좋은 물건을 모아두려 해요.

세가지 색한지를 둥글게 말아 촬영한 사진
ⓒfrice

전국 각지의 장인들이 꾸준히 생산을 하셔야 다양한 색을 지닌 한지가 나오는데 그렇지 못해서 큰 고민입니다. 인기 있는 색은 계속 만들어지더라도, 중간을 받쳐줄 색이 줄어드니 결과적으로 한지의 컬러 스펙트럼이 줄어드는 거죠.

또 다른 문제는 수입 한지들을 선별하는 일인데요. 수입 한지의 재료 원산지나 생산지역을 추적하기 쉽지 않은 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지 품질 관리는 앞서 언급한 다양성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국내에서 만든 것도 표준을 만드는 게 어려웠는데, 해외에서 만든 것은 관리가 더 어렵죠.

한지의 표준이나 품질관리 기준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한지 품질 표시제’라는 게 있습니다. 한지 생산자, 제조 방식, 재료 원산지 등의 제반 사항을 표기하는데요. 한지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된 제도입니다. 한지를 사용하는 구매자에게 한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전통한지가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었어요.

취지는 좋은데,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모자랍니다. 만약 한지 생산처에서 사정이 생겨 표기된 정보를 지키지 못한다고 해도, 처벌이나 불이익을 주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한지는 제작 과정에서 수많은 공정을 거치는데, 이 중 한 부분만 헐거워도 품질 격차가 나타나요. 사람이 만드는 종이라서 결국 편차가 나타납니다. 아쉽지만 유명무실한 제도가 됐지요.

한지 디자인 현황을 설명하는 박창완
ⓒfrice

‘한지를 외국에서 싸게 들여오는 건 어떨까?’ ‘한국 전통과 한지의 우수성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자!’ 이런 고민으로는 한지가 점점 뒤처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한지는 지금 실제로 위태롭습니다. 특히 삼국시대 때부터 이어진 전통한지가 지금은 후계자가 없어서, 각 지역의 장인이 돌아가시면서, 지역의 전통한지 생산이 끊어지는 곳이 많습니다.

전통이 단절되는 것도 큰 문제군요.

한국은 ‘전통’이라는 화두가 ‘옛 것의 계승’과 연관됩니다. 그 어느 나라보다 변화가 빠르지만, 전통이나 전통의 순서를 건드리는 일만큼은 변화가 더디죠. 제 생각에 한국에서 ‘전통’과 ‘보존’이라는 개념을, 많은 분들이 같은 맥락으로 인식합니다. 저는 두 개념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해요.

동양한지에서 자체 개발한 염색 옻칠 한지
동양한지에서 자체 개발한 염색 옻칠 한지 ⓒfrice

전통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변화되는 것입니다. 한지의 전통은 ‘닥나무 섬유로 만든 종이’라는 범주 안에서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변화합니다. 보존은 문화재 보존용 한지나 전통한지 제작 기법처럼 ‘지켜야 할 옛 것’에 필요한 개념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계승된 옛 것이 보존을 벗어나면, ‘그것은 전통이 아니다’라며 배척 받는 게 현실입니다. 보존이라는 명분이 전통을 막는 셈이죠.

“옛 것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건 계승이지 전통이 아니다.” 라는, 예전에 들었던 어느 지식인의 말씀이 기억나네요.

해외 사례 중 참고할 만한 게 있을까요?

해외 출장 때 만난 화지(일본 전통 종이) 관계자의 말씀입니다.

“원료가 국산인지 수입산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시대에 사용될 수 있는 종이를 만들어 잊히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하죠. 옛날 방식으로 자국 전통 종이를 만드는 것은 계승되어야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현대에도 사용될 수 있는 종이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요?”

옻칠한지를 포갠 모습
옻칠한지를 포갠 모습 ⓒfrice
옻칠한지는 종이 표면에 가죽을 보는 듯한 거친 질감이 드리운다
옻칠한지는 종이 표면에 가죽을 보는 듯한 거친 질감이 드리운다. ⓒfrice

저는 이 말씀이 한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도 부합한다고 봐요. 혁신적인 제작시도나 제조공정의 현대화 같은 건 존중받아야겠지요. 해외 전통 종이 관계자분들은 저에게 “한지에 옻칠을 하는 건 좋은데, 왜 피부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성분을 빼지 않느냐?”는 피드백을 전해주셨어요. 옻칠한지에 쓰는 원료는 옻나무에서 추출한 걸 그대로 칠하거든요. 실제로 한국에서 전통 옻을 다루는 분들은 팔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있어요. 옻의 독한 성분 때문이죠.

‘옻의 특정 성분을 분리하면 그것은 정말로 전통에서 멀어지는 것인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현대화 과정에서 전통의 개념이나 전통을 규정하는 관점은 여러가지가 뒤섞이는 것 같아요.

밝은 조명 아래에서 한지의 질감은 도욱 도드라진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 한지의 질감은 도욱 도드라진다.ⓒfrice

한지의 대중화를 위해 어떤 것을 해볼 수 있을까요?

유통자 입장에서 퍼포먼스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일종의 쇼 엔터테인먼트를 제안하고 싶네요.

인사동 거리를 지나다니면, 서예나 악기 연주하는 분이 계시죠. 꿀타래 가게 사장님도 타래를 두 배 네 배 늘어뜨리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볼거리를 만드시거든요. 한지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퍼포먼스가 거의 없었어요. 한지에 사람들의 감각을 사로잡는 특별한 물성이 없진 않거든요. 앞으로는 한지를 이용한 예능적인 퍼포먼스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인사동에서 한지를 뜨고 그걸 대중 앞에서 보여주는 겁니다. 30여 년 전, 동양한지가 종로 견지동에 있을 때 매장 안에서 한지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공중파 방송국에서도 촬영을 왔었고. 거리를 다니시던 분들이 한지에 관심이 생겨 문의도 많이 주셨어요. 한지가 건조될 때까지 기다리다 종이를 사 가셨던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컬러와 기법이 적용된 한지의 변화는 무궁무진하다
다양한 컬러와 기법이 적용된 한지의 변화는 무궁무진하다. ⓒfrice

생산자에게 보조금을 지원하거나 관광지에 체험형 전시공간을 따로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지를 좀 더 대중적인 곳에서 재미있게 퍼포먼스를 하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한지산업을 위한 지원사업을 추진하신다면! 생산자나 유통자가 문화 진흥 프로젝트를 직접 만들 수 있게 지원을 하거나, 대중적인 공간에서 감각적인 퍼포먼스를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개선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동양한지는 국산 한지를 지키고 싶어요. 1968년부터 대대로 인사동을 지킨 전문가로서, 앞으로도 국내 생산 업체와 상생하려고 합니다. 한지를 디자인에 활용하는 분들도 국산 한지를 위주로 사용해 주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2부 인터뷰는 한지의 오늘을 업계 전문가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간이었어요. 한지를 만드는 사람, 한지를 쓰려는 사람 모두 고민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한지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노력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자동차 인테리어 소재 연구나 사진 인화용 한지개발은 디자이너의 의지가 느껴지는 시도여서 눈길을 끄네요. 여러분은 한지의 내일을 어떻게 예상하시나요?

재봉틀로 할 수 있는 디자인? 뭐든 OK

이태원 국일사의 장인들이 일하는 모습
왼쪽 이종희 님, 오른쪽 이병수 님. 부부가 47년 동안 이태원에서 자수 가게를 운영중이다.
왼쪽 이종희 님, 오른쪽 이병수 님. 부부가 47년 동안 이태원에서 자수 가게를 운영중이다. ⓒfrice

서로를 소개해주시겠어요?

이종희 이병수는 국일사 사장님인데요. 이름 자수 전문가입니다. 손글씨를 잘 쓰고요. 영문 필기체를 아름답게 새깁니다. 미국대통령이 한국에 오면 맞춤양복을 만든다는 거. 혹시 알고 계세요? 이웃가게인 썬양복점이 미국대통령 양복맞춤을 자주 했는데요. 양복에 이름 새기는 건 꼭 국일사로 오더가 와요. 레이건부터 바이든까지 이병수가 새겼습니다.

이병수 이종희는 아내이자 동료입니다. 사람들이 들고 오는 그래픽 자수 시안을 직접 새깁니다. 이병수가 그래픽 시안의 테두리를 그려서 본을 뜨면, 이종희가 그림을 쓱 보고 옷 위에 그림을 척 새겨요. 한 번 쓱 본 그림을 손자수로 만드는 건 제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이종희 밖에 못해요.


01. “흑백사진으로 본 7080 이태원 전성기”

이병수 옛날 얘기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사진을 꺼내봤어요. 한 번 볼래요? 당시 테일러 샵 앞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런 모습 기억하는 사람은 진짜 이태원 토박이죠.

1976년 이태원시장 상점가를 기록한 사진
현재의 우리는 모르는 옛날의 이태원.
현재의 우리는 모르는 옛날의 이태원. ⓒfrice

두 분은 언제 이곳에 터잡으셨나요?

이병수 우리 둘 다 1974년. 나이는 각자 20대 초중반 일 때네요. 저는 동두천에서 군부대 앞 자수가게에서 배웠어요. ‘국일사’라는 이름은 제가 일 배웠던 가게명을 딴 겁니다. 내 옆에 계신 분은 용산역 근처 미싱자수학원에서 미싱을 배웠지요. 아내는 이태원 오기 전에 다니던 미싱학원에서 수업을 맡았던 자수 선생님이었어요. 실력은 전국기능올림픽에 나갈 정도였고요. 그렇게 전국 각지에서 각자 배워온 걸로 이태원 시장에 자리 잡았던 기술자가 많아요. 그때 미싱 기술자를 고용한 사업체가 10곳 정도 있었어요. 지금은 대부분 은퇴하거나 그만뒀지만요.

이종희 우린 이웃 가게 친구였어요. 그러다 어느 날. 옆에 있는 이병수 씨가 날 쫓아다니기 시작했어요(웃음). 우리 남편이 젊었을 땐 훤했거든요. 미소도 맑고 선했어요. 만나다 보니 79년 11월에 결혼했네요.

7080 이태원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이종희 80년대부터는 이태원에서 재봉틀로 할 수 있는 사업을 여러 방면으로 시도했었어요. 킹샵이라고 직원을 서너 명 뽑아다 시장건물에서 손자수 전문샵을 하기도 했는데, 2009년부터 하던 사업 다 접고 국일사만 집중하고 있어요. 우리 둘이서만 일한 지는 이제 20년 조금 넘었어요.

1976년 이태원 콜트 장군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
ⓒfrice

이병수 이건 용산구청에서 녹사평역 넘어가는 로터리인데요. 여기에 콜트 장군 동상이란 게 있었던 시절이에요. 6.25전쟁 때 미군 사령관인데 이태원 랜드마크였죠.

사진 보면 이태원이 서울이 아니라 미국 도시 같아요!

이종희 지금 평택으로 미군 기지를 옮겨서 뜸한데, 당시 이태원은 정말 미국 사람이 많았어요. 주한미군 가족도 많이 머물렀죠. 시장에서도 한국생활잡화보다 미군이나 미군 가족이 살 법한 물건을 많이 팔았지. 진짜 밍크는 아닌데, 밍크털처럼 부들부들한 담요가 그때 많이 팔렸어요. 양복점이나 빅사이즈 옷가게도 그런 영향이란 말이죠.

우리는 주한 미8군 계급장 같은 걸 직접 해줬어요. 지금 생각하면 참 정겨웠던 시절이에요. 어느 미군이 양말 가게 단골이면 ‘헤이~싹쓰맨~’하면서 놀러 와요. 7월 미국 독립기념일에는 이태원 사람들이 용산 미군기지에 초청받아서 가족끼리 파티도 하고 그랬지. 칠면조도 먹고 케이크 떠서 나눠먹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오래된 실 상자
주변의 기물들은 이야기와 함께 과거를 상상하게 한다.
주변의 기물들은 이야기와 함께 과거를 상상하게 한다. ⓒfrice

기억에 남는 당시 단골손님이 있나요?

이종희 1984년쯤 일인데 이태원 양복점 단골손님이던 장교가 퇴역 앞두고 단골가게 사장님들을 싹 다 모았어요. 덕분에 한국에서 즐거웠다고. 송탄에 같이 가자고. 기념으로 경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그래서 이웃 가게 사람들이랑 미군 비행장 들어가서 아산만 바다 위를 40분쯤 비행했죠. 옛 이태원 시장 단골 손님이 우리에게 전했던 커다란 감사인사 였어요.

낭만이 있었네요. 영화 <탑건 : 매버릭> 엔딩 같습니다.

이종희 이태원이 미군이 다녔던 클럽이 있어서 그런지 거친 이방인이 많을 거란 오해가 있어요. 물론 그런 사람도 있죠. 오히려 이태원에서 만났던 미군은 대부분 겸손했어요. 군인이니까 기본적으로 듬직하지. 성격이 대체로 정직하고 가정적이라고 해야 하나? 특히 가족을 아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젠틀한 사람을 손님으로 많이 만났던 거 같고. 영어도 덕분에 쉽게 배웠던 거 같아요. 복무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한테 우리가 양복 셔츠에 이름자수 많이 해줬어요.

이병수 70년대 이태원은 양복점이 유명했죠. 기술자를 고용해서 의류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동대문이 도매시장이라면, 이태원은 까탈스러운 오더를 맞춰주는 소매시장이었어요. 특히 연예인 무대의상을 잘 만들었죠.

우리가 지금은 핸드메이드 자수 작업을 하지만, 양복점에서 맡긴 옷에 부속품이나 특별 오더 디테일을 달아주는 작업도 많이 했어요. 창고나 서랍장 열면 테일러샵에서 쓰던 금장 단추나 옛날 실같은 게 아직도 있어요. 여기 보세요.

가림막 뒤에 잠들어 있던 부자재 진열장
가림막 뒤에 잠들어있던 부자재 진열장
가림막 뒤에 잠들어있던 부자재 진열장. 함에 들어있는 부속품이 반짝거린다.ⓒfrice

세상에! 이건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하셔야 하는 유물인데요!

이병수 이거 다 가져가셔도 될 거 같아요.(웃음)

이종희 의류는 집단 제작이에요. 양복을 테일러샵 한곳이 다 만드는 게 아니거든요. 단추나 실같은 부속품을 팔거나 자수 집처럼 보조 작업을 해주는 가게가 나란히 움직여요. 그러다 보니 자수하는 사람은 별일을 다 맡아요. 우리는 매번 다른 자수를 놔야 하잖아요. 해봤던 자수는 더 잘해야 하고, 못 해본 작업은 하면서 느는 거죠.

이태원 국일사에서 쓰는 재봉틀 기계
ⓒfrice

이병수 우리 월급이 1970년대 당시 45,000원입니다. 당시 말단 공무원 월급이 25,000원이고 하숙비나 월세가 5,000~6,000원 했을 거예요. 재능 있고 기술이 있으면 일한 만큼 보상은 받는 거죠. 지금은 의류사업이 크게 줄긴 했는데, 우린 미싱 기술이 있으니까 시대에 맞춰서 할 일을 해요.


02.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시작하다.”

미싱머신과 연결된 실
세월의 흔적을 증명하는 낡은 기물
ⓒfrice

한때 이태원 패션이 대단했다고 들었습니다.
시장에는 지금도 미국 워싱턴 상원 의원이 양복을 주문하는 테일러샵이 있더군요.

이병수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연예계에서 들어오는 창작 의류 제작도 이태원이 잘했어요. 그러다 강남 개발 끝나고 패션으로 청담이 뜨면서 완전 흐름이 넘어갔어요. 우리도 변해야 했지. 어쨌거나 유행이 변하고 상권이 변해도 자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많으니까.

이종희 대단했죠. 88 서울 올림픽 개최준비 때부터 한 풀 꺾였어요. 상표 도용 단속이 있었는데, 이후로 조금씩 상권 활기가 떨어졌지요.

지금은 디자인이나 저작권을 귀하게 다루는 게 상식이지만, 80년대 만해도 그런 인식이 희미했어요. 셔츠에 나이키 스우시 로고 그려달라면 그려주고, 체육복에 줄 세 개 그어서 아디다스처럼 만드는 게 대수롭지 않았던 거였죠. 올림픽 맞이하면서 외국인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니까. 도시미관이나 미풍양속 점검한다는 이유로 짝퉁 의류 생산 단속이 심해졌어요. 문 닫아야 하는 가게도 많았어요.

가게 벽면 가득히 각종 네임태그, 자수 패치들이 빼곡하다
가게 벽면 가득히 각종 네임태그, 자수 패치들이 빼곡하다 ⓒfrice

이종희 그래서인지 90년대에는 비보이팀이나 풋볼팀에서 단체 유니폼 손자수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어요. 당장 어제만 해도 오랜 단골 손님이 구멍 난 데님 재킷을 가지고 왔죠. 거기에 꽃자수를 넣어달라네요.

이제 우리는 상표 걱정 없는 자수를 하는 거죠. 손님들의 사적인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맡는 게 즐거워요. 국일사는 그래서 개인이나 팀을 위한 자수 작업을 전문으로 합니다.

어쩐지 가게 안에 가방이나 여행용 캐리어에 매는 네임태그가 많습니다.

이종희 항공사 직원이 국일사를 많이 찾아와요. 항공사 직원들은 동료랑 똑같은 액세서리 맞추는 게 문화인가 봐요.

이병수 얼마 전 ‘뽀빠이’라는 일본 잡지에서 취재하러 왔는데 국일사가 서울여행 추천장소로 소개됐어요. 서울 놀러왔다가 기념품으로 러기지 네임태그 하나 만들어 가는 곳으로요. 요즘엔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어요.

영문 네임태그를 새기는 이병수 님
ⓒfrice

이병수 종종 어학당 같은 곳에서 외국인 유학생들 네이밍 자수해달라고 가방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요. 그 친구들은 말 배우러 온 거니까 사교적인 활동을 많이 하잖아요. 농구나 축구하면서 친해지고. 여행도 많이 다닐 테고. 뒤죽박죽 어울리다 자기 물건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은 거지. 거기에다 한글도 열심히 배우고 있잖아요. 자기가 원하는 글씨체로 메시지를 새기니까 너무 좋아하는 거야. 한국에서 뭔가 하고 있다는 실감이 나나 봐.(웃음)

이종희 한국에서는 물건 잃어버려도 비교적 잘 찾을 수 있잖아요. 외국에선 잃어버린 물건을 도로 찾기 힘들대요. 그래서 네임태그 아이템이 꼭 필요한 거죠. 문화 차이 때문에 생긴 수요라 재밌는 오더예요.

손자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뭘까요?

이종희 일단 그라데이션. 컴퓨터 자수는 깔끔하죠. 그래픽도 정교하고. 그런데 그라데이션 구현은 컴퓨터로는 어려워요. 실 위에 실을 덧대는 자수가 아닌 거죠. 예시로 제가 예전에 작업한 스카잔 재킷을 보여드릴게요.

자수실의 다양한 컬러스펙트럼과 핸드메이드 수베니어 자켓 시안
ⓒfrice

강아지 얼굴을 큼지막하게 등판에 새긴 건데요. 색을 유심히 보면 실 사이에 그림자 같은 게 져요. 컴퓨터로는 이런 음영을 낼 수 없어요. 엇비슷한 색으로 실을 바꿔 넣으면 입체감을 살릴 수 있거든요. ”검은 실을 수놓은 부분에 살짝 연한 파랑을 끼워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업하는 거죠.

이병수 기술만 있으면 컴퓨터보다 빠르게 작업하는 경우도 있어요. 로고면 로고, 욕이면 욕.(웃음) 주문자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표현할 수 있고요. 뭐든 다 되니까 예뻐요. 가끔은 “맙소사… 굳이 이런 걸 꼭 새겨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요. 가게에 걸린 샘플 자수 패치는 컴퓨터 자수가 대부분이지만, 원한다면 손님이 원하는 방향에 맞춰서 따로 재현할 수 있어요.

고객이 의뢰한 수베니어 재킷 자수 샘플 시안
국일사 이종희 님의 손을 거친 수베니어 재킷 디자인 결과물
ⓒfrice

이종희 다들 사연을 갖고 만들어 달라는 거니까. 예술작품이라 여기고 열심히 해요. 가끔 만드는 나도 깜짝 놀랄 디자인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다 만들고 나서 주인한테 연락하지만, 너무 잘 만든 작품은 가끔 되돌려주고 싶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작업 마치면 조금씩 사진을 찍어서 기록을 남기고 있어요. 우리 가게에서 자수 작업하신 분들 따로 연락주시면 많이 반가울 거 같아.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쓰이고 있을지 궁금해요. 막내사위가 운영하는 국일사 인스타그램에 올려드릴 테니까 많이 연락 주세요.

자수 작업을 맡기는 비용이 궁금합니다.

이병수 러기지 태그에 들어가는 네이밍 자수는 보통 6,000원에서 12,000원까지. 의류에 새기는 그래픽 자수는 10,000원 부터 시작해요. 스카잔 재킷처럼 등판에 넓은 면적을 한 땀 한 땀 복잡하게 따는 작업은 직접 보고 견적을 내드리고 있습니다.

국일사에 걸린 다양한 자수 디자인들
ⓒfrice

이종희 우리는 작업하느라 바빠서 SNS할 여력은 없어요. 대신 막내사위가 작품 기록과 대외소통을 맡고 있죠. 우리더러 “장모님 장인어른 가격 좀 더 올려 받으셔라!”라고 하는데…(웃음)

우리는 일단 열린 마음으로 손님이 맡긴 시안을 봐드려요. 가게가 좁기도 하고 사람이 몰리면 난감할 수도 있는데. 직접 와서 언제든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 우리가 가게에 있을 때, 시간만 나면 다 직접 안내해드려요.


03. “내가 자수 디자인을 사랑하는 이유”

frice와 대화를 나누는 국일사 이병수 이종희님
ⓒfrice

40년 넘게 하셨는데 혹시 일이 질리진 않으세요?

이종희 전혀! 실밥 잘 끊고 싶어서 손톱도 늘 예리하게 깎아요.(웃음)

일을 질리지 않게 만드는 의뢰가 종종 있어요. 예전에 제가 정조대왕 화성능행도를 본떠서 옷에 자수를 새겼었어요. 해마다 패션디자인과 사람이나 의류 공부하는 학생들이 공수가 많이 드는 시안을 들고 와요. 기억에 남는 졸업작품 중 하나였죠.

화성능행도를 주제로 한 자수 아트워크
ⓒ국일사

조선 풍속화 보면 그림 속에 사람이 엄청 많잖아요. 인물 하나하나를 의류에 새겨서 그래픽 디테일로 새기는 작업이니까. 돈도 한두 푼 드는 게 아니거든요.

그때 나한테 졸업작품 맡긴 학생한테 당부했어요. 이런 자수는 완전히 똑같이 재현하는 게 아니라고. 너무 기대하면 곤란하다고. 나도 감각을 발휘해서 툭툭 건드리는 거라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100%에 도달하는 거군요.

이종희 맞아요. 손끝 감각에 집중하면 100%를 넘기도 해요. 중요한 건 우리가 신나는 거죠. 실은 뭘 쓸지. 색의 음영은 어디서 강조할지. 신나서 생각하다 보면 완성도가 100%에 가까워져요.

국일사 디자이너의 동반자, JUKI 공업용 미싱
JUKI 공업용 미싱에서 세월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frice

컴퓨터 자수 완성도를 100%라 치면, 손자수는 처음부터 100%를 할 수 없어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실밥을 뜯어서 다시 새긴다거나. 미리 연습하면서 감을 잡아본다거나 하면서 100%에 닿으려는 거죠.

90%에 그칠 걸 98~99%까지 만들면, 거기서만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단박에 100%를 훌쩍 넘는 결과가 나오면 그 나름대로 예쁘고요. 같은 시안을 새겨도 아주 미세하게 달라요. 그게 사람이 다루는 재봉틀 자수의 매력이고 국일사 자수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국일사 전성기는 언제입니까?

이병수 벌이는 옛날이 더 나을 순 있는데, 지금도 좋아요. 50년 묵은 기계와 이제 한 몸이 된 느낌이에요. 우리는 각자 작업하는 자리는 서로 바꿔 앉지도 않아요. 20년 동안 길들인 작업환경 안에서 우리는 기술자로서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죠. 평면 안에 실을 새겨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내는 건 이제 자유자재입니다.

세상이 변하는 걸 느껴요. 이태원 옆 보광동에 폴리텍대학이 있잖아요. 기술 가르치는 학교에 사람이 제법 늘었더라고요. 우리가 수십 년 했던 손자수의 가치도 높아지는 거죠.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작업에 나선 국일사 디자이너들
ⓒfrice

이종희 우리가 디자인한 결과를 손님이 마주했을 때, 그분들이 리액션을 한단 말이죠. 기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맡긴 자수가 자기한테 어떤 의미인지. 우리한테 신나서 말해줘요. 사람이 뭘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짜릿하잖아요. 소통하는 재미도 있고요. 아날로그의 매력이라 생각해요. 손님은 원하는 걸 내게 가져오고. 나는 디자인을 완성하고. 손님은 행복하고. 그뿐이죠.

기술 전수를 진지하게 고민하실 거 같아요.

이병수 저희가 이 일 배울 때만 해도 자수 기술자가 천대받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젠 기술 가진 보람이 있고 자부심도 있어요. 자식들도 다 손자수 하나로 키웠고요. 올해 자수 배우고 싶다는 젊은 사람이 국일사를 찾아왔어요. 반갑긴 한데 일단 셋이 쓰긴 좁은 곳이잖아요. 그리고 우리 머신을 내 줄 순 없어서 일단 돌려보냈어요. 배우겠다는 사람도 재봉틀을 구해야하고, 우리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거죠.

이종희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우리한테 용기를 줘요. 우리는 그냥 만날 하는 일인데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해보라고 하거나 지역축제에 초대해서 재봉틀로 공개 자수 작업을 해달라고 불러요. 속는 셈 치고 따라가면, 대부분 우리를 존중하고 즐거워하거든요. 여태까지 너무 이태원에서만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지냈나 싶네.(웃음)

이제 다들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가치’를 추구하고 살아요. 그래서 우리 손자수 기술이 지금 세상에 더 어울리는 기술이 아닐까 싶어요.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환영해요. 잘 가르치고 싶어요.

frice 로고를 즉석에서 자수로 디자인하는 이종희 님
눈으로 쓱 보고 만드는 솜씨는 가히 장인의 경지다

😈 이 날, 이미지로만 보여드린 프라이스 로고를 보시고 이종희님은 즉석에서 펜으로 슥슥 밑그림을 그리고 자수를 놓아주셨어요.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옮기는 일은 많은 집중력과 관찰력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보고 그린 러프 스케치 위에 자수를 직접 놓는 장면은 좀처럼 볼 기회가 없었는데 정말 정교하고 빠르시더라고요!

국일사의 사장님들은 본인들을 기술자라고 하셨지만, 일평생 재봉틀과 한몸이 되어 작업을 해오신 모습이 장인의 경지라고 느껴졌어요. 요즘은 일도, 머무는 곳도 자주 옮기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는데요.

여러분은 일평생 하나의 직업을 가져야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그 일을 수십년 동안 같은 동네에서 하게 된다면 어떤 감정이 들 것 같나요?

백자에서 한지를 발견하다

경기도 이천에서 백자 시리즈를 만드는 박성극 작가
대표 작품 한지 시리즈 찻잔(좌). 박성극 작가(우)
박성극 작가는 재일교포 3세로 일본 시마네현에서 자랐다. 26살, 한국 여행 중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도자기에 매료되어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됐다.
박성극 작가는 재일교포 3세로 일본 시마네현에서 자랐다. 26살, 한국 여행 중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본 도자기에 매료되어 도예가의 길을 걷게 됐다. ⓒfrice

한지 시리즈 hanji series (2018)
한지(韓紙)의 질감을 간직한 백자 식기. 얇지만 단단하다. 방망이로 백자토를 두들겨 밀도를 높이고, 높은 온도(1280~1300℃)에서 환원소성하여 강도가 세다. 건조-소성 과정에서 생긴 변수는 한지 백자에 ‘자연스러운 선(line)’과 멋을 더한다.

박성극
경기도 이천에서 도자기 작업을 한다. 요즘엔 차(茶)도구 제작 실험에 푹 빠져있다.

SNS @parksongkuk
판매처 CHAPTER 1, 리움스토어

2023년 여름 한남동 라이프스타일 편집샵 '챕터 원'에서 열린 테이블웨어 판매전시. 새로운 조형을 지닌 백자 식기를 만날 수 있었다.
2023년 여름 한남동 라이프스타일 편집샵 ‘챕터 원’에서 열린 테이블웨어 판매전시. 새로운 조형을 지닌 백자 식기를 만날 수 있었다. ⓒfrice

흙에서 한지의 물성을 찾게 된 순간이 궁금한데요!

한지 백자는 2018년에 ‘자연스러운 선(line)’이라는 주제로 그릇을 만들 때 얻었어요. 한 달에 한 번. 스스로에게 새로운 주제를 던져서 도전적인 실험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한지는 인공적인 사물이지만, 찢어진 테두리나 주름 같은 건 보기에 자연스러워서 그 느낌을 흉내 내고 싶었어요. 알갱이가 굵고 거친 흙을 섞어본 거죠. 여러 가지 모습을 만들다 일상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릇이 얇으면서도 단단합니다.

닥나무 종이가 지닌 자연스러움, 나무껍질로 짠 종이의 물성을 흙으로 표현했어요. 흙으로 한지를 표현하려면 모양을 얇게 떠야 합니다. 얇게 뜬 흙은 말릴 때나 구울 때, 외부 영향을 쉽게 받아 휘는데요. 휘어진 흙의 곡선으로 멋을 내고 싶었어요. ‘얇지만 튼튼한 그릇, 하얀색이 깃든 그릇’을 만들다 보니 결과적으로 백자토를 고르게 됐습니다. 고온에서 달군 백토는 제법 단단하거든요.

돌돌 말린 흙덩어리. 흙을 평평하게 밀고 잘린 조각을 이어 붙이면 입체적인 조형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기법을 '판 성형'이라 부른다.
돌돌 말린 흙덩어리. 흙을 평평하게 밀고 잘린 조각을 이어 붙이면 입체적인 조형을 만들 수 있다. 이런 기법을 ‘판 성형’이라 부른다. ⓒ박성극

가장 까다로운 작업공정은 무엇입니까?

가마에서 꺼낸 그릇에 유약 바르기입니다. 한지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 얇게 *시유 해야 합니다. 두께가 얇은 흙은 수분을 빨아들이는 힘이 약해요. 유약통에 담갔다 빼면 물이 뚝뚝 흘러서 문제인데요. 한지 질감을 살리기 위해 다른 작업을 추가해요. 그중 하나가 가스 토치로 그릇을 말리는 공정이에요. 제 생각에 백자 시유하는 과정에서 유약 바른 그릇을 하나하나 토치불로 건드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거예요.(웃음)

밥국공기 세트. 작업 초창기부터 만든 조형이다. 크기나 두께는 조금씩 변화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밥국공기 세트. 작업 초창기부터 만든 조형이다. 크기나 두께는 조금씩 변화를 거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박성극

한지를 닮은 그릇에는 어떤 한국적인 미(美)가 담겨 있나요?

한국적인 미(美)를 담아내려고 의식하진 않았지만, 생각해 보긴 했어요. 저는 한국의 아름다움이 ‘소박함’이라 생각해요. 소박함을 신경 쓰는 건 개인적인 체험 때문일 겁니다.

저는 커다란 호수가 있는 동네에서 자랐고, 세계 여행할 때는 네팔 히말라야 같은 곳을 다녔거든요. 외국의 자연환경과 비교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소박해요. 그래서 예전에는 한국이 심심하다고 느꼈는데, 경기도 이천에 정착해서 오래 살고 보니까 안 보이던 게 보여요. 작은 스케일에서 나오는 멋이 한국의 아름다움이지 않을까 싶어요. 자연환경이 소박하면, 그런 데서 사는 사람도 소박하지 않을까요?

아! 시대 변화나 환경 차이는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전통 도자는 지금도 성공적으로 재현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조선시대 도공과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죠. 옛사람들의 성격은 옛사람들이 만든 그릇에만 담길 겁니다. 요즘 그릇에는 요즘 사람들의 멋이 담기겠죠.

한지 시리즈를 수납한 카메라백. 작가는 이를 '모빌리티 연구'라 부른다. 기물의 운반편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설명.
한지 시리즈를 수납한 카메라백. 작가는 이를 ‘모빌리티 연구’라 부른다. 기물의 운반편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는 설명. ⓒ박성극

작가님이 담아내는 멋이 궁금합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연구하시나요?

제 그릇 연구는 ‘실험’입니다. 작업 환경에 일부러 제한을 걸고 선택지를 좁히는 방식으로 연구하는 거죠.

환경을 일부러 제한하고, 주어진 문제를 하나씩 해결할 때 미처 몰랐던 작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작은 구멍 같은 걸 만들어 놓고, 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흙덩어리를 이런저런 모양으로 뽑아내는 거죠. 그러다 보면 제가 만들어본 적도 없는 형상이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이즈가 나와요. 그런 걸 조합하고 분해하며 내심 원했던 결과물에 도달하는 것 같습니다.

실험 끝에 새로운 걸 얻는 건데요. 도자기의 형태를 머릿속에 미리 구상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나는 디자이너는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작업실에서 계측을 거쳐 만드는 샘플 그릇. 초기 작품과 비교하면 그릇 두께는 점점 종이처럼 얇아지고 있다는 설명
작업실에서 계측을 거쳐 만드는 샘플 그릇. 초기 작품과 비교하면 그릇 두께는 점점 종이처럼 얇아지고 있다는 설명. ⓒ박성극

최근 새롭게 만들고 있는 것이 있나요?

얼마 전 찻잎을 보관할 그릇을 한지백자로 만들어봤어요. 뚜껑을 덮고 세우면 보관용기가 되는데요. 비스듬히 기울이면 찻잎이 다관(茶罐)에 굴러갑니다. 그릇이 아닌 도구를 응용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뚜껑이 없었어요. 만들고 직접 써보니 차를 준비하는 동안 먼지를 막을 뚜껑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뚜껑을 달면서 그릇이 된 거죠. 작품 만들 때는 이런 식으로 직접 만들어 봐야 풀리는 거 같아요. 뚜껑 크기나 밀폐 수준 같은 건 좀 더 테스트하고 있어요.

뚜껑이 달린 보관용기. 목적은 찻잎 보관과 분배. 찻잎을 그릇에 털 때 쓰는 '다하'를 응용했다
뚜껑이 달린 보관용기. 목적은 찻잎 보관과 분배. 찻잎을 그릇에 털 때 쓰는 ‘다하’를 응용했다. ⓒ박성극

디자인이 결정되면, 하루에 작품을 몇 점 만들 수 있나요?

머그컵 기준으로는 하루에 약 20여 개 정도입니다. 가마에 넣었다 터지는 그릇은 폐기하니까 실제로는 더 적죠. 크기가 작다고 많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종류마다 달라요. 작은 찻주전자 같은 건 하나 만드는데 하루 종일 시간을 쏟기도 해요. 흙덩이를 붙이는 공정이 많거나, 모서리가 각진 그릇일수록 까다롭고 오래 걸립니다.

경기도 이천의 작업실과 실험대. 그는 실험이 도예활동의 원동력이라 말한다
경기도 이천의 작업실과 실험대. 그는 실험이 도예활동의 원동력이라 말한다. ⓒ박성극

작가님은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쏟나요?

제 취향은 실험 그 자체에 있는 것 같아요.

생흙을 빚어서 실험적인 작품을 가마에 넣으면 항상 들떠요. 흙이 거칠면 예상하지 못한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기대한 모습대로 도자기가 나올지 궁금해서 뜨거운 가마 문을 괜히 건드려봐요.

예컨대 원토로 차 그릇을 만들면, 흙이 물을 빨아들이는 정도가 달라요. 차 맛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항상 가마에서 나온 원토잔은 직접 시음을 해보죠. 뭘 어떻게 바꿔나갈지. 흙의 배합을 조금씩 바꿔보면서 실험을 이어가는데, 이 과정 자체가 감정을 부풀려요.

도자 공예가한테 중요한 감정은 이런 ‘들뜬 마음’같아요. 실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이 감정은 나중에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잊지 않고 싶지 않아요.(웃음)

생흙을 불에서 굽는 장면
2023년 봄, 박성극 작가는 전남 구례에서 열린 찻잔 만들기 행사에 참가. 지리산 자락 논두렁의 생흙으로 원시적인 토기를 만들었다.
2023년 봄, 박성극 작가는 전남 구례에서 열린 찻잔 만들기 행사에 참가. 지리산 자락 논두렁의 생흙으로 원시적인 토기를 만들었다. ⓒBOAN1942

작가님 그릇에는 한국 문화가 어떻게 담기나요?

무의식적으로 담기죠.(웃음) 한국적인 걸 원해서 한국적인 그릇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작품에 한국적인 요소를 넣는 작가님도 있죠. 저는 어쩌다 한지를 떠올렸을 뿐이고 그건 제 안에 이미 들어와 있던 겁니다.

사실 저한테 한지 시리즈가 나왔다는 게 재밌어요. 솔직히 제 도자취향은 정 반대거든요. 두껍고 무겁고 색이 어둡고, 쥐었을 때 손맛이 있는 그릇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지 백자는 새로운 가능성입니다. 저도 미처 몰랐던 작가로서의 가능성이요.

제가 만든 얇고 하얀 그릇은 첫 해외여행을 떠올리게 만들어요. 낯선 경험에 빠지고 거기서 얻은 감동으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던 날들이었어요.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작업자이고 싶습니다.

그러다 보면 또 우리나라 문화를 담은 멋진 그릇을 만들기도 하겠죠?

2024 실험작. 알갱이가 굵은 흙으로 만든 흑유 다기
2024 실험작. 알갱이가 굵은 흙으로 만든 흑유 다기. ⓒ박성극

😈 “오히려 좋아!”라는 유행어가 떠오르네요. 엉뚱한 상상. 상상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 반복된 실험 끝에 발견한 나만의 조형. 공예가의 그릇에는 먹거리만 담기는 게 아니라 작가가 추구하는 멋과 태도가 담기는군요. 재료의 본연의 성질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한국적인 멋을 발견하는 통찰력. 그건 저도 갖고 싶은데요!

한국적 미감이 공간과 경험에 스며들 때

한국적인 전시공간에 놓인 공예품과 차도구

<1부에서 이어집니다>

VMD 작업에 나서는 유인성 디자이너
ⓒfrice, NOTE associates

frice는 한국의 디자이너를 만나,
‘한국적인 디자인 vs 한국의 디자인’ 두 개념의 차이를 묻고 각자의 생각을 수집하고 있어요.
한국을 무대로 십여년 간 디자인 실무를 맡은 인성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솔직히 두 개념을 구분하는 게 어려워요!(웃음)

먼저 제 입장부터 말씀드리면, ‘한국적인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태도가 점점 더 필요할 것이라 봐요. 지금처럼 많은 정보와 이미지가 빠르게 공유되는 세상. 모든 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미래로 갈수록 말이죠. 소위 말하는 ‘전통’에 갇힐 필요는 없어요. 로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우리가 사는 집,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거기에 한국적인 생활 방식이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티하우스에 놓인 기물들
ⓒfrice

서양에서 유래한 기능과 물질의 시대를 지나, 동양의 정신적인 측면이 필요한 시기가 왔다고 봐요. 최근 보이지 않는 것을 강조하는 동양문화의 태도를 여러 문화권에서 흥미롭게 여기는데, 그런 관심이 요즘 한국으로 향하는 것 같아요. 한국은 문화적으로 다른 문화권보다 피드백이 빠르고 개방적입니다. 동양의 토착 문화를 중국과 일본만큼 폐쇄적으로 가두지 않는다면, 거기서 한국적인 디자인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을까요?


도자기와 차 도구가 놓여진 청담동 티하우스 하다 공간
청담동 티하우스 하다
ⓒfrice

01.티하우스 하다

“한국적인 미감은 대체 무엇일까?”

Designer’s comment

<티하우스 하다(teahouse hada)>는 한.중.일 차문화를 다루는 공간입니다. 찻집이면서 작은 전시가 열리는 갤러리, 수업이 열리는 교실인데요. 한국적인 미감을 간직한 곳이여서 소개합니다. 세 나라의 동양적인 분위기를 공존시키면서 한국적인 요소도 비중있게 다뤄야 했어요. 공간 설계는 AREA+라는 인테리어 스튜디오에서 진행했고, 저는 프로젝트 처음부터 브랜드 개발과 디자인 파트 협업을 맡았죠. 티하우스 론칭이 끝난 지금도 디자인 업무와 사진 촬영, SNS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벌써 3년이 지났네요.

초대장이 놓여진 테이블
티하우스 하다의 차문화 행사를 준비하며 설치한 차도구들
ⓒfrice

<티하우스 하다>는 말씀대로 세 나라의 분위기가 전해집니다. 그 중 ‘한국적인 미감’이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먼저 전통적인 스타일, 근대적인 스타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티하우스 하다>는 전통적인 스타일이지 않을까요?

저는 한국적인 미감을 호방한 선, 은은한 매력, 화려하지 않지만 품위를 잃지 않는 균형감, 옅지만 분명한 색채감이라 생각합니다. 무언가를 표현할 때 드러나죠. 허례허식이 없는 편인데, 공예 분야는 전반적으로 실험정신이 강한 거 같아요.

중국적인 미감은 디자인에서 볼드하고 강렬한 컬러로 나타나는 듯해요. 음과양(yin & yang)의 조화/대비를 신경 쓰는 것도 특징이네요. 일본은 정제되고 섬세한 디자인을 지향하는 것 같습니다. 선(zen,仙)을 추구하는 문화가 있었고 전통적인 미감을 옛부터 지금까지 고스란히 지켜서 내려온 영향이라 봐요.

티하우스 하다의 입구로 들어오면 말간 은색 소재를 활용한 사이니지를 마주한다. 하얀 벽 위, 도톰한 양각로고가 공예적인 인상을 전한다
티하우스 하다의 입구로 들어오면 말간 은색 소재를 활용한 사이니지를 마주한다. 하얀 벽 위, 도톰한 양각로고가 공예적인 인상을 전한다. ⓒNOTE associates

<티하우스 하다>에서 한국적인 요소는 어떤 식으로 배치됐나요?

하얀 삼베로 감싼 가구. 한지로 만든 벽. 문으로 만든 작은 방이 있습니다. ‘여백의 미’를 바탕에 깔되, 너무 빛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소재를 활용할 것. 공간에 어울리는 은색, 색이 말갛게 반짝이는 스틸 소재 사이니지, 포장물에도 도톰한 질감과 자연스러운 색감의 종이를 사용하기로 결정했죠.

돌돌 말린 종이는 수제한지. 롤 끝부분에 섬유의 거친 질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마감이 깔끔한 기계한지에서 느낄 수 없는 투박한 멋이다
돌돌 말린 종이는 수제한지. 롤 끝부분에 섬유의 거친 질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마감이 깔끔한 기계한지에서 느낄 수 없는 투박한 멋이다. ⓒNOTES associates

SNS를 통해 받는 고객들의 피드백에서는 사진의 톤이라던가 무드가 분명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브랜드와 기업의 관점에서는 브랜드 이미지가 곧 정체성이고, 이것은 비즈니스의 지속가능성과 세계관을 형성하는데 필수이기 때문인데요. 이 부분은 많이 신경쓰고 있습니다.

티하우스 하다에서 찻잎을 엄선해 만든 프리미엄 티백. 차를 신선하게 보관하는 틴 케이스로 필요한 정보만 최소한으로 기입해 디자인을 최대한 절제시켰다
심플한 패키지에 한지 종이를 활용한 라벨로 포인트를 줬다
티하우스 하다에서 찻잎을 엄선해 만든 프리미엄 티백. 차를 신선하게 보관하는 틴 케이스로 필요한 정보만 최소한으로 기입해 디자인을 최대한 절제시켰다. 심플한 패키지에 한지 종이를 활용한 라벨로 포인트를 줬다. ⓒfrice

그리고 한국의 아티스트와 연중 2~3회 기획전시를 엽니다. 작가의 작업실을 직접 방문하고 작품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것을 살피는데요. 작가의 개성을 티하우스와 연결하기 위해 애쓰는 편입니다.

전시기획안과 기획이 구현된 현장
한국적인 전시공간에 놓인 공예품과 차도구
전시기획안과 기획이 구현된 현장. ⓒNOTES associates, frice

'도심 속의 휴식, BLUE COMMA' 라는 팝업 로고 디자인은 기존 브랜드와 어울리도록 개발했다. 산세리프 서체로 모서리가 동글동글한 로고를 만들고, 스며드는 느낌을 의도했다는 설명. 타겟 제품의 컬러인 블루를 차용하면서 공간 전체에 푸른색의 키 컬러를 배치했다
‘도심 속의 휴식, BLUE COMMA’ 라는 팝업 로고 디자인은 기존 브랜드와 어울리도록 개발했다. 산세리프 서체로 모서리가 동글동글한 로고를 만들고, 스며드는 느낌을 의도했다는 설명. 타겟 제품의 컬러인 블루를 차용하면서 공간 전체에 푸른색의 키 컬러를 배치했다. ⓒNOTES associates

02. 클레어스 서울

“한국의 뷰티 브랜드가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이어야 할까?”

Designer’s comment

<디어, 클레어스 (Dear, Klairs)>라는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 쇼룸입니다. 2010년부터 기초 라인의 스킨케어 제품을 전개한 뷰티 브랜드죠. ‘미드나잇 블루 드롭’이라는 제품을 알리기 위한 팝업 스페이스를 요청. 행사를 자사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열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습니다.

팝업 스토어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업무가 다양해요. BI 디자인 개발부터 다양한 프로그램 콘텐츠 디자인, 그리고 층별 공간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포괄합니다. 디자이너들이 궁금해하는 건 브랜드 디자인이 경험으로 맞닿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뷰티와 한국적인 미감을 연결하는 프로젝트 사례인데요. 프라이스에서 처음 소개드립니다.

뷰티와 아트의 결합. 이것이 브랜드 경험을 설계한 유인성 디자이너의 의도다
네모난 조형물은 도심 속 빌딩을 상징한다. 푸르른 배경과 어우러지며 시각예술전시로 기능한다
네모난 조형물은 도심 속 빌딩을 상징한다. 푸르른 배경과 어우러지며 시각예술전시로 기능한다. 뷰티와 아트의 결합. 이것이 브랜드 경험을 설계한 유인성 디자이너의 의도다. ⓒfrice

오늘 저희가 만난 작업현장은 한국적인 미감이 현대적으로 반영된 듯합니다.
구체적인 디자인 프로세스가 궁금하네요.

사실 한국적인 미감을 직접적으로 원하는 프로젝트는 많지는 않습니다. 한국적인 브랜드 요소와 철학을 이미 가지고 있는 코스메틱 브랜드나 퓨전 한식을 주력으로 하는 레스토랑, 혹은 신진작가의 작품과 디자인 상품을 판매하는 한국의 편집숍이 대표적이네요.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먼저 서울 강남권 신사동이라는 지역의 특수성과 현재 상황을 살펴봤어요. 주인공은 스킨 케어 제품이고, 그것이 지닌 포뮬러나 컬러의 특성을 체험 프로그램과 시각 디자인으로 녹여내면서 공간과 연결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공간 기획 스케치. 네모난 조형물은 도심 속 빌딩을 상징한다. 푸르른 배경과 어우러지며 시각예술전시로 기능한다
유인성 디자이너의 작업노트와 실제 전시. 팝업 공간에 회화적인 요소를 결합하기 위해 사이토 유나(斎藤 悠奈)작가를 섭외했다
한지에 푸른 염료를 뿌려 푸른 배경을 깔고 그 위에 제품과 오브제를 나란히 배치했다.
유인성 디자이너의 작업노트와 실제 전시. 팝업 공간에 회화적인 요소를 결합하기 위해 사이토 유나(斎藤 悠奈)작가를 섭외했다. 한지에 푸른 염료를 뿌려 푸른 배경을 깔고 그 위에 제품과 오브제를 나란히 배치했다. ⓒNOTE associates, frice

하루에도 수십 개가 열리는 팝업이 트렌드가 되어버린 이 시점에서 <디어, 클레어스>라는 브랜드가 던질 수 있고, 던져야만 하는 키 메세지를 고민했는데요. ‘도심 속의 푸르른 휴식 Blue, Comma’이라 정했고, 그에 부합할 콘텐츠와 브랜드 디자인을 전개했습니다.

그리고 스킨 케어와 예술은 교집합이 있어요. ‘아름다운 것을 가꾸고 지킨다’라는 지점이 서로 닮아있기 때문에 브랜드 경험의 관점에서 일부 프로그램에 작가와의 협업도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실행여부를 결정합니다.

도심 속 푸르른 휴식을 주제로 한 팝업공간
ⓒNOTES associates

최근 팝업 스토어의 고객 경험 디자인은 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뷰티 브랜드를 소개하고 제품을 직접 체험하도록 다양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구성했어요. 염색하지 않은 광목 천, 기둥 형태의 전시 매대, 푸른 카펫이 깔린 공간에 놓인 거대한 빈백. 여러 장치가 어우러져 ‘도심 속 푸르른 휴식’이라는 경험을 디자인합니다.

팝업 방문자를 위한 안내용 인쇄물
ⓒNOTE associates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행하셨나요?

키 메시지의 이미지를 ‘한국문화’에서 끌어오기로 결정했어요. 먼저 2층에 티하우스를 구성해 티코스 체험을 기획했는데요. 차 종류를 국내산으로 좁혀 하동의 녹차/홍차를 골랐어요. 다구 곁에 두고 쓸 스타일링 오브제는 한지에 푸른색 염료가 번지는 방식의 작업을 통해 만들었어요. 2층의 한국적인 티코스가 3층에는 작은 전시가 열려서 서로 맞물리는 거죠.

브랜드가 하나의 스킨케어 제품을 어떤 식으로 보여주고, 어떤 소구 포인트를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었어요. 모처럼 뷰티 브랜드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풀어낸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였습니다.

인플루언서를 위한 기프트 패키지. 박스를 열면 오르골 음악과 함께 제품이 회전한다. 고객이 공간에서 느낀 경험을 좋은 추억으로 회상하고, 집에서도 리추얼 라이프를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래시계를 동봉했다. 서랍에 수납되는 패키지가 고급스러운 인상을 더한다
인플루언서를 위한 기프트 패키지. 박스를 열면 오르골 음악과 함께 제품이 회전한다. 고객이 공간에서 느낀 경험을 좋은 추억으로 회상하고, 집에서도 리추얼 라이프를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래시계를 동봉했다. 서랍에 수납되는 패키지가 고급스러운 인상을 더한다. ⓒNOTE associates

한국의 공간을 디자인하고, 브랜드 경험을 디자인하는 작업은 인성님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나요?

‘아, 나는 한국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 때가 있어요. 특히 이른 나이에 외국을 갔다거나, 오랜 기간 유학을 다녀온 디자이너들과 일할 때 느끼는데요. 한국적인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지, 나는 어떤 미감을 좋아하는지, 한국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이 나의 인생에서 어떤 부분에서 스며들었는지 이제서야 조금씩 인식하기 시작하는 단계인듯 해요. 여태까지 수많은 회의와 출장을 거쳤는데도 말이죠.

한국적인 미감을 다루는 디자이너의 역할을 정의하기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디자인 실무를 통해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상대방에게 솔루션을 제공하는 ‘안내자 역할’, 아무리 트렌드가 빨라도 그 안에서 좋은 것을 간파하겠다는 ‘능동적인 태도’. 디자이너가 지녀야 할 중요한 역량이라 생각해요.

유인성 디자이너의 모습
ⓒfrice

그렇다면 그런 디자인은 우리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우리가 선택을 내려야 할 때, 균형을 잡아줍니다. 나와 맞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주는데요. 그게 결국 한 사람의 삶에 어울리는 결과를 안겨줄 가능성이 높죠.

화장품에 빗대면 이해가 빠릅니다. 솔직히 성분으로 따지면 화장품은 브랜드 별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요. 하지만 다들 패키지 조형이나 브랜드가 던지는 메시지, 화장품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죠. 그래서 공급자의 전략은 소비자가 나와 닮았다고 느끼는 브랜드의 제품을 고르게 만드는 걸 텐데요.

브랜드 디자인은 화장품처럼 선택지가 많은 제품군에서 적절한 안내를 돕습니다. 생애주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남녀노소 각자 처한 상황을 반영하면, 같은 물건을 고르더라도 선택지가 바뀝니다. 내가 능동적으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구축된 브랜드 디자인은 소비에 필요한 탐색을 쉽게 만들어요.

😈 시도가 시선을 만듭니다. 유인성 디자이너는 공간에 관여하며 아름다움을 배우고, 경험을 설계하며 깨달음을 얻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내가 스며든 자리를 바라볼 때 시작된다고, 영감은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고 말했어요.

나에게 조금씩 스며드는 한국의 정서와 미감을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유인성 디자이너. 자신의 관점을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키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요. 공간과 경험에 관여하며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작업. ‘안내자 역할‘을 하는 디자이너의 생각들. 여러분들은 어떠셨나요?

관점에 관여하다

뷰티 브랜드 팝업의 VMD를 손보는 유인성 디자이너
뷰티 브랜드 팝업 쇼룸 설치현장에서 만난 유인성 디자이너
뷰티 브랜드 팝업 쇼룸 설치현장에서 만난 유인성 디자이너 ⓒfrice

안녕하세요 인성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디자인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지 16년 차인 브랜드 디자이너입니다. 그래픽, 패션, 리조트, 브랜드 에이전시, 건설, 부동산 개발 회사 등을 거쳤는데요. 창작과 라이프 스타일에 관여된 디자인 프로젝트가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공간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프로젝트를 열심히 했죠. 지금은 공간 디자인을 포함한 브랜드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 맡았던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네이버에서 UXDP라는 채용 프로그램을 열었어요. 2010년대 전후 디자이너 지망생 사이에서 인기였던 인턴십으로 기억해요. 연수원에 인턴을 11일 정도 합숙시키고 경쟁형 도전과제를 내요. 일종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죠. 저는 UXDP 참여를 마치고 브랜드팀에 배치됐어요. 그 당시 네이버는 디자인 조직을 크게 ‘브랜드/BX/UX’로 나눴죠. 브랜드팀은 네이버의 브랜드 전략과 각종 서비스를 관리했습니다. 저는 일부 서비스의 선행 개발에 참여했어요.

‘브랜드 경험Brand Experience’도 디자인하시는데요.
지금은 상식처럼 여겨지는 일이지만, 당시 한국에선 낯선 개념이었어요.

제가 입사했던 2000년대 후반, 디자이너 사이에 본격적으로 언급됐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이직하며 맡았던 실무가 브랜드 경험(BX) 디자인이어서 적응하며 조금씩 눈 떴던 거 같아요. 네이버를 떠나고 JOH.를 6년 정도 다녔습니다. 동료들이 이미 BX나 브랜딩이라는 개념을 실무에 접목시켜 대중적으로 전파하는 리더들이기도 했어요. 덕분에 빨리 깨우쳤죠.

유인성 디자이너의 디자인 노트. 아이디어 구상은 빈 종이에 간단한 썸네일을 그리는데서 출발한다
유인성 디자이너의 디자인 노트. 아이디어 구상은 빈 종이에 간단한 썸네일을 그리는데서 출발한다. ⓒfrice

브랜드 경험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지만, 이론서에 따르면

‘브랜드 경험은 정체성, 시각요소, 세계관 같은 걸 따로 설계하고
그것을 사용자가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끔 연결하는 디자인 작업이다.’

라고 정리됩니다. 설명 자체가 너무 추상적입니다.(웃음)

실무를 잡더라도 딱 떨어지는 공식이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라 생각해요.(웃음) 브랜드 경험 디자인은 단순한 비주얼 디자인이 아닙니다. 상품이나 서비스가 가진 장점을 살리고, 그것을 좋아 보이게 만드는 일이죠. 이왕이면 브랜드에 얽힌 사람들이 서로 좋은 자극을 받고, 상호 유익한 도움이 이뤄지도록 판을 설계하는 게 핵심입니다. 저는 고객이 브랜드와 서비스를 만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느끼는지 궁금해요. 브랜드를 만난 사람들이 세상을 향해 반응하는 지점이 궁금해서 계속 브랜드 디자인에 ‘관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관여’라는 단어가 인상적입니다. 브랜드에 어떤식으로 관여하게 되나요?

먼저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 에 관여합니다. 브랜드와 클라이언트가 우리를 찾는 이유를 알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죠. 페이퍼워크를 통해 의뢰인에게 프리젠테이션을 꾸준히 펼치는 식으로 방향성을 정하는 단계가 선행됩니다. 그다음에 시각화visualization 단계를 거치는데요. 디자이너는 이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온갖 업무에 관여되는 듯 합니다.

앞서 말한 업무를 끝내고 본격적인 디자인 단계로 넘어가면 종이나 컴퓨터 화면 같은 2D 표면에 컬러와 도형을 조합해 그래픽과 더불어 다양한 콘텐츠를 구현합니다. 클라이언트의 브랜드를 분석하고, 시각요소를 위한 기획이나 전략을 만들어요. 이 과정에서 다양한 디자인 요소들을 배치하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인테리어 프로젝트에서 가구가 키 요소라면 적합한 가구를 찾고, 영상 제작이 필요하면 영상전문가를 찾아내 일정을 주도적으로 짜요. 인력섭외와 일정관리는 브랜드 경험을 디자인하는 사람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시각요소에 개입하는 디자이너의 업무를 설명하기 위해 아카이브 노트를 펼친 유인성 디자이너
시각요소에 개입하는 디자이너의 업무를 설명하기 위해 아카이브 노트를 펼친 유인성 디자이너 ⓒfrice

또한 브랜드를 경험할 고객을 위한 공간에 관여합니다. 만약 오프라인 이벤트가 열린다면, 고객이 방문하는 공간에 세부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를 설계해야 합니다. 이건 디자이너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각 분야의 전문가와 팀을 이루고, 목표달성을 위해 프로젝트를 발전시켜요. 자신감과 책임감을 갖고 건축 전문가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세부사항을 조정하는 거죠.


직무를 브랜드 디자이너라고 소개하셨는데,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다양한 일을 수행하셨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시작은 그래픽에 관여하는 것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일하더라도 브랜드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계속 깔려있었어요. 대림처럼 부동산 개발과 얽힌 조직에서 근무했을 땐 디벨로퍼의 관점을 익혔어요. 공간을 기획하고 이름을 붙이고, 그런 공간이 도시 안에서 어떤 기능과 콘텐츠를 가진 플랫폼이 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는 일을 했습니다.

두 번째 직장이었던 JOH.의 조직문화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JOH.는 대외적으로 『매거진 B』를 만드는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건축부터 F&B까지 각 분야별 전문팀이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유기적으로 움직여요.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주받으면 팀 별로 필요한 사람들이 모여 업무를 수행해요. 하나의 프로젝트도 다양한 카테고리에 걸쳐져 종합적으로 전개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저도 여러 업무에 관여했습니다.

본업인 디자인 에이전시 업무 외에도 『매거진 B』의 콘텐츠 제작에 일부 관여했다는 유인성 디자이너의 노트를 구경할 수 있었다
본업인 디자인 에이전시 업무 외에도 『매거진 B』의 콘텐츠 제작에 일부 관여했다는 유인성 디자이너의 노트를 구경할 수 있었다. ⓒfrice
유인성 디자이너는 당시 협업이 브랜드 경험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시각 콘텐츠로 바꿔보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유인성 디자이너는 당시 협업이 브랜드 경험이라는 막연한 개념을 시각 콘텐츠로 바꿔보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회고한다. ⓒfrice
B's Cut의 촬영 시안. 각 호마다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할 제품을 골라 스튜디오에서 촬영한다. 디자이너는 사진작가에게 요청할 연출법을 시각화해서 전달한다
B’s Cut의 촬영 시안. 각 호마다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할 제품을 골라 스튜디오에서 촬영한다. 디자이너는 사진작가에게 요청할 연출법을 시각화해서 전달한다. ⓒfrice

브랜드 디자이너의 일은 장기간에 걸쳐 있는데다, 비가시적인 성과가 더 많습니다.
디자이너의 업무능력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관점’과 ‘방향성’이 브랜드 디자이너의 무기라고 생각해요. 두 가지가 참 중요해요.

좋은 ‘관점’과 ‘방향성’을 잡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하시나요?

극초반 아이디어 구상은 메모로 하는 편입니다. 레퍼런스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노력인데요. 브랜드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워낙 레퍼런스를 많이 쥐고 있어요. “A브랜드가 B콘셉트로 팝업스토어 연다더라.” “C는 D에서 F를 시도했는데 흥행했다더라.” 온갖 정보가 귀에 들어와요.

그런 레퍼런스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핵심을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메모에 담은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애써요.

개인적으로는 핀터레스트를 주의하는 편인데, 최근에는 AI까지 가세했어요. 트렌드를 스타일로 구분하고 순위를 매기는 서비스가 등장했고 유저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오픈소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죠. ‘이런 데이터 분석의 결과값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건가?’ 유행에 몸을 맡기는 현대 디자인 트렌드에도 조금은 경계심을 갖고 있어요.

지금 한국에서 전문 조직이 브랜드를 설계하는 경우, 데이터 기반 오픈소스툴 활용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디자인 업무를 수월하게 해준다는 장점이 있어요. 좋은 툴입니다. 좋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하라는 거죠. 정서적인 심상과 문제 해결을 위한 직관, 그리고 리서치 데이터를 접목시키는 건 디자이너의 역량이니까요. 이 세상이 점점 더 자극적이고 더 화려하고 더 시끄러운 곳으로 끌려가고 있어요. 데이터 분석에 의한 알고리즘이 알게 모르게 실무에 반영된다는 걸 의식하고, 좀 더 순간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거죠.

레퍼런스를 떠나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그 안에 담긴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레퍼런스를 떠나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그 안에 담긴 직관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frice

브랜드에 관여하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관점을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켜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관점 하나로는 결국 한계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브랜드 디자인은 결국 추상과 실제를 연결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모순적인 가치를 양립시키며 진전되는 사례도 빈번하죠. 브랜드가 추구하는 사업적인 가치를 따지려면 이성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 테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남기 위해서는 동시에 정서적인 관점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유인성 디자이너가 기록한 토론 자료.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1~2주 간격으로 클라이언트 미팅에 필요한 PT작업에 나선다고 한다
유인성 디자이너가 기록한 토론 자료. 브랜드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1~2주 간격으로 클라이언트 미팅에 필요한 PT작업에 나선다고 한다. ⓒfrice

그래서 저는 프로젝트 초반에 클라이언트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서 좀 더 많이 듣고, 더 알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고 나서 어떤 직감이나 심상 같은 걸 놓치지 않고 디자인 솔루션과 연결을 합니다. 이건 직관 내지는 본능. 정서적인 측면이죠.

이게 경영전략같은 이성적인 측면과 결합이 잘 되면 좋은 브랜드 디자인이 태어나는 건데요. 성공적인 프로젝트는 기능과 정서의 연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연결에서 나온다고 봐요.

전문가로 활약하려면 디자인 솔루션을 여러가지 패턴으로 쥐고 있어야겠네요.

‘깃발 세우기’가 있어요. 어떤 사람은 예쁜 것과 좋은 것을 분류하고, 그것을 남들보다 먼저 얘기해서 명분을 선점하는 방법을 써요. 현상을 분석하고 거기서 얻어낸 직관을 연결하면서 실천가능한 디자인 프로젝트로 개발시킵니다.

저는 ‘경청’을 선호합니다. 가능하다면 일단 남들보다 더 많이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일단 클라이언트의 입장을 다 듣고, 레퍼런스를 검토하며 아는 게 많아질수록 관점이 다양해져요. 관점이 다양해지면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도 다양해집니다. a와 b만 만족시키지 않는 솔루션, 이질적인 c, d, e가 있어도 추진이 가능한 솔루션이 등장하는 거죠. 만약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완전히 틀어지더라도 나중에 계속 디자인을 이어나갈 수 있는 근거와 독특한 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브랜드 디자인의 초기작업은 기획/전략 구상이여서 실무자와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친다는 설명을 보탰다
브랜드 디자인의 초기작업은 기획/전략 구상이여서 실무자와 충분한 토론 과정을 거친다는 설명을 보탰다.ⓒfrice

브랜드 디자이너로서 가장 희열을 느낀 순간은 언제입니까?

열심히 고민한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수용됐을 때입니다. 이제 브랜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대중화된 거 같아요.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은 생각보다 힘이 세거든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한 사이에 이미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어요. 이미 누군가가 설계해둔 디자인에 의해서 말이죠.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디자인은 이미 스며들었다. 당신의 선택지는 사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결정됐다.」

이런 정의를 내릴 수 있을만큼요.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 이론을 이해하고 실제 사례를 접하다보면 남들이 만든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와 대중 모두가 브랜드 디자인을 비판적으로 의식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앞으로도 브랜드의 무언가를 관여하며 디자인할 텐데요. 쉽게 타인에게 휩쓸리지 않는 건강한 취향이 제게도 필요하고, 브랜드 디자인에 영향을 받을 분들에게도 이런 능동적인 태도가 중요할 겁니다. 누군가의 브랜드 디자인을 거스르려는 안간 힘이! 제가 여태까지 했거나, 앞으로 할 디자인에 반영됐으면 합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to be continued…😎

😈 여러분은 자신의 직업에 어떤 의미를 두고 계신가요? 비슷한 일을 하는 업계동료와 직업의 의미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 경험을 전하는 건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유인성 디자이너의 노하우가 담긴 기획 노트를 볼 수 있는 건 커다란 행운이었어요. 1부는 브랜드 디자이너의 관점을 살펴봤는데요. 이어지는 2부에서는 관점이 실제로 구현된 공간을 소개합니다. 보다 깊은 디자인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2부에서 만나요!

나는 상업예술을 긍정한다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쓸 유리를 고르는 박진영 디자이너
진영글라스의 스테인드글라스 아트워크

둥근 스테인드글라스를 <라이언킹>의 갓 태어난 아기 사자처럼 번쩍 드니, 비스듬히 기울어진 색유리에 햇볕이 쏟아진다. 울퉁불퉁한 판유리에서 신비로운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한낮의 햇살이 빳빳한 코튼 셔츠 위에 드리웠다. 셔츠에 비친 색이 알록달록 곱다. 독특한 질감을 지닌 유리를 골라 선과 경계를 만드는 사람. 유리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는 사람.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이너를 만나러 서울 합정동 유리공방을 방문했다.


스테인드 글라스 디자이너 박진영
ⓒfrice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진영글라스 @jyglass 대표 박진영입니다. 서울 합정동에서 5인조 유리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주요사업은 색유리를 잘라 붙이는 스테인드글라스 외주요청작업인데요. 저는 제작일정조정과 도면설계를 담당합니다. 개인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의 대중화에 관심이 많아요. 최근 종교건축시설 뿐만 아니라 상업공간에서 제작의뢰가 늘어서 기쁜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스테인드글라스가 요즘 국내 레스토랑이나 패션브랜드 쇼룸에서 대유행입니다.

최근 상업공간을 운영하는 분들이 공간 디테일에 완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건축/실내 인테리어 투자도 늘어나고 있어요.

패션 브랜드 새터에 납품될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제작중이다
스테인드글라스 설계도면에 맞춰 유리를 자르고 땜질을 진행한다
ⓒfrice

지금 작업은 어떤 의뢰인가요?

가로 3m, 세로 1m 사이즈의 창문입니다. 패션 브랜드 ‘새터SATUR’가 의뢰했어요. 꽃병이나 아트포스터가 진열된 성수동 쇼룸에 설치되는데요. 창이 크게 난 건물이라 작품 스케일도 웅장합니다(웃음) 햇볕이 초록 유리와 노란 유리를 통과하면 실내에 빛이 은은하게 퍼질 텐데, 볕이 워낙 잘 드는 곳이라 설치를 기대하고 있어요.

클라이언트마다 요구하는 게 다를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어떤가요?

개인적인 의견이라 조심스럽지만, 이전에는 해외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하는데 그쳤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내가 이번 업장을 A브랜드처럼 만들고 싶으니까. 설치작품을 A와 비슷하게 하자.”라는 식입니다.

지금은 “내가 A현장을 B라는 콘셉트를 담아 디자인하고 싶으니까 스테인드글라스는 C기법을 쓰자.”라는 구체적인 의견이 나와요.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수행하는 메이커 입장에선 반가운 변화입니다. 창의적인 디자인을 구상하는 게 수월해졌어요.

박진영 디자이너는 제작과정에서 '도안설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박진영 디자이너는 제작과정에서 ‘도안설계’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frice 

구체적인 디자인 프로세스가 궁금하네요.

공방마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저는 도안설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0순위 작업이죠.

1단계는 백지에 선을 그려요. 어떤 유리를 어떤 크기로 자를지 미리 결정하는 작업이죠. 15년 동안 수 천장의 도면을 직접 그렸습니다. 많이 그릴 땐 1년에 200장 쯤 그렸네요. 같은 시안을 규모만 다르게 해서 그리기도 하는데, 틈날때 마다 계속 도안을 짜는 편입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한국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하면, 의뢰주가 완성을 재촉하는 경우가 많아요. 제작자 입장에서 납품이 불가능할 정도로 급박한 시한이 주어지거든요.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해서 할 말이 많지만(웃음) 덕분에 노하우가 생기는 건 사실입니다.

‘시간 절약’과 ‘퀄리티 준수는 서로 대립하는 가치잖아요. 음식에 비유하면 저의 스테인드글라스 디자인은 냉동음식이죠. 적합한 때를 골라 해동시켜 요리하는 셈일텐데요. 미리 디자인에 신경 쓰면 두 가지를 어떻게든 잡을 수 있어요.

도안설계는 드로잉과 그래픽 프로그램 작업을 병행하며 완성시킨다.
도안설계는 드로잉과 그래픽 프로그램 작업을 병행하며 완성시킨다. ⓒfrice

가장 중요한 작업은 무엇입니까?

도안설계가 50%. 유리를 자르고 붙이는 작업이 나머지 40%. 설치가 10%를 차지합니다. 이건 업체마다 다를 겁니다.

설계가 중요한 이유는 작업특성 때문이에요. 유리는 자르는 순간 다시 되돌릴 수 없잖아요. 이유 없이 잘리는 유리는 단 하나도 없어야 해요. 도안에 따른 사전설계는 절대적입니다. 제가 색유리 공예를 견습으로 도울 때만 해도 아무 생각 없었어요. ‘되는 대로 그냥’ 했죠. 선도 마구잡이로 썼었죠.(웃음)

지금은 선을 쓸 때 머릿속에 구상이 이미 그려져 있어요. 작품 구상을 각오하고 백지를 보면, 희미한 점선 같은 게 보이는데요. 그걸 따라 그리는 느낌이죠. 교차한 선이 도형이 되고, 그것이 모여 스테인드글라스 특유의 입체적인 회화를 이룹니다. 그리고 도형 안에 어떤 유리를 써서 연출할지 결정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임무죠.


박진영 디자이너는 가업을 물려받았다.
박진영 디자이너는 가업을 물려받았다. ⓒfrice

어머니 박옥경님은 한국 스테인드글라스 1.5세대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디자이너님과 같은 공방에서 근무하는 동료이기도 하죠.

사실 스테인드글라스는 비주얼 자체가 사람들을 매료시킵니다. 입문하기 좋은 공예 콘텐츠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영향인지 사람들은 제가 어머니의 유산을 자연스럽게 물려받았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론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이자 한국 1.5세대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자인 박옥경 작가에게 유리 디자인을 배웠다
어머니이자 한국 1.5세대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자인 박옥경 작가에게 유리 디자인을 배웠다. ⓒfrice

가업은 언제 물려받기로 결심했나요?

대학을 다녔던 2010년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때만 해도 건설경기가 좋았어요. 2010년대 전후로 가파르게 꺾였는데 특히 종교건축의 타격이 컸어요. 시공이 줄어드니 건설시공사와 나란히 움직이는 스테인드글라스같은 인테리어 사업은 씨가 마르는 거죠. 당시 업체가 10곳이 있으면 8곳이 사라졌습니다. 불황을 견딜 수 있는 자금력을 갖고 있거나, 사업 모델을 전면 재검토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신비로운 색감을 지닌 색유리판
신비로운 색감을 지닌 색유리판 ⓒfrice

우리 공방도 위기였어요. 하필 유리를 많이 수입해둔 상태였는데 쓸 일이 없으니 몽땅 악성재고가 됐습니다. 빚은 가파르게 늘었고 직원도 내보내야 했어요. 결국 유리공방과 어머니와 나. 셋밖에 안 남았어요. 지금은 웃으며 회상하지만, 분명 스테인드글라스 메이커 모두가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작품명 Together. 2019년도 작품으로 수강생과 첫 전시전을 연 기념으로 제작했다. 공방에서 서로 협업하는 모습을 숲속 요정에 빗댔다.
작품명 Together. 2019년도 작품으로 수강생과 첫 전시전을 연 기념으로 제작했다. 공방에서 서로 협업하는 모습을 숲속 요정에 빗댔다. ⓒfrice

부활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흩어진 동료부터 다시 모았어요. 그래서 ‘클래스 운영’에 힘썼어요. 수강생을 모아 그들에게 색유리 자르기나 선긋기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공예씬이 넓어졌으니 상황이 좀 낫지만, 당시엔 이 일을 맡을 사람 자체가 적었어요. 기본적으로 스테인드글라스 교육은 도제식 전수죠. 예술대학에 전공학과가 생긴 건 최근의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공예디자인에서 동료를 모으는 건 단순한 인력난이 아니라, 업계의 근본적인 문제였어요. 크루로 영입해 손발을 맞출 수준의 전문가를 만나려면, 제 생각에 교육 이외의 답은 없었습니다.

초기엔 당시 사장님이셨던 어머니와 의견차가 엇갈렸습니다. 기존 업무인 건축현장 창유리 제작에 시간을 더 투자하길 바라시는 거죠. 외주제작집중이 재무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인데요. 더 멀리 내다보면 고생길이 훤했습니다. 업무를 따내도 결국 인력난에 허덕인다며 반대했죠.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외주의뢰를 무리해서 받느니, 교육사업과 크루육성에 투자하자고 설득했습니다.

2023년 상반기 진영글라스 소속 크루
2023년 상반기 진영글라스 소속 크루. ⓒfrice

클래스 운영하다 보면 재능 있는 사람은 확실히 눈에 띕니다. 유리공예를 직업으로 삼아도 나무랄 데가 없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요. 같이 일하자고요.(웃음) 지금은 5~6인조 크루로 활동하는데요. 개인적으로 5인 팀플레이가 가장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적합한 인력 구성이라 봅니다.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면 다섯 명을 똘똘 뭉치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요?

‘개인의 고유한 재능’입니다. 역설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요. 예컨대 제가 가장 신뢰하는 협업 파트너인 남한울 작가는 공방교육사업의 첫 수강생이었습니다. 남 작가는 원래 회화를 전공했어요. 색유리 앞에서 발휘하는 상상력이 뛰어납니다. 평면을 입체로 뒤트는 솜씨도 대단하죠. 그래서 공방의 3D 공예품 디자인 생산은 남 작가의 덕을 크게 봅니다.

남한울 작가가 디자인 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남 작가는 식물의 조형을 주제로 다양한 공예 디자인 MD를 선보이고 있다
남한울 작가가 디자인 한 스테인드글라스 조명. 남 작가는 식물의 조형을 주제로 다양한 공예 디자인 MD를 선보이고 있다.  ⓒfrice

저희 공방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스테인드글라스 교육사업이 한창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창의력이나 미적 판단이 중요한 직업을 갖고 계시다면 경험 삼아 원데이 클래스를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재밌으니까 일단 해보셨으면 해요. 특히 공예를 직접 배우면서 터득하는 디자인 의식이나 미적 영감은 엄청나거든요.

도려낸 유리에 동테이프를 감는 모습. 색유리의 투명한 물성이 인상적이다
도려낸 유리에 동테이프를 감는 모습. 색유리의 투명한 물성이 인상적이다. ⓒfrice

오직 스테인드글라스에서만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무엇입니까?

빛과 색입니다.

특히 창을 투과한 빛이 간직한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걸 온전히 전하는 예술은 스테인드글라스뿐이라 생각해요. 대부분의 예술작품이 빛 때문에 상해요. 아크릴도 시트지도 강한 빛에 노출되면 5년을 넘기기 힘든데요. 반면 색유리는 빛을 온전히 수용하면서도 사물의 속성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카멜커피 12호점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창. 전국매장위치를 보물지도로 표현했다. 클라이언트가 제공한 아트워크를 반영한 디자인 사례
카멜커피 12호점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창. 전국매장위치를 보물지도로 표현했다. 클라이언트가 제공한 아트워크를 반영한 디자인 사례. ⓒ진영글라스 

여기에 ‘설치’라는 변수가 아름다움을 더해요. 다른 유리공예는 그릇이나 컵처럼 생활소품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작품을 사용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은데, 스테인드글라스는 보통 건축과 조화를 이루는 인테리어로 기능하니까 본질적으로 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실내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편이거든요. 스테인드글라스 제작 자체가 인테리어 욕구를 다 해소시키네요.

합정동 공방에 전시된 다양한 디자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합정동 공방에 전시된 다양한 디자인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frice

카타르시스일까요?

작품을 공방 바깥으로 옮기는 건 늘 고생스러워요. 그래도 예정된 장소에 설치를 끝내면 쾌감이 쏟아집니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갤러리에 전시되는 것보다 건축물의 창문으로 기능했을 때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하늘 아래 똑같은 작품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도 재밌습니다. 작품 A와 B를 나란히 놨을 때 두 작품의 도형배치가 비슷한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색유리 배치나 세척 여부를 따지면 디테일이 달라요. 그래서 작품마다 고유한 가치를 지녀요. 타인이 조형적인 디자인을 카피할 순 있어도 창작자의 에센스를 훔칠 순 없죠.

디자이너로서 끝까지 지키고 싶은 신념 내지는 소신이 듣고 싶어집니다.

「상업 예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한다」 이 생각을 지키고 싶어요.

종교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외한 일반 건축 스테인드글라스 공예는 본질적으로 순수예술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일단 타인이 얽혀요. 건물에 들어갈 창유리만 해도 그렇죠. 건축가, 건축주, 인테리어 시공자, 디자이너 등 여러 사람이 얽힙니다. 작품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의 미적 판단이 일치했을 때, 작품이 제 자리에 걸리는 건데요. 다른 예술 분야를 살펴도 이런 경우가 드물어요. 건축과 접목시킨 인테리어 아트의 특징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의 다양한 디자인 툴
ⓒfrice

상업적인 의도를 지닌 작품에 디자이너로서의 소신을 발휘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클라이언트가 메이커가 추구했던 공통의 예술가치가 이뤄진다는 점이죠. 작품의뢰와 기획초안은 클라이언트의 몫이지만, 그들에게 디자인과 실체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 크루의 몫입니다. 작가로서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충분히 반영된다고 봐요. 작업 한복판에 있으면 오히려 내가 추구하는 예술성이 이루어지는 셈이죠.

스테인드글라스는 이제 교회나 고급 아파트에서 감상하는 값비싼 사치품이 아닙니다. 특히 한국에서 점점 대중화되고 있음을 실감해요. 취향이나 개성을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하려는 사람이 많이 늘었습니다. 저희는 이 흐름을 기쁘게 생각하고 부지런히 작업하려 합니다. 예쁜 거 많이 만들고, 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의 하루를 살피며 공예와 디자인의 차이를 생각해 봅니다. 편견이 깨졌어요. 여태껏 스테인드글라스가 순수 예술이라 생각했거든요. 듣고 보니 설치 환경에 따른 제약이 많습니다.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하는 힘이 필요해 보였어요.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작업하되, 자신을 잃지 않고 최선의 작업물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국의 창작자들을 응원합니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을 사로잡은 진심

커피와 스피치로 매력적인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나디아 박의 인터뷰 커버 이미지
커피와 스피치로 매력적인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나디아 박의 인터뷰 커버 이미지
ⓒfrice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커피 크리에이터 나디아 박(Nadia Park)입니다. 2023년부터 커피와 삶을 엮어서 숏폼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커피를 내리며 짧은 스피치를 하고, 거기에 자막을 단 영상을 인스타그램 릴스에 올렸는데요. 알고리즘에 걸려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커피업계에 몸담으며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려 해요.

활동 100일 만에 팔로워 10만 명을 넘기셨죠. 어쩌다 릴스에 영상을 올리셨나요?

‘대화’의 쓸모를 영상 콘텐츠로 풀고 싶었어요. 저는 커피가 선사하는 대화가 정말 좋습니다. 예컨대 취업준비나 시험결과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만나요. 그런 사람에게 커피를 대접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어느새 압박에서 벗어나요.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계기가 커피에서 시작되는 거죠.

나디아 박은 커피를 통해 '대화의 쓸모'를 디자인한다
나디아 박은 커피를 통해 ‘대화의 쓸모’를 디자인한다. ⓒfrice

“어머니는 잘 지내셔?” 같은 안부나 “넌 우정이 뭐라고 생각해?”같은 철학적 개념을 토론하는 것도 커피에서 출발한다 생각해요. 제가 브루잉 커피를 만들며 떠오르는 생각을 툭 내뱉는 것은 ‘대화’의 시작일 텐데요. 커피가 좋아서 하는 이야기. 상처받은 일상을 치유하는 이야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이야기. 커피가 모든 이야기의 계기를 만든다는 게 너무 좋습니다. 이야기가 모이면 커뮤니티가 생겨요.


'커피 오마카세'를 시연하는 나디아 박. 한 시간 동안 코스메뉴를 즐기는 시간이다
‘커피 오마카세’를 시연하는 나디아 박. 한 시간 동안 코스메뉴를 즐기는 시간이다. ⓒfrice

지금 인터뷰하는 장소도 커뮤니티를 만들기 좋은 공간구성이네요.
호스트와 게스트가 마주 보는 바 테이블석이 많습니다.

보노보노 커피로스터스는 제가 콘텐츠를 만든 곳이기도 하지만, 판교의 오래된 커피 커뮤니티이기도 해요. 커피를 좋아하는 인근 직장인이나 동네 주민들이 모이는 곳이거든요.

그런 공간을 활용해서 커피를 내리고, 사람들을 초대해요. 행사를 진행하면 대화 속에서 일단 제가 행복합니다. 초대손님도 ‘고마워.’ ‘이런 이야기를 나디아랑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다음에 또 올게’라는 응답을 해요. 그 한마디가 저한테는 너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스스로를 바리스타라 소개하지 못해요. 커피를 추출하는 것보다. 커피가 추출된 이후의 일이 더 관심이 많거든요.

크리에이터는 자기만의 고유함을 무기로 활동에 나섭니다.
나디아 박의 오리지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영어로 ‘긍정’을 전하는 것. 사람들은 때때로 자기자신을 믿지 못하는 시기를 겪어요. 완벽하게 극복할 순 없지만, 여러 가지 방법을 실천하며 나아질 수 있어요. 그런 메시지를 전하는 영상은 드물었다고 생각해요.

‘이미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기존 커피 콘텐츠 바깥에 있는 미지의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기존 커피분야 영상은 커피를 비즈니스로 다루거나 전문지식을 교육하는 영상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혹은 브이로그나 ASMR처럼 딱히 메시지가 담기지 않는 영상이 많았죠. 한편 커피 콘테스트에 참가해 경쟁을 이겨낸 분들의 경험담은 귀한데, 저는 대회참가 이력이 없으니 애매하죠.(웃음)

제가 그들보다 더 잘할 수 없거나, 이미 누군가 너무 많이 하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런 건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곱게 갈린 커피빈을 종이필터에 담은 모습. 추출을 준비하는 모습은 커피 오마카세를 체험하는 손님과 대화를 여는 주제였다
곱게 갈린 커피빈을 종이필터에 담은 모습. 추출을 준비하는 모습은 커피 오마카세를 체험하는 손님과 대화를 여는 주제였다. ⓒfrice

인스타그램 릴스 알고리즘에 노출되고 계시잖아요!
혹시 기술적인 노하우를 미리 알고 계셨나요?

사운드를 오리지널로 쓰는 게 숏폼 콘텐츠에 유리하다는 기술적인 조언을 어디선가 듣긴 했었어요. 하지만 정확한 사실은 아니죠.(웃음)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짧은 영상이라고는 하는데 몇 초가 적절하지?’라는 생각에 30초, 1분, 2분. 다 테스트해 봤어요.

숏폼 콘텐츠를 디자인하는 기본 원칙은 나의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거였어요. 오리지널 사운드가 필요한데, 제가 쓸 수 있는 건 목소리뿐이고. 목소리를 써보니 “개성을 표현하려면 영어로 말하는 게 낫겠다.” 이런 식으로 숏폼 영상 디자인 프로세스가 잡혔어요.

나디아 박의 채널은 글로벌해요. 해외구독자가 더 많으시죠?

맞습니다. 첫 구독자 반응은 지인부터 왔어요. 돌이켜 보면 구독자 반응이 뜸했던 첫 시작부터 두 달이 제일 고비였던 거 같아요. 어느 날 친동생이 “누나 그냥 해. 이거 누나 스타일 맞아.”라고 말했는데요. (웃음) 자기를 믿고 계속 하는 수 밖에 없죠.

나디아 박이 꼽은 최고의 커피 릴스 콘텐츠. The Limit Question
@nadiaxcoffee

여태까지 찍은 영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요?

The Limit Question입니다.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라는 질문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간 끝에 얻은 결론이죠. 이건 제가 너무나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커피를 통해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 생각해요.

평소에 고민을 많이 했던 주제였겠어요.

우리는 ‘어떤 커리어를 갖고 싶은가?’를 고민하며 살아요. 그것보다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아닐까요.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결국 대기업 입사로 몰리잖아요. ‘커서 무슨 일하고 싶어?’라는 질문을 어른들이 많이 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질문 자체가 사람을 프레임에 가두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하며 어떤 업에 종사하는지를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게 낫다고 봐요. 나는 어떤 게 좋고 싫은가? 이 질문 중심을 두고 살면, 오히려 커리어를 살릴 기회가 더 많이 열린다고 봐요.

어떤 잔에 커피를 마실지 선택하는 시간. 모두 대화의 순간이다
어떤 잔에 커피를 마실지 선택하는 시간. 모두 대화의 순간이다. ⓒfrice

지금은 커피업계에서 열정을 쏟고 있는 나디아의 모습이 좋은 본보기 같네요.

옛날엔 저도 공부를 잘해서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직장에서 부자가 되는 걸 꿈꿨어요. 물론 경제적 자유는 지금도 꿈꾸죠. (웃음)

어떤 사람들은 하지 말아야 할 직업을 멋대로 정하고, 커리어 수준을 따지는데 에너지를 쏟아요. 그런 일에 아쉬움이 크죠. 예컨대 제가 커피에 빠진 모습을 보고 어떤 분은 ‘쟤는 왜 대학 나와서 고작 커피를 만든대?’라는 말씀을 하실 거예요.

편견이 만든 프레임이죠.

중요한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 인생에 무엇을 곁에 둬야 행복한지를 아는 것. 두 가지가 중요해요. 저한테는 그게 커피였어요. 커피 곁에 있으면, 나의 성장과 나의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지금 커피 안에서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상태입니다.

인생을 향한 진지한 고민과 나만의 대답. 이게 제 커피 영상 콘텐츠의 시작점이었던 것 같아요. 영상을 지속적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획이나 주제의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죠.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리는 나디아 박
ⓒfrice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커피를 통해 모든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이라는 슬로건을 적었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생각인가요?

저는 커피업계에서 일하기 전 IT회사에 재직했어요. 퇴사 직후 마음이 많이 무너진 상태였는데, ‘내가 날 안 믿으면 누가 날 믿을까’라는 생각으로 많은 노력을 쏟았어요. 무언가를 긍정하는 과정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죠.

제가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모습이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구독자분들도 있어요. 제가 느꼈을 때,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타인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에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1분 독백을 전했을 때, “오! 나디아는 생각이 싱싱한 사람이구나!’라는 걸 느끼셨다면 성공이죠. 저는 영상에 메시지를 담고, 거기에 호응한 분들이 계셔요. 영상에 댓글로 자기 생각을 남겨주시는 분들 덕에 긍정 에너지는 더 나아집니다.


구리 소재로 만든 하리오 V60. 브루잉 커피툴로 인기높은 제품이며 유리,도자,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로 제작된다
구리 소재로 만든 하리오 V60. 브루잉 커피툴로 인기높은 제품이며 유리,도자,플라스틱 등 다양한 소재로 제작된다. ⓒfrice

좋아하는 커피도구 하나를 골라주시겠어?

매장에서는 하리오 구리 주전자와 드리퍼요. 열전도가 빠른 소재라 솔직히 다루기 편하진 않아요. 하지만 온도조절이 민감하다는 뜻이기도 해서 다룰 줄 알면 브루잉 커피의 다양한 레시피를 시도할 수 있어요.

선호하는 커피 맛은요?

단맛이요. 설탕의 단맛은 아닌, 다른 단맛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초콜릿 향미를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산미에 큰 거부감은 없지만, 텁텁한 맛보다 어느 정도 달달함이 크게 인식되는 맛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잘 만든 브루잉 커피의 기준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마실 때 느끼는 맛이 조화로운 커피요. 그리고 다 마시고 난 뒤, 입안에 남는 맛이 깔끔하고 부드럽게 끝나는 커피가 잘 만든 브루잉 커피라 생각해요.

입에 남는 느낌이 무거워야 한다, 가벼워야 한다는 바디감에 따른 기준은 아니고요. 커피를 경험했을 때 밸런스가 잘 맞았다고 느끼면, 맛있다고 느끼면 그게 잘 만든 커피라고 생각해요.

카페 소장품. 오너가 유럽에서 가져온 빈티지 컵으로 알록달록한 색유리가 까만 브루잉 커피와 대조되며 아름다운 한 잔이 완성된다
카페 소장품. 오너가 유럽에서 가져온 빈티지 컵으로 알록달록한 색유리가 까만 브루잉 커피와 대조되며 아름다운 한 잔이 완성된다. ⓒfrice 

오직 커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은 뭘까요?

아로마 아닐까요? 커피는 사실 대부분이 물이잖아요. 커피에서 추출된 1%의 성분이 수백 가지 향을 갖고 있다는 게 아름다워요. 제가 알기로 사람이 커피를 맛보며 인식할 수 있는 아로마는 30여 개입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확신을 갖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셋에서 다섯 쯤이에요. 커피에 담긴 아로마를 알면, 커피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볼 수 있겠죠?

아! 예전에 ‘인류가 이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탈이 나서 괴로워했을까?’라는 생각이 번뜩 났어요.

엉뚱한 상상인데요?

커피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발명한 음료인 듯해요. 체리의 씨앗을 빼서 말리고 볶고 갈고 물에 타서 먹는 게 맛있다고 생각을 했다는 거잖아요.(웃음) 그리고 그런 번거로운 음료가 문화가 됐다는 게 신기하면서 동시에 아름다워요.

같은 커피콩을 썼지만, 다른 향미를 느낄 수 있었던 비교시음. 다양한 매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같은 커피콩을 썼지만, 다른 향미를 느낄 수 있었던 비교시음. 다양한 매력을 체험할 수 있었다 ⓒfrice

콘텐츠를 통해서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있나요?

커피를 향유하는 문화를 바꾸고 싶어요. 이 생각에 기반한 메시지를 영상 속에 많이 담고 있어요. 대표적으론 스노브(snob)를 깨는 겁니다.

무언가를 향유하는 방식을 고정시켜버리는 사람들을 흔히 스노브라 부르죠.

맞아요. ‘평양냉면은 이렇게 먹는 거야~’라면서 고집부리는 사람들 같은 거죠. 커피도 있어요. 예컨대 라떼는 꼭 이렇게 마셔야 한다고 남한테 훈수를 둔다거나, 난 숙성우유를 넣은 라떼를 마시니까 스타벅스를 가는 사람보다 취향적으로 우월하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커피 스노브’라 부르죠.

저는 커피를 즐기는데 우열을 가르는 게 싫어요. 인스턴트 믹스커피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파나마 게이샤를 먹는 사람도 각자 입장이 있을 거예요. 저는 커피 스노브를 깨는 일이 커피 문화에 긍정적일 거라 생각해요.

어느 문화를 향유하건 스노브는 항상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더라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커피 스노브가 업계 트렌드를 좌지우지한다면, 저는 거기에 반발심이 드네요.
“스노브 신경쓰지 말고, 각자 좋아하는 커피 마시자.” 그게 제가 커피 크리에이터로서 추구하는 디자인 방향입니다.

방향을 잡고 문제해결에 나선 경험을 조금 더 듣고 싶어요.

디자인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요소를 조정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작업’이란 뜻도 내포하고 있거든요.

그런 의미의 디자인이라면, 제가 했던 한-영 번역을 예로 들 수 있겠어요. 이따금 한국시를 영어로 번역했어요. 당장 생각나는 건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인데요. 한국어의 감수성을 영어로 표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편견이 많죠.

저는 꼭 그렇지 않다고 봤어요. 오히려 영어로 옮겼을 때의 결과물을 업그레이드하자는 목표가 생기는 거죠. 영어로 잘 번역하면 더 많은 문화권에 알릴 수 있어요. 한국현대시의 표현이 영어권에서 제대로 번역되지 않는다는 기존 문제를 해결하는 거죠. 편견을 깨면서 뜻밖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고요. 뭐든 예전보다 나아집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커피 영상 콘텐츠도 비슷한 발상으로 기획하고 있어요.

나디아 박의 '환대'는 컴포트로 번역된다
나디아 박의 ‘환대’는 컴포트로 번역된다 ⓒfrice

커피를 통해 전하고픈 가치는 무엇인가요?

컴포트(comfort)라고 생각해요.

컴포트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에서 말하는 하스피털리티(hospitality)와는 다른 어감입니다.

둘 다 타인을 환영하고 편안하게 맞이하는 느낌이죠. 컴포트는 하스피털리티보다 좀 더 아늑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개념일 겁니다.

저는 일단 커피를 마신 사람들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맛있다, 힐링이 된다’라는 걸 메이커에게 얘기해 주시면 컴포트가 생긴 거죠. 그래서 저는 미소가 너무 중요해요. 커피 마시러 온 사람에게 웃고, 손님도 거기서 느끼는 컴포트가 있는 거죠. “와! 이 카페 호스트는 내 편이구나!”라는 거를 느껴줬으면 좋겠어요. 영상 콘텐츠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에너지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컴포트인 거죠.

커피에 바친 애정은 나디아를 어디로 데려다주나요?

‘성장’입니다. 호기심을 가진 사람에게 성장할 기회가 열리는 것 같아요.

먼저 주변에 관심을 쏟아요. 관심 때문에 질문이 생기고, 그 질문 속에서 더 많은 호기심이 싹터요. 호기심과 질문이 많아지면 무언가를 더 좋게 만들고 싶어져요. 저는 커피를 더 맛있게, 영상은 더 잘 찍고 싶어지죠. 커피가 맛있고, 영상이 좋으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거예요.

판교 보노보노커피로스터즈 크루
ⓒfrice

여기서 인정은 존중(RESPECT)에 가깝겠네요.

존중은 커뮤니티를 만들어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나디아라는 사람의 필요성이 생기는 걸 텐데요. 저는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한다는 데서 큰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에요. 커피를 둘러싼 커뮤니티가 큰 힘이 된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나디아 박의 자부심은 무엇인가요?

@buonobuonopangyo 의 ‘브루잉 커피’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커피 선생님을 만났고 그분이 알려주신 핸드드립 추출법이 있어요. 건강에 좋기도 하고, 왜 건강에 좋은지 논문 발표를 할 정도로 이색적인 방식입니다. 흥미로워서 배웠고, 덕분에 판교 커피씬에 정붙일 수 있었어요. 이곳에서 배운 한국커피씬의 오리지널이 없었다면 허리에 손을 얹고 구리 주전자에 담긴 물을 잘게 갈린 커피콩에 붓는 모습도 없었을 거예요. 자부심이자 뿌리죠.

기회가 되시면 이곳의 브루잉 커피를 꼭 맛보셨으면 합니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부심을 느껴주세요.

😈 나디아 박의 인터뷰는 어땠나요? 콘텐츠 메이커의 디자인 철학을 듣는 것도 소중했지만, 창작 이면에 있던 고민을 기록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나는 여태까지 어떤 모습으로 커피를 즐겼었지?”라는 물음도 생기네요.

이번 인터뷰는 ‘나다움의 방식’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구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먼저 자기자신의 마음을 단정히 가꿔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이번 스페셜 인터뷰가 개성을 활용해 콘텐츠를 디자인 하려는 분들에게 좋은 영감을 전하길 바랍니다.